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 아침에] 살 맛 죽을 맛, 살아있는 동안

여왕도 죽는다. 중국을 통일하고 평생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제도 죽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유명한 사람, 권력 있는 사람, 별 볼 일 없는 사람, 산 사람은  모두 죽는다. 삶의 높낮이와 길이가 천차만별이라 해도 늙는 것과 죽는다는 사실 만큼은 공평하다.     끝을 재보지 않으면 생의 길고 짧음은 가늠하기 힘들다. 살아온 흔적을 훑어봐도 잘 살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다. 행복해 보였던 사람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살았을 수도 있고 비천해 보이는 삶이 황홀한 이름다움일 수 있다.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생을 미사여구나 미련한 비판으로 요약해 평가하기는 힘들다.   새집으로 이사 온 후 텃밭과 마당 가꾸기에 골몰했다. 허리 굽혀 땅을 파고 머리 들고 하늘 올려보며 난생처음 호젓한 기쁨을 만끽한다. 어디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고 가꾸고 물주며 다음날 얼마나 자랐는지 키를 재는 일은 아이들 키울 때처럼 즐겁다.     동네 산책하며 이웃에 핀 크고 탐스러운 수국을 살펴본다. 수국은 초여름에서 무더운 여름 중순까지 피는데 흰색, 보라색, 옅은 노란빛을 온몸에 감고 왕관 쓴 여왕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내년 봄 뒤뜰에 심을 생각을 했는데 마음이 변했다. 가을의 문턱에 닿자 수국은 고고했던 자태를 꺾고 커다란 잎이 누렇게 변해간다. 작은 꽃송이들은 시들면 바람에 날려가거나 땅에 떨어지는데 수국은 꽃이 너무  커서 잘라주지 않으면 한겨울 내내 죽은 잎들을 장송곡처럼 매달고 겨울을 버틸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들의 죽음은 작고 소박한 작별보다 흉하고 잔인하다.         피자 사러 큰길 피해 한가한 샛길로 빠졌는데 후진하는 커다란 트럭 한 대가 내 차를 박을 뻔했다. 몇 초만 늦거나 빨랐어도 삶과 죽음이 달라졌을 것이다.   운명을 믿는다. 좋은 것만 골라서 믿기로 한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과 가는 목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향기도 믿을 게 못 된다. 고통과 절망을 등에 업고 목숨 붙어있는 동안 미지의 길 따라 쓰러질 때까지 걷기를 계속할 뿐이다.     나이 들면서 죽음을 맞는 일이 많아졌다. 축하파티보다 병문안과 장례식 초대를 더 받는다. 찬란하고 빛나는 시간 동안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을 떠나 보냈다.     세월은 마른하늘에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후딱 지나갔다. 눈먼 사랑에 빠져 약혼식, 결혼식 거쳐 베이비샤워로 선물 폭탄 받으며 애 셋을 출산했다. 인생의 화려한 봄날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돌잔치 서로 초대하고 입학식, 졸업식 잔치한 게 어제 같은데…. 그 세월 진초록으로 물오른 우람한 나무 뒤로 버티는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둥지 떠나는 애들 기숙사로 들여보내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제 짝 만나 결혼하고 손주들 유치원 입학 소식을 듣는다.     이젠 비발디의 사계절을 듣지 않는다. 봄 여름이 지나간, 남은 계절의 슬픔을 누르며 낭만이 흐르는 쇼팽의 야상곡을 듣는다. 단순하고 서정적이면서 감미롭게 격정을 잠재우는 녹턴(Nocturne)은 생의 아픈 마디를 건반으로 누르듯 반복되는 피아노의 경쾌한 박자로 애절하고 따스하게 가슴을 울린다. .     인생은 접어서 버릴 일기장이 아니다. 포기는 없다. 잠시 멈춤이 있을 뿐이다. 살 맛 죽을 맛 사이를 오락가락해도 살아있는 동안 희망의 끈 놓지 않는다. 이기희 / Q7 Fine Art 대표·작가이 아침에 입학식 졸업식 약혼식 결혼식 장례식 초대

