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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고아 한인, 24년간 모국 아동 후원

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한인 여성이 오랜 시간 모국의 아동들을 후원해온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이러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경상남도는 해당 여성을 명예도민으로 선정했다.     경상남도는 린디 순 커리(이정순.1953년생)씨를 경상남도 명예도민으로 선정하고 명예도민증을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상남도 측 설명에 따르면, 커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고아로 발견돼 ‘진해 희망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지난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지냈다. 이후 지난 1957년 3월 홀트 입양기관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하프연주자와 한국의 전래동화를 전파하는 스토리텔러로 성장했다. 그는 고국을 잊지 않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국 전통 민담을 통해 한국을 알려왔다.     커리씨는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지난 1995년 서울 동부사회복지관에서 아기를 입양해 가정을 이뤘다.     그는 지난 2000년 10월 우연한 기회로 한국에 방문하면서 자신이 지냈던 진해 희망의 집을 찾았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모국의 아이들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커리씨는 미국의 가족들과 분기별로 진해 희망의 집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선물과 후원금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지난 2002년 미국에서 비영리단체 ‘브리지 오브 호프(Bridge of Hope)’를 설립했다. 커리씨는 단체를 통해 진해 희망의 집 아이들을 위한 후원 활동을 계속했으며 지난 2018년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커리씨는 현금 후원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돕기 위한 피아노, 첼로 등 악기 등도 지원했다.     또 그는 매년 2~3명의 한국 입양 아동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국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지금까지 커리씨가 미국에 초청한 아동 수는 38명에 이른다.     이러한 공로를 높이 산 사회복지법인 경신재단과 경상남도사회복지협의회의 추천으로 커리씨는 경상남도 명예도민이 되었다.     커리씨는 “가슴속에 묻어 둔 고국의 경상남도 명예도민이 되어 감격스럽다”며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경상남도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경상남도 측은 경상남도 LA사무소장을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인 커리씨에게 명예도민증을 전달했다.     김경준 기자 [email protected]전쟁 고아 시간 모국 경상남도 명예도민 한국전쟁 당시

2024-11-18

[삶과 믿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이티에서 고아 구호 사역을 16년째 하는 우리 단체의 표어는 ‘신나는 심부름’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도 한다. 고아들의 식량을 공급하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분명 신나는 일이지만, 이 심부름은 끝이 없다. 먹는 일은 멈출 수 없고, 배우는 일도 중단할 수가 없다. 나라가 고아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고아들을 돕는 일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할 수 없다.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16년을 먹이고 가르쳤으면 뭔가 이룬 것이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 그저 살아왔고, 아이들이 컸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어른이 되었고, 어떤 아이는 직업을 가지고 우리를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잊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살길을 못 찾아 고아원으로 되돌아간 아이도 있고, 고아원을 나갔다가 미혼모가 되어 다시 돌아온 아이들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만나 추억을 더듬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고아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결과를 받아 들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커다란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아이티에서는 여전히 갱단의 횡포가 수그러들지 않고, 유엔 경찰이 들어와 치안을 돕고 있는데도 지난 몇 주간 갱단 때문에 또 많은 희생이 발생하기도 했다. 안전 문제로 코로나 이후 고아원을 직접 방문한 것이 거의 4년쯤 되어간다. 대신 갱단이 좀 조용할 때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불러 선교센터에서 도시락을 나누고, 건강검진도 하며 만난다. 그렇게 몇 년 혹은 몇 개월 만에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눈에 띄게 자란 것을 보게 된다. 변변찮은 식사지만, 넉넉하지 않아 굶기도 하고 아껴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자란다. 학교에 가는 날만큼 못 가는 날도 많지만, 아이들은 글씨를 읽고, 이름을 쓰고, 숫자를 세며 자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물론 이 일은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 같아서 끝이 없기에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가난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하고, 언제나 모자라는 식량 때문에 애를 태우기도 한다. 하지만 늘 맑은 눈과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만나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 아이들이 잘 자라서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계속 도울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사랑은 넘치고 흘러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죄인을 구원하셨다. 오직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절대로 맞교환의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아들과 죄인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고, 아들을 내어주고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게 했다. 이렇듯 사랑은 머뭇거리지 않고, 조건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이 넘친다고 덜어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은 낭비하는 것이다. 낭비처럼 여겨지더라도 멈추지 않고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고, 이렇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서 아이들이 꿈을 꾸며 자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밑 빠진 독에서 콩나물이 자라듯 아이들이 자라 세상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고아원 아이들 우리 사랑 고아 구호

