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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결국 사달이 났네

예천에 가면 말무덤(言塚)이 있다. 많은 성씨가 모여 살아 문중 간 말다툼이 잦자 말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비방을 사발에 담아 묻은 뒤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처럼 거친 얘기가 오가다 보면 주먹다짐을 하고 칼부림까지 나는 참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을 두고선 “결국 사단이 났네”라고 할 때가 많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결국 사달이 났네”로 고쳐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일이 잘못됐을 때 ‘사단’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선 안 된다. 사고나 탈을 뜻하는 말은 ‘사달’이다. “손님이 던진 컵라면 국물에 편의점 직원이 화상을 입는 사단이 일어난 것은 전자레인지 이용과 관련된 말다툼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료 선수에 대한 비방글을 올린 일로 인해 결국 사단이 벌어졌다”와 같이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단’을 모두 ‘사달’로 바루어야 한다.   ‘사달’은 순우리말이지만 ‘사단(事端)’은 사건의 단서 또는 일의 실마리란 의미의 한자어다. 주로 찾다·되다·제공하다·구하다 등의 말이 뒤따르는 게 자연스럽다. ‘사단이 나다’와 같은 형태로는 쓰지 않는다. ‘나다’는 (일이) 생기다, (사고가) 일어나다, (사건이) 발생하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어떤 일이나 사건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첫머리를 이르는 ‘사단’ 뒤에 ‘나다’가 오는 것은 어색하다.   “나그네가 일러 준 대로 만든 말무덤이 마을에 화해의 사단을 제공했다” “식탁에서 형수에게 건넨 말이 사단이 돼 두 형제의 오해도 풀렸다”처럼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사달 가면 말무덤 전자레인지 이용 편의점 직원

2023-01-15

[문화산책] 우리들 마음의 말무덤

책을 읽거나 자료를 뒤적이다 보면,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긴다. 실제로 가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적어놓는다. 그렇게 가보고 싶은 곳이 계속 늘어난다.   말무덤도 최근에 추가된 곳이다. 문학잡지에 실린 시(詩)를 읽다가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냉큼 적어놓았다. 말(馬)이 아니라 말(言)을 묻은 무덤, 이른바 언총(言塚)이다. 우리 조상들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자료를 검색해보니,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 있고, 약 400여 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연히 전설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이 마을은 예부터 각성바지들이 살던 곳인데,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아지자 마을 어른들이 해결책을 모색했다. 갑론을박 중구난방 요란한데, 지나가던 나그네가 단칼에 해결책을 내놓는다.   마을을 둘러싼 야산의 형세가 마치 개가 짖는 모습과 비슷하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두 사발 하나씩을 가져와, 싸움의 발단이 된 거짓말, 상스러운 말,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 등을 사발에 담아 구덩이에 묻으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대로 했더니, 마을에서 싸움이 사라지고 평온해져 지금까지 이웃 간에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 무덤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말무덤에 가보는 것보다 먼저, 우리 동네에도 마을마다 집집마다 말무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말무덤이 있으면, 세상이 한결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틀림없다.   말무덤을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한국의 정치판과 온라인 세상을 꼽을 것이다. 틀림없다. 말 같은 말을 하는 자는 하나도 없고, 막말과 욕설, 거짓말을 경쟁하듯 쏟아내니 시끄럽고 짜증스러워 견딜 재간이 없다. 분노가 치민다. 덩달아 이를 보는 국민의 언어도 점점 사나워지고 있다.   마침, 한국의 국회의사당은 지붕이 무덤의 봉분처럼 생겼으니, 따로 무덤을 만들 필요도 없이, 몹쓸 말, 거짓말, 욕지거리 등을 모아서 거기다 묻으면 되겠다. 다만, 묻어야 할 말이 워낙 많아서 금방 가득 차버릴 것 같아 걱정이다.     말무덤 둘레에는 큰 바위 13개가 둘러 있고, 바위마다 말에 대한 말이 새겨져 있다. 이걸 격언비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예천군이 선조의 지혜가 담긴 말무덤을 산 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예산을 들여 새로 정비한 것이라고 한다.   -부모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 온다.   -혀 밑에 죽을 말 있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말 뒤에 말이 있다. 말이 말을 만든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은 적을수록 좋다.   -말 잘하고 징역 가랴.   이 말들만 잘 새기며 살아도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 같다. 그나저나, 말무덤에 묻은 나쁜 말들은 썩는데 얼마나 걸릴까? 플라스틱처럼 썩지도 않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큰 일인데… .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말무덤 마음 말무덤 둘레 마을 어른들 거짓말 욕지거리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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