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칼럼 20/20] 도널드 트럼프의 그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단임 임기 중 3명의 대법관을 지명했다. 트럼프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대통령들의 대법관 지명을 보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4번으로 가장 많다.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H.W. 부시 등은 각각 두 차례 지명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연임해 임기가 트럼프에 비해 2배였던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3회는 상대적으로 많다.     트럼프는 임기 중 첫번째로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후임으로 닐 고서치 플로리다주 연방 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2018년 10월에는 작고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자리에 브렛 캐버노 판사를 불렀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20년 9월에는 제7 순회항소법원 판사 에이미 코니 배럿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트럼프는 전체 대법관 9명 중 3분의 1을 자신과 이념적 성향을 같이하는 인물로 채웠다.     트럼프 시대는 4년, 재선에 성공했어도 8년에 그치지만 대법관의 임기는 종신이다. 법관 임기는 4년마다 새 대통령이 선출돼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 없다. 정권에 구애 받지 않고 철저하게 법정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도록 배려한 자리다.     대법관은 자의로 물러나거나 은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를 제한 받지 않는다. 스티븐 브라이어(83) 법관도 은퇴를 선언해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지명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법관이 뒤를 잇는다.     하원이 대법관을 탄핵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탄핵에 의해 물러난 경우는 1건밖에 없다. 1805년 탄핵이 이뤄진 후 전무한 상태여서 대법관을 해임하는 장치는 사실상 없다. 대법관 직무를 지속할 수 있는 조건도 ‘좋은 행동(good behavior)을 하는 동안’이라고 모호하게 규정해 놓았다.     상원을 통과해야 최종 임명되지만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의 지명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상원의 역할은 승인이 아니라 권고와 동의다. 미국 역사상 상원에서 기각이나 연기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거부’로 대법관 임명을 좌절시킨 경우는 12건에 불과하다.     지난주 연방대법원은 헌법적 권리인 낙태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 49년 전 여성 낙태를 인정한 판결을 폐기한 것이다. 9명의 대법관 중 새뮤얼 얼리토, 브렛 캐버노, 클래런스 토머스, 에이미 코니 배럿, 닐 고서치 등 5명이 폐기에 찬성을 표시했다. 5명 중 3명이 트럼프가 지명한 대법관이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의 보수성향 판사 임명으로 대법원이 보수화한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취임 당시 연방대법원은 대략 보수성향 판사 4명, 진보성향 4명, 중도 1명의 구성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로 크게 기울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닐 고서치를 지명할 때 그의 나이는 49세였다. 트럼프는 고서치를 지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젊은 고서치의 나이를 거론하면서 “그의 판결은 한 세기 또는 그 이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법원에 꽂은 보수의 깃발은 역사의 흐름을 뒤흔드는 판결을 가져왔다. 앞으로 총기소지, 이민정책 종교자유 등  보수·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대한 법적 논쟁도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나라를 수호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대법원 판사를 지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대법원에 보수판사가 다수가 되면 진보 판사들의 결정이 수정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그림자는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김완신 / 뉴스룸 에디터칼럼 20/20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법관 지명 트럼프 시대

2022-06-30

[칼럼 20/20] 식량 전쟁

식량 전쟁은 말 그대로 식량을 무기로 싸우는 것이다. A와 B라는 국가가 있다. 농지가 부족한 A는 식량을 전적으로 B에 의존한다. 두 나라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다. 갈등은 두 가지 상황에서 생긴다. 첫째는 B의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해 수출을 할 수 없는 경우다. 둘째는 양국 관계가 나빠져 의도적으로 식량 수출이 중단된 경우다.     식량 전쟁은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생소한 용어가 됐다. 글로벌 시대에 식량을 무기로 전쟁에서 이기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다. 식량 무기화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일단 식량은 대체성이 강하다. 특정 식량을 구하지 못했을 때 대신할 식품이 많다. 밀이 주식이어도 최악의 상황에서는 밀만 고집할 수 없다. 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다른 식량을 찾으면 된다.   또한 수입 곡물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건이 조금 나빠도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이 가능하다. 20세기 이전에는 각국의 무역이 다변화되지 못했다. 특정 국가의 수입로가 막히면 대체 국가를 찾기 어려웠다. 지리적으로 먼 국가는 운반도 용이하지 않았다.      이외에 식품의 가공·보존 기술의 발달로 비상시 대비 다량의 식량 저장이 가능해진 것도 식량 무기화를 약화시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식량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역사학과 교수는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해상을 러시아가 봉쇄하면 아프리카 등에서 수천만 명이 기아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단, 에티오피아, 예멘 등이 직접적인 피해 국가이다. 레바논과 시리아도 밀의 70% 이상을 우크라아나에서 가져온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식량 위기를 초래해 유럽을 자극하겠다는 푸틴의 전략이다.     유엔식량계획(WFP)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심한 식량 불안정을 겪을 인구를 5000만 명 정도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식량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식량 문제가 시급하지 않은 국가들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식량 위기를 예상해 사재기에 나설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전쟁 전후로 미국과 우크라이나에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곡물을 수입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생산된 식량의 총 칼로리는 인구 1명당 3000칼로리가 넘는다. 그럼에도 지구 인구의 10~15%가 기아를 겪고 있고 그 중 일부가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저서 ‘세계의 기아: 12가지 신화’에서 식량 문제의 원인을 인구 과잉이나 자연 재해가 아닌 불공정한 분배에서 찾고 있다. 생산량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잘못된 분배로 특정 국가나 사회 집단에 편중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식량 무기화는 위험한 발상이다. 무기화로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미국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에 판매되는 식량을 막았지만 수출로가 막힌 식량 가격이 급락하면서 결국 미국 정부의 손실로 돌아왔다.     푸틴은 글로벌 식량 위기를 서방의 제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푸틴은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해제되면 농산물을 수출하겠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푸틴은 에너지에 이어 식량을 볼모로 힘든 싸움이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푸틴의 식량 무기화가 서방을 겨냥하고 있지만 식량 부족의 피해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난한 국가들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식량은 생명과 인권의 문제다. 식량을 무기로 한 저급한 방식의 전쟁은 승패와 상관없이 도덕성에 치명상을 가져온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굶주림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기아가 생긴다’고 말한다. 연민 없는 권력은 항상 위험하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식량 전쟁 식량 전쟁 식량 무기화 식량 생산량

