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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땅 위의 위로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낸다고 3박 4일 빌린 맘모스 빌리지의 콘도에서 하룻밤만 자고 내려왔다. 호흡곤란이 와서 한숨도 못 잤다. 고산병이었다. 몇 년 전 수술 직후 약한 몸으로 갔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숨쉬기가 어려웠다. 하루 정도 지나면 적응된다는데 고통의 밤을 다시 견디기 어려워서 남편을 졸라 하산했다.   마침 둘째 날 아침 스노보드를 타던 남편도 과하게 욕심을 내다가 타박상을 입어 갈비뼈에 통증이 왔다. 의좋게 내려올 수 있어 덜 미안했다. 아들 내외와 후배 내외의 근심을 뒤로한 채 내려왔다. 평소 잘 맞지 않는 우리 부부인데 나는 고산병으로 호흡이 어렵고 남편은 갈비뼈 통증으로 호흡이 어렵다니 하이파이브를 해도 좋을 만큼 반가워서 웃었다. 살다가 이렇게 맞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아들이 8살 때부터 맘모스 스키장에 드나들었으니 햇수로는 30년이다. 남편과 아들은 해마다 연 회원권(Year Pass)까지 구입해 자주 드나들고, 아들은 방학 땐 맘모스 스키장에서 알바를 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연습하러 오던 올림픽 영웅 클로이 김의 어린 시절도 옆에서 봤다. 평창 올림픽 땐 클로이 김을 응원하러 전지적 팬의 시점으로 한국도 다녀왔다.   이런 즐거운 추억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일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남편이 조종하는 세스나를 타고 스키장 인근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 비행장에 내렸다. 갈 때는 무사했는데 돌아올 땐 강풍으로 프로펠러가 활주로 가장자리에 있던 사인 박스(sign box)를 치는 사고가 났다. 비행기는 보험으로 수리했고 다친 사람도 없는 사고였지만 그 안에 타고 있던 내게는 큰일 날뻔한 비행사고 아닌가? 그 뒤로는 맘모스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별로 가고 싶지가 않은 장소가 되었다.   아마 이번에 호흡이 어려운 것도 몸의 컨디션에 정신적인 것도 합쳐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휴가를 망치고 돌아와 주일이 되어 교회를 가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계속 머리가 아파 남편만 혼자 가게 되었다.   종일 약 먹고 누워있는데 교회에 다녀온 남편이 돈을 건넨다. 좋아서 벌떡 일어났는데 많지 않은 액수다. “애걔 이게 뭐야?” 큰돈이 아니라 살짝 실망했더니 사연인 즉, 교회의 J권사님이 당신이 아파 교회에 못 왔다고 하니 맛있는 것 사 먹고 얼른 나으라고 주시더란다.   순간 마음이 바뀌어 뭉클해졌다. 85세인 권사님의 마음이 마치 우리 엄마 같아서. 30달러에 아픈 머리가 씻은 듯 나았으니 역시 나는 물욕에 어두운 세상적인 사람 맞다. 산에서 얻은 병이 땅에서 돈으로 위로받았다. 나는 언제나 철이 들고 점잖은 노인이 되려나. 어느새 배달 맛집 리스트를 뒤적이는 나.이 아침에 이정아 수필가 맘모스 스키장 맘모스 빌리지 아들 내외

2023-11-29

[이 아침에] 가을 편지

내 나이 6~7살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소아마비를 치료하러 을지로의 메디컬 센터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외할아버지와 병원에 갔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가야 했다. 할아버지는 맹장 수술한 자리에 탈장이 생겨 무거운 것을 오래 들지 못하셨다. 나를 벤치에 내려놓고 모퉁이를 돌아 약국으로 약을 타러 가셨다. 곧 온다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혹시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훌쩍이다 잠시 후,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는데,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누나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훌쩍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나를 덥석 팔에 안고 약국으로 갔다. 마침 약을 찾아오던 할아버지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간호사 누나의 얼굴은커녕 모습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살다가 문득 그 일은 생각난다. 6~7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5년가량 낫는다는 기약도 없는 재활치료를 받아 왔고, 나름 지쳐 있었다. 버려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때 그녀가 준 것은 포근한 위로였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직장도 필요하고 돈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따스한 위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연 60년을 살아오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따스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었나.     며칠 사이에 계절이 확 바뀌었다. 오렌지 색으로 물들었던 마당의 감나무도 며칠 전 비와 간밤의 바람에 절반이나 옷을 벗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난 세월을 돌아볼 것이다.     나이가 드니 더 자주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이 세상에 있지 않거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졌다. 카드 한장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세상사다.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도움과 위로는 카드빚과는 다르다. 카드빚이야 월말에 정산하면 그만이지만, 내가 받은 도움과 위로의 보답이 꼭 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싶다.     받은 것만큼, 여유가 되면 더 많이, 주변의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갚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아마 누군가에게 받았던 것을 나누어 준 것이리라.     이런 도움과 위로가 굳이 비싸고 커야 할 필요는 없다. 작은 것이 더 간절하고 소중하다. 슬프고 힘들 때 누군가 건네주는 따스한 말 한마디, 손글씨로 쓴 카드나 편지 한장이 전해주는 위로는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누군가에게 쓰는 가을 편지가 아닐까 싶다. 편지지에 사연 몇 자 적어 말린 낙엽 하나 붙여 보내면, 받는 이보다 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푸근해질 것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가을 편지 가을 편지 편지 한장 간호사 누나

