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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기준 적용했더니…초등생 38명중 1명 자폐 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진단 2~3% 수준까지 치솟아 미국도 비슷한 결과 추정 아동들의 자폐 발병률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아동의 자폐 발병은 초등학생 38명 중 1명에 달했다. 연방질병통제센터(CDCP)에 따르면 미국 아동의 자폐 발병은 110명 중 1명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신의학회 공식학회지(AJP)는 예일대 의대 소아정신과 김영신 교수를 비롯해 국제공동연구진이 2005~2009년 경기도 고양시 만 7~12세 초등학생 전체인 5만 52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폐 스펙트럼 유병률(prevalence rate) 전수조사에서 2.64%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rm Disorder)' 진단을 받았다는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심각한 의사소통 부진이나 정신 발달장애를 보이는 자폐증 뿐 아니라 아스퍼거증후군 같은 가벼운 증세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용어다. 이번 조사는 특수 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를 모두 연구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세계 처음이다. 또 학교생활기록 또는 진료기록을 토대로 하는 기존의 유병률 추정법과 달리 이번 조사에서는 일일이 부모 조사와 아동 직접 평가를 거쳤다. 그 결과 일반 학교에 다니는 3만 6592명 가운데는 1.89%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겪고 있었다. 지능지수(IQ) 120 이상의 학생 중에도 상당수가 진단을 받았다. 현재 전 세계 아동의 자폐 발병률은 인구의 0.6~1.8%로 추정되고 있으나 조사 대상을 일반 학교까지 포함하고 이번 김 교수 연구팀의 조사 방법을 적용하면 미국과 다른 국가에서도 이 비율이 2~3%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 교수는 "유병률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번 조사 결과는 자폐증 위험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높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특히 정형화한 한국의 교육환경에서는 조용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경우 자폐증세가 있어도 진단을 받지 못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자폐증 민간단체인 '오티즘 스픽스'의 제럴딘 도슨 노스캐롤리나아 대학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자폐증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건강 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현행 연구방식으로는 미국 등에서 자폐증의 실태가 과소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펙트럼 오브 호우프의 세실리아 장 대표는 "조기 발견해 제대로 된 치료만 해준다면 완치도 가능하다"며 "부모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자폐에서 벗어나 정상인으로 살 수도 있고 반대로 평생을 자폐증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희 기자 jaeheelee@koreadaily.com

2011-05-09

절망 순간서 발견한 '행운', 스펙트럼 오브 호프…세실리아 장 대표

2003년 봄 제 아들은 건강하게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발육상태도 좋았습니다. 3개월 때 옹아리와 뒤집기, 걷기를 거쳐 1살이 되어 걸었습니다. 딱 한가지 걸렸던 것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9개월 때 소아과 의사에게 갔을 때 “아이가 포인팅(pointing)을 하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소아과 의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말하기의 기초이니 주의 깊게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나 남편이나 첫 아이인데다가 주위에서 ‘남자아이라서 말이 늦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육아경험이 많은 저의 친정 어머니가 우유를 먹일 때 이상하게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이것 역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이상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돌이 지나면서 걱정은 조금씩 현실화 됐습니다. 옹아리 단계에서 더 이상 진전을 보이지 않았고 ‘어엄~마’ 하고 말해도 따라 할 생각이 없이 말 그대로 무엇엔가 아이가 혼자 갇혀있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적인 웃음(social smile)’ 즉 상대방에 대한 반응으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까르르 하는 것도 없었던 것인데 아빠가 아이를 안고 공중에 띄어주면 해맑게 웃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지요. 조금씩 자라면서 아이의 관심사가 자동차 바퀴에 집중되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 도가 지나쳤고 무엇보다 2살 때 여동생이 생겨 더 이상 지체하면 안되겠다는 위기감이 그 때야 들었던 것입니다. 리저널 센터에 연락해서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날은 아마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가장 슬픈 날이자 조기 발견을 했기 때문에 가장 행운의 날일 지 모릅니다. ‘언어가 좀 늦은 장애’ 정도의 진단이 나올 줄 알았는데 자폐진단이 떨어진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한 달 동안 쓰러져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내 아이가 일생 자폐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부모로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때부터 열심히 정보를 알아보려고 뛰어 다녔고 이 분야를 다룬 특수교육법에 관심을 갖고 그 쪽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25개월 때 조기발견을 할 수 있었고 운좋게 좋은 프로그램(ABA 치료)를 받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진단 받고 5년이 지난 후 우리 아이는 현재 초등학교 2학년으로 일반 공립학교에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뒤돌아 보면 절대로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제가 느낀 것은 학교나 리저널 센터 같은 곳에서 진단만 내려주었지 구체적인 치료 방법에 대한 필요한 정보는 안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아이가 자폐에서 벗어나 정상인으로 살 수도 있고 반대로 평생을 자폐증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중요한 현실이었습니다. ‘부모의 몫’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얻은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2007년 지금과 같은 비영리 단체로 자폐아 부모들을 돕는 ‘스펙트럼 오브 호우프’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문의: (626)771-0034, info@spectrumofhope.org

