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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FBI 미행도 모른 채 금품 줬다

한국 국가정보원(원장 조태용·이하 국정원)이 미 정보기관 고위직 출신 한인 인사를 명품백과 각종 향응으로 포섭한 것을 두고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관련기사 명품백에 접대 사진까지…적나라한 공소장 공개 공소장에는 한국 정부 기관 관계자들의 금품 제공 활동 등이 현장 사진 등과 함께 구체적이고도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행적을 두고 저급한 행태라는 비난의 목소리까지 일고 있다. 연방검찰은 중앙정보국(CIA) 선임 분석관 출신이자 대북 정보 전문가로 알려진 수미 테리(사진) 외교 협회 선임연구원을 지난 16일 기소와 동시에 체포했다 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일단 석방됐다. 한국 국정원 직원들과 접촉한 뒤 선물과 향응을 받은 대가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고와 인터뷰, 의회 증언 등을 한 혐의다. 테리 선임연구원에게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그에게 간첩(espionage) 혐의를 부과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비밀리 해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리인 활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우드로우 윌슨센터(WWICS)에서 한국역사와 공공정책 연구를 위한 현대차 한국재단 디렉터도 맡았었다.     30페이지가 넘는 검찰 공소장에는 국정원이 테리 선임연구원을 대상으로 명품백 등을 제공하며 포섭한 행적이 자세히 묘사돼있다.     공소 내용에 따르면 한국 국정원 담당 직원 3명은 최근 10년 동안 테리를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의회 증언 내용에 영향을 주고, 한국의 일본과의 화해 노력을 반기는 기고 글을 요청한 뒤 금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은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돌체앤가바나 코트,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 루이뷔통 핸드백 등을 사주는가 하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향응을 제공하고 현금까지 제공했다.   공소장에는 “명품 구매는 한국의 국정원 직원의 신용카드로 구매했고 외교관 신분에 따라 판매세는 부과되지 않았다”며 “테리는 2019년 11월경 (국정원 직원이 사준)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반품하고, 돈을 더해 4100달러짜리 크리스찬 디올 코트를 사기도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정원 직원들은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 의미 부여를 담은 글을 주요 매체들에 보내게 하고 그 대가로 500달러를 제공하기도 했다. 공소장에는 테리가 국정원의 이런 제안에 “무슨 내용을 쓰면 되느냐”고 질문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이러한 방식으로 금품을 받고 한국에서 방문한 외교 인사들을 국무부 고위 간부와 회의를 주선해주기도 했다.   심각한 건 수년간 연방수사국(FBI)이 따라붙고 있었는데도 국정원은 어설픈 포섭 행위를 지속했다는 점이다. 이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우려를 넘어 웃음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국정원은 미 정보당국의 추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대사관의 공식 수표를 대금 결제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전화나 문자 내용이 수색될 수 있음에도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의 대화를 이어왔다.     테리 선임연구원에 대한 추적이 시작된 지난 2013년부터 FBI는 한국 외교부 소속 차량에 대한 미행은 물론 명품 업소들 내부 카메라, 고급 식당 내부 장면 등을 사진 증거 자료로 수집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FBI는 테리 선임연구원과의 면담을 통해 국정원의 행태가 위험할 수 있다며 수차례 경고까지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FBI가 사실상 한국 국정원의 모든 행보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국정원의 이러한 아마추어식 접근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10년 넘게 지속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현재 국정원은 해당 활동이 누구의 지시로 이뤄진 것인지,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허용된 것인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금품을 제공하고 미 고위 관리들과의 만남을 가진 한국 인사들이 누구인지에도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향후 한국 인사들이 밝혀질 경우 이번 국정원의 어설픈 포섭 행위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5세로 고위직에 진출한 한인 공직자들의 윤리 의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시민이자 국가 공무원으로 높은 국가 안보 의식을 갖고 퇴임 후에도 품위를 지켜야 했지만, 테리 선임 연구원은 한국 기관의 명품백과 금품 유혹 앞에 국가의 신뢰를 저버린 셈이 됐다.     워싱턴 DC 외교가에서 활동해온 한 한인 전문가는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500달러에 한국의 홍보원이자 대리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미국인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무모한 국정원의 행태와 전 공직자의 사욕이 빚어낸 부끄러운 사건으로 한미 외교사에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에서 해외 정부의 정보원이나 로비스트로 일할 경우에는 법무부에 ‘외국 대리인 등록법’에 따라 신상 등록을 해야 하며 정해진 규정 안에서 활동을 보장받는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정보기관 첩보활동 한국 국정원 한국 국가정보원 정보기관 고위직

