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쇼스타코비치의 ‘바비 야르’
바비 야르.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교향곡 13번은 이렇게 불린다. 바비 야르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이름이다. 독일과의 전쟁의 한창이던 1941년 9월의 어느 날, 나치 친위대(SS)는 바비 야르에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유대인, 집시, 우크라이나인 등 3만명이 넘는 이들이 독일군 기관총에 희생됐다. 쇼스타코비치는 예브게니 옙투셴코(1933~2017)의 시를 가사로 삼아 이를 추모했다. 러시아 내 반 유대인 정서를 비판한 옙투셴코의 시를 인용한 교향곡 13번은 1962년 12월 18일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소비에트 정권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경찰이 공연장 밖에서 대기했고 프로그램 북도 배포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의 일생은 러시아 현대사 그 자체다. 그는 정권에 순응했고, 비판했고, 예술적 자유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줄리언 반스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 ‘시대의 소음’에서 “그가 무엇으로 시대의 소음과 맞설 수 있었을까. (중략) 수십 년에 걸쳐 역사의 속삭임으로 바뀌는 그런 음악. 그가 고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적었다. 바비 야르가 또다시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 10만 병력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 이동했고 내년 초 침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점령처럼 러시아가 실효 지배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침공에 앞선 러시아의 서방 국가 견제는 노골적이다. 러시아 정부는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잠갔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도 20% 가까이 줄였다고 한다. 러시아 리스크에 겨울철 가스 대란 가능성이 커지며 에너지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스 공급이 막히며 유럽 가스 가격은 치솟고 있다. 천연가스 소비 중 러시아 수입이 차지하는 건 5% 수준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이 이어질 경우 한국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에너지 대란보다 더 우려되는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쇼스타코비치가 ‘바비 야르’에 담았던 차별에 대한 저항과 자유는 지금도 시대의 소음에 묻혀 있다. 이를 드러내는 건 우리의 몫이다. 강기헌 / 한국 중앙일보 기자J네트워크 쇼스타코비치 바비 러시아 현대사 러시아 작곡가 러시아 리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