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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살 수는 없으니

누군가 찾아와 푸념을 쏟아내던 중 내게 묻는다. 스님은 외롭지 않나요? 라고. 듣는 찰나에 씁쓸한 엷은 웃음이 미간으로 퍼진다. ‘뭐 이런 질문을 하지?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무래도 출가자는 외로운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 답을 하기 전에 물음을 되돌려준다. 당신은 외롭지 않으냐고. 그랬더니 맨날 외롭단다. 바람 소리만 들어도 춥고 옆구리가 시려 오고, 해가 바뀌는 무렵이 되면 더 외롭고 쓸쓸하다면서 자신의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을 하소연한다.   사실 이런 얘기는 그 누구와도 오래 하고 싶지 않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도 오한 들 듯 싸늘한 마음을 다지는 게 수행자의 삶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속내까지 드러내면서 상대를 위로해야 하는 게 싫을 때도 있다. 왠지 가련한 나의 생애라도 내놓고 파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춥다는 생각은 외로움을 부른다. 그 외로움은 불청객 감기를 불러오고, 감기는 몸을 아프게 하며, 몸이 아프면 다시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 외로워지게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 삶에서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니 자신이 일으키는 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그것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러하다. 더욱이 새해 새날이 되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지기도 할 테니, 길을 모색하려면 몸도 마음도 잘 추슬러야 한다. 특히 외로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두렵게 하고, 새롭게 솟아날 용기를 가로막는다. 때문에, 서둘러 내려놓지 않으면 정작 가야 할 길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고향 집을 떠나올 때,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씀이 생각난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이별의 순간이었지만 가슴 깊이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비로소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와 닿는 순간, 그대로 박혀버려서 지금껏 빼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말씀 덕분에 살면서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위안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외롭고 힘들 때마다 더 크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기댈 곳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각각 장단점이 있기는 매한가지인 듯하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출가의 길은 건조해진 마음을 유연하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제약과 금기가 많아서 한시라도 몸가짐이 흐트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고단한 삶에 가깝다. 마음가짐은 곧 몸가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하고, 가지고 싶다고 다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도 마음 한 번 내려놓고 나면 사라지게 마련인 것을.   우리나라에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던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2023년 봄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였다. 특히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나의 고단했던 유학 생활에서 그나마 마음이 각박해지지 않았던 건 그의 음악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지난해 초여름 출간된 그의 유작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읽고 있노라면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여느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는 인간적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또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담담한 화법으로 서술되는 문장에서는 은은한 공감을 표하게 된다. 다음은 그의 문장이다.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시험 삼아 피아노를 마당에 그냥 놔둬 보기로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수차례 비바람을 맞으며 도장도 다 벗겨진 지금은 점점 본래의 나무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 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암 투병 중 깨달았던 그의 사생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나이를 쌓아만 가는 것은 나무가 썩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에서 시사하는 메시지가 크다. 결국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이냐는 사카모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면서, 더불어 우리 모두 답을 찾아야 할 화두이기도 하다.   이제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과도한 목표나 실현 불가능한 소망, 작심삼일로 끝날 다짐을 정하기보다는 후회나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도록 바람의 크기를 재단하는 것은 어떨까. 올해 을사년에 볼수 있는 보름달이 아직 열두 번이나 남아있으니까.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욕망 마음 말씀 덕분 사카모토 류이치 나무 상태

2025-01-01

[글로벌 아이] 굿바이! 미스터 사카모토

일본의 이번 주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추모 주간이다. 특파원으로 도쿄에 있는 동안 여러 유명인이 세상을 떠났지만, 일주일 내내 신문과 방송에 추모 열기가 이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지난 4일 밤엔 NHK가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지난 1월 방송했던 마지막 콘서트 ‘사카모토 류이치(Playing the Piano in NHK)’를 방영했고, 마이니치신문은 추모 사설을 썼다. 도쿄신문은 10년 전 원전 반대 운동에 열심이던 그가 도쿄신문 기자 100명과 만나 대담했던 기사를 다시 요약해 실었다.   그만큼 크고 깊었던 삶이었다. 젊은 시절에 실험적인 전자음악으로 세상을 흔든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었고,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 등으로 세계 영화상을 휩쓴 영화음악가이자 배우였다.   사카모토는 일본에서는 드물게 사회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낸 예술가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후 반핵 운동의 중심에 섰고, 2015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정권의 안보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지난 3월에는 메이지진구(明治神宮) 야구장 재개발을 중단해달라는 편지를 도쿄도지사에게 보냈다.   왜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하니까.”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수많은 팬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지인들이 쓴 아름다운 추모의 글을 읽고 또 읽게 된다. 비평가인 아사다 아키라(?田彰)는 아사히신문에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결시키는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평가는 이것이었다. 저술가이자 프로듀서인 유야마 레이코(湯山玲子)의 말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놀라울 정도로 동등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공평하게 대했던 진짜 리버럴리스트였다.”   그는 타계 직전까지 음악을 붙들고 있었다. 오는 6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괴물’의 음악을 유작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의 진짜 마지막 곡은 이번 달 개교한 도쿠시마(?島)현 가미야마마루고토(神山まるごと) 고등전문학교(고등학교+전문대학)의 교가였다.   이 학교는 테크놀로지 기업가 육성을 목표로 만들어졌고, 평생을 테크놀로지의 첨단에 섰던 사카모토에게 교가를 만들어 달라 요청했다. 병세가 깊어진 그가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교가는 앞으로 음악가와 학생들이 함께 완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정한 리버럴리스트’다운 마무리였다. 이영희 /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사카모토 굿바이 미스터 사카모토 사카모토 류이치 도쿄신문 기자

2023-04-06

[비하인드 씬] 사카모토 류이치 ‘쓰나미 피아노’

아픔을 ‘길’로 만드는 첫걸음은 ‘기억’이다. 이를 잘 보여준 예술가가 최근 작고한 일본 피아니스트 겸 영화음악가인 사카모토 류이치다.   아시아 첫 아카데미 음악상, 그래미상 등을 받은 그는 2017년 도쿄에서 ‘쓰나미 피아노’란 이름의 특별한 피아노를 전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가 피해 지역을 방문했다가 한 고등학교 잔해에서 찾아낸 피아노였다.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소 등 정부 환경 정책을 비판해온 그는 쓰나미로 망가진 피아노에 전 세계 지진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 음으로 변환해 자동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연결했다. 피아노를 지진을 노래하는 악기로 되살려내며 “재난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국적과 언어를 초월한 음악의 울림이었다. 이듬해 부산영화제에서 한국 관객에게도 이 피아노의 선율이 전해졌다.   사카모토는 민감한 한·일 역사도 적극적으로 기억하려는 예술가였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 상영에 맞춰 2018년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 일제강점기를 그린 ‘미스터 션샤인’(2018)을 좋아하는 드라마로 선뜻 꼽았다. 그의 타계 소식에 ‘방탄소년단’ 슈가 등 한국 창작자들의 추모가 잇따른 데는 이런 초국적 태도로 지난 시간 한·일 문화 교량 역할을 해온 점이 한몫했다. 나원정 / 한국 문화부 기자비하인드 씬 사카모토 류이치 쓰나미 피아노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음악가인 사카모토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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