2024-07-17

명품백에 접대 사진까지…적나라한 공소장 공개

연방 검찰이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하고 16일 공소장을 공개했다.   관련기사 국정원, FBI 미행도 모른 채 금품 줬다 31쪽에 이르는 이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10여년에 걸쳐 한국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고급 식사와 고가의 의류, 핸드백, 고액의 연구비 등을 받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자, 한국 측으로부터 받은 금품 내역을 비롯해 그가 어떤 식의 접대를 받았는지 등을 사진까지 붙여 적나라하게 담았다.   검찰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다.   고가의 금품과 접대를 받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으며,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면서 미 법무부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FARA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미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CIA에서 퇴직하고 5년이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외교관 신분의 한국 국가정보원 요원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봤다.   공소장엔 이와 관련한 5장의 사진까지 담겨있다.   테리 연구원은 2019년 11월 국정원에서 파견된 워싱턴DC 한국대사관의 공사참사관으로부터 2845달러 상당의 돌체앤가바나 명품 코트와 2950달러 상당의 보테가 베네타 명품 핸드백 선물을 받았다.   며칠 뒤엔 매장에서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4100달러 상당의 크리스챤 디올 코트로 바꿔 갔다고 한다.   공소장엔 국정원 간부가 매장에서 가방을 결제하는 모습, 핸드백 구입 후 국정원 간부가 테리 연구원과 함께 매장을 떠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담겨있다.   미 검찰은 해당 국정원 간부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과 매장 CCTV 화면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추후 테리 연구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문제의 코트와 명품백도 증거로 확보했다.   미 검찰은 또 테리 연구원이 국정원 간부들과 뉴욕 맨해튼의 한 그리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사진도 증거 사진으로 첨부했다.   테리 연구원이 미 정부의 비공개회의 관련한 정보를 한국 측에 전했다는 메모 사진까지 등장한다.   그는 2022년 6월 17일께 테리 연구원은 미 국무부 건물에서 열린 대북정책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토니 블링컨 장관과 국무부 고위 관계자, 대북 전문가 5명 등이 참석한 이 회의는 비공개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회의 직후 국정원 간부의 차량에 탑승했고 이 간부는 그가 적은 2쪽 분량의 메모를 촬영했다고 한다.   테리 연구원은 자신이 재직 중인 기관명이 인쇄된 종이에 내용을 적었고, 미 검찰은 그 내용은 검게 처리한 뒤 메모 사진을 그대로 공소장에 담았다. 카시트와 테리 연구원의 토트백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찍은 모습이다.   미 검찰은 테리 연구원의 언론 기고 활동도 한국 정부의 금품 제공 대가로 봤다.   공소장에는 2023년 1월 국정원 간부가 ‘확장 억지 강화’ 등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과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 추구, 한일관계 등에 관해 테리 연구원에게 설명하고 이후 테리 연구원이 이에 부합하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 명품백 국정원 간부들 테리 연구원 명품백도 증거

2024-07-17

LA총영사관 국정원 간부, '하급자 추행' 무죄 확정

LA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중 영사관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 전직 간부가 무죄를 확정받았다.   14일(한국시간)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전직 국정원 간부 A씨의 준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29일 확정했다.   A씨는 2020년 6월 LA총영사관에서 부총영사급으로 근무하던 중 영사관 계약직 직원 B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외교부는 현지 경찰에 고소당한 A씨를 한국으로 송환했고, 검찰은 A씨가 회식 후 만취한 B씨를 부축하며 두 차례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보고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재판에서 “추행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고 범죄의 의도도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A씨 행위를 추행으로 인정하면서도 심신미약·항거불능을 이용해 범행했을 뿐 강제로 추행한 것은 아니라며 준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여러 사정에 비춰 보면 회식을 주재한 상급자로서 술에 취한 하급자를 부축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며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검찰이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상고를 기각했다.la총영사관 국정원 la총영사관 국정원 준강제추행 혐의 하급자 추행

2023-07-13

'LA총영사관 성추행' 국정원 전 간부 무죄

LA총영사관 근무 중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 전직 간부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강희석 부장판사)는 7일(한국시간) 전 국정원 간부 A씨의 준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에 비춰 보면 회식을 주재한 상급자로서 술에 취한 하급자를 부축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지난 2020년 6월 LA총영사관에서 부총영사로 근무하던 중 회식 후 총영사관 건물 사무실에서 계약직 직원 B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3월 1심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CCTV 영상을 통해 범행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추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강제추행죄가 아닌 준강제추행죄를 적용했다.   이와 관련 A씨 측은 “재판부가 1심에서도 강제추행죄가 아닌 준강제추행죄로 판단한 뒤, 2심은 최종 무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외교부는 2020년 7월 현지 경찰에 고소당한 A씨를 한국으로 송환했다. 이후 피해자 B씨는 A씨를 한국 경찰에도 고소했다.   김형재 기자성추행 la총영사관 la총영사관 국정원 la총영사관 근무 국정원 간부