2023-11-22

[이 아침에] 노랑나비

마른 나뭇가지에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움튼다.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꽃봉오리 주변에 노랑나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늘하늘 춤추는 화사한 나비들은 노란 꽃의 영혼이 피어남을 알리는 전령사일까.     싸한 가을바람 속 우리 집 화단에서는 감사의 계절을 맞아 나비와 꽃의 한바탕 축제가 막을 올리는 것 같다. 요염한 노란 꽃 위에 노랑나비들의 흥겨운 춤사위는 눈부시게 현란하다. 화사하게 단장을 마친 노란 꽃은, 웨딩마치에 따라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새신부같이 수줍어하면서 조심스레 꽃을 피워간다.    해가 떠오르면 환하게 벙그는 꽃은 나의 희망이고 기도이다. 내일은 어느 곳에서 예쁜 꽃이 고운 마음을 열까 조바심하면서 기다린다. 꽃들은 나의 바람을 눈치챈 듯, 앙증맞은 꽃망울을 하나씩 터트리며 자신만의 세상을 황홀하게 열어간다. 노란 꽃들이 줄지어 환상적인 세상을 펼치자, 부지런한 나비들은 기다렸다는 듯 분주해진다. 푸른 하늘에 간단없이 직선과 곡선을 그어가며 현란해지는 나비들의 춤사위는, 신명 난 사물놀이꾼의 몸짓같이 흥겹기만 하다..     나비는 어디에서 태어나 영혼과 육신을 이곳에 나투는 것일까. 할딱할딱 온종일 날갯짓을 하면서 꽃마다 점을 찍는 나비.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부르던 ‘날비(낣이)’가 ‘나비’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나비는 행운이나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날개의 색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정해지는데, 노랑나비는 좋은 뜻으로, 하얀 나비는 죽음의 의미로 통한다. 가냘픈 날개에는 삶의 축복과 죽음의 어두움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숙명처럼 나비도 삶을 영위하면서 죽어가고, 죽음 속에 삶이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 보면 삶과 죽음은 한 몸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나비의 변신은 다양하다. 화사한 아침 온몸을 단장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돋보이려는 요염한 여인으로 변했다가, 아른거리는 날갯짓으로 아장아장 걸음을 떼는 앙증맞은 어린아이로도 변신하는가 하면, 암술과 수술을 맺어주는 극성스러운 중매쟁이 아줌마로도 되었다가, 애벌레에서 파격적으로 하늘을 비상하는 나비가 되기도 하며  결단력 있는 힘센 남자로도 변신하기도 한다.     애벌레의 몸을 뚫고 불끈 하늘로 비상하는 나비의 영혼. 영구 불멸의 혼은 하늘에 올라 신의 경지까지 등극하는지, 여리디여린 날개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무덤가의 죽음과 세상의 삶을 이어 주기까지 한다.     가냘프고 여리지만 다양한 변신으로 불가해한 힘을 뿜어내는 노랑나비에 마음이 머문다. 문득 오늘 하루 노랑나비가 되고 싶어진다. 세상일을 모두 내려놓고, 한 마리의 노랑나비로 변신하여 피안과 차안을 넘나들며 나르바나의 세상에 흠뻑 빠지고픈 꿈을 꾼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노랑나비 중매쟁이 아줌마 꽃봉오리 주변 피안과 차안

