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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11월 선거 주민발의안에도 관심을

선거 시즌이다.     치열한 대통령 선거부터 소도시의 주민 조례안까지 유권자 입장에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준 권리를 마음껏 행사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하지만 권리 행사에는 필요조건이 따른다. 대통령 후보를 비롯해 각종 선출직 공직자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피고, 주요 발의안이나 조례안의 내용도 잘 파악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가주 유권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주민발의안 33과 36이다. 주민발의안 33은 간단히 정리하면 렌트 컨트롤 규정의 확대 시행이다. 즉, 1995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와 주택도 시나 카운티 정부에 렌트비 인상폭 제어 권한을 주자는 내용이다. ‘렌트 컨트롤’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 것이다. 찬성하는 측은 거대 기업과 건축업자들이 렌트비를 천정부지로 올리며 이득을 취하고 있어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쪽은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면 적절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주거난이 가중될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일단 찬성 여론이 소폭 높다는 것이 주요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다. 다만 아직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30%에 가깝다고 하니 막판까지 양측의 치열한 홍보전이 예상된다.   결과가 주목되는 또 다른 발의안은 36이다. 이는 현재 시행 중인 주민발의 47의 효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피해액 950달러 이하의 절도와 마약 범죄도 중범죄 기소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급증하고 있는 집단 절도와 강도 범죄 등의 예방을 위한 것이다. 원래 주민발의 47의 취지는 경미한 범죄는 교도소보다는 교화를 통해 사회에 복귀시키자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범죄 급증으로 인한 무질서 상황을 해결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민발의안 36 발의의 배경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편의점을 약탈하는 청소년들, 모이면 군중심리로 무고한 주민들을 폭행하는 자전거족, 마스크도 쓰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며 상점을 터는 대범한 상습 범죄자들을 단죄하자는 것이다.     현재까지 주민발의안 36은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55% 가량이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는 20%에 불과하다.  반대 측은 범죄자들에게 교도소행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반증이 없다는 것이다. 찬성 측은 ‘가시적인 범죄 억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인구 1000만 명인 LA카운티 검사장 선거도 초미의 관심을 끈다. 연임에 도전하는 조지 개스콘 검사장과 내이선 호크만 도전자의 경쟁은 범죄로부터 도시를 구하는 방법론의 대결이다. 임기 내내 줄기차게 처벌보다는 교화를 강조해온 개스콘 검사장은 유권자들의 심판에 직면해 있다. 반면, 호크만 후보는 기강과 질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현재 여론은 호크만이 우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호크만이 40%대 중반의 지지율을 보이는 반면 개스콘의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동층이 30~40%에 달해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올해 선거는 특히 아태계를 포함한 소수계의 목소리가 더 중요해졌다. 막강한 스윙보트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발의안의 경우 소수계도 입장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주민발의안 33이 대표적이다. 세입자인 아태계가 있는가 하면 건물주인 아태계도 많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주민발의안 36에 대한 아태계의 지지율은 반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한인 사회 정치력 신장을 위해 한인 유권자들도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주민발의 선거 주민발의안 36 주민발의안 33 대통령 선거

2024-09-30

[중앙칼럼] 삶의 활력을 되찾은 시니어들

어릴 때 교회에서 들었던 말 중 아직도 뇌리에 각인된 성경 구절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가 대접받고 싶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다.   어릴 때야 그렇게 하라고 하니 외웠을 뿐이다. ‘왜?’라는 물음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는 불문율 같았다. 그렇다고 실천이 함께한 것 같지도 않다. 이기심이 꿈틀대면서, 자아가 강해지면서 실천은 더 쉽지 않다는 현실을 체감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타인을 위한 선행에 나서는 모습을 볼 때면 양심의 찔림을 느낀다. 그런데도 스스로 실천해볼 결단이나 행동력은 스멀스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한인 사회 곳곳에는 남모르게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귀인’이 많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분들이 아니라,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이들이다.     특히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놀랍다. 현장 속 그들의 이야기는 일상을 뒤돌아보게 한다.   차승표(74) 할아버지, LA한인회관 1층 복도에 5년째 자리를 잡고 앉아 각종 공과금 서류 등의 상담을 친절하게 해 주는 분이다. 원래 그곳에 있는 분이겠거니 하지만, 사실은 차 할아버지의 굳센 의지와 실천력이 일궈낸 커뮤니티 혜택이다.     차 할아버지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6시에 일어나 LA한인회관으로 향한다. 오후 3시까지 현장을 지키며 한인들이 가져온 갖가지 서류를 읽고,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 찾아오는 이들이 답답함으로 늘어놓는 하소연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하지만 그는 친절함을 잊지 않는다.     차 할아버지는 “영어로 된 편지가 오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 밤새 잠을 못 이룬다는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는 공무원 생활로 얻은 행정처리 업무 능력을 은퇴 후 남을 위해 쓸 수 있어 기쁘다며 웃는다.     LA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하는 최기열(77)·정인숙(78)·윤영희(68)·빅토리아 이(69)·이효기(59) 시니어도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얻는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다며 웃는다. 이들이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7년에서 최고 13년에 이른다.     최기열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 스스로가 밝아진다. 죽을 때까지 안내를 맡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정인숙 할머니는 “늙어서 집에만 있잖아? 힘들어…”라며 여걸다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들 모두에게서 즐거움과 생기가 느껴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한다. 남을 돕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자원봉사는 귀찮고 힘들 거라는 선입견이 잘못됐음을 알려준다.     시니어 자원봉사자의 공통점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삶의 기쁨을 느끼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보상으로 받는다.   한인 청소년 환경미화 봉사단체 파바월드(PAVA World)를 이끄는 명원식(67) 회장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이후로 봉사와 기부에 올인하고 있다. 그는 “빈손으로 떠날 때까지 합당한 일을 하고 가고 싶다”며 자원봉사와 기부가 남은 삶의 목표라고 했다.     글로벌어린이재단 이정희(67) 전 회장도 시니어가 돼서야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은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남을 위한 봉사는 안 했다. 생각 없이 골프만 치는 것보다 남을 도우며 생활하면 엄청난 보람을 느낀다”며 실천을 독려했다.     시니어의 자원봉사는 치매 예방 등 건강과 우울감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상위의 욕구 충족도 가능하다. ‘이타적인 삶’을 통한 존재의 의미다. 삶의 활력을 느끼고 싶지 않은가. 자원봉사에 나서보자.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시니어 활력 시니어 자원봉사자들 la한인타운 시니어 할아버지 la한인회관

2024-09-24

[중앙칼럼] 포퓰리즘 공약 남발하는 대선 후보들

올해 대통령 선거도 4년 전처럼 경제 문제가 유권자의 최고 관심사로 부상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제 공약이 투표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81%로 나타났다. 이는 4년 전의 79%에 비해 2%포인트 높아진 비율이다.     지난 몇 년간 지속한 인플레이션으로 주거비용을 비롯한 생활비가 치솟으면서 유권자들은 경제 상황에 더 민감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의 카말라 해리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모두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심성 경제 공약으로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9월 현재 35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공약은 없고 되레 늘리는 공약만 내놓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경제 공약으로 지적되는 것이 자녀세액공제(CTC) 확대와 팁 면세다.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양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책들이다. 왜일까? 둘 다 선심성 공약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적으로는 좋은 공약일지 모르지만 실효성은 떨어지고 재정 적자 폭만 늘리는 나쁜 공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두 공약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은 CTC를 자녀 나이에 따라 대폭 증액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구에 연간 60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2~5세 아동 1명당 3600달러를, 6세에서 16세까지는 3000달러의 세제 혜택을 약속했다. 해리스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소득 기준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캠프는 소득과 관계없이 미성년 자녀 1명당 50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현행 2000달러보다 최소 1000달러에서 최대 4000달러나 더 많다.   해리스의 CTC 확대안이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1조6000억 달러의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조세재단(Tax Foundation)의 추산이다. 트럼프 안의 경우엔 이보다 더 많은 10년간 3조2000억 달러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또 양 후보 모두 팁 수입에 의존하는 근로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팁 면세도 약속했다. 특히 경합지역으로 꼽히는 네바다주의 경우 10명 중 2명이 팁 근로자로 알려졌다. 팁 면세는 주요 유권자 그룹으로 부상한 히스패닉계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요식업 종사자 25%가 히스패닉계이기 때문이다.   CTC 확대가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세제 혜택이 목적이라면 수혜 대상을 좁혀서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조세 권익 옹호 비영리단체의 지적이다. 팁 면세 공약도 허점투성이다. 팁 근로자 3명 중 2명은 연방 소득세를 납부할 정도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팁 근로자 3명 중 1명만 팁 면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세무 전문가들은 “올해 연방정부 부채 이자로만 1조1580억 달러를 지출하게 생겼는데 양당 대선 후보는 이를 축소할 수 있는 공약은커녕 선심성 공약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도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며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가 내놓은 각종 공약을 시행하려면 2025년부터 2034년까지 재정 적자가 5조8000억 달러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해리스의 공약 역시 향후 10년간 2조240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증세인데 오히려 양 후보의 공약은 감세나 세액 공제 내용이 많다.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해결이 아니라면 취약계층 대상의 복지 정책 축소와 정부 지원 삭감 등이 불가피하다. 이는 곧 다른 취약 계층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양 후보 모두 사탕발림식 공약 남발은 그만하고 국민을 위한, 그리고 국민에게 정말 필요한 경제 공약을 내놓아야 할 때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칼럼 포퓰리즘 공약 경제 공약 포퓰리즘 경제 재정적자 규모

