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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페] “떠돌이별 같은 삶이 곧 나의 문학”

“35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묘비에 ‘시인의 아버지’라고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제가 큰 시인이 되기를 기대하셨죠. 그 유언을 지키고자 첫 시집 ‘정읍사’를 출간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께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직 큰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낮추는 최연홍 시인. 하지만 최 시인은 이미 스물두 살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 서른 중반에 한인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로 시가 번역돼 소개됐고, 사십 줄에 들어서는 워싱턴 포스트 전면에 김용익 작가와의 대담 기사가 실렸다. 또 지난 2003년에는 미 의회도서관 관계자들 앞에서 대표적인 한인 작가 자격으로 한국어와 영어로 본인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게 속도 겉도 영락없는 시인으로 살아온 지 55년째. 일흔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연이어 시집을 발간하는 등 매일 글을 쓰는 식지 않은 열정이 궁금했다. 스승에게도 스승이 있을 터. 언제부터 어떻게 글을 쓰게 됐느냐는 다소 식상한 질문에 최 시인의 눈빛이 돌연 빨갛게 젖어 들었다. “김열규 선생님…” 최연홍 시인의 문학 연보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유학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쁨보다 어머니와의 난생 첫 헤어짐이 서러워 내내 울었단다. 그리고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맞은 국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써서 읽게 해 또 한 번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날 이후 선생님은 문학 감성 풍부한 소년을 일찍이 알아봤던지 집으로 불러 방안을 채운 책들을 맘껏 읽게 하고, 빅토르 위고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며 한 소년의 심장을 뜨거운 정서로 채웠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 바로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로도 유명한 고 김열규 선생이다. 최 시인은 “한국을 떠나기 전 67년도에 인사차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중학교 2학년 때 기차에서 내내 울고 있는 너를 다 지켜봤다고 말씀하시더라”며 문학의 첫 길을 터준 김열규 선생과의 만남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인연이라고 말한다. 최연홍 시인은 수많은 시와 영시, 수필집 등을 발간했다. 그중 생애 첫 번째 시집인 ‘정읍사’(1985)는 한국을 떠나 가난한 시대에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유학생으로 생활했던 청장년 시절의 생활을 담았다. 최 시인은 “이 시기에 쓴 시는 나에게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이라는 초라한 신분을 시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보상받게 해 줬다”고 회상한다. 또 은퇴 후 발간해 어머니 영전에 바친 시집 ‘아름다운 숨소리’(2005)에는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안정적인 미국 생활을 과감히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 어머니 숨소리 곁에서 마지막 7년을 함께한 서럽고도 행복한 시간을 더듬어 한 권의 시집에 엮었다. 최 시인은 “지금도 어머니의 숨소리가 문득문득 그립지만 저 7년의 세월 덕분에 평생의 후회를 조금은 덜었다”고 위로했다. 최근 발간한 시집 ‘잉카 여자’(2016)는 여행길에 만난 이방의 거리에서 느낀 그들의 아픔 어린 삶을 승화된 시적 표현으로 풀어냈다. 이 잉카 여자를 읽은 전 워싱턴문인회장 권귀순 시인은 서평에서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사는 방법을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 이 두 가지라 했다.”며 “여행이야말로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살게 하는 것일진대, 그 기적을 시집 잉카 여자에서 만날 수 있다”고 적었다. 열네 살 문학소년 시절까지 합쳐 인생 대부분을 글과 함께 호흡해 온 최연홍 시인. 이 시인에게 시란 어떤 의미일까? 최 시인은 “내게 문학이란 내 조국을 떠나 잠시 돌아갈 곳은 있어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떠돌이별 같은 나의 처지, 즉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의 아픔을 가지고 사는 방랑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한다. ‘떠돌이별’, ‘이방인’, ‘떠난 자의 슬픔’. 인터뷰를 진행하며 최 시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떨어지는 표현들을 한데 주워 담으니, 혹여 ‘그리움’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호기심 하나가 고개를 든다. 초심 初心 최연홍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 첫눈에 반한 전율을 간직하고 있는 젊음 빈 손으로 이 세상에 와 먼 항로를 거쳐 마지막 항구에 이르도록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미천한 자에게 아들, 딸을 선물해준 아내 산 하나 남은 고향, 거기 동생들과 친구들 아직도 숲길을 걷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 청각 새벽기도의 미명 속 온화함 당신의 환한 음성을 듣고 있는, 무르익은 봄 벚꽃의 화사한 숨결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발걸음 그 누군가의 뒷모습은 라일락 향기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2018-05-01