2023-04-07

[분수대] 음모론

음모론은 매혹적일 때가 많다. 사건의 원인·배경이 분명하지 않을 때, 배후에 ‘권력 또는 비밀단체’가 있다고 손짓해주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처음 접하면 겉으로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속으로는 ‘혹시 또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9·11테러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거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이 세트장에서 연출됐다는 주장을 듣는다면 처음에는 누구나 귀가 솔깃해진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특정 지역의 인종을 몰살시키기 위해 고의로 에이즈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런 음모론은 보통 개연성에 근거해 가정과 비약이 덧대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배후와 목적이 있을 거라고 믿는 인간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건의 배후로 정적을 지목할 때 음모론은 진영논리에 복무한다. 세월호 참사 때 일부 진보단체를 중심으로 퍼졌던 ‘인신공양설’, 천안함 피격 당시 퍼진 ‘좌초설’ ‘잠수함 충돌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와 맞물려 결국 정치를 종교화하는 데 일조했다. 진실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음모론이 “세상의 일을 자세히 알려고 할 때 그걸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들이대는 지적인 욕설”(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 이라고 비판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음모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진실이 굳건해질 때도 있다. 천안함은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법원 등으로부터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공인받았다.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같은 경우 처음에는 ‘정치공작 음모론’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2009~2012년 조직적인 여론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케이스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헛되지는 않다는 방증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일 ‘이태원참사는 마약과의 전쟁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 야당 의원을 향해 “직업적인 음모론자. 정치 장사를 한다”고 비판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여당에서조차 “품격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장관이 음모론을 좀더 진지하게 대하길 바란다. 그게 음모론인지 진실인지 판단하는 건 한 장관이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한영익 / 한국 정치에디터분수대 음모론 정치공작 음모론 국정원 여론조작 천안함 피격

2022-11-09

이병기 전 국정원장 긴급체포…'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혐의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병기(사진) 전 국정원장이 14일(한국시간) 새벽 긴급체포됐다. 1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석조 부장검사) 검찰 관계자는 "조사 과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전 원장을 긴급체포했다"며 "향후 체포 시한 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앞서 검찰은 13일 이 전 원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국정원장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경위를 조사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2014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정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어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검찰은 남재준 전 원장 시절 월 5000만원이던 상납 액수가 이 전 원장을 거치며 월 1억원을 불어난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 정권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40억원을 박 전 대통령 측에 상납해 국고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소환된 남재준·이병호 전 원장은 특수활동비 상납 경위에 대해 당시 청와대 측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병기 전 원장 역시 앞서 두 전 원장과 비슷한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광수 기자

2017-11-13

[단독] 국정원, 영장·허가 한 번도 없이 해킹SW 사용

[앵커] 국정원 감청 의혹 사건 소식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국정원은 그동안 RCS, 즉 원격 감청 프로그램을 구매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국인은 없었다, 국가 안보 차원이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그런데 JTBC 취재 결과 또 한 가지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국정원이 RCS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수차례 보도해드린 것처럼 RCS는 메일과 전화 통화 내용, 문자메시지 등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이호진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JTBC 뉴스룸' 무료 시청하기 [기자] 국정원은 "감청프로그램 RCS를 사용할 때 법원 영장과 대통령 허가는 필요 없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RCS의 법원 감청 영장과 대통령 허가 현황을 요구하자, 이렇게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정원은 RCS 프로그램을 200여 차례 이상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4개월마다 대통령에게 감청 허가를 받는다고 밝혀왔지만, 사실상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은 셈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내국인을 감청할 경우 고등법원 수석부장 판사의 영장을 받아야 하고,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외국인의 경우 대통령의 허가를 받게 돼 있습니다. 국정원은 RCS가 프로그램이어서 감청 설비에 해당하지 않아 영장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RCS는 휴대전화 통화 녹음은 물론, 문자메시지 등을 들여다볼 수 있어 실질적인 감청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웅/변호사 : 남의 사사로운 정보교환을 몰래 받아봤다는 것이어서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거나 대통령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이게 감청이 아니다, 이거는 법에 대한 인식 수준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요.] 국정원이 감청 관련해 어떤 법적 견제와 감시도 받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프로그램 사용처에 대한 의혹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JTBC 뉴스룸' 무료 시청하기

2015-08-11

[단독] 국정원 거래 업체에서 마티즈 폐차 의뢰…왜?

[JTBC뉴스룸 손석희 앵커] 지금부터는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 씨의 마티즈 승용차 얘기를 다시 꺼내보겠습니다. 꺼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임씨 승용차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불거졌었지요. 이후에도 '유족이 왜 그리 차를 서둘러 폐차했느냐'라는 의문은 가시질 않았는데요. 다른 내용이 발견됐습니다. JTBC 취재팀은 추가 취재를 통해 마티즈 승용차가 폐차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 결과 마티즈 승용차 폐차 의뢰를 한 건 임씨 유족이 아니라 서울 강남의 한 타이어 업체 사장이었는데, 이 타이어 업체는 국정원과 거래를 해오던 업체였습니다. 게다가 폐차를 의뢰한 시점도 임씨가 사망한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져왔던 것과 모두 다른 내용들입니다. 박소연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JTBC 뉴스룸' 무료 시청하기 [기자] 경기도 화성의 폐차장입니다. 숨진 국정원 직원 임모 씨의 마티즈 차량이 이곳에서 폐차됐습니다. 임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용인의 야산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폐차장에 폐차를 의뢰한 사람은 서울의 한 타이어 업체였습니다. 이 업체 대표 송모 씨의 휴대전화로 폐차 의뢰가 온 건 임씨가 숨진 다음날인 19일. 지금껏 임 씨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인 22일 폐차가 의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숨진 다음날 차량은 폐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송모 씨/타이어 업체 관계자 : 일요일(19일)날 전화가 저녁에 왔었어. 폐차를 빨리해달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내가 알아보겠다.] 송씨는 폐차 의뢰를 받곤 해 별 생각 없이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해당 차량을 인도할 때 의뢰한 사람이 나오는데 이때는 차만 있고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티즈 견인 기사 : 서류는 차 안 서랍에 있고. 차 키는 타이어 밑에 감춰놨으니 사람이 없으니 가져가쇼 그러더라고요.] 송씨는 19일부터 폐차할 곳을 찾다가 22일에야 폐차했습니다. 송 씨는 마티즈가 숨진 임씨의 차량인 줄 모르다 취재팀을 만나서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폐차를 의뢰한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 남성은 그제서야 임 씨의 둘째 매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송모 씨/타이어 업체 관계자 : 왜 폐차해달라고 물어봤더니 내가 (임씨) 매부다 그러더라고. 진짜 매부다 그랬어요.] 그런데 폐차 의뢰가 된 송 씨의 업체는 과거 국정원에 타이어를 납품하던 곳이었습니다. [송모 씨/타이어 업체 관계자 : (국정원에) 타이어 납품을 한 십년 했어. 입찰을 받아서 하는 거니까.] 임 씨 사인도 명확하지 않던 사망 다음날 서둘러 폐차를 의뢰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 국정원 거래 업체에 폐차를 맡겼던 이유에 대해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JTBC 뉴스룸' 무료 시청하기