2011-04-18

부모가 먼저 '자폐 아이 치료사' 되세요

'4월 자폐증의 달' 특집으로 지난 주의 '성인이 된 자폐증 자녀를 둔 가정의 어려움' 에 이어 이번 주에는 자폐진단을 받고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봤다. 자폐 조기 진단 및 치료 정보를 돕는 비영리단체 '스펙트럼 오브 호프(Spectrum of hope)' 대표이며 특수교육법 변호사인 세실리아 장씨를 만났다. # 부모가 치료사가 되어야 한다 세실리아 장 대표는 "부모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손 빠르게 대처할수록 아이에게는 정상생활을 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한가지 언어를 사용한다=이중언어는 자폐 아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능하다면 영어만 사용할 것을 권한다. 리저널 센터(가주에만 있는 기관으로 3~21살의 발달장애인 복지를 위해 만들어졌다) 등 특수 프로그램은 모두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행동을 일관성 있게 한다=손 씻으라고 했을 때 아이가 무반응을 보여도 포기하면 안된다. "엄마가 도와줄까? 아니면 어른처럼 혼자 씻고 올래?"하며 행동을 계속 유도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아이를 데리고 직접 화장실로 가서 씻겨준다. 이 때 화내지도 말고 웃지도 않는다. 감정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다. ▶선택하게 한다=선택할 수 있을 때 아이는 파워를 느껴서 행복감을 갖는다. 야채를 먹이고 싶으면 "당근 먹을래 브로콜리 먹을래?" 하고 제안한다. ▶다가올 변화를 미리 말한다=놀이터에서 놀던 아이 보고 집에 가자고 하면 울며 떼를 쓴다. 이럴 경우 집에 갈 시간에 맞춰 여러 번 알려준다. "10분 있다가 집에 간다" "5분 남았네" "이제 갈시간 다 되었다"는 식으로 미리 상황을 알린다. 시간이 되면 아이 손을 잡고 가는데 울어도 강행한다. ▶긍정적인 것에 힘을 준다="하지 마라"고 할수록 자폐 아이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하라"는 쪽으로 행동을 유도한다. "컵 던지지 마" 대신 "엄마에게 컵을 식탁 위에 멋있게 놓는 것 좀 보여줄래?"라는 식으로 부모가 원하는 쪽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요령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르친다=밥 먹으면서 "우리는 지금 밥을 먹고 있다" 걸으면서 "나는 지금 걷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마다 문장을 만들어 들려 준다. ▶다른 행동으로 대치시킨다=자폐증 아이는 한 가지 행동에 몰입되면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한다. 바퀴만 돌리고 있을 때 아이 손에 크레용을 쥐어 준다. 거부하면 아이 손을 계속 잡고 흰 종이 위로 옮겨 준다. 아이는 종이 위에 처음엔 바퀴 돌리는 모양으로 둥글게 원을 그린다. 계속 아이 손을 잡고 네모 혹은 세모의 다른 모양을 그려주면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손을 놓아도 아이는 크레용을 잡고 원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 부모가 알아야 할 자폐증에 관한 진실들 ▶똑같은 자폐아는 없다. 다른 아이의 증세에 꿰어 맞추지 않는다. ▶자폐증은 행동 관찰로만 알 수 있으며 정신과.임상심리학 전문가만 진단을 내린다. 그러나 가장 빨리 정확히 아는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치료법은 1000여 가지가 있지만 기적의 약이나 치료법은 없다. '어떤 약을 먹이면 완전히 낫는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김인순 기자

2011-04-18

4월은 '자폐아의 달'…21세된 성인 자폐아 "휴~이젠 어쩌지"

4월은 자폐아와 그 가족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이는 달이다. LA타임스의 특별 섹션 최근호에서는 특히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는 21세 이상 된 성인 자폐증 환자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21세가 되면서 그 동안 받아 온 각종 특수 교육 프로그램은 법적으로 끝난다. 따라서 시설에 있던 아이들은 나가야 한다. 4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데이나도 이번 주에 21세가 되어 부모 집으로 옮겨 살게 됐다. 부모로서는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앞으로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도움을 줄 정부차원 프로그램이 태부족이라 막막하다. 미국에서 데이나와 같은 성인 자폐증 환자는 앞으로 15년 동안 50만명에 달한다. "부모로서는 두번째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다. 첫번째는 진단을 받았을 때이고 두번째는 내 아이가 아무런 도움 없이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라며 정부차원의 지원이 미비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자폐증 성인을 위한 직업 훈련 프로그램은 있지만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질도 높지 않다. 단순히 데이케어 정도거나 단순 작업인 종이 자르는 수준인 곳이 많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부모들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은 사회에서 자폐증을 지진아 그룹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44%는 지적 능력이 낮지만 56%는 정신연령이 정상이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도 많다. "어려서는 부모가 열심히 알아보면 정부보조의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들을 많이 또 쉽게 만날 수 있어 여기까지 왔는데 성인이 된 지금부터는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 지 막막하다"는 것이 부모들의 안타까움이다. 데이나 부모는 "우리는 15년 동안 딸의 정신연령이 4세 정도로 알았다. 지난해 특수 프로그램을 통해 타이핑을 배운 다음부터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는데 19세 또래의 정신연령인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랍고 기뻤는지 모른다"며 "지금부터 더 절실한 시설이 필요한데 어디서 찾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고용상태를 보면 특수 직업 훈련을 받아도 20% 정도만 일자리를 얻는데 불과하다. 보수도 낮은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자폐증 환자가 가장 많은 주가 뉴저지다. 정부 보조 혜택이 가장 좋기 때문에 자폐아를 가진 부모들이 그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 외 지역의 정부 서비스는 태부족이다. 90년대 진단을 받은 자폐아 부모들은 선구자였다. 건강보험과 모든 특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커뮤니티 시 주 및 연방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뛰어다녔고 성취했다. 이제 성인이 된 자폐증 자녀들을 위해 또 한 번 개척자로서 길을 모색할 때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110명 중에 한 명 꼴로 자폐증 진단을 받는데 남자아이가 더 많다(70명 중에 한 명). 1년에 10~17% 증가하고 있다. 김인순 기자

