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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잠꾸러기면 수명 단축?

에구, 졸려라. 난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졸릴까? 병든 병아리 모양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꾸벅댄다. 어릴 적엔 엄마가 곁에서 감시함에도 소용없다. 공부 좀 하나하고 보면 영락없이 엎드려 자기 일쑤였단다.   그리고 반백 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도 똑같은 현상이다. 가끔 밤잠 설치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 왜 잠을 못 잔다는 건지. 난 이렇게 일찍 자도 늦게 자도 아침이면 힘들게 기상해야 하고, 요즘처럼 나이 들어 시간 맞춰 나갈 일 없으니 그냥 늘어지게 잔다. 그래서 건강하다느니 주름도 없다느니 검증 안 된 증거들을 나열하는 친구들 말에 덩달아 그런가 하며 걱정 없이 잘 자며 살고 있다.   오늘 아침이다. 동창 톡방에 올라온 ‘장수 식습관’ 이란 제목으로 일본 의사의 의견서를 한국인이 읽어 주는 것을 무심코 화장실 타임에 듣고 있었다. 뭐시라고?  6시간 이하로 잠자는 사람과 9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은 생명이 단축된다는 내용이다. 시간에 상관없이 잘 자는 사람은 건강하고 그만큼 생명도 길어진다고 진짜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던 터 아닌가? 갑자기 후다닥 정신이 번쩍 든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나 우짠다요? 잠 많은 것이 뭔 자랑거린 줄 알고 평안으로 휘감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채, 자고 또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내 세상이었는데. 생명을 단축하는 요인이라니. 그동안에 잤던 시간을 세어보니 몇 년의 생명이 단축되었을꼬? 감이 안 잡히면서 바위만 한 두려움이 내게 돌진해 온다.   어제 재정 설계사가 모든 연금 뭉뚱그려 매년 죽을 때까지 타 먹게 바꿔줬는데, 나 오래 살아야 그 돈 다 타 먹어야 하는데, 잠 많이 자서 매해 생명 단축이 시행되어 왔다면 이거 보통 낭패가 아니다. 일어나자. 잠이 안 깨서 비몽사몽이라도 일어나라. 걸어라. 얼른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식단 이야기만 했더라면 진짜 낭패일 뻔 했다. 그래. 그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은근히 어깨 으쓱거리던 거만함 살그머니 접어 감추자. 그들의 고통을 위로 하면서 억지로라도 동참해 보자. 눈 비비며 졸림 참아 내자.  앉아서 컴퓨터 작업하고, 동영상 보던 습관도 바꾸자. 앉으면 졸리니까. 글 쓰다가도 졸고, 드라마 보다가도 졸고, 하물며 열심히 먹는 시간에도 끄덕이며 졸던 습관을 확 바꿔야 내가 산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무조건 일어서라. 졸리면 벌떡 일어나서 움직인다. 몇 발 걸어 보니 잠은 후다닥 깬다. 외출한다고? 아무 데나 갈 곳을 만들어라. 누구든 편한 사람 불러내서 밥 한 끼 먹어라. 이게 나이 들어 생긴 것이라면 잠깐 슬퍼졌을 거다. 그런데 아니지 않은가. 난 어려서부터 이래왔던 걸 선명하게 기억한다.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가 잠꾸러기 속에서 안 나왔달 가봐 그렇게 잠이 많으냐”고 고개를 저으시던 한탄의 소리. 맞아, 엄마는 잠꾸러기였고, 환갑 겨우 지나자마자 긴 잠으로 빠지셨다. 다행히도 난 엄마와 식단이 다르다. 엄마는 육식 위주, 난 채식 위주. 그래서 난 엄마보다 훨 오래 살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잠을 줄여서 생명을 연장해 보리라. 박기제 / 수필가이 아침에 잠꾸러기면 수명 잠꾸러기면 수명 생명 단축 장수 식습관

2022-12-06

[이 아침에] 잠꾸러기면 수명 단축?

에구, 졸려라. 난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졸릴까? 병든 병아리 모양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꾸벅댄다. 어릴 적엔 엄마가 곁에서 감시함에도 소용없다. 공부 좀 하나하고 보면 영락없이 엎드려 자기 일쑤였단다.   그리고 반백 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도 똑같은 현상이다. 가끔 밤잠 설치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 왜 잠을 못 잔다는 건지. 난 이렇게 일찍 자도 늦게 자도 아침이면 힘들게 기상해야 하고, 요즘처럼 나이 들어 시간 맞춰 나갈 일 없으니 그냥 늘어지게 잔다. 그래서 건강하다느니 주름도 없다느니 검증 안 된 증거들을 나열하는 친구들 말에 덩달아 그런가 하며 걱정 없이 잘 자며 살고 있다.   오늘 아침이다. 동창 톡방에 올라온 ‘장수 식습관’ 이란 제목으로 일본 의사의 의견서를 한국인이 읽어 주는 것을 무심코 화장실 타임에 듣고 있었다. 뭐시라고?  6시간 이하로 잠자는 사람과 9시간 이상 자는 사람들은 생명이 단축된다는 내용이다. 시간에 상관없이 잘 자는 사람은 건강하고 그만큼 생명도 길어진다고 진짜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던 터 아닌가? 갑자기 후다닥 정신이 번쩍 든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나 우짠다요? 잠 많은 것이 뭔 자랑거린 줄 알고 평안으로 휘감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채, 자고 또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내 세상이었는데. 생명을 단축하는 요인이라니. 그동안에 잤던 시간을 세어보니 몇 년의 생명이 단축되었을꼬? 감이 안 잡히면서 바위만 한 두려움이 내게 돌진해 온다.   어제 재정 설계사가 모든 연금 뭉뚱그려 매년 죽을 때까지 타 먹게 바꿔줬는데, 나 오래 살아야 그 돈 다 타 먹어야 하는데, 잠 많이 자서 매해 생명 단축이 시행되어 왔다면 이거 보통 낭패가 아니다. 일어나자. 잠이 안 깨서 비몽사몽이라도 일어나라. 걸어라. 얼른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식단 이야기만 했더라면 진짜 낭패일 뻔 했다. 그래. 그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은근히 어깨 으쓱거리던 거만함 살그머니 접어 감추자. 그들의 고통을 위로 하면서 억지로라도 동참해 보자. 눈 비비며 졸림 참아 내자.  앉아서 컴퓨터 작업하고, 동영상 보던 습관도 바꾸자. 앉으면 졸리니까. 글 쓰다가도 졸고, 드라마 보다가도 졸고, 하물며 열심히 먹는 시간에도 끄덕이며 졸던 습관을 확 바꿔야 내가 산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무조건 일어서라. 졸리면 벌떡 일어나서 움직인다. 몇 발 걸어 보니 잠은 후다닥 깬다. 외출한다고? 아무 데나 갈 곳을 만들어라. 누구든 편한 사람 불러내서 밥 한 끼 먹어라. 이게 나이 들어 생긴 것이라면 잠깐 슬퍼졌을 거다. 그런데 아니지 않은가. 난 어려서부터 이래왔던 걸 선명하게 기억한다.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가 잠꾸러기 속에서 안 나왔달 가봐 그렇게 잠이 많으냐”고 고개를 저으시던 한탄의 소리. 맞아, 엄마는 잠꾸러기였고, 환갑 겨우 지나자마자 긴 잠으로 빠지셨다. 다행히도 난 엄마와 식단이 다르다. 엄마는 육식 위주, 난 채식 위주. 그래서 난 엄마보다 훨 오래 살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잠을 줄여서 생명을 연장해 보리라. 박기제 / 수필가이 아침에 잠꾸러기면 수명 잠꾸러기면 수명 생명 단축 장수 식습관

