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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남새밭 이야기

지난가을 남새밭 청소를 깔끔히 했었다. 돌나물이 여기저기 나왔었는데 모조리 뽑아버렸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의 몇 배가 넘는 돌나물이 채소밭에 잔칫상을 차렸다. 처음에 돋아나는 새싹은 야들야들 연초록이 예뻐서 손으로 살짝 건드려 보기도 하고 한 번에 싹 쓸어버리듯 문지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돌나물을 보면서 채소밭 주인인 듯 크고 작은 것 없이 반듯하게 자라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한 보자기씩 나누어 주었는데도 비가 한번 쏟아지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게 또 일어나 큰 무리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 좋은 채소를 몇 달 계속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길어야 3주 아니면 4주가 지나면 먹을 수 없는 실 같은 줄기다. 줄기에 대롱대롱 잎이 달려 줄기 하나를 잡으면 잎이 따라 나온다. 줄기에서 돋아나는 잎은 식감으로 쓰이지만 잎이 돋아나는 만큼 줄기는 뿌리를 깊게 내린다. 잎을 뜯어내도 뿌리에서 다른 새싹을 저장하는 형태다. 줄기가 질겨지면서 잎에 변화가 생긴다. 잎끝에꽃봉오리를 만들어 노란 꽃이 가득 핀다. 높은 산등성이에 피는 광경을 연출하여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돌나물이 저물면 부추가 새파랗게 나풀거린다. 보이지 않고 숨어있던 뿌리에서 햇빛을 받고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겨우내 숨어서 땅속에 있는 자양분을 섭취한 탓에 보란 듯이 일어선다. 처음 채취한 부추는 사위에게 먹인다는 속담이 있다. 이만큼 보약으로도 대단한 인기 있는 채소다. 비가 내린 후에 햇빛을 받으면 가느다란 줄기가 초록으로 반짝거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대단한 힘을 가진 채소다. 쪼그리고 앉아 한 입 한 입 칼질하면 손에 잡히는 부드러움이 솜방망이 같이 느껴진다. 다듬어서 부추, 양파, 말린 새우를 넣어 전을 부치면 냄새부터 부엌에 가득하다. 군침이 돌면서 한 입 넣으면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어 본다는 기쁨이 넘친다. 조금씩 몇 명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자라는 속도가 줄어 7, 8월에는 질기고 수확도 적다.   부추가 뜸해지는 사이에 깻잎이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눈길을 주지 않아서 질투하는지 잎을 넓적하게 펼치면서 채소밭 주인이 되어간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씨가 떨어져 나온다. 드문드문 심어 자신을 자랑하라고 하면 서로 시샘하듯 비슷하게 자란다. 깻잎은 구시월까지 자라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라는 깻잎을 뜯어도 계속 자란다. 벌레도 깻잎을 귀찮게 하지 않는 특이한 채소다. 손바닥 크기의 깻잎과 상추 한장에 삼겹살을 얹어 먹으면 지친 여름을 지탱해주는 먹거리다. 깻잎 특유의 향과 씹는 맛이 돼지고기 누릿한 맛을 감싸버린다.   이렇듯 남새밭에는 초봄부터 채소들이 질서를 유지하며 이어간다. 왕성하게 자라다 자연스럽게 다음 야채에 물려주는 너그러움을 우리도 배웠으면 좋겠다. 이 채소들은 사슴과 토끼가 먹지 않는다. 우리 집 뒤뜰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다 모인다. 다른 채소는 동물들의 먹잇감이라서 심지 못하지만 씨를 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돌나물, 부추, 깻잎은 우리 뒷마당을 지켜주고 식재료로 쓰이고 있다. 친구들에게 한 보따리씩 따 주는 인심도 쓰고 그에 대한 감사 인사는 살아가는 재미의 촉매재가 된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이야기 채소밭 주인 돌나물 부추 벌레도 깻잎

