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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 우주 식민지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 민족에게 식민지란 말은 거부감이 있다. 그래도 미래 어느 날 인류가 지구 밖 천체에 살게 되면 그곳은 자동으로 지구의 식민지가 된다. 지금 우리 눈에 들어온 우주 식민지 후보는 달과 화성인데 달까지는 로켓으로 3일이면 가지만, 화성은 최첨단 로켓으로 7달 정도 걸린다고 하니 아직은 넘보기 힘든 곳이다.   달이나 화성 같은 곳에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필요한데 다행히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 대량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대기가 없으면 기온의 변화가 심해서 달에서 밤에는 섭씨 영하 200도 아래로 내려가고 낮에는 비등점을 웃돈다. 밤낮의 일교차가 섭씨로 300도가 넘는다는 말이다.     물론 현대 과학기술로 실내에 살기 알맞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일명 테라포밍(지구화)을 해야 하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물은 달 남극에 있는 풍부한 얼음을 녹여 사용할 수 있고 그 물을 전기분해 해서 숨 쉴 수 있는 산소도 만들 수 있다.   달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 지구에서 건축자재를 가져가는 것은 일도 많고 전혀 경제적이지도 않다. 그곳 토양에서 건축에 쓸 수 있는 재료를 찾아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인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달과 화성은 지구처럼 자기장이 없어서 태양에서 날아오는 태양풍에 그냥 노출된다. 그런 해로운 방사성 물질에 피폭되지 않으려면 두꺼운 콘크리트로 지붕을 덮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땅속에 굴을 파거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천연 지하 동굴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달도 자기장이 없어서 태양풍이 걸러지지 않고 그냥 달 표면에 떨어져 쌓이다 보니 헬륨-3라는 물질이 곳곳에 널려있다. 헬륨-3는 중수소와 핵융합 반응을 하여 막대한 에너지를 내는 물질인데 중수소는 지구의 바닷물에 풍부하다. 어쩌면 우리의 에너지 위기를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자원의 보고다. 게다가 첨단 전자기기에 꼭 필요한 희토류도 달에 많아서 지난 반세기 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있던 달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달의 남극 지방은 물을 구하기 쉽고 일교차도 훨씬 적어서 모두 탐내는 곳이 되었는데 놀랍게도 인도가 미국과 러시아 같은 선발 주자를 제치고 2023년 달 남극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 중국이 사상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고 여기에 일본까지 달에 착륙해서 지금까지 세계에서 그 다섯 나라가 달에 착륙하는 쾌거를 올렸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1/6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지구에서 몸무게가 60kg인 사람이 달에 가면 10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중력이 약하니까 달을 떠나는 로켓은 당연히 그만큼 연료 소모가 적기 때문에 우주로켓을 발사할 경우 지구에서 발사하는 것보다 달에서 발사는 편이 훨씬 쉽고 경제적이다.   미국은 1969년에 이미 달에 첫발을 디뎠지만, 너무 돈이 많이 들고 안전한 착륙 지점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달 탐사와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다가 최근에 달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다시 달에 관심을 두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후발 주자였던 중국과 인도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 앞서는 형편이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우주 식민지 과학 이야기 현대 과학기술

2025-01-03

[신 영웅전] 식민 전문가 크로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식민 통치의 성공 모델로 여긴 인물은 크로머 경이었다. 본명은 에벌린 배링 크로머(1841~1917)였다. 독일계 이민의 후손인데, 가문은 영국에 정착해 금융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그리스의 코르프 주둔군 포병대에서 근무하면서 고대 그리스·로마·이집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크로머는 다시 육군참모대학을 졸업한 뒤 전쟁성에 들어가 크림전쟁(1853~1856년)의 전후 처리 문제에 관여했다. 인도 총독 노스브루크(Northbrook) 백작의 비서로 봉직하면서 최고훈장을 받았다. 크로머는 온유함과 잔혹함을 겸비한 수재였다.   1877년 크로머는 이집트의 금융 위기를 타개하고 대영 항쟁을 진압하기 위한 특수 임무를 갖고 카이로영사관에 영사로 부임했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의 호기에 이집트 면화를 수출해 이집트의 금융 위기를 해결했다.   그뿐 아니라 수에즈 운하 건설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처럼 탁월한 능력을 보이자 영국은 크로머를 이집트 책임자(1883~1907)로 임명했다. 그의 공식 직함은 이집트 주재 총영사(Controller-General in Egypt)였다.   크로머에겐 식민지 통치 원칙이 있었다. 차관(借款)으로 약점을 잡은 다음 식민지 백성을 배부르게 해 복종시키고(full-belly policy), 세금을 낮춰 민심을 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집트를 수탈하면서도 가책을 느끼기보다는 백인의 의무라 여겼다.   크로머는 논리적인 프랑스나 권위주의적인 독일은 이런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포만(飽滿) 정책’은 이토의 유훈이 되면서 일제의 조선 통치에 근간이 됐다. 1920년대 한국인의 경제 수준은 1950년대보다 높았다. 지금도 이집트인들이 영국에 가는 것은 관광이나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크로머의 무덤에 침을 뱉으러 간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전문가 식민 식민 전문가 식민지 통치 식민 통치

2024-08-25

식민지에도 정체성 형성한 한국 근대미술

LA카운티 미술관(LACMA)이 ‘사이의 공간:한국미술의 근대(The Space Between:The Modern in Korean Art)’ 전시회를 9월11일부터 2023년 2월19일까지 레스닉 파빌리온에서 개최한다.     LACMA는 “한국 미술계가 서구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한국의 현실에서 재해석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근대 미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서양 문화권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사이의 공간:한국미술의 근대’ 전시회에는 유화, 사진 및 조각을 비롯해 서양으로부터 수용한 새로운 예술 양식을 반영한 88명 화가의 총 130여점이 전시된다.     LACMA는 “한국이 마지못해 근대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과 민족 언어와 문화 말살 시도에 대응해 새로운 민족주의를 발전시켰다”며 “미술계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 영향으로 한국 미술에 대한 해석과 실험의 시기를 맞이하며 한국 미술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이의 공간’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한국의 근대 미술이 일본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의 상처 깊은 시련과 함께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그리고 그런 영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근대와의 조우, 근대적 반응, 모던의 모멘텀, 신여성의 등장, 현대로의 발전 등 5개 전시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1897년부터 1965년까지 연대 순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에서 대한제국 시대(1897~1910)와 식민지시대(1910~45)에 일본을 통해 유럽의 영향을 받은 미술과 전쟁의 혼란한 시기와 전후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실험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현대 초기의 미술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예술 부문 큐레이터인 버지니아 문 박사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더 현대 프로젝트 한국 미술사 연구' 프로그램의 두 번째 전시회다.     2015년부터 현대자동차가 LACMA가 체결한 10년 장기 파트너십에 따른 전시로 한국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공동 주최된다.     마이클 고반 LACMA 최고경영자(CEO)는 “'사이의 공간' 전시는 한국 미술사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의 시기를 조명해보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과 교류를 통해 예술가들이 어떻게 새로운 창작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며 “한국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는 LA에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주소: 5905 Wilshire Blvd. LA   ▶문의: (323) 857-6000 이은영 기자근대미술 식민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미술사 한국 미술계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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