2022-12-05

[이 아침에] 내 쇼핑의 변천사

다시 쇼핑 시즌이다. 쇼핑에 정신이 팔렸던 때가 있었다.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짬만 나면 옷과 액세서리를 사러 다녔다. 좋은 물건 싸게 샀다고 이웃과 정보 교환까지 해가며, 쇼핑의 즐거움에 정말 피곤한 줄도 몰랐다. 밀레니얼 몇 해 전 주재원인 남편 따라 잠시 영국에서 살았다. 뜻이 맞는 친구와 당시 붐을 탔던 본차이나 그릇을 사러 다녔다. 새것은 소유의 만족감으로 중고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품일 것이라는 이유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미국으로 다시 오게 되었을 때 본차이나 그릇과 장식품이 이삿짐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귀한 분들께 선물하려고 바리바리 사 온 당시 유행했던 영국산 본차이나 장미 그릇 세트, 동네 코스트코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영국보다 싼 값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사 온 새것들 대부분 미국이 더 싼 것을 알고 ‘헛짓했구나’ 싶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     편의성, 효율성 그리고 외관상의 아름다움까지 고려한 새로운 생활용품은 끊임없이 주부의 마음을 흔든다. 애들 제 갈 길 가고 요리도 많이 하지도 않는 데다 외식도 잦아 크게 필요치 않다고 해도 또 수시로 이것저것 사게 된다. 시대 흐름이 그렇듯 나 역시 식료품 외에는 인터넷을 통한 구입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인터넷 구입이 편하긴 하지만, 옷이나 신발은 매장에 가서 사는 것이 리턴할 확률이 낮은 것 같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는 가볍고 따스한 질감의 캐시미어를 좋아한다. 산 지 십 년이 된 캐시미어 스웨터가 두 개 있다. 즐겨 입어선지 아니면 오래 입어선지 이음새 있는 곳에 고가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작년 이맘때쯤, 십 년 전에 샀던 그 백화점 같은 장소에서 무려 다섯 벌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샀다. 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아 기분 좋게 여러 벌을 샀고, 그중 두벌은 소중한 분께 성탄 선물로 드렸다. 그런데 한 달 입어 보고 품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십 년 동안 입은 스웨터는 여태껏 매끈한데, 이번 제품은 함께 입는 옷에 털이 심하게 묻어나고 보푸라기까지 흉하게 일어났다. 내가 입은 옷은 그렇다 치고 선물 드린 분께 미안한 심정이 될 정도였다.   요즈음 물가가 장난 아니게 뛰고 있는데 값이 오르지 않았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가격을 겁나게 깎는 분이 있다. 에누리가 통하는 것을 볼 때면 내가 너무 느슨한 사람같이 느껴져 다음에는 나도 해 봐야지 마음을 다져 보곤 한다. 하지만 ‘기업이 무슨 논 팔아놓고 장사하냐’ 던 옛말처럼 이전 가격을 고수하려면 품질을 낮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왕성하던 내 쇼핑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시점이다. 쇼핑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정이 식어선지 쇼핑에 시간과 에너지 쓰는 것이 아깝다. 나이가 들면 체질도 바뀌는지, 예쁜 디자인이 더 많은 모조품 액세서리는 몸이 가려워 밀려나고, 옷도 신발도 편한 것만 찾는다.  필요한 쇼핑 리스트를 만들어서 나가는 편이라 충동구매는 줄었지만, 가격과 품질 양쪽의 추를 잘 맞춰야 하는 현명한 소비자의 길, 참 녹록지 않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변천사 쇼핑 쇼핑 리스트 캐시미어 스웨터 본차이나 그릇

2022-12-04

[이 아침에] 울 엄마

몇 년 전 ‘울 엄마’를 주제로 책을 만든 적이 있다. ‘울 엄마’는 우리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어머니,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말인가.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세월의 흐름도 공간의 부피도 아랑 곳 없이 사랑과 그리움이 서린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계신다.     책에 글을 쓴 이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보다 불효를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어머니 하면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어머니 하면 마음이 찡하는 울림이 온다고 했다. 그렇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생명이시다. 만물의 근원이시다. 어머니는 우리의 빛이시다. 글을 쓴 이들은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는 밥을 안 드시고도 항상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항상 굶으셨다. 어머니는 자식의 아픔을 대신하려고 했다. 자식은 어머니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새 자식들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연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보게 된다.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낭거미가 있다. 염낭거미는 모성이 강한 거미로 알려져 있다. 암컷은 번식기가 되면 나뭇잎을 말아 작은 주머니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알을 낳는다. 어미 거미는 새끼거미가 부화하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준다. 그 희생적인 사랑은 어미만이 베풀 수 있는 위대함이다. 어미의 몸을 먹고 자린 새끼거미들은 둥지를 뚫고 나와 바람 따라 제 갈 길 찾아 흩어져 산다. 자식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고 조용히 사라져 가는 염낭거미는 우리 어머니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논우렁이가 있다. 우렁이는 자기 몸 안에 알을 낳고 부하가 된 새끼들은 제 어미의 살을 파먹고 성장한다. 어미 우렁이는 한 점의 살도 남김이 없이 새끼들에게 다 주고 빈껍데기로 흐르는 물길 따라 둥둥 떠내려간다고 한다. 그런 새끼 우렁이도 어미가 되어 알을 낳으면 같으리라 생각된다.   가물치는 우렁이와는 반대의 삶을 산다. 가물치는 수천 개의 알을 낳고 장님이 된다고 한다. 장님 가물치는 먹이 활동을 할 수 없어 굶주림을 참아야 하는데 이때쯤 알에서 부하가 되어 나온 수천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 가물치가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자진해서 어미 입으로 들어가 먹이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얼마나 애틋한 내용인가.   결국 어미 가물치는 새끼 덕에 다시 눈을 뜬다고 한다. 수천의 새끼 중에 생존 가물치 비율은 10%에 불과하고 90%가 어미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리워하면 뭐하리, 우리는 항상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하면서 산다. 김일홍 / 소설가이 아침에 엄마 새끼 우렁이도 우리 어머니 어머니 얼마

