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아침에] 죽음은 다리 하나 건널 뿐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하늘은 빨갛게 타올랐다. 검게 물들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아직도 타는 듯한 냄새가 코에서 맴돌았고 잿가루가 차 지붕에 쌓였다. 을씨년스러운 산과 주위를 보며 프리웨이를 달렸다. 정체가 없어서 생각보다 일찍 할리우드 힐스 포리스트 론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뭔가 겪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착잡한 마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고 끝나 가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다.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별식으로 생각하게 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았다. 긴 의자는 등받이가 높았고 칸막이를 해 놓은 듯 보여 엄숙함을 더 하는 것 같았다. 조문객들은 조용히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접수처에서 내 이름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밸리에 사는 문우였다. 오기로 한 문우들이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장례식 순서지를 보니 시와 수필이 실려있었다. 시는 추모하는 글이었고 수필은 그녀가 죽기 전에 써놓은 글이었다. ‘영혼의 이별식’인데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쓴 것이다.     그녀는 “평소 즐기던 음악을 내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과 감상하고 영혼의 이별식 하루 만이라도 숙명적으로 낙엽인 된 나와의 결별을 슬퍼해 줄 몇 명의 진실한 가슴만 있다면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리라”고 썼다.   이제 내가 여기에 와있다. 그녀가 써놓은 수필의 손님으로 앉아 있다. 그녀는 작년 8월 달 동네방 글공부 모임에 나왔었다. 내가 밥을 산다고 했다. 그때는 4명만 나왔다. 그녀는 “밥을 산다고 하니 나와야죠” 하고 말했다. 약간 수척한 듯 보였지만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글에 대해 진지하게 평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모임과 한강 노벨상 문학 축하 자리에 나왔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11월 달 줌미팅에서였다. 그때 한 회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생님, 나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저번 때 나오지 않으셨더라고요. 선생님이 저번 때 평한 것을 가지고 제 작품을 많이 고쳤어요.”     그때에도 그녀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달 6일 카톡으로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어느 회원의 이메일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 이메일로 그녀가 그 회원의 작품에 대해 평한 것이 들어왔다. 아마도 건강이 허락지 않아 대면 모임에 나오기 힘들어서 보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녀가 갑자기 찾아온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14일 동네방 글공부 대면 모임에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먼 거리에 사는 회원이 모처럼 나왔다. 그녀가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어제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다. 오늘 나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실감나지 않았다. 뜻밖이었다. 회원들은 놀랐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 몰랐다.     이제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그녀 앞에 와 있다.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제 아내는 아직도 아름다워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잘 보고 가세요.”     그녀 앞에 다가갔을 때 평소 말하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와 줘서 고마워요.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겠어요.”   그녀는 단지 신호등의 교차로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차로를 건너가면 다른 거리가 보이고 다른 세상이 보인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올지도 모르며 우리 곁에 있다. 그저 다리 하나 건너는 것뿐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게 다가왔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고 하나의 연결로 생각하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오늘 하루를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될 것 같다. 그리고 가족, 친구, 지인을 포함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순간 순간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이정호 / 수필가이아침에 죽음 다리 대면 모임 동네방 글공부 다리 하나

2025-01-26

[이 아침에]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한 달 전쯤 한국에서 일어난 계엄 사태는 수많은 뉴스를 쏟아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심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마다 ‘속보(速報)’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것뿐인가 그 이후에도 여러 뉴스가 ‘속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속보’는 중대한 사건, 사고, 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언론 매체에서 우선적으로 보도하는 뉴스를 의미한다.   언론에서는 ‘속보’라는 제목을 달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알았는지 기사마다 ‘속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저마다 급한 뉴스라고 내놓는다. ‘속보’라고 내놓는 기사가 대부분 별로 급할 필요가 없는 소식인 줄을 알면서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속보’라는 말의 ‘속’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은 1970~80년대 ‘속보’를 다급히 외치던 시절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작은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방송에서 속보가 전해졌다. 뉴스 진행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TV 앞에 모여 귀를 기울였다. 뉴스 진행자가 속보를 전했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뉴스를 보던 사람마다 깜짝 놀라며 서로에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야! 아니, 세상에! 그렇게 큰 태양이 오늘 다시 떠오르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는 성공학의 대부로 알려진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자신의 책 ‘Time Power(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에서 전하는 우화다. 트레이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떠올랐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지고, 그 소식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나라가 아니라, 지혜로운 천재들의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천재들은 공통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도 범상치 않은 뉴스가 전해졌다.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될 속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라는 뉴스다.     지구가 비행기보다 100배나 빠른 시속 6만7000마일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 태양을 365일 만에 한 바퀴 돌아 우리에게 새해 첫 아침을 선사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란 말인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낮과 밤이 수백 번 바뀌었고, 봄·여름·가을·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런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곡식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었고, 우리의 인생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새해 첫 아침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경이로운 뉴스로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만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아침이 밝았다.’는 속보를 전하며, 새해 인사를 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뉴스 진행자 새해 인사 새해 아침

2025-01-0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