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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안전선을 뛰어넘어

교회 행사에 사람 한 명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만들어낸 대안이 가정으로 초청을 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오는 것이 왜 그리도 힘든 것일까? 영적인 문제로만 해석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그동안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때문에 직장에서의 회식이나 모임을 등한시 해온 것이 사실이다. 예수 믿고는 세상의 친구들 그리고 세상습관도 정리가 되어가면서 사내 회식 같은 술자리는 정말로 참석하기 괴로운 행사가 되어버렸다. 주일은 절대로 양 보할 수 없는 날로 외부의 그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게되면서 스스로 왕따가 되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진 내가 초청하는 교회 행사에 사람들이 올 리 만무하다. 인간은 유혹에도 약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생각의 기복 또한 심한 편이라 신학과 교리라는 안전선을 그어 놓고 사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어 놓은 선 안에서만 움직이다 보면 편하기도 하고 안정감도 생기지만 이웃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삶은 아니다. 그동안 교회가 그어 놓은 안전선들이 때로 성경의 권위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주일 성수라는 확고한 안전선 때문에 우리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회사 전체 야유회도 빠져서 동료의 빈축을 샀다. 주일 성수를 못하면 한주간이 괴로울 정도로 믿음이 성숙했으면 전도의 목적으로 야유회는 참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회식자리에서 상사의 술잔을 받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많은 논쟁이 있다. 진리가 없는 세상 사람들은 한잔 술에 대단한 의미를 담는다. 원래 술을 마시지 않는 예수쟁이이지만 여러분을 위해 마신다며 한잔 받아준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술을 마시다니 예수쟁이나 나나 똑같은 놈이다’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이 술 한 잔을 마신 것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의 나의 삶을 함께 버무려 비판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그어놓은 안전선을 뛰어넘을 때가 왔다. 어쩌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이유도 늘 안전선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안전선을 뛰어넘다 상처가 나고 넘어진 동료를 격려하고 치료하다 보면 싸울 여유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2010-11-16

[생활 속에서] 절망보다 더 큰 절망

계속되는 경제 위기 속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절망의 감정’일 것이다. ‘절망’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이 끊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경제 위기로 인해 증권 시장에서 갑자기 사라진 돈이 21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투자한 돈이 사람들을 배반하고 떠난 것이다. 추락하는 돈은 날개가 없다. 한국에도 경제 위기로 인해 308조원의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증발이다. 투자한 돈이 공기 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어렵게 모은 돈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국민 1인당 634만원이 없어졌다.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에 두 가지는 영원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것은 ‘재물’과 ‘면류관’이다(잠언 27:24). ‘면류관’은 권력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찾아 온 ‘재물’과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재물이나 권력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깊이 절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절망을 느끼게 되는 원인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나 권력이 사람의 손에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절망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저서에서 “사람이 절망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며, 절망하는 것 그 자체가 무서운 죄”라고 하였다. 절망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렘 17:5).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능력과 소유를 의지하고 살면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은데 오히려 저주와 절망이 찾아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절망과 좌절의 요인은 돈이나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은 엄청난 천연 자원과 탁월한 인적 자원, 최고의 선진 기술, 막강한 지적 재산 등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자원을 갖고도 미국이 절망을 경험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모여든 다양한 인종들이 건국의 아버지 청교도들과는 달리 대부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는 현재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돈이 그들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 황금만능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적인 것은 사람들은 절망할 때 절망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절망 속에서 절망이라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절망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을 때 절망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을 찾는다면 거기서 소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절망보다 더 큰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절망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절망은 새로운 것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좋은 인생의 기회이다.