2022-06-16

조지아센추럴대학교 뉴저지 분교 개설

30년 전통을 가진 조지아센추럴대학교(GCU: Georgia Central University·이하 GCU)의 뉴저지주 해켄색 분교가 올해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GCU는 김창환 총장이 1993년에 신학교로 설립했으며, 2003년 조지아주 사립고등교육국(GNPEC)으로부터 종합대학으로 승인을 받았다. 또한 뉴저지주에서는 주정부 사립고등교육국(OSHE)으로부터 2021년 재승인을 받았다. 이는 10여 년간에 걸친 노력의 열매로 뉴저지주 고등교육부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음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GCU는 ▶TRACS 정회원(2009~2017)을 시작으로 ▶ATS 정회원(2017) ▶2018년도에 ATS 철학박사 및 온라인 프로그램 승인 ▶ABHE 가입 승인을 받았고 ▶애틀란타 본교와 뉴저지 분교에 각각 별도의 SEVIS I-20 허가를 받아 F-1, J-1 비자신청 자격을 갖추게 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선교를 지향하는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GCU는 현재 연방 교육부와 고등교육국(CHEA)의 인준을 받은 ATS 및 ABHE 회원 대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GCU는 탁월한 교수진을 바탕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교육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데, 캠퍼스 및 실시간 화상·온라인 등 최적화된 학습환경과 멘토링 시스템으로 학생들에게 최적의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MDIV 졸업시에는 인준 교단에서 목사 안수 기회가 제공되며, 특히 뉴저지 분교 개설과 함께 신대원지원자들에게는 2022년 가을학기 입학생들 전원에게 졸업까지 수업료 장학금을 50%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GCU의 뉴저지 분교는 현재 2022년 가을학기(8월 15일 개강)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졸업생들에게는 ▶ESOL ▶경영대학 ▶기독대학 ▶컴퓨터공학대학 ▶음악대학 ▶신학대학원에서 14개 분야의 학위를 수여한다. 각 대학별로 ▶경영대학은 경영학학사(BABA)·석사(MBA) ▶기독대학은 신학학사(BATS)·기독교교육학(BACE) ▶컴퓨터공학대학은 컴퓨터준학사(AACS)·컴퓨터 학사(BACS) ▶음악대학은 음학학사(BAM)·음악석사(MAM)·음악박사(DMA) ▶신대원은 목회학석사(MDIV)·기독교교육학석사(MACE)·선교학 석사(MAMSWC)·목회학 박사(DMIN)·철학박사(PHD)·문화인류학 과정이 있다. GCU는 한인신학교 중에서 처음으로 ATS에서 Ph.D. Intercultural Studies 박사학위를 인가받아 현재 우수한 박사과정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설립자이며 신학박사인 김창환 총장은 “이번 기회에 신학과 음악 등 다양한 과정에 석사는 물론 박사학위까지 많은 분들이 지원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또 “조지아센트럴대학교는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졸업 후 혜택이 가능하다”며 “교육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인 만큼 뉴저지 캠퍼스의 2022년 가을학기에 많은 학생들이 지원해 주기를 기대한다”며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아프리카·동남아·중남미 등에서 학생들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지아센추럴대학교(메인캠퍼스) ▶주소: 6789 Peachtree Industrial Blvd. Atlanta, GA 30360 USA ▶전화: 678-535-7771 ▶이메일: admissions@gcuniv.edu ▶웹사이트: www.gcuniv.edu.   ◆뉴저지 분교 ▶주소: 309 State St. Hackensack, NJ 07601 USA ▶디렉터: Dr. Sun Hee Choi ▶전화: 201-566-0452, 678-535-7771 ▶이메일: sunnychoi77@gcuniv.edu.     ◆입학/편입 안내 ▶이메일: admissions@gcuniv.edu ▶전화: 678-535-7771/ 678-935-0334. 글·사진=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조지아센추럴대학교 뉴저지 분교 조지아센추럴대학교 GCU 김창환 총장 Georgia Central University 해켄색 분교 SEVIS I-20 허가 뉴저지 분교 ATS정회원

2022-06-14

[칼럼 20/20] 타들어가는 땅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1930년대 배경의 가난한 소작농 톰 조드 일가 이야기다. 대공황과 중서부 대평원 가뭄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조드는 캘리포니아 이주를 결심한다. 조드가 살던 오클라호마는 콜로라도, 캔자스, 텍사스, 뉴멕시코 등과 인접한 평야 지대다. 모래폭풍이 자주 발생해 ‘더스트 보울(Dust Bowl)’로 불렸던 곳이다.     1930대 초반 이 지역에 최악의 가뭄이 몰아쳐 4년간 계속됐다. 경작지 난개발로 습지는 사라지고 관목은 제거돼 땅은 물을 품지 못했다. 여기에 장기간 가뭄이 덮쳐 일대의 마른 표토가 바람에 날리면서 거대한 모래폭풍이 지역을 강타했다. 농장 지대는 경작이 불가능한 황무지로 변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가뭄 중 하나다.     소설 ‘분노의 포도’ 앞 부분에는 하늘을 꺼멓게 가린 흙먼지를 묘사한 대목이 자주 나온다. 주민들은 뜨겁고 따가운 공기에 타들어가는 옥수수 밭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거친 땅은 1930대 후반 가뭄이 해소되면서 농지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 20만 명이 넘는 주민이 가뭄을 피해 캘리포니아 등 서부로 이주했다. 조드 일가의 이주는 대공황기의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었지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만든 가뭄도 이유가 됐다.     현재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2000년 시작된 가뭄은 20년 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0년간 최악의 가뭄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물 부족 사태로 강제절수령이 내려졌다. LA시는 지난 1일부터 야외 물 사용을 주 3회에서 2회로 제한했다. 주거용수의 70%를 차지하는 야외용 물을 절약하기 위한 조치다. 절수령 목표는 사용량의 35% 감축이다.     주민들에게 물 절약을 당부하고 있지만 사용량은 오히려 급증했다. 캘리포니아 수자원관리국의 7일 발표에 따르면 LA를 포함한 남부 해안지역의 지난 4월 물 사용량은 2020년과 비교해 25.9% 늘었다. 이 지역은 가주 전체의 절반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다.     최근 CNN방송은 중가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게리 빅스 일가를 인터뷰했다. 장기간 가뭄으로 농장에 파 놓은 우물은 10년 전부터 물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물탱크의 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물 맛은 형편 없다.     농장은 물이 없어 경작이 어려운 상황이다.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도 부족하다. 먹고 씻을 물은 아들과 손녀가 타운에 나가 가져오고, 세탁은 물을 구할 수 있는 인근 도시로 나가 해오고 있다.     2000년 이후 캘리포니아 강수량은 크게 줄어든 반면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져 증발되는 물의 양은 오히려 늘었다. 이전과 같은 강수량에도 물은 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물 절약에 대한 인식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빅스는 “가뭄과 물 부족 사태로 농장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다”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농토는 황무지로 변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지금 72세인 그는 자신의 10대 때를 회상한다. 당시 가족이 운영하던 과수원에는 오렌지와 피칸 나무가 풍성하게 자랐고, 그의 아버지는 넓은 땅에서 알팔파를 키우며 소와 양을 방목했다.     그런 땅에 지금은 흙먼지만 날리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곡창에 더 이상 농산물을 재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을 우려한다.     소설 ‘분노의 포도’의 조드가 가뭄 재앙을 피해 오클라호마를 떠나 이주해 온 곳이 센트럴 밸리다. 빅스 일가의 농장이 위치한 지역이다. 넓은 평야에 펼쳐진 비옥한 땅, 시에라 산맥의 눈 녹은 맑은 물… 90년 전 조드 일가는 센트럴 밸리의 들판에서 새 삶을 기약했었다. 그 땅이 지금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캘리포니아 이주 캘리포니아 수자원관리국 장기간 가뭄

2022-06-09

[칼럼 20/20] 인종주의와 총기규제

미국적인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두 가지 문제는 ‘인종’과 ‘총기’다. 인종 문제는 흑인 노예를 데려온 ‘원죄’로 지금도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다인종 국가 미국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됐다. 총기는 규제의 어려움이 문제다. 총기 소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돼 정부 제재를 벗어나 있다.     인종주의와 총기문제는 각각 미국 사회의 병폐로 작용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둘의 결탁이다. 인종주의자의 손에 총기가 쥐어진 경우다.     14일 뉴욕주 버펄로 마켓에서 18세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했다. 용의자 페이튼 젠드런은 자신을 백인우월주의자·반유대주의자라고 밝히고 ‘흑인을 많이 죽이겠다’고 공언했었다. 다른 마켓에서도 흑인 총격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11일 댈러스 한인 미용업소에서도 무차별 총격이 발생했다. 경찰은 인근 아시안 업소 4곳도 피해를 당했다며 인종 증오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체포된 용의자 제레미 테론 스미스는 아시안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인종주의에 총기가 합쳐지면 대량살상의 개연성은 커진다. 범행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증오하는 인종의 다수를 겨냥한다. 대량살상(Mass Killing)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총기범죄기록보관소(GOA)의 기준인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를 대량살상으로 분류한다. 이전에 발생한 인종 관련 총격은 대부분 대량살상의 참극으로 끝났다.     인종 갈등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총기는 범죄의 주요 수단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2019년 통계에서 미국인 10만 명당 4.38명이 총기로 피살됐다. 총기를 사용한 자살과 총기 오발로 숨진 사고를 포함하면 10만 명당 12.21명(2017년 기준)으로 높아진다. 미국의 총기살해 비율은 세계 전체 순위에서는 낮지만 선진국 중 단연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한다. 2016년 기준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총기로 사망했고 그중 미국은 3만7200명이 숨져 브라질 다음으로 많다. 총기 사망자 톱10에 선진국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최근 수년 사이 인종주의와 총기난사가 결합한 대형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19년,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히스패닉을 증오하는 백인 남성이 총기를 휘둘러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성명서를 통해 히스패닉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는 ‘인종 투쟁’을 외치는 용의자의 총에 9명의 흑인이 숨졌다.     이전 미국의 인종 갈등은 흑백간의 문제였다. 하지만 라틴계와 아시안 등의 이민자가 늘어 양상이 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시작하면서 아시아 증오범죄가 급증했다. 아시아태평양계 단체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증오범죄가 3.5~4배 폭증했다. 지난해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으로 한인을 포함해 8명이 사망했다. 백인 인종주의자의 아시안 증오가 범행동기였다.     총기 반대론자는 총기 소유가 범죄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연방수사국(FBI)이 2019년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행 도구를 조사한 결과다. 총 1만3922건 중 1만258건에서 총기가 사용됐다. 4명 중 3명이 총기에 목숨을 잃었다.     버펄로 참극으로 인종주의자의 증오범죄에 비난이 거세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인종주의와 폭력은 혐오스럽고, 미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범행의 도구가 됐던 총기 규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불식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인종주의자의 손에 총기가 들려지지 않게라도 해야 한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인종주의 총기규제 인종 증오범죄 총기 사망자 총기살해 비율