2023-11-21

[이 아침에] 달려라! 하루 우라라

2003년 12월 14일, 일본의 고우치현에 있는 고우치 경마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일류 경주마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서 밀려났거나 은퇴 직전의 경주마, 혹은 삼류 경주마가 참가하는 최하급 지방 경마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 온 단체 관람객 수천 명과 100여 명의 취재진까지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들의 관심은 작고 늙은 경주마에게 집중되었다.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는 ‘하루 우라라’라는 이름의 경주마였다. ‘하루 우라라’라는 ‘화창한 봄날’이라는 뜻이지만, 경주마로서 ‘하루 우라라’는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1등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라고 여겨지는 경마에서 매번 열심히 달리기만 할 뿐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우라라’는 태어날 때부터 발목이 가늘고, 몸집은 작았다. 다른 말에 비해 폐활량도 떨어져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성격도 예민해 경주 전에는 여물도 먹지 않아 정작 경주에 나가면 힘을 못 썼다. 네 살을 전성기로 치는 경주마에게 여덟 살인 ‘하루 우라라’는 은퇴할 때를 한참이나 지난 노쇠한 말이었다.     많은 사람이 경마장에 모인 그 날은 ‘하루 우라라’가 100번째 경주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생애 첫 우승이냐? 아니면 100번째 패배냐?’ 많은 관심과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하루 우라라’는 그날도 어김없이 우승에 실패했다. 비록 우승은 못 했지만,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은 100번 연속해서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달린 ‘하루 우라라’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매번 달리지만 우승 한 번 못 하는 ‘하루 우라라’를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회사를 위해 평생 성실히 일했지만,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들이 ‘하루 우라라’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고, 말기 암 환자도 ‘하루 우라라’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하루 우라라’는 경제 위기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꼴찌 말의 사연이 보도되면서 폐장 위기에 있던 고우치 경마장이 활기를 되찾았다. 1등만 박수받는 세상, 성공이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달릴 때마다 꼴찌를 도맡아 하는 이 말을 응원하기 위해 경마장을 찾았다. 결국 ‘하루 우라라’는 은퇴할 때까지 113번 경주에 나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승은 못 했지만,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라고 부추기는 세상에서, 더 빨리 달리라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채찍질하는 세상에서 이민자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성실과 인내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인정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될 때가 많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런 이들에게 ‘하루 우라라’는 이렇게 말한다. “꼴찌면 어때, 후회 없이 달려왔잖아. 그러면 된 거야.”     우리는 오늘도 세상이라는 경주장으로 나간다. 꼴찌면 어떤가? 달릴 수 있는 멋진 세상이 있지 않은가? 거기서 또 한 번 힘껏 달려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삼류 경주마가 일류 경주마들 정작 경주

2023-11-19

[이 아침에] 정신이 건강한 시니어가 되려면

최근 지병인 방광암이 재발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심한 혈뇨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두 번씩이나 들락거리며 두 번의 수술을 했다. 방광암은 높은 재발률을 보인다고 하는데, 나도 2018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육체적 건강은 물론이고 노후의 정신 건강 또한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의사인 아들이 나의 정신적 웰빙(Well-Being) 상태를 살피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최근에 내가 겪은 경험을 글로 옮겨 보라는 동기 부여를 하는 연유도 그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나이 90을 앞둔 아비의 정신 건강을 한번 챙겨 보는 속마음을 알 만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Sound mind in a sound body)’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더욱이 노년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WHO(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게 60세 이상 노년층의 약 15%는 여러 가지 정신 질환(치매 포함)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Depression)은 많은 시니어가 겪고 있지만 조기 치료를 소홀히 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시니어들의 웬만한 불안·초조 증상은 병으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간 시니어 정신 건강 분야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고 무엇보다 본인이 정신 건강상의 이상 징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신 건강 문제는 매우 다양해 사람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1.기력, 기분 식욕의 변화 2.적극적이지 못한 따분한 느낌 3.수면 부족 또는 과도한 수면 4.집중력 저하 및 불안감 5.지나친 근심과 압박감 6.노여움 또는 공격적 행위와 같은 과민 반응 7.두통 또는 소화 불량 8.과도한 음주나 약물 복용 9.비애감 또는 절망감 10.자살 충동 11.위험한 행위 12.강박 관념 13.가족이나 타인에 대한 부당한 간섭 행위 14.환청, 환각, 환시 증상 등이 꼽힌다.   전국시니어협회(National Institute of Aging)에 의하면 우울증은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1.활발한 육체 활동 2.건강한 식단 3.충분한 수면 4.친지나 가족과의 친교 5.정신 건강에 관한 정보 교환 등이 시니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활 방식이다. 대체로 상식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평소 정신건강 관리에 유념하는 건전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 가라 하네’. 고려말 나옹선사(1320-1376)의 시로 시름을 달래 본다. 시름겹게 이어진 나의 지난 삶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주어졌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얼굴에는 후회 없는 미소를 머금고 가고 싶다.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시니어 정신 정신 건강상 육체적 건강 정신적 웰빙