2010-11-16

[사목의 향기] 축복하러 오신 예수님

낙엽 타는 내가 깊은 산중에 숨겨놓은 시심을 깨웁니다. 황금빛 들녘을 휘돌고 대나무 숲을 지나 나를 이끌고 가던 바람이 멈춘 곳은 아무도 모르는 샘 가 단풍 나무 아래입니다. 빨갛다가 벌써 떨어져 뒹구는 낙엽은 그 끝이라도 좋은 차라리 기쁨입니다. 방금 보고 온 들판의 풍요로운 결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또한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니 이 가을에 예감하는 인생의 끝이 덧없음에 근심이 아니기를 그 풍성한 축복을 생각하며 감사의 정을 북돋웁니다. 축복에 대한 감사의 본보기를 성경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성경의 나병 치유 이야기는 축복과 감사의 뜻을 잘 설명하고 있지 싶습니다. 그 치료 방법을 모르던 시절에 나병은 병의 증세가 하도 흉하여 보는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고, 그 전염성이 또한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나병은 죽을 죄를 지은 이들에게 내려지는 저주의 표지였습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의 나병환자 치유 이야기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잘 드러내고, 그 축복을 입은 이들이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의미를 잘 깨닫게 해 주지 싶습니다. 열왕기 하권 5장은 나병에 걸렸던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 예언자의 조언대로 요르단 강물에 내려가 그저 일곱 번 몸을 씻고 나서 나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전해줍니다. 루카 복음 17장의 열명의 나병환자 치유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단순하게 “물로 씻으라”는 엘리사의 조언이나 그저 “사제에게 보이라”는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은 실망스러울 만큼 단순한 처방이었습니다. 그 자체는 도무지 효과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을 펼치신 것 외에 다른 어떤 이유가 또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축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를 참 신앙으로 인도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하고 물으십니다. 열왕기 하권 5장에서 나아만이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했던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거론된 “감사와 찬양, 그리고 선물 증정”은 단순히 예의 바른 행동하기 정도가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만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의 또 다른 한 형태입니다. 물론 감사와 찬미를 드리러 다시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도 믿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믿음이란 그저 운수가 좋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참다운 구원은 베푸신 축복에 대한 합당한 감사의 만남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은 권위가 있어서 우리가 믿을 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뒤따를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가르침의 뜻대로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들 중에도 심지어 성직자라는 사람들 중에도 빈 말만 요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마저도 제 멋대로 가공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예수님의 모범은 숭고할 뿐만 아니라 그 제자다운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하시러 세상에 오셨고, 축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시면서도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의 십자가의 제사를 통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 축복과 감사의 만남을 성찬의 식탁에서 절묘하게 조화시키시고 그 모범을 보이신 대로 우리가 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받아 드시고, 축복하시고, 쪼개시고, 나누시고….” 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감사로 만끽하시고, 구원의 희망으로 자칫 끝이라서 느끼게 되는 덧없음의 근심을 바람에 날려 버리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2010-11-16

[지혜의 향기] 계절에 따른 안거의 수행 전통과 유래

인도는 본래 매우 더운 나라다. 더울 뿐만 아니라 철따라 바람이 뚜렷이 바뀌어 부는 몬순의 나라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축축한 바람이 비구름을 몰고 와 온 천지에 장마비를 뿌리고 겨울에는 북쪽 대륙에서 메마른 바람이 불어온다. 한국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철바람이 부는 지대라서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가끔 남지나해 등지에서 생겨 나온 폭풍의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인도의 여름 폭풍이나 몇 날 며칠씩 쏟아 붓는 장대비에 비하면 대부분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나무 밑에서 사흘 이상은 머무르지 말라고 하셨던 부처님께서도 오죽했으면 비가 많이 오는 이 몇 달 동안만은 제자들에게 나다니지를 말고 한 곳에 모여앉아 수행에만 전념하라고 하셨을까. 불가에서 말하는 들어앉기, 곧, 안거는 이렇게 비롯된 것이고 절이라는 것도 본래는 수행자들이 비 많은 여름철에 들어앉아 있기 좋도록 하자고 지어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여름 안거의 수행 전통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가 한반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북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지는 겨울에 몹시 추운 것도 문제였다. 스님들이 요즘처럼 차를 타고 다닐 수도 없었고. 그래서 여름 안거와 더불어 겨울 안거도 생겼는데 한국에서는 보통 하안거 석 달, 동안거 석 달 하는 식으로 굳어졌다. 불교가 동아시아에 전해진 후 역사가 흐르면서 여러 종파 가운데 특히 선종이 활짝 꽃피어서 주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의 안거도 대개 고요한 산 속에 자리한 절에서 집중적으로 참선을 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선불교가 번창하면서 많은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 보니 선원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해서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게 되었고 조실이니 입승이니 하며 갖가지 소임이 생겨나는 등 선방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 안거를 시작하고 끝내는 날짜도 엄수해야 했는데 이렇게 물 따라 구름 따라 떠돌다가 전국각지의 선방을 찾아드는 선객을 운수납자라고 한다. 이들은 안거가 시작 되는 첫머리에 자신을 묶어 두는 결제로부터 끝마치고 푸는 해제 때까지 전심전력, 화두 하나를 붙잡고 매달린다. 그리고 이렇게 안거를 몇 번이나 제대로 마쳤느냐가 한국의 선승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이력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근기 얕은 사나이로 태어나 언감생심이긴 하지만 운수납자 노릇 한 번 못해 보고 나이만 먹은 게 내심 전혀 서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기야 이 대신 잇몸이라고 요즘은 머리를 안 깎고도 겨자씨만큼은 선방 맛을 볼 수도 있는 좋은 시절을 만난 것으로 허망한 욕심을 달랠 수밖에. 템플 스테이 이야기다. 본래는 불교 대중화를 위해 재가불자들에게도 절의 수행에 일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게 해가 지나면서 일반인에 맞게 다양화하여 문화 상품화한 게 템플 스테이다. 말 그대로 절에 며칠간 묵으면서 참선뿐만 아니라 발우공양, 예불, 울력 등 프로그램에 따라 절 생활을 해 보는 것으로 예상 밖의 히트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남녀노소가 그 무언가를 찾아 모여들고 무언가를 얻어서 돌아간다. 주로 청소년을 위한 것이지만 근래에 미주에서도 몇몇 한국 사찰과 단체가 템플 스테이를 태동시킨 바 있다. 안거나 정진에 며칠 씩 참여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꼭 외국 사람들 다 하는 것 보고 나서 그 때 가서야 좋다고 따라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서, 지친 몸과 마음도 추스를 겸 편한 옷 입고 며칠간 절살이를 한 번 해 봄은 어떠실지.