2022-10-1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 맛 죽을 맛, 살아있는 동안

여왕도 죽는다. 중국을 통일하고 평생 불로초를 찿아 헤매던 진시황제도 죽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유명한 사람, 귄력 있는 사람, 별 볼일 없는 사람, 산 사람은 모두 죽는다. 삶의 높낮이와 길이가 천차만별이라 해도 늙는 것과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공평하다.       끝을 재보지 않으면 생의 길고 짧음은 가늠하기 힘들다. 살아온 흔적을 훑어봐도 잘 살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다. 행복해 보였던 사람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살았을 수도 있고 비천해 보이는 삶이 황홀한 이름다움일 수 있다.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생을 미사여구나 미련한 비판으로 요약해 평가하기는 힘들다.   새 집으로 이사온 후 텃밭과 마당 가꾸기에 골몰했다. 허리 굽혀 땅을 파고 머리 들고 하늘 올려보며 난생 처음 호젓한 기쁨을 만끽한다. 어디에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고 가꾸고 물주며 다음날 얼마나 자랐는지 키를 재는 일은 아이들 키울 때처럼 즐겁다.     동네 산책하며 이웃에 핀 크고 탐스런 수국을 살펴본다. 수국은 초여름에서 무더운 여름 중순까지 피는데 흰색 보라색 옅은 노랑색을 온몸에 감고 왕관 쓴 여왕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내년 봄 뒤뜰에 심을 생각을 했는데 마음이 변했다. 가을의 문턱에 닿자 수국은 고고했던 자태를 꺾고 커다란 잎이 누렇게 변해간다. 작은 꽃송이들은 시들면 바람에 날려가거나 땅에 떨어지는데 수국은 꽃이 너무 커서 잘라주지 않으면 한겨울 내내 죽은 잎들을 장송곡처럼 매달고 겨울을 버틸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들의 죽음은 작고 소박한 작별보다 흉하고 잔인하다.       피자 사러 큰 길 피해 한가한 샛길로 빠졌는데 후진하는 커다란 트럭 한대가 내 차를 박을 뻔 했다. 몇 초만 늦거나 빨랐어도 삶과 죽음이 달라졌을 것이다.   운명을 믿는다. 좋은 것만 골라서 믿기로 한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과 가는 목 산들거리는 코스모스 향기도 믿을 게 못 된다. 고통과 절망을 등에 업고 목숨 붙어있는 동안 미지의 길 따라 쓰러질 때까지 걷기를 계속할 뿐이다.     나이 들면서 죽음을 맞는 일이 많아졌다. 축하파티 보다 병문안과 장례식 초대를 더 받는다. 찬란하고 빛나는 시간 동안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을 떠나 보냈다.     세월은 마른 하늘에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후딱 지나갔다. 눈 먼 사랑에 빠져 약혼식 결혼식 거쳐 베이비샤워로 선물 폭탄 받으며 애 셋을 출산했다. 인생의 화려한 봄날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돌잔치 서로 초대하고 입학식 졸업식 잔치한 게 어제 같은데… 그 세월 진초록으로 물오른 우람한 나무 뒤로 버티는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둥지 떠나는 애들 기숙사로 들여보내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제 짝 만나 결혼하고 손주들 유치원 입학 소식을 듣는다.     이젠 비발디의 사계절을 듣지 않는다. 봄 여름이 지나간, 남은 계절의 슬픔을 누르며 낭만이 흐르는 쇼팽의 야상곡을 듣는다. 단순하고 서정적이면서 감미롭게 격정을 잠재우는 녹턴(Nocturne)은 생의 아픈 마디를 건반으로 누르듯 반복되는 피아노의 경쾌한 박자로 애절하고 따스하게 가슴을 울린다.     인생은 접어서 버릴 일기장이 아니다. 포기는 없다. 잠시 멈춤이 있을 뿐이다. 살 맛 죽을 맛 사이를 오락가락 해도 살아있는 동안 희망의 끈 놓지 않는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입학식 졸업식 약혼식 결혼식 장례식 초대

2022-10-04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