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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천연두(smallpox)

한국 전쟁 전후에만 해도 어린 내가 한길을 보행할 때 가끔 천연두(smallpox)라는 전염병을 심하게 앓고 난 사람들의 얼굴에 곰보 자국이라는 흉터를 볼 수 있었다. 이 천연두라는 전염병은 그 전염성이 대단히 높은 데가 사망률이 30% 이상이 되고 심한 열과 함께 온몸에 발진이 나타나면서 가려움증 결과로 피부에 흉터를 남기는 아주 심한 전염성 고질병이다.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내 어머니도 어릴 때 천연두 예방 주사를 채 맞지 못한 상태에서 그 병이 전염되어서 고열과 발진으로 고생하시다가 다행히 피부에 과한 흉터가 없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 한 동네 살던 어머니의 사촌 동생은 천연두를 앓던 중에 고열로 이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니께서는 그가 퍽이나 사랑하고 아끼던 사촌 동생의 죽음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다.   구한말 한국 여성에게 의사가 되는 길이 열려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의 의료선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화대학 영문과 졸업한 후에 다시 세브란스 간호 양성소에 입학하여 간호 학생이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주 어려서부터 배움에 영특하셔서 캐나다 선교사가 주는 장학금으로 중국 옌칭대(연경대 후에 북경대)에서 의예과를 마친 후 토론토 대학원에 진학하여 예방의학을 전공하셨다.   그 후에도 개량식 한복을 입으시고 세상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면서 가끔 외국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도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셔서 어느 과목에나 일호를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님들이 자식을 여러 명씩 출산해서 기르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것은 출산한 아기들이 모두 잘 성장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예가 많았고 우리나라 신생아 사망률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간에서 자식 농사는 반타작 농사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아기를 밴 후 자기 뱃속에서 아홉 달 긴 시간을 키워서 세상에 내어놓은 어린 것이 주어진 그의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아야 했고, 내 어머니는 천연두 예방 주사가 항간에 이미 나와 있는데도 그 효험을 미처 알지 못한 부모들이 서둘러 예방 접종하지 못하여 심한 열병을 앓다가 숨진 사촌 동생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이 모두가 미리 예방함으로 회피할 수 있었던 것임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길 뿐만이 아니라 그 과제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으로 삼고 그의 여생을 예방의학에 헌신하기로 작정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캐나다에서 귀국한 후 어머니는 Miss Rothenburg라는 미국 간호선교사와 함께 서울에서 태화여자 사회관을 중심으로 서울을 위시하여 전국을 두루 다니시면서 부녀들의 위생 관념과 예방 교육에 온 힘을 다 기울이셨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서 어머니는 공중위생학위를 가진 한국인 최초의 전문 간호사로서 1959년 나이팅게일 기장을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통하여 받은 바가 있다. 내가 보아온 우리 어머니의 삶은 뤽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의 저서에서처럼 한마디로 말해서 목적이 이끄는 삶 자체가 아닌가 생각된다. 황진수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smallpox 천연두 천연두 예방 어머니 말씀 우리나라 어머니들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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