2015-07-30

안드로이드폰 문자만 받아도 해킹 위험

대부분의 안드로이드폰이 비디오 파일이 첨부된 텍스트 메시지만 받아도 해킹 당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8일 IT 전문매체 CNET에 따르면 전세계 안드로이드 기기의 95%인 약 9억5000만 대가 이 같은 취약점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모바일 보안업체 짐퍼리엄(Zimperium)이 처음 발견한 이 문제는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비디오 등 멀티미디어 파일을 재생할 때 쓰이는 내장(built-in) 도구인 '스테이지프라이트(Stagefright)'의 취약점 때문이다. 짐퍼리엄 측에 따르면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다른 악성 코드와 달리 이 취약점은 이용자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메시지를 수신하기만 해도 해킹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해킹의 악성 코드는 이용자가 첨부된 파일을 열거나 링크를 클릭해야 감염되거나 작동되지만 스테이지프라이트의 결함으로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은 잠자는 동안에도 해킹을 당할 수 있고 그 흔적도 말끔히 지울 수 있기 때문에 해킹을 당한 사실도 모를 수 있다"고 짐퍼리엄 측은 설명했다. 해킹을 시도하는 사람이 전화번호만 알면 악성 코드가 포함된 비디오 파일을 전송한 후 상대방이 열어 보지 않아도 상대방 기기에 있는 모든 정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이 취약점은 안드로이드 2.2 이후 버전에서 발견됐으며 특히 젤리빈(Jelly Bean) 이전 버전을 쓰는 이용자들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짐퍼리엄 측은 지난 4월 이 문제가 확인된 후 안드로이드 체제 제작사인 구글이 단말기 제조업체들에게 패치를 배포했지만 20~50%의 기기에만 패치가 적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절반 이상이 계속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통제하는 폐쇄형 운영체제인 아이폰의 경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일괄적으로 배포하는 게 쉽지만 개방형 체제인 안드로이드는 최신 소프트웨어를 배포해도 일괄 업데이트가 어렵기 때문. 구글이 업데이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단말기 제조업체에 제공하지만 제조사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를 수정하며 통신사들도 조금씩 손을 대기 때문에 일괄적인 업데이트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이유로 보안업체 'F-Secure'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동안 보고된 모바일 악성코드의 99%는 안드로이드 기기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짐퍼리엄은 "아직 해커들이 이 취약점을 이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공격을 감행할 위험은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한편 짐퍼리엄은 오는 8월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보안 관련 컨퍼런스인 블랙 햇(Black Hat)에서 이번에 발견한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com

2015-07-28

국정원, 도·감청 프로그램 구입…기술적으로 모든 PC·스마트폰 감시 가능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보안업체에서 구글 G메일과 스마트폰 등을 도.감청하는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일보는 10일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보안전문가와 함께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에서 유출된 서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육군 5163부대'가 2012년부터 올해까지 이탈리아 보안업체에 총 68만6400유로(약 8억원)를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5163부대는 국정원이 대외적으로 사용하는 위장 명칭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문서에 따르면 5163부대는 2012년 1월 5일 처음 RCS(Remote Control System)라는 인터넷 도.감청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그 대가로 27만3000유로(약 3억원)를 해킹팀에 지급했다"며 "이후 몇 개월 단위로 꾸준히 업그레이드 등의 명목으로 계약이 이어져 올해 1월까지 송금됐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는 "RCS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도.감청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그동안 보안이 철저해 거의 뚫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던 G메일과 아이폰뿐 아니라 기기를 통해 접속한 인터넷 이용기록, 페이스북 등 사실상 거의 모든 내용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국정원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도.감청 프로그램 구입은 사이버 보안사업의 일환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앙정보국(CIA) 등 선진국 정보기관들은 사이버테러집단 등의 해킹기법을 분석하기 위해 관련 프로그램을 구입해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해왔다는 것이다. 한편 인터넷 매체 뷰즈앤뉴스는 당시 국정원이 해당 프로그램에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해킹하는 기능도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2015-07-13