2011-04-11

[피플@비즈] LIC현대 케니 박 대표…"한국차 팔며 모국애 키운다"

낮엔 자동차 딜러에서 차를 닦고, 밤엔 클럽에서 드럼을 치던 시절. 11살 때 미국에 온 한인 1.5세 청년에게 자동차 세일즈맨이란 직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0여년간 기른 긴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고, 생애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출근한 이후 27년이 지났다. 세차맨이었던 청년은 세일즈맨을 거쳐 이제 자동차딜러의 공동 대표가 됐다.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LIC현대 케니 박 공동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 27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제 현대자동차 알리기에 앞장 설 수 있어 자랑스럽다”면서 “앞으로 현대·기아차 딜러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업계 입문=1984년 스물 다섯 살 때다. 버지니아에 있는 딜러에서 차를 닦다가 세일즈맨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를 찾아가 세일즈맨을 시켜달라고 했다. 매니저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음악을 하던 때라 머리가 길었다.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고 출근했다. 매니저는 그의 열정에 감동, 세일즈맨 자리를 맡겼다. 뛰어난 이중언어 구사능력과 남다른 마케팅 방법, 그만의 친화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88년엔 한 달에 74대를 판 적도 있다. 결국 그 해 포드 세일즈맨 전국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뉴욕서도 승승장구=93년 뉴욕으로 이주, 맨해튼에서 파트너와 함께 리스전문 포탐킨 자동차 간판을 내걸었다. 뉴욕의 화려함과 더불어 박 사장의 인생도 승승장구였지만 2001년 9·11 참사가 터졌다. 맨해튼 자동차 시장의 하향세로 이어졌다. 2002년 사업을 정리하고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초대형 딜러 메이저 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한 달에 딜러십 전체에서 1200대를 팔 정도로 규모가 큰 딜러였다. 박 대표는 아시안부서 사장을 맡아 10명의 직원을 진두 지휘하며 매출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돈도 많이 벌었다. ◆넘어졌던 순간=부동산 경기가 한창이던 2006년 말 잠시 자동차 업계를 떠나 건축회사를 설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일은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배우면서 한다는 것,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업은 나아지지 않았고 서브프라임 파동에 금융위기까지 터졌다. 직격탄이었다. “쫄딱 망했다. 동전을 모아 걸어서 주유소에 가서 담배를 사야 했다. 20년 넘게 자동차를 팔던 사람이 담배 사러 갈 돈도, 차도 없었다.” ◆다시 일어선 지금=그렇게 주저앉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자동차 업계에서 넘어진 적은 없었다. 20여년 전처럼 다시 양복을 차려 입고 지금의 LIC현대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 정도 규모도 있는 딜러에서 다시 승부를 보고 싶었다. 대표를 만나 이름을 밝히고 파트너를 하자고 했다. 26년전 세차맨이 매니저를 찾아가 세일즈맨을 시켜달라고 할 때만큼이나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그래도 그 때와 달랐다. 20여년간 업계에서 쌓아온 명성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딜러라 한인인 자신에게 승산이 있어 보였다.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현대차를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대차 딜러에 세일즈맨으로 취직했다. 10일간 18대쯤 팔았을까. LIC오토클럽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하자고 했다. 지난해 5월부터 다시 ‘대표 케니 박’이란 명함이 생겼다. 결국 20여년 간의 경험과 건축업 실패 덕분에 한국차가 미국 속에서 뻗어 나가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 LIC현대도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아시안부서가 생긴 뒤 전체 판매량이 30% 가량 늘었다. 박 대표는 “현대차를 팔면서 모국애가 커졌다”면서 “한인 1.5세, 2세들이 한국과 한국 상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 자동차를 선호할 수 있도록 한국차 알리기에 앞장 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희 기자 dhkim@koreadaily.com

2011-03-29

[심리학회 자폐 진단법] 6개 이상 해당되면 정밀 검사 받아야

다음은 미 심리학회(The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개발한 자폐 진단(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이하 DSM) 기준 항목이다. (A) (B) (C)군에서 6개 항목 또는 그 이상에 해당되면 전문가로부터 좀더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출생 직후부터 3세 전까지 해당된다. (A) 사회적인 상호 작용의 결함 -시각·청각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맞추지 못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거나 얼굴 표정과 동작이 어눌하고 이상하다. -같은 또래에 비해 현저한 행동 발달 장애를 보인다. -흥미있는 상황에 접했을 때 타인과 함께 느끼는 기쁨·성취감 등 감정적인 교류가 전혀 없고, 어떤 사물을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손짓을 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보여 주거나, 가져오지 못한다. -부모 또는 타인과의 감정 교류 및 사회적인 상호 작용에 장애를 보인다. (B) 의사 소통 장애 -또래 집단에 비해 단어 구사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대화 소통에 장애가 있다. -타인과의 대화를 스스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꾸준히 대화하는 데 심한 어려움을 보인다. -앵무새처럼 한 단어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거나 특이한 언어, 이를테면 '쿠(Coo)'라고 들릴 수도 있는 이상한 단어들을 계속 사용한다. -어떤 현상에 대해 즉흥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잘 따라하지 못한다. (C) 행동(품행)·활동 장애 -어느 한 쪽에 유난히 집착해 반응을 보이거나 비정상적인 흥미나 관심을 보이거나 집중하는 모습. -특정 분야에 병적인 집착 현상을 보인다. -반복적인 행동을 되풀이한다. 이를테면 손가락을 쉬지 않고 계속 비틀거나 손을 펄럭거린다. 또는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고 몸 전체를 복합적으로 계속 움직인다. -어떤 사물이나 물체의 한 부분에 대한 비정상적인 관심과 몰두.