2024-06-17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외간 깻잎

‘외간 깻잎’은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갑론을박 논쟁의 주제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 노사연이 남편 이무송, 자신의 여자 후배까지 셋이 함께 식사했을 때 벌어진 일화를 소개하면서 논쟁은 시작됐다. 이날 식당 반찬으로 나온 깻잎지가 겹겹이 너무 착 달라붙어 있어 여자 후배가 잘 떼어내지 못하자 남편 이무송이 젓가락으로 깻잎지를 눌러서 그녀를 도와줬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노사연은 “내가 보는 앞에서 ‘외간 여성’의 깻잎을 잡아줬다”며 화를 냈고, 이무송은 “그저 매너였을 뿐인데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맞받아쳤단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조차 “화내는 게 당연하다” “그게 왜 화낼 일이냐” 의견이 팽팽히 갈렸고, 이후 ‘외간 깻잎’ 논쟁은 여러 방송에서 셀럽들의 의견을 묻는 난제가 됐다. 연예인 인스타그램에 ‘외간 깻잎’ 의견을 묻는 팬들의 질문이 올라오고, 해당 연예인의 대답은 온라인 매체에서 화제다.   양쪽의 의견은 이렇다. “화낼만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족·친척이 아닌 ‘외간’ 이성에게 지극히 사적인 도구인 젓가락을 사용해 돕는 일은 상대 이성에게 충분히 불쾌한 일이라는 의견이다. “화낼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매너일 뿐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의견이다. 연인 사이에 싹 트는 질투심에 정당한 이유와 결론이 있을까.     서정민 /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외간 깻잎 외간 깻잎 외간 여성 남편 이무송

2022-04-13

[글마당] 깻잎 밥

 몇 년째 늦여름마다 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는 친구를 방문하고 나는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무쇠 냄비에 불려 놓은 쌀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깻잎을 가득 채운 후 새우를 넣고 밥을 했다. 밥이 되는 동안 파와 빨간 고추를 다지고 아몬드 가루를 듬뿍 넣은 양념간장을 준비했다.     친구가 해준 된장찌개와 깻잎 김치를 곁들인 깻잎 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깻잎 향에 빠져 말이 많아졌다.     “프랑스 유명한 주방장이 한국에 와서 깻잎 향에 반했다는군.”   남편의 기분이 좋은 틈을 놓칠세라 나는 “내일 또 깻잎 밥과 깻잎부침개 해도 돼? 싱싱할 때 다 먹어 치워야지.”   친구는 빨간 고추, 방울토마토와 호박도 줬다. 깜박 잊고 호박잎과 배를 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카톡이 왔다.     정확히 31년 전이다. 내가 작은 아이를 낳고 바로였다. 우리는 플러싱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만나는 순간 왠지 모르게 끌려 친구가 되었다. 교인 모두가 집사였는데 우리 둘만 집사가 아니라서 ‘안 집사’라고 불려서였을까?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다툼이라던가 섭섭함이 없었다. 아마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배려 때문이다. 친구는 작은 거인이다. 키는 작지만, 마음 씀씀이는 그야말로 그녀 집 가까이에 있는 대서양을 닮았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그녀의 집 뒤뜰에 나가서 깻잎 따려면 모기에 물리지 않게 무장을 해야 한다. 내가 모기에 물릴 것이 걱정되어 아예 뒤뜰 나가는 방에다 깻잎 줄기를 통째 잘라다 쌓아 놓았다. 나는 방석에 앉아 조용히 깻잎을 따며 생각에 빠졌다. 그녀는 항상 내가 힘들지 않게 배려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 배려를 그녀에게 했던가? 기억이 없다. 그녀에게 받은 기억만 있다.   우리는 각자 두 아이를 키우며 잘살아 보려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하면서 이따금 만남을 이어왔다. 이제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함께 늙어가는 처지라서 예전보다 더 자주 만난다. 나는 수다를 떨고 친구는 내 수다를 마냥 들어준다. 다음 만남에는 수다를 꾹 참고 나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텐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이 엿 같은 코로나 역질 때문에 2년 가까이 입을 열 때가 없어서일까? 라고 변명하려다가 솔직히 나는 타고난 수다쟁이라고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성당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문이 열려있으면 항상 들어가 기도하며 쉬었다 나온다. 그녀와 헤어지기 전,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 들렀다. 작고 아담한 하얀 교회다. 순수하고 아늑한 교회 분위기에 긴장이 풀리고 마음은 포근했다. 우리는 각자 조용히 기도했다. 이수임 화가·맨해튼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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