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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미래에 만날 증오

2322년,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인류사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류사박물관은 인류 역사의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6개 상설전시관 중 4번째인 근대전시관으로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후반까지의 역사자료를 관람객이 쉽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게 꾸며졌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입장하신 이곳 북쪽 전시공간은 ‘세계 대재앙’을 테마로 인류를 종말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증오의 탄생에 대한 기록을 담은 수장고가 특징입니다.   관람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실 수 있고 모든 관람과 체험을 하는 데는 30분가량이 소요됩니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간략히 ‘세계 대재앙’에 대해 소개해드립니다.   인류는 20세기 후반 다양한 PC 통신을 개발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특성으로 ‘소셜’이란 명칭이 일부에서 쓰였고 미국에서는 21세기 초반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과 기타 메신저형 또는 블로그형 소셜미디어가 등장했습니다.   인류는 소셜미디어에 열광했습니다. 2020년대 초반 전 세계 77억 명의 인구 중 60%가 소셜미디어를 이용할 정도였습니다. 생활은 편리해졌고, 교제는 쉬워졌습니다. 하이테크 갑부가 탄생했고, 인플루언서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날로 커졌습니다. 성층권 하층에 대형 풍선을 띄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기술이 경제성을 갖춘 뒤 소셜미디어는 최대 부흥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번영의 시대는 약 30년 만에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동시에 문명의 이기는 인류를 종말 직전까지 몰아넣습니다. ‘세계 대재앙’은 핵무기도, 대공황도,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도, 세계대전이나 지독한 바이러스도 아니었습니다. 범죄와 무정부주의, 테러와 내전, 침략과 인종 말살,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도 인류를 이토록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지는 못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마음에 혐오와 증오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철저하게 홀로 보는 특성은 인간 심리의 야수성을 자극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특징은 여론을 양극단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정도는 심해져만 갔습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증오를 “특정 집단에서 제거되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21세기 중반에 증오는 드디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하나의 ‘상품’에 등극합니다. 소셜미디어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찾아낸, 이용자의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내용만 생산했고 그 뒤를 큰돈이 따랐습니다. 체제전복, 국가몰락을 포함한 권력과 금권을 목적으로 가짜 증오를 만들어 파는 거대 국제 조직들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개별 국가들은 물론, 국제사회까지 나서 법과 규제를 만들고 국제 연대를 강화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렇게 21세기 후반 역사에 기록된 강대국 사이 핵무기 긴장, 두 차례에 걸친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 전 지구적인 팬데믹도 모두 원인은 증오라는데 많은 역사학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세계 대재앙’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곳을 체험하며 인류가 더는 편협하지 않고 열린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인류사박물관은 수준 높은 소장품을 확보, 보존하고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창조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 칼럼 미래 증오 블로그형 소셜미디어 가짜 증오 세계 대재앙

2022-10-25

[스토리 In] 침묵의 대재앙 II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정구현 / LA 선임기자·부장

2021-10-18

[스토리 In] 침묵의 대재앙 II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2018년 연중기획물로 한인 실종자 찾기 프로젝트를 연재했다. 당시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졌다.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만든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를 비롯해 3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 검색했다. 등록된 한인 실종자는 14개주에 걸쳐 34명으로 집계됐다. 어쩌면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기사화했다. ‘침묵의 대재앙’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가족들에게 안식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3년 전 한인 실종사건 프로젝트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백인 여성 실종 사망사건 때문이다. 약혼자와 함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다가 지난달 19일 숨진 채 발견된 개비 퍼티토(22) 사건이다.     한달 넘도록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실종 백인 여성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나올만도 했다. 언론이 ‘푸른 눈에 금발 여성’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판이다. 이 덕분에 지난 6월28일 캘리포니아 유카밸리에서 실종된 한인 여성 로렌 조(30)씨 사건이 주목을 받게됐다.   언론의 압박을 받은 수사당국은 수색 작업을 재개했고 지난 11일 실종 지역 인근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를 찾아냈다. 아직 그녀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족들은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붙잡을 수 있게됐다.   2건의 실종사건을 지켜보면서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이 더 컸다.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사라짐 때문이다.   3년전 취재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인은 최연소 실종자인 형제다. 당시 4살 이지호군과 6살 형 지수군은 2009년 7월11일 오리건에서 실종됐다. 벌써 12년이 지났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형제는 16살, 18살이 된다.   이들 형제만큼이나 딱한 사연은 46년된 최장기 실종자다.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당시 24세)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그녀는 이날 집에서 ‘증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임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과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그는 그녀의 수사파일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라이드 수사관은 그녀의 남편 앨톤을 용의자로 보고 여러차례 보강수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칼럼을 쓰기 위해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업을 했다. 네임어스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그새 한인 실종자는 10명이 늘었다. 현재 20개주에서 4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라지고, 퇴근길에 증발하고, 친구와 여행간뒤 소식이 끊어지고, 마켓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집에 돌아오지 않은 한인들이다.   40여년 동안이나 조셉씨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라이드 수사관은 ‘침묵’ 때문이라고 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녀의 실종에 대해 알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어서다.”   요즘은 조셉 씨가 사라진 1970년대에 비해 실종자를 찾기가 훨씬 쉽다. 과학기법과 첨단 기기들도 도움이 되지만 인터넷이라는 실시간 공유 게시판 덕분이다.   SNS는 잊혀진 사람들을 찾는데 최고의 도구이지만 정작 그들의 사진보다는 무생물들로만 가득하다. 어제 구입한 명품, 방금 뽑은 고급차, 별 다섯 개 레스토랑의 음식, 럭셔리 호텔방, 비싼 휴양지의 절경, 마스크를 쓰네마네, 백신을 맞네안맞네 등 다들 ‘나’를 알리기에 바쁘다.     팔로워수가 많은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실종자들의 사진을 한번이라도 공유해주길 바란다.     실종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색만해도 찾을 수 있다. 정구현 / 선임기자·부장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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