2010-11-16

[생확 속에서] '빵 굽는 CEO'

수년 전 서울의 모 케이블 TV 방송에서 서초구민들을 대상으로 "서초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는데 1위로 꼽힌 것이 의외로 '김영모 제과점'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 만일 강남지역에 쇼핑몰을 짓는다면 가장 먼저 들어서야 하는 점포가 '김영모 제과점'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누구나 이 제과점의 고객이 되면 '단골 고객'이 아니라 '충성 고객'이 된다고 한다. 이 제과점의 사장 김영모 씨의 학력은 고등학교 1학년 중퇴가 전부이다. 그는 지방 한 소도시의 제과점 보조로 일을 시작하여 35년간 빵을 만들었다. 그가 빵집에서 일하게 된 동기는 복잡하지 않다. 갓난아기 때 부모가 이혼하여 고아 아닌 고아가 된 그는 배고프고 외로웠던 시절 그의 유일한 기쁨이 초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빵집의 유리 진열장 속에 있는 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빵을 원 없이 먹고 싶어 결국 17살이 되던 해 빵집 보조로 취직을 하였다. 취직한 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빵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하루 1-2시간 잠을 자면서 빵을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빵이 그의 인생의 스승이 되었고 멘토가 된 것이다. 그의 자서전 '빵 굽는 CEO'라는 책에 보면 1982년 서른나이에 서초동에 위치한 6평짜리 김영모 제과점을 열었고 맛 하나로 입소문을 내면서 강남의 주민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의 빵이 인기를 끌자 '역삼 럭키점' '도곡 타워 팰리스점'을 분점을 내었는데 분당 수지 일산 등 신도시에서도 고객들이 찾아오고 심지어 지방에서도 찾아온다고 한다. 현재 3개 지점 4개 매장에 13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그의 제과점 직원회의는 모일 때마다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단 한 명의 감원도 임금 조정도 없이 가장 어려운 경제 상황이었던 IMF 시기를 돌파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모 씨의 경영 철학은 "돈 버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돈만 쫓으면 돈이 오히려 도망가고 인생은 누추해 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부동산 투자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로또 복권 한 장 사본 적도 없다. 땀을 흘리지 않고 얻는 소득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연탄으로 빵을 굽던 어려운 시절에도 소보로 빵에 얹을 소보로의 양 180그램 중 2 그램만 부족해도 전량 폐기처분했다.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쉽던 시절에도 최고가 아닌 빵을 소비자에게 맛보게 하는 것은 빵 굽는 사람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오히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많은 사람이 뭔가 큰일을 해보겠다고 꿈을 꾸지만 그것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잘 모른다. 김영모 씨의 삶은 비록 빵을 굽는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때 어떤 결과를 볼 수 있는지 우리에게 잔잔한 교훈을 주고 있다.

2010-11-02

[변화] 신앙이 낳은 '맹목'

9.11사태로 본격화된 이슬람권의 테러로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여 있다. 테러의 안전지대는 전세계 어디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에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있다. 테러를 주로 일삼는 계통이 시아파 즉 '헤즈볼라'와 같은 '과격이슬람 단체'이다. 시아파의 과격한 신앙노선은 같은 이슬람권에서도 배척받는 전투적인 집단이기에 전 세계적인 규탄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칼을 놓지 않고 있다. 신앙이 낳은 무서운 맹목이다. 역사이래 가장 무서운 전쟁은 종교전쟁이었다. 다른 전쟁은 휴전도 화해도 있지만 종교전쟁만큼은 용서가 없어 피에 피를 부른다. 가정 안에서도 종교전쟁은 결코 종결되지 않는다. 이슬람권의 많은 선교사들이 테러로 목숨의 위협을 받고있다. 유괴를 당하기도 하고 살해 협박을 받는 것도 부지기수다. 교회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그들에게 타종교는 적이요 타도의 대상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타종교에 대해 적대적이다. 기독교의 타종교를 바라보는 적대적 시각을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시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선교의 나라 미국의 선교 방식은 23세대를 거쳐 선교할 수 있는 장기 계획으로 추진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열심이 특심한 몇몇 선교사나 선교단체들이 선교의 문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사고를 친다. 그러고도 그들은 주님이 오시려면 빨리 예루살렘이 복음화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누가 주님이 오실 날을 앞당길 수 있다는 말인가? 왜 주님은 빨리 오셔야만 하는가? 이번 '봉은사 땅밟기' 사건은 교계 전체가 깊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누군가 몰래 교회에 잠입해 부적을 곳곳에 붙여 놓고 푸닥거리를 한바탕 하고 갔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고 황당하겠는가? 우상을 섬긴다는 이유로 절 내부로 무단 침입해 찬양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온다면 교회안에 침입한 무당의 행위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기독교가 세상에 욕먹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신들의 신앙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이라고 한다. 삶으로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말로만 사랑을 전하고 있으니 욕먹어 마땅하다.