2024-09-17

[중앙칼럼] 하이브리드차 인기 부활 이유

지난 1997년 최초의 양산형 모델을 선보인 하이브리드 자동차(HEV)가 사반세기 만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양산 전부터 내연기관(ICE)과 배터리 구동 모터를 함께 장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갤런당 50마일이 넘는 뛰어난 연비를 자랑하며 자동차업계 혁신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도 저유가 시대에 등장한 탓에 소비자들에게 그저 친환경 콘셉트카 이미지로 여겨져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프리우스는 2000년대 접어들어 치솟은 유가 덕분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출시 10년만인 2008년 누적 판매 대수 100만대를 돌파한 프리우스는 2010년 200만대, 2011년 300만대 등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미국에서도 데뷔 연도인 2001년에는 1만5000대 판매에 그쳤으나 2011년 100만대 판매를 기록하는 등 HEV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도요타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이 “우리도 HEV를 생산한다”는 구색 갖추기로 일부 모델만 라인업에 포함하는 데 그치면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게다가 내연기관 모델보다 고가임에도 부족한 주행 성능과 비싼 배터리 교체 비용 등으로 성장세가 주춤했다.     특히 테슬라가 2017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EV 세단, 모델 3가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팬데믹 기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성공하자 각 업체가 앞다퉈 전동화 경쟁에 뛰어들었고 EV 시대 개막 분위기에 결국 HEV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EV는 친환경에 개스비 및 유지비 절약 등 장점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차량 가격에 충전 시간, 주행 가능 거리 제한 등이 소비자에 따라 구매 결정에 걸림돌이 됐다. 공공 충전 인프라 확대가 EV 판매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충전 이슈가 소비자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 데다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싼 수리비, 중고차 가치 급락 등도 기피 요인이 됐다.   EV 판매 촉진을 위해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7500달러 세액 공제 역시 초기에는 효과를 보았으나 지난해 말부터 강화된 자격 조건으로 대상 모델이 대폭 줄어 EV 판매 증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같이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EV 캐즘(chasm)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이 바로 HEV다. 아이러니하게도 EV 때문에 밀려났던 HEV가 EV 덕분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HEV는 수요 급증에 따라 지난 2분기 판매량이 31%나 뛰었으며 딜러에서의 판매 대기 기간도 평균 30일로 EV의 81일을 압도했다. 가격에서도 HEV는 평균 4만3142달러로 EV의 5만8619달러보다 1만5477달러, 26.4%가 더 저렴했다.     EV와 내연기관차의 장점을 누릴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찾는 소비자도 늘리면서 평균 거래가격이 6만2985달러로 오히려 EV보다 4366달러가 더 비싼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예상 밖의 HEV 인기몰이에 업체별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2022년에야 전기 SUV를 선보인 도요타는 다른 업체들이 EV에 주력할 때 HEV 모델을 순차적으로 확대해  세그먼트별로 12개가 넘는 HEV 모델을 갖춰 올 상반기 전체 판매량의 38.3%를 차지하며 HEV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EV에 전력하던 제조업체들은 HEV, PHEV 확대에 나서는 한편 기존 판매 전략까지 수정하고 있다. 복스왜건, 메르세데스 벤츠가 EV 전환 목표를 연기한다고 밝힌 데 이어 볼보도 2030년까지 전 라인업 EV화 계획을 포기하고 HEV 판매를 1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포드 역시 20억 달러 손실에도 전기 SUV 계획을 취소하고 HEV로 전환하는 수정안을 공개했다.   1년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HEV 돌풍을 EV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디자인, 기술력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얼마나 신속하게 반영하느냐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열쇠가 될 것이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하이브리드차 인기 내연기관 모델 양산형 모델 도요타 프리우스

2024-09-16

[중앙칼럼] 같은 비극, 다른 반응

뉴저지의 한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공분했고 이어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7월 뉴저지주 포트리에서 경찰 총격으로 숨진 빅토리아 이(25)씨 사건 얘기다.     이 사건은 지난 5월 LA에서 발생한 양용씨 사건과 닮은 데가 많다. 이씨도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증세가 심해지자 가족은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씨가 마주한 건 구급 대원이 아닌 경찰이었다.   경찰이 온다는 소식에 이씨는 칼을 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 사실을 인지한 가족은 경찰이 접근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하지만 경관은 현관문을 10여 차례나 두드렸고, 이씨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경관들은 문까지 부수며 진입했다.     이씨는 왼손엔 흉기, 오른손엔 물통을 들고 있었다. 경관은 두려움에 떨던 이씨가 다가오자 가차 없이 발포했다. 이씨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환자였을 뿐이다. 경찰은 그런 이씨를 범죄자 다루듯 했다. 경찰 총탄에 또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졌다.   경찰은 과잉대응 논란에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보디캠을 공개하며 원칙대로 대응했고 조사가 진행 중이란 말뿐이었다. 과연 뉴저지의 한인들이 경찰의 대응 규정을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무고한 시민에게 무분별하게 적용했다는 점에 분개한 것이다.   뉴저지 한인회, KCC, 민권센터 등 수많은 한인 단체 관계자들은 곧바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인 사회가 움직이자 여러 아시아태평양계 단체들과 주류 기관들이 목소리를 보태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건 발생 지역 인근인 포트리 커뮤니티센터 잔디광장에는 한인 단체를 비롯해 여러 소수계 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경찰의 정신질환자 대응 절차 검토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빅토리아 이가 양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적이다. 양씨는 영주권자, 이씨는 시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를 대리하는 김의환 뉴욕 총영사는 검찰총장실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당부했다. 포트리시의 마크 소콜리치 시장도 만나 빅토리아 이 사건을 언급하며 시스템 개선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개입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 총영사는 미국 내 한인의 60% 이상이 시민권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는 “국가적 차원을 떠나 인도적 면에서 접근했다. 편지조차 못 보내면 총영사로서 왜 앉아 있겠는가”라며 뉴욕과 뉴저지 지역 한인 사회의 단합된 대응까지 당부했다.   압박 여론이 거세지자 뉴저지 검찰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새로운 프로토콜까지 발표했다. 의분이 결국 변화를 끌어낸 셈이다.    LA 한인 사회는 어떤가. 양용 사건 규탄 집회에 한인 단체장이나 정치인은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한국 국민인 영주권자가 피살됐음에도 영사관 관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거 때만 되면 한인 사회를 찾는 존 이 LA시의원(12지구),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45지구), 영 김 연방하원의원(40지구) 등 현역 정치인은 공식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LA경찰국 임시 책임자가 한인인 도미니크 최 국장인데 그에게 부담을 주면 되겠느냐고 말한 전직 한인 단체장도 있었다.     잘못된 공권력 사용으로 인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가 한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더는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라고 목소리를 내자는 말이다.     17일(내일) LA시의회에서는 양용 씨를 기리는 추모 시간을 갖는다. 유가족은 시의원들과 주민들 앞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발언할 예정이다. 이날 시의회 관람석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한인 사회의 침묵은 멸시를 자초하는 것이고 무관심은 양용에 대한 2차 가해다.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장열 / 사회 부장중앙칼럼 비극 반응 뉴저지 한인회 한인 사회 한인 단체