2023-11-14

[이 아침에] 어느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밥상

얼마 전 한국 언론에도 소개된 45세 일본 남성 ‘절대퇴사자’의 밥상. 직장 생활 20년간 ‘짠내 나는’ 식단으로만 생활하며 9630만엔(약 63만 달러)을 모았다는 그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저녁 메뉴는 밥과 매실 장아찌 1개, 계란말이가 전부였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월세 3만엔 정도의 낡은 공동주택에서 최소한의 물건만으로 생활한다. ‘절대퇴사자’는 돈을 악착같이 모아 퇴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아이디. 취미 생활에 쓰는 돈은 당연히 ‘0’이다.   그는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지며 최악의 취업난이 찾아왔을 당시 사회에 나온 ‘취업빙하기 세대’다. 현재 40~50대 초반의 이들을 일본에선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으로도 부른다. 그는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을 졸업하던 2002년 유효구인배율이 0.51로, 50군데가 넘는 회사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유효구인배율은 구직자 1명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수를 뜻한다. 내년 일본 대학 졸업자들의 유효구인배율은 1.71이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는 월급도 적고 복지도 형편없었지만 이직은 꿈도 못 꿨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직장이 없는 친구들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대로 된 직장에 안착하지 못한 이 세대는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가난하다. 집도 사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나이지만 40대 임금의 중간값은 30대보다 낮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40대 가구의 절반 이상은 저축액이 200만엔 이하다. 취업 실패로 집안에 틀어박혔다가 수십 년 그 생활을 이어가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도 40만 명에 이른다.   새삼 이들의 오늘을 떠올린 건 연일 바닥을 찍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지지율 때문이다. 일본도 물가가 많이 올랐다지만 한국과 비교해도 아직 괜찮은 수준 같은데 “살기 힘들다” “정부는 뭐하는 거냐”는 비판이 드높다. 한 일본인 친구는 “일본 중년은 정말 가난하거든”이라고도 했다. ‘절대퇴사자’ 같은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계란값·채소값 상승은 치명적일 터. 최근 TV아사히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가 “고물가로 가계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고, 그 대책으로 식비를 줄이고 있다는 답변이 48.7%였다.   한국에서도 취업 실패 등에 좌절해 고립·은둔하는 청년이 51만 명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청년기에 시작된 은둔이 중년·노년까지 이어져 끼니를 걱정하는 빈곤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이영희 / 도쿄 특파원이 아침에 제너레이션 로스트 로스트 제너레이션 직장 생활 취미 생활

2023-11-13

[이 아침에] 이런들 어떠하리

벌써 11월. 달력이 이제 두 장 남았다.     딸이 떼어낸 시월 달력을 보면서 지난달에는 왜 이렇게 할리데이가 많았냐고 물었다. 달력에 쓰인 검은 숫자는 학교에 가는 날이요, 빨간 숫자는 공휴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리라. 딸이 맞다. 집에 있는 달력은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 10월 9일 Columbus Day (콜럼버스 데이)가  모두 공휴일로 표시되어 있다.   우린 이런 세상에서 산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명절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명절 때면 친절하게 한국에 어떤 물건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보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광고들이 등장한다.     두 문화를 어우르면서 사는 우리. 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다. 이것은 평상시 쓰는 언어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에 살지만, 영어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한인들의 대화 중에도 영어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살면서 계속 듣거나 사용하는 낱말은 한국말로 구태여 번역하여 말하기보다 편하게 영어를 인용한다. 듣는 사람에게도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쓰는 영어를 써야 뜻이 통하기 때문이리라. 또한 스페니시도 자주 들린다.   한번은 딸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집 근처에서 집이 무슨 색깔이냐고 물었더니, 대뜸 “똥집 옆이에요”라고 했다. 똥집? 닭똥집도 아니고 똥집은 처음 듣는 말이라서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손질하지 않은 집이라 대답했다. 허물어져 가는 집이 왜 ‘똥집’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해석이 기발했다.   폐차 일보 직전의 차는 똥차, 안 예쁜 강아지는 똥강아지 아니면 똥개, 화난 엄마가 날 부를 때 쓰는 말 똥고집, 그래서 허물어진 집은 똥집.   뭐, 나름대로 논리가 정연해서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도 ‘똥집’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어 교육이라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한국어 학교가 전부인 아이들. 그 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특유의 논리를 전개해 가며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소통하는 것을 들으니, 한편으론 기특했다.     교회의 한 다락방 이름은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영어가 제2의 언어)이 아닌 KSL(Korean as a Second Language, 한국어가 제2의 언어)이다. 전형적인 2세들이 모이는 그룹이다. 이름에서부터 위트가 있다.   우리의 2세와 3세, 4세들에게 한국어가 이런 방식으로라도 전파되니 기쁜 일이다. 동전을 돈전이라고 발음하고 돈이니까 돈전이 맞는다고 우기는 아이들도 있기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 이방원이 말 한번 잘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language 한국어 한국어 학교 한국어 실력

