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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권한·재상권은 이사회 소유”

지난 2011년 시작된 미주 3·1 여성동지회(회장 그레이스 송) 소송이 11년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3·1 여성동지회는 1일 JJ 그랜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6일 LA 카운티 수피리어 법원이 예비판결을 통해 3·1 여성동지회의 법적 권한과 재산권은 이사회가 소유하고 소송을 제기한 김경희 전 회장은 법적 권한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법원은 김 전 회장 측에 동지회의 모든 재산, 은행 계좌 및 법인체 자료 등 일체의 문건을 이사회에 이전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종 판결문은 8월 중순쯤 나올 예정이다.   그레이스 송 회장은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준 LA 카운티 더글라스 스턴 판사와 이사회를 지지해준 한인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11년 동안 법정 소송 문제로 한인 사회에 불의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전했다.   이번 소송의 발단은 9대 회장을 지낸 김 전 회장과 이사회 사이의 12대 회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졌다. 양측은 서로 다른 차기 회장을 추천했고 2011년 12월 김 전 회장이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년 4개월간 진행된 소송은 2013년 2월 양측의 합의로 매듭지어졌다. 그렇게 그해 4월 홍순옥 12대 회장이 선출됐지만 김 전 회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별도의 미주 3.1 여성 동지회를 결성했다. 이어 이사회를 상대로 2번째 소송을 제기해 동지회의 법적 권리 및 재산권 소유를 법원에 물었지만 이번 판결로 갈음됐다.   소송을 맡았던 이원기 변호사는 “김 전 회장 측이 명예훼손 등 약 11개의 소송을 이사회를 상대로 제기했다”며 “이사회는 역사성과 정통성을 입증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문제로 제기된 단체명의 ‘여성’과 관련, 이사회는 “여성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며 성별을 구분 짓는 게 아니다”며 “청소년부와 남성 장년부와 함께 추후 애국 활동을 해 나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정빈 명예 이사장은 “보이스카우트 777부대와 함께 활동할 계획으로 청소년·장년 남성부 활동도 활성화하겠다”며 “동지회의 대표적인 행사인 글짓기와 말하기 대회도 재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 회장은 “미주 3·1 여성동지회는 한국역사와 미국 이민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단체”라며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미주 3.1 여성동지회는 한국의 독립 투쟁에서 빛냈던 여성들의 숭고한 이념으로 조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자 하는 취지로 설립된 비영리단체이다. 1982년 6월 9일에 설립된 단체로 올해 40주년을 맞이했다.   김예진 기자기자회견 동지회 여성 동지회 이사회 상대 홍순옥 회장

2022-08-01

미 40사단 한국전 동지회 해단

“한국전에서 함께 싸운 동지들, 마지막으로 함께 모입니다.”     72년 전 한국을 위해 용감히 맞서 싸운 미 40사단 한국전 참전 동지회가 세월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해단한다.     지난 2013년 정전 60주년 기념행사 등 간간히 모임을 가져온 40사단 동지회는 올해 “이젠 백발의 노인이 된 소속 참전용사들이 동지회를 힘써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 해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해단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로스알라미토스의 미 육군 보병 40사단 사령부(11206 Lexington Dr, Los Alamitos)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해단식에는 권성환 LA부총영사, 영 김 연방하원의원과 한인 재향 단체인 재향군인회, 6.25 참전 동지회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봉엽 40사단 연락관은 “한국이 이렇게 발전하고 우호적인 한미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많은 한인들이 해단식에 참석해 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고 자리를 빛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 40사단은 한국전에 참가해 강원도 및 경기도 북부 지역에 주둔하며 북한 및 중국군에 맞서 싸웠다.     당시 고등학교를 막 마치고, 혹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참전한 군인들은 귀국 후 동지회를 결성해 해마다 모여 사망한 전우를 기리고 서로를 챙겼다.     또한 40사단은 6·25 전쟁 당시 가평고등학교를 건립한 부대로, 매년 참전 기념행사를 열며 가평군과 친선·우의를 이어 오고 있었다.     1952년 당시 가평군에 주둔하던 미 40사단장 조셉 클리랜드 장군은 전쟁 중에도 천막에서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고는 휘하의 1만5000여명의 장병과 뜻을 모아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학교를 세웠다.       가평 주민들은 미 40사단 장병 가운데 처음으로 전사한 카이저 하사를 기리고자 학교 이름을 ‘가이사중학원’으로 결정했고 이후 가이사중학교, 가이사고등학교를 거쳐 가평고등학교가 됐다. 장수아 기자한국전 동지회 40사단 한국전 40사단 동지회 참전 동지회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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