2010-11-02

[사목의 향기] 삶,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호스피스 병동

또 자살 소식! 전임 대통령의 자살 이후 자주 등장하는 소식이다. 그것도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라는 칭호까지 받은 사회의 저명인사가 남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최윤희씨 부부! 이들의 자살에 대해 여론은 찬반으로 갈라지는 듯하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라는 동정적인 의견과 그래도 자살은 안 되는데 이다. 더구나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 된다고 외쳤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충격도 더 크다. 희귀병 루푸스와 폐렴으로 고생했고 700가지 통증으로 시달렸다고 했으니 지독히 고통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부부 사이가 너무 좋아 남편은 "너 혼자 못 보낸다"라는 유서까지 남기고 목매달아 죽었다고 한다. 보도를 보니 남편이 끈으로 부인을 먼저 목 졸라 죽인 후 자신은 화장실 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죽은 사람들에게는 명복을 빌며 남아 있는 유족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실망하지 말고 힘 내십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자살이 너무 잦다. 보도를 보니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된 모양인데 하루에 평균 1명 이상이 한강에 몸을 던져 이 세상을 하직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 실망에 빠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과 연관을 맺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호스피스 운동이다.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활기를 얻고 죽는 순간까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최근의 자살 소식과 더불어 이런 기사도 있어 흐뭇했다. 말기 암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호스피스 병동에는 삶을 마감한 말기 암 환자들의 따뜻한 미소와 웃음 띤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다고 한다. 과하지도 않고 억지웃음도 아닌 살아있는 자들의 솔직한 모습! 암 투병에 지친 육신이 천상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짓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웃음'이라고 하니 기적처럼 느껴진다. 암 환자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순응의 미소로 바꾸는 이들. 이들은 말기 암 환자들의 밝은 모습을 수시로 카메라에 담는다. 진료를 보다가도 웃는 사진의 효과는 강력한 모르핀(마약 진통제)보다 뛰어난다고 한다. 환히 웃는 그들의 모습을 인화해 본인 허락을 받아 병동에 걸었더니 암울했던 호스피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한다. 카메라만 보면 손사래를 치던 환자들이 먼저 웃으며 다가와서는 삶을 마감하며 가족들에게 웃는 모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단다. 그렇게 해서 난소암으로 생을 접은 엄마가 해외유학을 마치고 직장에 취직한 외아들에게 띄운 '애틋한 미소' 담낭암으로 세상을 등진 남편이 2년간 병시중을 든 아내에게 보내는 '아련한 웃음' 자궁암으로 먼 곳에 간 어머니와 딸의 '다정한 미소' 등 40여 명의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의 웃음과 미소가 영원히 정지된 모습 등이 사진으로 걸려 있다는 보도! 고통으로 짓눌린 삶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이들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호스피스 병동을 찾는다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행복 전도사로 불리던 그 분도 자살이 인간의 생사를 온전히 주관하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조물주의 권한에 도전한다는 것을 몰랐던가? 라고 묻고 싶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는 생을 아름답게 끝마치는 그런 곳을 찾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0-11-02

