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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촉수 엄금’

‘촉수(觸手)’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하등 무척추동물의 몸 앞부분이나 입 주위에 있는 돌기 모양의 기관을 생각한다. 주로 감각기관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학교에서 이러한 동물을 촉수동물이라고 배웠다. 그 모양에서는 우선적으로 징그럽다는 느낌이 와닿는다.   그래서 그런지 ‘촉수’라는 단어는 그리 좋은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촉수를 뻗쳤다’나 ‘촉수에 걸려들었다’는 관용어로도 많이 쓰이는데 좋지 않은 일에만 사용된다.   ‘촉수’가 들어간 말 중엔 ‘촉수 엄금’이란 것이 있다. 시설물 등에서 간혹 보이는데 그대로 풀이하면 촉수를 엄격히 금한다는 것이다. 벌레한테 하는 얘기는 아닐 테고 분명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일 텐데 그럼 내 손이 촉수란 말인가.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촉수’에는 사물에 손을 대는 것을 뜻하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런 뜻으로 ‘촉수’란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런 뜻으로 거의 유일하게 쓰이는 말이 바로 ‘촉수 엄금’이다.   단어는 저마다 고유한 의미에 특유한 어감(語感)을 가지고 있다. ‘촉수 엄금’은 ‘촉수’의 특이한 어감에 권위적·고압적 냄새를 풍기는 ‘엄금’까지 포함하고 있다. 괜스레 거부감이 드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촉수 엄금’이 어려운 한자어라고 해서 ‘손대지 마십시오’라는 쉬운 말로 순화한 적이 있다. ‘촉수 엄금’이란 문구가 과거보다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전기나 위험물 관련 시설 등에서 볼 수 있다. 가능하면 모두 ‘손대지 마십시오’로 바꾸면 좋겠다.우리말 바루기 촉수 엄금 촉수 엄금 하등 무척추동물 돌기 모양

2023-08-13

[글마당] 돌기 전에

“며칠 전에 바꾼 침대보를 또 갈아. 빨래를 너무 자주 하는 것 아니야?”   부지런 떨며 이일 저일 하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머리가 또 돌기 전에 해 놓지 않으면 안 돼.”   며칠 전부터 이석증이 오려고 어찔하다. 눈을 감으면 파도가 내 이마를 향해 밀려오거나 뿌연 물체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는데. 면역이 떨어졌나? 1989년 12월 말에 이석증이 처음 왔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이 냉골이었다. 생활고로 밀린 청구서는 쌓였고 냉장고는 텅텅 비었다. 산후조리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동네 이야기였다.     갑자기 머리기 핑 돌았다. 천장과 바닥이 파도치듯 위아래로 널뛰었다. 누군가가 나를 세탁기에 넣고 마구 돌리는 듯했다. 남편을 향해 두 손을 쳐들고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며 발버둥 쳤다. 세탁기가 속도를 올린 듯 머리가 더 빨리 돌았다. 나는 토하고 설사했다. 아이는 울고 남편은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앰뷸런스를 부르고 싶었지만 아이 분유 살 돈도 없었다. 병원 빌을 받고 또 도느니 차라리 죽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텼다.   그 이후로도 으스스 추운 날, 스트레스받으면 이석증은 도진다. 멀미약(meclizine)을 먹고 자다가 깨어나면 마치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후 청명한 하늘이 ‘놀랬었지?’ 하고 약 올리는 듯 어안이 벙벙하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 이석증 전조증상을 눈치챌 수 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돌기 전에 약을 먹는다.     자면서 좌우로 빨리 뒤척이면 어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도, 차를 타고 발밑을 내려다봐도 어찔하다. 운전을 포기한 지 오래됐다. 스트레스받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어지럼증 때문에 정신이 말짱할 때 미리미리 할 일을 해 놓는다. 내야 할 빌도 내고, 김치도 담그고 집안 정리도 바로바로 한다. 아파도 깨끗하게 정리 정돈된 집안에서 누워있고 싶어서다. 그런데 문제는 말짱할 때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일을 빨리하려다가 돌 때가 있다.     “나 건드리지 마. 머리가 돌려고 해.”   나의 서늘한 한마디에 집안 식구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인들에게 휘둘릴 때가 있다. 나는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한다. 대꾸하며 끼어들었다가는 머리가 돌기 때문이다.     이석증이 무척이나 괴로운 증상이지만, 죽을 날짜 받아 놓은 심정으로, 정신 말짱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나는 빡세게 산다. 언제 올지 모르는 이석증을 대비하며 살다 보니 치열하게 일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왕 생긴 이석증을 몸의 일부로 껴 앉고 살며 좋은 쪽으로 이용하면 나쁜 것이 굳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돌기 이석증 전조증상 집안 식구들 집안 정리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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