2022-05-19

[칼럼 20/20] 차별의 벽을 넘는 사람들

차별은 편견에서 비롯된다. 정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갖는 선입감이 편견이다. 편견에 기반해 인종, 성별, 성정체성, 종교 등에서 특정 그룹에 속한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차별이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자의적 편견으로 불공정하게 대우하고 통제한다. 주관적 사고와 연결된 편견이 시정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때 차별이 생긴다. 편견 바로잡기가 힘든 만큼 차별의 벽은 높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과 행정부의 주요 인선에서 ‘첫’이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역사상 최초로 차별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첫 흑인 남성 로이드 오스틴이 국방장관에 임명되고, 아메리칸원주민 출신의 데브 할런드가 내무장관에 발탁되면서 인종의 차별을 깼다. 원주민 출신 장관은 건국 245년 만에 처음이다. 첫 여성 재무장관으로 재닛 옐런이 취임해 성별의 벽도 무너졌다. 동성애자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취임은 성소수자 차별의 경계를 지웠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여기에 또 다른 ‘첫’번째를 더했다. 지난 5일 바이든은 카린 장-피에르를 백악관 새 대변인에 임명했다. 첫 흑인 여성이자 첫 성소수자 백악관 대변인이다. 또한 카리브해 프랑스 레지옹 마르티니크에서 출생한 이민자 출신이기도 하다. 아이티계 부모에게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메리칸드림의 전형이다.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어머니는 병원노동자로 어려운 이민생활을 했다.     뉴욕 퀸즈에서 성장해 뉴욕공대(NYIT)를 졸업한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과 2012년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 백악관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선거운동에 관여했고 지난 바이든 선거에서도 캠페인 본부의 중책을 맡았다. MSNBC 방송에서는 정치 평론도 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자리는 세계의 ‘얼굴’이다. 백악관의 모든 발표는 전 세계로 보도 되고, 그 중심에 장-피에르 대변인이 있다.     흑인 여성 대변인 임명으로 인종과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장-피에르는 이번 대변인 승진으로 최근 임명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등의 흑인 여성 정치인과 공직자 명단에 이름을 추가했다. 전임 젠 샤키 백악관 대변인은 흑인 여성 후임과 관련해 “(장-피에르는)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라고 평했다.     장-피에르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극복했다. 16세 때 부모에게 성소수자임을 밝혔고 당시 어머니의 당황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한다. 그 후 수년간 자신이 성소수자인 사실은 가족만의 비밀로 지켜져 왔다고 한다. 그는 여성 파트너 CNN방송 언론인 수잔 말보와의 사이에 입양한 딸을 두고 있다. 지금은 어머니가 입양한 딸의 좋은 할머니가 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2007년 낸시 펠로시 의원은 200년 넘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에 취임했을 때 “나는 우리 딸과 손녀들을 위해 대리석 천장(Marble Ceiling)을 깼다”고 말했다. 대리석 천장은 여성의 정계 진출에 장애가 되는 편견과 차별을 의미한다. 불과 15년 전 여성 하원의장 탄생은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선입감은 객관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생각에 불과하다”며 편견에 근거한 부당한 차별을 경계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차별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다수가 쌓아 놓은 높은 벽을 향한 소수의 도전은 항상 ‘첫’ 이정표를 세우는 험난한 과정이다. 그 견고한 벽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차별 성소수자 차별 성소수자 백악관 피에르 대변인

2022-05-12

[칼럼 20/20] 지구의 날과 다행성 종족

세계 최고 부자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다. 경제매체 포브스가 5일 발표한 억만장자 명단에서 순자산 2190억 달러로 1위에 올랐다. 지난달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하자 머스크는 돈을 모으는 이유를 트위터로 밝혔다.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은 여러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를 뜻한다. 인간에 한정하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도 살 수 있는 종족이 되는 것이다. 머스크는 ‘다행성 인류’를 실현하기 위해 2026년에 인간을 화성에 보내고 궁극적으로 화성 이주를 실현하겠다고 한다.     지구를 떠나는 이야기는 SF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2006년 발표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파피용’이 대표적이다. 14만4000명의 지구인이 태양빛을 동력으로 하는 거대 우주선 ‘파피용’을 타고 이주할 행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공상소설이기는 하지만 미래 세계보다는 인간 본성의 문제가 주제다.   지구 탈출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 같은 이야기였다. 주로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 행성을 찾아 이주한다는 것이 전형적인 줄거리다.     오늘(4월 22일)은 ‘지구의 날(Earth Day)’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위한 날이다.  1969년 샌타바버러 기름 유출 사고가 계기가 됐다. 1970년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과 젊은 사회운동가 데니스 헤이즈가 지구 보존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미 전국에서 2000만 명이 산업화 이후 150여년간 방치했던 지구를 살리자는 운동에 동참했다. 올해로 반세기를 넘은 ‘지구의 날’은 현재 193개국이 기념하고, 연인원 10억 명이 지구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초창기 지구 살리기는 자연훼손과 대기오염 방지가 목표였지만 2000년대 들어 지구온난화 문제와 청정에너지 개발이 주요 관심사가 됐다. 지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평균기온 상승이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2030년 지구 평균온도는 섭씨 1.5~2도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높다. 과학자들은 2도 상승을 마지노선으로 정했지만 이를 낮추자는 의견이 많다. 1.5도만 올라도 지구 곳곳이 물에 잠기면서 5억 인구의 생활에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장기적인 기후변화는 감지하기 어렵다. 서서히 다가오는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직면한  재앙이다. 해결을 위한 노력도 지구촌 전체의 공조로 이뤄져야 한다.     다른 행성 이주는 두 가지가 충족돼야 가능하다. 지구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전제에, 행성간 이동·이주를 가능하게 할 기술개발이 합쳐졌을 때다. 지금으로서는 둘 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아직도 지구는 살 만한 곳이고, 이동 기술은 초보 단계를 겨우 넘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당분간(?) 인류가 발 딛고 살아야 할 곳은 지구다.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지구뿐이다. 보전해야 할 곳도 역시 지구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우리의 위대한 국립공원들(Our Great National Parks)’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내레이터로 나온다. 재임기간 기후변화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오바마는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자연보호 동참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을 맺는다.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남겨 줄 자연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입니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다행성 지구 지구온난화 문제 다행성 종족 다행성 인류

