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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훌륭한 한글 서예작품의 어려움

한국의 국정원 건물은 사진으로 봐도 위풍당당하고 매우 위압적이다. 그 앞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놓여 있고, 거기에 원훈(院訓)이라는 것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원훈이 새겨진 돌을 바꿨다는 뉴스를 접하고 어리둥절했다. 그동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문구는 1961년 김종필 초대 원장이 만든 것이다. 61년 전으로 회귀한다는 이야기다.   원훈의 내용이 갖는 의미는 잘 모르겠고,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글씨체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있던 원훈의 서체는 쇠귀 신영복 교수의 글씨체다. 그의 글씨체는 이른바 ‘민중체’ 또는 ‘어깨동무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것이 국정원의 취지나 성격과 맞지 않고, 국가 정체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바꿨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영복체 원훈석은 공개 때부터, 전직 국정원 간부들이 시위를 벌이며 결사반대했고, 그 글씨체를 ‘간첩체’라는 막말로 부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대의 이유는 신영복 교수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상범으로 장기복역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쓴 글씨를 국정원의 얼굴로 삼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포용력이 오히려 참신하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마다 생각은 크게 다른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1년 만에 교체되기에 이른 것이다.     글씨체에도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도 매우 신기하다. 신영복 교수의 붓글씨는 상당히 인기가 있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름난 소주병의 글씨를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글씨체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이 어쩐지 어처구니없다. 그렇다면, 신영복체로 명패를 단 소주를 마시는 것은 사상적으로 위험하다는 말인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글 붓글씨에 대해서 몇 마디 보태고 싶다. 붓글씨는 동북 아시아 3국의 전통문화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큰 기둥이다. 단순한 필기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라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르다. 가령, 같은 붓글씨지만,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이고, 한국에서는 서예(書藝)라고 칭한다.   하지만, 그 전통의 공통적 바탕은 한문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내내 선비들은 한문은 진서(진서)이고, 한글은 언문 또는 암글이라고 낮잡아 부르며 푸대접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인 한글을 몰라보고 홀대한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다.   그러니 한글 서예가 자리 잡을 여지도 없었다. 이른바 명필들도 모두 한문을 썼고, 한글은 아내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나 쓸 정도였다. 한글 붓글씨는 궁체(宮體)가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것이 현실이다.   해방 이후 의식 있는 서예가들이 한글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지만, 개성이 살아있는 자기 서체를 이룬 사람은 손재형, 김충현, 서희환, 이철경, 김기승 등에 그친다. 그 중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은 것이 신영복 교수의 민중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손글씨’ 또는 ‘칼리그라피’라고 부르는 감각적이고 상업적 붓글씨가 인기를 끌면서, 예술적 차원의 한글 서예가 발전하기는 한층 더 어렵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름답고 품격 있는 한글 서예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바랄뿐이다. 한글의 빼어난 조형성은 이미 여러 모로 증명된 바 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서예작품 어려움 한글 서예작품 한글 붓글씨 한글 서예가