2023-11-07

[이 아침에] 대책없는 날의 길찿기

영감은 휙 달아난다. 번개처럼 떠올랐다가 날파리처럼 눈 깜박할 사이 사라진다. 원래 영감(靈感, Inspiration)은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감정을 말한다. 영감은 이지적인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언가가 직감적으로 인지되는 심리적 상태다.     영감은 예술가나 철학자, 과학자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형태로 얻는 착상이나 번개같이 번쩍이는 아이디어로 사용된다. 영감은 떠올랐다가 휘리릭 빨리 달아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남겨놓아야 재생이 가능하다. 영감은 고요한 새벽이나 주변에 방해자가 없을 때 번뜩인다. 호수에 번지는 작은 파문이나, 혜성에서 떨어져 나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별똥별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소문난 늦잠 꾸러기에서 새벽형 인간으로 변신해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새벽은 별빛과 달빛, 일출이 교차하며 기묘한 색깔들을 수채화처럼 하늘바다에 푼다. 영혼의 바다에선 조각난 언어들이 날파리처럼 둥둥 떠다닌다. 재빨리 낚아채 메모해 두지 않으면 영영 기억에서 사라진다. 메모할 곳이 없으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단어를 계속 외우는데 아차! 집 문을 열자마자 날파리처럼 날아가 버린다.     우리 집은 곳곳에 스티커나 메모지가 즐비하다. 번개처럼 떠올랐다 사라지는 착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펜과 종이는 영감의 생명줄이다. 한 단어, 한 줄이라도 적어두면 물레를 잣듯 생각의 실마리를 뽑아 한필의 명주를 짤 수 있다.     나이 들면서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검은색 줄이 왔다 갔다 했다. 화들짝 놀라 안과에 갔다. ‘날파리증후군’으로 의학적 명칭은 비문증으로 진단이 났다. 원인은 노화로 인한 유리체의 액화 현상 때문인데 처음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무시하고 생활하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날파리나 검은 점이 없다고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의사 말 믿고 신경을  끄니 정말이지 날파리처럼 오락가락하던 점이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고 살 수 있도록 두뇌를  재편성하면 사는 게 수월해질까.   글쓰기는 대책 없는 날의 길 찾기다.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새벽 안개가 앞을 가로막을 때, 절망이 먹물처럼 화선지를 적실 때, 유년의 풍금 소리가 건반 위에서 멈출 때, 끝이 날카로운 초승달이 가슴을 난도질할 때,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망연자실 하루를 견디기 힘들 때, 자음과 모음은 날파리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는 서로 기대며 체온으로 추위를 견딘다. 너무 가까이 대면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고 떨어지면 추워서 상처 주지 않는 따뜻한 거리를 찾아야 한다. 고슴도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따뜻한 거리를 찾아낸다.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힘든 어려운 상황을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사실 고슴도치는 스스로 가시를 세우고 눕힐 수 있으므로 서로 몸을 기댄다고 찔릴 일은 없다.     날파리가 별들 사이로 이리저리 떠도는 밤, 눈을 부릎 뜨고 명징한 언어를 찾아 나선다. 그대 가까이 가지 못한다 해도 절망하지 않기로 한다. 대책 없는 날의 생의 길 찾기는 끝이 없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날파리가 별들 고슴도치 딜레마 겨울밤 고슴도치

2023-11-01

[이 아침에] 야자수의 가을 연가

샌타모니카 해변가로 나섰다. 쪽빛 하늘 아래 한가한 구름을 바라보면서 가을맞이를 하고 싶어서다. 줄지어 선 바다 주변의 야자수가 이국적인 정취를 뿜어내고 있다.    바람결에 가을의 외로움을 호소하는 듯한 야자수는 왠지 우수에 젖어 보인다. 계절 탓이리라. 가을이면 모르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듯 낯설게 서 있는 야자수에 계절의 정취가 깃들어서인지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어찌하여 야자수는 고향인 열대지방을 떠나 이곳 샌타모니카 해변에 정주하게 된 것일까. 낯설고 외진 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야자수가, 지나온 세월의 나이테만큼이나 무수한 사연을 담고 있는 듯싶다. 자신의 생을 올곧게 세우고, 앞으로는 탁 트인 푸른 바다와 뒤로는 청산을 품으며 세월 속에서 점차 숙성되어 갔으리라.      딱딱한 줄기같이 튼실한 야자수이지만, 새로운 계절을 맞으며 싸한 가을바람에 가슴이 여려졌는지 불어오는 바람결에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것 같다. 아니면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린 자신의 삶을 붉은 저녁노을과 함께 되돌아보며 반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자수에 가을이 다가왔음이 감지되는 것은 여름내 푸르기만 하던 잎이 하나씩 떨어질 때이다. 쌓여 온 한 해의 후회와 회한들을 낙엽처럼 떨구며 묵었던 삶의 찌꺼기들을 비워내고 있는 야자수. 어쩌면 나무는 하나씩 잎을 지울 때마다 누군가에게 가을 편지를 쓰고 있을 것도 같다. 둔하고 세련된 편지는 아니지만, 삶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뜨겁던 여름의 무상함과 덧없이 흐르는 삶을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편지이리라.      싸늘한 해변 바람을 외롭게 맞이하면서 편지 끝에는 쓸쓸하고 가슴 시린 삶이지만, 생은 그래도 살아 볼 만큼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가을이면 외로워지는 것은, 생명체 자체가 홀로 고독하게 걸어가야만 하는 숙명이기 때문임을 이야기해준다. 또 야자수는 낙엽이 지면 푸르던 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해의 꿈이 발효되고 숙성되어 내면이 더 깊이 성숙하여 간다며 격려하고 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은 갈대꽃같이 갈라져 있다. 그래서인가, 야자수 잎에서는 갈대꽃 같은 노랫소리가 들린다.     “모질고 힘든 생이지만 삶을 사랑합니다. 힘들고 고되기에 그 자체가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답습니다. 생은 자기만이 창조해가는 유일한 자신만의 예술이지만, 어떠한 생이라도, 삶은 곱게 그려진 한 편의 수채화입니다.”     갈대를 닮은 야자수의 노래는 쪽빛 가을바람과 함께 울려 퍼진다. 그리하여 갈대의 꽃말인 ‘깊은 애정’은 삶을 사모하는 야자수를 통해 가을 연가가 되어 산과 바다에 메아리친다.     낯선 이국땅에서 머나먼 고국이 있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어 들던 나도, 어느새 야자수 나무가 되어 쪽빛 가을 연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야자수 가을 가을 연가 야자수 나무 쪽빛 가을바람