[문학 카페] “생이 농익어 마침내 시가 되다”

“이 책 한 권에 내 40년 이민 삶을 담았어요.” 팔순의 나이에 생애 첫 시집을 출간한 윤학재 수필가. 시인이라는 타이틀보다 수필가로 살아온 세월이 더욱 긴 탓인지 ‘수필과 시는 다르다’는 말을 곱씹으며 인터뷰 내내 갓 태어난 시집을 매만진다. 긴 글로 삶을 그리던 수필가가 기나긴 인생을 한 편의 시에, 한 권의 책에 쏟아 담은 만큼 남모를 소중함도 클 터이다. ‘황혼 나그네’ 시집을 통해 시인의 40년 이민 삶을 만나봤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윤학재 시인은 동국대를 졸업하고 강원도청과 춘천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윤 시인은 “공보실에서 근무하며 강원도지사와 춘천시장의 연설문 작성을 도맡아 했다”며 “본래 문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 계기가 나를 지금까지 글 쓰는 삶으로 이끌게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올해로 나이 81세. 생애 첫 시집 ‘황혼 나그네’는 인생에 딱 절반의 세월을 이민자로 살아오며 순간순간 겪고 느낀 것들을 회상하며 5부로 나눠 엮었다. 인생 5막이라는 표현도 좋단다. 1부는 올해로 꼭 40년 전 이민 생활을 시작해 고달픈 일상 속에서 고향과 모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고, 2부는 힘든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신앙에 의지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삶을 담았다. 또 3·4부는 남의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며 반드시 만나게 되는 모국에 대한 고마움과 애국심을, 마지막 5부는 황혼을 넘어서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친구, 아내, 지인들과의 이별 심정을 담은 추모시다. 실제로 5막에 담긴 ‘무덤에서 말하는 아버지’라는 시는 그야말로 고생스레 이민 생활을 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관이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쓴 시다. 또 ‘어찌 가신단 말이오’와 ‘카네이션 꽂아 놓고’ 역시 8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로 쓴 시다. 윤학재 시인은 “일반 문인들 시와 달리 나는 이 시집을 통해 인간이 어떤 철학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며 “이민은 지금도 다들 힘들다고 말하지만 70년대 이민을 온 1세대들은 강도 총에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죽고 그 죽은 자리에서 아들이 서서 장사를 해야 하는 운명을 건너왔다”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내 시를 읽게 된다면, 끝까지 좌절하지 말고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감과 용기, 희망을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윤학재 시인은 과거 <수필문학>을 통해 수필가 등단, <한맥문학>을 통해 시인 등단을 한 후 수필집 <아리랑 그림자(1999년)>, <단풍인생 아름답게(2002년)>, <고로쇠 나그네(2006년)>, <짚신 발자국(2012년)>을 출간했다. 윤 시인은 인터뷰를 마치며 “내게 수필이 젊은 인생이라면, 시는 마치 농익은 인생과 같다”며 인생을 향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그네 허전함 한 잔 마시고 외로움 한 대 피우고 그리움 눈시울 뜨겁고 높은 밤 하늘 별들 차갑고 내가 왜 여기 왔나 내가 왜 여기 있나 구름 속으로 달이 간다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2018-04-19

[문학카페] “민들레 꽃이 피었습니다”