2011-03-11

조기 발견 후 꾸준한 치료…자폐증, 극복할 수 있다

미 자폐연구재단(Autism Speaks Organization)에 따르면 자폐는 출생 후부터 3세 이전에 그 증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시기, 또래 집단에 비해 단어 구사 능력이나 부모·타인에 대한 정서적·신체적 반응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한 번쯤 자폐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 애는 발달이 좀 늦어요"라고 방치해 놓았다가 나중에 자폐 진단을 받고 당황해 하는 가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뉴욕한인학부모협회는 자폐 딸을 키우며 느낀 경험담을 책으로 펴낸 '낳설지 않은 아이들(Unstrange Minds: Remapping the World of Autisms)의 저자 로이 그린커(인류학) 조지 워싱턴 대학 교수를 초청, 자폐아 부모들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그는 자폐연구재단이 펴낸 '자폐 진단 후 첫 100일간 전략'이란 80페이지 분량의 소책자를 소개했다. 이 연구엔 예일대 어린이연구센터 애미 클린 박사, UCLA 교육심리학과 코니 카사리 박사, 미 국립정신건강연구소 발달신경심리학연구소 사라 J 스펜스 박사, 자폐소리재단 저랄딘 다슨 박사, 캘리포니아대학 코겔 자폐센터 클리닉 디렉터 린 케른 코겔 박사, 발달장애센터 수잔 하이먼 박사, 자폐연구소 피터 F 게르하트 회장 등 35명의 전문가들이 동참했다.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내 아이가 자폐에요"=자녀가 자폐라는 진단을 받은 부모들은 대부분 사실을 숨길뿐만 아니라 죄책감을 갖기까지 한다. 자폐는 한 마디로 언어 문제, 반복적인 행동, 그리고 사회적인 상호 작용에서 어려움을 겪는 신경장애를 말한다. 자폐 원인으로 환경·유전적 요인, 환경과 유전이 복합된 요인, 호르몬 이상 등이 제기돼 왔는데 최근 미국에서는 복합적인 유전적 이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증상은 언어 구사 장애 등 경미한 것에서부터 정신지체를 동반, 남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중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므로 조기에 발견, 치료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폐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자폐 인구 비율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폐연구재단에 따르면 자폐 인구 비율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의 경우 현재 150만 명이 자폐 진단을 받고 있다. 지난 15년 사이에 1만 명당 1명꼴이던 자폐가 지금은 150명당 1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자폐 자체가 증가한 게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통해 자폐 진단을 받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폐는 여아보다 남아에게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폐는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부모가 죄책감을 갖고 편견의 그늘에 갇힐 필요도 없다. 자녀가 자폐 진단을 받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를 받아들여 주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최근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예전 같으면 보호 시설에 위탁됐을 젊은이 수천 명이 각종 치료요법 덕분에 대학에도 진학하고, 직업인으로서도 정상적인 삶이 기대되고 있다. 치료 시기를 앞당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994년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았다는 케이트(45·가명)는 "처음엔 자폐증에 대해 무지했고,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자폐 자녀를 둔 부모들과 의사·교사들을 만나면서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고, 아들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자폐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 일하고 있는 패밀리 테라피스트 케더린 스멀링 박사는 "자폐는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만큼 가족 모두가 정신적으로 똘똘 뭉쳐 건강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 간 룰(rule)을 정해 놓고 이를 반드시 지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5가지 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의 개별적인 자폐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처방법, 관련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 및 서비스 정보를 익힐 것. 둘째, 자폐에 대한 분노 등을 가능한 억누르지 말고 자유롭게 표현할 것. 흔히 자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폐에 대한 분노와 불편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셋째, 정상 가정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삶을 즐길 것. 자폐 가정이란 중압감을 떨쳐버리고, 평범한 일상의 삶도 즐겨야 한다. 넷째, 자폐 자녀들이 보이는 조그만 성취감에도 칭찬을 해 줄 것. 예상외로 큰 진전을 보이는 다른 자폐 가정의 자녀들과 절대 비교하지 말 것. 마지막으로 자폐 관련 커뮤니티에 나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자폐 가정들의 조언을 듣고 위로를 받을 것 등이다. ◆자폐 증상 진단과 치료 방법=1974년 법으로 제정된 '장애 아동을 위한 행동 강령(IDEA)'에 따라 모든 장애 아동들은 특수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자폐아동의 경우 '조기 진단 및 중재(Early Intervention)' 서비스가 가장 중요하다. IDEA법에 따라 주마다 EI 서비스 프로그램에 할당된 연방정부 그랜트가 있다. 이에 따라 3세 이전 정신적·육체적 발달 장애 현상을 보이고 있는 아동들은 무조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I 서비스는 주마다 또는 지역마다 다르다. 이 프로그램은 규격화된 것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에 맞춘 이른바 '맞춤형 특수 교육 서비스'다. '개인·가정 서비스 플랜(IFSP)'를 통해 개인적인 심층상태를 정확하게 진단받게 된다. 이후 언어 구사 훈련, 작업 요법, 신체 훈련 심리 측정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치료를 받는다. EI 프로그램을 마친 3세 이후 아동들은 학군내에서 실시하는 특수 교육 프로그램 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인 교육을 받는다. 섀도로 불리는 ABA(Applied Behavioral Analysis) 치료요법은 아동의 특성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문제 행동을 파악해 개인별 프로그램을 짠 뒤 지속적인 반복 활동을 통해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이밖에 중추반응치료요법인 PRT(Pivotal Response Treatment), VB(Verbal Behavior) 등 다양한 기법의 훈련 과정들이 있다. 또한 자폐 증상이 정신 지체를 동반한 중증인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온 가족이 전문가들과 함께 치료에 동참해야 한다. 치료는 가정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특수 교육 센터에서 실시되기도 한다. 중증 자폐 진단을 보다 정확하게 받기 위해서는 자폐연구재단 웹사이트인 www.AutismSpeaks.org로 들어가 'ASD Video Glossary'를 참고하면 된다. 자폐 연구재단은 100일간 전략을 주별로 나누어 13주간 실시할 것을 권한다. 주별로 자세한 정보와 해야 할 역할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첫 번째 자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증상에 따른 치료 요법과 상담 기관, 치료 전문 센터 서치, 치료 전담반 구성, 실행, 평가 등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나와 있다. 이는 웹사이트 내 'First 100 Day Kit'를 참고하면 된다. ◆자폐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는 웹사이트 -Autism Speaks(www.AutismSpeaks.org) -Autism Society of Ameica(www.autism-society.org) -First Signs(www.firstsigns.org) -Interactive Autism Network(www.ianproject.org) -Organization for Autism Research(www.researchautism.org) -National Autism Association(www.nationalautismassociation.org) -Unlocking Autism(www.unlockingautism.org) -Autism Research Institute(www.autism.com) 임은숙 기자