2023-10-31

[이 아침에] 모기향 피운 예식장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셨다. 비싼 항공료를 부담하고 오신 축하사절(?)들께 보답을 해야겠기에 곰곰 생각해봤다.   15박 머무는 손님들을 위해 숙소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에어비앤비를 잡고, 틈틈이 일일 관광은 전문업체에 의뢰했다. 행사 마친 후엔 멕시코 크루즈를 함께 다녀왔다. 4박 5일의 짧은 크루즈여서 말만 멕시코 크루즈이지, 멕시코와 미국 국경의 엔세나다만 밟고 오는 멕시코 분위기만 잠시 느끼는 여행이었다.   롱비치항을 출발해 카탈리나섬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엔세나다항에 내려 관광지 몇 곳과 와이너리를 휭 돌아보고 오는 싱겁기 짝이 없는 4박 5일이었으나 남편은 남편대로 시누이와 함께 긴 이야기를, 나는 오랜 친구와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혹은 타주에서 일가친척이 와도 서로 바빠 밥이나 한번 먹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번 크루즈는 뜻밖에 좋았다. 떠나기 전엔 기항지 코스가 별로여서 불만이었으나 볼 게 많지 않아 오히려 대화할 시간이 길었다.   배 안에서 삼시 세끼를 제공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매일 공동 공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어 그동안 세월의 간격이나 그리움, 앙금 등이 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많이 웃고 많이 말하고 많이 즐거워서 모두가 행복했다. 손님 중 한 분인 친구의 남편은 중국 보이차 전문가인데, 여행용 다기를 준비해 오셔서 보름 내내 심지어 크루즈 배 안에서도 팽주 역할을 한 덕분에 호사했다.   한국 손님들이 온 가장 큰 이유였던 혼례식은 구불구불 산골짝에서 했는데 하필 올해 들어 가장 더운 이틀에 걸쳐 리허설과 예식을 했다. 아들과 며늘아기가 전적으로 진행하고 부모는 손님처럼 참석한 터라 그저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날씨를 탓할 수도 없고 수십 계단 계곡을 내려가는 식장도 이제 와 어쩌랴. 산속에 모기가 극성이라 리허설 동영상엔 손으로 모기 쫓기 바쁜 모습만 찍혔다. 다음날 예식에는 엽렵한 사돈 마님이 모기 퇴치 스프레이와 한국에서 공수한 모기향을 피워서 향내 그윽한 결혼식을 했다.   옥에 티라면 아침부터 준비하고 한복을 떨쳐입은 신랑의 엄마가 땡볕에서 기다리다가 지쳐 일사병으로 신부 대기실에 널브러져 누운 사건이었다. 한복은 참 좋다. 댓 자로 뻗어도 가릴 데 다 가려주는 품위 있는 옷이란 걸 이번에 체험했다.   사모관대 신랑에 원삼 족두리의 신부는 폐백에서 밤 15개, 대추 15개 득템에 뜻도 모르고 희희낙락이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모기향 예식장 멕시코 크루즈 멕시코 분위기 이번 크루즈

2023-10-22

[이 아침에] 가여운 영혼

주일 아침, 성당 미사에 참석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노인들뿐이다. 나만 해도 50대에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 이제 60 중반을 넘었다. 인구의 고령화는 교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늘 보이던 노인이 안 보이면 혹시 아픈 것이 아닌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게 된다. 몸이 아파 못 나오던 교우는 몇 주 후면 다시 나타나지만, 다투고 삐져서 떠난 교우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다들 고집을 가지고 산다. 자신의 기억과 생각만이 옳으며 남들이 틀렸다고 굳게 믿는다. 노인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라. 대개는 일방통행이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간혹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걸 트집 잡아 언쟁이 벌어진다.     나는 4년째 매일 5년 일기장에 일기를 쓴다. 4번째 칸에 오늘 일기를 쓰며 지난 3년 치 일기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내 기억이 틀린 것이다. 4년의 기억이 그러할진대 50-60년 된 기억이야 어떻겠는가.     나이 먹은 사람은 살아온 날이 많으니 당연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도 많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모두 좋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거나 바로 잡지 않고 지나친 것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이를 앞세워 나의 언행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문제다.     나 역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며 산다. 올해 대학에 간 조카 녀석을 데리고 살며 늘 나이를 앞세워 내 주장을 펼쳤다. 서로 의견과 생각이 다르면 마치 내 방식만이 성공 방정식인 양 고집을 부렸다. 60년 살아 굳어진 나를 고치기보다는 이제 겨우 10여 년 산 네가 바뀌기가 쉽지 않겠느냐는 이상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반대가 맞다. 60여 년 살아오며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나는 오늘 옳다고 믿었던 것이 훗날 틀린 것이 될 수도 있으며, 마치 세상이 무너질듯한 절망의 순간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 세상사라는 것이 누가 가르쳐 준다고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는 것이다. 세상사 절대적인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늘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이해하고 양보하는 것이 맞다.     나는 요즘 학교에 가서 미술 클래스를 듣는다. 매주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제를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사물의 크기도 다르고 색상도 다르며 붓질도 다르다.     세상사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눈에 까맣게 보이는 것도 다른 이에게는 잿빛으로 비출 수 있고,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이는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속한 단체는 모두 작은 공동체다. 뜻을 같이하는 가족인 셈이다. 일가친척도 다투고 소원해지면 남이 된다. 짐 싸 들고 집을 나가면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부부는 다투고도 한방에서 자야 하며 가족은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도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한다.     나이 들어 몸에 힘 빠지고 마음도 흔들리는 우리는 모두 가여운 영혼들이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삽시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영혼 다들 고집 미술 클래스 오늘 일기