2022-04-21

[칼럼 20/20] 불합격 통지서

“당시 나의 꿈은 깨졌고 가족의 실망은 컸다.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오래 전 어렵고 힘들던 시기에 한 말이다. 언뜻, 주식이 폭락하고 회사가 파산위기에 처해, 재기 불능의 상황을 맞았던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은 그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의 심정을 토로한 내용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리 볼링거 총장도 하버드를 지원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할 수 없어 오리건주 대학에 진학했으나 결국 컬럼비아 대학의 총장까지 올랐다.     대학 입학 합격통지가 한창이다. UC계열 등 공립대학은 대부분 끝났고 현재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포함해 사립대학에서 합격자를 발표하고 있다. 대입 지원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희비가 교차하는 때다.     올해 하버드 대학의 정기지원 합격률은 3.19%로 역대 최저다. 대학 설립 386년 역사상 최고의 경쟁률이다. 100명이 지원해 3명이 합격하는 살인적인 경쟁이다. 지난해 보다 지원자는 7% 늘어난 6만1220명을 기록했고 이중 1954명만이 합격했다.     예일과 프린스턴 대학도 최저 합격률을 경신했고 컬럼비아는 작년과 같은 3.7%로 나타났다. 합격률 하락은 아이비리그만이 아니다. 유명 사립대인 라이스 대학은 8.56%, 터프츠 대학은 9%로 집계됐다.     대학 입시가 어려워지는 것은 공·사립 구분 없이 전국적인 추세다. 교육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전부터 SAT와 ACT 점수를 입학 사정 항목에서 제외시키면서 지원자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MIT 등 일부 대학에서 객관적인 학력평가를 위해 시험점수를 다시 고려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SAT와 ACT를 배제한 입학 사정이 대세가 됐다. 시험점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유명대학 지원은 더욱 많아져 경쟁은 심화될 전망이다.     요즘 지원자들은 이메일이나 인터넷 등으로 합격 여부를 통보 받거나 확인할 수 있다. 예전 우편으로 합격 여부를 통보할 때는 봉투를 열지 않아도 두께에 따라 합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합격자에게는 통지와 함께 입학에 필요한 준비 서류를 동봉해 두껍고, 불합격자에게는 간략하게 또는 ‘잔인하게’ 통보만 하기 때문에 얇다는 것이다.     희망대학 불합격은 10대 학생들에게 살아오면서 겪은 좌절 중에 가장 큰 것일 수 있다. 어떠한 말로도 위로 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는가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 부모도 불합격의 아쉬움이 크겠지만 자녀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버핏는 하버드에서 고배를 마시고 컬럼비아 대학원에 지원해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벤저민 그레이엄과 필립 피셔 교수를 만났다. 버핏은 일생의 멘토와 같았던 이들 교수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고 하버드에 갔다면 오늘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링거 총장도 “불합격 통지서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명 인물들의 대입 불합격 스토리를 특집 기사로 게재한 적이있다. 워렌 버핏과 리 볼링거를 비롯해 노벨의학상 수상자 해럴드 바머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공동창업자 스콧 맥닐리, 언론 재벌 테드 터너 등이 소개됐다. 원했던 대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불합격을 통해 오히려 인생에서 더 큰 성취를 이룬 인물들이다. 그들의 역전 스토리는 다양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대학 불합격은 한순간의 시련일 뿐 영원한 실패는 아니다.' 지금 힘든 봄날을 맞고 있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불합격 통지 불합격 통보 정기지원 합격률 컬럼비아 대학

2022-04-07

[칼럼 20/20] 소통의 리더십

사진1.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의 딸 엘라가 대통령 집무실 바닥을 기어가면서 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바닥에 엎드려 엘라와 눈을 맞추며 웃고 있다.     사진2. 스페이스 셔틀 팀원들이 백악관을 방문했다.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오바마가 팀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위해 치웠던 소파를 제자리로 돌려 놓고 있다.   사진3. 2016년 새해 국정연설을 앞두고 오바마가 코디 키넌 연설비서관과 회의를 하고 있다. 오바마는 한 발을 탁자 위에 올린 채 서 있고, 맞은편의 키넌은 두 발을 탁자에 올리고 비스듬히 앉아 있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이 ‘올해의 사진’이라고 발표한 사진 중 일부의 설명이다. 비교적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은 미국 사회에서도 파격적인 장면이다. 직위와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악관을 방문한 한 흑인아이가 대통령도 곱슬머리인지 궁금하다고 하자 기꺼이 머리를 숙여 만지게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당선 첫 행보로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용산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청와대를 임기 시작인 5월 10일 국민에게 개방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가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 현대사에서 제왕적 권위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 초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통의 문제로 바뀌었다. 집무실 이전 발표 전 참모진과의 소통, 국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는 의견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소통 부재의 ‘구중궁궐’이었다. 소통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집무실 이전이 또다른 소통 부재를 부르고 있다. 소통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은행 총재 후보지명을 놓고도 청와대와 당선인 측은 소통이 순조롭지 못하다. 청와대는 “당선인 측 의견을 들은 것”이라 했고, 당선인 측은 “협의·추천한 적 없다”고 말한다. 소통 부재가 불러온 충돌이다.     대통령 재임기간 중 오바마는 관료 및 대중과의 소통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소탈한 인간성을 바탕으로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사를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 오바마 시절 관료들은 반대파까지 끌어안는 그의 소통 방식을 높게 평가했다. 연설을 듣는 대중은 마치 대통령이 자신에게만 말하는 것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고 한다.     리더십 전문가 존 발도니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기고에서 “오바마의 소통 정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대통령에 대해 신뢰를 갖게 한다”며 “소통은 정책 추진에 있어 국민의 협력과 동의를 이끌어 내는 주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소통은 공감을 동반한다.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전달해 상호간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능력이다. 공감이 생겨야 신뢰도 구축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바마케어’ 보험을 관철시킨 것도 공화당 반대 의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소통에서 공감으로, 다시 신뢰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경영학의 소통 연구 전문가인 앤클 루트라 박사는 “훌륭한 소통 기술은 리더가 가진 가치나 신념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게 만든다”며 “지도자가 갖는 여러 자질 중에서 가장 으뜸인 것은 ‘소통’에서 나오는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소통은 수평적 관계에서 가능하다. 수직적 관계의 소통은 명령이나 지시에 가깝다. 역대 한국의 대통령은 소통의 문제에서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불통’으로 임기를 마감했다. 이제 다시 새 대통령에게서 ‘소통의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리더십 소통 소통 부재 소통 국민들 소통 정치

2022-03-24

[칼럼 20/20] 퇴임 후를 생각하는 대통령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한국 정치사에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추가했다. 현재는 당선인 신분이지만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 전임 대통령도 한 명 더 갖게 된다. 취임도 안 한 당선인을 놓고 퇴임 후를 말하기기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재임 중 통치 못지않게 퇴임 후 국민으로부터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남는 것도 중요하다. 전임 대통령의 퇴임 후 위상은 재임 중 업적으로 결정되기에 그때를 생각하며 현재의 경계로 삼아야 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초심은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지만 퇴임 후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떠날 때 박수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는 현재 대통령의 위치에서 바른 정치를 하려는 의지와 연결된다.     전임 대통령은 국가를 통치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명예로운 자리다. 국가 장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에 대한 어렵고 고독한 결정이 현직 대통령에게는 있지만 전임 대통령에게는 없다. 전직의 명예는 남지만 현직의 책임은 없는 자유로운 위치가 바로 전임 대통령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퇴임 후 더 존경 받는 대통령이 많다. 대표적인 대통령이 지미 카터다. 퇴임 후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주택 지원 사업과 빈곤층 질병 퇴치 운동, 국제 분쟁 해결 등에 나서면서 전임 대통령 역할의 전범을 보였다. 카터는 인터뷰에서 “현직 대통령에 있었다면 이런 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퇴임 후 개인 자격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대공황 시절 대통령직을 역임한 허버트 후버도 퇴임 후 해외 식량 원조 사업에 헌신해, 세계 기아 문제 해결에 일조했다.     한국도 대통령 제도 시행이 70년에 가까워지면서 여러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현직을 떠난 후 존경 받는 대통령은 드물다. 청와대를 나와 국민의 품으로 돌아 갔을 때 사회 각 분야에서 기여한 대통령을 찾기 어렵다. 국가를 운영했던 경륜은 임기 종료와 함께 사장되고 만다.     현직 대통령의 리더십 원천은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나오지만 퇴임 후 리더십은 국민의 자발적인 존경에서 비롯된다. 복종을 강제하는 것보다 동참을 이끄는 리더십이 더 가치있다. 그런 지도력을 전임 대통령에게서 볼 수 있기를 국민은 기대해 왔다.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을 연구했던 작가 존 업다이크는 “현직 미국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라는 행복한 위치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무는 정류장”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으로 국가에 헌신하는 기간은 길어야 8년이지만 전임 대통령으로 활동할 기간은 무한하다.     제20대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흔치 않는 티켓을 들고 정류장에 서 있다. 그 티켓으로 전임 대통령이라는 ‘행복한 직업’을 가질 기회가 주어졌지만 자격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자격은 5년간 현직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았을 때 생긴다.     대통령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리처드 뉴스타트는 저서 ‘대통령의 권력’에서 대통령은 무한대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정자 역할을 하고, 국민의 신망을 얻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사랑 받는 대통령이 되려면 적합한 인재를 등용하고,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며, 국정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대통령 당선인이 화합과 협력의 통치로 한국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바란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임 대통령의 전례를 만들기 기대한다. 현직의 권력은 유한하지만 퇴임 후 국민의 사랑은 오래 남는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대통령 퇴임 현직 대통령 전임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2022-03-10