2011-03-11

[피플@비즈] 로랜드 노말선 대표…창업 25주년 '위기는 기회' 강조

고급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로랜드’의 노말선 대표가 지난 4일 뉴욕을 방문했다. 뉴욕·뉴저지 지역에서 활동하는 방문판매 컨설턴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본사가 LA에 있는 까닭에 동부지역에 있는 컨설턴트들이 최신 정보에 뒤쳐지지 않도록 대표가 직접 뉴욕을 찾아와 정기 모임을 열었다. 4일 뉴저지주 티넥 메리엇 호텔에서 열린 컨설턴트 모임에서 노 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는 “로랜드는 25년 전 LA에서 창업한 이래 ‘새로운 기회를 창조하는 회사’로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또 “독일제품인 휘슬러 냄비와 고급 거위털 이불 등을 시작으로 우수한 품질의 생활용품을 한인사회에 판매해 왔다. 3년 전부터는 홀세일 업계에 진출, 아마존·윌리엄 소노마·니먼 마커스에 입점하는 등 휘슬러의 주류 시장 공략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랜드의 주류 진출엔 그의 딸인 프랜시스 노 부사장의 공이 컸다고 한다. 2세인 프랜시스는 아버지의 사업을 한 단계 발전시켜 주류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것. 덕분에 일본에서 만든 친환경 수세미 ‘굿바이 세제(Goodbye Detergent)’는 LA현대미술관(MOCA)·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유명 박물관 기념품숍에 입점하기도 했다. 노 대표는 “경기침체로 위기가 닥쳤지만 우수한 상품으로 주류시장을 뚫은 덕분에 홀세일 분야 매출은 지난 1년 새 4배나 성장했다”며 “오는 4월부터는 로랜드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과 지역 컨설턴트를 소개해주는 등 전자상거래 분야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기가 닥쳤을 때라도 열의를 가지고 자기가 설 자리를 찾아보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선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토대를 잘 닦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희 기자 dhkim@koreadaily.com

2011-03-07

[피플@비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벡…"한국 패션 뉴욕 진출 도울 것"

뉴욕 패션계 네트워크를 꽉 잡고 있는 한인 젊은이가 있다. 광고기획사인 ‘립맨’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하고 있는 조 벡(32·본명 조엘 킴벡). 한인 3세인 그가 미국식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김씨인 할아버지와 백씨인 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오면서 두 성을 합쳐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벡은 뉴욕의 유명 광고기획회사인 베런&베런·마크도프만 컴퍼니를 거치며 캘빈 클라인·휴고 보스 등의 광고를 기획했고, 지금 다니는 립맨에서는 저스트카발디·라프시몬스 등의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 각 브랜드에서 광고할 시즌 콜렉션을 분석,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또 포토그래퍼·그래픽 디자이너 등 제작진을 직접 섭외하고 있어 패션계 네트워크에 정통하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영국·일본·한국 언론사에 칼럼을 주기적으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패션계 지망생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부족합니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패션계의 다양한 직종을 소개하는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시야를 넓혀주고 싶습니다.” 벡은 한국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고려대)를 졸업,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을 거쳐 뉴욕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한국 패션 콘텐트가 뉴욕에 진출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 디자이너 해외 진출 프로젝트인 ‘컨셉 코리아’의 컨설턴트를 맡고 있는 것. 지난 9월 개최된 뉴욕패션위크 컨셉 코리아 행사와 관련된 스태프·초청인사들을 직접 섭외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패션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 한국 패션의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해 기쁩니다.” 한국 패션 콘텐트의 뉴욕 진출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한국적인 것을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패션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시키고자 한다면, 현지 전문가들이 이해하도록 이곳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어야 해요. 현지 상황에 정통한 PR회사 등 스태프와 협업하는 것이 최적의 현지화 전략입니다.” 벡은 한국 월간지에 연재 중인 칼럼을 모아 곧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그의 칼럼은 블로그(blog.naver.com/uplifter)에서 볼 수 있다. 양영웅 인턴기자 jmhero@koreadaily.com

