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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폐허에 이룩한 기적

6·25전쟁을 생각하면 모윤숙 시인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떠오른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중략)/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1950년 6월 25일부터 1129일간 치러진 전쟁 동안 미국은 연인원 180만 명을 파병했다. 그중 전사자가 약 3만7000명, 그외 무수한 부상자와 실종자가 생겼다. 세계 각국에서 파병된 유엔군도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다.     국군은 약 12만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그리고 실종자가 발생했다.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5세 정도의 꽃다운 청춘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방방곡곡은 무너져 잿더미가 됐고 부모와 가족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전쟁 고아는 흘러 넘쳤다.     그러나 7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폐허의 땅은 완전 복구돼 도시마다 빌딩 숲을 이룬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들고 문화, 예술, 스포츠 모두 정상급에 올라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세계에 한국 제품이 수출되고 세계 어디에도 한국인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미국 대통령이 방문한 것도 국격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반토막으로 잘린 국토, 감정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정치,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국민의식을 높이고 자성해야 한다. 6·25를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말자. 언제 또 다른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한을 노리고 있다.     6·25전쟁의 아픈 기억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폐허 기적 전쟁 고아 세계 각국 세계 10위권

2022-06-24

[시론] 6·25 비극 일깨운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김일성 정권이 6·25전쟁을 일으킨 지 올해로 72주년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넉 달째 전쟁의 포화 속에 갇힌 우크라이나 국민의 참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든 전쟁의 비극을 새삼 상기하게 해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결사 항전을 외치며 군과 민간의 항전 의지를 고양하고 있다. 서방 20여 개국은 무기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돈바스 점령 지역을 확대해 가고, 수도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강화할 태세다. 러시아 전쟁 지도부는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핵 금기 원칙을 허물고 있다.   전쟁은 참혹하다. 우크라이나 인구(약 4400만명) 중 약 700만 명이 조국을 떠났다. 러시아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30%가 황폐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은 광범위하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미사일은 단번에 ‘신냉전’의 서막을 열었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중국과 러시아는 보란 듯이 무력화하며 ‘깐부 연대’를 과시했다.   북한은 7차 핵실험 감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러시아 흑해 함대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려온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업 지대를 통제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저개발 국가의 식량 안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영향으로 올 겨울 유럽연합(EU)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에너지 대란 가능성이 우려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경제는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공급망 위기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한국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국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공유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발전시켰고, 마침내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건설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침탈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나토에 가입하면 확장억제력을 제공받고, 낙후한 국방력을 속도감 있게 현대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은 혹독하면서 명료하다. 한·미 군사동맹의 결속력 강화와 독자적 국방력 발전이 핵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서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강화하고 작전계획 수정, 부대 구조 및 무기 체계 최적화를 위한 다양한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장병의 정신적 대비 태세 강화 조치도 필요하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압박 등 복합 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참석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나토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Linchpin)인 한·미 동맹을 활용하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본격화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만큼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공고한 자리매김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물론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안보 협력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사고와 기민한 대응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기다. 두진호 /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시론 우크라이나 비극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인구

2022-06-24

[문화 산책]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는 예술

6월 하순이 되면 나도 모르게 한국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삼팔따라지’의 자식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고, 핵전쟁 운운하는 판이니 한층 더 전쟁과 평화를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 무렵이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슨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내게는 철조망이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핵전쟁을 걱정하는 판에 철조망이라니…그런데도 어쩐지 철조망이 떠오른다. 그래서 얼마 전에 펴낸 내 소설집 제목도 ‘철조망 바이러스’로 했다.   얼마 전에 읽은 강맑실 대표(사계절출판사)의 칼럼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철새인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가시 박힌 철조망에 걸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죄책감으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고 말한다.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철조망은 그렇게 무섭다. 우리 가슴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철조망은 더 무섭고 완고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화상연설로 이렇게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음악가들이 방탄복을 입고 병원에서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당신들의 음악으로 채워주기 바랍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음악으로 채운다… 눈물 나는 표현이다. 이런 호소에 화답하듯, 지금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 반대에 앞장서고, 평화를 기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자비한 폭격과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 폐허가 된 도시, 무너져 뼈대만 남은 건물, 피비린내 나는 잿더미 사이에서 울부짖는 어린이들….   그깟 예술작품에 무슨 그렇게 큰 힘이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성명이나 말보다 훨씬 길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무라카미의 말을 곱씹어본다.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총과 칼을 땅바닥에 버리도록 한다.   우리가 지금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픔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복의 지혜를 찾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뜨겁게 하나로 뭉쳐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철새들이 마음껏 오가는 세상을 향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철조망 예술 철조망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2-06-23

