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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경계를 넘어 나들목으로

윈드화랑(Wind Fine Art Gallery)은 오래 전 시카고 한인문화회관 건립 기금 마련을 돕기 위해 현대미술전시회를 가졌다. 이문열 작가가 미국 체류 중이라서 시카고 중앙일보사 초청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라는 문학강연회를 동시에 개최했다. 행사 제목은 ‘경계를 넘어’, 미술과 문학이 만나는 행사였다.   게임이나 경기할 때는 나는 모자라는 편이다. 어릴 적 청군 백군으로 나눠 줄다리기를 할 때도 힘이 달려 동무들이 같은 편 되는 걸 꺼려했다. 땅따먹기도 꽝이다. 내가 튕긴 돌은 내 땅으로 돌아오기는커녕 경계를 너머 적군 쪽으로 달아났다.     이 쪽도 저 쪽도 아니면 왕따 당한다. 좌도 우도 아니면 중도다. 중도는 고달프다. 인생에 중간은 없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빈 잔이거나 넘치거나, 죽기 살기로 매달리거나 포기하고, 사랑에 목 매달거나 배신 때리며 경계를 넘나든다.     철저하게 산다는 것은 고행이다. 대강대강 살면 편하다. 키 작은 튤립이나 다닥다닥 손잡고 피는 개나리, 흐드러지게 핀 홍매화도 봄바람에 흔들린다. 곁눈질 하지 않고 신념을 가지고 자기 주장 펴며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경계(境界)는 어떤 기준으로 분간되는 한계를 말한다. 경계는 분기점이고 분수령이다. 전환점이고 고비다.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또 다른 내일이 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경계를 허물기 쉽지 않다.       분기점(分岐點, Junction)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거나 사물의 속성이 바뀌는 지점이나 시기를 말한다. 운전 미숙에 잡념이 많아 고속도로를 타면 늘상 가던 길도 지나친다. U턴도 없어 다음 출구에서 되돌아오며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청운의(?) 꿈 안고 원대한 태평양 건너 미국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깨달았다.  내 인생이 방향만 바뀐 것이 아니라 모든 걸 통채로 걸고 올인 하는 경계의 변곡점에 도착했다는 사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경계’의 담장 위에 서 있었다.     백인들이 점유한 미술시장에서 동양여자로 미 중서부에 현대미술을 판매하는 대규모의 화랑과 창작 예술센터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경계를 넘나드는,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의 도움이 크다. 한국인도 미국사람도 아닌, 한 인간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줄 긋고 경계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관계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경계를 허무는 지름길이다. 스스로 이방인이라 생각하는 순간 이방인이 된다. 헛된 자부심 버리고 자존감으로 당당하게 맞서면 경계의 벽을 허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너와 나’ 사이에는 경계의 금이 없다. 스스로 그은 차별의 경계선을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미국에서의 내 인생은 항상 경계의 길목에 있었다. 뎃상이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위에 다시 정성드려 채색을 하면 된다. 경계를 허물기보다는 오히려 경계선의 양쪽을 넘나드는 자유의 미학을 꿈꾸며 생의 지평을 넓힌다.     이젠 길을 잘못 들어도 긴장하지 않는다. 나들목(Interchange)은 고속도로에서 일반 도로로 빠지는 접점이다. 나들목은 나가고 들어오는 길목이다. 표지판 잘못 읽어 다른 길로 들어서면 한적하고 호젓한 시골 길로 한참 달린다.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 철 따라 피는 풀꽃 따서 머리에 꽂고 쉬엄쉬엄 살기로 한다. 까르르 웃으며 달리던 길 빠져 나와 휴게소에서 떡볶이 삼각김밥 오물오물 먹으며 오뎅국물 호르르 마시던 따스한 사랑의 날들을 기억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들목 경계 분기점 junction 시카고 한인문화회관 시카고 중앙일보사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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