2024-09-15

[중앙칼럼] 투표로 아메리칸 드림 되살리자

“지금의 미국은 내가 이민 왔을 당시의 미국이 아닌 것 같다.”   요즘 미국에서 오래 산 이민 1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한 올드 타이머는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사고 사업체도 인수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궜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언제 돈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민 30년 차 한인도 젊은 세대의 미래를 걱정했다. “취직한 손자가 아파트 월세가 부담스러워 아들 집에 얹혀산다. 손녀는 대학 졸업 후 1년이 지났는데도 취직을 못 하고 있다. 둘 다 내 집 장만은 포기한 것 같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마저 잃은 것 같아 안쓰럽다.”   한인들의 우려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인 ‘아메리칸 드림’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한가’란 질문에 동의한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12년 전의 같은 조사에선 절반이 넘는 53%가 동의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은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 해결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먹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11월 대선에서도 경제 이슈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그에 따른 극단적 대립을 우려하는 이도 많다. 한 70대 여성은 어떤 모임이든 정치 이야기는 아예 꺼내질 않는다고 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의 대화가 다툼으로 번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에는 이쪽저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사리에 맞는 말엔 서로 동의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남의 말은 들어볼 생각도 없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지지 정당이 다르면 자녀 결혼도 반대하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미국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인 단체에서 오래 활동한 한 한인도 비슷한 견해였다. “전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론 지지자들도 이렇게 심하게 대립하진 않았다. 공화당은 너무 오른쪽으로, 민주당은 너무 왼쪽으로 가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피곤해지고 있다. 옛날이 그립다.” 정치적 양극화는 사회 구성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물론,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릴 해법 마련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극심한 양극화는 한인 정치력 신장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한인 정치 1번지’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한인 사회는 선거에 출마한 한인이 있으면 당적과 관계없이 후원하고 투표했다. 한인 선출직 공직자를 한 명이라도 더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인 후보도 당적을 봐가며 뽑겠다는 이가 늘었다. 어느 당이든 한인이 많이 당선될 수 있도록 돕자는 목소리는 전보다 잦아들었다. 이 또한 정치적 양극화의 결과물이다. 각자의 신념에 따른 투표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한인 정치력 신장이란 깃발 아래 모였던 한인들이 너무 빨리 흩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오는 11월 5일 OC 한인 유권자들도 차기 대통령 선출과 함께 각급 선거에 출마한 한인 후보들에 투표할 기회를 갖게 된다. 후보 중엔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있다. 만약 한인 후보의 당선과 선호 정당 후보 지지란 두 가지 선택을 놓고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면 서로 다른 선택의 무게를 가늠해본 뒤 투표하길 권한다. 물론 어떤 선택이든 존중한다.   경제와 정치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서로 영향을 준다. 미래 세대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노력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적어도 경제와 정치 상황이 지금보다는 한층 나아진 곳일 것이다.   미래 세대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성세대의 책무다. 이를 도울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지금 사는 세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를 바꾸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고작 내 한 표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며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더 멀리, 더 빨리 나아갈 것이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아메리칸 투표 한인 후보들 아메리칸 드림 한인 정치력

2024-09-09

[중앙칼럼] 대낮 강도는 꼭 체포해라

8월21일 낮 12시40분쯤 LA 6가와 마리포사 애비뉴에 있는 쇼핑몰 ‘시티 센터 온 6th’ 주차장에서 히스패닉 남성이 차 안에 있던 한인 여성에게 다가가 총으로 위협하며 금품을 요구했다.   강도가 총으로 차량 유리창을 깨고 금품을 강탈하려 하자 여성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 하지만 강도는 달아나는 여성을 뒤쫓아가 가방을 빼앗고 대기 중이던 차량에 탑승한 뒤 현장에서 도주했다. 가방 안에는 휴대전화와 귀중품이 들어있었다.   8월16일 오전 10시쯤 한인타운 윌셔가 북창동순두부 옆 공영주차장에서 주차 티켓 발급을 기다리던 한인 남성이 권총과 칼로 무장한 2인조 강도에게 폭행당하고 고급시계와 소지품을 강탈당했다.     8월15일 오후 2시30분쯤 LA 한인타운 내 한미은행 주차장에서 한인 고객이 강도를 당했다. 흑인 2명이 은행에 들어가려던 한인 여성에게서 현금과 수표 1만3000달러가 든 가방을 빼앗아 도주했다.   최근 보름 새 LA 한인타운 내에서 발생한 강도사건들이다. 이 세 사건은 모두 대낮에 한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장소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감시카메라까지 있는 장소다. 마치 강도들은 아무도 피해자를 도우러 달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고, 감시카메라에 범행 장면이 찍혀도 상관없다는 듯이 너무 대담하다.   8월21일 강도사건이 발생한 쇼핑몰은 한인 대형마트를 비롯해 베이커리, 식당, 의류 및 화장품 가게 등 한인 업소가 다수 입점해 있어 한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다. 식당을 찾는 손님과 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이 오가는 점심시간에 사건이 발생했다.   8월16일 북창동순두부 옆 공영주차장에서 한인 남성이 2인조 강도에게 폭행당할 때 주차보조원과 목격자들이 근처에 있었다. 목격자들이 경찰에 강도 신고를 해주었지만, 아무도 피해자를 도우러 나서지는 않았다. 강도들이 권총과 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도들이 도주한 뒤였다. 피해자가 폭행당하고 소지품을 강탈당하는 장면은 고스란히 주차장 CCTV에 찍혔다.     총으로 무장한 강도들이 대낮에 범행을 저질러도 경찰 대응은 무력하기만 하다. 경찰은 차량 문을 잘 잠그고 차에서 내릴 때는 주위를 살펴 범죄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한다. 범행대상이 된 피해자의 잘못이란 말인가? 도대체 경찰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범죄에 대처하는 경찰의 소극적인 태도는 자바시장 한인 업소들이 무더기 침입 절도 피해를 본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2인조 절도범은 인적이 뜸한 토요일 밤 한 업소에 침입한 뒤 벽을 터널처럼 뚫어 다른 업소로 이동하면서 절도 행각을 벌였다. 일부 업주가 일요일 오전 경찰에 절도피해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해당 업체만 방문해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절도범은 같은 날 밤 10시쯤 다시 찾아와 자정까지 2차 절도 행각을 벌였다. CCTV에 찍힌 2인조 절도범은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면서 태연하게 훔쳐갈 물건을 옮겼다.     이 지역에선 지난 3월에도 보석 업체들이 무더기로 털리는 등 각종 절도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여러 차례 피해를 본 곳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방범 시스템을 잘 구축하고 문단속을 잘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순찰 강화 등 예방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바시장 상가들이 계속 절도피해를 보는 것은 경찰이 절도범 체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체포될 위험이 낮은 ‘절도 맛집’으로 도둑들에게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한인타운이 대낮에 강도를 저질러도, 목격자가 있어도, 감시카메라에 범행 장면이 찍혀도 체포되지 않으면 강도들 사이에 ‘강도 맛집’으로 소문날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치안의 둑이 무너진다. 경찰이 한인타운 내에서 발생한 대낮 강도사건의 용의자들을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이유다.  이무영 / 뉴미디어 국장중앙칼럼 대낮 강도 2인조 강도 강도 신고 la 한인타운

2024-09-02

[중앙칼럼] ‘블랙 잡’과 ‘캣 레이디’

정치적으로 말할 때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이로 인해 정치인이 뉴욕에서, 몬태나에서, 가주에서 연설할 때 장소에 따라 내용과 접근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듣는 유권자들의 심정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라도 오해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이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그런 배려를 잘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부정적으로는 항상 핵심을 피해가며 누구나 듣기 좋은 두루뭉술한 발언을 꼬집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후보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블랙 잡’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혹시 잘 못 들었나 싶어 영상을 돌려봤지만 정확히 ‘블랙 잡(black job)’이 맞았다. 이후 그는 ‘라티노 잡’이라는 말도 썼다.     물론 일상에서 흑인들이 주로 하는 일들과 라티노들이 많이 종사하는 업종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유권자들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다. 흑인들이 식당과 공장,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업종에 많이 종사한다고 흑인 전체에게 그런 표현을 썼다면 정치인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트럼프가 부통령 후보로 영입한 밴스 후보는 과거 연설에서 ‘자녀 없이 고양이와 사는 여성들(childless cat lady)’을 겨냥했다가 거센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미국에는 자녀가 없는 20~40대 여성이 무려 22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해당 발언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지만 여성들의 불편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밴스는 한 방송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가치가 사라지고 반가족적인 정서가 미국 내에 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조소적인 표현이긴 했지만 이런 현상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봐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인이 어떤 형태로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지는 정치인이 결정하거나 꼬집을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민주당의 반박이다. 더 나아가 높은 렌트비와 물가로 가정을 꾸리고 싶어도 꾸릴 수 없는 여성들에게는 적잖은 상처를 준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맞다. 한때 ‘코리안 잡’도 있었다. 세탁소, 샌드위치 가게, 리커스토어, 주유소 등은  80~90년대 이민생활을 한 한인들에겐 친숙한 업종들이다. 하지만 이제 한인 사회는 많은 정치인을 배출하고 큰 단체를 만들어 미국 사회에 기여도 하고 있다. 만약 특정 정치 세력이 ‘코리안 잡’이라는 표현으로 한인 사회를 경시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사과와 이의 수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영혼도 내다 판다는 말이 있다. 표를 얻기 위한 분명한 자기 철학과 주장은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실망한 유권자들은 투표를 포기할 수 있으며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는 결코 미국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누구를 찍었건,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되건 미국인들은 미국이 온전하게 강대국의 자리를 유지하게 되기를 원한다. 비싼 주거비에 시달리지 않고, 저녁 길거리 치안도 걱정하지 않으며, 지구촌의 평화에도 기여하길 바란다.     11월 선거에 나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들은 여성, 소수계, 특정 그룹을 멸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 증오 유발 발언으로 표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거가 갈등만 키우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번 대선은 편 가르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결과는 겸허히 수용하는 제대로 된 선거가 되길 바란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레이디 블랙 한인 사회 부통령 후보 여성 소수계

