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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울과 울 사이, 우울(憂鬱)과 억울(抑鬱)

 저는 울(鬱)이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글자의 느낌이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빽빽해서 답답한 느낌이 드는 글자입니다. 이 글자를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간단하게 씁니다. 간체자나 약자로 쓰는 겁니다. 사용하기에는 편해졌을지는 몰라도 글자의 느낌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한자를 적극적으로 쓰자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자가 보여주는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 대해서는 늘 감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자를 간략하게 쓰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울이 들어가는 어휘 중에 제 마음을 끄는 게 ‘우울’과 ‘억울’입니다. 둘 다 답답함을 확 느낄 수 있는 어휘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우울(憂鬱)은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억울(抑鬱)은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함. 또는 그런 심정’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정의만 읽어봐도 우울하고 억울한 감정이 듭니다. 사실 단어의 뜻에는 그런 감정이 안 묻어있을 텐데 우리가 우울과 억울의 감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어에서는 우울증을 울병(鬱病)이라고 합니다. ‘울’만 있어도 충분히 힘든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 억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범죄와 사고가 억울함을 못 참아서 일어납니다. 사실 억울함은 참기가 어렵습니다. 못 참는 게 당연할 겁니다. 억울함은 나를 조여 오는 감정입니다. 우울은 나를 둘러싼 생각이 가라앉아서 쌓인 감정입니다. 모이고, 고이면 썩습니다. 냄새도 나고, 짓무르기도 합니다. 우울은 헤어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참 생각만 해도 힘이 듭니다.     억울함은 외부에서 비롯되는 감정입니다. 주로 공정하지 못함이 억울함의 원인이 됩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몰아붙이면 억울함이 발생합니다. 또한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가만두고 나에게만 죄를 물으면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함은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감정이 아니라 공정하지 않음에 대한 반발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울함이 밖에서 들어오는 감정이라면 우울은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물론 우울의 시작은 ‘밖’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함이 쌓여가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그 일을 곱씹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감정입니다. 터지기 일보직전이지요. 우울함이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터지기 일보직전의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은 밖으로 폭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는 자기를 터뜨립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죠.     우울이나 억울은 모두 터지게 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빽빽하게 쌓여 팽창하고 있으니 터질 수밖에요. 그런 면에서 ‘울’이라는 감정은 위험한 감정입니다. 저는 억울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볼 힘을 길렀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찾는 겁니다. 우울도 비슷합니다. 자신의 속에 쌓인 찌꺼기를 덜어내고,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밖으로 나가는 건 무조건 좋습니다. 힘들면 집을 나서고, 힘들면 걸어야 합니다. 힘들면 산에도 가고, 숲길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속에 빽빽함이 조금씩 성기게 될 겁니다. 비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만 풀이과정을 몰라서 답답합니다.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풀이과정의 시작입니다. 스스로의 모습을 깨달은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억울함도 우울함도 다 나아질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스스로도 소망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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