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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이누이트 막대기와 노궁혈의 교훈

손바닥 한가운데 혈자리를 침뜸의학에서는 ‘노궁혈(勞宮穴)’이라고 합니다.   노궁혈은 둘째와 셋째 손 허리뼈 사이 가로 손금 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볍게 주먹을 쥐었을 때 손바닥에 중지가 닿는 곳입니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스트레스로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나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에 땀이 많이 나거나 손바닥이 뜨거운 즉, 심장의 허증과 실증에 쓰는 경혈자리입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허심합도(虛心合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도(道)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도라는 것은 어렵고 난해한 이론이 아닙니다.지나친 감정의 폭은 오장의 균형을 깨뜨리며, 심하면 원래 상태를 회복하지 못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아주 무서운 병의 원인입니다.     “잡념이 없어야 정신이 통일이 되며 기가 모인다”라는 옛 말씀을 잘 새겨야 합니다. 또 동의보감에 ‘희즉기완(憙則氣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기뻐하면 긴장되어 있는 내 몸의 기운이 풀려서 원활한 기혈의 순환을 돕는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즐거워 웃기도 하지만 또한 일단 웃으면 마음이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습관적으로 하루에 한번은 박장대소하며 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내 몸과 오장육부가 부드럽고 유연해지니 생명의 본성은 부드러움이란 뜻입니다.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 ‘이누이트’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릴 줄 압니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 손바닥 노궁혈에 무겁고 긴 막대기를 들고 분노의 감정이 스르르 가라앉을 때까지 걷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한 손에 든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고 합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더 멀리 가서 또 다른 손의 무겁고 긴 막대기를 또 꽂고 온다고 합니다.     그들이 막대기를 두고 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 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겠다는 의지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분노는 애당초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잠시 빌려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분노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바람이자 빌려온 것이라면 빨리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속에 문을 하나 만들어 분노가 나가도록 하는 장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노궁혈이 최근 한국에서 다시 회자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TV토론에서 나왔을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썼던 곳이 노궁혈입니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 주술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왕자 논란’은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윤 대통령이 동의보감의 ‘허심합도’와 ‘희즉기완’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했다면, 정치적 논란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양극으로 대치하는 미국 정치인들에게도 노궁혈에 자극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에게 정치적 혼란보다 안정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에도 필수적인 덕목이라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병선 / 침뜸병원 원장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막대기 교훈 막대기 하나 손바닥 한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2025-02-17

[잠망경] 피자와 막대기

병동의 규칙을 언급하면 묵묵부답. 그러나 피자를 화제로 삼으면 모두의 표정이 환해지는 금요일 오후 그룹 세션이다. 우리는 왜 규칙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피자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가.   피자 냄새와 맛이 연상되는 순간 후각과 미각이 합쳐져서 감각적 본능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리처드가 묻는다. 한국인들도 피자를 좋아합니까. 토핑으로 무엇을 얹어 먹습니까.   ‘pizza’는 ‘피쩌’라 발음하면 어쩐지 공격적으로 들린다. 경음을 피하고 ‘피자’, ‘자장면’이라 하면 맥없이 부드러운 기분이다. ‘noodle, 국수’, ‘chop suey, 잡채’ 같은 발음도 다분히 여성적이다.   납작한 빵을 뜻하는 히브리어 ‘pita’와 그리스어 ‘petta’는 ‘pizza’와 말뿌리가 같다. ‘피쩌’는 전인도유럽어의 쪼가리(bit) 또는 깨물다(bite)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pizza’, 하면 은연중 공격적으로 들리는 게 아닐지 몰라.   병동규칙으로 화제를 되돌린다. 운전할 때 속도제한 규칙을 무시하면 어찌 되느냐. 교통사고가 일어납니다. 차선을 지키지 않고 깜박이도 켜지 않고 함부로 질주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샤워를 하고, 남의 방에 몰래 들어가지 말고, 기타 등등 병동규칙, ‘rule’을 잘 지켜야 한다.   ‘rule, 규칙’이라는 명사는 ‘regular, 규칙적인’이라는 형용사와 어원이 같다. 12세기경 고대 불어로 질서, 그리고 라틴어에서 ‘straight stick, 곧은 막대기’라는 뜻의 명사로 쓰였다. 이 컨셉을 현대언어로 풀어쓰면 ‘직설(直說)’에 해당한다.   ‘rule’은 동사로 ‘규칙을 강요하다’라는 의미였고 15세기에 들어서서 남들을 지휘, 지배한다는 뜻으로 변천했다. 심포니 지휘자가 춤추듯 휘두르는 지휘봉도 곧은 막대기다.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연주하는 소리의 강약과 호흡을 통솔하는 센스가 있는 지휘자가 바람직하지. 이 비유는 음악 외에 일국의 정치에도 적용된다. 전 국민을 지휘하는 통치자의 고민(苦悶)이 느껴진다. 쓸 苦. 답답할 悶.   환자를 다루는 능력과 기술이 미흡한 직원들이 고민하는 광경을 곧잘 목격한다. 나를 위시하여 완벽한 병동직원이 되는 것은 완벽한 통치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환자도 직원도 하나같이 고생하는 나날이 겹치기도 한다.   고민뿐만 아니라 고생(苦生)의 ‘고’ 또한 ‘쓸 苦’. 피자처럼 미각(味覺)적인 표현이다. 직역하면 ‘bitter life’인데 그런 말은 없고 ‘hard life’라는 관용어가 있다. 딱딱한 인생은 촉각(觸覺)의 차원이다. 우리는 인생을 맛보고 서구인들은 인생을 만진다는 차이점이 좀 재미있다. ‘재미’ 또한 자미(滋味)가 변한 미각적 발상이다.   한국 피자에 관심이 많은 ‘리차드’도 재미있는 이름이다. 원래 ‘Richard’는 ‘rich+hard’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였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rich’는 부유하다는 뜻 외에 강하다는 의미도 있다. 리차드는 세차고 딱딱하게 경직된 폭군처럼 강한 지배자라는 뜻으로 통했던 것이다.   ‘Richard’의 애칭은 ‘Dick.’ 소문자로 쓰면 일반명사가 되는데 ‘dick’은 음경이라는 품위 있는 말의 비속어로 쓰인다. 슬랭으로 ‘He is a dick’이라 하면 우리말로 ‘걔는 싸가지 없는 놈이야’라고 훌륭하게 번역할 수 있겠다. 어쩌다 참, ‘강력한 지배자’가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변했는지, 어원학의 재미가 보통 재미가 아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막대기 피자 한국 피자 rule 규칙 심포니 지휘자

20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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