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스파이어의 거대한 구멍
시카고 다운타운 네이비피어 인근 지역에는 오랫동안 땅에 큰 구멍이 파여 있었다. 시카고 강이 미시간호수와 만나는 곳에서 가까운 이 곳은 스트리터빌이라는 네이버후드에 속한다. 다운타운에서도 개발이 되지 않은 채로 남은 몇 안 되는 곳이었다. 공사를 위해 땅을 굴착한 뒤에 75피트 깊이의 홀이 그대로 남은 것인데 원래는 스파이어라고 불리는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장소였다. 높이만 2000피트에 달하는 초고층 건물로 외형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모습을 갖췄다. 게다가 이 건물의 디자이너는 스페인 태생의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였다. 위스콘신주 밀워키 미술관과 뉴욕 맨해튼의 월드 트레이드센터 기차역 설계로 유명한 바로 그 건축가다. 그는 주로 하얀색 구조물을 선호하며 마치 새가 하늘로 도약하며 날개를 펼친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을 다수 창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카고 스파이어의 경우 트위스트 모양으로 지상에서 건물 상층부로 이어지는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게다가 레익 프론트라는 지리적인 이점까지 추가되면서 이 건물이 들어서면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왔다. 그러다가 부동산 위기가 발생하고 전국적으로 불었던 부동산 개발이 모두 쓰러지면서 이 프로젝트 역시 무산됐다. 개발 계획은 추진했던 억만장자는 투자를 위해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파둔 땅은 그대로 뒀다. 마치 개발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됐다. 그간 이 장소는 시카고언들에게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았고 도시 개발의 실패작으로 여겨졌다. 지난주 이 대형 구멍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됐다. 새로운 부동산 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400 레익 쇼어 드라이브로 명명됐다. 일단 개발 계획을 보면 두 동의 타워가 들어설 예정이다. 일단 북쪽의 타워가 먼저 들어서고 남쪽 타워는 1차 북쪽 타워 완공 후 부동산 시장 상황을 보아가면서 진행한다는 것이 개발사인 릴레이티드 미드웨스트(Related Midwest)의 계획이다. 그러니까 타워 한 동만 우선 건설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타워를 디자인한 곳은 시카고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건축디자인사 SOM이다. 시카고의 시어스타워와 트럼프타워, 존행콕 센터 등을 설계한 곳이다. SOM에 따르면 400 레익 쇼어 드라이브는 호숫가에 들어서는 건축물인 점을 감안해 두 타워가 살짝 마주보는 각도로 들어선다. 또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호수를 보는 면은 넓지 않게 건물 상층부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두 건물 사이는 75피트 떨어져 있다. 북쪽 타워는 72층, 남쪽 타워는 60층 높이로 들어선다. 이전의 스파이어와 비교하면 스케일이 많이 줄어든 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려고 한 노력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사실 이 부지는 호숫가 다운타운 레익 쇼어 드라이브 서쪽에 접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바로 옆에는 시카고에서 유일하게 레익 쇼어 드라이브 동쪽에 위치한 고층 건물이 있지만 이는 법의 허점을 파고든 개발업체의 농간으로 가능한 일이었으니 예외로 봐야 한다. 어쨌든 멋진 미시간 호변이 그대로 내려다 보이고 반대쪽으로는 다운타운 스카이라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전망이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아울러 400 레익 쇼어 드라이브가 완공되는 시기에는 인근에 듀세이블 공원도 들어설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 스트리터빌의 모습이 크게 바뀌게 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도 마련될 수 있다. 시카고에서도 땅값이 가장 비싸고 고급 주거지역으로도 유명한 스트리터빌은 많은 역사와 깊은 문화 유산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화려한 건물과 쇼핑 지구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1770년대 아이티 태생으로 시카고에 처음 정착한 인물로 알려진 장 밥티스트 포인트 듀 세이블이 상점을 차리고 시카고의 시작을 알린 곳이기도 하다. 조지 스트리터라는 선장이 자신의 배를 이 곳에 정박시킨 뒤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정부와 오랫동안 갈등을 보인 뒤 현재의 스트리터빌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됐다. 릴레이티드 미드웨스트는 최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새 홈구장을 다운타운 남부 지역에 건설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시카고 베어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두 구단의 구장 건설에 협력하는 방안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에 새롭게 개발 계획이 추진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가뜩이나 도심에서의 사무실 공실률이 높아지고 주요 기업들의 본사가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시기에 말이다. 풍부한 역사를 가진 스트리터빌에 오랫동안 방치됐던 고층 건물 계획이 실현되고 다운타운에 새로운 구장이 세워지며 활기를 불러올 수 있다면 긍정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지역 개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구태 정치인들이 아직까지 시카고 권력을 잡고 있었다면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도 좌지우지 하지 않았을까라는 쓸모 없는 걱정도 해본다. 오랫동안 흉물로 남았던 스파이어 홀을 생각하며 그 안이 무엇으로 메워질 수 있을지도 상상해본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스파이어 구멍 시카고 스파이어 시카고 다운타운 개발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