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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전선

올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세 차례 다뤘다. 세 번째 칼럼에선 희망 섞인 5차 협상 결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전쟁이 쉬 끝날 것 같진 않다’고 썼다. 당시 전황이 러시아가 개전 당시 목표한 것에 턱없이 못 미친 데다 푸틴으로선 어떠한 군사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본때를 보여야 할 ‘새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주 사이 푸틴이 목표했을 그 질서는 더 흐트러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근방에서 맥없이 퇴각한 데 이어 동부 돈바스 전선에서도 힘을 못 쓰고 있다. 반면 서방에서 지원받은 미사일·탱크 등 첨단 무기 덕에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 북쪽 국경에선 중립국 핀란드·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제재는 더 촘촘하게, 더 강력하게 러시아 포위에 나서고 있다.     푸틴은 오는 9일 전승기념일에도 전쟁을 마무리 못 할 가능성이 크다. 이젠 러시아가 끝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방이 끝장을 볼 작정이라서다. 푸틴 정권을 대척점에 놓는 ‘진짜 싸움’에서 말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러시아의 공격에 굴복하는 것이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330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민주주의와 독재 정권 사이의 최전선이다.”     다른 서방 지도자들도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우리 모두에게 전략적 의무”(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 등이다. 이제 서방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이며 전쟁은 더 본질적 싸움의 일부일 뿐이란 얘기다.   미국의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프랑스가 물가 불안에 휘청하지만, 서방은 제재 역풍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전선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작심한 것 같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이번 전쟁은 자유·인권·법치·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과 아닌 이들 간의 싸움이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푸틴의 침공은 실패로 돌아가야만 한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이 가치의 연대에 누가 어떻게 함께 하느냐가 선명해질 것이다. ‘가치의 질서’를 둘러싼 힘겨루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전선은 돈바스에 있지 않다.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지원 우크라이나 사태 대러시아 제재

2022-05-08

[글로벌 아이] 우크라이나와 일본의 선택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포함해, 일·러(러·일) 관계 전체를 발전시키겠다.”   올해 초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한 시정 방침 연설에는 러시아에 대한 ‘구애’가 가득했다. “평화조약 체결” “교섭” “발전” 등 긍정적인 문구로 채워진 대러시아 정책 바로 뒤, “일관된 입장에 근거해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한국 관련 딱 한 문장이 등장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을 돌려받겠다는 목표 아래 그동안 일본은 러시아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땐, 미국과 유럽이 제재를 선언한 뒤에도 한참을 미적거리다 사실상 ‘솜방망이’ 조치를 내놓는 ‘독자 외교’를 보여줬다.   그런 일본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변심’은 놀랍다. 일본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첫 제재를 발표하자 바로 동참을 선언하더니 지난달 25일엔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 등 추가 제재를 이어갔다. 27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자산을 동결하고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폭거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기시다 총리의 비판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망설임 없이 태도를 바꾼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크림반도 사태 때와 지금의 차이는 중국의 부상이다. 일본이 지난번처럼 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중국이 비슷한 군사 행동에 나설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대만도 위험해진다는 판단이다. 일본 국민도 정부의 태도 변화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여론조사에서 61%가 “일본이 미국·유럽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에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이 군사 전략의 중심을 중국 견제로 옮긴 데는 ‘러시아와의 긴장 완화’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일본의 강한 대응으로 “일본의 향후 안보 전략에 파급이 예상된다”(니혼게이자이신문)는 분석이 이어진다. 중국·북한에 러시아까지 위협 요소로 더해지면, 미국의 강한 요구 하에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더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예상치 못했던 전쟁이 국제 사회의 구도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각 나라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한국은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맞이하는 103번째 3·1절이었다. 이영희 / 한국 중앙일보 도쿄특파원글로벌 아이 일본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번 우크라이나 대러시아 정책

2022-03-01

[노트북을 열며] 푸틴이 다시 쓰는 ‘대러시아’의 기억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은 모두 유럽에서 가장 큰 국가였던 고대 루스의 후손이다.” 지난해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표한 장문의 에세이 서두다. 제목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에 관하여’. 고대 루스란 몽골 후예 칸국 지배를 받기 전 동유럽의 키예프를 중심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일대에 형성됐던 루스인들의 국가를 말한다. 한마디로 현재 각각 주권국가인 이들이 ‘뿌리’로 보면 남이 아니란 주장이다.   푸틴은 지난해 말 연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 땅”이라고도 했다. 동부 돈바스 지역과 크림반도가 구소련 체제 와해 당시 우크라이나에 속하게 된 것일 뿐 “이 지역 주민들은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겨왔다”면서다. 지난 2000년 집권 이후 ‘넘버 원’으로 통치 중인 푸틴의 집요한 ‘대러시아주의’를 엿볼 수 있다. 이러니 2014년 친러시아 독재정부가 우크라이나인의 손에 의해 축출된 일(유로마이단)은 대수롭지 않을 게다. 루스인들의 후예가 미국·유럽 등 서방의 간계에 의해 찢기고 있고, 이 같은 반러시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푸틴의 에세이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적이라고 믿도록 강요받고 있다”며 이에 맞설 정당성을 강변한다.   우크라이나 국경 3면에 10만 이상 러시아 대군이 집결하고 ‘전쟁의 북소리’가 다가오는 중이다. 지난주 세 차례 회담이 무위로 돌아가자 미국은 오는 21일 러시아와 막바지 담판을 예고했다. 전망이 밝진 않다. 푸틴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국제관계 전문가들도 오리무중이다. 서방은 강력한 경제제재를 예고했지만 직접적인 군사 개입과는 거리를 둔다. 결국 푸틴의 탱크가 국경을 넘는다면 맞서야 할 몫은 우크라이나에 있다.   푸틴은 ‘고대 루스’를 강조하면서 2014년 크림반도 때 같은 무혈입성을 기대할지 모른다. 오히려 동부 돈바스 내전으로 이어진 지난 8년은 우크라이나의 기류를 변화시켰다. “2014년 러시아의 침략은 2차 대전 이후 어떤 사건보다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주권을 확고히 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지적했다. 역사는 비대칭적 국력에서 희생자적인 유대가 민족 정체성을 강화해왔음을 보여준다. 사실 푸틴이 소환하는 ‘한 뿌리’ 당시 모스크바 공국은 스스로 대러시아를 자처했고 소러시아(우크라이나)를 신민으로 거느렸다. 이를 흐리며 ‘대러시아’를 운명적인 형제국가인 양 강압하는 것은 21세기식 제국의 팽창일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이에 어떻게 답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노트북을 열며 푸틴 대러시아 우크라이나 국경 당시 우크라이나 블라디미르 러시아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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