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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대통령의 단독면담 요구, 바뀐 위상 실감

    반대 부딪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찬성 부탁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놀라운 친화력에 감동  1993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의회 사무실에서 지역구로부터 올라온 여론조사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서가 내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누구길래 저렇게 호들갑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백악관에서 온 전화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와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 오후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자는 초청이었다.   백악관에서 보낸 리무진을 타고 대통령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경호원들의 절도 있는 경례와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집무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갔다. 머릿속에 그동안의 힘들었던 이민생활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30여 년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가난한 나라에서 단돈 500달러를 들고 혈혈단신 이역만리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을 밟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일본 제국주의에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동족상잔의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와 겪은 온갖 고난을 뒤로하고 당당히 세계 최강국 미국의 연방 하원의원이 된 나를 돌아봤다.     내 인생이 미국에 와서 드라마틱하게 변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긴 이뤘구나.’ 새삼 자부심과 긍지도 느꼈다.   미국은 세계 제1의 정치, 경제, 군사 강국이다.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인물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반갑게 맞이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 전에도 클린턴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독대는 처음이었다. 미국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이라 다소 긴장됐다. 클린턴은 그런 나를 배려한 듯,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골프와 내 가족 얘기부터 했다.     자신과 반대 정당 초선 의원인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또 이미 나에 대한 중요 정보는 다 파악한 모습이었다. 내 골프 핸디가 ‘20’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내 샷 비거리가 좀 짧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비거리를 낼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줬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아, 이게 빌 클린턴의 매력이구나. 괜히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아니구나.’     내 아이들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족 안부를 물었다. 대통령이 처음 마주 앉은 초선 하원의원 자녀들 이름까지 외워 언급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어젠다를 위해 내 표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내 마음부터 잡아야 했다. 하지만 경위야 어쨌든 그 성의와 기억력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클린턴은 집무실에 장식해 놓은 각종 그림과 조각에 관해 설명해 나갔다. 중간중간 특유의 유머도 섞어가면서. 나를 보면서 “미국 역사상 유일한 한인 의원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연거푸 칭찬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화술이 대단했다.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를 집무실까지 부른 이유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안 때문이었다.     취임 첫해를 맞은 클린턴에게 NAFTA는 그의 정치운명을 건 이슈였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노조 편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각종 노조 힘은 어마어마했다. 이들은 NAFTA가 통과되면 멕시코의 저렴한 노동력이 밀려들어와 미국인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이유로 협정에 강력히 반대했다. 노조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많은 민주당 의원이 줄줄이 NAFTA 반대 성명을 내던 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소속의 클린턴 대통령이 앞장서 NAFTA 지지를 선언하면서 반전이 이뤄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당황했다. 클린턴은 급진 정치인이 결코 아니었다. 진보와 보수 성향이 적절하게 섞인 중도파 정치인이었다. 경제정책에서는 보수에 가까웠다. NAFTA를 보면 오히려 그는 표밭인 노조에 타격을 준 셈이었다.     물론 이러한 클린턴의 결정이 먼 훗날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됐다. NAFTA로 직격탄을 맞은 러스트벨트와 다수의 노조가 훗날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정치다.     당시에는 클린턴이 전통적 민주당 이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지금도 NAFTA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경제학자가 많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철저하게 민주당 이념에 충실하면서도, 경제와 국방에서는 공화당 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용주의 정책을 추구한 클린턴 인기는 대단했다.     NAFTA는 민주당 지도자들과 의원들,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조 등의 맹렬한 반대와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었음에도 클린턴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만큼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NAFTA에 전반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클린턴이 속한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거꾸로 야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찬성하는 보기 드문 정치풍경이 연출됐다.     사실 NAFTA에 필요한 모든 기초공사는 전임인 조지 H. 부시 대통령 때 마련됐다. 따지고 보면 클린턴은 부시 전 대통령이 다져 놓은 국가적 중대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NAFTA를 통과시킨 주인공은 클린턴 대통령이었기에 지금은 NAFTA 하면 클린턴 얼굴부터 떠오른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클린턴은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기 전 NAFTA 비준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의원들 설득에 ‘올인’하고 있었다.   나는 NAFTA 비준 표결이 임박한 시점에 찬반 입장을 확실히 내놓지 않았다. 지역구가 멕시코 국경에서 멀지 않은 탓에 지역 구민 반응을 좀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만큼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나를 백악관에 초청한 것은 내가 NAFTA 비준안에 관해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30명 정도에 달하는 미결정 의원들 선택이 비준안 통과에 결정적이라고 본 클린턴은 나를 초청해 단독 회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결국 나는 찬성표를 던졌다. 클린턴과 전임인 부시가 모두 그토록 원했던 NAFTA는 통과됐고 수십 년 동안 협정이 유지됐다. NAFTA가 논란이 많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도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기업들은 큰 이익을 봤지만 우려했던 대로 미국 제조업과 러스트벨트 상권이 무너졌다. 트럼프는 대선 캠프 때 줄기차게 NAFTA를 비난하며 즉각 폐기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26년 만에 NAFTA는 트럼프 손에 의해 폐지됐다. 트럼프는 무역수지에 있어 미국에 여러모로 더 유리하면서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진 내용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통과시켰다. USMCA가 지난해 7월 1일 발효되면서 NAFTA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용석 기자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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