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봤습니다] 버지니아주상원 챕 피터슨 의원
래리 호건 메릴랜드 전 주지사는 '한인 아내를 둔 한국 사위'로 워싱턴은 물론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워싱턴 지역 정치인 중 '원조 한국사위'는 챕 피터슨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었다. 한인 아내 샤론 김(변호사) 씨를 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이름 '김유신'을 쓰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던 정치인 피터슨 상원의원은 자타공인 '친한파 정치인'으로 20여년전부터 한인사회에서 널리 알려졌다. 지금까지도 버지니아 지역의 수많은 한인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모습을 내비치는 피터슨 의원에 대해, 아직까지 적지 않은 한인들은 한인 사회의 지지를 바라며 선거철마다 나타나는 지역 정치인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챕 피터슨 의원이 워싱턴 지역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사는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를 대표하는 주 상원인 점에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한인을 비롯한 주류 정치 및 지역 사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의 정치적 위상이 단순한 한인들이 생각하는 '지역 정치인'이 아닌 '버지니아 주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민주당 대표 상원의원'이기 때문이다. 챕 피터슨 의원이란 인물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록은 22년 전인 2001년 11월15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다. 당시5선의 공화당 의원을 꺾고 최연소 버지니아 주하원의원에 당선돼 화제였던 피터슨 의원에 대해 기자는 "정치 초년생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정치에 몸담은 경력 33년의 중견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바로 갓난아기였던 피터슨 의원이 1969년 주지사 민주당 경선에 도전했던 헨리 하월의 선거 캠페인에 함께 했기 때문. 피터슨 의원은 유년 시절에도 '의정 활동(?)'을 이어갔다. 페어팩스 시의원이었던 아버지 존 피터슨과 페어팩스 개발 위원장이었던 어머니 메리 피터슨이 참석하는 각종 회의를 쫓아 다녔고, 의사진행을 구경하며 숙제를 하곤 했다. 정치 씬이 '놀이터'와 같았던 피터슨 의원은 자라나며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뒀고, 페어팩스 고교 재학 당시에는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풋볼, 축구부 선수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윌리엄 칼리지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떠나 '영어 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버지니아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따고, 30세에 페어팩스 시의원으로 지역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3년 후, 선거구 내 1만4천호 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살인적인 캠페인 스케줄을 소화해내며, 피터슨 후보는 10년간 페어팩스 지역을 대표했던 노련한 공화당 의원을 몰아내고, 초선 의원으로 당당히 리치몬드에 입성 했다. 기사는 2001년 버지니아 주의회에 입성하는 정치경력 33년의 33세 초선의원이 고리타분한 주의회에 새로운 활력과 기운을 불어넣기를 기대하며 끝맺었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지금, 주하원의원에서 상원의원으로 '레벨 업' 된 피터슨 의원은 5선 선거를 앞두고 55세 생일파티를 '선거 캠페인 출정식'으로 자축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향해 나가고 있을까? 본보를 방문한 피터슨 의원은 일단 "연방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박았다. 국민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비정한 국제 정치, 권력 충돌, 대기업들과 로비스트들의 탐욕과 이전투구 속의 '톱니바퀴'가 되기 보다는, "나의 고향, 버지니아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어루만지는 지역 정치인이 나의 유일한 정치적 목표"라는 설명이다. 대신 피터슨 의원은 버지니아 주지사 도전에 대한 야심을 시사했다. 태어나자마자 뛰어들었던 정치판이 '주지사 선거전'이었기 때문일까? 이런 그의 목표가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챕 피터슨이 무척이나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 가문 출신인 피터슨은 변호사로서, 정치인으로서 '상식적인 원칙'과 '합리적인 타협'을 중요시한다. "페어팩스 카운티에 상식적인 원칙을 되찾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캠페인 공약을 밝힌 그는 "공립 학교 교육을 강화하고, 경기 침체에 직면한 상황에서 중소 상공인들을 보호하는 것에 무엇보다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적 아젠다보다 주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법안을 지지하고 입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버지니아주 민주당은 각각 30년 이상의 상원의원 경력을 갖고 있는 재넛 하웰 의원(33선거구), 리차드 새슬로우 의원(35 선거구)의 잇단 은퇴선언으로 '지도부의 진공상태'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터슨 의원은 그들의 은퇴 이후, 자신이 북버지니아 민주당을 선도하는 지도자 역할을 해내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버지니아의 주상원의회를 이끌고, 민주당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피터슨 의원은 선거구 변화에 따라 올 가을 중간선거에 34선거구가 아닌 37선거구 상원의원직에 출마한다. 2011년 이후 총선에서 맞붙은 상대후보가 없었던 피터슨 후보는, 따라서, 공화당 후보와 11월 본선에서 경합하게 된다. 그러나 피터슨 의원은 재선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37선거구가 페어팩스 시티, 옥튼, 비엔나, 메리필드, 던 로링, 아이들리우드, 타이슨스, 폴스처치 등 북버지니아에서 가장 발전됐으며, 고학력 주민들이 밀집한 진보 성향의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이다. 피터슨 의원은 지난 20여년간 북버지니아 지역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정말 많이 바뀌었다. 대부분 이지역 성인 남성들이 국방부 등 DC 연방정부 관련 직종에 종사했으나, 지금은 IT 와 연계된 첨단 산업 관련 종사자들이 더 많다. 보수적이고 백인 중심이었던 문화도 진보적이고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한인사회에 대한 애착에 대해서는 "한국 등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아내의 모국이자 워싱턴에서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가 구성된 페어팩스의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주 한미동맹재단 이사장으로 한국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대표 정치인으로도 활약하는 그는, 한인사회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며 "한인 커뮤니티는 이미 주류사회의 일부 그 책임과 권리를 당당하게, 충분히 누리고 행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그는 "이민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모두가 성공하는 북버지니아로 만들기 위해 한인사회 개개인들도 버지니아 주민으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면서 "상식적인 원칙의 가치가 빛나는 버지니아를 위해 나 역시 앞서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세용 기자 [email protected]만나봤습니다 버지니아주상원 피터슨 피터슨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