[J네트워크] 평통위원이 국정원 요원인가

고(故)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00년 9월, 평통 뉴욕협의회의 한 간부는 미국을 방문한 DJ를 맞이하면서 깜짝쇼를 연출했다. DJ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넙죽넙죽 큰절을 올렸다. 국가원수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가 권력지향의 과잉 충성인가. 그의 '넙죽 절'은 한동안 한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에 앞선 같은 해 6월 김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김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1년 5월 뉴욕 평통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기원 남북통일 기금 모금 골프대회'를 열었다. 해마다 갖가지 명분의 골프대회가 열린다. 하지만 특정 국가 지도자의 방문을 기원하는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일부 한인들은 이 대회는 권력 해바라기 성향의 '정치적 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평통은 전두환 정권 시절 평화통일에 대한 정책을 건의하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출범했다. 그 출생의 한계 때문인지 그럴 듯한 존재 이유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한때는 집권세력을 옹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역협의회장 자리가 큰 감투라도 되는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 정권 실세와 은밀한 뒷거래를 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재외동포 참정권이 생기면서 어떤 평통위원은 비례대표 금배지를 달고 금의환향하는 꿈까지 꾸고 있단다. 그래서 한인들이 평통을 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냉소적이었다. 제17기 평통이 다시 구설에 오르고 있다. 평통 사무처가 올해부터 자문위원 이름 비공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프라이버시 보호 그것이 비공개 이유였다.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한 것은 2013년 3월. 이 법은 본인의 양해 없이 자연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자문위원 이름까지 비밀에 부치는 것은 융통성 없는 법 운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평통의 최고사령탑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비밀주의였다. 박 대통령은 인사 때면 '철통보안'으로 입각 후보자의 이름까지 보호했다. 지나친 보안은 부실한 자격 검증을 불렀다. 그 결과 국무총리,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다. 금번 한국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은 메르스 발생 초기에는 환자 발생 병원까지 보호하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 오죽하면 외신까지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 대응법이 국제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을까. 평통 자문위원이 국정원 비밀요원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름을 공개하면 북한 김정은이 포섭 대상 리스트에 올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명분이 아리송한 비공개 사유는 이런저런 억측만 불러 일으키고 있다. "평통 사무처가 자문위원 자격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친정부 인사들을 자문위원으로 골라 놓고 예상되는 시비를 막기 위해 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 생활에 살아가기 바쁜 대다수 한인들은 사실 누가 평통위원이 되든 관심이 없다. 일부는 평통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평통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그런데도 '자문위원 이름 비공개 방침'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가릴 것은 가리라는 조언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감추느라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하지 말라.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2015-07-07

[김창욱 칼럼] 평통이 국정원인가?

고(故)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00년 9월 평통 뉴욕협의회의 한 간부는 미국을 방문한 DJ를 맞이하면서 깜짝쇼를 연출했다. DJ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넙죽넙죽 큰절을 올렸다. 국가원수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가 권력지향의 과잉 충성인가. 그의 '넙죽 절'은 한동안 한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에 앞선 같은 해 6월 김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다. 당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01년 5월 뉴욕 평통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기원 남북통일 기금 모금 골프대회'를 열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갖가지 명분을 내건 골프대회가 열린다. 하지만 특정 국가 지도자의 방문을 기원하는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일부 한인들은 이 대회는 권력 해바라기 성향의 '정치적 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평통은 전두환 정권 시절 평화통일에 대한 정책을 건의하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출범했다. 그 출생의 한계 때문인가 그럴 듯한 존재 이유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한때는 집권세력을 옹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역협의회장 자리가 큰 감투라도 되는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 정권 실세와 은밀한 뒷거래를 했다는 소문도 들리곤 했다. 재외동포 참정권이 생기면서 어떤 평통위원은 비례대표 금뱃지를 달고 금의환양하는 꿈까지 꾸고 있단다. 그래서 동포들이 평통을 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냉소적이었다. 7월 출범하는 제17기 평통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새로 선정된 뉴욕협의회 자문위원은 총 171명. 하지만 이들의 얼굴은 비밀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평통 사무처가 올해부터 자문위원 이름 비공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프라이버시 보호 그것이 비공개 이유였다. 이에 따라 뉴욕총영사관은 최근 자문위원 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한 것은 2013년 3월. 이 법은 본인의 양해 없이 자연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자문위원 이름까지 비밀에 부치는 것은 융통성 없는 법 운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전에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으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통의 최고사령탑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비밀주의였다. 박 대통령은 인사 때면 '철통보안'으로 입각 후보자의 이름까지 보호했다. 지나친 보안은 '부실한 자격 검증'을 불렀다. 그 결과 국무총리.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다. 금번 한국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은 메르스 발생 초기에는 환자 발생 병원까지 보호하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는 국민의 불신과 불안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외신까지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 대응법이 국제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을까. 그런데 이제 평통위원 명단까지 비공개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평통 자문위원이 국정원 비밀요원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름을 공개하면 북한 김정은이 포섭 대상 리스트에 올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명분이 아리송한 비공개 사유는 이런저런 억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과거 일부 평통 지역협의회는 자문위원을 선정하면서 영.호남 편가르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꼴불견 싸움을 기억하는 한인들은 "평통 사무처가 자문위원 자격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친정부 인사들을 자문위원으로 골라 놓고 예상되는 시비를 막기 위해 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평통 사무처는 오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날의 자격 시비는 '평통위원 경력'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일부 인사들에 국한된 분쟁이었기 때문이다. 고달픈 이민 생활에 찌든 대다수의 동포들은 누가 평통위원이 되든 관심이 없다. 일부는 평통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평통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도 '자문위원 이름 비공개 방침'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가릴 것은 가리라는 조언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민 보따리를 싼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메르스 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모국 정부가 안쓰럽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려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우지 말라.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2015-07-01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장' 제출…검찰은 '머뭇머뭇'