2010-12-20

[피플@비즈] "실력은 기본…협동심 길러야"

“패션 센스보다 새로운 디자인 방향을 조율하는 소통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유명 패션 브랜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에서 여성의류 디자인팀장으로 활동하는 수잔 이씨. 그는 여성복 디자인 기획을 제품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중책을 맡아 젊은이의 패션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씨는 “패션업계를 선도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회장의 철학을 따르면서 젊은이의 트렌드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며 “회사가 제시하는 비전과 테마에 맞춰 디자인 방향을 조율하는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르마니 익스체인지는 명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5개 패션라인 가운데 하나로, 젊은층을 겨냥해 트렌디하면서 고품질을 추구하는 브랜드로 통한다. 이 팀장은 여성의류 디자이너 5명의 패션 방향을 제시하고 총괄한다. 또 마케팅·판매·제작 부서의 의견을 반영해 전체적인 제작과정을 조율하기도 한다. 팀장으로 디자이너도 직접 뽑는다. 실력은 기본이고 창의적인 생각과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패션산업에 유용한 전문 기술을 익히기 위해 지난 1996년 파슨스 패션스쿨에 입학했다. 졸업 후 랄프로렌·DKNY를 거쳐 2003년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4년 만에 팀장이 됐다. 패션 디자이너가 넘치는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찾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이 많으면 부정적 이미지로 비춰지는 한국의 직장 문화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우선 실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지요.” 이씨는 젊은층의 패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젊은 한인 디자이너 모임인 ‘D2(Design of 2nd Generation)’ 회원들과 매주 만나 패션 트렌드를 분석한다. 그는 “한인 패션 지망생들이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르마니 그룹은 디자이너와 경영인을 동급으로 취급한다”면서 “디자인과 경영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경영진이 되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양영웅 인턴기자 jmhero@koreadaily.com

2010-12-15

[피플@비즈] 한·미 잇는 광고시장 개척

한인기업이 미국과 한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온라인 광고시장을 개척, 화제가 되고 있다. 뉴저지주 온라인 광고회사 ‘애드마루네트워크(www.admaru.com)’는 미국에서 한국의 포털사이트나 주요 언론사 웹사이트에 접속할 경우 미국회사 배너가 뜨면서 광고 효과를 누리는 이른바 'IP 타깃' 방식을 도입했다.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과 중앙일보 조인스msn·조선닷컴·동아닷컴 등 주요 언론사 웹사이트를 통해 버라이즌·로우스·PNC뱅크 등 10여 개 배너 광고를 하고 있다. 이진규·양수석 공동 대표는 “한국의 웹사이트를 볼 때마다 미주 한인과 상관없는 한국 광고가 나오는데 이는 100% 버려진 공간”이라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 공간을 활용해 미국 업체에는 새로운 광고시장을 열고, 한국 매체에는 온라인 광고를 수출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애드마루는 미국의 대형기업이 활용하는 온라인 배너광고 대신 일반 한인들도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키워드’ 광고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그래픽 광고 대신 텍스트 문자 위주의 광고로 효과를 얻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식당이나 변호사·의사 등도 한국의 주요 웹사이트를 통해 문자 광고를 할 수 있도록 마케팅 공간을 확대하고 있는 것. 애드마루는 이를 위해 최근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MBA) 와튼스쿨을 졸업한 이 대표는 앞서 한글 모기지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올웨이즈닷컴’을 운영하기도 했다. 파트너 겸 기술책임을 맡고 있는 양 대표는 아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미국에 왔다. 이들은 새로운 온라인 광고시장을 열 목적으로 의기투합해 지난해 애드마루를 설립했다. 551-795-4518. 이중구 기자 jaylee2@koreadaily.com

2010-11-19

[피플@비즈] 입문 3년 만에 패션계 '주목'

“뉴욕은 한인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기회의 장입니다.” 라스베이버스·뉴욕·파리 돌며 유명 트레이드쇼서 콜렉션 소개 17일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뉴욕(9월)과 파리(10월)에서 잇따라 유명 의류 트레이드쇼 ‘캡슐쇼(Capsule Show)’에 의류브랜드 ‘SHIN’ 가을 콜렉션을 선보이는 윤신원씨. 윤씨는 유럽 유명 디자이너 씨네온·피터 젠슨 등과 함께 이 트레이드쇼에 참여한다. 윤씨가 SHIN을 런칭한 지 1년반 만의 일이다. SHIN은 같은 옷이라도 다양한 형태로 연출해 입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스타일이 의류 바이어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이탈리아·핀란드의 유명 의류숍에 입점했다. 지난 6월엔 한국 갤러리아 백화점의 ‘스티븐 알렝’ 매장 내 유망 디자이너 콜렉션에 한인으로는 처음 진출했다. 윤씨는 한국에서 일하던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와 FIT에서 1년 공부한 것 외에는 특별히 패션 관련 수업을 받은 것이 없었다. 그런 윤씨가 2007년 젠 아트(Gen art) 그룹 선정 유망 디자이너에 뽑힌 후 2009년 초 SHIN을 런칭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리하게 사업을 크게 시작하지 않고 내가 감당할 만큼의 소규모 라인업을 준비했다”며 “한 가지 소재와 화이트·블랙 색상을 쓰되 디자인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윤씨가 패션계에 입문했던 2007~2008년은 패션 경기가 좋지 않았다. 그는 이때 유행을 쫓지 않고 한정된 수량과 라인업을 공급하는 디자이너 콜렉션 의류를 추구했다. 윤씨는 또 의류 스케치 후 주요업무를 전문 재봉사와 공장에 맡기는 패션디자이너들과 달리 본인이 모든 제조 공정을 주도한다. 그는 “원하는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재봉사와 수시로 이야기하고 피팅모델도 내가 직접 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에서 한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위상이 높고 인적 네트워크도 잘 구축돼 있다”며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양영웅 인턴기자 jmhero@koreadaily.com

