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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읽기] 남미 오징어와 땅 위의 김

매년 4월과 5월은 오징어 어획이 불가능한 금어기(禁漁期)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우리는 짬뽕과 진미채를 먹는다. 연간 4만t 정도 수입되는 냉동 오징어 덕분이다. 흔히 ‘대왕오징어’라 불리는 훔볼트오징어는 남미 페루 연안에서 주로 잡힌다. 과거 울릉도가 그랬듯 적도에서 내려오는 난류와 남극에서 올라가는 한류가 만나, 오징어가 살기 최적인 조경수역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페루도 울릉도가 겪은 것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조경수역이 형성되는 위치가 점점 남극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 훔볼트 오징어가 잘 잡히는 어장이 칠레 인근으로 조금씩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장(漁場) 변화는 국내에서도 오래 관찰되고 있다. 30년 전인 1994년에는 오징어 어획량이 연간 20만t에 달했다. 동해에서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7600t씩 잡히던 시기다. 그러다 15년 정도가 지나자 명태 어획량은 사라졌고, 다시 15년이 흐른 지금은 오징어 어획량이 난류성 어종인 방어 어획량에 추월당한 상태가 됐다. 제주대 정석근 교수가 『되짚어보는 수산학』에서 짚었듯, 금어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어민의 탓도 아니고, 중국 어선의 남획만이 원인인 것도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그간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한반도 주변의 해양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바뀐 탓이다. 어민들이 금어기를 아무리 잘 지켜도, 기후변화로 오징어는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차라리 수입이라도 되는 오징어와 달리, 수입할 곳도 마뜩잖은 해산물도 있다. 최근 미국 시장에 진출해 K-푸드 열풍을 이끌고 있는 김과 같은 해조류다. 김은 통상 15℃ 아래의 차가운 물에서 재배되므로, 국내에서는 겨울철과 이른 봄 정도까지만 양식이 된다. 수온이 오르면 김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2023년에 발표된 부경대 김봉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바다의 표층 수온이 1℃ 증가할 때 김 생산량은 960t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온 변화로 김 양식업이 초토화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육상에서 김을 양식하는 기술을 상용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풀무원 같은 기업이 앞장서서 나름 절박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오징어 대신 방어가 잡히니, 그것대로 괜찮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연근해 어획량은 계속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2016년엔 통계 작성 이후 40년여 만에 처음으로 100만t의 어획량이 깨지더니, 2022년에는 89만t까지 줄었다. 조명 달고 오징어 잡던 배가 하루아침에 방어잡이 배로 바뀔 수가 없고, 고령화된 어촌에서 새 어족에 대한 정보를 얻고 기술을 습득하는 데도 어려움이 커서다. 제대로 된 어민 지원 없이 우리 어업이 기후변화의 여파를 제대로 넘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박한슬 / 약사·작가숫자읽기 오징어 남미 오징어 어획량 훔볼트 오징어 냉동 오징어

2024-05-13

[숫자읽기] 평균수명 짧아진 첫해

 근대 이전의 평균수명은 읽기가 까다롭다. 조선 말엽의 평균수명이 34세였다는 정보를 접하면, 그때는 서른 남짓한 나이에 다들 요절했을 것이라 오해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보다 몇천 년 전의 사람인 공자(孔子)도 73살을 살다 떠났고, 제자인 자공(子貢)도 64살까지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공자가 유학(儒學) 대신 오래 사는 비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평균수명에 대한 인식이 꽤 잘못됐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처음으로 연구하여 자료로 남긴 곳은 경성제국대학(서울대의 전신)이다. 일본인 의대 교수가 1926년부터 1930년 사이의 한국인 수명자료를 분석해보니, 그 시기 한국인 평균수명이 34세로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 90세로 작고한 고(故) 전두환씨가 1931년생이다. 그가 유독 장수한 것이라도 당시 평균수명과의 괴리가 큰데,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즈음엔 태어나는 아이 100명 중 24명이 해를 못 넘기고 죽었기 때문이다. 태어나 0살을 살고 떠나는 아이들이 많으니, 성년까지 생존한 이가 얼마나 오래 사는 가와 별개로 ‘평균’ 수명의 절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국에도 뒤늦게 근대가 도래하며, 영아 사망과 아동 사망은 빠르게 개선됐다. 아동의 생명을 앗아가는 주요 질병이 백신 접종 덕에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래 대한민국 평균수명은 단 한 차례도 줄어든 적이 없었고, 꾸준히 상승을 거듭하던 끝에 현재는 83.5세로 세계 2위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구(舊)소련 해체와 함께 국가 기능이 마비됐던 러시아 같은 아주 특수한 일부 예를 제외하면, 주요 선진국에서 평균수명이 감소하는 일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평균수명을 인류 발전 수준의 가늠자로 삼아도 될 정도다.   그런 찬란한 역사에 상처를 낸 첫해가 바로 재작년인 2020년, 코로나 대유행 원년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인데, 영국도 1980년 집계 이래 단 한 차례도 평균수명 하락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2021년 말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영국의 평균수명은 80.4세로, 그 전년보다 한 살이나 감소했다. 같은 값을 찾으려면 2009년까지 돌아가야 하니, 코로나 한 번에 10년간 차근차근 누적된 수명 연장 효과가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코로나19가 고작 1%만 죽는 ‘감기’란 말이 횡행하고 있지만, 그 1%가 영국에서만 17만 명의 사망을 야기해 평균수명마저 줄였다. 어떻게 봐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차분히 숫자를 읽어야만 상황이 보일 때가 있다. 박한슬 / 약사·작가숫자읽기 평균수명 첫해 당시 평균수명과 평균수명 하락 한국인 수명자료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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