2022-12-02

[이 아침에] 훈장을 다셨습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 신나서 중얼거리는 자장가가 있는데 다름 아닌 ‘골프 시편 23편’이다. 어느 때는 끝까지 다 중얼거리지만 때로는 어느 사이 끝을 맺지 못하고 잠 나라로 들어간다. 그리곤 꿈속에서 나는 가끔 신나게 골프를 친다. 생각하면, 골프를 치던 지난 40여 년의 세월이 나의 삶의 황금기였음을 실토한다. 물론 지금도 골프를 칠 수 있고 여력이 남아 있지만, 펜데믹이다 뭐다 걸림돌이 많아 일단 골프채를 접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나 글쓰기, 서예 등 그런대로 바쁘게 움직이는 중에 얼마 전 나의 한 골프 동지를 잃었다.     이 난감(難堪)한 심정이라니…. 그 오랜 세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여덟 집은 일 년이면 몇번씩 만나 골프재력을 나누며 삶을 노래했기에 지금처럼 이렇게 적막하지는 않았고 나이를 잊고 삶은 늘 긍정적이고 풍요로웠다. 사람이 나고 떠남은 하늘의 이치일진대…. 그래도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라 그런지 요사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서성거린다.     나는 문득 지난번 피부과를 방문하였을 때 “Mrs, Lee! 이제 훈장을 다셨습니다” 하던  담당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몇달 동안 무릎 바로 위  허벅지에 생긴 점 같은 것이 없어지지 않아 진찰을 받으니 이제 늙어 검버섯이 많이 생긴 것이라며 그냥 두라는 그 말을 들으며 그러고 보니 아직 마음만 젊었지 몸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실감하며 이제는 몸 이곳저곳에 훈장을 많이 달아도 겁도 없이 그러려니 하며 지낸다. 마치 나이를 인정하겠다는 듯이….     훈장이란 무엇인가. 나라와 사회를 위해 훈공을 세운 사람에게 국가가 수여하는 휘장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도 80평생 넘도록 나를 지탱해준 나의 몸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귀도 멍하고, 돌부리에 흙더미에 넘어질 것 같다며 짜증 내지 말고, 골프 할 때 손에 멍이 잘 든다고 푸념하지 말고 오랜 세월 건강을 위해 애쓴 나에게 훈장을 주며 칭찬과 격려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내가 훈장을 다는 나이가 되고 보니 요사이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1876년생이신 할아버지께서는 일찍 혼자 되시어 오랜 세월 혼자 계셨는데  거드름도 피실 환경 속에서도 늘 부지런하시고 남을 탓하는 법이 없으셨다. 생각하면 훈장을 많이 다셨을 연세 때에도 자손들이 좀 쉬시라고 말씀드리면 “매일 뜨는 저 태양이 쉬는 것 보았니?” 하시며 “사람은 늘 움직이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늘 하늘과 땅, 자연을 사랑하셨던 할아버지….     며칠 전 LA에 있는 지인이 보내준 시(詩) 한 수, ‘따뜻한 햇볕 무료. 시원한 바람 무료, 아침 일출 무료, 저녁노을 무료, 붉은 장미 무료, 흰 눈 무료, 어머니 사랑 무료, 아이들 웃음 무료, 무얼 더 바라, 욕심 없는 삶 무료’ 이 시(詩)가 대한민국 시(詩) 부분 1위라네요!   나는 오늘도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 나의 삶 속에서 먼저 떠난 나의 골프 동지를 생각하며 그의 푸근한 미소를 그리워한다. 정순덕 / 수필가이 아침에 훈장 무료 저녁노을 무료 어머니 햇볕 무료

2022-11-30

[이 아침에] 노인대학 조기 입학생

여고 졸업 6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에 다녀오신 선배님이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신다.  “팬데믹 전만 해도 단체로 옷 맞춰 입고 라인댄스에 연극도 했었는데 양상이 달라졌어. 그 사이 하늘나라 간 친구들이 여럿, 휠체어 탄 친구가 셋, 지팡이를 짚은 친구가 둘이더라고” 하며 우울해 하신다. 나보다 13년 선배시니 팔순에 가까운 선배님들이긴 하다. 몇 년 전 3박4일로 남해 리조트 빌려 놀던 프로그램은 없어지고, 점심시간에 만나 밥만 먹고 조용히 헤어지는 것으로 바뀌어 큰돈 들여 한국 나간 것이 아깝더라 하신다. 100세 시대니 뭐니 해서 영원히 살 것 같아도 끝은 있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다. 페이스북 친구로 오래 알던 캐나다의 소설가 J선생님도 뉴욕의 시인 H선배도 와병 이후의 소식이 궁금해 가보니 부고가 올라와 있어 덜컹했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평안하다던데 왜 나는 두려운 것일까? 가족과의 이별, 사랑하던 모든 것과의 단절이 슬퍼서일 것이다.   지난 가을부터 두 곳의 학교에 등록하여 다니기 시작했다. 큰 수술 후 백수로 산 지 여러 해, 삶에 자극이 필요했다. 클래식 음악 동아리는 가보니 노년층이 대부분이라 약간 실망했다. 내 발로 노인학교에 찾아간 셈이니. 그래도 좋아하는 취미여서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하면 안면근육도 풀려 노화 방지에 좋다니 믿어보기로 한다. 마음을 정화해주는 고전 음악 감상도 참 좋다. 오시는 분들이 모두 건강한 노년들이라 선한 영향을 받는 건전 모임이다.   다른 한 곳은 노인 성경 대학이다. ‘노인’이 붙어 주저했으나 65세 이상이면 등록을 권한다기에 가보니 가장 어린 학생이 되었다. 성경공부에 이은 한글 퍼즐 맞추기 시간과 색칠하기가 유치원 수준이라 자존심 상하긴 해도 어느덧 종강하게 되었다. 노인대학이라 성경공부도 죽음과 종말론, 사후세계에 관한 내용이다. 그만큼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사실 매일 산다는 것은 죽음 쪽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니.   65세가 되면서 연금 나오고 메디케어 의료 혜택을 받게 되니 큰돈 번 듯 좋았다. 그러나 바로 호칭에 ‘시니어, 어르신, 노인’이 붙게 되어 갑자기 늙어버린 억울함도 있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조기 입학한 셈 치니 그럭저럭 가을학기 졸업식을 맞았다. 졸업식에 대표로 나가 졸업장 대신 졸업 선물을 받았다. 코스트코의 대용량 식물성 식용유였다. 이런 실용적인 졸업 선물이라니. “노인대학 만세!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 종이 졸업장보다 훨씬 좋았다. 아직도 물질에 열광하는 나.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 봄학기도 등록해야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노인대학 입학생 노인대학 조기 노인대학 만세 가을학기 졸업식

2022-11-29

[이 아침에] 나와주세요! 세로토닌

요즘 계절성 우울증(seasonal depression)으로 힘들다는 내담자들이 많아졌다. 사실 매년 이맘때면 듣는 고정 멘트다. 따뜻한 봄이나 여름보다, 가을 겨울은 우울한 사람들에겐 아주 힘든 계절이다. 우울한 기분에는 세로토닌이 답이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은,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감정을 총괄 지휘하여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성취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물질이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대부분이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유도, 세로토닌이 세포로 너무 빨리 흡수되어 우울한 기분 통제가 안 되는 것을 억제해주는 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더라도,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첫째, 햇볕이다. 계절성 우울증이 일조량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니, 결국 답은 햇볕이다. 햇볕의 감소는 바로 세로토닌 분비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망막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뇌를 자극하여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고 하니, 시간 되는 대로 햇볕 따뜻할 때 밖에서 30분이라도 햇볕을 쬐자.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햇볕 쬘 때 피부에서 합성되는 비타민D를 복용하자! 비타민D의 중요성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비타민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비타민D라고 많은 의사는 말한다. 나도 내담자들에게 반드시 비타민D 복용을 권한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방에는 비타민D 램프를 설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세로토닌 분비에 도움되는 것은 운동이다. 우리 뇌는 85%가 수분으로 되어 있어 마치 물에 둥둥 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걷거나 몸을 움직이면 뇌도 움직여지면서 운동이 되어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된다. 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 5분 후부터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여 15분 후에는 최고도에 오른다고 한다. 이왕이면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무나 물 등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자연 속에서 걷는다면 금상첨화겠다.     마지막으로는 생활방식이다. 친구 하나는 피검사 결과가 매번 A 플러스다. 그런데도 당뇨약 먹는 나보다 더 건강하게 음식을 먹는다. 건강한 식습관은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세로토닌 분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도 도움된다고 한다. 사람에게 긍정적 말을 들을 때도 뇌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뇌간이 자극돼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우울도 전염되고 불안도 전염된다. 우울할수록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기를 권한다.     우리 기분 조절에 이렇게 중요한 세로토닌의 합성능력을 저하하는 주범은 무얼까? 바로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를 잡기 위해서는, 예쁜 노트를 장만하여 매일 10가지 감사 제목 써나가기를 추천한다. 스트레스의 천적은 바로 감사이기 때문이다. 해 본 사람은 모두 체험하는 감사의 파워, 우리 모두 감사가 풍성하여 우울함이 들어올 틈이 없는 추수감사절이 되었기를 기원한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이 아침에 세로토닌 세로토닌 분비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계절성 우울증

