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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김 KYC 초대 관장 “코리안 아메리칸 긍지 심는 이민 역사박물관 개관 기대”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관장 송정호)은 거의 50여년을 이어온 한인타운의 대표적인 비영리 봉사단체다. 한인 청소년 문제를 돕기 위해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인사회를 넘어 인근 지역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오늘날 KYCC는 1975년 설립된 한인청소년회관(Korean Youth Center·KYC)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초 일본·중국 커뮤니티에서 2, 3세들의 마약 문제가 불거지자 약물중독방지를 위해 비영리기관인 ‘아시안 아메리칸 약물방지 프로그램(AADAP)’을 시작했다. 청소년 문제를 겪은 AADAP는 새 이민 커뮤니티인 한인 사회의 청소년의 문제를 미리 방지하고자 한인사회에 아웃리치 센터를 만들었다.     1975년 LA 한인타운 올림픽 블러버드와 크랜셔 블러버드에 AADAP의 한인 사회 아웃리치 센터로 한인청소년회관(KYC)이 문을 열었다. 이것이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의 시작이었다.     KYC 초창기에는 천방욱 목사가 이끌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을 열어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대화를 나눴다. 김인환씨가 카운슬러로 들어오고 1977년 제인 김씨가 UCLA를 졸업하고 합류했다.   김씨는 1968년 14세에 목사님인 아버지를 따라 이민 온 1.5세였다. 이민 1세대 한국 부모님을 둔 틴에이저로서 학교에 가면 다른 세상을 봤다.     그는 “보수적인 한국교회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문화와 성장 배경,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 미국 친구들을 보며 방황했었다”고 말했다.     한인사회에서 이민 와 생계에 바쁜 1세대 부모와 청소년 자녀의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목도하며 김 씨는 1.5세로서 겪은 경험을 살려 한인 청소년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사회학 전공에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 자산을 살려 KYC 카운슬러 포지션에 지원해 1977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크리스천이 가지고 있는 사명과 자산에 대해 고민했다”며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에 KYC에서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AADAP가 뒤에서 지원하면서 KYC는 1983년 독립해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게 된다. KYC의 초대관장은 UCLA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김씨가 맡았다.   김씨는 “여성이 이끄는 한인 단체가 드물었던 당시 리더를 맡는 것은 부담이었다”며 “AADAP에서 한인 사회 여성 리더십이 필요하고 자라나는 여자 학생들에게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설득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초대 관장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마약, 갱 등 문제 있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학교 카운슬러와 공조했다. 한국 학생들의 마약, 갱 문제 등으로 청소년 프로그램도 필요했지만, 가정폭력 문제도 심각했다. 이에 부모 세미나, 학생 카운셀링, 이중언어 상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농구 프로그램, 튜터링, 부모 서포트 그룹 등 다른 방향의 아웃 리치 프로그램을 펼쳤다. 또 고용 및 취업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KYC를 커뮤니티 서비스 단체로 성장시켰다.   이 당시 청소년 회관 이사진으로 천방운 목사, 민병수 변호사, 김인환 관장, 헨리 황 박사 등의 활동으로 KYC 기초가 다져졌다.   1988년에 김 관장 후임으로 김봉환 씨를 새 관장으로 맞이했다. 제인 김 관장 시절 회관건립위원회가 구입한 윌셔와 윌튼 인근 주거지(986 Ingraham St.)를 청소년 회관 시설이 들어서는 복합건물로 개발하기 시작해 1994년 완공했다.   1998년 9월 김 관장의 뒤를 이어 송정호씨가 관장으로 취임하며 한인에서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단체로 거듭났다.     제인 김씨는 “청소년과 부모 관련 이슈에 집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개발되기를 바란다”며 “차세대가 이민 역사를 배우고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코리언 아메리칸 박물관 같은 장소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은영 기자역사박물관 아메리칸 한인 청소년들 한인타운 청소년회관 초대 관장

2023-09-21

[기고] 소식 없는 한미박물관 건립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고, 다가올 미래는 현재가 켜켜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시간을 되돌려 가볼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을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바로 역사박물관이다. 역사박물관에서 과거의 모습을 보고 경험한 것들이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를 결정짓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뿌리와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더 나은 미래의 꿈을 가꾸어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역사박물관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역사가 없는 민족은 존재 가치가 없다.    올해 미주 한인이민 120주년을 맞았다. 1903년 1월13일, 102명의 한인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를 태운 첫 이민선인 갤릭호가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이들이 우리의 이민선조들이요,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시작이다. 그 후 결혼, 유학, 취업 그리고 가족초청 등 다양한 경로로 많은 한인이 미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1910년 일제는 강제 체결한 한일병합조약을 빌미로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다. 이에 일제강점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려는 독립운동이 중국뿐만 아니라 미주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민족적 이념을 추구한 도산 안창호 등 많은 독립투사가 대한독립을 위해 분투한 터전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한인 최초 의학사를 취득한 서재필 박사를 비롯해 대한의 개혁 운동과 민주주의 가치를 드높인 숭고한 분들의 혼이 담겨있는 곳이다.   미주 한인 이민역사의 흔적들을 한 곳으로 모아 후세에게 민족의 얼을 일깨워 줄 공간이 있어야 함이 당연한 것 아닌가. 현재 250만 명의 한인이 살고 있는 미국에 아직 온전한 역사박물관이 건립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역사박물관 건립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가주 한인사회는 1991년부터 ‘한미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30년이 넘도록 진척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LA시가 건물 부지를 거의 무상으로 장기임대해준 지 올해로 10년이 됐지만, 아직 설계 도면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재정적으로 고 홍명기 회장이 생전에 25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여러 독지가가 후원하였고, LA시와 가주, 연방정부까지 기금을 지원했는데도 아직 한미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긍정적인 발표가 없다는 것이다.   한미박물관은 한인 이민역사를 알려 줄 대표적인 역사박물관이기에 꼭 건립되어야 한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로 잘 알려진 ‘뿌리(Roots)’는 흑인 노예제도의 역사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한 가족의 여정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생존하고, 유산을 지키려는 그들의 의지를 다뤘다. 그들은 참혹함을 기억조차 하기 싫었겠지만, 뿌리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립하려 했던 것 아니겠는가.   한인 1.5세, 2세들이 이민역사를 통해 뿌리를 알고,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중요한 일이다.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되돌아보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비록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한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뿌듯한 것은 조국의 발전이다.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압도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BTS, 블랙핑크 등 문화예술, 그리고 전자, 자동차 등 한인들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점으로 한인 이민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눈으로 보고, 알고, 배울 수 있는 한미박물관 건립이 절실하다. 이것은 이민 1세들이 꼭 해야 할 사명이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한미박물관 소식 한미박물관 건립 한인 이민역사 역사박물관 건립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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