[앵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오늘(15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원 전 원장은 항소 이유서에서 국정원법 유죄 판단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국정원법과 달리 선거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가 났음에도 검찰은 아직까지 항소 여부조차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요. 먼저 조택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1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에 관여하도록 지시한 혐의는 인정됐지만, 선거 운동에 개입한 부분은 무죄로 판단한 겁니다. 선고 직후 원 전 원장은 정치에 관여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고 오늘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원세훈/전 국정원장(지난 11일) : 무죄로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고 있고,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원 전 원장 측은 항소장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으로, 원 전 원장이 지시해 공모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검찰은 항소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항소 기한인 오는 18일 전에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만 밝혔습니다. 참여연대 등 18개 시민단체는 오늘 성명을 내고 원 전 원장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촉구했습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15

법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선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는 11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 전 원장에게 적용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댓글과 트윗글을 올린 것에 대해 “(개별)사안과 무관하게 국정원법을 어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행동이 원 전 원장 지시로 이뤄졌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취임 후 밝힌 내용을 정리해 올린 ‘원장님 지시 강조말씀’은 업무상 지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이)심리전단 활동에 대해 업무보고만 받아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공범관계는 충분히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선거법 위반 여부와 관련,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18대 대선에 국정원 직원들이 개입하도록 직접 지시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18대 대선을 1주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민주당측이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여)씨의 오피스텔 앞에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비방하는 인터넷 댓글을 올리는 선거개입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서울경찰청은 대선 이틀 전인 12월16일 “김씨 컴퓨터에서 대선 관련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 경찰은 지난해 4월 “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선거개입을 한 혐의가 포착됐다”며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4월18일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수사팀은 국정원 직원들이 다수의 정치관련 댓글을 올린 사실을 포착했지만 이들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과 원 전 원장을 구속할 지 여부를 놓고 수뇌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원 전 원장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돼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했지만, 이후 윤석렬 팀장이 트윗글 관련 보충수사를 위해 상부 재가를 받지 않고 국정원 직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가 직무배제 명령을 받는 등 갈등은 재연됐다. 한편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사관과 별개로 건설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항소심에서 선고받은 1년2개월의 형기를 모두 마치고 지난 9일 출소했다. 전영선·노진호 기자 azul@joongang.co.kr

2014-09-11

원세훈 만기 출소…11일 국정원 대선개입 1심 선고

원세훈(63) 전 국정원장이 9일 새벽(현지시간) 서울구치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개인비리인 알선수재 혐의로 선고받는 징역 1년2월 복역을 모두 마치고서다. 9일 새벽 0시 15분경 쥐색 양복 차림에 노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구치소를 나온 원 전 원장은 구치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지인들과 악수하며 짧은 인사를 주고 받았다. 원 전 원장은 출소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법원 판단이 남은 만큼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말을 아꼈다. 앞서 원 전 원장은 공사 수주 인·허가 청탁 대가로 건설업자로부터 1억2000만원과 미화 4만달러(한화 4200여만원 상당) 등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복역 중 원 전 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두 차례 보석신청을 했지만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모두 기각되기도 했다. 1심에서는 징역 2년에 추징금 1억6275만원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징역1년 2월에 추징금 1억 84만원으로 감형됐다. 원 전 원장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한편 원 전 원장의 ‘국정원 대선개입’ 혐의에 대한 재판도 오는 11일 오후 2시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구속상태로 재판에 참여해온 원 전 원장이 만기 출소함에 따라 이날 선고 공판은 불구속 상태로 원 전 원장이 출석해 진행될 예정이다. 이날 선고 결과에 따라 원 전 원장은 출소 이틀 만에 재수감될 가능성도 있다. 원 전 원장은 개인 비리 혐의와 별도로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요원들을 시켜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비방하는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찬반 클릭을 하게 하고, 트위터를 이용해 여론을 조성하는 등 사이버 여론을 조작해 대선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지난해 6월 불구속기소됐다. 지난 7월 15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활동은) 국가 정보기관이 일반 국민을 가장해 인위적으로 여론을 조성한 반헌법적인 행태”라며 “이는 전적으로 원 전 원장 등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최후 진술을 통해 “나이가 60세가 넘어 인터넷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트위터는 써본 적도 없다”며 “심리전단 직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2014-09-09