2022-11-28

[이 아침에] 눈먼 탕자의 길

가을 나무는 슬프고 찬란하다. 한여름 불타는 태양 속에 불에 댄 것처럼 사랑을 하고 가을에는 그 사랑을 미련 없이 등 떠밀어 보낸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빛과 색깔이 있을까. 가을은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오렌지색과 빨강을 녹색의 팔레트에 풀고 하늘에 보라색 물감을 눈물방울로 떨어트린다.     곧이어 겨울이 도착하리라. 잎이 떠난 앙상한 가지들은 옛시인의 노래를 읊조리며 모진 계절을 견뎌낼 것이다. 나무들은 뿌리 깊숙이 한 점 숨겨 둔 옛사랑을 간직하며 공허한 세월을 추스른다. 새날은 기다리는 자에게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수레바퀴로 팔랑개비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만이’더는 쪼개지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며 과거는 현재에 대한 기억으로, 미래는 현재에 대한 기대로 존재한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을 새긴다. 사는 게 춥고 힘들어도 겨울은 계절의 끝이 아니라 기다리며 인고하는 자에게는 소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항금시대에 부와 명예로 유명세를 떨친 최고의 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그림은 ‘붓과 기교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제라드 드 레이싱의 찬사처럼 렘브란트는 붓, 분필, 에칭용 조각칼을 사용하여 인간의 형상과 감정을 정교하게 묘사했다. 렘브란트(1606-1669) 작품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8-1669)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들을 감싸 안은 아버지 눈은 초점이 흐려 있다.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올 그 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이 짓물러 멀게 된 것일까.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 장님이 된 걸까. 사랑은 눈이 멀기까지 누구를 기다리는 간절한 믿음이다. 아버지의 왼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 손이고 오른쪽은 매끈한 여자 손이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통해 화해와 용서, 치유가 의미를 담고 있다. 아들의 샌들 한쪽은 망가지고 거의 벗겨져 있다. 왼발은 상처투성이다.     아버지 품을 떠나 얼마나 지독한 가난에 찌들었는지, 죄수같이 삭발한 머리는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이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의 강을 건넌 뒤 신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돌아온 탕자’와 다름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렘브란트는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났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성공한 화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신분상승의 허영심과 자신의 ‘명성’에 도취해 저택을 구입하는 등 낭비벽이 심해지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태어난 자녀들이 연이어 죽는 불행이 연속되고 결국 파산해 빈민촌으로 쫓겨난 렘브란트는 6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렘브란트는 ‘돌아온 탕자에서 빛과 어둠을 통해’우리는 탕자의 길을 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Havenly(천국 같은)’로 전시회 제목을 정했다. 화랑 경영하며 30년 동안 남의 작품 파느라 그림을 못 그렸다. 돈독이 오르면 예술혼이 죽는다. 천국 가는 길이 있다면, 그 길섶에서 눈이 멀도록 불태워 사랑할 수 있다면, 불멸의 아름다움 담아 작별 인사하는 대평원의 나무들처럼, 탕자의 눈동자 속에서 우주는  찬란하게 빛날 것이므로.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탕자 마술사 렘브란트 가을 나무 어머니 생각

2022-11-27

[이 아침에] 엄마의 오래된 인연

친정아버지가 소천하셔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찾았다. 엄마는 삼선교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의대생 두 명에게 문간방을 세 놓았다고 한다. 지금의 내 딸보다 훨씬 어린 앳된 새댁인 엄마가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고 졸업식에 참석한 사진이다. 군의관을 마친 두 분은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고 항공 우편으로 얼마 동안 소식을 전하다가 우리 가족이 삼선교를 떠나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쾌활, 씩씩하던 엄마는 아버지 없는 집에서 유튜브나 보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여러 차례 가르쳐드려도 소용이 없더니 ‘임영웅’ 팬이 되며 전화기 사용이 능숙해졌다. 쪼그라든 이 노인이 빛바랜 사진 속 어 여쁜 새댁이라니, 세월이 야속하다.   60년이 다 되어가니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잘 살겠지, 엄마가 궁금해하신다. 내가 두 분을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하니 엄마가 활짝 웃었다. 멀리 살아 항상 걱정만 끼치는 아픈 손가락인 내가 엄마 인생 갈피에 기분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메릴랜드와 테네시에 살고 계신 두 분과 통화가 되고 엄마가 미국에 오시기로 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보다 훨씬 어린 아기였던 나와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동행하기로 했다. 두 분을 만난다는 기대만으로도 엄마는 활기를 찾으셨다. 중부시장에 가서 멸치, 북어, 김 등의 건어물을 사고 명란젓을 홈쇼핑에 주문하셨다. 알록달록 고운 수세미 뜨기도 시작했다.   메릴랜드에서 80세가 넘은 연세에도 현역 정신과 의사인 K 선생님은 한인사회에서 정신건강 강연으로 이미 유명인사였다. 골프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호텔 방을 잡아주고 이틀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방학으로 집에 가 있는 동안 방세를 면제해 준 일, 화폐개혁으로 쌀을 못 사 먹을 때 엄마가 쌀을 준 일이 고마웠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이지만 마음이 따스해지는 훈훈한 추억담은 물자가 흔한 요즘보다 많으니 아이러니하다. “충청도 시골 출신이 이 정도 성공했으니 만족합니다.” K 선생님의 긍정적 마음가짐이 행복의 비결인 듯하다.   마침 자녀들을 방문하러 LA에 오시는 테네시의 H 선생님 부부까지 만나기 위해 엄마는 나와 LA로 오셨다. 엄마의 졸업선물인 미제 면도기를 미국에 가져와 오래도록 사용했다고 말씀하시며 엄마와 내 선물을 챙겨오셨다. 작년에 은퇴 후 아프리카 선교에 힘쓰고 계신단다.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으나 남가주로 이사를 계획하신다니 훗날을 기약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인의 삶을 살며 한국인의 성실과 끈기를 알리며 민간외교를 톡톡히 하신 두 분이다. 구글 덕분에 멋진 인생 선배 두 분을 만났다. 한국 방문했을 때 두 분 모두 삼선교 옛집을 방문했다 하니 나도 다음번 한국 여행 때 찾아 가보려 한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엄마의 오랜 인연을 찾아 두 분을 만난 것이 기적 같다.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효도를 한 기분이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이 악용되기도 하지만, 옛날을 추억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훈훈한 만남을 가지니 인터넷의 순기능이 고맙다. 최숙희 / 자유기고가이 아침에 엄마 인연 새댁인 엄마 엄마 인생 삼선교 한옥