[기고] 잊히지 않는 전쟁의 악몽

6.25전쟁 발발 72주년이다. 전쟁의 악몽은 일상의 생활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날을 맞아 기념할 때마다 그때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을 생각하고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아직 새벽잠에서 꿈을 꾸고 있을 때 김일성 일당은 소련제 탱크 242대를 앞세워 38선을 뭉개고 남한을 침공해 왔다. 농사를 짓다 말고, 학교에서 학기를 다 마치지도 못한 채 가족을 집에 남겨두고 떠난 집안의 아들, 오빠, 동생, 형제들이다. 소총 하나로 힘겹게 싸웠다. 한강에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지만 피로 얼룩진 강토에서 죽기 살기로 싸워 3개월 후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전쟁으로 국군 13만8000명이 전사했고 45만 명이 부상 당했으며 2만5000명이 실종됐다.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 학살, 부상 등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10만 명이 고아가 돼 거리에 나왔고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이 발생했다. 320만 명이 고향을 떠나고, 1000만 명의 국민이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했고, 모두에게 경제적으로도 참혹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도시와 산업 시설은 파괴됐고 국민의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다. 사회 경제의 기반과 국민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과 북은 긴 세월 휴전선을 마주한 채 냉전의 최전방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국방에 국력을 소모하면서도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전쟁이 끝난 1953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고 세계 6위권의 군사대국으로 우뚝 섰다. 최근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의 존재 가치를 체감하면서 국민들의 애국심은 고양됐고 평화의 소중함도 자각했다.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도 6.25전쟁이란 민족 수난을 겪으면서 생겨났다.     휴전 후 참전 용사들은 전쟁을 이겨낸 자부심과 군에서 익힌 기술로 전후 재건의 주축이 돼 경제대국의 선도적 역군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쟁은 전선에서 흘린 용사들의 피로, 후방 건설은 재건의 용사들이 흘린 구슬 같은 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전쟁을 반대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윤석열 대통령도 “연명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은 사과가 아니라 원점을 타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때 자유민주주의가 훼손하고 국군의 위상이 실추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가 안보 없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진리다.     6.25전쟁은 자유와 평화, 번영의 뿌리가 된 수많은 희생에 대한 기억과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아직도 한반도 북녘에는 전쟁의 원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진 인민에 대한 폭정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수없이 미사일 대남 도발도 감행하고 있다.     총소리가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평화는 전쟁을 대비하는 국가에게 오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전쟁 악몽 25전쟁이란 민족 전쟁 미망인 세월 휴전선

2022-06-22

[커뮤니티 포럼] 6·25전쟁 75주년을 맞으며

# 금년 6월 25일은 한국전쟁 72주년이다. 3년간 계속된 전쟁의 피해는 막대했다. 군인 희생만 해도 국군 사망자 수는 13만7899명, 부상자 수는 45만742명, 포로는 8343명이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 북한군의 인명 피해 규모는 더 컸다. 유엔의 결의로 참전한 유엔 16개국의 군인도 3만7902명이나 전사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단호한 결단에 의해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인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유엔 결의 이전에 한국 땅을 밟은 미군은 연인원 180만명에 이르고 그중 3만6691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종자, 부상자, 포로 등의 수는 십수만 명에 달했다.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글귀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라, 또 만나보지도 못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에서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바로 대한민국에 민주, 자유, 평화, 인권과 번영을 선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민들, 특히 미주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2009년, 박동우씨가 백악관 직속 장애위원회 위원(차관보급)으로 임명됐다.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내셔널몰(National Mall)’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거기서 그는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는데 한국전 기념비에는 전사자 이름이 전혀 기록돼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박동우씨는 그가 거주하는 남가주에 한국전 미군 참전 전사자의 이름 전부를 새겨넣은 기념비를 세우자고 결심을 한다. 그 후 뜻있는 이들과 힘을 합쳐 ‘미군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위원회’를 조직했다. 마침내 작년 11월 11일, 풀러턴시 힐크레스트 공원에 5개의 별 모양의 비(碑)에 미군 전사자 3만6691명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기념비’ 준공식을 갖게 됐다.     #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그것은 2차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사이에 끼어 있고 또 한국전 후에 일어난 베트남전은 19년간이나 계속돼 한국전은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한국이란 나라는 미국의 원조로 간신히 꾸려가고 있는 가난하고 작은 나라였다.     그런데 미국 각처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 베테랑들이 작은 기념비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우뚝 서게 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워싱턴에도 1995년 한국전 참전용사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캘리포니아에도 순수 한인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한국정부의 일부 지원도 있었지만) 작년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 올해 6·25 기념식은 OC해병전우회(회장 정재동)주최로 25일 풀러턴의 기념비 앞에서 거행된다. 미주에서 최초로 미군전사자 전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 앞에서 그 전쟁을 상기하는 기념식이 열리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한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국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자리에 한인들뿐 아니라 뜻있는 타인종들도 많이 참석하기를 기대한다. 김택규 / OC해병전우회 고문·국제타임스 편집위원커뮤니티 포럼 전쟁 한국전 참전용사비 한국전 기념비 한국전 미군

2022-06-20

[칼럼 20/20] 식량 전쟁

식량 전쟁은 말 그대로 식량을 무기로 싸우는 것이다. A와 B라는 국가가 있다. 농지가 부족한 A는 식량을 전적으로 B에 의존한다. 두 나라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다. 갈등은 두 가지 상황에서 생긴다. 첫째는 B의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해 수출을 할 수 없는 경우다. 둘째는 양국 관계가 나빠져 의도적으로 식량 수출이 중단된 경우다.     식량 전쟁은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생소한 용어가 됐다. 글로벌 시대에 식량을 무기로 전쟁에서 이기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다. 식량 무기화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일단 식량은 대체성이 강하다. 특정 식량을 구하지 못했을 때 대신할 식품이 많다. 밀이 주식이어도 최악의 상황에서는 밀만 고집할 수 없다. 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다른 식량을 찾으면 된다.   또한 수입 곡물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건이 조금 나빠도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이 가능하다. 20세기 이전에는 각국의 무역이 다변화되지 못했다. 특정 국가의 수입로가 막히면 대체 국가를 찾기 어려웠다. 지리적으로 먼 국가는 운반도 용이하지 않았다.      이외에 식품의 가공·보존 기술의 발달로 비상시 대비 다량의 식량 저장이 가능해진 것도 식량 무기화를 약화시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식량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역사학과 교수는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해상을 러시아가 봉쇄하면 아프리카 등에서 수천만 명이 기아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단, 에티오피아, 예멘 등이 직접적인 피해 국가이다. 레바논과 시리아도 밀의 70% 이상을 우크라아나에서 가져온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식량 위기를 초래해 유럽을 자극하겠다는 푸틴의 전략이다.     유엔식량계획(WFP)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심한 식량 불안정을 겪을 인구를 5000만 명 정도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식량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식량 문제가 시급하지 않은 국가들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식량 위기를 예상해 사재기에 나설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전쟁 전후로 미국과 우크라이나에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곡물을 수입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생산된 식량의 총 칼로리는 인구 1명당 3000칼로리가 넘는다. 그럼에도 지구 인구의 10~15%가 기아를 겪고 있고 그 중 일부가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저서 ‘세계의 기아: 12가지 신화’에서 식량 문제의 원인을 인구 과잉이나 자연 재해가 아닌 불공정한 분배에서 찾고 있다. 생산량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잘못된 분배로 특정 국가나 사회 집단에 편중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식량 무기화는 위험한 발상이다. 무기화로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미국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에 판매되는 식량을 막았지만 수출로가 막힌 식량 가격이 급락하면서 결국 미국 정부의 손실로 돌아왔다.     푸틴은 글로벌 식량 위기를 서방의 제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푸틴은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해제되면 농산물을 수출하겠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푸틴은 에너지에 이어 식량을 볼모로 힘든 싸움이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푸틴의 식량 무기화가 서방을 겨냥하고 있지만 식량 부족의 피해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난한 국가들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식량은 생명과 인권의 문제다. 식량을 무기로 한 저급한 방식의 전쟁은 승패와 상관없이 도덕성에 치명상을 가져온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굶주림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기아가 생긴다’고 말한다. 연민 없는 권력은 항상 위험하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식량 전쟁 식량 전쟁 식량 무기화 식량 생산량