2010-08-16

[피플@비즈] 유대인·이탈리안 아성 뚫고, 한인 최초로 풀턴 시장 입성

직원 23명에 5천만불 매출 목표 "100년 이상 된 업체들 능가할 것" 유대인과 이탈리안이 장악하고 있는 브롱스 뉴풀턴피시마켓. 이 곳에서 이세훈(58·사진) 사장은 40여 도매상 중 유일한 한인업체인 ‘캡틴블루’를 2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뉴욕시 수산물 도매시장 역사상 한인이 도매상을 단독 운영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아시안이 도매상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오랜 경력과 신원조회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엄격한 심사뿐만 아니라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과 이탈리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도 만만찮다. 이들은 기존 도매업체가 매물로 나오면 다른 민족이 사지 못하게 서둘러 매입해 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수산물 바이어는 도매상을 하는 게 꿈이지만 아시안은 감히 들어오려고 마음을 못 먹을 정도로 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창업 비용만 수백만달러에 이른다. 이 사장도 10년의 오랜 준비 끝에 어렵게 도매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 23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캡틴블루의 올해 매출 목표는 5000여만달러. 캡틴블루가 취급하는 어종은 50여가지로 1주일에 60만파운드의 수산물을 거래한다. 이 사장은 “수산물 도매업은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해야 하는 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밤 12시에 출근해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퇴근한다. 바이어일 때는 하루 20시간씩 일하는 것은 예사였다. 따라서 고생할 각오와 열정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 이 사장은 1987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당시 수산물 배달직원을 구하는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인연이 돼 발을 들여놓게 됐다. 대부분 사람은 냄새 나고 힘든 일이라 기피했지만 이 사장은 ‘이게 바로 천직’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생선 냄새가 너무 좋고 틀에 박힌 일보다는 땀 흘리며 일하는 직업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100년 이상 영업해 오고 있는 기존 도매상과의 경쟁에서 이겨 시장 내 최고 도매상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인 소매업자들에게 보다 싼 가격으로 싱싱한 수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권택준 기자 tckwon@koreadaily.com

2010-08-13

[피플@비즈] 랄프 로렌 제품 개발 디렉터 김소희씨, "성공 비결은 꿈과 도전 정신"

“꿈과 열정이 있으면 길은 반드시 열리기 마련이죠.” 세계적인 패션업체 랄프 로렌의 ‘럭비(Rugby)’ 브랜드에서 제품 개발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김소희씨. 4일 맨해튼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한인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미국 패션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는 영어가 짧아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등의 소극적인 생각을 버리고 일단 도전할 것을 강조했다. 아직도 백인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 패션업계에서 김씨가 디렉터까지 오르게 된 데에도 이런 도전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김씨가 패션업계에 종사한 지는 20여년으로 그동안 앤 테일러, 리미티드, 세인트 존스 등 유명 패션업체에서 디자이너를 거쳤다. 김씨의 손을 거쳐 시장에 나오는 신제품은 연간 500~600가지에 달한다. 전국에 11개 직영매장을 둔 럭비는 10대 후반~20대 후반의 젊은층을 타깃으로 하며, 미국 프렙스쿨 복장이 컨셉이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김씨는 같은 분야를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왔으나 1년 만에 집어치우고 평소 하고 싶었던 패션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오하이오주 ‘컬럼버스 칼리지 오브 아트 앤 디자인(CCAD)’에서 광고와 패션디자인을 공부한 김씨는 졸업 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가져다 놓고 패션회사마다 일일히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한 회사에 운 좋게 채용이 됐고, 그때부터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패션업계에 발을 디딘 김씨의 생활은 한 마디로 ‘전쟁’이었다. 미숙한 영어와 소수민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하는 길밖에 없었다. 김씨는 “처음 5~6년 동안은 회사에서 가장 늦게 퇴근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고 그 결과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상사가 맡긴 일은 두 번 묻지 않을 정도로 제 시간 안에 깔끔하게 처리해냈다. 언어적인 문제로 힘들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럴 때일수록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일했다. 김씨는 “미국인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며 “미국 패션업계에서 한인 디자이너들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 사고 방식으로 도전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권택준 기자 tckwon@koreadaily.com

