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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피할 수 없는 죽음, 인간의 존엄

칠순 무렵의 아버지는 장수에 진입한다는 기쁨보다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100세 시대라지만 당시 아버지 친구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서다. 할아버지가 돼 친구 장례식에 가면서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와 남은 사람의 공허가 겹친 셈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 80.5세, 여성 86세로 집계됐다. 신이 허락해 시니어가 칠순을 넘긴다면 10~16년은 더 살 수 있다. 이들 시니어에게 남은 생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남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도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되고 있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웰빙(Well-Being)과 웰에이징(Well-Aging)에 신경 쓰는 이유다.     특히 본인 스스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은 외면하기 어려운 주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인 시니어들 스스로 ‘죽음을 미리 준비하자’는 공감대가 부쩍 확산한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60대 후반의 강대흔 씨는 “의식 없는 연명 치료 등 살 수 있을 때까지 살고자 하는 것은 조금 욕심인 것 같다. (준비 없이)나만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이기적이다. 내 가족, 친구, 커뮤니티를 생각한다면 ‘내가 원하는 죽음은 어떤 모습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시니어 스스로가 본인의 죽음을 준비하던 한국인 정서는 시골에 남아 있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환갑잔치 후 본인의 영정 사진으로 사용할 초상화를 미리 준비했다. 묫자리도 봐놨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뒤 본인이 계획한 대로 장례를 치렀다.   최근 장례 준비에서도 한 단계 나아간 웰다잉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한인 사회에서는 시니어들이 주축이 된 소망소사이어티라는 단체가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강조하는 이 캠페인은 “죽임을 당하지 말자”고 강조한다. 수동적인 생의 마무리를 거부하는 주체적 의식인 셈이다.     ‘존엄한 존재’로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아래 내 의지로 죽음을 맞이하자가 웰다잉 운동의 핵심이다. 고령화 시대의 부작용에 따른 현실적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연명 치료 시 삶의 존엄과 경제적 부담, 배우자나 부모를 너싱홈 시설로 보내는 문제, 그에 따른 남은 가족의 죄책감은 생각보다 크다.       웰다잉 운동에 공감한 한인 시니어 1만8000여 명이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Healthcare Directive)를 작성했다. 스스로 맞이하는 죽음에 동의해서다.     이들은 ‘임종 전 의료결정(기도 삽관, 기관지 절개, 인공호흡기 치료, 인공영양법, 심폐소생술 등)’과 ‘임종 후 장례 결정(장기기증, 매장·화장·시신 기증 등 장례방식)’여부에 직접 서명해 법적 효력까지 갖췄다.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이사장(89)은 “고령화 시대의 전환점을 맞았다. 치매, 중증질환 등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를 생각해 보자”며 존엄한 죽음을 제안한다. 유 이사장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죽음을 겸허하게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지혜로운 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60대에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했다는 박준구(90) 할아버지는 “내 죽음을 대비하니 늙는 동안 마음이 안정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며 심리적 위안을 장점으로 꼽았다.   웰다잉 캠페인 현장에서 만난 시니어들은 ‘지혜’를 엿보게 해줬다.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에는 겸허함마저 배어 있다.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자 중 시신 기증에 서약한 시니어도 1800명 이상이다. 시신 기증 서약자 중 70%가 의학발전 등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저승 갈 채비에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존엄 한인 시니어 이들 시니어 사실 시니어

2024-11-28

[문장으로 읽는 책]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첫 번째 밀려오는 파도에 물을 먹었다.   두 번째 밀려오는 파도엔 펄쩍 뛰었다.   세 번째 밀려오는 파도는 바라보았다.   이영미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루게릭 판정 받고 일 년 만에 벌레가 되었다. 인간과 벌레도 한 끗 차이다. 사람이라고 잘난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잡지 디자이너였던 작가는 2016년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지금까지 병석에 있다. 혼자 힘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2018년 여름까지 페이스북과 메모장에 남긴 글과 사진을 책으로 냈다. 제목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는 그가 “하루종일 듣는 고마운 말”이다.   ‘왜 나일까’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의 순간을 지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 이르는 여정이 먹먹한 울림을 준다. 죽음 앞에서 오히려 넓고 깊어진 마음이다. “강한 햇빛을 쬐며 눈을 감는다. 그저 붉은 빛뿐 새소리만 들린다. 가끔 개 짖는 소리. 새는 말한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니? 그저 나처럼 노래하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은 천국을 심어 놓으셨는데 보물찾기처럼 그것이 문득문득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먹구름이 몰려와 파란 하늘 덮어도 걱정하지 말게. 파란 하늘은 그곳에 있고 가리운 먹구름은 기껏해야 후두둑 잠깐 비를 뿌리곤 없어질 테니.”   인간 존엄 선언 같은 글도 있다. “DNR(연명의료중단) 나는 인위적 생명 유지 장치를 거부합니다. 생명을 경시해서가 아니고 인생에 아무 아쉬움도 여한도 없어 내게 주어진 자연적인 시간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인위적 생명 루게릭 판정 인간 존엄

2023-07-19

[오픈 업] ‘존엄사’, 무엇이 존엄한 것인가?