2022-11-27

[이 아침에] 나와주세요. 세로토닌

요즘 계절성 우울증(seasonal depression)으로 힘들다는 내담자들이 많아졌다. 사실 매년 이맘때면 듣는 고정 멘트다. 따뜻한 봄이나 여름보다, 가을 겨울은 우울한 사람들에겐 아주 힘든 계절이다. 우울한 기분에는 세로토닌이 답이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은,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감정을 총괄 지휘하여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성취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물질이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대부분이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유도, 세로토닌이 세포로 너무 빨리 흡수되어 우울한 기분 통제가 안 되는 것을 억제해주는 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더라도,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첫째, 햇볕이다. 계절성 우울증이 일조량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니, 결국 답은 햇볕이다. 햇볕의 감소는 바로 세로토닌 분비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망막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뇌를 자극하여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고 하니, 시간 되는 대로 햇볕 따뜻할 때 밖에서 30분이라도 햇볕을 쬐자. 직장 스케줄 등으로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햇볕 쬘 때 피부에서 합성되는 비타민 D를 복용하자! 비타민 D의 중요성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비타민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비타민 D라고 많은 의사는 말한다. 나도 내담자들에게 반드시 비타민 D 복용을 권한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방에는 비타민 D 램프를 설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세로토닌 분비에 도움되는 것은 운동이다. 우리 뇌는 85%가 수분으로 되어 있어 마치 물에 둥둥 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걷거나 몸을 움직이면 뇌도 움직여지면서 운동이 되어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된다. 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 5분 후부터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여 15분 후에는 최고도에 오른다고 한다. 이왕이면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무나 물 등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자연 속에서 걷는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래서 오늘 날씨가 좀 쌀쌀하지만, 햇빛 좋은 두 시 허드슨 강가에서 걷자는 초대에 용감히 응했다.   마지막으로는 생활방식이다. 친구 하나는 피검사 결과가 매번 A 플러스다. 아주 부럽다! 그런데도 당뇨약 먹는 나보다 더 건강하게 음식을 먹는다. 누가 당뇨 있는 사람이지 헷갈린다. 나, 이 점 정말 반성해야 한다. 건강한 식습관은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세로토닌 분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도 도움된다고 하는데, 나 같은 커피 중독자는 오히려 커피를 못 마시면급 우울해지고, 머리는 빠개질 듯 아프면서 인생 살아갈 힘이 없어지니, 커피는 계속 마시는 거로. 또한 긍정적 사람에게 긍정적 말을 들을 때도 뇌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뇌간이 자극돼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우울도 전염되고 불안도 전염된다. 우울할수록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기를 권한다.     우리 기분 조절에 이렇게 중요한 세로토닌의 합성능력을 저하하는 주범은 무얼까? 바로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를 잡기 위해서는, 예쁜 노트를 장만하여 매일 10가지 감사 제목 써나가기를 추천한다. 스트레스의 천적은 바로 감사이기 때문이다. 해 본 사람은 모두 체험하는 감사의 파워, 우리 모두 감사가 풍성하여 우울함이 들어올 틈이 없는 추수감사절이 되었기를 기원한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이 아침에 세로토닌 세로토닌 분비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계절성 우울증

2022-11-25

[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함축하는 라틴어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라고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정의 한다. 로마의 개선 장군들이 마음에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메멘토 모리는, 너무 늦기 전에 미리 행동에 옮김으로써 제한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는 일종의 경구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잃거나 존경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밀려오는 허무감과 함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숙명성에 앞에 스스로 무기력해진다. 메멘토 모리가 함축하는 바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심리적인 불안·초조를 불러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도 한다. 그 말의 개념은 최선을 다해서 제한된 시간을 보다 유효하게 이용하는데 주안이 있으므로, 하찮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식하고 암시하는 모탈리티 큐(Mortality Cu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저승사자(Grim Reaper)의 그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영상, 죽음을 상기시키는 목걸이, 반지, 주화, 문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일 메멘토 모리의 개념에서 얻는 것이 득보다 해가 더 크다면 그 사용을 피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우회적으로 말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대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순간을 즐기자는 뜻의 카르피 다이엠(Carpe Diem)이나 욜로(Yolo)의 개념을 병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설파해 왔다. 그들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의 생명은 덧없고 하찮은 것이다(Human lives are brief and trivial)’이다. 철학자이며 로마 황제이기도 한 마커스 오릴리어스(Marcus Aurelius,121-180)가 명상록(Meditations)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죽어서 6피트 지하에 잠들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A. Seneca)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매일 균형 잡힌 삶을 살라고 했다. 삶의 가장 큰 실수는 오늘의 미완 상태를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오늘의 일을 마무리 짓는 삶을 매일 계속한다면 불필요한 시간이란 없을 것이라고 그는 갈파한다.     메멘토 모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문학작품에 사용한 사람은 셰익스피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삶에 대한 태도는, 50년 후에 죽는다고 할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30분 후의 죽음과 반세기 후의 죽음은 본질에서 다른 것일까.     기독교의 구약 성서 전도서(Ecclesiastes 1장)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며 인생의 허무함을 일러준다. 불교에서도 마음 챙김으로써 죽음을 깨닫게 된다는 개념의 마라나사티(Maranasati)를 가르친다. 종교에 따라서 표현은 다를 수 있어도 본질에서 죽음에 대한 기본 개념은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만일 메멘토 그림 죽음

2022-11-24

[이 아침에] ‘감사 여행’을 떠나자

저널리스트인 제이컵스(A. J. Jacobs)가 추수감사절 저녁에 온 가족이 모인 식탁을 앞에 두고 기도했다. “신선한 토마토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토마토를 길러주신 농부, 가게까지 운반해 주신 트럭 운전사, 마켓에서 계산해 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기도가 끝나자 옆에서 듣고 있던 10살 난 아들이 물었다. “그런데 아빠! 아빠가 감사하다고 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 아파트에 살지도 않는데 아빠의 말을 어떻게 들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이컵스의 질문에 아들이 답했다. “아빠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직접 찾아가서 고맙다고 해야죠.” 아들의 말에 영감을 얻은 제이컵스는 고마운 이들을 직접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삶의 여러 부분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범위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들을 직접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감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노력과 기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두를 재배한 농부와 운반하는 트럭 기사는 물론, 트럭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든 사람들, 원두 배달 트럭이 사용하는 개솔린을 생산하는 정유 회사의 사장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 외에도 컵을 만드는 회사, 뜨거운 음료가 담긴 종이컵에 씌우는 뚜껑을 개발한 사람, 커피 원두의 해충 방제약을 만드는 사람, 건축가, 생물학자, 디자이너, 광부, 위생검사관, 철강 공장 근로자, 수도국 직원에서부터 원두 구매 담당자와 바리스타에 이르기까지 커피 한 잔이 그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수고한 이들을 찾다 보니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이컵스는 ‘감사 여행’의 경험을 “생스 어 싸우전드(Thanks a Thousand)”라는 제목의 책에 담았다. ‘천 명에게 감사하기’라는 뜻이다. 수개월에 걸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커피 한 잔은 예전의 커피가 아니었다. 이 커피 한 잔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의 손길이 더해졌는지 알기에 아침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드리는 그의 기도에는 진실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했다면, 나는 오늘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이렇게 노래한다. ‘이 커피 한 잔을 마시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리도 땀을 흘렸나 보다’.   아침 신문이 내 삶의 자리에 찾아오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가 있었을까? 취재와 편집을 거쳐 인쇄와 배달까지 모두가 편히 잠자리에 든 시간에도 쉼 없이 움직인 이들의 수고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내 삶에 주어진 어느 것 하나 그냥 된 것이 없다. 모두 누군가의 희생과 땀과 헌신의 결과물이다. 제이컵스처럼 직접 찾아가서 감사하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으로나마 감사하며 ‘감사 여행’을 떠나자. ‘감사 여행’을 떠난 이들에게는 영혼을 가득 채우는 행복감이라는 귀한 선물이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감사 여행 감사 여행 추수감사절 저녁 아침 커피