[지혜의 향기] 부처님 가리키는 10 가지 이름

부처님의 본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고타마가 성이고 싯다르타가 이름인데 나중에 크게 깨쳐서 부처님이 되신 후 샤캬 족 출신의 거룩한 분이라는 뜻에서 샤캬무니 곧 석가모니라고 불렸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생전에 마흔 다섯 해 동안이나 여기저기를 다니시며 설법을 하시면서 당신을 곧잘 '타타가타'라고 칭하셨다. 이 말은 본래 '이렇게 온 분'이란 뜻으로 인도 사람들이 '나는'이라고 말하는 대신 '여기 온 이 사람은' 하고 자신을 조금 에둘러 가리키는 일반 대명사였던 것 같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거룩한 분들이 자신을 일컫는 통칭이 되었던 것 같은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설법 중에 당신을 가리키는 말로 이 말을 쓰셨다. 이리하여 이 말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고유한 칭호로 굳어졌는데 이를 한자의 뜻으로 옮긴 것이 여래(如來)다.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로 세존(世尊) 또는 불세존(佛世尊)이란 말도 자주 쓰인다. '세상에서 존귀하신 분'이란 뜻이다. '바가바트' 등 몇 가지 인도 말에 해당하는 한문 번역어이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며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 즉 이 세상을 이끄시는 큰 스승이시며 모든 생명의 자애로우신 어버이라고 하신다. 왜 신이 아닐까? 내 생각에 누군가가 인간의 선생님이 되고 인간의 부모님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부터 일단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일 것 같다. 짐승이어서도 안 되겠지만 눈에 안 보이는 허깨비 같은 허황한 존재여도 사람의 진정한 스승이나 자애로운 어버이가 되기에는 좀 곤란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이 밖에도 부처님을 가리키는 별칭은 많다. 여래와 세존을 포함하여 여래십호라고 하는 열 가지의 이름이 대표적인데 이왕 말이 나왔으니 나머지 여덟 가지도 하나씩 짚어 보자. 응공(應供)이란 말이 있다. '대접 받을 만하신 분'이다. 내가 돈 내어 밥을 사 드려도 하나도 안 아까운 분 아니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기회만 주신다면 정성들여 꼭 대접해 드리고 싶은 분이 응공이다. 응공의 본디 말은 아르하트 즉 아라한이며 더 이상 공부하실 게 없는 분이시니 무학(無學)이라고 새기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가끔 응공 같아 보이지도 않으신 분이 돈이 없으신 것도 아닌데 어디 가면 같이 먹고도 으례 밥값 낼 생각을 않는 분도 없지 않다. 전생에서부터 이미 응공이 되어 나오셨는데 우리가 미처 못 알아보는 건지 다음 생에 응공을 예약해 놓으시고 음식은 공짜로 미리미리 얻어 드시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밖에 부처님은 무엇이든지 두루 바르게 아시는 분이므로 정변지(正遍知)이시며 앎과 행동이 밝고 완벽하게 일치하므로 명행족(明行足)이시다. 그리고 잘 살기만큼 어려운 게 또한 잘 죽기 아니겠나. 그 분은 드물게 잘 돌아가신 분으로서 선서(善逝)가 되시어 이천 500년이 더 지나도록 그 끼치신 바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분이시다. 또한 부처님은 세상 이치를 잘 알고 계시는 세간해(世間解)이시며 아무도 그 분을 능가할 수 없는 최고봉 즉 무상사(無上士)이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을 잘 다루고 부리시는 조어장부(調御丈夫)라는 칭호가 따라붙는다. 이리하여 부처님은 하늘과 사람이 함께 모시는 공통의 스승님이 되셨으니 신도 인간도 이 천인사(天人師) 앞에서는 한낱 따라 배워야 할 학생일 뿐이다. 이상의 열 가지 별호로도 미흡하다면 그대는 어떤 칭호를 하나 더 받들어 올리고 싶으신가? 꼭 한문일 필요도 없고 길어도 짧아도 좋겠지. 순수한 한국말이든 그 어느 나라 말이든 무슨 상관이랴? 나만이 소중히 부르는 그리운 내 님의 이름이라면.

2010-11-02

[변화] 기독인과 가십

어느 미국 교회를 갔더니 그날이 마침 교인이 되는 선서식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서의 첫 번째 항목이 '나는 교인으로서 가십(Gossip)을 하지 않겠습니다!'였다. 얼마나 영적이지 않은가! 적어도 영적인 항목을 첫 번째로 말할 줄 알았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가십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으면 선서의 첫 번째 항목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탄이 교회를 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사탄은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다. 첫 번째는 대부분 가십 때문이다. 그저 누군가가 흘린 말에 사탄이 양념을 넣고 소스를 뿌려 이웃의 입으로 달콤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것은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 개화기 때 서양에서 들어온 맥주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병의 크기가 배로 커졌다고 한다. 혼자서 마시는 서양 사람과 서로 술을 따라 주어야만 하는 한국인의 술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관찰해보면 서양 사람들의 술잔은 항상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반면에 한국인의 술잔은 상대와 중간에 놓여있다. 어느 사이인가 한국인들의 소통에는 술잔이 항상 중심을 잡고 있다. 그만큼 맨 정신으로는 말 못할 사정들을 많이 안고 살아가기 때문아닐까? 목사로서 교인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것 중에 하나는 교인 사이에 앙금이 생겼을 때 술기운을 빌어 화해의 시도를 하는 세상 사람과 비교해 앙금을 풀 수 있는 매개체가 그리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더욱 곪고 곪아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기도와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수준의 사람들이 더 많다 보니 앙금이 쌓이면 자연히 뒷담화나 가십이 교회 내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생각 없이 뱉어낸 누구의 말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칼로 찌르는 것보다 말로 찌르는 것이 더욱 무섭다. 칼에 찔린 상처는 치료할 수 있지만 말에 찔리면 어디가 얼만큼 아픈지조차 알 수 없다. 가십을 하지 않도록 기도만 하지말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며 찬송으로 감사로 격려의 말로 입술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더 열심히 입 다무는 노력을 해야한다!

2010-10-26

[생활 속에서] 주께하듯 하니 그 모양이지!