2024-08-26

[중앙칼럼] 기후변화 피해에도 빈부 격차

# 김 모씨는 비싼 전기료가 걱정돼 지난달 에어컨 사용을 작년보다 많이 줄였다. 그런데도 전기료는 작년의 2배나 나왔다. 그는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공과금이 오르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이 모씨 부부는 올해 주택보험 가입을 포기했다. 연간 4000달러 수준이던 보험료가 9000달러 이상으로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는 “집값이 너무 오른데다 높은 모기지 이자율 때문에 집을 팔고 이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특히 주택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모기지 융자도 받을 수 없어 이사는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전세계가 물난리와 폭염 등 이상기후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이 서민과 빈곤 국가에 더 가혹하다는 점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이들의 재정 부담이 부유층이나 선진국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폭우, 홍수, 폭염, 산불 등의 자연재해가 유틸리티 비용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에너지 관련 단체에 따르면 올해 가구당 평균 냉방 비용은 719달러로 작년의 661달러에 비해 58달러가 오를 전망이다.     폭염으로 인한 냉방비는 중산층도 버거워할 정도다. 그러니 저소득층, 장애인, 시니어 등 취약계층이 겪는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다.   지난 2018년 애리조나주에서는 한 전기 회사가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그해 9월 화씨 100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한 가운데 72세 시니어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 원인은 온열 질환이었다. 전기 회사 측이 전기료를 연체한 이 여성의 집에 전기공급을 중단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단전으로 선풍기도 에어컨도 사용할 수 없었다.     단전 이후 그녀는 연체된 176달러에서 51달러 모자란 125달러를 겨우겨우 납부했지만 전기회사는 완납이 아니라며 전기 공급을 재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사흘 만에 온열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 사회는 전기회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급기야 정부는 여름철에는 전기료 연체를 이유로 전기를 끊을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이 조치를 영구화했다.     폭염에 더해 기후변화로 빈발해진 산불이나 강풍은 주택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주택 보험사들이 산에 가깝거나 주위에 큰 나무가 있는 주택의 경우 주택보험료를 급격하게 인상하거나 가입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지 융자를 받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주택보험 가입 여부다. 그런데 보험료가 너무 비싸 바이어들이 집을 사는데 제약을 받고 있을 정도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전언이다. 돈을 빌려주는 대출 기관 입장에서는 산불이나 강풍으로 주택에 피해가 발생하면 융자금 회수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주택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주택 보험사들은 산불이 강풍 위험의 증가를 이유로 너무 비싼 보험료를 요구하고 있어 주택소유주나 바이어의 재정 부담은 훨씬 커졌다. 아예 보험사들이 주택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지역의 주택은 융자 없이 현금으로 집을 사야 한다.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면 산 근처의 집을 마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존 주택소유주 중에도 비싼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주택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소유주가 느는 추세다.   최근 리카르도 라라 가주보험국장은 “가주 보험 위기가 서민주택 개발은 물론 주택시장 전체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해 빈번해진 자연재해는 많은 사람의 재산과 목숨을 앗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빈부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신속히 냉난방 불평등 문제 해결 방안과 함께 주택보험 개선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기후변화로 인한 서민들의 현실적인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다. 진성철 / 경제부장중앙칼럼 기후변화 피해 올해 주택보험 전기료 연체 주택 보험사들

2024-08-12

[중앙칼럼] 달라지는 ‘관광’ 트렌드

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일본 도쿄 지역 명소들을 둘러보기 위해 여행길에 나섰는데 첫날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일정이 Z세대 아이들이 원하는 투어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사쿠사의 대표적 아이콘인 카미나리몬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길 양옆에 상점이 늘어서 있는 나카미세를 구경했다. 연간 수천만 명이 찾는다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센소지가 눈앞인데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로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소개된 단고(경단) 전문점 때문이었다. 단고를 사서 맛보는 장면을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대며 좋아했다. 아사쿠사에서 꼭 해야 하는 문화 체험이라며 유카타를 빌려 입겠다고 해서 알아보니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아이들은 사흘 뒤 아사쿠사를 다시 방문해 유카타 체험을 하며 이곳저곳에서 사진 담기에 바빴다.  빠듯한 일정에 갔던 곳을 또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음 날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하라주쿠를 가려 했으나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을 먼저 가야 했다. 바로 스튜디오 지부리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테마로 한 슈크림 공방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시모키타자와역에서 내려 시로히게 슈크림 공방을 찾아갔다. 역 인근에 팬시한 레스토랑, 카페들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가 한참을 가다 보니 슈크림 공방이 나왔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친동생이 운영하는데 지브리의 공식 인증을 받아 토토로 슈크림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주택가임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카페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90분으로 제한될 정도였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인테리어에 신이 난 아이들은 사진 촬영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바빴다.     쇼핑 역시 소셜미디어 영향이 컸다. 인플루언서들이 소개한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둘러보고 구매하느라 대형 할인매장 돈키호테에 서너 차례나 가야 했다. 결국 계획했던 관광지는 절반도 가보지 못한 채 돌아왔다. 명소를 둘러보기보다 소셜미디어 트렌드를 중심으로 관광을 즐기는 모습에서 세대 간 높은 벽과 시대가 변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같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자 여행업계와 항공업계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USA투데이 최근 보도에 따르면 여행이나 항공편 이용 시 연기, 결항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오래 기다려야 하는 전화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객 서비스를 받는 것이 이슈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각 업체가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 고객 응답률도 높고 신속히 응대한다는 것이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을 목표로 하는 한국관광공사도 최근 한류 콘텐츠로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50여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LA지역 인플루언서를 한국관광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보통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홍보대사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컬 인플루언서를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인플루언서가 자체 기획한 올가을 4차례 한국투어단 모객이 매진됐을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 감각의 한국관광 콘텐츠가 확산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반해 한인 여행업계는 여전히 기존 투어상품 중심으로 모객 경쟁을 펼치고 있다. 업체별로 자체 개발한 투어라며 홍보하고 있지만, 관광 명소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방문지나 일정을 살펴보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고객층도 시니어나 중장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매출 확대에 한계가 있다.     그나마 일부 업체들이 시즌별 테마 투어 상품을 내놓고 있고 한류 붐으로 한국관광에 관심을 갖게 된 한인 2세와 타인종 모객을 위한 영어 가이드 투어를 시작했다.   최근 한류 문화가 큰 관심을 끌고 있고 소셜미디어라는 강력한 마케팅 툴도 등장했다. 한인 여행업계도 최신 트렌드를 직시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트렌드 관광 소셜미디어 트렌드 한국관광 명예 소셜미디어 영향