2022-06-16

인류는 전쟁의 비극에서 배운 게 없다

인류는 전쟁의 비극에서 배운 게 없다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독일 소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소식이 전해진다. 열아홉 살 소년 파울 보이머는 선생님의 선동에 친구들과 자원입대한다. 파울은 교회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 병사를 죽인다. 죽은 병사의 주머니에는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서부전선에 투입된 파울은 포탄 구덩이 속에서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만 입을 들어 올린 채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그때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때마침 나비 한 마리가 너풀너풀 나타난다. 파울은 자신도 모르게 나비를 따라 참호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비를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타는 듯한 아픔이 가슴에 파고 들어왔다. 적의 저격병에게 당한 것이다. 파울의 손은 나비가 내려앉듯 힘없이 내려앉았다. 전쟁이 끝나기 한 달 전이었다. 그날 전선사령부가 본국에 보낸 전황보고는 단 한 줄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자전적 전쟁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병사들의 평균 생존시간이 단 5일이라는 서부전선에서  레마르크는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탄시키는지를 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29년 반전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썼다. 출간 바로 다음 해 루이스마일스턴에 의해 영상화된 이 작품은 전쟁 초기의 광적인 상황과 참혹함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주로 참호전이었다. 참호전은 참혹했다. 전쟁이 시작된 1914년 8월 참전한 유럽 강대국들은 이 전쟁은 낙엽이 질 무렵, 아무리 늦어도 크리스마스 이전에는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두 자국이 승리한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전쟁터로 달려가는 병사들과 그들을 환송하는 각국 국민들은 마치 축제라도 벌이는 기분이었다. 겨울옷을 지급받은 병사들은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는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어느 나라도 무더기로 죽어가는 병력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단숨에 베를린을 점령하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겠다던 프랑스군의 희망도 물거품이 됐고 단숨에 파리를 점령, 개선 행진을 하겠다던 독일의 기대도 환상에 불과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1914년 10월 하순, 각국은 현대식 소총, 기관총, 포병 앞에서 정면으로 수행되는 보병 돌격전은 무모한 노력임을 알게 됐다. 결국 전투 방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양측 병사들은 땅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를 공격하던 독일군은 자기가 점령한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참호를 구축했다. 프랑스 군과 연합군은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독일군 방어 진지를 공격했다. 전선 돌파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을 곧 인식한 연합군도 반영구적인 참호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양측 병사들은 이후 참호 속에서 적이 감행해 오는 공격을 분쇄하는 데 집중했다. 양측 병사들은 4년 동안 이 참호에 머물렀다. 수백만의 병사들이 수천 킬로미터 이상 길게 형성된 좁은 진흙 구덩이 속에서 살다가 죽어갔다. 다음은 1917년 이프르 전투에 참전했던 영국군 채프먼의 증언이다.“많은 병사들이 쓰려져 죽은 곳에 바로 매장 되었다. 새로운 참호를 파다보면 십중팔구 지표 바로 아래 묻힌 채 썩어가던 상당수의 시신이 발견되곤 했다. 이런 시신과 더불어 참호의 여기저기 버려진 상당량의 음식 찌꺼기를 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쥐들은 엄청나게 컸으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부상병의 상처를 뜯어먹기도 했다.” 참호 속에서 전사한 프랑스의 알프레드 주베르 중위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인간은 미쳤다! 이 지독한 살육전이라니! 이 끔찍한 공포와 즐비한 시체를 보라! 지옥도 이렇게 끔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미쳤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초기 두 달 동안의 공세적 기동전을 제외하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전선인 진흙 구덩이 속에서 양측의 병사들이 서로 상대방 참호를 향해 대포와 기관총, 소총을 쏴대며 죽어갔던 참호전이었다. 참호의 깊이는 병사들의 키보다 더 컸고 사격할 때는 사격판 위에 올라서야 했다. 경계병들은 참호 밖으로 머리를 살짝 내놓고 상대방의 참호를 바라봐야 했는데 이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상대방의 기관총이 겨냥하고 있는 높이가 바로 그 높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더 높이 올라서서 가슴이나 어깨에 총을 맞는 것이 이마에 맞는 것보다 더 나을 지경이었다. 참호는 병사들이 먹고 자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의 지형 및 기후상 참호는 항상 물이 질퍽거리는 진흙탕이었고 비가 많이 올 경우 진흙탕에 빠져 익사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칠흑 같은 어둠, 추위, 질퍽거림은 참호에서의 삶을 지옥과 다를 바 없게 했다. 쥐와 이, 파리, 옴벌레, 벼룩, 구더기들은 참호 속에서 병사들과 함께 사는 더러운 동물들이었다. 병사들은 이 동물들이 옮기는 질병들 때문에도 쓰러져갔다.   양측은 참호전으로 전쟁 방식을 바꾼 후에도 상대방의 참호를 향해 매일 포탄을 퍼부어댔다. 계속되는 포사격과 폭탄의 폭발음은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폭사하지 않은 병사들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쟁 기간 동안 영국군이 발사한 포탄은 1억7000만발 이상이었다. 파괴력으로도 500만 톤이 넘는 것이었다. 영국군은 4년 동안 적군을 향해 히로시마급 핵폭탄 250발 이상을 발사한 것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로 포탄을 무수히 쏴댔다. 독일군이 9일 동안 쉬지 않고 폭탄을 쏴대는 동안 참호 속의 프랑스 병사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독가스는 전쟁의 잔혹함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오늘날 독가스를 사용하는 국가나 인간은 반인륜적 범죄를 행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독가스는 비인간적인 무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쌍방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전쟁 피해가 참혹하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우크라이나 거리 곳곳에 한 달 이상 방치한 러시아군 병사들의 시신이 심각하게 부패하고 있으며, 일부는 개가 뜯어먹고 있었다고 전한다.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현재까지 최대 3만 명 이상의 러시아군 병사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푸틴 탐욕의 희생자들이다. 상대방을 죽이면 기뻐하고, 자기편이 죽으면 슬프다. 그래서 전쟁은 비극이다. 문명의 시대에 야만의 세계가 공존한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배웠는데 때로 생명은 하나도 귀하지 않다. 이 모순이 당혹스러울 때 이세룡 시인의 시를 만났다.     “세계의 각종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그러면 전 세계의 시민들이/각자의 생일날 밤에/멋대로 축포를 쏜다 한들/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포구가 꽃의 중심을 겨누거나/술잔의 손잡이를 향하거나/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별을 포탄삼아 쏘아댄다면/세계는 밤에도 빛날 테고/사람들은 모두 포탄이 되기 위해/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지도 모릅니다/세계의 각종 포탄이/모두 별이 된다면”시인은 몇 해 전 작고했고, 최근작은 아니지만, 이 놀라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우리를 매혹시킨다.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치 지금 우리의 바람을 막 적어놓은 듯하다.     김지민 기자인류 전쟁 프랑스 병사 자전적 전쟁소설 전쟁 초기