2022-11-23

[이 아침에] 외딴 바닷가 소년이 원한 것

한밤중 멕시코 오지의 바닷가에 홀로 남아 캠핑 동료들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앞에 펼쳐진 밤바다는 교교한 달빛으로 아름답게 빛나지만 차가운 바닷바람과 인적없는 벌판에 혼자라는 무서움만 남는다. 마을에서 3마일 떨어진 이곳, 오직 오두막집 한 채가 있을 뿐이다. 인기척에 부스스 일어난 11세 소년 엔리케가  스스럼 없이 처음 본 내 손을 잡는다. 인적 없는 곳에서 무척이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 후부터 이곳을  방문할때마다 외로운 소년과의 만남을 이어 같다. 소년은 항상 흐트러진 머리, 찢어진 운동화에 남루한 옷차림, 그리고 웃음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 매일 조개를 캐서 생계를 돕고 있었다.     그의 때뭇지 않은 순수함이 안쓰러워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몇 번을 주저하더니 학교 갈 때 쓸 백팩이 갖고 싶다고 한다. 딸이 쓰던 백팩을 딸의 허락을 받고 주었다.  다음날 시내 병원으로 환자를 보러 나가는 길에 엔리케가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3마일이나 떨어진 마을 학교로 가는 모습을 봤다. 다른 아이들은 다 책가방이 다 있었다.     엔리케는 가난의 부끄러움과 부러움으로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생전 처음 가방을 멘 그의 즐거운, 아니 자랑스러운 표정을 본 순간 벅찬 감정이 가슴을 채운다. 우리애겐 필요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곳에선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엔리케가 마을 아이들의 자전거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고 그에게 자전거를 갖다 주었다. 아들이 수년 전에 타다 창고에 넣어둔 것이었다. 기뻐하는 엔리케를 뒤로하고 진료를 갔다 돌아와 잠을 자려는데 텐트 밖에서 소음이 들린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자전거을 낮에는 타지 못하고 조개 캐는 일이 다 끝난 깜깜한 한밤중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을 바닷가로 데리고 가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했다. 아이들은 쉽게  친구가 되고 금세 어울려 모래로 집을 짓고, 게와 소라, 조개를 잡고 갈매기를 쫓아 달리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이 한 폭의 정겨운 그림 같았다. 아들은 엔리케와 작별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너와 엔리케의 다른 점이 무엇이지?”라고 물었다. 머뭇거리는 아들에게 “지금까지 너의 노력만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지? 단지 너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엔리케는 멕시코 오지에서 태어난 것 뿐. 이런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앞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라고 말했다. 아들이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보답의 응답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추수감사절이 다시 찾아온다. 욕망의 계절을 반성하며 변함없는 순결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정신적 재고 정리가 필요한 계절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되살리는 뜻깊은 추수감사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청원 / 내과의사이 아침에 바닷가 소년 바닷가 소년 소년 엔리케 마을 학교

2022-11-22

[이 아침에] 엄마의 오래된 인연

친정아버지가 소천하셔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찾았다. 엄마는 삼선교 한옥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의대생 두 명에게 문간방을 세 놓았다고 한다. 지금의 내 딸보다 훨씬 어린 앳된 새댁인 엄마가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고 졸업식에 참석한 사진이다. 군의관을 마친 두 분은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고 항공 우편으로 얼마 동안 소식을 전하다가 우리 가족이 삼선교를 떠나며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쾌활, 씩씩하던 엄마는 아버지 없는 집에서 유튜브나 보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여러 차례 가르쳐드려도 소용이 없더니 ‘임영웅’ 팬이 되며 전화기 사용이 능숙해졌다. 쪼그라든 이 노인이 빛바랜 사진 속 어 여쁜 새댁이라니, 세월이 야속하다.   60년이 다 되어가니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잘 살겠지, 엄마가 궁금해하신다. 내가 두 분을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하니 엄마가 활짝 웃었다. 멀리 살아 항상 걱정만 끼치는 아픈 손가락인 내가 엄마 인생 갈피에 기분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메릴랜드와 테네시에 살고 계신 두 분과 통화가 되고 엄마가 미국에 오시기로 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보다 훨씬 어린 아기였던 나와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동행하기로 했다. 두 분을 만난다는 기대만으로도 엄마는 활기를 찾으셨다. 중부시장에 가서 멸치, 북어, 김 등의 건어물을 사고 명란젓을 홈쇼핑에 주문하셨다. 알록달록 고운 수세미 뜨기도 시작했다.   메릴랜드에서 80세가 넘은 연세에도 현역 정신과 의사인 K 선생님은 한인사회에서 정신건강 강연으로 이미 유명인사였다. 골프장이 시원하게 보이는 호텔 방을 잡아주고 이틀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방학으로 집에 가 있는 동안 방세를 면제해 준 일, 화폐개혁으로 쌀을 못 사 먹을 때 엄마가 쌀을 준 일이 고마웠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이지만 마음이 따스해지는 훈훈한 추억담은 물자가 흔한 요즘보다 많으니 아이러니하다. “충청도 시골 출신이 이 정도 성공했으니 만족합니다.” K 선생님의 긍정적 마음가짐이 행복의 비결인 듯하다.   마침 자녀들을 방문하러 LA에 오시는 테네시의 H 선생님 부부까지 만나기 위해 엄마는 나와 LA로 오셨다. 엄마의 졸업선물인 미제 면도기를 미국에 가져와 오래도록 사용했다고 말씀하시며 엄마와 내 선물을 챙겨오셨다. 작년에 은퇴 후 아프리카 선교에 힘쓰고 계신단다.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으나 남가주로 이사를 계획하신다니 훗날을 기약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인의 삶을 살며 한국인의 성실과 끈기를 알리며 민간외교를 톡톡히 하신 두 분이다. 구글 덕분에 멋진 인생 선배 두 분을 만났다. 한국 방문했을 때 두 분 모두 삼선교 옛집을 방문했다 하니 나도 다음번 한국 여행 때 찾아 가보려 한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엄마의 오랜 인연을 찾아 두 분을 만난 것이 기적 같다.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효도를 한 기분이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이 악용되기도 하지만, 옛날을 추억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훈훈한 만남을 가지니 인터넷의 순기능이 고맙다.  최숙희이 아침에 엄마 인연 새댁인 엄마 엄마 인생 삼선교 한옥