2024-08-08

[삶과 믿음] 무관심의 비극, 무관심의 죄

1994년 전 세계는 르완다 대학살을 마주했다. 불과 100일 동안 80만 명이 넘는 투치족이 학살을 당한 사건은, 당시 학살을 멈추게 할 의지가 없었던 전 세계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끄럽게 하고 있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세계 여러 나라가 개입해서 멈추게 할 수 있었던 학살 사건을 두고 지금까지도 인류는 르완다에 빚을 졌다는 탄식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이티는 어떨까?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는 지금 갱단 때문에 지옥과 같은 형편이다. 갱들이 선량한 시민의 거주지를 약탈하고 폭력을 일삼아 올해에만 58만 명이 집을 떠나 뜨거운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올해 6개월 동안 갱단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납치된 사람의 숫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전 국민 1100만 명 중 절반이 식량부족에 시달려 영양실조에 이르고 있고, 전기, 식수, 휘발유 등 기초적인 생필품의 공급 부족으로 나라 전체가 정체되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으로 여겨진다.   이런 비극의 땅이 아메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있지만, 국제 사회는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이 암살된 3년 전부터, 갱단이 폭발적으로 그 세력을 키우며 납치와 폭력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갈 때도, 선교사나 국제기구 봉사자들조차 납치를 두려워하고 갱단의 폭력을 피해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어느 나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이티에 갱단이 준동하고 온 국민이 신음하는 중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넘어가고,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국제 뉴스를 덮었다.   아이티의 비극은 무관심이다. 아이티는 아주 간간이, 그것도 감옥이 습격을 당해 수천 명의 죄수가 탈옥했다거나, 미국인 선교사들이 집단으로 납치되거나, 젊은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살해되었을 때, 다른 나라의 뉴스에 단편으로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백성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손 벌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아이티는 갱단 때문에 공항이 폐쇄되어 나라가 완전히 고립되기도 했었다. 이 비극의 땅에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 르완다의 대학살과 비교할 정도는 절대 아니라지만, 뉴욕에서 불과 네 시간이면 닿는 땅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은 혹시 먼 훗날 우리의 수치가 되지는 않을까?     모든 이들의 무관심 속에 당하는 비극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절망이다. 수렁에 빠져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응답하는 이 없는 그 좌절 속에 다들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을 때, 가족도 없는 고아들은 외롭고 두려운 세상의 비극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부족한 아이티에서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은 높은 파도를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배고픈 군중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듣곤 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은 강도 만난 이의 이웃이 된 사마리아인에 관한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는데, 아이티를 향한 우리의 무관심을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오래도록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을 하다 보니 무관심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 않은데 우리는 먼 훗날 역사 속에서, 먼 훗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항석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무관심 비극 비극 무관심 아이티 고아 르완다 대학살

2024-06-27

[우리말 바루기] ‘달이다’와 ‘다리다’

옛날엔 배나 파뿌리를 고아 감기약으로 쓰곤 했다. “엄마가 다려 주던 배즙이 생각난다” “파뿌리를 다린 물을 먹으면 감기가 어느새 낫곤 했다” 등과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위 예문처럼 배나 파뿌리를 ‘다려서’는 약으로 지을 수 없다. ‘다려(서)’와 ‘다린’은 ‘다리다’를 활용한 형태다. 그러나 ‘액체를 끓여 진하게 만들거나 약재에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다’는 뜻을 지닌 단어는 ‘다리다’가 아닌 ‘달이다’이다. 따라서 ‘다려(서)’ ‘다린’은 ‘달이다’를 활용한 ‘달여(서)’ ‘달인’으로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다리다’는 옷이나 천의 주름을 펴거나 줄을 세우기 위해 다리미로 문지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와이셔츠를 다려 입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어제 다린 블라우스가 그새 구겨졌다” 등처럼 쓸 수 있다.   ‘달이다’를 [다리다]로 발음하다 보니 표기 역시 소리 나는 대로 ‘다리다’라고 쓰기 쉽다. 그러나 ‘달이다’와 ‘다리다’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독립된 단어이므로 맥락에 따라 적절한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달이다’와 ‘다리다’가 헷갈린다면 ‘다리미’를 떠올리면 된다.  정리하자면 약은 ‘달이고’, 옷은 ‘다려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다리 고아 감기약

2024-03-18

[독자 마당] 폐허에 이룩한 기적

6·25전쟁을 생각하면 모윤숙 시인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떠오른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중략)/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1950년 6월 25일부터 1129일간 치러진 전쟁 동안 미국은 연인원 180만 명을 파병했다. 그중 전사자가 약 3만7000명, 그외 무수한 부상자와 실종자가 생겼다. 세계 각국에서 파병된 유엔군도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다.     국군은 약 12만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그리고 실종자가 발생했다.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5세 정도의 꽃다운 청춘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방방곡곡은 무너져 잿더미가 됐고 부모와 가족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전쟁 고아는 흘러 넘쳤다.     그러나 7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폐허의 땅은 완전 복구돼 도시마다 빌딩 숲을 이룬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들고 문화, 예술, 스포츠 모두 정상급에 올라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세계에 한국 제품이 수출되고 세계 어디에도 한국인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것도 국격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반토막으로 잘린 국토, 감정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국민의식을 높이고 자성해야 한다. 6·25를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말자. 언제 또 다른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한을 노리고 있다.     6·25전쟁의 아픈 기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폐허 기적 전쟁 고아 세계 각국 세계 10위권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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