2022-06-15

전쟁 잔해에서 아름다움 재창조…‘타키 골드’ 초대전

EK갤러리(관장 유니스 김)가 ‘타키 골드’ 초대전을 오는 17일까지 개최한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의 타키 골드는 지난 1월 LA 아트 쇼에서 가장 주목받은 개인전 작가였으며 이번 여름 세계은행이 주최하는 아프리카 예술가 전시회에도 초대됐다.     이번 전시회에서 타키 골드 작가가 유년시절 아프리카 1차 라이베리아 내전에서 겪은 전쟁, 권력, 여성, 정체성 등의 경험을 특유의 예술감각으로 표현한 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작품은 30여점의 회화 및 조각 작품을 포함해 군복 등 전쟁 관련 소품을 이용한 아트 작품 등 총 50여점이다.         작가는 전흔이 가득한 고국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94년 가족과 재회한 후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통해 정체성, 소속감에 대해 표현해오고 있다.     브렌다 이 큐레이터는 “작가는 내전 동안 지역 마을 여성들의 보호 아래 지냈다”며 “작가의 특별한 색감과 아트 스타일은 이 여성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타키 골드는 전쟁 잔해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다시 상기시킨다고 평가받고 있다.       ▶주소: 1125 Crenshaw Blvd. LA   ▶문의: (323)272-3399 이은영 기자아름다움 재창조 아름다움 재창조 전쟁 잔해 전쟁 권력