2022-11-20

[이 아침에] 지역선교 탁구반

늦잠자기 최적인 일요일 아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곧장 무료함에 머리를 턴다.  오늘은 어디로 콧바람을 쐬러 갈가. 자칫 오라는데 물론 없고, 갈 곳 당연히 없으니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을 어느 교횐가를 찾아볼까 생각도 하지만 머릿속이 텅 빈 상태다.   아 그렇다. 지역사회 전도를 목적으로 교회를 일반인에게 활짝 열어서 탁구 동호회를 조성한 곳이 있다. 토요일엔 예배로 모이고 일요일엔 탁구로 모인다. 교회에서 얼굴 볼 수 없었던 교회를 찾아온 비신자들이 대상이다.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점심 준비로 부엌에서 바쁜 여자 집사님들이 서너분, 평상시 식당으로 쓰임 받던 넓은 홀에 탁구대가 네 개쯤 놓이고 구석엔 혼자 연습할 수 있는 탁구 머신까지 있다.   서로 낯이 익지 않은 비교인 내지 타 교인들이 각처에서 찾아온다. 오직 탁구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봉사하시는 교회 집사님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점심이 제공되면 함께 떡을 떼고 다시 오후 4시까지 체력 단련 겸 외로움을 삭이는 하루가 오롯이 채워진다.  물론 그중 자신이 필요한 시간만큼 충분히 즐긴 후, 각자 흩어지는 모양새라도 어딘가 미소로 나누는 눈인사가 마음에 닿는다.   횟수가 쌓이면서 낯섦은 사라지고 소소한 일상이 대화로 오가는 친숙한 분위기에 어느새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누구 하나 소슬한 가을바람에 홀로 서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곁에 이런저런 이유로 짝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 마땅한 모임에 한 발이라도 담그고 같이 어울려 보고픈 마음 굴뚝이지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려나.   어쩌면 교회 측에선 이런 분들의 갈망을 잘 알아내고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탁구 공짜로 치고 점심 대접했으니 다음 주 토요일엔 우리 교회 한 번 와 보라고 은근히 채근하는 사람 하나 없다. 그저 편하게 오셔서 운동하고, 즐겁게 시간 보내면 건강관리도 되고 마음 관리도 될 것이니 특별한 일 없으면 결석하지 말아 주십사 부탁하는 예쁜 말만 들린다.   어느새 휑하게 서늘했던 내 가슴도 훈풍으로 메워진다. 내게 채워진 어떤 것들로 나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받던 사랑이 주는 사랑이 된다면 내 마음엔 구멍 하나 없는 완벽한 기쁨이 꽉꽉 채워질 것이다.   내가 무언가가 필요할 때, 기도하지 않아도 미리 알고 채워주시는 예수님께서 허락해 주신 어느 교회 지역봉사 선교회가 마련해 놓은 따스한 사람들 만남의 장소, 탁구 동호회가 스산한 이 가을을 따스하게 시작하도록 일요일 내 늦잠을 깨워준다. 박기제 / 수필가이 아침에 지역선교 탁구반 지역선교 탁구반 교회 지역봉사 교회 집사님들

2022-11-17

[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함축하는 라틴어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라고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정의 한다. 로마의 개선 장군들이 마음에 새겼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메멘토 모리는, 너무 늦기 전에 미리 행동에 옮김으로써 제한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는 일종의 경구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잃거나 존경하던 분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밀려오는 허무감과 함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숙명성에 앞에 스스로 무기력해진다. 메멘토 모리가 함축하는 바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진다고 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심리적인 불안·초조를 불러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도 한다. 그 말의 개념은 최선을 다해서 제한된 시간을 보다 유효하게 이용하는데 주안이 있으므로, 하찮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식하고 암시하는 모탈리티 큐(Mortality Cu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저승사자(Grim Reaper)의 그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영상, 죽음을 상기시키는 목걸이, 반지, 주화, 문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일 메멘토 모리의 개념에서 얻는 것이 득보다 해가 더 크다면 그 사용을 피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우회적으로 말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대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순간을 즐기자는 뜻의 카르피 다이엠(Carpe Diem)이나 욜로(Yolo)의 개념을 병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설파해 왔다. 그들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의 생명은 덧없고 하찮은 것이다(Human lives are brief and trivial)’이다. 철학자이며 로마 황제이기도 한 마커스 오릴리어스(Marcus Aurelius,121-180)가 명상록(Meditations)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죽어서 6피트 지하에 잠들게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다른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A. Seneca)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매일 균형 잡힌 삶을 살라고 했다. 삶의 가장 큰 실수는 오늘의 미완 상태를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오늘의 일을 마무리 짓는 삶을 매일 계속한다면 불필요한 시간이란 없을 것이라고 그는 갈파한다.     메멘토 모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문학작품에 사용한 사람은 셰익스피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메멘토 모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삶에 대한 태도는, 50년 후에 죽는다고 할 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30분 후의 죽음과 반세기 후의 죽음은 본질에서 다른 것일까.     기독교의 구약 성서 전도서(Ecclesiastes 1장)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며 인생의 허무함을 일러준다. 불교에서도 마음 챙김으로써 죽음을 깨닫게 된다는 개념의 마라나사티(Maranasati)를 가르친다. 종교에 따라서 표현은 다를 수 있어도 본질에서 죽음에 대한 기본 개념은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만일 메멘토 그림 죽음

2022-11-15

[이 아침에] 울 엄마

몇 년 전 ‘울 엄마’를 주제로 책을 만든 적이 있다. ‘울 엄마’는 우리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어머니,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말인가.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세월의 흐름도 공간의 부피도 아랑 곳 없이 사랑과 그리움이 서린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계신다.     책에 글을 쓴 이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보다 불효를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어머니 하면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어머니 하면 마음이 찡하는 울림이 온다고 했다. 그렇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생명이시다. 만물의 근원이시다. 어머니는 우리의 빛이시다. 글을 쓴 이들은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는 밥을 안 드시고도 항상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항상 굶으셨다. 어머니는 자식의 아픔을 대신하려고 했다. 자식은 어머니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새 자식들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연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보게 된다.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낭거미가 있다. 염낭거미는 모성이 강한 거미로 알려져 있다. 암컷은 번식기가 되면 나뭇잎을 말아 작은 주머니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알을 낳는다. 어미 거미는 새끼거미가 부화하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준다. 그 희생적인 사랑은 어미만이 베풀 수 있는 위대함이다. 어미의 몸을 먹고 자린 새끼거미들은 둥지를 뚫고 나와 바람 따라 제 갈 길 찾아 흩어져 산다. 자식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고 조용히 사라져 가는 염낭거미는 우리 어머니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논우렁이가 있다. 우렁이는 자기 몸 안에 알을 낳고 부하가 된 새끼들은 제 어미의 살을 파먹고 성장한다. 어미 우렁이는 한 점의 살도 남김이 없이 새끼들에게 다 주고 빈껍데기로 흐르는 물길 따라 둥둥 떠내려간다고 한다. 그런 새끼 우렁이도 어미가 되어 알을 낳으면 같으리라 생각된다.   가물치는 우렁이와는 반대의 삶을 산다. 가물치는 수천 개의 알을 낳고 장님이 된다고 한다. 장님 가물치는 먹이 활동을 할 수 없어 굶주림을 참아야 하는데 이때쯤 알에서 부하가 되어 나온 수천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 가물치가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자진해서 어미 입으로 들어가 먹이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얼마나 애틋한 내용인가.   결국 어미 가물치는 새끼 덕에 다시 눈을 뜬다고 한다. 수천의 새끼 중에 생존 가물치 비율은 10%에 불과하고 90%가 어미를 위해 희생을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리워하면 뭐하리, 우리는 항상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하면서 산다. 김일홍 / 소설가이 아침에 엄마 새끼 우렁이도 우리 어머니 어머니 얼마

