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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물망초

물망초     forget-me-not 달빛처럼 당신께 가려 합니다   달빛처럼 당신을 만나렵니다 아 새벽 먼동이 나를 밀어 내면 달빛 숨듯 돌아오렵니다     forget-me-not 남겨진 시간의 아픔일랑 일상 가슴에 삭히듯   고개 들어 달 한번 올려보고 그래도 견디지 못하면 달빛 한줌 가슴에 묻으렵니다     forget-me-not 서성인 발걸음 돌아설 수 없다면 밤새 달빛 아래 서 있으렵니다 그대 안녕하시라       이른 아침 잠에서 깨니 반가운 소식이 멀리서 왔다. 꽃이 피어나는 아침처럼 내게 왔다. 새벽을 깨우고 청명한 하늘을 지나 내 곁을 스쳐 왔다. 늘 이맘 때 즈음 정원에 꽃을 심는다. 올해는 좀 늦은감이 있지만 어제는 아침 일찍 시작해서 늦은 저녁까지 땀흘리며 정원을 관리 했다.     모종을 구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색깔이다. 그리고 키가 얼마나 자라는지, 얼마나 넓게 퍼지는지도 눈여겨 본다. 꽃은 언제 피는지, 일년초인지 다년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올해는 보험회사에서 보내온 메디칼 질문서에 답을 적어 보냈더니 150불을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카드가 왔다. 벌써 한달을 지갑 속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다가 어제 비로소 여러 종류의 꽃으로 바꾸어 졌다. 동그란 자갈 몇 포대와 모래 한 포대 그리고 짙은 색깔의 머치도 열 포대를 샀다. 값이 훌쩍 넘었지만 꽃을 사고 정원을 가꾸는 일에는 늘 넉넉한 마음이다.   심어논 꽃에 물을 주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유난히 맑은 새벽공기가 하루를 깨우고 있다. 올해는 물망초에 마음이 끌렸다.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의 꽃이다. 또 다른 꽃말은 진실한 사랑이다. 일년초 식물로 꽃은 5월부터 6월에 피고 옅은 보라빛 하늘색, 분홍색과 흰색도 있다. 특별히 보라빛이 은은히 담긴 하늘색 꽃으로 뒤란을 장식했다.   예쁜 꽃모양 만큼이나 꽃이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사랑스럽다.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했는데, 그때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전쟁터는 프랑스의 노르망디 평원이었다. 양국이 총공세를 펼치는 마지막 치열한 전투였다. 승리는 영국이 차지했다. 승리한 영국군 진영은 승전보를 안고 고국에 돌아가게 되어 온통 기쁨에 휩싸였다. 그러나 항시 소녀의 일기장을 꺼내 읽던 그 젊은 기사는 사랑하는 소녀가 기다리는 고국에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치열한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기사의 품속에서 소녀의 일기장을 꺼내자 갈피에 꽂혀 있던 마른 꽃잎이 땅에 떨어졌다. 다음 해 봄, 그 꽃잎에서 꽃씨가 떨어져 예쁜 꽃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꽃은 해마다 넓게 퍼져 결국 노르망디 평원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꽃의 이름을 물망초라 하고,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forget-me-not)라고 전해진다.   올해는 물망초를 뒤란 가득히 심었다. 뒤란은 꽃망울이 터져 색깔마다 제 모습을 드러내는 꽃잔치가 한창이다. 투명한 보라빛 하늘색에 노란색 포인트가 인상적인 물망초는 젊은 기사와 소녀의 애틋한 사랑 그대로 오랫동안 뒤란에 펼쳐져 당신이 그리운 내 마음 속에 포근히 담겨질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물망초 보라빛 하늘색 노르망디 평원 밤새 달빛

2023-05-2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목련이, 개나리가 피고 홍매화 꽃눈 방울처럼 달렸습니다 봄 하늘 바라보다 눈물이 맺힙니다 수척해진 얼굴, 내 탓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애간장 아랑곳 없이 봄은 늦게, 느리게 오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호수는 아름다워 닿을 수 없는 그곳엔 종일 달빛 마음 출렁이고 예상 못한 일들, 바람 불듯 일어나기도 하고 꽃 지듯 사라지기도 하였지요 푸른 호수와 푸른 하늘이 붙어버린 저녁 서로의 안부를 묻기엔 너무 멀리 흘렀나 봅니다     꽃 지듯, 나뭇잎 떨어지듯, 아무 일도 없었듯이 세월 지나 덤덤히 목련이 피고   목련이 떨어질 즈음 나도 없겠지요   살다 보면 눈물이 마르도록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되어 있을 터이니   안국역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차마 무겁습니다   별이 무수리 떨어져 안기는 밤 멀리서 바퀴 소리가 나를 지나쳐 웁니다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듯 서쪽하늘의 노을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분주함 속에서 저녁 한때 깊숙히 의자에 몸을 맡긴 채 고요히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서서히 노을이 지고 고요가 잠겨옵니다.   하늘 빛이 옅은 붉은빛으로 변해가다 어느 사이 하늘은 옅은 보라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오는 노을 빛은 천상의 색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신비한 빛입니다. 노을빛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귀에 가득했던 분주한 소리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이제 들리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보금자리 찿아 날갯짓을 펴는 새들의 노래가 간간이 들려오고 바람에 젖는 풀들의 나즈막한 속삭임이 들립니다. 나는 지금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고요 속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졸리운 듯 들리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며, 내 안에 흙탕물이 서서히 침잠하는 고요 속에서 사과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높아지기에 턱없이 작은 우리이기에 오히려 낮아지는 동작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 깊어지기 위해 넘어짐과 상처와 경솔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실수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를 향한 용서가 우선되야합니다. 그런 후에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바로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노을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언제 그 이름이 내 마음에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시간과 환경과 풍경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은 풍선처럼 내속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이름 하나 품고 노을 속으로 깊어 가자면 나뭇가지 사이 반짝 보이는 얼굴과 바람에 실려온 반가운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렵니다. 작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는 미어지는 아픔을 행복이라고 아직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름 이름 하나 달빛 마음 바퀴 소리