2022-06-05

지도자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용맹하라

지도자는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용맹하라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국가지도자는 일신의 안녕과 정파적 이익을 위한 권모술수가 아니라 국가안위와 국리민복을 위해 냉혹한 결단을 감행해야 하는 숙명적 위치에  있다. 백성과 귀족, 군대의 신망과 충성을 받을 수 있는, 마키아벨 리가 제시한 군주상은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용맹한’ 타입이다. 그가 통치자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상고해 본받으라고 하는 군주의 덕목과 통치술은 일단 도덕적 이성적 관념의 잣대와는 무관하다. 인류 보편적으로 소망스러운 것들이 아니라 인류의 실제 역사에서 반복되며  시현된 내용을 추출한 것일 뿐이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정치가 도덕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자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도덕적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논의의 핵심은  통치술의 기본은‘냉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절묘한 외교술로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을 주도하여 독일 통일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널리 알려져 있는 냉혹한 ‘철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유연했고, 전쟁보다는 외교적 방법을 선호했다. 그가 치렀던 덴마크 전쟁과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그리고 1870년의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은 독일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지 독일 제국의 정복 야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된 참전 용사를 볼 때마다 가슴 아파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멍한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물론 목표를 위해서 불가피할 때는 전쟁도 불사했다. 그러나 그 전쟁도 적에게 필요 이상의 피해나 굴욕을 주는 일은 피했다.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즉위 초기부터 진보파가 장악한 의회와 종종 충돌했다.     그러다가 1862년 그가 군사력 증강을 목적으로 한 군제 개혁안을 마련하고 군비 확장 예산을 의회에 제출하자 의회가 이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알프레드 룬 등 왕의 측근 관료 들 중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제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룬은 대신 의회에 맞서 대립 사태를 해결할 적임자로 당시 파리대사로 있던 강경파인 비스마르크를 빌헬름 1세에게 천거했다. 빌헬름 1세는 룬의 제의를 받고 비스마르크의 강한 개성과 전권을 휘두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한동안 임명을 망설인다. 그러나 의회의 반대가 거세지자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와의 독대를 통해 왕의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강력한 자세를 확인한 뒤 1862년 9월 비스마르크를 총리 겸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의회 예산위원회에서 가진 취임 연설에서  그의 정책기조를  피력한다. "지금의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이 아니라 오로지 철과 피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 유명한 연설로  그는 이후 ‘철혈 재상’의 별명을 얻게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걸림돌인 프랑스를 제거하려고 일으킨 전쟁이었다.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른바 ‘엠스 전보사건’이었다. 7월 13일 아침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휴양지 바트 엠스에서 수행원들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이 때 프랑스 대사 베네데티가 빌헬름 1세를 방문해“스페인 왕위계승에 영구히 관여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베네데티의 태도는 정중했지만, 요구한 내용은 빌헬름 1세가에게 모욕적인 것이었다. 이런 사실이 베를린에 있던 비스마르크에게 전보로 알려졌다. 비스마르크는 의도적으로 전보 내용을 자극적인 문투로 바꿔 공개했다. 프로이센 여론은 일개 프랑스 대사가 프로이센 국왕을 모욕했다고 분노했다. 프랑스 여론도 프로이센이 대국 프랑스의 요청을 무례하게 처리했다고 분노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을 위해 프랑스와의 일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미 국방개혁과 대외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룬 프로이센은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 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엠스 전보를 자극적으로 공개한 것은 독일 통일을 위한 비스마르크의 한  교묘한 함정이었다.   그런데 프랑스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지도자는 1848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가 3년 뒤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한 후 1852년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 3세였다. 그는 국내정치 감각은 뛰어났지만 대외정책에서는 큰 삼촌 나폴레옹 1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폴레옹 3세는 유럽 질서와 프랑스 국내정치를 주도하기 위해 자신이 프로이센 국왕보다 우위에 있다고 천명하고 싶었기에 프로이센에  먼저 전쟁을 선포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함께 프로이센 지배 하의 남부 독일 공국으로 진격해 독립시키려는 계획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했고 주변국의 태도를 오판해 프로이센이 보낸 신호를 한낱 엄포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했다. 선전포고 이후 사태는 나폴레옹 3세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비스마르크의 계획대로 전개됐다. 1970년 9월 2일 프랑스 스당에서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군에 대패해 포로가 됐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임시정부가 들어섰고, 10월경 프로이센군은 파리를 완벽하게 포위한다. 고립된 시민들의 생활은 추위와 식량부족 등으로 처참했다. 국민 총동원을 위해 내무장관 강베타는 열기구를 타고 필사적으로 파리를 탈출한다. 그러나 사분오열된 프랑스 국민은 무력하기만 했다. 12월부터 프로이센군은 매일 수천발의 포탄을 파리에 퍼부었다.     4개월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파리 정부는 결국 항복했다. 파리가 함락되고 몇 달 후인 1871년 5월, 프랑스 임시정부의 행정장관 티에르는 비스마르크와 베르사이유에서 만나 가조약을 맺고 강화했다. 그리고 30년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 때, 빼앗겼던 알자스와 로렌을 되찾아 독일제국의 영토에 병합했다. 더불어 전쟁을 개시한 프랑스에게 책임을 물어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물리고 조약을 감시하기 위해 군대를 파리에 주둔시켰다.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군이 파리 공략을 진행하는 동안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머물렀다. 프랑스는 임시정부를 구성해 전쟁을 계속 수행했지만, 결국 1871년 1월 수도 파리는 함락됐다. 1871년 1월 18일 북독일연방과 남부독일공국들을 합친 독일제국의 탄생과 빌헬름 1세의 독일 황제 즉위식이  프랑스의 유서 깊은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에서 열렸다.     비스마르크의 대외정책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등 서방의 병력 지원 없이 외롭게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은 냉혹한 국제 안보 질서 속에서 ‘동맹’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우리의 주적이고  위험할 때 누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나라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한미 연합훈련 확대와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 등에 합의했다. 양 정상은 ‘핵은 핵으로 대응한다는 입장도 밝혔다..‘깜짝 쇼’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했다는 환상으로 국민을 눈속임했던 한미 정권이 모두 바뀌면서 비로소 김정은 정권에 대한 상식적 대응이 재개됐다. 북핵이라는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5년이 걸렸다. 지난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동맹이란 단어는 사실상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우리는 ‘평화’ 또는 ‘평화 프로세스’라는 말에 묻혀 살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그 ‘평화’의 자리에 ‘동맹’이 정권 교체를 이룬 것이다. 이번 한국 방문 때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보낼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헬로, 끝”이라고 답했다. 예전처럼 북한 지도자를 달래거나 띄워주기 위한 보여주기식 만남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정은이 바이든의 인사말에 핵·ICBM 실험 외에 다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 한국, 일본이 이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김지민 기자지도자 여우 북핵 문제 오스트리아 전쟁 덴마크 전쟁

