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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장자는 마침내 마음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아내가 죽자 장자는 슬퍼하기는커녕 통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애도는 하지 못할지언정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는 대꾸한다. 사람이 죽으면 태어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법이라고.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뒤나 모두 삶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태어나기 이전 상태에 대해 슬퍼한 적이 있냐고. 태어나기 이전 상태에 대해 슬퍼한 적이 없는데, 왜 죽었다고 새삼 슬퍼하느냐고.   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다양한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허무’란 주제로 묶었다.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말하자면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한 글인데 그림과 문학·고전 속에서 사유의 단서를 찾아낸다. 위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와 같은 장자의 위로에 공감하려면, 인생을 보다 큰 흐름의 일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죽은 뒤의 상태뿐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까지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허무와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의 하나다. 작가는 이윤주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를 인용한다. “엄습하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쓸 필요가 있다고. 쓰기 시작하면 불안으로 인해 달구어졌던 편도체는 식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쓰는 행위를 위해서 우리는 진정될 수 있다고.”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인생 김영민 서울대 이전 상태 글쓰기도 허무

2023-12-13

[문장으로 읽는 책]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내가 존재, 그러니까 무(無)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내가 ‘사람’이 된 날이었다. 무의 아우라가 없는 것은 아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기 전인 것은 확실하지만, 4살이었는지 혹은 6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을 걷고 있었고, 그 사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청명한 야밤으로 별들이 많았다. 죄다 익숙한 존재물로, 바로 이 ‘존재라는 틈’의 틈입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할 일이 없는 범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무’, 무의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어머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없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절절하고 공포스러운 체감이었다, 존재의 틈으로 무가 번개처럼 찾아들던 순간이었다.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날이었다. 내게 ‘영혼’이 생긴 날이었다.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제도권 대학을 떠나 30년 가까이 인문학 공동체와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철학자·시인 김영민의 책이다. ‘무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이라는 제목의 윗글에 저자는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팡세』의 문장을 달았다. ‘공부의 철학자’로 유명한 저자는 수행자처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에게 공부란 “매사에 진짜를 구하는 애씀” 혹은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고, 그 덕으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사는 일”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생활 철학 공부 모임 시인 김영민 무가 번개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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