2024-08-11

[중앙칼럼] PC주의에 경도된 괴이한 올림픽

괴이했다. 파리 올림픽 개회식 예술 감독을 맡은 토마 졸리도 이런 반응을 내심 우려했나 보다. 개회식 배경 중 하나였던 콩시에르주리에서는 프랑스 혁명가들의 노래인 ‘Ah! Ca Ira(아, 괜찮을 거야)’가 흘러나왔다.   어쩌나. 안 괜찮았다. 세계인이 보는 개회식에서 목이 잘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남긴 건 물음표뿐이다. 프랑스의 극좌 정치인 장뤼크 멜랑숑 마저 “왜 앙투아네트였는가”라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니 말 다 했다.   말이 나올만한 장면은 계속 이어졌다. 갑자기 세 명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남성, 여성, 성 소수자다. 이들은 한 방으로 들어가 야릇하게 포옹을 하더니 문을 확 닫아 버렸다.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다. 방 안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어린 자녀와 개회식을 시청한 부모들에게는 매우 난감한 순간이었다.   또 있다. 얼핏 스머프인가 했다. 난데없이 디오니소스가 마이크를 잡았다. 프랑스 가수 필리프 카트린느가 술과 욕망의 신으로 분장했다. 파란 망사 옷을 입었지만 사실상 나체다. 노래 제목마저 ‘Nu(벌거벗은)’였다.   급기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까지 패러디했다. 예수의 제자들 대신 ‘드래그 퀸(여장남자)’이 등장했다. 지난 2012년 바로 옆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에서 제임스 본드가 진짜 ‘퀸(엘리자베스 2세)’을 데리고 등장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최후의 만찬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 종교계가 앞다퉈 분노했다. 그럴만하다. 프랑스 주교회는 즉각 기독교에 대한 조롱과 조소였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저명한 로버트 배런 주교(미네소타주 위노나·로체스터 교구장)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그들이 과연 이슬람도 그러한 방식으로 조롱할 수 있었을까”라고 개탄했다.   그러자 개회식 예술 감독 졸리는 포용성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라고 항변했다. 단지 포용의 메시지 때문에 예수의 마지막 시간을 묘사했는가. 그 예술성으로 무함마드나 석가모니까지 함께 등장시켰으면 어땠을까. 반발이 우려됐다면 그는 전형적인 겁쟁이 예술가에 불과하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저탄소, 친환경 대회’를 기치로 내걸었다. 대회 기간 육류 비중을 크게 줄이고 주로 식물성 식품을 선수촌에 제공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심산이었다. 기름 사용 때문에 급기야 감자튀김마저 뺐다.   무더위 속 냉방도 논란거리였다.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고, 선수단 버스의 냉방 장치를 제한했다. 친환경 대회를 추구하겠다며 선수촌 침대마저 골판지로 제작했다. 심지어 스웨덴 여자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은 불편함을 호소하다가 사비를 들여 매트리스를 따로 구매했을 정도다.   아이러니하다. 사회적 약자와 포용성을 강조하고 저탄소를 외치며 나름대로 의식 있는 대회를 준비한 파리 조직위원회는 정작 역대급 사치 올림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성화 케이스는 물론이고 메달을 운반하는 트레이는 올림픽의 프리미엄 파트너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명품 계열사들이 제작했다. 조직위원회가 유치한 스폰서십만 무려 13억 달러에 달한다.   그들은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파리와 주변 지역의 노숙자, 난민 등을 몰아냈다. 사실상 대대적인 ‘사회 청소’를 벌인 셈이다. 이중적이다. 올림픽을 명품으로 도배한 돈으로 약자를 도왔다면 파리의 그늘엔 햇볕이 들었을 터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을 상징하는 ‘DEI(Diversity·Equity·Inclusion)’의 개념 자체는 좋다. 단, 은연중에 특정 사상을 강요하면서 본질을 왜곡하려는 행태가 문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어떤가. 인종, 성 정체성, 환경, 동성결혼 등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마치 진보적 생각이 우월한 것처럼 우겨대는 ‘워크(woke)’도 너무나 편협하다.   파리 올림픽은 특정 사상에만 경도되면 얼마나 괴이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촌극이었다.  곧 폐회식(11일)이다. 사상 강요보다 예술을 보고 싶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pc주의 올림픽 올림픽 개회식 파리 올림픽 개회식 예술

2024-08-08

[중앙칼럼] 주택시장 구할 후보는 누구일까

주택시장은 뜨거운 여름 성수기에도 냉각 상태다. 주택 구매력의 위기 때문이다. 예비 주택 구매자는 물론 주택소유주, 다운사이징을 고려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모두 딜레마다.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이 주로 구입하는 이른바 스타터홈 주택 가격이 하락한 주택 구매력을 반증한다.     주택 정보 업체인 질로의 분석에 따르면 전국에 주택 최저가가 100만 달러가 넘는 도시가 237개에 이른다. 5년 전의 84개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높은 주택 가격으로 자녀들의 내 집 장만이 쉽지 않자 부모들이 지원 사격에 나서기 시작됐다. 자녀의 모기지 대출에 기꺼이 코사인을 한다. 부모가 공동차용자가 되어 자녀와 동일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소득이 10만 달러 이상인 부모라면 코사인을 하는 비율은 17%로 증가한다.     첫 주택 구매자인 부모와 자녀가 공동명의로 주택을 구입하기도 한다. 대학생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대학 주변의 투자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새로운 부동산 투자 트렌드로 나타나기도 한다. 렌트 소득에 자녀 졸업 후에는 매각을 통한 투자 수익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현 주택소유주도 위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최근 3년간 모기지 금리 상승으로 인해 ‘황금수갑 효과’에 묶였다.     팬데믹 기간 3% 이하의 역대 최저 모기지 금리를 확보한 주택소유주들이 주택 판매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주택소유주 가운데 5% 미만의 금리를 가진 비율은 약 80%에 이른다. 이런 상황을 보면 매물 부족은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은퇴 연령에 진입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노후생활을 위한 다운사이징 효과가 사라졌다. 통상적으로 시니어들은 자녀가 독립하면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겨 은퇴 생활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주택가격 상승에 모기지 이자율도 올라 주택을 팔아도 기대만큼 수익이 많지 않다.       부동산 시장이 위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수년간 상승 곡선만 그리던 주택 가격이 꺾였다. 셀러는 가격을 내리고 모기지 금리는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부 셀러는 리스팅 가격보다 3~5% 낮은 가격으로 오퍼를 받고 있다. 지난달 전년 대비 리스팅 가격을 내린 매물이 증가한 지역은 전국 50개 대도시 중 47곳에 달한다. 그래도 주택구매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모기지 금리 하락세에도 주택 가격은 왜 꿈적도 하지 않을까. 모기지 금리가 아직은 높고 가을 금리 인하 전망에 대한 기대로 서두르지 않고 있어서다. 일부에서는 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인 내 집 마련의 실현이 사상 최악인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자연히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이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2인자였던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경제 정책도 바이든 대통령 재임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은 첫 주택구매자와 세입자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의회 연설을 통해 주택 구매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책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는 주택소유주 우선이다. 그는 바이든 정부가 용도 변경을 쉽게 하는 바람에 아파트 등 다세대 주택 건설이 늘면서 주택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제 대선까지 100여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동안 대선 공약에서 부동산 정책은 항상 뒤로 밀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주택 위기에 몰린 유권자들은 냉각된 주택시장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의지를 보이는 후보에게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주택시장 후보 주택소유주 다운사이징 주택소유주 가운데 주택 구매력

2024-08-06

[중앙칼럼] 저소득층·시니어는 살기 어려운 한인 타운

한인타운은 LA에서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다. 2020 연방센서스에 따르면 2.9스퀘어 마일 면적에 11만4047명이 살고 있다. 1스퀘어 마일당 인구는 3만9632명. LA시에서 1스퀘어 마일당 거주인구 4만 명에 근접한 곳은 한인타운이 유일하다.     인구밀집으로 아파트 수요는 높다. 렌트비는 나날이 치솟아 스튜디오도 최소 1200달러 이상 줘야 한다. 반면, 한인타운 거주자의 가구당(4인 기준) 연평균소득은 4만6000달러로 LA카운티의 가구당 8만2516달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렌트비가 부담스러운 이들은 독립공간 대신, 방 하나 세 들어 사는 하우스 메이트로 생활비를 줄이고 있다. 물가가 비싼 LA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LA 시와 카운티 최저임금은 시간당 17.28달러. 최저임금이 높다는 지적이 있지만 LA 생활물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해마다 오르는 렌트비와 물가를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비영리단체인 민족학교의 주거문제 담당자는 “보통 월 소득의 30%를 렌트비로 내야 생활이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한인타운 주민은 렌트비로 월 소득의 50% 이상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생활은 굉장히 타이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결국 한인타운 저소득층은 렌트비가 저렴한 아파트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인타운에는 아직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낡은 아파트가 많다. 입주조건이 덜 까다롭고, 가격대비 주거 공간도 괜찮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재건축 붐으로 위태롭다. 자본주의의 개발 논리를 탓할 수도 없다.     저소득층과 시니어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정부지원 공공주택 아파트다. 인구밀집을 탓해야 할까. 한인타운 내 저소득층과 시니어용 아파트는 턱없이 부족하다. LA주택국이 공개한 공공주택 현황을 보면 현재 한인타운에서 신규 입주신청이 가능한 곳이 없을 정도다.       민족학교 측은 “저소득층과 시니어의 아파트 입주 상담 문의가 하루 평균 10건은 되지만 공급이 없어 기다리기만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저소득층 및 시니어 아파트 신청을 돕는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민족학교, K타운액션, LA한인회는 한인타운의 개발붐을 우려하고 있다. 렌트컨트롤(rent stabilization) 정책 덕에 세입자가 저렴하게 머물던 오래된 아파트가 점차 없어지고, 기존 세입자는 감당할 수 없는 고가의 신축 아파트가 우후죽순 늘어나서다.     반면 정부가 주도하는 저소득층 및 시니어 전용 아파트 신축 프로젝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인타운 거주자가 갈수록 치솟는 렌트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의 한 원인이다.     비영리단체 관계자들은 연방 주택국(HUD), 가주 정부가 저소득층 및 시니어 전용 아파트를 직접 짓는 대신, 민간 개발업체 지원 방식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개발업체들은 많은 혜택에도 불구 전체 유닛의 10% 정도만 저소득층 및 시니어에 할당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주도 저소득층 및 시니어 아파트는 ‘세입자 모집 공고 및 접수->무작위 컴퓨터 추첨’ 방식으로 투명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민간 개발업체가 지은 아파트 내 저소득층 및 시니어 유닛은 ‘자체 인맥 활용, 정보 미공개’ 등 입주자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행정 편의주의가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도와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LA테넌트유니언(L.A..Tenants Union) 측은 “한인타운에는 많은 주민이 렌트컨트롤이 적용되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며 “시 정부는 재개발 계획 승인에 앞서 기존 세입자 보호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LA시 정부는 저소득층 및 시니어 주거 안정 정책의 효율성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저소득층 시니어 한인타운 저소득층 시니어용 아파트 시니어 아파트