[칼럼 20/20] “신이시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신이시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펼쳐 두지 않으셨나이까?”   팀 마샬의 저서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샬은 신심이 깊다고 자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잠들기 전에 이런 질문을 신에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 BBC방송 등의 기자로 25년 넘게 활동한 팀 마샬은 지리의 관점에서 국제정치, 경제, 전쟁, 분열, 빈부격차 등을 조명한다. 정치·경제 체제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바뀌지만 운명적으로 결정된 ‘지리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통치 이념은 바뀔 수 있지만 국토의 위치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러시아 서쪽 우크라이나에 산맥이 있었다면 러시아가 북유럽평원을 통한 서유럽의 침략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프랑스 나폴레옹도 나치의 히틀러도 평원을 지나 러시아를 침공했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 인접한 국가지만 역사상 분쟁이 거의 없었다. 1962년 분쟁 이후 2020년에 갈등이 불거졌지만 국경 충돌 수준에 그쳤다. 마샬은 대규모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히말라야 고원지대가 두 나라 국경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년 전 중국과 인도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양국 국경의 고산지대가 ‘자연적인 중재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영토가 넓다. 흑토로 덮인 비옥한 평야가 곡창지대를 이룬다. 프랑스에 풍년이 들면 서유럽을 모두 먹인다는 말이 있듯이 우크라이나에는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비유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표적이 된 반군 세력의 보호다.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그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의 독립도 인정했다. 이면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과 나토(NATO) 가입을 막으려는 시도다. 체코·폴란드·헝가리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서방이 러시아 서쪽 국경 바로 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는 형국이 된다. 또한 푸틴의 이번 침공에는 소비에트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도도 있다     우크라니아의 역사는 순탄치 않다. 러시아와 함께 슬라브족 국가의 기원이 됐지만 제대로 국가 체계를 세운 역사가 거의 없다. 유럽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6차례 독립선언을 했지만 무산됐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2004년 반정부 시위 ‘오렌지혁명’으로 친러 세력을 축출하고 EU와 나토에 가입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정학적 요소는 ‘양날의 칼’이다. 강대국은 지리적 장점을 세력 확장의 발판으로 이용하지만 군사·외교적인 힘이 없는 국가는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전락한다.     우크라니아 국호는 슬라브어로 ‘가장자리’ 또는 ‘변방’을 뜻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서쪽의 변방이지만 서유럽 국가들의 관점에서는 동쪽의 가장자리다. 양대 세력의 틈새에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아픈 역사를 간직해 왔다.     예전에는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지금은 지리적 요소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가가 위치한 지역은 중요하다.     국가의 지리적 요소는 천혜의 축복이 되기도 하고 물리적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마셜의 저서 원제처럼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리에 갇힌 수인(囚人)’으로 살았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산맥을 원했던 푸틴의 기도가 이뤄졌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 ‘산맥’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간절한 기원이 됐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우크라이나 산맥 우크라이나 정부 러시아 서쪽 블라디미르 러시아

2022-03-03

[칼럼 20/20] 변방의 문화, 경계의 문화

경계는 특정한 기준으로 사물을 구분하는 것을 뜻한다. 지역의 경계는 금이나 줄이다. 경계선이다. 보이지 않는 문화적 경계도 있다. 경계에 인접한 지역은 중심과 차이가 있다. 획일적인 문화 동질성을 보이는 중심과 달리 경계 지역은 여러 문화가 혼재한다.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성이 공존하는 구역이다.     중세를 문화 암흑기라고 한다. 신성이 인성을 억제하면서 인간 중심의 창의적인 활동은 퇴보했다. 인문 정신이 엄격한 종교적 신념에 잠식됐던 시대다.     그럼에도 중세를 밝힌 빛이 있다면 문화의 지역적 확장이다. 로마제국은 테오도시우스 1세 때 동서로 분할된다. 서기 476년에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비잔티움 제국으로 불렸던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존속한다.     서로마 멸망 후 1000년을 이어간 동로마 제국은 유럽 세계에 이방의 문화를 이식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갔다.     두 문화의 경계선에 놓인 도시가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경계 지역에 위치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심에서 보면 변방의 가장자리이다. 그런 지역이 ‘모든 도시의 여왕(The Queen of Cities)’이라는 칭호를 받으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양 문화의 교차점이기에 가능했다.     역사적으로 국가 경계를 없애는 역할을 해 온 집단은 유민(디아스포라, Diaspora)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민자(Immigrant)로 대체됐다. 디아스포라는 노동력의 이동, 전쟁에 의한 강제 이주, 모국 멸망 후 타국 유입 등 경제적·정치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한인 디아스포라도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완벽한 한국인으로 살기도, 온전한 미국인이 되기도 어렵다.     한인들은 세 가지 문화를 경험한다. 첫째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생산되는 ‘미국 문화’이고 둘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전해지는 ‘한국 문화’다. 셋째는 이민자들이 만들어가는 ‘한인 문화’이면서 동시에 이민 문화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위치한 ‘경계 문화’다.     문화소비 면에서 한인의 위치는 애매하다. 1세의 경우 미국과 서구 문화를 100% 이해하기 어렵다. 언어적 장벽과 문화 차이로 완벽한 적응이 불가능하다. 음악과 미술은 문학보다는 덜하지만 편안한 문화 향유가 이뤄지지는 못한다.     한국 문화도 마찬가지다. 문화가 생성되는 공간에서 벗어나 사는 기간이 늘면서 모국의 문화도 다소 생소해진다.   한인 이민자들의 문화는 주류에도 속하지 않고, 한국 문화의 일부로 자리매김도 못했다. 경계에 살고 있는 이민자가 만들어 이민사회에서 소비되는 문화에 머물러 있다. 한인들의 문화 활동이 본국과 비교할 때 비전문적이고 규모가 영세하게 보일수 있다. 하지만 전업 작가에 의해 제작되고 5000만 인구의 문화 소비시장을 가진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문화의 융합은 창조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동식물 생태계에 ‘엣지 효과(Edge Effects)’라는 것이 있다. 각기 다른 동식물이 주종을 이루는 지역들이 붙어 있는 경계 부분에 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는 이론이다.     상이한 요소가 혼합된 가장자리 지역은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을 증대시켜 생물 개체수를 늘리고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를 나타낸다.     이민 문화는 가장자리의 문화이면서 동시에 경계의 문화다. 이민자가 처한 특별한 상황에서 겪는 경험을 살려야 한다. 모국 종속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이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열악한 한인 문화계의 활동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창작의 열정은 계속되고 있다. 이민자만이 가능한 영역을 부단히 개척해 나갈 때 변방의 문화가 아닌 경계의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문화 변방 문화적 경계 경계 문화 한인 문화