군대를 조금은 늦은 나이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섬김을 배우고 말씀에 분명히 서야겠다는 마음으로 입대했다.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주께 하듯 고참과 후임병들을 섬길 마음을 먹었기에 어떠면 고참 보기를 "예수님과 동기동창(?)"으로 여기는 군대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생활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니 전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고참이 예수님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참이 사탄 마귀처럼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기회를 잡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때. "주님! 주께하듯 하겠다는 마음으로 고참을 예수님 섬기듯 하려 했는데 왜 이리 잘 되지 않을까요?"라고 답답한 마음을 고백했다. 그때 불현듯 내 마음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도전이 있었다. "그렇게 말을 하니 평소에 네가 나에게 굉장히 잘한 것 같구나. 네가 나에게 하듯 하니 그 모양이지! 자매들에게 하는 것 반만 해봐라. 그럼 굉장히 잘 할텐데…" 내가 주님께 하던 모습 없으면서 있는 척 하지 않았으면서 한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적당히 대충 '눈 가리고 아웅' 하던 모습처럼 하던 그 수많은 위선된 신앙생활 아니 엄격히 말하면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던 그 모습이 하나씩 떠올랐다. 한마디로 내가 주님께 하던 모습은 위선과 가식과 거짓과 형식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결국 스스로 자조하듯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주께하듯 하니 그 모양이지!" 그리고 생각해보니 오늘날 교회 안에 가득한 갈등과 반목 세상으로부터 받는 비난과 조롱이 어쩌면 "주께하듯" 하는 위선적 삶 때문은 아닐까 싶다. 세상과 바른 관계의 출발은 언론대책반을 만들고 기독교 홍보 기획을 잘하고 사회적 이미지 개선을 위한 자선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대 사회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는 것은 곧 사람 앞에 바로 서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이전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솔직한 질문 앞에 먼저 서야 한다. "하나님을 속이는데 익숙해지는 삶"은 긴장하지 않으면 어느 틈에 내 삶 속에 스며들어온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던 제사장이 타락하고 율법을 가장 연구한 사람들이 바리새인이 되듯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누구인지 솔직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속이는데 익숙해지는 삶이 된다. 하나님을 속이는데 익숙해진 삶으로는 세상을 감동시킬 수 없다. 세상이 잠시 속아줄 수 있지만 하나님도 세상도 계속 속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뒤늦게 발견하는 것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자신뿐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바른 윤리의 첫 출발이 된다. "주께하듯 하니 그 모양이지!" 이제 세상이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2010-10-26

[사목의 향기] 류사오보는 오슬로에 갈 수 있을까?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산업가였던 노벨은 많은 발명 특히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대갑부가 되자 그 많은 재산을 세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는 유언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생겨난 상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경제학상 문학상 그리고 평화상이다. 노벨 위원회는 지난 10월 8일 올 해 서른한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중국의 류샤오보를 선정 발표했다. 노벨 위원회는 경제 성장을 통해 빠른 속도로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국제 사회 안에서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고 하면서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보면 그 위원회는 중국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서구적 사고방식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앞세워 중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류사오보는 중국에서 20년간 기본적인 인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여온 반체제 작가 겸 변호사로 활동한 인권 운동가다. 1989년 6월 4일 중국의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2008년에는 서구식 3권 분립과 인권 및 민주화를 요구하는 08 헌장의 주요 저자이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그는 투옥되어 현재까지 옥중생활을 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주요 외신들도 류샤오보의 수상 소식을 머리기사로 긴급 전했다. AFP통신은 류샤오보를 "최근 수십년간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보호를 위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였던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1989년 천안문 시위에 참여한 경력 등을 상세하게 전했다. AP통신도 "도박사들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쳤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에 박수를 보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류샤오보를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원하는 용감한 인물이며 민주화가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힘들고 긴 여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항상 얘기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가 오는 12월 노벨상 시상식 참여를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에 방문할 수 있도록 당장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에 가장 당황한 반응을 보인 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정부다. 그는 국가의 죄인이므로 노벨상 취지에 어긋난다는 반응이다. 노벨상을 받는 인물의 국가와 국민의 반응은 대단하다. 올 해 화학상의 공동 대표로 뽑힌 3명 중 2명이 일본인이라 일본 사람들의 긍지는 대단하며 일본에 좋은 일이 일어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로 간주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중국이 환호하기보다는 불편한 반응을 보이면서 대응하는 자세는 무엇일까? 서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한다. 그들의 이런 보편적인 가치가 중국식 권위주의와 공존할 수 있나 없나 하는 것이 큰 쟁점 사항이다. 기뻐해야 할 중국정부에 시름을 안겨준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과연 중국정부가 그를 오슬로에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중국이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어 기아와 가난에서 해방되었지만 국제적인 합의와 자국의 법조문을 어기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를 무시한 점을 인정하고 개선하라는 국제적 압력은 지극히 타당하다. 중국과 노르웨이는 이번 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될 것은 자명하지만 이를 계기로 중국 내 인권 상황이 호전되고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발전해 나간다면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2010-10-26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백일출가로 자립심 키우고 부모 고마움 알아야