얼마전 급히 한국을 다녀왔다. 100세에서 3년이 모자라는 시어머님이 위중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던 터였다. 몇 년 전부터 양로시설에서 지내오셨는데 응급상황이라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다. 치료는 연명 치료였다. 한국말로는 ‘비경구영양법’이라고 하는 치료로 ‘티피엔(Total Parenteral Nutrition)’ 주사가 정맥으로 흐르고 있었다. 단백질이 풍부한 영양액을 정맥으로 공급해 주는 것이다. 시어머님처럼 가사(假死) 상태일 때는 정맥주사를 통해서 영양제를 빨리 공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산소호흡기와 오줌을 받아내기 위한 폴리 카테터도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은 그동안 의료 관련 분야에도 엄청난 발전과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죽음을 바라보는 의학적 사회적 법적 윤리적 관념의 변화일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시어머님은 '죽음의 윤리'나 행정적인 변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신다.     남편과 그의 형제들은 시어머님이 위기를 넘기고 양로시설로 돌아가시는 것에 우선 안도했다. 그러나 다시 응급상황이 생길 경우 응급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형제들은 ‘존엄사'를 의논했고 그 방법이 아프지 않고 가장 편안하게 세상을 뜨는 방법이라는 것에 의견을 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유언장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d Directives)를 작성하신 적이 없어 절차를 거쳐야 가능하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죽음이 가깝다고 확정된 사람들이 대상이지만 불치병은 해당하지 않는다.     ‘안락사'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뜻이지만 진정 아름다운 죽음을 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안락사'는 한국 미국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불법이다. 환자가 처방받은 약을 먹거나 의사나 법이 허락하는 의료인이 환자의 요구대로 극약을 주사하는 ‘자의적 안락사'와 환자의 동의 없이 극약을 주입하는 ‘수동적 안락사'가 있다. ‘수동적 안락사'는 살인으로 해석하는 나라도 많다.   ‘존엄사'란 문자 그대로 ‘잘 죽는 것' 또는 ‘존엄하게 죽는 것'이라는 뜻이다. ‘존엄사'는 ‘연명치료 중단으로 인한 죽음'이라고도 한다. 본인이 정신이 있을 때 연명 치료 여부를 문서로 기록해 놓았다가(사전연명의료의향서) 때가 되면 그대로 하는 것이다.     문서를 미리 작성하지 못했지만 임종이 가깝고 본인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라면 그때라도 ‘연명의료계획서'를 만들 수 있다. 문서가 없는 상태에서 회생 불가능 판정이 났다면 가족들 합의하에 연명을 포기하고 ‘존엄사'의 길을 가는 것이다.     존엄사(Death with Dignity) 안락사(euthanasia) 능동적 안락사 타의적 또는 수동적(involuntary) 안락사 의사조력사망(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 의사조력자살 임종의료지원(medical aid in dying:MAiD) 등의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다. 5년 동안 무려 25만6377명이 ‘존엄사'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일 년에 평균 5만 명이 넘는다. 2021년 캐나다 1만64명 네덜란드 7666명 미국 1300명(자료: statista)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다. 미국도 근본적으로 비슷한 법을 갖고 있다. 조력자살은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리건 몬태나 하와이 뉴멕시코 등 10개 주서만 합법이다.     그런데 한국의 연명의료결정 사망자 중 61.5%가 본인 결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생명 경시 현상 탓은 아닌지 우려된다.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존엄하다고 믿는 죽음을 택하기 전에 생명이 주어져 세상으로 불려왔던 것처럼 그렇게 세상에서 불려 나가야 맞을 것 같다. 한국의 ‘존엄사'방식 선택 절차를 더 이해하려면 2023년 4월 15일 업데이트 된 법제처 웹사이트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류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존엄사 존엄 존엄사방식 선택 안락사 의사조력사망 수동적 안락사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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