2022-02-17

[칼럼 20/20] ‘네 탓’의 선거판

‘덕분에’와 ‘탓에’. 두 가지 모두 특정 현상의 원인이나 까닭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의미가 비슷해 종종 혼용되지만 용법은 완전히 다르다. ‘덕분에’는 긍정적인 현상이 생겨난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 ‘탓에’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밝힐 때 쓰인다.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라는 문장에서 ‘덕분’을 ‘탓’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네 탓’ 공방이 한창이다. 설 연휴 전에 갖기로 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양자토론이 무산됐다. 양측이 자료 반입여부를 놓고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불발됐다. 양측은 토론회를 못한 것을 ‘네 탓’으로 돌렸다. 상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민주당 측은 “자료를 보아야만 토론할 수 있는 준비 안 된 후보”라고 깎아내렸다. 국민의힘은 “범죄혐의 자료를 지참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장동 토론을 피하려는 억지”라고 맞받았다.     양측은 각각의 다른 이유를 들었지만 토론회 무산을 ‘네 탓’으로 돌리는 것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대선 두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를 벗어나 압도적 우위를 보인 후보는 없다. 그런 만큼 선거전은 가열되고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도 선을 넘는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의 스캔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상대후보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는 빌미가 됐다.     ‘네 탓’의 선거판에 네거티브 캠페인이 난무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상대후보의 결점을 부각시키는 선거 전략이다. 여기에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더할 나위 없는 호재가 된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파급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다. 자신의 장점을 내보여 지지율을 높이는 것보다 상대방의 단점을 드러내 지지율을 낮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단기간 내에 결과가 나타나는 경제성도 있다.     노터데임 대학 연구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비방하는 광고를 접한 유권자의 14%에서 상대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 반대로 지지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광고를 보았을 때 상대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심리학 테스트에서도 긍정적인 내용을 들었을 때 다시 전달하는 비율은 10% 아래지만 부정적인 내용은 90%를 넘는다. 또한 부정적인 내용에 대한 기억은 강하고 오래 남는다. 차 사고를 당한 날은 기억하지만 차를 운전했던 수많은 날들은 기억에 없다. 항상 보는 평범한 날씨보다는 폭풍우 치던 날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미국 선거역사에 네거티브 캠페인의 대표적 사례로 ‘윌리 호튼’ 효과가 있다. 1988년 조지 H. W. 부시와 마이클 두카키스 대선 때다.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두카키스는 수감자의 주말 휴가제를 지지했다.     하지만 주말 교도소에서 외출 나간 윌리 호튼이 강간 살인을 저질렀고, 부시 진영은 네거티브 광고를 통해 휴가제를 지지한 두카키스를 맹공했다. 동시에 범죄의 공포와 인종 문제도 부각시켰다. 결국 부시는 백악관에 입성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주효했다고 분석했지만, 그후 당선과 연관성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선거 캠페인은 후보의 역량을 강조하고 정책 제시를 통해 지지율을 높이는 전략에 치중해야 한다. 네거티브 전략은 단기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대선을 한 달 남긴 상황에서 후보들의 스캔들은 계속 터지고 상대 후보에 대한 막말은 끝이지 않는다. ‘덕분’의 정치는 실종되고 ‘탓’의 정치만 남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중상과 비방에 가장 좋은 해명은 진실”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후보들에게는 어떤 진실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선거판 네거티브 캠페인 네거티브 광고 지지 후보

2022-02-03

[칼럼 20/20] 동화 속 이야기 ‘아메리칸드림’

월트디즈니 창업주 손녀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제목은 ‘아메리칸드림과 다른 동화들(The American Dream & Other Fairy Tales)’. 제작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애비게일 디즈니는 1923년 디즈니를 공동 창업한 로이 디즈니의 손녀다.     영화는 디즈니랜드 직원들의 저임금 실태를 지적하면서 디즈니사 경영진과의 임금격차를 고발한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디즈니랜드 직원은 시간당 15달러를 받는다. 기본생활이 어려운 금액이다. 디즈니랜드가 위치한 오렌지카운티 애너하임 생활권의 경우 시간당 최소 24달러는 받아야 생활이 가능하다. 비교 대상은 지금은 사퇴한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다. 2018년 기준 656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즈니랜드 공원 관리인이 아이거 최고경영자의 연봉을 벌려면 2000년간 일해야 한다. 애비게일의 아버지가 공동창업자로 참여했던 1967년 당시 최고경영자의 연봉은 임금이 가장 낮은 직원의 78배에 불과했다.     소득 불공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지니계수가 있다. 0에 가까울수록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측정 지수지만 숫자로 표시돼 실제 차이를 실감나게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소득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가 보도됐다. 3억7000만건의 롯데백화점·아웃렛의 구매 관련 빅테이터를 분석한 내용이다. 지난해 상위 1% 고객 한 명이 물품 구입에 쓴 돈은 3780만1000원인 반면 하위 20%는 1인당 2만8000원이다. 1350배 차이다.     또한 상위 20% 고객의 1인당 소비 금액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늘었지만 그 아래 고객은 줄었다.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모두들 바이러스는 공평하다고 했다. 바이러스는 빈부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코로나 사태 2년이 지난 현재 고통은 가난한 계층의 몫이 됐다.     경제학자 폴 크르구먼의 지적처럼 자본과 노동의 수익배분 구조에 빈부격차의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투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노동에 할당되는 수익은 줄어든다. 자본가는 재력을 이용해 막대한 투자수익을 얻지만 노동을 통해 얻는 수익은 제한적이다.     빈부의 차이는 모든 국가의 당면 과제지만 격차 없는 완전한 사회는 없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부자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끌어 올려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다.     애비게일은 자산가 가문에서 출생했지만 자선활동가로 유명하다. 천문학적 액수의 임원 급여를 낮추자며 경영진의 탐욕을 고발했다. 자신을 포함한 상위 1%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다.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서구사회가 지켜온 전통이다. 기원전 8세기 호머의 트로이 전쟁 서사시 ‘일리아드’에서도 귀족들의 자발적인 참전을 통한 지도층의 의무를 강조했다.     이 같은 정신의 현대적 변형이 부유층 재산의 사회 환원이다. 억만장자 일라이 브로드는 LA다운타운 디즈니 콘서트홀 건립을 주도했고 미술관 ‘더 브로드’를 세운 자선사업가이다. 그는 "부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사회와 국가에 이를 돌려주어야 한다"며 이는 ‘책임’이 아니라 부자들의 ‘특권’이라고 강조한다. 책임은 부여된 의무이지만 특권은 능력이 지닌 사람만이 행사할 수 있는 자발적인 권리다.     애비게일의 영화 제목에 나온 ‘Fairy Tale’은 ‘동화’를 뜻하지만 ‘꾸민 이야기’ ‘비현실적인 스토리’ ‘거짓말’ 등의 의미도 있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아메리칸드림’이 동화 속 허망한 이야기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아메리칸 이야기 디즈니랜드 직원들 디즈니랜드 공원 애비게일 디즈니

2022-01-27

[칼럼 20/20] 바이든 대통령의 ‘고깃값 전쟁’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새해 첫 업무로 ‘고깃값 전쟁’에 나섰다. 연초 휴가에서 복귀한 바이든 대통령은 소규모 농장과 목장 업주 등과 육류가격 인하를 위한 화상회의를 가졌다. 육류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16%가 올랐고 소고기만을 보면 20.9% 폭등했다.     바이든이 이들 업계와 회의를 가진 이유는 육류가 대표적인 독과점 품목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위 4곳의 대형업체가 소고기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돼지고기는 54%, 닭고기는 70%를 차지한다. 이들 대형회사에 의한 가격 변동성이 크다. 바이든은 이날 소규모 가공업체에 10억 달러 예산을 지원하고, 경쟁 위반사항을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한다. 산업 각 분야에서 경쟁을 통해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그럼에도 독점 규제에는 엄격한 칼날을 들이댄다. 대표적인 것이 1890년 제정된 ‘셔먼법(Sherman Act)’으로 불리는 반독점법이다. 기업들의 가격 담합과 불공정 행위를 금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에서 출발한 규제로 대형 석유기업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분할됐다. 그 결과 1911년 지금의 모빌, 셰브런 등의 회사가 탄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화상회의에서 대형 육류 회사들의 ‘패커스 앤 스토키야즈법’ 위반 여부 조사를 지시했다. 1921년 제정된 법은 육류 업체들의 불공정 거래와 가격 정책 등을 규제하고 있다.     바이든의 육류 기업 ‘손보기’는 고물가 시대에 설득력을 갖지만 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급조한 ‘국민 달래기’ 이벤트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 고물가의 책임을 대기업에 전가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물가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39년래 최고치인 6.8%를 기록했다. 물가급등은 바이든을 공격하는 빌미를 공화당에 제공하고 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3%대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로 시중에 풀린 자금과 수요·공급의 불일치기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이었는데 올해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불만은 크다. 여러 경제지표가 청신호를 보내고 있어도 국민의 인플레에 대한 반감은 높다. 주식 시장의 호황보다는 일반 시장의 물가안정이 더 중요하다.     경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바이든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44%로 추락했다. 4일 CNBC가 발표한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국정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56%로 나왔다. 취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바이든의 경제정책 중 물가정책에 대한 반대가 72%로 가장 높았다. 조사자의 84%는 생필품 가격이 1년 전보다 올랐다고 답했다. 올해 물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답한 경우는 23%에 불과했다.     또한 설문 대상자들은 인플레 원인 순위에서 ‘코로나19’와 ‘기업’에 앞서 대통령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1위로 꼽았다.     바이든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하원 다수당 지위 상실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양당 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에게 근소한 차이로 역전을 당했다. 지난해 5%포인트 이상으로 앞섰던 민주당이었지만 고물가의 경제 실책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신년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잡기에 돌입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고물가가 11월까지 이어질 경우 선거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와 선거의 함수관계를 시험할 중간선거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대통령 전쟁 자유주의 시장경제 육류가격 인하 고물가 시대

