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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시칠리아 사람들의 에트나 화산 공생기

지난 주 이탈리아 시칠리아 북동쪽에 있는 유럽 최대 활화산 에트나에 다녀왔다. 고도 2500m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가 접하는 굉음은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눈앞에 펼쳐진 검은 바위와 잿더미는 마치 낯선 행성 광경 같았다. 거대한 괴물이 그 속에서 거친 숨을 내쉬는 듯했다. 굉음이 오는 방향을 찾아 시선을 위로 돌리자 화산 정상 부근 분화구에서 검은 연기와 재가 격렬한 기세로 끊임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시칠리아 제2의 도시 카타니아에 도착한 직후, 에트나산 4개의 주 분화구 중 보라기네(Voragine) 분화구가 4년의 침묵을 깨고 분출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에서는 시뻘건 용암이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산골짜기 수 백 m를 타고 흘러내리는 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카타니아는 분화구에서 차로 50분쯤 걸리는 꽤 떨어진 곳이지만, 차도와 인도는 물론 숙소 테라스까지 온통 검은 모래 같은 재로 뒤덮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화구를 보러 갈지 말지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지인들의 일상은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식당 종업원들은 파스타 알라 노르마 등 대표적인 시칠리아 메뉴를 추천해주며 관광객들을 친절하게 맞았고, 장터 상인은 1㎏에 3유로씩 하는 납작복숭아를 구입하는 손님들에게 몇 알을 덤으로 주는 인심과 여유를 보였다. 도시 어디서나 눈에 보이는 에트나산이 용암을 내뿜든 말든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발 3350m인 에트나산의 분화 기록은 기원전 425년부터 남아 있다. 지구상 1500여개의 활화산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17세기에는 유난히 격렬했던 분출로 카타니아 성벽까지 용암이 흘러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20세기 들어서도 여러 차례 위협적 폭발이 있었다. 용암으로 많은 주민이 사망하거나 다치기도 했다. 2001년 한해에는 16번이나 분출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칠리아 주민들은 그 산을 ‘마마 에트나’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화산 덕분에 농산물이 잘 자라는 비옥한 땅이 가능하다며 감사해 하고 있다.   에트나산의 경이로움을 목격한 날, 산이 보이는 야외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어둑어둑해진 밤하늘 아래, 저 멀리 산에서 붉은 실선 같은 것이 선명하게 번쩍였다. 놀라서 웨이터에게 물었더니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에트나는 늘 그래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식탁 위 물잔을 채워줬다. 위험한 자연과 의연한 인간은 그렇게 공생하고 있었다. 안착히 / 한국 글로벌협력팀장글로벌 아이 시칠리아 공생기 화산 공생기 시칠리아 주민들 이탈리아 시칠리아