2024-07-28

[중앙칼럼] 한인 대통령 후보,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 후보 도전자들이 하나둘 등장할 무렵 공화당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소식은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의 대선 출마 발표였다. 당시 정계가 그녀의 출마 선언에 놀란 이유는 여성인 데다 인도계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출신인 헤일리 전 유엔 대사의 결혼 전 이름은 니마라타 니키 란드하와라.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인도 펀자브 출신의 시크교도다. 그녀는 마이클 헤일리와 결혼 후 성을 바꾸고 종교도 기독교로 개종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시크교 연례행사에 참석하는 등 인도계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공화당 대통령 대선 후보 도전자 가운데는 인도계가 한 명이 더 있었다. 역시 이민 2세인 비벡 라마스와미였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다. 바이오기업 로이반트 사이언스를 창업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 사업가다. 그는 당시 공화당 후보로 등록하며 대선 공약으로 기후변화와 성 소수자 관련 이슈 등을 내세워 기존 공화당 후보들과는 차별된 행보를 보여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인도계의 대선 도전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바비 진덜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다. 그의 본명은 피유시 진덜로 당시 함께 출마했던 마르코 루비오보다 1개월이 어려 최연소 후보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진덜 전 주지사 역시 하버드 의대, 예일대 로스쿨에 동시 합격하고서도 로즈 장학금을 받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에 유학해 23세에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이후 매켄지&컴퍼니에 입사했다가 정계로 발을 들여 24세에 루이지애나 주 보건부 장관, 30살에 연방 보건부 차관보를 맡으며 젊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 덕에 그는 2009년 첫 인도계 주지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지지율이 1%도 못 미쳐 결국 중도 사퇴했었다. 하지만 그의 대선 도전으로 미국 유권자들은 이제 ‘인도계 대선 주자’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민주당에도 많은 인도계 정치인이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물러날 경우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도 인도계 정치인으로 꼽힌다.     또 연방 하원의원에는 로 칸나, 아미 베라 의원이 있다. 둘 다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워싱턴 주에는 프라밀라 자야팔, 일리노이 주에는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미시간 주에는 슈리 타네다르  의원이 인도계 정치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인도계 정치인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감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커뮤니티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인도계 커뮤니티는 정치인으로 출마하는 후보를 위해 똘똘 뭉친다. 이민자 출신인데도 인도계 주지사가 여럿 배출된 이유”라며 “정치인 배출을 위해 커뮤니티가 단합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부럽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낙점한  J.D. 밴스 공화당 상원의원의 아내가 인도계로 알려지면서 주류 언론들은 그녀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녀 역시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예일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에서 장학생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이 엘리트 여성은 존 로버츠 주니어 연방대법원장의 재판연구원 등을 하며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한인 사회는 11월 선거에서 앤디 김 후보의 연방 상원 입성 여부를 가장 주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금 모금 활동 등 힘을 모으고 있다. 인도계 커뮤니티처럼 곧 한인 주지사, 대통령 도전자도 나왔으면 좋겠다. 꿈은 이루어진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대통령 한인 대선 후보 후보 도전자들 인도계 이민자

2024-07-21

[중앙칼럼] ‘엔저’로 쇼핑·관광 천국된 일본

최근 수퍼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14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은 15일 현재 1달러에 158.10엔을 기록, 반년 만에 20엔 가까이 치솟았다.  이 같은 엔저 현상의 원인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에 따른 투자 수익률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월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엔화 환율이 170엔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퍼 엔저로 산업 분야별로 다양한 득실이 발생하지만 소비자들이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여행, 쇼핑이 아닐까 싶다. 100달러를 환전할 경우 1만6172엔이 되니 여행 경비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쇼핑도 저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일본 하면 ‘물가가 비싸다’라는 인식 때문에 여행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는데 엔저에 강달러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지난 4월부터 남가주 한인 사회에서도 일본 여행 붐이 일기 시작했다. LA지역 한인 여행사들에 따르면 일본 여행 문의 및 예약이 예년보다 2배 이상 급증했으며, 특히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 단위로 한국 방문길에 일본 여행에 나서려는 한인들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수년 전부터 K팝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이들 성화도 있었던 데다가 이번 수퍼 엔저 특수도 누려보고자 최근 한국과 일본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도쿄를 방문하는 것은 대학 시절 이후 30여년 만이었기에 아이들 못지않게 기대가 됐다.     엔저 효과를 바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호텔비였다. 일본항공이 설립한 닛코호텔에서 첫날을 보냈는데 숙박비가 하루 48달러에 불과했다. 일식과 양식 메뉴에 각종 비타민 코너까지 갖춘 호텔 내 뷔페식당도 1인당 2200엔으로 환산하면 14달러도 안 됐다. 이 정도 수준의 호텔과 뷔페 서비스를 이렇게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니 LA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도쿄도청 인근 신주쿠 지역을 둘러보는데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고층 빌딩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길거리에 늘어선 자판기들은 여전했는데 가격을 보니 음료수 종류에 따라 130엔에서 160엔 사이었다. 30년 전 기본 가격이 100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크게 오른 것 같진 않았다.     즐겨 먹던 회전스시 전문점을 찾아 가보니 가장 저렴한 접시가 개당 110엔부터 시작됐다. 30년 전 기본 접시 가격인 100엔에서 10엔 오른 데 그쳤다는 점이 놀라웠다.     LA에서 가족 5명이 회전스시를 먹을 경우 약 200달러 가까이 나오곤 했는데 신선도나 품질에서 앞서는 스시를 본고장에서 배불리 먹었음에도 78달러라니…. 엔저에 봉사료가 없는 것도 지갑 부담을 크게 줄여 줬다.   이 밖에도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우동, 소바, 규동, 가츠동, 카레 등의 음식 가격도 1000엔 전후였다. 일본 회사원들이 점심 식사비로 평균 1000엔 이하를 지출한다는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1000엔이면 6달러다. LA 한인타운에서 점심을 먹을 경우 20%에 달하는 봉사료까지 더하면 20달러 전후가 나오니 일본에서는 3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셈이다.     팬데믹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고 일본 역시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4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하는데 미국서 직면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서민들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왜 이리 크게 체감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대형 할인매장 돈키호테에서도 엔저 특수에다가 면세 혜택까지 누리려는 한국, 중국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최근 일본 여행 트렌드를 나타내는 틱톡 영상이 화제인데 내용을 보면 ‘먹고 쇼핑하고, 먹고 쇼핑하고’하느라 정작 봐야 할 관광 명소는 보지 못한 채 쇼핑 물건들로 가득 찬 가방만 남는다는 내용이었다.   네티즌들 사이에 ‘미국서 벌어 일본서 쓰는 것이 가성비 최고’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일본서 지갑을 이렇게 홀가분하게 열어볼 수 있는 날이 또다시 올까 싶다. 무더운 여름 성수기 시즌을 피해 올가을이나 겨울, 한국에 갈 일이 있다면 일본 여행에 나서보길 권하고 싶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일본 엔저 여행 쇼핑 수퍼 엔저 엔저 현상 NAKI 일본 여행

