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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반말은 무척 어렵다

한국어는 높임법이 발달한 언어입니다. 그중에서도 상대높임법, 즉 청자높임법이 발달하였습니다. 상대높임법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높임의 등급을 달리하는 겁니다. 상대높임법이 발달한 언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자바어 정도만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한국인이 아니라면, 한국어가 모어가 아니라면 상대높임법은 어렵습니다. 그중에서도 뜻밖에도 반말이 높임 표현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주로 종결어미에 의해서 상대 높임이 실현됩니다. 상대 높임의 등급은 학교문법에서는 일반적으로 격식체 4단계, 비격식체 2단계로 나눕니다. 이 중에서 격식체의 ‘하게체’와 ‘하오체’의 사용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게체의 경우는 장인과 장모의 말투나 나이 든 교수의 말투에 조금 남아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하오체의 경우는 문서에 ‘하시오’라고 남아있거나 사극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재외동포나 외국인의 경우에는 주로 격식체 2단계 즉 ‘합쇼체’와 ‘해라체’, 비격식체 2단계 즉 ‘해요체’와 ‘해체’만을 학습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주 높임 단계인 ‘하십시오체’와 두루높임 단계인 ‘해요체’는 높임으로 볼 수 있고, 아주낮춤인 ‘해라체’와 두루낮춤인 ‘해체’는 낮춤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낮춤을 반말이라고 합니다. 반말은 반말 말하는 짧은 투의 말이라는 기원도 있습니다. 또한 아주 낮추지 않고, 반만 낮추는 일종의 높임이라는 기원도 있습니다. 보통 하게체나 하오체가 주로 이런 의미의 반말에 속합니다. 듣는 이를 낮추지 않으려고 쓰는 말투라는 의미입니다. 사위나 나이가 찬 제자에게 쓰는 말투입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학습자에게 높임법의 사용에 대해서 질문하면 높임 표현에 대해서 아주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높임법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겁니다. 그런데 반말 사용에 대하여 질문하면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적다는 대답이 많습니다. 이는 재외동포 아이들과는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외동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 반말이 자유롭습니다. 특히 해요체는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반말은 아주 어려운 말이 됩니다. 한국어 사용의 실수는 주로 반말 사용에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 높임 표현보다는 어쩌면 낮추는 표현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말의 상대높임법은 단순히 나이와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나이뿐 아니라 지위와도 관련이 되고, 친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나이는 아래지만 나보다 지위가 높은 경우에 반말은 어렵습니다. 직장에서 괴로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나보다 어리더라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하면 큰일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질풍노도의 중고등학생은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어에서 높임과 낮춤의 복잡함은 한국어 학습자에게 반말 사용이 매우 어려운 부분이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외국인의 경우는 이러한 반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용을 꺼립니다. 실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상대나 심지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낮춤의 사용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나타납니다. 따라서 한국인, 외국인, 재외동포의 반말 사용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한편 반말이 꼭 나쁜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저는 종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불편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에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로 평상시에 반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존댓말을 하기 시작하면 화가 났다는 의미가 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혼낼 때, 부부가 화가 났을 때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적절한 존댓말과 반말이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관계가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반말 존댓말과 반말 반말 사용 한국어 사용

2023-12-17

[잠망경] 반말

한 정치가가 노인네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서 치열한 공방이 일어나고 있는 2023년 8월 한국이다. 폄하! 낮출 貶. 아래 下. ‘가치를 깎아내림’이라 사전은 풀이한다.   듣는 사람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에는 내용적인 이유가 있는가 하면 형식적인 이유도 있다. 겉으로는 예의를 갖춘 듯 들리지만 말의 내용이 안하무인일 수 있는 반면에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 이를테면 ‘반말’을 듣는 순간 불쾌해지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하대(下待)를 받는 경우다.   ‘반말 살인’이라는 말로 구글 검색을 해 보라. 반말을 했다 해서 살인이 일어난 사례가 당신의 모니터에 우르르 떠오를 것이다. 2019년 8월에 한국을 경악시킨 ‘한강 몸통 시신 살인사건’도 반말에서 시작됐다는 위키백과 보고를 읽는다.   ‘半말’은 문자 그대로 반만 하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는 미완성 문장이다. ‘아니요!’는 존댓말이고 ‘아니!’는 반말이다. 반말은 존댓말보다 짧다는 이유에서 말을 길게 하는 성의가 부족한 말투다.   단어를 송두리째 생략하는 우리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 좀 혼란스럽다. 한국어는 주어를 생략하는 관습이 있다. ‘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주어를 빼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면 공손, 그 자체다.   일인칭뿐만 아니라 2인칭도 생략되기는 마찬가지. 우리는 ‘너 저녁 먹었니?’ 대신 ‘저녁 먹었니?’ 한다. 영어에서는 ‘I love you’ 할 때처럼 주격과 목적격의 인칭대명사가 빠짐없이 들어가지만 우리는 그냥 ‘사랑해’ 한다. 이토록 우리말은 생략법이 깔끔하다.   영어에도 사람을 제외하는 생략법이 꽤 있다. ‘Ready?, 준비됐어?’, ‘Going home?, 집에 가니?’, ‘Sorry, 미안해!’, ‘Be right back, 금방 올게’, ‘See you later, 나중에 봐’, ‘Want some?, 좀 먹을래?’ 그러나 아뿔싸, 너무 생략하면 명령어로 돌변한다. ‘Speak! 말하라’, ‘Move! 움직여!’, ‘Shut up! 닥쳐!’   반말은 둘 사이의 친숙한 감정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자칫 건방진 소통이기도 하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 친숙은 경멸의 근본’이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오냐오냐했더니 할아버지 무르팍에 똥 싼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말에서 ‘나’라는 주어를 싹 없애고 말하는 습관을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결국 자기은닉(自己隱匿)이라는 비평을 받아도 크게 반박하지 못한다. 배경색상과 똑같은 빛깔로 변신함으로써 포식자(捕食者, predator)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자기방어법, ‘셀프 디펜스’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논리를 비약하자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두 나라에 빈번히 침략을 당해 온 역사가 반영된 의식구조와 언어습관이 아닌가 한다.   영어 문법에서 생략법을 ‘ellipsis’라 부른다. 사전은 이 말은 또 ‘문장이나 사건을 의도적으로 생략해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추측하게 만드는 기법’이라 풀이한다. 시(詩)에서도 자주 쓰인다. 그리고 ‘ellipsis, 생략법’은 ‘ellipse, 타원’와(과) 말의 뿌리가 같다. 말끝을 흐리면서 멈추는 것은 타원처럼 부드러운 수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직장 상관이 많이 늦게 출근한 직원에게 “자네 왜 늦었나?” 하고 물었더니, “무슨 일이 있어서…” 하며 얼버무린다면, 그것은 생략법인가 건방진 반말인가, 하고 나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반말 ellipsis 생략법 포식자 predator 영어 문법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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