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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그 사람

그가 이 세상을 등진 지도 거의 5년이 되어 간다. 의사의 소견대로 3년을 못 버티고 70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한국에서 학사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누이의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왔다. 이민 온 후 그는 수영장 청소를 했고 부인은 가사 도우미로 일하며 두 사람 모두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서 집도 한 채 장만하고 아들과 딸 네 식구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 행복한 가정에 악령이 찾아들었다. 그가 도박장을 출입한 것이다. 심심풀이로 들락거리던 카지노에 재미가 들렸고 푼돈을 딴 날은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의 씨앗이 된 잭팟이 터졌다. 세금 공제 후 60만 달러 넘는 거액을 움켜쥐었다. 힘들이지 않고 거액을 손에 쥐자 그는 마음이 달라졌다.     이제는 힘들게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자신이 일하던 수영장 청소권을 5만 달러에 팔았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그 60만 달러를 100만 달러로 키우고 싶었다. 일은 하지 않고 카지노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살다시피한 그는 6개월도 채 못되어 그 돈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주택 융자금이 연체되다 보니 살던 집도 은행 측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은 개척 교회 목사가 되었고 딸은 초등학교 교사가 된 것이었다. 자식들은 노름하는 아버지가 밉다고 나가 살았고, 부인과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였다. 가정불화로 부부 싸움이 잦아졌고 참다 못한 아내의 가출도 있었다. 그는 분했다. 본전 생각이 간절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잃은 돈 반만이라도 건져야 했다. 타고다니던 승용차도 팔아 노름 자금으로 마련했으나 그것마저 3일 만에 다 날려 버렸다. 그는 점차 미치광이가 되어 갔다.   남편의 행실을 원망하며 나무라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고 행패를 부리는 등 성격이 포악 해져갔다. 어느 날, 그는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자신이 잘못 했노라, 후회하노라, 이제 새 각오로 수영장 청소를 다시 하겠노라, 도박장에는 발걸음을 끊겠노라, 그러니 한국에 가서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을 팔아 5만 달러만 주면 청소권을 다시 사서 옛날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겠노라 눈물로 애원하였다.     부인은 그의 감언이설에 솔깃하여 한국에 가서 오빠한테 재산 상속 포기 각서를 써 주고 5만 달러를 받아 남편에게 갖다주었다. 5만 달러를 받은 그는 그날로 행방을 감추었다. 아내는 아들을 시켜 카지노를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그 돈 마저 타주로 원정 도박을 가서 모두 날려 버렸다. 이 사실을 안 아내는 자식들에게 남편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겨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자식들은 그의 다음 행동에 아연실색했다.     그가 조의금을 몽땅 챙겨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결국은 샌 매뉴엘 카지노에서 아들에 의해 이끌려 나왔다. 그는 부인과 사별 후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양로보건센터에 주 5일 참석했는데 사회보장연금을 받는 다음날과 교회에서 그를 불우 이웃으로 선정하여 월 500달러씩 주는 지원금을 받는 날에는 어김없이 택시를 타고 샌 매뉴엘로 행했다.     참다 못한 아들은 그가 다니는 교회 담임 목사를 찾아가 아버지께 지급하는 불우 이웃 돕기 지원금을 끊어 주십사 요청하였다. 아버지가 그 돈으로 노름을 하니 그 지원금은 정말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라고 거듭 부탁했다.     그는 밸리 지역에서는 어느 누구한테도 단돈 100달러도 빌리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폐암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줄 담배를 피웠다. 병세가 악화해 양로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운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가 보았다. 바싹 야윈 그는 파리한 낯빛에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 나는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지 이틀 후에 그는 요단강을 건넜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은 그의 흠을 비판하기를 유보하고자 한다. 다만, “마약을 하는 사람은 자신만 망치지만 도박을 하는 사람은 그 가정도 망친다”는 금언을 다시 한번 상기할 뿐이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도박 인생 수영장 청소권 부인과 셋방살이 부인과 사별

2024-12-30

사별한 45년 지기 소설로 기려

연규호 작가가 고 유순희씨(1945~2019)와 나눈 45년 우정을 담은 자전적 소설 ‘잊혀진 명작(도서출판 도훈·큰 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연 작가가 대광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동창인 고인과의 추억을 기반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나눈 우정에 픽션을 가미한 책이다.   경남 삼천포(현 사천) 출신인 고 유순희씨는 연세대 행정학과에 다니던 1965년 생활고로 휴학하고 군에 입대, 맹호 부대에 자원해 베트남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베트남에서 인연을 맺은 미군 친구의 도움으로 남가주에 온 유씨는 공장을 다니며 버뱅크의 우드버리 대학을 졸업, LA에서 국제자동차를 설립하고 2003년엔 라하브라에 리맥스 아메리칸 드림이란 부동산 회사를 만드는 등 사업적 성공을 거뒀다.   의사가 된 연 작가는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와 내과의가 됐다. 한동안 유씨와 연락이 닿지 않던 연 작가는 오하이오 주의 한 도서관에서 한인 신문 광고를 보다가 LA 국제자동차 대표가 된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다. 곧바로 유씨와 통화한 연 작가는 이후 가든그로브에 정착해 유씨와 어바인 베델교회에서 성가, 전도 봉사를 함께하는 등 우정을 이어갔다.   62세에 심장 관상동맥 수술을 받고 은퇴한 유씨는 70세가 된 2015년 연세대 행정학과에 50년 만에 복학했다. 〈본지 2017년 7월 21일 OC면〉 연세대의 유명 인사가 된 유씨는 2018년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썼다. 유씨는 졸업 3년 뒤 한국에 있던 중 심장병으로 타계, 현충원에 잠들었다.   연 작가는 “내 한쪽 팔과도 같았던 순희가 연세대 복학 후 손으로 쓴 760쪽 분량의 자서전 자료를 내게 줬다. 이를 바탕으로 순희와 나눈 우정과 삶을 4년 넘게 소설로 엮었다. 많은 부분에서 다른 이에게 귀감이 됐던 친구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잊혀진 명작에서 고 유순희씨는 손현철, 연 작가는 강석호란 인물로 등장한다.   연세대 18대 총장을 지낸 김용학 교수는 잊혀진 명작에 대해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인생의 굴곡진 여정과 끈끈한 우정의 결실”이라며 “작고한 친구가 남기고 간 소중한 기억들이 연 작가의 절절한 그리움을 통해 자전적 소설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라고 평했다.   은퇴 후 창작 활동에 매진하며 다수의 장, 단편 소설을 출간한 연 작가는 미주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미주한국문학아카데미, 펜 USA,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잊혀진 명작은 한국의 교보문고 등에서 판매 중이다. 국내 구입 문의는 연 작가(714-887-4213)에게 하면 된다. 임상환 기자사별 지기 미주소설가협회 회장 자전적 소설 단편 소설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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