2024-07-15

[중앙칼럼] LA카운티미술관의 갈팡질팡 행보

무려 넉 달간 논란의 위작을 내걸었다. 파문이 일자 전시회 종료일과 맞물려 슬그머니 그림을 내렸다. 언뜻 보면 위작 논란 때문에 작품을 내린 것인지, 전시 일정이 마무리돼서 내린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상 꼼수에 가깝다. 최근 세계적인 예술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LA카운티미술관(관장 마이클 고반·이하 LACMA)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2월부터였다. LACMA측은 한국의 대표적 화가인 이중섭, 박수근의 그림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보물들(Korean Treasures)’이라는 전시회를 가졌다. 그런데 미술계가 위작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LACMA측은 아직 관람객들에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언론 질의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뒤늦게야 입장을 밝혔다.   전시회 이후 도록(catalog) 발간은 상징성이 있다. LACMA측은 뒤늦은 성명을 통해 한국 미술계 관계자들 앞에서 도록 발간 취소를 언급했던 마이클 고반 관장의 발언을 번복했다. 위작 전시를 사실상 전면 부정하며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LACMA는 미국 서부지역 최대 미술관이다.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남가주에 있기 때문에 특히 한인 사회와도 접점이 많다. LACMA측도 이를 알기 때문에 한국 관련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해왔다. 지난 2022년의 특별 기획전 ‘사이의 공간’도 LA에서 한국 근현대 명작들을 감상할 좋은 기회였다. 한국의 미술 명작들을 대규모로 전시해 주류 사회에 선보인다는 건 그야말로 한인들에게는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LACMA는 한인 예술가들에게는 꿈을 갖게 하는 곳이다.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LACMA와 같은 유명 미술관에 걸리기를 희망한다. LACMA의 명성, 공신력은 그만큼 힘이 있다.     LACMA는 또한 대중적이다. 미술 애호가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서 친지 등이 오면 함께 즐기며, 산책 삼아 둘러보기에도 좋다. 일례로 야외에 있는 ‘어반 라이트(Urban Light)’ 설치 작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기념촬영 명소가 됐다.   LA의 중심부를 가르는 윌셔 불러바드를 오갈 때마다 보게 되는 미술관 건물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LACMA가 위작들을 내걸었다가 입장을 번복하는 행위는 한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위작 전시 파문은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일이었다. 전시회가 시작됐을 때부터 곳곳에서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LACMA측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제기된 문제점들을 마치 근거 없는 주장처럼 치부하고 폄하했다.   심지어 전시회를 기획한 스티븐 리틀 아시아 미술부장은 위작 의혹 제기에 “아마도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이 LACMA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며 “우리는 작품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고 자신했다. 그랬던 LACMA측은 결국 한국 미술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위작 가능성을 인정했고, 계획했던 도록 발간까지 취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심각한 건 위작 인정 후 이를 다시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작 가능성을 인정한 순간 LACMA측은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일단 전시회부터 종료했어야 했다. 관람객들은 전시 종료일까지 이중섭, 박수근 그림의 위작 여부도 모른 채 돈을 내고 작품을 감상했던 셈이다.   이런 식의 행보는 LACMA가 한인 사회와의 접점을 지우는 일이다. LACMA는 유명 예술 기관이기에 앞서 커뮤니티 미술관이다.   LACMA의 소장품 관리 규정집에는 ‘예술작품의 제작, 품질, 내용, 출처, 목적, 의미 등 예술의 역사를 대중하게 알리는 것’이 사명으로 명시돼 있다. LACMA가 내세운 ‘대중’의 본질적 의미가 궁금하다. 갈팡질팡하고 불투명한 지금의 행보는 신뢰도 저하로 이어진다. LACMA가 진정 공신력 있는 예술 전문 기관이 맞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la카운티미술관 행보 일자 전시회 한국 미술계 위작 전시

2024-07-14

[중앙칼럼] 타운서 열리는 특별한 전시회

LA한인타운에 있는 EK갤러리에서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 건립 기금 마련 전시회다. 보통의 초대전이 아니라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갤러리와 함께 전시회를 마련한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측은 ‘판매 수익’도 중요하지만 ‘기념관 건립의 공감대 확산’에 더 가치를 뒀다. 도산안창호기념관을 한인 사회가 함께 만들자는 의도로 참신함을 준다.     지난 7일의 개막식에는 총영사관, 흥사단, 대한인국민회 등 주요 기관과 한인 단체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당일 작품 판매가 이뤄지는 등 반응도 좋았다.     이번 특별전에는 한국 작가 8인, 미주 작가 5인이 참여해 회화, 조각, 도자기, 혼합 미디어 등 2D와 3D 작품 총 50여점을 전시 중이다.  이들은 도산의 삶과 정신을 이어가는 기념관 건립에 작품으로 동참했다.     도산기념관 건축 기금 마련은 한창 진행 중이다. 기념사업회 측은 지난해에는 갈라를 통해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한인 사회 각계각층에서 300여명의 후원자가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한국 국회에서도 미주 도산기념관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한국 정부의 지원도 진행되고 있다. 이외 한국 기업과 한인 단체, 유명인 등이 이 시대의 역사적 사명인 기념관 건립에 동참하고 있다.   기념관 건축에 첫 발을 내딛게 한 사람은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던 고 홍명기 회장이다.  홍 회장은 지난 2019년 이 프로젝트를 처음 공론화한 인물이다.      이후 2021년부터 곽도원 수석부회장과 함께 도산 안창호기념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해 8월 홍명기 회장의 타계와 팬데믹 등으로 자칫 무산될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곽 부회장이 회장이 되면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기념관이 들어설 리버사이드 시는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자취가 가득한 곳이다.  도산 선생은 1902년 11월 아내 이혜련 여사와 미국으로 이주 후 리버사이드에 정착했다. 가는 오렌지농장에서 일하며 초기 미주 한인독립운동의 중심지이며 최초의 한인 정착촌인 파차파 캠프에서 한인들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지원에 나섰다. 여기서 마련된 자금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마련 지원금으로 쓰이는 등 임시정부 수립의 초석 역할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리버사이드 중심에는 미주 도산 안창호기념사업회가 2001년에 건립한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이 있다.     지난해는 도산 선생의 탄신 145주년이었다. 미주 도산기념사업회는 지난해 5월 리버사이드 시와 기념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시 정부로부터 시트러스 파크와 밴 뷰런 불러바드 인근 지역 10에이커 부지를 받았다. 시트러스 파크는 1900년대 초 오렌지농장에 이주한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 된 역사적인 장소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기념관 건립 예산은 약 1000만 달러로 현재 진행 중인 부지평가가 끝나면 2025년 여름에 착공해 도산 선생의 서거 90년이 되는 2028년 완공될 예정이다.  도산기념관 건립이 완공되면 샌프란시스코, 중가주, LA, 리버사이드로 이어지는 도산 벨트가 형성된다.     리버사이드 시 정부는 이민 역사와 문화유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도산 안창호기념관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관광업 활성화, 이민 교육 현장, 오렌지농장의 역사 재조명 등이다.     도산 안창호기념관은 기념관과 복합공연장으로 구성된다. 특히 복합공연장은 미주지역 K 콘텐츠를 한곳으로 모아 한인 차세대들이 120년 한인 이민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체험하고 한국 이민 역사를 배우며 무실, 역행, 충의, 용감 등 도산의 4대 정신을 이어가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도산 안창호기념관 건립기념 특별전시회는 16일까지 열린다. 많은 한인이 전시 관람을 통해 도산 안창호 기념관 건립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 형성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이은영 / 경제부 부장중앙칼럼 전시회 타운 도산 안창호기념관 미주 도산기념관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이사장