2010-08-05

[피플@비즈] ‘프레드릭 페카이’ 헤어스타일리스트 브랜든 신씨

“재능을 함께 나누는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맨해튼 5애브뉴, 56스트릿 헨리벤델 백화점 내 유명 미용실 ‘프레드릭 페카이(Frederic Fekkai)’ 본점의 헤어스타일리스트인 브랜든 신(34)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용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와 한 분야에 ‘올인’한 덕분에 지금은 다른 미용사들의 교육을 담당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프레드릭 페카이는 뉴욕·캘리포니아·플로리다 등지에 7곳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결혼식을 올린 첼시 클린턴의 머리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본점 직원만 100여명. 이 중에서 헤어컷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은 신씨를 포함해 모두 4명이다. 프레드릭 페카이는 미용사의 실력에 따라 125~205달러의 헤어컷 요금을 부과한다. 신씨가 받는 요금은 프레데릭 페카이에서 두 번째로 비싼 185달러다. 신씨는 “체계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싶어 미국 미용업계를 노크했다”며 “힘은 들었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단골 고객으로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한 앤 헤서웨이, 모델 몰리 심스, 중국계 스타 피아니스트 랑랑 등이 있다. 19살 때 미국에 온 신씨는 1년 후부터 미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김선영 미용실에서 기술을 익힌 후 1999년 한인으로는 처음 프레드릭 페카이에 입사했다. 부모의 반대와 언어 장벽 등 어려움이 컸지만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오기로 견뎌냈다. 처음 2년 동안은 영어가 서툴러 말이 없는 사람으로 통할 정도였다. 하지만 실력을 인정한 프레드릭 페카이 원장이 그를 보조로 선택하면서 남보다 빨리 탄탄한 실력을 다지게 됐다. 신씨는 “몇번 오지 않는 기회에 실수 없이 일을 한 것이 보조로 발탁된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운이 좋았”고 말했다. 좀 더 많은 한인 미용인들이 자신감을 갖고 미국시장에 진출했으면 한다는 그의 꿈은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신씨는 “늦어도 5년 후에는 시작할 계획”이라며 “당당히 내 이름을 건 살롱에서 훌륭한 후배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날이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희숙 기자 hs_ny@koreadaily.com

2010-08-04

[피플@비즈] 맨해튼 김선영 미용실 리사 김 원장…직원들에 경영 가르쳐 창업 지원

맨해튼 32스트릿에 있는 김선영 미용실. 한인타운에 자리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민족 고객이 80%에 이른다.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19일 한미미용인연합회 세미나에서 후배 미용인들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한 리사 김(65) 원장을 24일 미용실에서 따로 만나 못 다한 얘기들을 들어 봤다. 올해로 개업 20주년을 맞은 맨해튼 김선영 미용실의 강점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영 시스템이다. 헤어컷 스타일을 패턴화해 사용하고, 서비스 전 상담을 통해 고객의 스타일을 찾아 준다. 바로 이 점이 타민족 고객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직원 교육에도 각별히 공을 들인다. 김 원장은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옷차림에서부터 뮤지컬 관람 등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일까지 챙긴다”고 말했다. 또 미국 미용업체 관계자들과 만날 때 직원과 함께 가거나 각종 세미나에 참석시켜 최신 유행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선영 미용실의 직원은 파트타임을 포함해 25명. 개업 당시의 5배에 달한다. 그는 ‘뻔뻔함’과 ‘적극성’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기죽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것이다. 개업 초기 위기감을 느낀 김 원장은 미국 미용업계에 손을 내밀었다. 김선영 미용실을 알리기 위해 필요 이상의 제품을 사면서 회사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교육에 적극 참여하며 업계 정보와 기술을 습득한 후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직원 교육에 활용해 왔다. 김 원장은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미국업체 관계자들과 얘기를 하다가도 막히면 바로 말을 막고 비서를 불러 통역을 시키며 묻고 싶은 질문을 하고 답을 얻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경기 침체로 다시 한 번 위기감을 느낀 그는 대부분 등한시하는 남자 헤어컷 패턴을 구축해 재미를 보기도 했다. 김 원장의 꿈은 세계 패션의 수도인 뉴욕 곳곳에 김선영 미용실 간판을 내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력 7년 이상 직원들도 창업반을 운영하면서 독립을 돕고 있다. 자금 관리 등 경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 준다. 현재 베이사이드와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에 있는 김선영 미용실이 창업반의 결실이다. 김선영 미용실은 김 원장의 큰 언니인 김선영씨가 1957년 한국 명동에서 창업했으며, 현재 청담동에 본점을 두고 세계 50여곳에 직영점과 체인점을 운영 중이다. 최희숙 기자 hs_ny@koreadaily.com

2010-07-26

[피플@비즈]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고위직에 오르려면 원하는 분야에 대한 이해를 쌓고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지난달 30일 열린 아시안여성경제인협회 리더십 컨퍼런스에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씨티그룹 프라이빗뱅크 법률팀장(General Counsel) 밀리 김(49·사진)씨는 무슨 일에든 실패를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씨티그룹 법률팀 서열 3위인 김씨는 아시안 여성으로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 아시아·유럽 등 세계 지사를 포함해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변호사는 45명. 언젠가는 최고의 자리인 씨티그룹 총괄 고문 변호사(General Counsel of Citigroup)로 올라갈 수 있는 위치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인 그는 웰슬리대에서 경제·정치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학 법대를 졸업했다. 씨티그룹에는 1995년 입사했다.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법률부서에서 일을 하다 1998년부터 국제투자부문 총괄 고문 변호사로 활약해 왔으며, 4개월 전 프라이빗뱅킹 법률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항상 열정을 갖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그는 이번 부서 이동도 새로운 변화를 찾아 시도한 것이다. 성공한 변호사인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법대 재학 시절 변호사 가정 출신인 대다수 동료들과 달리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전문가가 없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며 대처한 덕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적극 활용해 어려움을 극복할 것도 조언했다. 김씨는 “20여년 전에 비해 법률 분야에 진출하는 아시안은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월가에는 충분치 않다”며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많은 만큼 한인 2세들이 적극 도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희숙 기자 hs_ny@koreadaily.com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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