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은 가라…세계는 '이모지'로 통한다
#1.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지난 4월 직접 디자인한 자신의 이모지 앱을 론칭했다. 이모티칼(EMOTIKARL)'이라 불리는 이 앱은 라거펠트 브랜드의 세계를 고스란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스터드 장갑 낀 손으로 표현한 다양한 보디랭귀지들은 라거펠트의 평소 손동작을 응용한 것. 가령, "옷 입은 스타일이 별로야!"라고 지적하고 싶을 땐 부채를 펴서 손에 쥔 이모티콘을 상대에게 보내면 센스 만점. #2. 블로그 '이모지 내러티브'(Narratives in Emoji)에는 이모지 만으로 구성된 짧은 이야기들이 올라와 있다. 배의 닻 그림으로 시작해 깨진 하트 모양으로 끝나는 총 14개의 이모지로 구성된 영화 '타이타닉'의 줄거리를 비롯, 95개의 이모지로 이루어진 '레 미제라블'도 있다. 데이터 엔지니어 프레드 베넨슨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1만 여개의 문장을 모두 이모지로 바꾸기도 했다. #3. 애플워치의 독특한 메시징 기능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모지'를 이용해 굳이 스마트폰을 열고 이모티콘을 선택하지 않아도 손가락 움직임 한 번만으로 상대의 메시지에 답을 보낼 수 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나 이메일에 이모티콘 대신 얼굴 표정이나 사물을 단순화한 아이콘인 '이모지'(emoji) 사용이 보편화 되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는 이미 이모지를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모지'는 괄호나 쉼표 등 부호를 조합해 표정을 만드는 이모티콘과 달리, 하나의 아이콘으로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현재 감정을 다양한 표정의 아이콘으로 표현할 수 있고, 술 생각이 난다면 소주나 맥주 아이콘을 보낼 수도 있다. 휴대 전화로 메일을 쓸 때 스마일이나 우는 얼굴, 개나 고양이 등의 동물, 음식, 날씨, 교통 및 다양한 종류의 아이콘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고 문구에 붙여 상대에 보낸다. '이모지'는 1982년 일본의 청소년들이 삐삐에 이를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이모지가 휴대용 단말기에 들어간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아시아의 휴대전화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인기를 끌어왔으나, 미국의 사용자들에게 널리 소개된 것은 '아이폰의 효과'이다. 2010년, 구글, 애플, MS 등 10개 소프트웨어 회사가 참여한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국제 표준이 된 이모지들을 유니코드에 넣기로 합의했다. 다음 해 애플은 iOS5 에 이모지를 넣었으며, 현재 1천 개 가량의 이모지가 등록되었고 그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또한 구글의 메일 서비스 'G 메일'에서도 그림 이모티콘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이모지를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에서 사용하려면 다국어 키보드 항목에서 '이모지' 자판을 추가해야 한다. 한국어, 영어를 모두 써야하는 경우에는 자판 세 개를 번갈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모지는 이미 여러 문화에 침투해 있다. 올 봄에 출시된 팝스타 비욘세의 비공식 뮤직비디오 'Drunk in love'는 일체의 영상 없이 이모지만으로 만들어졌다. 오직 이모지 만으로 소통하는 소셜 네트웍 서비스 '이모지리(Emojili)'도 등장했다. 최근 출시된 '이모지요(Emojiyo)'라는 이모지 파워유저용 키보드 앱은 자주 사용하는 이모지와 이모지 컴비네이션들을 저장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모지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기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모지'라는 말은 지난해 8월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판에 추가된 새로운 단어 43개 중에 포함되기도 했다. 빠른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현대인은 행복함, 슬픔, 지루함, 배고픔과 같은 순간의 감정을 짧고 간략한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힘들다ㅠ_ㅠ'는 글을 SNS에 올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는 구구절절 말을 건넬 필요 없이 물방울 그림이 그려진 '힘내요' 버튼을 누르면 된다. 시암 선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는 "문자는 감정 표현 수단으로 매력이 없다"며 "이모티콘이 열어놓은 보다 풍부하고 효과적인 감성 전달의 가능성을 이모지가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이모지가 등록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 이모지가 기존의 이모지로는 전달할 수 없었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사회성'이 이모지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이모지가 처음 일본에서 발달됐기 때문에 인종별, 문화별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사용자가 원하는 피부색깔을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 중이며 내년 중반부터 출시할 예정이다. 이모지가 언어라는 구속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형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양경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