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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푸르고 단정했던 잔디밭이 몇 해 사이 잡초 밭으로 변했다.   가뭄에도 잡초는 잘 자랐다. 며칠 물을 더디게 주면 잔디는 마르기 시작한다. 잡초는 아랑곳 않고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에 잡초가 푸르다. 셋방으로 들어와 주인을 밀어 내는 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잡초와 씨름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잡초가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잔디 깎는 기계로 밀었다.     키 큰 잡초는 서서히 사라졌다. 얼핏 보면 잔디처럼 보이는 게발잔디가 게 옆걸음질 치듯 뻗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눈물겹다.   잡초도 꽃을 피웠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한 괭이밥에 노란 꽃송이가 맺혔다. 토끼풀도 하얀 꽃을 총총 매달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도 모르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모두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노란 괭이밥 꽃은 배시시 웃는 아기 웃음을 닮았다. 흐드러지게 피는 겨자꽃은 바람이 불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출렁인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녀석들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르지 않고 두었더니 하늘하늘한 가지 끝에 연 보라색 꽃이 피었다.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약성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터인데 그 가치를 모르니 우리 집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는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뿌리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 사이에 숨어 있던 알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옮겨 놓았다. 잡초에서 화초로 신분이 바뀌었다. 잎이 나날이 푸르러지더니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붉은 꽃을 피웠다. 어찌나 색이 요염한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유혹하는 여인 같다.     수 년 전 담장을 따라 조그만 꽃밭을 만들었다. 담장에는 하얀 덩굴장미를 올렸다. 향기 좋은 재스민도 심었다. 무궁화와 칸나는 계절을 달리하여 피어났다. 화단 앞쪽에 백장미와 붉은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대를 세우고 꽃을 피우는 장미 아래로 잡초가 무성하다. 장미가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은 다 예쁘다. 가꾸어 피어나는 꽃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잔디밭을 차지한 잡초도 화사한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용서가 된다.     5월이다. 가지에는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잡초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뒤뜰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마당은 잡초와 화초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을 비웃는 성싶다.     잡초는 꽃의 화려함을 질투하지 않는다. 꽃은 잡초의 강인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우아 잡초 잡초 취급 잡초 사이 사이 잡초

2022-05-11

[이 아침에]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푸르고 단정했던 잔디밭이 몇 해 사이 잡초 밭으로 변했다.   가뭄에도 잡초는 잘 자랐다. 며칠 물을 더디게 주면 잔디는 마르기 시작한다. 잡초는 아랑곳 않고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에 잡초가 푸르다. 셋방으로 들어와 주인을 밀어 내는 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잡초와 씨름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잡초가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잔디 깎는 기계로 밀었다.     키 큰 잡초는 서서히 사라졌다. 얼핏 보면 잔디처럼 보이는 게발잔디가 게 옆걸음질 치듯 뻗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눈물겹다.   잡초도 꽃을 피웠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한 괭이밥에 노란 꽃송이가 맺혔다. 토끼풀도 하얀 꽃을 총총 매달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도 모르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모두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노란 괭이밥 꽃은 배시시 웃는 아기 웃음을 닮았다. 흐드러지게 피는 겨자꽃은 바람이 불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출렁인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녀석들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르지 않고 두었더니 하늘하늘한 가지 끝에 연 보라색 꽃이 피었다.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약성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터인데 그 가치를 모르니 우리 집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는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뿌리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 사이에 숨어 있던 알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옮겨 놓았다. 잡초에서 화초로 신분이 바뀌었다. 잎이 나날이 푸르러지더니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붉은 꽃을 피웠다. 어찌나 색이 요염한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유혹하는 여인 같다.     수 년 전 담장을 따라 조그만 꽃밭을 만들었다. 담장에는 하얀 덩굴장미를 올렸다. 향기 좋은 재스민도 심었다. 무궁화와 칸나는 계절을 달리하여 피어났다. 화단 앞쪽에 백장미와 붉은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대를 세우고 꽃을 피우는 장미 아래로 잡초가 무성하다. 장미가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은 다 예쁘다. 가꾸어 피어나는 꽃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잔디밭을 차지한 잡초도 화사한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용서가 된다.     5월이다. 가지에는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잡초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뒤뜰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마당은 잡초와 화초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을 비웃는 성싶다.     잡초는 꽃의 화려함을 질투하지 않는다. 꽃은 잡초의 강인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우아 잡초 잡초 취급 잡초 사이 사이 잡초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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