“제게 수필은 황폐해져 가는 영혼에 숨결을 불어 넣는 종합 비타민이자, 맘 속에 하염없이 차오르는 감성의 샘물을 퍼내기 위한 두레박질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책을 좋아했던 소녀가 사회인이 되어 또 다시 발길 닿은 곳이 명동 YMCA 수요 문화강좌와 중앙일보 문화센터 등에서 여는 문학 강연이었다. 그러다 30여 년 전 낯선 땅으로 홀연히 건너와 15년의 웅크림 끝에 2003년 『한국수필』과 『순수문학』을 통해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하고, 제 발로 워싱턴 문인회를 찾아가 총무부터 사무총장과 부회장을 거쳐 회장직을 연임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을 꼬박 문학에 열정을 불살랐다. 문득 헤아려보고는 스스로도 놀랍다는 감탄을 절로 내뱉는 유양희 수필가. 그녀가 등단 후 15년 만에 자신의 지성과 감성을 몽땅 쏟아 쓴 작품 들을 엮어 수필집 『워싱턴 민들레』를 한 송이 꽃처럼 피워냈다. 유 수필가는 “이민 생활 30년 간 절반은 민들레 홀씨처럼 이 땅에 날아들어 결코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뿌리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기였고, 나머지 절반은 문학에 대한 나의 절박함을 움 틔우기 위한 다짐의 시간이었다”며 “가슴에 품고 있으면 기회는 언젠지 모를지라도 반드시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삶 가운데 소중한 이야기들을 엮어 왔다”고 털어놨다. 그녀의 손에서 책 한 권이 탄생하기까지 이렇게 수년의 시간이 걸린 만큼 작품 한 편 한 편이 모아지는 데도 인고의 과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평소 일상의 한 켠에서 글로 날개를 달아보고 싶은 풍경을 마주하면 일단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여, 주제에 대해 온 정신을 맴돌고 맴돌다가, 결국 이것만큼은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우선 내용을 정리해 썼다가 배열 순서 및 단어 선택 바꾸기를 두세 차례, 그리고 또 다시 최종 탈고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 편의 글’이라고 조심스레 내 놓을 수 있었다. 유 수필가는 “글을 쓰고 나면 늘 표현들이 내 마음과 생각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성에 차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그 동안 내 세월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내 눈높이와 문장력의 갭에 대한 불만족을 과감히 걷어내고 출간을 하고 보니 삶에 뭔가 첫 매듭을 지었다는 긍정적인 마음과 마침내 작아도 노랗게 꽃을 피운 민들레를 보는 뿌듯함이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민들레 꽃 필 무렵에 맞춰 지난 3월 출간된 유양희 수필가의 처녀 수필집 『워싱턴 민들레』.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 책의 제목이기도 한 ‘워싱턴 민들레’를 가장 첫 작품으로 이름에 들어가는 ‘아가씨 희’ 자에 담긴 내용을 유쾌하게 표현한 ‘아가씨 희’, 모처럼 찾은 한국에 있는 아버지 묘역에서 온 가족과 들었던 그리운 뻐꾸기 울음소리를 추억 어린 감성으로 풀어낸 ‘뻐꾸기 소리’ 등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50편의 작품으로 채웠다. 유 수필가는 “이 나이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내 인생을 한 송이 민들레처럼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심지와 자존감을 선물해 주신 분은 올해 89세가 되신 친정 어머니 김금송 여사님이 일등공신이시다”며 “평생을 한결 같은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과 격려로 지금의 미 연방공무원 앤지 유, 수필가 유양희로 키워주신 어머니께 이 책을 처음으로 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생을 곁에 두고 온 문학에 대한 열정의 첫 결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 책은 개인적으로 비로소 나를 만나게 된 책이다. 이렇게 책으로 탄생하기까지 엄마가 가르쳐 준 한글 실력으로 기꺼이 원고를 타이핑 해 준 딸에게 감사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단 한 분이라도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전해진다면 이는 또 다시금 나를 진취적으로 살게끔 하는 힘이 되어줄 것 같다.” 유 수필가는 오늘도 워싱턴DC 한가운데서 주류사회 일원으로, 또 한인 여성 수필가로 당당하게 홀씨를 날리며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민들레로 살아가고 있다. 봄이 오면, 버지니아 푸른 잔디에 노랗게 피는 민들레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 이민자들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뽑힘을 당할지언정 남의 집 뜰에서도 당당하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호적등본을 떼어보면, 어쩐지 나와 같은 이민 계열의 족보를 지녔을 것 같다. - 수필 '워싱턴 민들레' 일부 발췌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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