2022-06-01

[시론] 우크라 전쟁과 러시아 핵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3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비교적 작은 나라인 우크라이나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온국민이 뭉쳐 맞서면서, 강대국인 러시아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일각에서는 체면이 깎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등 극단적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푸틴은 “외부 세력의 우크라이나 개입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유례가 없었던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때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현재는 북핵의 위협에 맞서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이같은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다. 과연 핵전쟁은 벌어질 수 있을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한다.     비영리단체 군축협회(ACA)의 사무총장이자 월간지 ‘암즈 컨트롤 투데이(Arms Control Today)’의 필진인 대럴 킴벌 소장은 “핵전쟁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물어본다면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푸틴이 전황을 바꾸려고 단거리 전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킴벌 사무총장은 “일단 핵무기가 한 번 사용되면 상대방에서 응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푸틴의 발언이 미국과 나토(NATO)의 우크라이나 원조를 방해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고 해석한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9일 전승절 행사 연설에서도 핵에 대해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또한 킴벌 사무총장은 “미군 정보당국이 100여개의 전술 핵탄두를 보유한 러시아가 아직까지 공격을 개시한다는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소재 신문 ‘우크라이나 위클리’의 앤드루 닌카 편집장도 푸틴의 핵무기 위협이 미국 및 우방 분열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은 핵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며 적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며 “핵위협만 제외하면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핵전쟁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킴벌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위험은 커진다. 우리는 현재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칼리지 교수도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핵무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도 핵무기 투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클레어 교수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재래식 무기가 자국의 군사력과 시설을 겨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반면 미국의 지도자들은 대만을 또 다른 우크라이나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킴벌 사무총장과 클레어 교수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무기 감축협정(New START)의 2026년 만료를 앞두고 무기 감축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조된 양국 긴장 관계를 감안하면 협상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킴벌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이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핵무기에 대한 규제조치가 사라질 수 있다”며 “이는 우리가 그동안 겪어보지 않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핵무기의 위협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을 지켜본 북한도 자신들의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전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시키고 그동안의 과오에 대해 반성시키며 국제사회에 복귀시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도 미국 정치인들을 통해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건의해야 할 것이다. 이종원 / 변호사시론 우크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핵전쟁 가능성 우크라이나 위클리

2022-05-24

[독자 마당] 자유의 의미

2년여 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도 끝을 모르게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삶이 위축되고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세계가 지구촌 한 공동체로 묶여 있음을 다시금 실감나게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대선기간 동안 경합을 벌였던 두 후보의 지지자들로 인해 전 국민이 두 진영으로 나뉜 듯했다. 하지만 혼란스럽던 대치가 표면상 큰 불상사 없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지금의 현실에서 보듯, 국가 지도자의 정치 이념에 따라 국가 정체성이 결정되고, 국정 능력에 따라 국민의 위상과 삶의 질이 정해진다.     이번 신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이 ‘자유’라고 한다. 이 흔히 쓰이는 말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시점에 여러 차례 되풀이 적시되었음은 그 안에 여러 중요한 의미를 함축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자유의 일반적 의미는 무엇에든 방해 받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 자유의 영역을 사회 공동체로 넓혔을 때, 개인 각자의 자유가 상충하고 간섭 받게 됨을 최소화하려고 조절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정치이다.     또 이번 취임사에 인용되고 이후 널리 회자되고 있는 ‘반지성주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 보전과 역사 진전의 최대 걸림돌이다. 한 저명한 역사학자는 세계 경제가 물질기반에서 지식기반으로 바뀌고 있어 인류사에서 전쟁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도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지식기반의 이성적·합리적 사고의 지성주의를 가로막는, 자기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지성주의에 기초한 자유를 최대한 신장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선진 복지사회로 가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새 대통령의 과제이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 마당 자유 의미 자유 보전 일반적 의미 우크라이나 전쟁

2022-05-22

[J네트워크] 하르키우

우크라이나 북동부에 있는 제2의 도시 하르키우는 한국인에게 낯선 도시다. 유서 깊은 수도 키이우와 직항로가 연결돼 있지 않았던 만큼, 넘버 투 도시가 생소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지구 반대편 나라”라고 했던 우크라이나 하르키우는 한국과 인연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유일의 고려인 학교가 이곳에 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은 총 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한 이들과 그들의 후손이다. 하르키우가 6·25 전쟁 초기 국군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T-34’ 전차의 주요 생산기지였다는 점에서 악연도 있던 곳이다.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삶만큼이나 하르키우란 도시도 근·현대사에서 부침이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나치독일은 이 도시에서만 네 차례나 대규모 공방전을 벌였다. 규모가 컸던 건 1942년과 1943년 전투다.     1942년 소련은 쾌속 진격하던 독일군을 막아내기 위해 하르키우에서 선공했지만, 결국 독일군의 역습에 무너졌다. 하르키우를 빼앗긴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까지 밀렸다.   1943년에는 소련이 공격에 나섰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 40만 명을 포로로 잡은 소련이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소련이 하르키우까지 진격해 오길 기다렸다가 역습에 나섰다. 소련의 진격은 늦춰졌다. 여러 차례 공방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하르키우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하르키우는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다. 2014년 유로마이단(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요구한 시위) 당시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하르키우는 친러파와 친서방파의 대결 정국에서 친러 정치인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이기도 했다. 러시아 국경까지 불과 50㎞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러시아계 시민도 다수 거주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하르키우는 또 한 번 화마에 휩싸였다. 전쟁 초기부터 하르키우 대학교와 시청사 등이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석 달째 치열한 전투 끝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국경까지 도달한 군인들이 “우리가 해냈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하르키우가 평화를 찾길 기원한다.     한영익 / 한국 중앙일보 정치에디터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고려인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북동부

