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무관심의 비극, 무관심의 죄
1994년 전 세계는 르완다 대학살을 마주했다. 불과 100일 동안 80만 명이 넘는 투치족이 학살을 당한 사건은, 당시 학살을 멈추게 할 의지가 없었던 전 세계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끄럽게 하고 있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세계 여러 나라가 개입해서 멈추게 할 수 있었던 학살 사건을 두고 지금까지도 인류는 르완다에 빚을 졌다는 탄식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이티는 어떨까?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는 지금 갱단 때문에 지옥과 같은 형편이다. 갱들이 선량한 시민의 거주지를 약탈하고 폭력을 일삼아 올해에만 58만 명이 집을 떠나 뜨거운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올해 6개월 동안 갱단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납치된 사람의 숫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전 국민 1100만 명 중 절반이 식량부족에 시달려 영양실조에 이르고 있고, 전기, 식수, 휘발유 등 기초적인 생필품의 공급 부족으로 나라 전체가 정체되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으로 여겨진다. 이런 비극의 땅이 아메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있지만, 국제 사회는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이 암살된 3년 전부터, 갱단이 폭발적으로 그 세력을 키우며 납치와 폭력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갈 때도, 선교사나 국제기구 봉사자들조차 납치를 두려워하고 갱단의 폭력을 피해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어느 나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이티에 갱단이 준동하고 온 국민이 신음하는 중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넘어가고,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국제 뉴스를 덮었다. 아이티의 비극은 무관심이다. 아이티는 아주 간간이, 그것도 감옥이 습격을 당해 수천 명의 죄수가 탈옥했다거나, 미국인 선교사들이 집단으로 납치되거나, 젊은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살해되었을 때, 다른 나라의 뉴스에 단편으로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백성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손 벌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아이티는 갱단 때문에 공항이 폐쇄되어 나라가 완전히 고립되기도 했었다. 이 비극의 땅에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 르완다의 대학살과 비교할 정도는 절대 아니라지만, 뉴욕에서 불과 네 시간이면 닿는 땅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은 혹시 먼 훗날 우리의 수치가 되지는 않을까? 모든 이들의 무관심 속에 당하는 비극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절망이다. 수렁에 빠져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응답하는 이 없는 그 좌절 속에 다들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을 때, 가족도 없는 고아들은 외롭고 두려운 세상의 비극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부족한 아이티에서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은 높은 파도를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배고픈 군중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듣곤 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은 강도 만난 이의 이웃이 된 사마리아인에 관한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는데, 아이티를 향한 우리의 무관심을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오래도록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을 하다 보니 무관심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 않은데 우리는 먼 훗날 역사 속에서, 먼 훗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항석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무관심 비극 비극 무관심 아이티 고아 르완다 대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