2022-11-14

[이 아침에] 깍깍 까치가 울면

까치가 운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이웃 지붕 꼭대기에서 까치 세 마리가 깍깍 소리 내 운다. 검은색 부리와 굽은 등이 비단결처럼 광택이 난다. 어깨와 긴 날개깃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하얗다. 오늘은 반가운 사람이 오시려나.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바라며 까치는 저리도 목청 높여 울고 있는 것일까.   까치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새다. 예로부터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까치는 좋은 소식이 올 길조(吉鳥)로 여겨진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동무들과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라고 종달새처럼 노래 불렀다. 설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건 때때옷 입고 차례상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르는데 원래는 ‘작은 설’이라는 말이다. 국어학자의 말에 따르면 ‘까치 설’은 ‘작은 설’이라는 뜻을 가진 ‘아치 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작다’는 뜻의 ‘아치’에서 파생된 말이 세월에 따라 ‘까치’로 변형돼 ‘까치설’로 정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외로우면 모든 것이 그리움이 된다. 작은 몸짓, 스쳐 가는 미소, 다정한 눈길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불타는 사랑이 떠나간 자리는 이별의 상흔이 화석처럼 굳어있다. 목매어 불러도 한번 등 돌린 사람은 돌아서지 않는다. 다시 만날 기약이 영영 사라졌다 해도 못다 한 사랑은 그리움의 생채기로 남는다.     떠나오면 잊혀진다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흔적마저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민들레 홀씨로 흩어진다 믿었다. 미국 온 뒤 까치가 우는 날엔 메일 박스로 달려갔다. 혹여나 바람결에 날라 올 그리운 사람들이 보낸 편지나 엽서를 기다렸다. 그리움은 그리워하는 사람의 몫이다. 까치가 울지 않는 날에도 우체부가 오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움이 서럽게 가슴 저미는 날엔 우체국 앞을 서성였다. 오늘 안 오면 내일은 사랑의 엽서가 날아 올 거야. 날 영영 잊어버리지는 않겠지. 사랑의 말들이 적힌 편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기다림은 가슴에 작은 모닥불 지핀다. 기다림은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가 만드신 조각 이불처럼 삶을 따스하게 감싼다.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 번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날이다, 그 날은 까마귀나 까치를 볼 수 없다. 칠석날을 지낸 까치는 머리털이 벗겨져 있는데 오작교 다리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이제는 외로움으로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까치가 울어도 까치가 울지 않아도 멍 때리며 메일 박스 곁을 서성이지 않는다. 외로움도 그리움도 서러움까지도 남은 인생 동안 견뎌내야 할 내 인생의 숙제다.     이젠 우체국 앞에서 바보처럼 헤매지 않는다. 돌아오지 못할 시간을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제의 물레방아에서 흘러간 물이다. 지나간 시간보다 다가올 날들에 열중하며 덜 아프게, 눈물 없이 살기로 한다.     첫사랑보다 진하고 애틋하며, 그리움보다 깊고 오묘한, 영혼의 밑바닥을 울리는 방울 소리로, 아직 살아 움직이는 뼈마디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까치가 울어도, 울지 않아도 살아있는 동안 그리움의 날개 접지 않으리라. 이기희 / Q7 Fine Art 대표·작가이 아침에 까치 까치 까치설날 오작교 다리 메일 박스

2022-11-13

[이 아침에]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는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가 80여 년을 살며 배우고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손주들에게 전하는 21통의 편지를 묶은 책이다.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용기가 지나치면 오만이 되고, 용기가 너무 부족하면 두려움에 시달린다. 자부심이 지나치면 허세가 되고, 자부심이 너무 없으면 자기 비하가 된다.”   “우리가 삶에서 알아야 할 많은 것은 학습되는 것이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삶은 마라톤과 닮았다고 말한다.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달리며 그 자체에 만족하여야 한다. 동료와 함께 달릴 수도 있고, 혼자 달릴 수도 있다. 마라톤 대회는 매년 열린다. 올해 실패했다면 내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삶은 장거리 경주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면 모두가 승자다.     사냥꾼이었던 우리 조상은 욕심이 없었다. 그들은 필요할 때만 일을 했다. 식량을 비축하지 않았으며, 배가 고프면 사냥을 나갔다. 한주에 15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하게 된 것은 돈이 생겨나고부터다. 돈은 쉽게 저장이 가능하고 다양한 물건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악의 근원은 돈에 대한 지나친 사랑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의 많고 적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라는 말이 아니다. 얼마를 버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생활 수준을 소득에 맞게 조절해야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돈을 탐내면 영혼이 파괴된다.     어른이 자녀들에게 해주는 말 중에 잘못된 말은 드물다. 대부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삶의 지혜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받아들이는 젊은이는 드물다. 그들의 귀에는 간섭이며 잔소리로 들리기 마련이다.     학교는커녕 한글조차 배우지 못했던 외할머니가 하시던 말씀도 지금 되새겨보면 철학적이며 진리다. “십 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도 크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 거지도 손 볼 날이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등등.     나는 조부모는커녕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물론 손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글로 써 놓았다. 3년째 일기도 매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며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잊히고 잘못 기억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나가는 말, 또는 명절이면 늘 듣는 녹음기 소리 같은 잔소리가 아닌 사랑을 담아 잘 정리한 글로 전해주면 좋을 것 같다. 듣고 싶을 때 (준비되었을 때) 꺼내 보면 훨씬 마음에 와 닿을 것이며, 더구나 세상을 떠난 부모나 조부모의 글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겠나.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독서와 함께 후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요. 멋지게 잘 쓴 글보다는 지나친 과장 없이 평소 말하듯이 쓴 글이 더 호소력이 있답니다. 고동운 / 전 공무원이 아침에 생활 수준 마라톤 대회 가을 독서

2022-11-11

[이 아침에]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되어 충청북도와 경기도를 거쳐 서해로 흐르는 물줄기를 한강(漢江)이라고 부른다. 한강을 따라 말없이 흐르는 강물은 누군가에게는 넘실대는 추억이기도 하고,어떤 이에게는 흘려보내고 싶은 눈물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슬픔을 이 강물에 씻어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강을 따라 때로는 낭만을 품은 채, 때로는 아픔을 머금은 채 흐르는 강물이 서울을 가로지를 때면 수십 개의 다리를 지난다. 풍경이 멋진 다리도 있고, 출퇴근 때 막히기로 소문난 다리도 있다. 오래전 사고의 아픔을 간직한 채 서 있는 다리도 있다.     한강 다리는 서울의 남과 북을 잇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이 생을 마감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지난 4년 반 동안 한강 교량 20개에서 발생한 투신사고는 총 2590건에 달하고 투신으로 인한 사망자도 61명이나 된다. 홀로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길래 그 높은 곳에서 그 아득한 물속으로 뛰어들 모진 생각을 했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한강 다리 위에 선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감정이 공존한다. ‘정말 죽고 싶다’라는 마음과 ‘정말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정말 살고 싶다’라는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한강 교량에 ‘SOS 생명의 전화’라는 이름의 상담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20개 교량에 설치된 총 75대의 초록색 ‘SOS 생명의 전화’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365일 24시간 전화 상담을 운영하며 긴급상황이 감지되면 119구조대 및 경찰과 연계해 생명 구조 작업을 한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SOS 생명의 전화’ 부스에 적힌 글귀다.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문구지만,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에게는 마지막 순간에 붙잡을 수 있는 생명의 끈이다. 그 끈의 다른 한쪽을 붙잡고 있는 이들은 자원봉사상담원들이다. 낯선 이의 내일을 밝히기 위해 때로는 밤을 새워 전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수고가 없다면 생명의 전화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을 하는 생명의 전화가 미국에도 있다. 미국에서는 전국 어디서나 ‘988’만 누르면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전국 자살예방 라이프 라인’에 연결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영어에 서툰 한인 이민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 중에는 낯선 문화와 언어의 경계에 가로막힌 채 삭막한 자리로 내몰린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인 이민자들의 고민과 애환을 듣기 위해 지난 24년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LA 생명의 전화’의 자원봉사 상담원들이다. 지금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866)365-0691혹은 (213)480-0691로 전화하자.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이야기 상담 전화기 한강 다리 sos 생명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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