2022-09-12

[문화산책] 훌륭한 한글 서예작품의 어려움

한국의 국정원 건물은 사진으로 봐도 위풍당당하고 매우 위압적이다. 그 앞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놓여 있고, 거기에 원훈(院訓)이라는 것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원훈이 새겨진 돌을 바꿨다는 뉴스를 접하고 어리둥절했다. 그동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문구는 1961년 김종필 초대 원장이 만든 것이다. 61년 전으로 회귀한다는 이야기다.   원훈의 내용이 갖는 의미는 잘 모르겠고,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글씨체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있던 원훈의 서체는 쇠귀 신영복 교수의 글씨체다. 그의 글씨체는 이른바 ‘민중체’ 또는 ‘어깨동무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것이 국정원의 취지나 성격과 맞지 않고, 국가 정체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바꿨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영복체 원훈석은 공개 때부터, 전직 국정원 간부들이 시위를 벌이며 결사반대했고, 그 글씨체를 ‘간첩체’라는 막말로 부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대의 이유는 신영복 교수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상범으로 장기복역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쓴 글씨를 국정원의 얼굴로 삼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포용력이 오히려 참신하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마다 생각은 크게 다른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1년 만에 교체되기에 이른 것이다.     글씨체에도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도 매우 신기하다. 신영복 교수의 붓글씨는 상당히 인기가 있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름난 소주병의 글씨를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글씨체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이 어쩐지 어처구니없다. 그렇다면, 신영복체로 명패를 단 소주를 마시는 것은 사상적으로 위험하다는 말인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글 붓글씨에 대해서 몇 마디 보태고 싶다. 붓글씨는 동북 아시아 3국의 전통문화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큰 기둥이다. 단순한 필기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라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르다. 가령, 같은 붓글씨지만,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이고, 한국에서는 서예(書藝)라고 칭한다.   하지만, 그 전통의 공통적 바탕은 한문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내내 선비들은 한문은 진서(진서)이고, 한글은 언문 또는 암글이라고 낮잡아 부르며 푸대접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인 한글을 몰라보고 홀대한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다.   그러니 한글 서예가 자리 잡을 여지도 없었다. 이른바 명필들도 모두 한문을 썼고, 한글은 아내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나 쓸 정도였다. 한글 붓글씨는 궁체(宮體)가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것이 현실이다.   해방 이후 의식 있는 서예가들이 한글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지만, 개성이 살아있는 자기 서체를 이룬 사람은 손재형, 김충현, 서희환, 이철경, 김기승 등에 그친다. 그 중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은 것이 신영복 교수의 민중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손글씨’ 또는 ‘칼리그라피’라고 부르는 감각적이고 상업적 붓글씨가 인기를 끌면서, 예술적 차원의 한글 서예가 발전하기는 한층 더 어렵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름답고 품격 있는 한글 서예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바랄뿐이다. 한글의 빼어난 조형성은 이미 여러 모로 증명된 바 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서예작품 어려움 한글 서예작품 한글 붓글씨 한글 서예가

2022-09-08

“붓글씨 세계화 위해 LA에 첫 해외지회”

여든 나이에 붓과 먹을 새로운 벗으로 삼았다.   이유생(84) 전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은 서예를 통해 “새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보통 80세에 붓을 놓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붓을 잡았다”며 “붓글씨를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된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이 서예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LA를 찾았다.   그는 본래 태권도인이다. 지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8~9대)을 역임하며 태권도의 저변 확대를 이끌었다. 이후에는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디딤돌이 됐다.   이 전 회장은 “원래 글 쓰는 일을 좋아했는데 그때는 바쁘니까 제대로 못했다”며 “그때 못다한 것을 80세가 돼서야 하다 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태권도에 평생 쏟아 부었던 그의 열정은 붓글씨로 옮겨졌다. 이후 대한민국 금파 서예대전, 안중근 의사 서예대전, 홍재 미술 서예대전 등 지난 3년간 무려 54개 대회에서 입선 및 각종 상을 수상했다. 짧은 경력에도 그는 이제 명필 서예가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이렇게 아름다운 붓글씨 문화를 우리만 갖고 있는 게 아쉬웠다”며 “서예를 더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서예협회의 김기동 이사장, 정윤주 부이사장, 홍재환 군 군포 지회장 등과 함께 붓글씨 해외 보급을 위해 힘을 모았다. 붓글씨 세계화를 위해 한인이 가장 많은 LA를 주요 거점 지역으로 삼기로 했다.   이 전 회장은 이를 위해 LA를 방문, 한국서예협회 미주지회를 창설했다. 한국서예협회 역사상 첫 해외 지회인 셈이다.   서예 홍보를 위해 첫 행사도 갖는다. 오는 9월 17~25일까지 LA지역 E·K아트갤러리에서 한국서예협회 전시회를 개최한다. 한국서예협회 소속 작가 40명이 LA를 방문,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주서예협회(회장 로라 김) 소속 작가들도 작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이날 전시회에는 미주서예협회 전 회장인 송암 김성복 선생이 태권도 공연, 미주한국무용협회(이사장 강천순)에서 무용 공연 등도 펼칠 예정이다.   전시회를 통해 얻은 수입은 미주 지역 한인 차세대를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이 전 회장은 장학금 기부를 위해 ANC온누리교회에서 운영하는 ANC장학재단과도 협의를 마친 상태다.     이 전 회장은 “장학 사업을 위해 지난해 LA지역에 내 호((號)를 딴 ‘삼평 장학재단’도 설립했다”며 “앞으로 미주지회를 통해 우리의 글을 교민들과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한국서예협회와도 한인들이 많이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삼평’은 가정·나라·세계의 평화라는 의미다. 한국서예협회는 현재 회원이 7000여 명에 이른다.   ▶문의: (323)804-1651 장열 기자해외지회 붓글씨 붓글씨 세계화 한국서예협회 전시회 대한중고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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