2024-07-11

[중앙칼럼] 대선의 새 흥행 요소 바이든 교체론

'어땠을까.' 가수 싸이가 2012년 박정현과 함께 부른 노래의 제목이다. 얼마 전,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를 들었다. 연인과 이별한 뒤 추억을 되새기며 ‘그 때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래를 들었던 시기는 마침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토론 이틀 뒤였다. 바이든은 토론에서 참패했다는 평가를 들었고 그 직후부터 후보 교체론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바이든 측은 일단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까진 아직 약 4개월의 시간이 남았고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이든이 대선을 완주하고 패배한다면 민주당 관계자와 당원을 포함한 많은 지지자가 ‘어땠을까’하며 회한에 젖을 것이란 점이다.   회한의 내용은 다양할 것이다. 아예 연초부터 연임 포기를 선언했더라면, 토론 직후 사퇴 여론이 들끓었을 때 결단을 내려 사퇴했더라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나 개빈 뉴섬 가주 지사 등 젊은 후보를 내세웠더라면 어땠을까란 식으로 말이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반면, 미래에 대한 가정은 의미가 있다. 민주당 입장에선 지금 여러 가지 가정을 해봐야 할 시기다. 하지만 어떤 활로를 찾느냐는 것이 난제다. 가만히 있든 어떤 변화를 주든 선거 승리를 자신할 만한 패가 마땅치 않다. 게다가 시간도 촉박하다.   바이든은 현재 퇴로를 차단하고 배수의 진을 친 격이다. 배수진은 성공 사례도, 실패 사례도 있다. 중국 한나라의 명장 한신은 군사들이 사력을 다하게 할 목적으로 강을 등지는 전략을 택해 결국 승리했다. 반면, 임진왜란 당시 신립은 탄금대 전투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대패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에는 장수를 교체하지 않는다는 격언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현 입장과 맞아 떨어지는 말이다. 이 또한 양면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면하고 원균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바뀐 장수인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장수를 교체해 큰 낭패를 본 것이다. 조정이 다시 지휘관을 이순신으로 교체한 후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뒀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 교체론이 현실이 되려면 바이든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후보를 교체해도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에 민주당 지도부도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후보 교체 후에도 대선에서 진다면 ‘차라리 바이든이 완주했으면 어땠을까’란 후회가 밀려올 터다.   바이든의 나이가 심각한 이슈로 부각됐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은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기는 하지만 주요 경합주에서 좀처럼 트럼프를 앞서지 못하는 지지율일 것이다. 대선 승리엔 부족하지만 대체 후보에게 양보하기엔 높은, 애매한 그의 지지율이 오랜 기간 이어지자 지친 지지자들의 불안감이 토론 패배를 계기로 일제히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지더라도 공화당 지지자들이 ‘어땠을까’하며 후회할 일은 딱히 없을 테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대선 승리 외엔 없어 보인다. 단, 후보 교체란 최후의 카드까지 쓰고 진다면 후회가 덜할 것이다.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일이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선을 앞둔 양당 지지자들의 극명한 입장 차이는 지지율 차이에서 비롯됐다. 대선 전까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딱 그만큼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후보 교체 논란은 역설적으로 진부해 보이던 대선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렇다 할 흥행 요소가 없던 11월 대선 국면에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가 하나 생긴 것이다.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교체론 대선 후보 교체론 대선 후보 대선 승리

2024-07-09

[중앙칼럼] 시니어에게 점심 한 끼가 중요한 이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인 사회의 점심 문화가 달라졌다. 식당 점심 메뉴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 10년 전쯤엔  한인타운에서 10달러 미만 점심 메뉴를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하늘의 별 따기다.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은 ‘푸드 코트’. 주로 대형 한인 마켓이 있는 곳에 자리한 푸드 코트는 남녀노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푸드 코트도 더는 ‘만만했던’ 푸드 코트가 아니다. 아무리 싼 점심 메뉴도 10달러가 훌쩍 넘는다. 세금 포함 13~15달러는 줘야 한 끼 해결이 가능하다.     푸드 코트 메뉴 가격이 이 정도니 일반 식당 가격 인상폭은 더 심하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단품 메뉴도 15달러가 넘는다. 세금과 주차 요금까지 포함하면 점심 한 끼 20달러가 일상이 됐다. 팬데믹 전과 비교해 모든 메뉴가 30% 안팎으로 올라버렸다.     매일 점심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직장인들 사이의 볼멘소리는 어쩌면 당연하다. 물가 인상 폭을 따라가지 못하는 급여를 쥐어 짜낼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부는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직장 동료나 지인에게 “우리 점심 한 번 먹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고 토로할 정도다. 사회생활 중 점심 한 끼를 대접하려면 2인 기준, 최소 40달러 이상이 들어서다.   음식 관련 물가 인상은 한인 시니어를 더 옥죄고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LA한인타운에서 만난 시니어 상당수는 “한식당을 가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활보조금(SSI)으로 생활하는 저소득층 시니어일수록 먹거리 고민은 깊었다. 이들에게 ‘점심 웰빙(Well-Being)’은 사치 그 자체가 돼버렸다. 동시에 시니어에게 점심 한 끼 해결은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됐다.   한 70대 할머니는 “일반식당은 가격, 세금, 팁까지 올라 시니어가 방문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시니어는 “한식당을 가고 싶어도 비싸서 못 간다. 친구에게 점심 먹자는 말도 못 한다”고 말했다.      시니어에게는 점심 한끼가 단순히 끼니 해결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에게 점심 한 끼는 친구, 지인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소중한 친목의 시간이다. 시니어는 나이가 들수록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나마 외출해서 반가운 이들을 만나는 기회가 점심인 셈이다.     점심 한 끼 부담은 자칫 시니어 외로움과 고립감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한인 사회와 관계 기관들은 시니어의 안정적 점심 한 끼 해결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시니어들 사이 점심 한 끼 해결을 위한 보물찾기도 한창이다. 물가인상을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싸고 맛 좋은 식당을 찾아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차모 할아버지는 “아침 9시쯤 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 센터에 가 줄을 서면 바나나와 커피를 준다. 사우스베일로 한의대 구내식당은 100달러를 주면 식권을 9장이나 준다. 아드모어 애비뉴와 3가 쪽 중국집은 점심 짜장 한 그릇이 5달러”라고 귀띔했다. 점심 메뉴의 가성비를 중시한 뒤, 친구들과의 정서적 교감 기회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LA시 노인국은 올해부터 LA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센터에서 주중 5일 무료 점심(약 225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한식 도시락으로 확대되면서 신청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무료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한 경쟁률은 4 대 1. 수많은 시니어가 오전 9시만 되면 센터 앞에 줄을 서고 있다.     최근 LA시는 예산 부족 문제를 이유로 시니어 음식 프로그램(Senior Meals Program) 축소 가능성을 내비쳤다. 점심 한 끼가 시니어의 신체 및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시니어 점심 한인 시니어 점심 메뉴 시니어 상당수

2024-06-30

[중앙칼럼] 6·25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소원

6·25참전유공자회 이재학 회장이 며칠 전 들려준 이야기다. 수년 전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맥도날드 매장에 갔다고 한다. 참전유공자회 모자를 쓴 시니어 남성 대여 섯 명이 매장으로 우르르 들어가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가 보다. 매장 안에서 자녀들과 햄버거를 먹고 있던 한 백인 여성이 이 회장 일행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 회장 일행이 쓴 모자를 가리키며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란다. 이 회장은 “백인 여성에게 ‘우리는 참전용사들’이라고 말했더니 ‘나라를 위해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더라. 그러더니 자신이 커피값을 내겠다고 했다”며 “모르는 사람인데도 우리가 한 일을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경험을 또 했단다. 그것도 LA한인타운에서였다.     이 회장은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커피를 마시러 로데오 갤러리아 몰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우리가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쓴 게 이상했는지 종업원이 우리를 보더니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참전용사라고 했더니 나중에 합류한 회원들의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이어 이 회장은 “한인타운에서 한인으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처음이었다. 그 젊은 직원의 마음 씀씀이에 회원 모두가 정말 감사해 했다”고 덧붙였다.     6·25참전유공자회와 월남전참전자회 회원들은 외출할 때면 가능한 한 제복을 입고 다닌다. 한국의 국가보훈처가 2년 전 제작한 제복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들도 모두 받았다.     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모든 참전유공자 가정에 제복을 보내줬다. 제복이 담긴 가방에는 ‘당신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더라.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당시 심정을 들려줬다.     아이보리색 사파리 재킷에 남색 바지, 흰색 반소매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회원들의 모습은 예전 주머니와 어깨 부위에 기장과 훈장이 달린 조끼를 입고 다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밝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6·25참전유공자회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80세 후반이었다.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최병길 유공자의 경우 올해 95세를 맞았다. 그는 불과 15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고 했다. 권영구 수석 부회장은 40밀리 포탄 2개를 짊어지고 경주에서 밤새 이동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육군협회 최만규 회장은 “한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생존 참전유공자는 830여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가주에 150여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LA지역도 공식 회원 수는 70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분은 30여명 정도다. 그래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전했다.    6·25참전유공자회는 최근 LA한인타운에 참전비를 세우는 프로젝트 추진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에 세워진 6·25 참전비는 미군 이름들만 기록돼 있어서 한인타운에 별도의 참전비를 세웠으면 하는 희망이지만 누가 끝까지 남아 진행할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금 미국에 한류가 널리 퍼지는 것을 보면 참전유공자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이 목숨 바쳐 싸웠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런 역사를 후손들에게 좀 더 알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소멸하는 단체다. 그나마 지금은 종종 만나서 안부를 나누지만 언젠가는 헤어지고 결국은 단체도 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은 없다. 다만 우리가 없어져도 한국전쟁의 역사는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국전쟁이 더는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한인 커뮤니티도 고민하고 참여해야 할 문제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참전용사 소원 참전유공자회 회원들 참전유공자회 모자 25참전유공자회 이재학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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