2023-04-1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꽃잎은 네 장. 노랗고 가느다란 수술, 암술에 작은 벌들이 바쁘게 날개를 움직인다. 활짝 피면 엄지 마디보다 조금 크게 핀다. 높이는 15인치 안팎으로 함께 기대어 피면 노란 벨벳을 깔아 놓은 듯 화려하다. 새끼 손가락만큼의 잎사귀 뒷면은 작은 솜털 같은 돌기가 있고 줄기에는 눈에 보일만큼 하얀 솜털이 무성하다. 꽃 대궁에는 다섯, 여섯의 꽃봉오리가 맺히는데 색갈이 붉어 혹 빨간 꽃봉오리가 올라오려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한달 남짓 피었다가 저버리는 짧은 기간이 아쉽기는 하지만 황금빛이 도는 노란색이 가히 환상적이다. 한낮엔 태양빛 같이 강렬하고 한밤은 달빛처럼 그윽하다. 해가 지면 꽃잎이 오무라지고 햇볕이 나면 다시 활짝 피어난다. 왜 해맞이꽃이라 안하고 달맞이꽃이라 명했을까?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밤하늘 달을 향해 꽃잎을 접어서일까?   지인의 집에서 한 부삽 분양 받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었는데 해가 지날수록 잘 자라주어 이젠 뒤란의 구석구석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달을 맞이하는 꽃, 달맞이꽃. 달빛을 받아 진한 황금 노랑으로 꽃피게 해달라고 밤하늘 달을 향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꽃. 그 기도가 효험이 되어 새날이 밝으면 밤새 오무렸던 꽃잎을 활짝 펴 다시 새날을 맞으며 환하게 얼굴을 드는 꽃. 꽃말 그대로 그리움의 한 밤을 달빛 아래 머물다 행복해지고 잠든 뒤란에 고요하게 내리는 달빛을 머금고 더 밝게 주위를 비추어 주는 꽃. 짧게 허락된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짧은 그 시간동안 밝고 빛나는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    목적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는데 순간순간 그 시간을 얼마나 내 삶에 적용했던가? 계절이 지나가듯, 밤이 오고 아침이 오듯, 직선적이고 객관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고 채워나가는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기도에 담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꽃. 우린 달맞이꽃처럼 살았던가? 누구도 흐르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붙잡아둘 수는 없다. 다만 강물처럼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삶에 꽃을 피우는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새날은 우리에게 날마다 다가오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올해 네 분의 지인들에게 달맞이 꽃을 분양했다. 몇 주가 지났는데 벌써 꽃이 피었다고 사진을 보내오셨다. 심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꽃은 피었다 시들지만 죽은 것은 아니다. 강렬한 태양빛과 깊은 달빛에 숙성해 가는 중이다. (시인, 화가)     달맞이꽃     이른 봄 피어나던 꽃들이 다 시들고 / 활짝 핀 이 꽃도 시들어 가겠지 / 노란 꽃잎이 말리고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날이 오겠지 / 눈물처럼 뚝 떨어져 버리고 말겠지 / 이내 마르고 부서져 흩어져 버리겠지 / 발 길 끊어진 그곳엔 바람 불고 고요할거야 // 썩어진다는 것과 숙성해진다는 것의 차이/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다시 잉태된다는 / 썩지 않고 발효되고 있다는 반가운 바람의 소식 / 수 백 수 천의 꿈이 까맣게 익어가는 중 이라는// 부패는 썩는 것이고 발효는 익는 것 / 발효의 과정으로 나도 익어가는 중 / 구름을 담고, 바람을 숨쉬며 / 시가 영글어가는 시간 / 창틀에 앉은 바람도 쉬어가는 시간 / 강렬한 태양빛, 그리운 달빛을 담아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 / 기도하는 달맞이꽃의 시간 /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달의 시간 / 땅도 하늘도 달맞이꽃도 쪼그려 앉은 나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달구어지고 / 사람이 가는 길 알 수 없지만 / 노오란 달맞이꽃의 기도 하늘에 닿았다 / 우리 모두는 익어가는 중이다 / 노랗게 여물어가는 중이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카이로스 지면 꽃잎 달빛 아래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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