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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가을바람 같은 음악

음악사에서 브람스는 순수음악을 지향했던 작곡가로 불린다. 그는 감정의 표피를 건드리기 위해 달콤한 멜로디를 쓰는 일은 하지 않았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제목 같은 것도 붙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 그 자체에 승부를 걸었다. 그래서 음악이 매우 진지하고 내면적이다.   브람스는 생전에 모두 네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어떤 사람은 이 네 개의 교향곡을 브람스가 걸었던 삶의 궤적과 연결해서 설명한다. 즉, 교향곡 1번은 존경해마지 않는 선배 작곡가 슈만의 죽음에 관한 것이고, 2번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 3번은 브람스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브람스 자신과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두루 섭렵한 다음, 교향곡 4번에 이르러 그는 순수음악으로 다시 돌아왔다. 음악 그 자체로 승부를 거는 순수예술의 정신으로 돌아간 것이다.   교향곡 4번의 1악장 도입부는 스산한 가을바람 같다. 두 음을 레가토로 연결해 놓은 단순한 모티브의 반복 속에 가을바람같이 스산한 고독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1악장은 조용히 시작한다. 월요일 아침을 맞은 브람스의 모습과 비슷하다. 가을빛이 완연한 공원의 벤치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브람스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첼로의 스산한 선율. 도입부에 나온 바이올린 선율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독, 첼로처럼 굵직한 사나이의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브람스는 그저 고독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렇게 제시된 모티브들을 그 후 고도의 지적인 테크닉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상적인 모티브를 고도의 지적인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것. 감정 과잉에서 오는 정서적 피로감을 배제하고, 매우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정서적 고양을 꾀하는 것. 바로 여기에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가을바람 음악 선배 작곡가 브람스 자신 고독 첼로

2024-11-25

[음악으로 읽는 세상]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961년에 개봉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영화가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24세의 풋풋한 청년 시몽은 폴라라는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로 초대하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이때 폴라는 시몽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바로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다. 폴라는 시몽이 자기에게 갖는 애정이 순수하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연상의 여인에게 느끼는 모성애적 관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에는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 배경으로 깔린다. 브람스 교향곡 중에서도 멜로디가 아름답고 로맨틱하기로 유명한 악장인데, 멜로디가 너무 달콤하고 몽환적이어서 얼핏 들으면 브람스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동안 아카데믹하고 선이 굵고 진지한 음악만 써 왔던 브람스에게 이런 사탕발림 같은 달달한 감성이 있었나 놀라울 정도다. 여하튼 그 덕분에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의 주제 선율은 대중음악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멜로디를 로맨틱 버전, 에로틱 버전 등 다양한 스타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하는데, 영화에서도 다양한 버전의 3악장이 나온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브람스의 멜로디는 로맨틱하지만 현실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폴라는 시몽의 사랑이 비현실적인 로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관심이 싫지는 않지만 그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국 폴라는 시몽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폴라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고에 상처를 받은 시몽이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그때 폴라가 울면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너무 늙었어. 늙었다고.”   영화에서 시시때때로 울려 퍼지는 브람스의 멜로디는 로맨틱한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으로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폴라는 그걸 깨달은 것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브람스 브람스 교향곡 브람스 작품 청년 시몽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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