2023-10-18

[이 아침에] 사막에서 만난 순백(純白)

대륙을 섭렵하는 묘미의 으뜸은 대자연의 진수와 만나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 드넓은 평야와 우람한 협곡, 그 안에서 나름의 형태로 존재하는 온갖 사물들의 의미를 음미하고 일체감을 얻을 때의 깨달음과 기쁨은 가히 희열에 가깝다. 감정은 맑고 순수하며, 성찰의 계제에 세상의 어지러움과 사악함이 파고들 틈새는 없지 싶다.       1980년대 미국에 온 이후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101번 고속도로를 기회 있을 때마다 수없이 애용했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근래에는 5번 고속도로를 더 선호한다. 몇 시간씩 달려도 동쪽으로는 끝없는 광야가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희끄무레한 화강암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줄곧 따라온다. 뜨거운 햇볕에 메말라 죽은 풀들, 생물들이 살 것 같지 않은 박토, 구불구불 이어지는 구릉, 용암이 융기한 날카로운 바위산과 계곡은 원시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차를 세우고 들여다보면 뜨거운 돌과 건초 사이로 이름 모를 벌레들이 스멀거리고, 선인장이 앙증스러운 꽃잎으로 반기며, 스프링클러로 연명하는 과수원에는 다람쥐가 쭈뼛거린다.     광대한 황야와 태산을 바라보고 있거나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력을 만날 때면 그 장엄함과 신비함에 매료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새삼 반추해 보게 된다. 매료되는 순간에는 마음이 백지처럼 깨끗하다. 세상살이의 난삽함은 모두 지워지고, 앞에 펼쳐진 자연의 현실과 진실만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존 스타인벡의 명작 ‘분노의 포도’의 마지막 무대인 베이커스필드 갈림길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자동차 연료를 채우고 나서 요기를 하러 바로 옆의 ‘인 앤 아웃(IN-N-OUT)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점심때라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기다렸다. 언뜻 한 백인 부부가 음식을 들고 줄 너머 반대편으로 건너가려고 틈을 찾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좁은 공간임에도 얼른 뒷걸음질 쳐 간신히 길을 열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친절하시군요.” “천만에요. 당연하지요.”  정중한 감사 표시에 맞게 미소를 띠며 깍듯이 답례했다.  그들의 평소 삶의 자세가 매우 바르고 성실하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졌다. 흔한 인사지만 양측의 표정과 음성에도 진정성이 묻어 있었다.  차례가 되어 음식을 받아 아내가 잡아 놓고 있는 자리에 앉는데 아까 그 백인 부부의 옆자리였다. 그들이 파안대소하며 먼저 반겼다. 우리는 자연히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서로 여행에 관해 물었고, 여러 이야기 중에 자신들이 UC머세드 교수라는 소개가 나왔다. 낮 가리지 않고 소박한 열린 자세의 향기가 맑디맑고 향긋하게 전해졌다. 아마도 캠퍼스와 자연에서 형성된 청아한 성정이리라.     우리는 미소가 가득한 환담을 하고 교차 포옹으로 작별했다. 떠나는 그 부부의 뒷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눈빛이 형형한 두 사람의 자태가 자연의 진수가 조각한 형상이라고 여겨졌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막과 산맥을 배경으로 그 형상을 그린다면 어떤 명화가 나올까?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이 아침에 순백 사막 백인 부부 존재 의미 베이커스필드 갈림길

