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장에 핀 숭고한 사랑
지금 세계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다. 어느 종교에서는 지구의 종말에는 도처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파괴와 살상이 만연해진다며 말세에 관한 험한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해를 넘긴 상황에서 최근엔 가자지구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또 벌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철 따라 꽃이 피듯 전쟁 중에도 사랑의 꽃은 아름다운 사연으로 전해지고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당시 20대 캐나다 청년이 자기 앞에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함께 있던 약혼녀를 구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얘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아파트 안으로 투척 된 수류탄에 몸을 던졌다.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본인을 희생한 감동적인 영웅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단 5초만 망설여도 모든 사람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을까. 일반적인 인간의 생명보존 본능은 그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엄청난 두려움에 발끝 하나도 떼기 힘든 상황에 단호히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웅이요 구원자다. 한국 군인 중에도 자신의 몸을 던져 전우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 있다. 바로 58년 전 일이다. 지금도 육군사관학교에 가면 고 강재구 소령의 동상이 서 있다. 돌이켜보면 1965년 10월 4일 당시 29세이던 강 대위는 폭발하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살리고 꽃 같은 나이에 자기 삶을 마감했다. 그는 당시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으로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부대원들과 강원 홍천 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이등병이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던지려다 손에서 미끄러졌고, 하필 수류탄은 중대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굴렀다. 중대원이 모여 있기에 수류탄을 다른 곳으로 찰 수도 없어 무수한 대원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100여명의 부대원을 살리고 자신은 장렬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2살 된 아들이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강 대위는 그렇게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본인을 희생하고 부하들을 살린 군인이었다. 육군은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육군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그리고 소령으로 1계급 특진시키고, 4등 근무공로훈장과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살신성인’이란 자기 죽음(殺身)으로 인을 이룬다(成仁)는 뜻의 고사성어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기원전 552~기원전 479년)의 가르침을 기록한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용어다. 한마디로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동서고금의 금언이다. 군은 유사시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게 군인정신의 발로요 군인교육에 첫 번째 덕목이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인근 지역에 침입해 주민 수백 명을 살해하고 인질로 납치하는 등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대규모 침공 공격을 감행하며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전쟁에서 생긴 아무리 좋은 얘기, 아름다운 미담일지라도 이는 곧 아픔이요 슬픔이다. 모름지기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동일한 피해자다. 여기 살상의 현장에도 숭고한 사랑의 꽃은 평화를 부르고 있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전장 숭고 수류탄 투척 이스라엘 공격 이스라엘 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