2022-05-21

[시론] 보수와 진보의 ‘낙태권 전쟁’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법률 문제로 시끄럽다. 한국은 검수완박, 미국은 낙태권 문제다. 한국은 국회, 미국은 대법원이 논란의 중심지다. 검수완박이나 낙태권 제약 모두 겉으로 보면 이 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어젠다가 더해지면서 전국민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 됐다.     한국의 검수완박은 야권이 된 진보진영이 공격을 하고 여권이 된 보수진영이 방어를 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낙태권 문제는 야권인 보수진영이 공격하고 여권인 진보진영이 방어하는 형국이다.     검수완박이나 낙태권 제약에 대한 법리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검수완박이나 낙태권 제약은 무조건 정치적 논리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두 사안을 몰아붙이는 진영의 행태가 아름답지 못할 뿐이지, 사실 두 법률의 취지는 나름대로 논리가 있어 무작정 비난하기 어렵다.       검수완박의 경우 한국사회의 오래된 고질병 중 하나인 비대하고 부패한 검찰력의 정상화를 위해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고 이를 통해 견제와 균형이 이루겠다는 목표가 있다.     낙태권 제약의 경우는 태아도 하나의 존엄한 생명체로서 보호 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명권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법안 각각이 취지와 목적이 있음에도 이들 법안은 진영논리 속에 파묻혀 국민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두 가지 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그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진영이 속한 쪽에서 찬성을 하고 반대를 하니 무작정 찬반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인다.     두 법안은 간단하고 명료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미주의 한인들에게 검수완박보다는 낙태권 제약이 더 뜨거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낙태권 제약은 여성 권리와 태아 생명권이 명확하게 충돌하는 영역이다. 산모의 건강이 위험할 때, 또는 근친상간, 강간 등으로 생긴 생명체를 그래도 살려내야 하는가의 문제에 답이 쉽게 나올 수 없다. 근친상간, 강간 등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인생도 결코 축복 받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과 모든 생명체는 신 앞에서 평등하고 그 생명체에는 신이 내린 의미가 있어 그걸 함부로 인간이 뺏을 수 없다는 관점이 충돌한다.     진보진영에서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의 권리야말로 헌법상에 보장된 사생활의 자유이고 이를 통해 낙태권도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보수진영에선 애초에 헌법에 그런 사생활의 자유도 낙태권도 보장된 적 없고 그건 판사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태권 제약 문제는 최근 터진 연방대법원 판결문 유출사고로 극을 달리고 있다. 여성의 낙태권을 사실상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1973년의 ‘로 v. 웨이드’의 판결을 뒤집는 다수의견이 담긴 판결문이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유출되는 사고가 최근 터졌다. 상상도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고 존 로버츠 대법관이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낙태권 제약이 이제 기정사실화 되는 것 아니냐며 여성단체와 진보단체들의 반발이 크다. 낙태권 제약에 찬성한 5명의 보수판사 중 2명은 대법원 판사 후보 청문회 때 ‘로 v. 웨이드’ 판결을 뒤집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했었다.     다수의견이 담긴 판결문이 어떻게 유출됐는가를 놓고 시끄러워지겠지만 앞으로 이 판결문이 세상에 나오면 미국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김윤상 / 변호사시론 낙태권 보수 낙태권 제약 낙태권 전쟁 낙태권 문제

2022-05-09

[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전선

올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세 차례 다뤘다. 세 번째 칼럼에선 희망 섞인 5차 협상 결과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전쟁이 쉬 끝날 것 같진 않다’고 썼다. 당시 전황이 러시아가 개전 당시 목표한 것에 턱없이 못 미친 데다 푸틴으로선 어떠한 군사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본때를 보여야 할 ‘새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주 사이 푸틴이 목표했을 그 질서는 더 흐트러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근방에서 맥없이 퇴각한 데 이어 동부 돈바스 전선에서도 힘을 못 쓰고 있다. 반면 서방에서 지원받은 미사일·탱크 등 첨단 무기 덕에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 북쪽 국경에선 중립국 핀란드·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제재는 더 촘촘하게, 더 강력하게 러시아 포위에 나서고 있다.     푸틴은 오는 9일 전승기념일에도 전쟁을 마무리 못 할 가능성이 크다. 이젠 러시아가 끝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방이 끝장을 볼 작정이라서다. 푸틴 정권을 대척점에 놓는 ‘진짜 싸움’에서 말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러시아의 공격에 굴복하는 것이 더 큰 손해가 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330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민주주의와 독재 정권 사이의 최전선이다.”     다른 서방 지도자들도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우리 모두에게 전략적 의무”(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부 장관) 등이다. 이제 서방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이며 전쟁은 더 본질적 싸움의 일부일 뿐이란 얘기다.   미국의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프랑스가 물가 불안에 휘청하지만, 서방은 제재 역풍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전선에서 물러서지 않기로 작심한 것 같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이번 전쟁은 자유·인권·법치·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과 아닌 이들 간의 싸움이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푸틴의 침공은 실패로 돌아가야만 한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이 가치의 연대에 누가 어떻게 함께 하느냐가 선명해질 것이다. ‘가치의 질서’를 둘러싼 힘겨루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짜 전선은 돈바스에 있지 않다. 강혜란 / 한국 중앙일보 국제팀장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지원 우크라이나 사태 대러시아 제재