2022-01-06

[칼럼 20/20] 총을 든 가족

이번에는 연방하원의원 가족이 ‘총’을 들었다. 지난주 토머스 매시 의원(켄터키주·공화당)이 트위터에 크리스마스 가족사진을 올렸다. 가족 7명 모두가 총을 든 사진이다. 사진 위쪽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추신. 산타클로스는 탄약을 가져다 주세요(Santa, please bring ammo)’라고 썼다. 사진 속 가족은 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이 트위터에 올려진 것은 미시간주 옥스퍼드 고교 총격사건이 발생한 지 4일 후였다. 4명이 목숨을 잃은 참극이다. 용의자 15세 소년은 살인, 테러 등으로 기소됐고 부모도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다.     매시 가족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단순 실수나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연방의원의 트위터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총기소유에 대한 강력한 지지 표시다.     매시는 총기 권리 행사에 직접 총을 갖고 참석한 정도로 열렬한 총기 옹호론자이다. 현재 법사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법사위원회는 총기류 관련 법제정에도 관여한다.     미국에서 총기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규제 목소리가 높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그리고 총기사건은 또 터진다.     2017년 기준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통계에서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총기 피살자가 4.26명이다. 선진국 만을 비교하면 부동의 1위다. 세계 전체로는 8위지만 1~7위까지는 모두 남미 국가들이다.     총기 옹호론자들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지난 6월 AR-15 반자동 소총의 캘리포니아 판매금지 조치에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을 담당했던 로저 베니테스 판사는 판결문에서 “범죄자와 테러리스트의 총은 위험하지만 책임감 있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에게는 소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총기 규제 입장은 철저한 통제만이 대형 총기 살상을 막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총을 범죄에 사용할 만한 사람을 식별하는 것이 총기 규제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총기 보급률은 미국보다는 조금 낮지만 총기 사망자는 미국의 8~12% 정도에  그친다. 소유는 인정하되 규제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총기 구입과 라이선스 취득이 운전면허증 받기보다 쉽다.   매시 의원의 트위터 사진이 알려진 후 프레드 구텐버그가 사진을 올렸다. 구텐버그는 지난 2018년 2월 플로리다주 파클랜드 고교 총기난사 사건으로 14살 딸을 잃은 아버지다. 현재 총기반대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17명의 희생자와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파클랜드 참사는 역사상 가장 잔혹한 교내 총기난사 중 하나다.     구텐버그는 트위터에 2장의 사진을 올렸다. 한 장은 그의 딸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총기난사로 숨진 딸이 묻힌 곳이라고 소개했다. 두 가정의 각기 다른 사진은 미국의 총기소유 찬반 논쟁을 대변하고 있다.     매시 의원은 7일 켄터키 지역 신문 ‘쿠리어 저널’을 통해 트위터에 올린 총을 든 가족 사진을 지울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연주를 즐겨 가족들이 악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며 사격을 좋아해 악기 대신 총을 든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악기 대신 총기를 든 것이 재미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가족 사진이 올려진 후 전국에서 매시 의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중에도 1주가 채 안 돼 8만1000개의 ‘좋아요’도 있었다.   작년 미국 총기사망자 수는 1만9380명이다. 지난 20년간 최고치다. 미성년자도 상당수 포함됐다. 교육정보 매체 ‘에듀케이션 위크’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올해 28건의 교내(K-12학년)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1999년 이후 최고치다.   한 해가 끝나가지만 총기 범죄에 대한 대책은 없다. 여전히 총기 규제 찬반 목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가족 크리스마스 가족사진 총기 옹호론자들 연방하원의원 가족

2021-12-09

[칼럼 20/20]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으로 지구촌에 비상이 걸렸다. 오미크론은 아프리카 남단 보츠와나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보츠와나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는 나라다. 1980년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합작 영화 ‘부시맨’을 통해 소개된 적은 있다. 부시맨족은 보츠와나의 원주민이다. 현재는 남아공에서 이주한 츠와나족이 전체 인구의 80%로 주류다.     보츠와나는 한때 에이즈 감염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2006년 기준 인구의 36% 넘게 감염됐다. 에이즈 사망자가 많아 평균수명이 한때 30세 아래로 내려 간 적도 있다. 아프리카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나은 정도지만 의료와 보건 인프라가 열악하다. 이런 국가에서 처음 오미크론이 발견됐고 남아공에서 최종 확인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다.     아프리카 빈국에서 새로운 변이가 발생하자 다시 백신 불평등 문제가 불거졌다. 올해 초 코로나 백신을 선진국들이 독점하면서 ‘백신 아파르트헤이트(Vaccine Apartheid)’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백신 불균형을 과거 남아공 백인정권이 유색인종에 가했던 차별을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빗대 것이다.     지난달 27일 워싱턴포스트는 “오미크론의 출현은 개선되지 않는 백신의 불평등한 보급에 대한 경고”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전 세계인에 대상으로 한 (공평한) 백신접종이 이뤄지지 않아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백신 전체 공급량의 약 90%는 선진 20개 국가에 집중됐다.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평균 백신 접종률은 7.15%에 불과하다.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는 2%대를 못 넘는다. 평균 70%에 육박하는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도 선진국의 사재기로 백신 확보에 난항이다. 당초 빈국에 지원할 백신 목표치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보츠와나에서 오미크론이 발견되면서 각국이 서둘러 아프리카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아프리카에 대한 공포로 ‘아프로포비아(Afrophobia)’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성급한 국경 폐쇄는 경제상황을 악화시킬 뿐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친다.     근현대 들어 코로나보다 더 치명적인 전염병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전염병 대부분은 국지적으로 발생했다. 반면 코로나는 일시에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초창기 백신과 치료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두려움이 희석돼 가는 상황에서 오미크론이 터졌다.     지구촌은 이제 한 울타리다.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바이러스는 더 이상 일부 지역에서만 창궐하지 않는다. 국경 봉쇄로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없다. 아프리카 남부에서 시작된 오미크론은 약 1주일 만에 6개 대륙에 퍼졌다. 2일 기준 세계 30개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은 선진국의 이기주의에 대한 경종일 수도 있다.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원 키츠메키아 코벳 면역학자는 “변이가 감지되는 순간에 이미 타지역으로 확산은 시작된다”며 “지구촌 한 곳이라도 백신이 보급되지 않는 불평등이 지속하는 한 변이의 발생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퇴치에는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지구적 위기에 자국 이기주의는 재앙을 연장시킬 뿐이다.     코로나 초기, 바이러스는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다며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예상은 빗나갔다. 바이러스는 빈국과 부국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는 수많은 목숨을 앗았고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 주었지만 인류에게 한 가지 교훈은 남기고 떠날 것 같다. ‘바이러스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바이러스 평등 백신 불평등 코로나 백신 아프리카 국가들

