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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밑줄 긋지 말고 삶에 밑줄 긋자" 한국기아대책 손봉호 이사장, 유원식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희망친구' 한국기아대책 이사장인 손봉호 교수와 유원식 한국기아대책 회장이 기아대책 미주한인본부(KAFHI) 창립 20주년 '콜링 캠페인' 행사를 맞아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유원식 회장은 30일 인터뷰에서 손 이사장이 자신의 멘토이자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며 "그는 신뢰의 아이콘이다"라고 묘사했다.     올해 8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 이사장은 꾸준히 여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국방부 산하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 6년간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환경단체인 '푸른 아시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손 이사장은 "1970년대부터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다뤘다"며 "환경·빈곤문제 해결, 장애인 사역 등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13억원을 장애인 지원단체인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애틀랜타에 방문한 한국기아대책 측은 손 이사장이 현재 기아대책의 구조를 세웠다고 입을 모았다. 유 회장은 "처음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부터 후원금을 귀하게 사용하라는 손 이사장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며 “기아대책의 존립기반은 '투명성'과 '순수성'이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질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한국 이주노동자, 난민, 다문화가족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조직과 예산을 보강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손 이사장과 유 회장은 이번 콜링 캠페인을 통해 복음을 삶에서 실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유 회장은 "신앙적인 의미가 크지만,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이번 행사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를 되새겨보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를 언급하며 "후에 나에게 아름답게 살았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며 "우리 모두 가치관이 다르지만, 베푸는 게 진정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 이사장은 "콜링 캠페인을 통해 단순 모금이 아닌, 교민사회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며 "남을 돕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한다는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국제기아대책기구는 1971년 래리 워드 박사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 70여개국에서 긴급구호 및 개발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윤지아 기자밑줄 성경 유원식 한국기아대책 유원식 회장 기아대책 미주한인본부

2022-09-30

'가난한 자에 대한 봉사'가 인생의 사명

    국제기아대책 미주한인본부(KAFHI) 사무총장 정승호 목사를 만났다. 정 목사는 오는 10월5일부터 3일 동안 메릴랜드 벧엘교회에서 개최하는 국제기아대책 미주한인 본부 설립 20주년을 맞아 메릴랜드를 방문하고 있다. 정 목사는 20년 전 발족한 미주기아대책(KAFHI)에 18년 전 참여해 현재는 사무총장으로 시카고 본부에서 활동 하고 있다.   정 목사는 “국제기아대책은 1971년 닥터 래리 워드에 의해 ‘전 세계의 영적 굶주림과 육체적 굶주림이 공존한 지역에서 빵과 복음을 통해서 두 개의 굶주림을 종식시킨다’는 비전을 가지고 설립됐다”고 말했다. 이어 “가난한 나라나 전쟁 중에 있는 나라들의 가장 취약한 계층은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국제기아대책은 그들을 도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71년 방글라데시를 타겟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졌고, 한국에서는 1989년에 일본인들이 이 사역을 전해 CCC리더십들이 이를 시작하게 됐는데, 미주기아대책(KAFHI)은 2002년 지금은 고인이 되신이원상 목사(와싱톤중앙장로교회)가 같은 비전을 가지고 씨드 머니를 마련한 다음, 선교적인 NGO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제기아대책은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브룬디, 캄보디아, 아이티 등과 같은 제3세계 나라에서 약 2000명의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고 1000명의 아이들을 직접 후원하고 있다       정 목사는 개인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삶을 살게 된 계기도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걸어가다 오토바이 사고가 나 피를 철철 흘리는 분을 봤다. 리어카를 빌려 환자를 이송했는데, 병원에서 거절도 당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 겨우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사건을 통해 누군가 신음할 때 내가 즉각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담임목사님이 추천하신 감리교신학대를 가게 됐다"고 정 목사는 밝혔다. "신학교에서 나를 크게 움직였던 성경구절이 루카복음 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였다. 그래서 성경의 명령 그대로 장애인, 그 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한 ‘반디회’를 만들어서 주말봉사를 시작했다”고도 말했다.   정 목사는 장애인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 점점 노동자, 농민, 화전민들에게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고, 화전민촌에 가서 화전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을 했고, 이런 관심은 북한으로까지 이어졌다. “성경이 명령하는 것들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살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담담한 이야기로 정승호 목사는 인터뷰를 마쳤다.       김정원 기자 kimjungwon1114@gmail.com가난 봉사 국제기아대책 미주한인본부 정승호 목사 미주한인 본부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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