Q: 저는 28살인데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험에 자신이 없고 그동안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면목도 없고 해서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껏 제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깊은 고민도 없이 엄마가 이 대학 가라면 가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라면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매번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A: 우선 엄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놓고 의논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옛날에는 스물여덟이면 시집가서 자식이 서넛은 되는 나이입니다. 애들을 책임져야 되니 세상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럴 나이인데도 너무 오랫동안 엄마 그늘에서 살다 보니 자립심이 무뎌지고 의지심이 커져서 엄마의 그늘에서 탈출하려는 반발심은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못 잡아서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녀들은 사춘기 때 독립을 하려고 부모와 갈등이 생기는데 이때 부모가 잡으면 안 돼요. 살생이나 폭행 도둑질이나 강도질 사음 거짓말 욕설 등을 하거나 술이나 마약 같은 데 취해가지고 제정신 못 차리는 정도가 아니면 뭐든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둬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스무 살이 넘어가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과잉보호를 하면 나중에 자립을 못 해서 결혼도 부모가 시켜줘야 되고 생활도 부모가 책임져야 돼요 그러면 부모에게도 무거운 짐이 되고 자녀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먼저 100일 출가를 해보세요. 100일 출가를 하면 일단 집에서 나오게 되지만 혼자서 세상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되니까 두려움이 덜합니다. 그곳에서 살면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온갖 일을 다 해보세요. 그렇게 100일을 마치고 세상에 나가면 내가 뭘 해도 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시험에 붙든 떨어지든 100일출가는 꼭 한다라고 방향을 정해보세요. 설령 엄마가 수련원으로 데리러 와도 옛날 야사 비구처럼 하면 됩니다. 야사 비구는 아버지가 찾아오자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버지 제 얼굴을 보세요. 아버지는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한 제 얼굴을 보신 적이 있었습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야사의 아버지가 아들 얼굴을 보니까 아들 얼굴이 진짜 밝은 겁니다. 그때 야사 비구가 다시 아버지께 "왜 저를 행복한 곳에서 불행한 곳으로 데려가시려고 합니까?" 이렇게 또 말하니까 아버지도 할 말이 없어졌지요. 오히려 야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권유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첫 번째 남자 재가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험을 보는 날까지 매일 108배를 하면서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세요.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지금까지 보살펴주신 어머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는 이런 마음이 있어야 어머니로부터 내가 진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엄마가 문제라서 못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이 두려워서 못 벗어납니다. 내가 자꾸 돌아옵니다. 풀어줘도 돌아옵니다. 어머니께 고맙다는 감사 기도를 하는 것은 내 길을 떠나겠다는 뜻입니다.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하면 내가 부모 곁을 떠나는데 호법신장이 돕게 됩니다.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2010-10-26

[변화] '공인의 삶'

효의 마침이라는 '입신양명'은 자신의 몸을 세워 이름을 널리 떨친다는 출세를 대표하는 사자성어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꿈이기도 하다. 출세는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출세해서 소위 '공인'이 되면 얻는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많다. 돈과 명예를 얻는 대신 사생활을 잃어버린다. '공인'은 살아서는 물론이요 죽는 순간까지 자유롭지 못한 굴레 가운데 살아간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삶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하는 삶 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삶….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쉽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않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곧 '공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공인이기 때문에 누리는 영적인 혜택도 많지만 내려놓아야 할 특권도 상당하다. 공인이면서 공인의 삶을 살지 않을 때는 힐난과 비난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서양 사람들은 '명사'를 주로 사용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동사'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이 쓴 신문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사건과 사실'만 정확히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이 쓴 기사에는 사건과 더불어 그 영향이 어떠했는지 '사설과 평가'가 반드시 등장한다. 교통사고 후에 차가 얼마나 밀렸고 직장에 지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가 따라붙는다. 그러니 우리 이웃들은 항상 우리가 '누구인가'보다 우리의 '삶이 어떤가'에 예의 주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인의 잣대'를 대고 바라보고 있다. 특히나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수마저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누리는 풍성한 영적인 은혜와 혜택 이면에는 이렇게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커다란 십자가가 있다. 삶으로 존경받던 목사님들이 점점 별세 하시는 마당에 젊은 목사들의 성추문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어 적잖이 당황스럽다.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69일간 33명의 광부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던 '고메스(64세)'와 '우르수아(54세)'같은 삶의 롤 모델들이 더욱 절실히 기다려진다.

2010-10-19

[생활 속에서] '행복 전도사의 죽음'