2024-07-24

[글로벌 아이] 시칠리아의 버려진 집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 1970년대 영화 ‘대부’에서부터 최근엔 미국 드라마 ‘와이트 로터스 시즌 2’의 배경이 된 로망의 섬. 통상 6월에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지는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섬 곳곳에서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숙박·요식업소는 물론 주요 관광명소와 상점들도 팬데믹 후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슬며시 숟가락을 얹으며 지역 경제를 되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구도심의 방치된 폐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탈리아 지자체들의 이야기다.   시칠리아 중심에 위치한 무소멜리시를 들여다보자. 한때 인구 1만5000명을 상회하던 이 소도시는 감소하는 출산율과 일거리를 찾아 타지로 떠난 청년층의 이탈로 인구의 30% 이상이 감소했다. 현재 이탈리아의 65세 이상 인구는 23%로 유럽에서 가장 고령 국가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인구는 100만 명 감소했으며 앞으로도 그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일가구 일주택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한 과세 부담이 커 소도시 내 주택 상속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택을 상속받음으로써 취할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보다 세 부담이 커서 폐가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무소멜리시는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발 벗고 뛰고 있다. 토티 니그렐리 부시장은 최근 미국과 호주 등 해외 방송에 출연해 지역 내 버려진 집들을 소개하며 단돈 ‘1유로’로 꿈의 시칠리아 집주인이 될 수 있다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조건은 있다. 집값은 상징적인 ‘1유로’지만 3년 안에 자비로 보수해야 한다. 보수공사에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고 부르는 게 값일 수도 있다. 물론 보수 작업 역시 섬 특유의 느릿느릿한 속도에 맞춰 이뤄진다는 현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2008년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1유로 집 프로젝트’는 현재 이탈리아 전역에서 시행 중이다. 남부 유럽 최대 부동산 포털 ‘아이딜리스타(Idealista)’에는 로마 외곽에서 시칠리아까지 수천 채의 이탈리아 폐가가 등록되어 있다. 무소멜리시의 경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약 400채의 버려진 집들이 새 주인을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현지 건설업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관광객 수도 10배 증가하는 효과를 불러왔다고 홍보한다. 나아가 구도심이 유령도시로 전락하는 현상을 막고 지역 경제에 막대한 이익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 국내 경제문제를 외국인을 활용해 해결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이 지속성 있는 해결책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안착히 / 한국 글로벌협력팀장글로벌 아이 시칠리아 시칠리아 집주인 이탈리아 폐가 이탈리아 지자체들

2024-05-29

시칠리아 가는 낡은 배…16세 선장의 인생 항해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환상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동반한다. 세네갈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는 꿈의 나라다. 그러나 그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할 뿐, 영화의 주인공 세이두처럼 아프리카 사막을 건너고 지중해를 항해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꿈이 공포로 뒤바뀌어 지옥을 경험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희망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 이야기다.     2008년 범죄 르포소설을 영화화한 ‘고모라’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탈리아의 마테오가로네의 신작 ‘이오 카피타노’는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했고 다가오는 제96회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이탈리아의 출품작으로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     16세의 세이두(Seydou Sarr)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외곽에서 홀어머니, 그리고 여러 명의 여동생들과 함께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세이두와 그의 사촌 무사는 부모 몰래 이탈리아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학교 대신 공사판에 나가 노동을 하며 돈을 모은다. 이탈리아로 가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돕겠다는 생각, 그리고 힙합 스타가 되어 백인들로부터 싸인 공세를 받는 꿈을 꾸면서.     세이두의 어머니는 떠나겠다는 아들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두 소년을 자제시키지 못한다. 세이두와 무사는 마법사의 중보로 조상들의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가짜 여권을 구입하고 픽업트럭의 뒷자리에 올라 아프리카 대륙을 달린다. 수천 마일 죽음의 여정이 시작된다.   말리 군인들에게 린치를 당한 일행은 이제부터 걸어서 사막을 건너야 한다.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다. 리비아에 도착하지만, 무사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세이두는 납치되어 온갖 고문 끝에 벽돌공 노예로 팔린다.     세이두와 무사는 공사판에서 극적으로 재회한다. 심한 외상을 입은 무사를 돌보며 세이두는 이탈리아행 배를 타기 위해 돈을 모은다. 뱃삯을 지불하고 나서야 브로커들은 방향키를 한번도 잡아 본 적이 없는 세이두에게 선장의 책임을 떠맡긴다. 황당해할 틈도 없이 세이두는 수백명의 밀입국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낡은 배를 몰고 시칠리아를 향한 항해에 나선다.     영화는 공포의 현실 세계와 황홀한 영적 세계가 뒤섞여 있는 가운데 죽어가는 생명들 앞에 인간의 마지막 도리를 포기하지 않는 세이두의 영웅적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불허의 반전이 이어진다. 아프리카 사막과 망망대해 지중해에 흩어진 희망의 부스러기들을 붙잡고 배를 몰고 가는 세이두의 외침 “나는 선장이다(Io Capitano)!” 그는 끝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시칠리아 선장 인생 항해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주인공 세이두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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