2021-12-02

[칼럼 20/20] 세서미 스트리트와 인종 편견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 첫 아시아계 인형 캐릭터 ‘지영’이 등장한다. 방영 52년 만이다. 새 인형 발표를 보며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는 아시아계 캐릭터가 처음 나온다는 사실이다. 기존 여러 캐릭터 중에 당연히 아시아계가 포함된 것으로 알았다. 둘째는 최초 아시안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말에 시작했지만 흑인과 라티노 등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프로다. 21세기가 되도록 아시안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인종적 편견을 반대해 왔다. 1970년대 방영 초기 어린이 프로에 ‘과감하게’ 소수계를 등장시켜 논란 끝에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는 방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아시안의 뒤늦은 등장보다 더 의외인 것은 지영이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캐릭터 만들기에 참여한 한인 인형술사 캐서린 김씨는 지영이 아시아계의 대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한 ‘일반적인 한국인(generally Korean)’이 아닌 미국에서 태어난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시안이 아닌 코리안 ‘특정’은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방영 예정인 에피소드에는 ‘떡볶이(tteokbokki)’ ‘할머니(halmoni)’ ‘불고기(bulgogi) 등 익숙한 한국어가 자주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캐릭터 국적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프로에서 특정 국가를 지정해 구분한 것이 한편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1969년 11월 10일 공영방송 PBS의 첫 전파를 탔다. 어린이 프로가 전무했던 시대에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알파벳과 숫자를 지도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후 140여개국에 방영됐고 189번의 에미상과 11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어린이 프로에 지영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 증가가 배경이 됐다고 한다. 세서미 워크숍의 케이 윌슨 스톨링스 부회장은 인종 증오범죄를 겪으면서 아시안 캐릭터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 결과 지영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어린이 프로에 새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가 될 만큼 인종혐오 범죄는 심각하다. 지난해 LA카운티 인종혐오 범죄가 전년에 비해 20%나 늘었다. 인간관계위원회 보고서에서 2020년 카운티 증오범죄가 총 635건에 달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계 출신 주민 대상의 증오범죄는 전년 대비 2020년에는 4배 이상 폭증했다.     아시안아메리칸법률교육재단(AALDEF)이 2726명의 아시안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17%가 지난해 인종혐오 공격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결과는 11월 초 선거가 실시된 동부 5개주 출구 설문조사에서 밝혀졌다.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지영은 다수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업스탠더(upstander)’ 역할을 하게 된다. 지영이 어린이들에게 업스탠더가 되는 방법을 어떤 식으로 제시할지 궁금하다. 부당한 차별과 정당하지 못한 편견에 맞서야 하는 일곱 살 소녀의 모습이 기대와 우려로 다가온다.     지구촌 어린이 모두가 세서미 스트리트를 통해 인종과 피부색, 언어와 출신의 차별이 없는 평등과 화합의 정신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살아 갈 미래가 인종 편견과 증오가 없는 세상이기를 희망해 본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스트리트 세서미 세서미 스트리트 인종 증오범죄 인종적 편견

2021-11-18

[칼럼 20/20] 막말과 비방의 선거

허리케인이 휘몰아치던 날과 화씨 70도의 화창했던 날. 시간이 흐른 뒤 어떤 날이 더 기억될까. 당연히 허리케인이 불던 날이다.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평범한 날씨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선거 캠페인도 비슷하다. 후보에 관한 정보 중 긍정적인(Positive) 내용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부정적인(Negative) 내용은 쉽게 기억된다. 칭찬을 들으면 금방 잊지만 욕을 들으면 오래 되새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터데임 대학과 텍사스댈러스 대학 공동 연구팀은 선거에서 네거티브 광고가 유권자에게 주는 영향을 실험했다. 표본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존 케리가 맞붙었던 2004년 대선 광고다. 18~24세의 대학생을 선정해 지지성향을 분류했다. 그룹은 부시 절대지지, 부시 지지, 부시 선호, 미정, 켈리 선호, 켈리 지지, 켈리 절대지지 등 7단계다. 참가자들에게 부시와 켈리의 캠페인 광고를 보여준 후 지지 성향의 변화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결과는 부정적인 광고가 긍정적인 광고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실험 대상의 14%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비방하는 광고를 본 후에 상대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흑색선전의 효과다. 반대로 긍정적인 내용은 지지도 변화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연구팀은 부정적인 광고는 허리케인 부는 날, 긍정적인 광고는 맑은 날로 비유했다. 부정적인 내용은 더 두드러져 보이고, 두려움을 갖게 해 유권자들의 뇌리에 박힌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대선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큰 선거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서는 후보간 경쟁이 치열하다. 선거판에서 정책과 비전은 사라졌다. 상대후보의 비리를 폭로하는 흑색선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폭로하는 내용의 진위 검증은 없다. 나의 장점이 아닌 상대의 약점을 알리는 캠페인에 올인한다.     망언과 막말을 넘어 욕설까지 오간다. 말의 해악은 물리적 폭력보다 치명적이다. 신체폭력과 달리 언어폭력은 후유증이 크다. 몸의 상처는 아물어 통증이 해소되면 잊히지만 언어폭력은 고통의 주체가 기억이어서 지우기 어렵다.     특히 정치인들이 과거에 했던 언어폭력은 그들의 정치 이력과 끝까지 간다.     국민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그치고 정책 대결로 선거에 임할 것을 후보들에게 바란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고 갈 후보들에게 최소한의 품격을 요구하고 있다.     노터데임과 텍사스대 연구팀은 실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캠페인의 잠재적인 효과를 말하는 것이지 긍정적인 캠페인이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며 “부정적인 광고를 권장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선거 역사를 봐도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2008년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간 광고도 있었다. 당시 오바마 캠프의 구호였던 ‘Change’의 ‘C’자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로 표시됐다. 오바마를 파시스트, 나치 신봉자로 몰아가는 흑색선전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선거인단 538명 중 365명을 확보해 당선됐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일시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만 선거의 대세를 바꾸지는 못한다. 상대 후보와 유권자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맑게 갠 날보다 허리케인이 불던 날을 더 기억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기억이 지속된다는 뜻이지 좋은 기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정당당하게 대결하는 후보가 결국은 승리하고 유권자에게도 신뢰를 주는 정치인으로 남는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막말과 비방 선거 캠페인 캠페인 광고 네거티브 캠페인

2021-11-04

[칼럼 20/20] 샌타모니카 피어가 사라지는 날

그리스 신화의 제왕 신은 제우스지만 신화의 기원은 가이아 여신이다. 가이아가 제우스의 할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낳으면서 사실상 신화는 시작된다.   그리스 신들은 각각 관장하거나 대표하는 분야가 있다. 제우스는 하늘의 신이고 가이아는 대지의 신이다. 신화의 출발이었던 여신이 대지를 관장한다는 것은 땅이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암시한다.     이 여신의 이름을 따서 나온 가설이 ‘가이아 이론’이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했다. 대지가 바로 지구라는 생각에서 ‘가이아’를 인용했다. 이론은 지구를 기체로 둘러싸인 암석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 유기체인 지구가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가설이다.     가이아 이론은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 받지 못하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관련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 중 2명이 기후변화 예측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미국의 기상학자 마네베 슈쿠로 프린스턴대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 기상연구소 클라우스 하셀만 창업자이다. 온실가스 증가 등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복잡한 기후현상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지구 환경’ 연구로 상을 받은 과학자는 없다. 2007년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환경보존 활동으로 평화상을 받았고, 3년 전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는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분야 연구로 과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구환경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지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평균기온의 상승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2도(섭씨) 이상 높지 않게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PC)는 기준을 1.5도로 낮췄다.     최근 비영리단체 클라이메트 센트럴(Climate Central)은 지구 평균기온이 1도에서 4도까지 올라갈 경우를 가상해 지구촌 곳곳의 모습을 소개했다. 산업화 이전보다 3도가 올라갈 경우 영국의 버킹검궁은 물에 잠긴다. 롱비지 지역 405번 프리웨이 일부도 물바다가 된다. 샌타모니카 피어의 경우 3도가 상승하면 해수면이 최고 20피트 상승해 피어 전체가 바닷속에 잠긴다.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보면 피어의 대관람차(Ferris Wheel) 아래 부분까지 물이 차 오른다. 과학자들은 지금 추세로 기온이 상승하면 다음 세기에 샌타모니카 피어가 바다에 잠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올랐다. 과학자들은 2도 상승을 급격한 변화의 기준점으로 삼았지만 더 낮추자는 의견이 대세다. 1.5도만 올라도 지구촌 곳곳이 물에 잠기고 인구 5억 명이 피해를 당한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2도가 오르면 가뭄과 폭우 등의 이상기후로 세계인구 1억8900만 명이 기아 위기에 빠진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탄소중립(넷제로·Net Zero)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온실가스 흡수량을 같게 해 ‘제로(0)’로 만드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이아의 대지는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자애로운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재지변의 무서운 형벌이 내려지는 땅이기도 하다. 대지에 불경하면 반드시 재앙의 보복으로 돌아온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샌타모니카 피어가 샌타모니카 피어 지구 평균기온 기후변화 분야

2021-10-2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