2022-05-08

[시론] 러시아 압박하는 국제사회

세계의 비난 속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나 국외로 피란한 난민이 전쟁 두 달도 되지 않아 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가 유엔 핵심기구 중 하나인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됐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민간인 대량학살에 대해 세계가 강력한 분노를 표시한 결과였다.     1945년 유엔 창설의 주역이자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국가가 유엔 산하기구에서 퇴출된 것은 77년 유엔 역사에서 전례가 없다.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큰 타격을 받는 동시에 미국·유럽과의 갈등 관계도 더욱 첨예화할 전망이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의결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희생자와 생존자들에게 결코 유엔이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라며 “지독한 인권 침해국이 유엔에서 인권과 관련한 리더라는 지위를 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엔의 러시아 인권이사회 퇴출 결정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한 수퍼 파워 중 하나를 국제무대에서 쫓아낸 기념비적인 외교 사건이다.     유엔은 지난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자 인권이사회에서 퇴출시킨 전례가 있다. 하지만 러시아처럼 세계적으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큰 주요국이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나라가 유엔 기구에서 쫓겨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사회주의 진영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포격이 한창일 무렵 키이우 시장 비탈리 클리치코와 그의 동생 블라디미르 클리치코가 러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된 한 아파트 현장을 찾았다. 한때 미국 복싱 선수들이 장악한 랭킹에 이름을 올린 두 명의 유명 복서다. 각각 8·10위를 차지했다. 형 비탈리는 2004년 WBC 헤비급 타이틀을 따낸 챔피언이었고 동생 블라디미르도 세계적 타이틀을 석권한 헤비급 선수다. 키이우의 한 자원봉사자는 “우리 대통령 젤렌스키도 정치인이 아니었고, 우리 시장도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강한 이유”라고 자부했다. 이토록 국내외적으로 사랑 받는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이다.     지난달 한국에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는 선거를 치렀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4일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한국 외교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북한 관계에만 지나치게 역점을 두었다”며 “한·미 동맹을 더 강력하게 하고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위상에 걸맞은 외교 정책을 펴야 한다”라고 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참여를 요구할 때 우리는 국제적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1950년 러시아와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저지른 6·25전쟁 때 한국을 지키려고 세계가 나선 것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목숨 걸고 전선을 지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 의지가 합쳐져 전쟁이 끝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시론 국제사회 러시아 러시아 인권이사회 우크라이나 전쟁 유엔 핵심기구

2022-04-22

[기고] 전쟁으로 막힌 ‘하늘길’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민간 항공기의 러시아 영공 통과 항로가 폐쇄됐다. 그간 러시아의 영공 통과로 아시아·유럽간 또는 미동부·아시아간의 비행시간을 상당히 단축해 왔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항공기 안전을 위해 북극 상공으로 더 멀리 우회해 비행시간은 종전보다 1~2시간 늘어났다.     비행시간이 늘면 운항비용 상승, 착륙 공항 스케줄 변경, 승객 불편 등 많은 부담이 발생한다.       ‘항로(航路)’라는 용어는 원래 바다에서 배가 다니던 ‘뱃길(Seaway)’을 뜻했다. 20세기에 들어 와 항공기가 날면서 ‘하늘길(Airway)’에도 항로라는 용어를 해운에서 차용하고 있다.     영공 통과는 단축항로이다. 돌아가는 길은 멀지만 직선 길은 짧고 빠르다. 영공(領空)은 영토와 영해(해안선에서 12해리) 위의 하늘로 그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이다. 즉 국가가 영유권을 가지는 공중 영역을 뜻한다. 하지만 우주 공간은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는 자유 공간이다.   국제선 운항은 관련 국가간에 항공협정을 맺고, 협정에 따라 영공 통과와 관제 서비스를 받는다. 영공을 통과할 때에는 통과 영역과 시간, 항공기의 크기에 따라 영공 통과료(Overflying Fee)를 지급하게 된다. 즉 영공을 통과하는 동안 제공 받는 관제정보 서비스에 대한 대가이다. (해운에는 영해 통과료가 없다. 대신 운하통과료는 운하관리국에 선불로 지급한다)     미국은 본토뿐만 아니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는 모든 항공기에 대해 관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영공이 아닌 태평양을 비행할 때도 영공 통과료를 지급해야 한다.     1928년 독일의 새뮤얼 슈바르츠라는 개인이 루프트한자(독일항공)를 상대로 항공기가 자기 집 위로 날아 다니는 비용을 청구했다. 이 발상이 오늘의 항공업계 영공 통과료 부과의 계기가 됐다.     도로에는 신호등이, 바다에는 등대가 있다면 하늘에는 항공관제소가 있다. 신호등이 수많은 차량운행을 통제하듯이 항공관제소는 하늘의 신호등으로 공중의 비행기와 공항에 대기 중인 항공기를 통제한다.   항공관제 서비스는 비행기가 이륙해서 착륙할 때까지 항공기의 안전을 위해, 지상의 관제탑이나 위성을 통해 조종사와 충돌방지(안전) 정보, 항로 정보, 기상 정보, 항공기 상태, 이착륙 정보 등을 주고 받는 것을 말한다.     예전엔 조종사와 관제사(관제탑 근무자)간에 음성으로 실시간마다 운항정보를 교환했지만 지금은 통신 시스템의 발전으로 통상적인 데이터 정보는 컴퓨터가 자동으로 교환해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모든 공항에는 관제탑이 높이 보인다. 관제탑은 1920년 런던의 크로이던공항에 최초로 세워졌다. 타워는 높이 4.6m(15ft)로 사방 창문을 통해 비행기를 육안으로 직접 보면서 조종사에게 위치, 활주로 선택, 이착륙 지시 등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했다.   항공관제가 영국에서 시작됐기 때문인지 관제사와 조종사간의 통용어는 영어이며, 조종사의 자격 조건엔 관제용어 숙지와 영어 통용이 필수다.   요즘 북한이 미사일을 동해로 자주 시험발사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미국간 북시베리아 항로를 이용하는 한국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를 했다. 이후 한국 국적기들은 북쪽 동해안 통과를 포기하고 일본 영공을 통과함으로써 인천공항 도착시간이 약 30분 정도 더 걸린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인천공항은 북한 영공과 매우 근접해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맺은 항공협정이 천안함 사건으로 파기돼 한국 민항기들은 중국이나 일본 영공을 이용하고 있다. 비행시간과 운항비용 면에서 지금까지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다.           한없이 넓고 끝없이 높은 하늘이지만 날개가 있다고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기고 하늘길 전쟁 영공 통과료 항공관제 서비스 관제정보 서비스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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