'간첩 누명' 무죄 판결 후 4억원 배상판결 미주 한인 홍윤희씨 항소

"60년 넘게 간첩누명을 쓰고 살았는데 4억 원이라니요…." 한국전 당시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다 지난해 무죄 판결 후 최근 4억 원의 배상판결을 받아 화제가 됐던 홍윤희(83)씨〈본지 6월25일자 A-1면>가 항소를 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홍씨는 1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돈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제공한 첩보로 인해 국가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했다고 몇 십 억 원을 배상해준 적도 있는데 4억 원이 무슨 말입니까? 저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북한군을 탈출해 첩보를 알려준 사람입니다." 그는 100억 원 이상의 배상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돈을 받게 되면 사회 공헌에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그 돈을 받는다고 무덤으로 가져가겠습니까? 이미 사회 공헌 계획도 세워 놓았습니다." 홍씨는 지난해 2월, 63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아내기 전까지 가족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지 못했었다고 힘겨웠던 삶을 털어놨다. "유신정권으로부터 도망쳐 미국에 살면서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제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죠. 무죄판결을 받고서야 모든 걸 고백했습니다. 타의에 의해 이민생활을 하면서 자녀가 한국말을 못하고 한국문화를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홍씨는 한국 프로야구 탄생의 숨은 주역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던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접하고 한국에도 국민이 여가를 즐길 프로 스포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975년 한국으로 돌아가 야구인들을 설득, 한국프로야구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정부의 반대와 대한야구협회의 비협조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홍씨가 만들어 놓은 '한국성인야구재건안(한국직업야구계획)'을 토대로 1982년 마침내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수 있었다. "빨갱이로 몰려서 징역을 살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건너왔지만 항상 조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프로야구 준비 작업도 그래서 시작했고요. 프로야구는 이미 생겼으니 다른 분야에 배상금을 사용할 생각입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한국에서 머물 예정이라는 홍씨는 앞으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와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적인 공을 세운 사람을 반역죄로 모는 이런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한국에서 뜻있는 분들과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신승우 기자

2014-07-01

'북한 총공격' 알리고도 '간첩 옥살이'…억울한 한인

한국전 당시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무죄판결을 받은 가주 출신의 홍윤희(83.사진)씨가 이번에는 4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판사 이인규)는 지난 24일(한국시간) "국가는 홍씨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군인들이 홍씨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허위로 작성된 신문조서 등을 근거로 실형을 선고했다"며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홍씨가 노력한 기간, 국가의 불법행위 내용 등을 고려했다"고 공개했다. 1950년 7월, 당시 육군간부 후보생으로 입교하기 위해 육군본부에 대기중이던 홍씨(당시 20세)는 한강철교가 폭파되고 인민군이 서울에 침입하면서 고립됐다. 신당동 친구 집에 숨어 있던 그는 국군이란 신분을 숨기고 북한 의용군에 위장 입대했다. 위생병으로 대구까지 내려간 홍씨는 그해 8월 소속 인민군 부대가 부산 인근까지 남하하는 과정에서 '인민군 9월 총공격 지시'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8월31일, 목숨을 걸고 탈출해 국군에 귀순하면서 이 정보를 넘겼다. 홍씨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이 정보를 브리핑까지 했으나 열흘 뒤 그는 간첩 혐의로 연행됐다. 그리고 온갖 고문 끝에 기소돼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두 차례 감형으로 55년 출소했다. 석방된 그는 정부의 감시에 못 이겨 1973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수퍼마켓과 식당 등을 운영하며 이민자의 삶을 살던 그는 1989년 일본 사학자 고지마의 '조선전쟁'을 보게 된 계기로 본격적인 자료조사에 나섰고 지난 2012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전쟁사 자료인 '로이 애플먼 컬렉션'을 살펴보게 됐다. 이 컬렉션에서 1950년 당시 자신이 인민군 9월 총공격 계획을 제보했고 미군이 이를 중요 정보로 취급했다는 정황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다. 홍씨는 이 메모를 근거로 재심을 신청했고 결국 서울중앙지법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 63년 만인 지난해 2월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홍씨는 재판 결과에 대해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라를 도왔다는 진실을 입증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결국 한국전 발발 64주년을 앞두고 발표된 이번 배상판결로 인해 그는 조국을 배신한 '간첩'에서 '목숨을 걸고 중요한 첩보를 제공한 애국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신승우 기자