한국에서 '행복 전도사'라고 불리는 최윤희 씨라는 분이 있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늦은 나이에 방송에 데뷔 KBS의 '명사 특강' SBS '행복 특강' 등에 나와 60이 넘은 나이에 재치 있는 입담으로 보통 사람이 누리는 행복의 지혜를 전하여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전했던 최윤희 씨가 자살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인생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TV 강의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면서 행복의 꿈을 심었던 사람이었지만 본인은 희귀성 난치병인 루프스 병으로 2년 이상 남몰래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윤희 씨가 남긴 유서에는 "폐와 심장 쪽에 이상이 생겨 수면제를 먹고 혼자 이 세상을 떠나려고 했는데 남편이 찾아와 그러지 못했다"고 하면서 "남편이 혼자 떠나보낼 수 없다고 해 결국 동반으로 떠나게 됐다"고 글을 남겼다. 더 나아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실 것"이라면서 마지막 인생길을 떠나는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작은 소망까지 비추었다. 최윤희씨의 극단적 인생 종말의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가치관의 혼동이나 혹은 인생 회의주의에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첫째 행복 전도사라고 불리던 사람이 자살로 인생을 마쳤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두려움에 빠졌을 것이며 둘째는 행복 전도사라는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인생을 마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은 어쩌면 가장 행복하게 죽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최윤희 씨의 죽음을 보면서 필자는 웃음 뒤에 가려진 한국인의 우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은 경제 발전과 번영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생각을 가지며 "잘 살게 되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이름 뒤에는 어둡고 부정적인 내면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면의 어두운 문제와 상처들이 치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데 억지로 웃는 모습을 가진다고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일에 직면하고 심지어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도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행복 전도사 최윤희 씨의 마지막 모습은 그녀가 늘 강조해온 행복의 가치와 비교해 볼 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만일 그녀가 극심한 고통을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주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느껴본다.

2010-10-19

[지혜의 향기] 올바른 이름이나 호칭·경어법 사용해야

내가 어렸을 때는 같이 노는 또래 아이들을 동무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이 말은 잘 안 쓰게 되고 친구라는 말이 쓰였다. 벗이라는 말은 책에서나 가끔 보는 말이었고 좀 커서는 프렌드라는 영어를 장난삼아 섞어 쓰기도 했다. 걸 프렌드가 있는 애들이 내심 부럽기도 했는데 나중 미국에 와서 보니 이 말은 단순히 그냥 알고 지내거나 사귀는 여자 친구라기보다는 그런 과정은 한참 지나서 아예 동거까지 하는 여자를 주로 가리키는 말임을 알고 놀랐다. 그 때는 친구든 남의 애인이든 선생님이든 본래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부르거나 지칭할 때가 많았는데 어떤 별명은 참으로 기발 나고 인상적이어서 반세기가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기다렸다는 듯이 떠오른다. 본명도 얼굴 모습도 가물가물하지만. 조선 시대 양반들은 좀 점잖은 별명을 많이 불렀다. 남녀가 열다섯 살 쯤 되면 관례를 올려 주면서 어른 취급을 했는데 이 때 윗사람이 지어 주는 것을 자(字)라고 했다. 호(號)는 주로 자신이 기분 내키는 대로 짓는 것으로서 한 사람이 여러 개를 갖기도 했다. 그러다 죽으면 임금이 시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이름이나 호칭 나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이 엄격하고도 복잡하게 발달하여서 헷갈릴 지경이었는데 이러한 문화가 헝클어져 가던 시기에 태어나 자라난 관계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어서 난처할 때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는데 미국사람들은 높임말 낮춤말이 아예 없어서 아버지보고도 제 동생한테 그러는 것처럼 그냥 밥 먹어라 하며 말을 놓는다는 것이다.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참 편리하고도 쉽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보던 영어를 이 나이 되도록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호칭을 포함한 이 경어법이라는 것이 한국말 일본말을 비롯한 세계의 몇 가지 말에는 비상하게 발달해 있어 그렇지 못한 말을 모국어로 쓰는 이들에게는 매력도 주지만 따라 배우기에 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인 2세들도 특히 힘들어 하는 게 이 부분이고 만약 경어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모국어는 거의 마스터 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본국에서도 한국말 자체가 이런 게 차츰 단순화 되어 가고 있어서 요즘은 하게체나 하오체는 입말에는 거의 안 쓰이고 있다. 호칭 얘기를 하다가 좀 옆길로 샜는데 그렇다면 스님을 부를 때는 어떻게 해야 무난할까? 그냥 스님이라고 부르든가 보통은 그 스님의 불명을 앞에 붙여 무슨 스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출가를 하면 세속의 이름을 버리고 불가의 이름을 얻는데 대개 두 자의 한자 이름이다. 법명이라고도 한다. 재가 불자들도 성인이라면 대개 남자는 두 자 여자는 세 자로 된 불명을 갖고 있다. 이런 불명을 앞에 붙여 무슨 거사님 또는 처사님 여자는 무슨 보살님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가끔 바깥에서 스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볼멘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신문 기사 같은 데서 신부나 목사는 그냥 무슨 신부 무슨 목사라고 칭하면서 왜 스님에게는 꼭 '님'자를 붙이냐는 불만이다. 붙이기 싫으면 떼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님'자를 떼고 한 번 불러 보자. 예를 들어 성철 스 법정 스… 말이 되는 소린가? 그래선지 무슨 스님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굳이 무슨 승려라고 해야 된다는 주장인데 이왕이면 굳어진 말 '님'자 하나 붙여 주기가 그리 아깝고도 억울하단 말인가! 님이라 불리운 이 고개 돌려 그대를 님으로 바라볼 텐데.

201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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