2014-06-24

[진맥 세상] '갈등 공화국'에 역이민 하려면

십 수년 전 여행한 터키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거의 잊혀졌던 '터키'가 며칠 전 뉴스를 타고 귀에 들어왔다. OECD 27개국 가운데 사회갈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터키(1.27)라는 내용이었다. 내 느낌이 틀리진 않았구나. 그렇다 치고. 이 기사의 요지는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2위(0.72)란 것이다. 터키는 극심한 종교갈등 때문이라는데 그런 특수 사정이 없는 한국이 왜? 미국은 8위(0.47)로 비교적 높은 축에 속했다. 일본(0.41)은 중간쯤이고 스웨덴(0.28)·핀란드(0.26)·덴마크(0.25)가 가장 낮은 그룹들이다. 평화로운 나라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소득불균형 지수, 민주주의 수준,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 등 3개 요소를 비교해 지수를 산출했다. 이렇게 높은 갈등지수 때문에 한국은 연간 최대 246조원의 손실을 보고 있단다. 지수를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해도 1인당 GDP가 7~21% 상승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밀양 송전탑 설치 논란이 단적인 예다. 6년 전 송전선로 승인이 났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여태 공사를 못하고 있다. 공사 강행과 중단이 반복됐지만 지자체도, 중앙정부도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식의 갈등이 도처에 만연돼도 정치와 행정이 속수무책인 것이 한국의 현주소다. 고려대 박길성 교수는 "한국사회는 갈등의 전람회장이라 할 정도로 일상화 되어 있다. 불쏘시개를 던지기만 하면 폭발할 만큼 위험한 사회"라고 했다. 한국사회에 갈등이 많고 잘 풀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멀리서는 사색당파 전통에서부터 근대의 친일파 청산 실패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전쟁으로 남북간 증오심이 생겼고, 그에 따른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립도 갈등의 씨앗이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주인공 다툼도 마찬가지다. 갈등은 어디나 있다. 그걸 조절하고 해소하고자 정치라는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갈등을 해소하기 보다 증폭·생산시키는 역할을 더 많이 해왔다. 갈등이 풀리지 않는 사회는 피곤하다.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는 '소진증후군'이라는 신종 단어가 생겨났다.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쌓여 기력이 고갈되고 의욕을 잃는 증상이다. 높은 사회갈등지수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한국을 포함해 선진 6개국 국민의 좌우 이념 성향을 조사했다. 유럽쪽은 좌익 성향이 높았고, 일본은 우익 성향이 높았다. 한국은 좌(34.8%), 우(33.7%)로 거의 똑같이 나왔다. 음양으로 치자면 기가 막힌 균형이다. 그러나 음과 양이 공존하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립·의존·소장(消長:자기를 소비해 상대를 키워줌)·전화(轉化:궁극에서 상대방으로 변화함)의 4가지 상호관계가 있어야 한다. 대립은 갈등의 요인이지만 의존·소장·전화는 공생의 원리다. 사회갈등지수가 높다는 것은 대립이 지배적이고 공생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뜻한다. 죽어도 내 이익을 지키고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심리가 팽배한 곳에서 갈등 해소는 요원하다. 갈등을 풀어주어야 할 정치가 갈등을 양육하고 그걸 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역할을 한다면 더욱 절망적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계기로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한국 정치 생존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으로 역이민을 고려하는 이들이 많다. 온갖 사회적 갈등에 초연할 수 있는 높은 영성을 쌓았거나, 아니면 갈등의 정글에 뛰어들어 승리를 쟁취하는 데 전율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역이민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

2013-08-28

[진맥 세상] '종북'과 '전라도'라는 불패 무기

한국에는 2만5000여 명의 탈북동포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생존적 이유로 '반북적' 태도를 취하기 십상이지만 남북의 이질적 문화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이 탈북동포인 조명철씨를 19대 비례대표 의원으로 입성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탈북동포 출신 1호 국회의원'이 나온 것이다. 북한에서 정무원 건설부장(건설부 장관)의 아들로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 교수를 지낸 엘리트 출신인 조씨가 한국에서도 파워그룹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차별과 편견에 고통받는 현실을 감안, 탈북동포 채용 할당제 등을 입안하기도 했다.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잘 아는 지식인으로서 앞으로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할 일이 많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조사를 지켜보며 그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수사과정에서 상부의 수사축소 압력을 폭로했던 인물이다. 조 의원은 권 과장에게 "증인은 광주의 경찰입니까, 대한민국의 경찰관입니까"라고 물었다. 누가 보아도 지역감정을 조장할 의도가 분명한 불필요한 질문을 전국민이 보고 듣고 있는 가운데 내뱉은 것이다. 광주 출신인 권 과장은 사법고시와 변호사를 거쳐 여성 최초로 경정에 특채된 엘리트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당당하고 소신에 찬 답변으로 국정원 대선 개입을 희석시키려는 새누리당을 당혹케 한 인물이다. 권 과장은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나"라는 질의에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이 과정(중간 수사 발표)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판단"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선 증언에서 수사 축소를 지시한 적이 없고 격려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던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말에 대해서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요원들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했다는 부분에 대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권 과장은 "당사자와 통화했고, 통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감금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명철 의원은 이런 와중에 권 과장에게 '호남 출신'이란 올가미를 씌우는 발언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에선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먼저 '광주의 딸'이란 말을 사용했다며 반박했지만 궁색하다. 한국 정치에서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할 '지역감정 이용법'부터 배운 것인가. 남북교류를 위해 그의 독특한 이력을 활용해야 마땅할 판에 혈세로 월급을 받으며 지역감정을 자극해 남남갈등을 조장한 꼴이다. 어떤 네티즌은 조 의원이 지역감정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행태를 '간첩 행위'에 빗대기도 했다. 조 의원의 발언은 '종북'과 '전라도'란 불패의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는 한국 기성 수구세력의 저열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만명이 국정원 개혁 시위를 벌여도 나몰라라 하고 남북평화대행진에 물대포를 쏘아대는 것도 '전라도 종북 떼거리'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인가. 실제로 한국의 인터넷 매체에는 '종북'과 '전라도'를 이용해 적군·아군 편가르기 행태가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응당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할 북한 출신 의원이 정의감 넘치는 여자 경찰간부를 지역감정을 이용해 희생양으로 만드는 희한한 풍경이 지금 서울에서 연출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판을 치면 정의는 죽어간다. 용감한 권은희에 부끄럽고 간사한 조명철에 개탄스럽다.

201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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