2023-10-16

[이 아침에] 너무 채우면 터진다

자식 농사가 제일 힘들다. 밭농사는 한 해를 망치면 다음 해를 기대할 수 있다. 자식 농사는 기약할 수 없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三歲之習 至于八十)’는 말은 어릴 때 몸에 밴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백세시대지만 예전에는 평균나이 60을 넘기지 못했다. 칠십세 고희를 맞는 사람이 드물었으니 여든은 이미 죽은 나이, 세 살 버릇은 죽어도 못 고친다는 말이다.   뉴저지 사는 딸 부부가 아이 둘 데리고 다녀갔다. 손녀는 6살이라서 말귀도 알아듣고 사람 구실을 하는데 3살짜리 손자는 제멋대로다. 잠시 상냥하게 굴기에 대견해서 칭찬하려는 찰나 본색이 드러나 사고를 친다.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데 인내심 부족인지 내 머리는 빙글빙글 돈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지, 무슨 말로 교양있게 타일러야 하는지 헷갈린다.     애들은 보통 돌이 지나면 걷기 시작하고 세 살이 돼 말을 하는데 그 때부터  고집 부리고 원하는 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울거나 떼를 쓴다. 손주는 내 자식이 아니라서 마음 놓고 훈계도 못 한다.     요즘 애들은 어른 열 명보다 더 똑똑하고 모르는 게 없다. 영어가 딸리는 할머니가 간단한 게임조차 못해 허둥대면 유치원생 손녀가 슬쩍 손가락으로 짚어준다. 딸이 친정에 오면 어릴 적 소꿉친구들이 다들 결혼해 애 데리고 만나는데 이건 완전 디즈니랜드 놀이공원 온 것보다 더 난리방구통이다.     내 새끼나 남의 새끼나 세 살짜리 인간들은 한결같이 말썽꾸러기에 제멋대로다. 손자는 작은 일에도 삐침을 잘 타서 “누굴 닮아서 저러냐” 했더니 딸 친구가 “크리스 삼촌 닮았어요”한다. 크리스는 내 아들! 유전자에 문제 있나 얼핏 생각나 “아냐. 크리스가 얼마나 잰틀맨인데”라고 했더니 다 같이 성토, 한글학교에서 삐침 잘 타기로 일등선수였다는 보고다.     손녀는 하는 짓이 수준을 능가해 ‘천재’ 아님 ‘여우’라고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고만한 여자아이들은 한결같이 ‘아인슈타인’아니면 감당이 안되는 ‘백여우’다.     신세대 어머니들은 인내심도 기막혀서 조목조목 설명하고 가르치고 맞장구를 치는데 누가 애인지 엄마인지 분별이 안된다.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게 저토록 충실하게 가르치면 학교 가서 무엇을 배우나. 잠시 교편생활을 한 과거를 떠올리며 씁쓸해진다. 애들은 백지처럼 깨끗하고 마음대로 뛰놀았다.   작은 주머니를 너무 꽉 채우면 터진다. 어릴 적 동무들과 주머니놀이 할 때 공중에 던진 내 주머니는 땅에 떨어지면 실이 터져 콩이 튀어나왔다. 옥이 언니가 내 주머니에 콩을 너무 많이 넣어 꿰 맺기 때문이다.     뮤지컬 공연 물랭루주의 서두에서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화려한 장난감 없어도, 스스로 한 일에 책임지고, 넘어져도 일어나는 용기를 가르치는 것이 사랑의 참모습이다. 사랑은 달콤하지만 넘치면 상한다.     진정한 사랑의 참모습과 가치를 심어주면 세 살 버릇은 나이 들면 저절로 교정된다. 아이는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따라 배운다. 롤모델이 올바르게 살면 철없는 아이들도 큰 나무로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자식 농사 크리스 삼촌 유치원생 손녀

2023-10-15

[이 아침에] 일출봉에서 본 일몰 풍경

제주도에 다녀왔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표선에 내렸다.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성산포가 멀지 않은 곳이다. 바다가 지척이다. 하긴 섬 어느 곳인들 바다가 지척 아닌 곳이 있겠는가. 스님이 마중 나오셨다. 광주 대각사 주지 스님, 수년 전 이곳에 명상원을 개원하여 수행 중인 분이다.     저녁나절 스님과 같이 성산포 일출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일출봉에서 보는 일몰 광경이 어떨까. 입장료를 받고 있다. 지역 주민과 노인은 할인을 해주는 모양이다.      일출봉 오르는 길이 아기자기하다. 가파른 길이 나무계단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 멀리 성산포 읍이 보인다. 숨이 차다. 오르는 길을 멈추고 잠깐 눈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조개구름이 가득하다. 아름답다. 고개 숙이고 앞만 보고 올랐다면 놓칠 뻔했던 절경이다. 해가 설핏해서일까. 내려가는 사람은 많은데 오르는 사람은 드물다.      일출봉 정상에 올랐다. 드론 포함 일출봉 내 촬영을 금한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무엇 때문일까.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해 뜨는 장면으로 유명한 성산 일출봉에서 일몰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까는 조개구름이 일렁였는데, 지금은 붉은 기운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순간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온통 붉게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이다. 장관이다. 동쪽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온종일 걸어간 해님이 안식을 위해 잠시 몸을 숨기는 순간이다. 세상이 서서히 어둠 속에 잠기고 있다. 휴식을 취한 다음 내일 아침 동쪽 어느 바다나 산 위로 불끈 솟아오를 것이다.      빛은 가고 어둠이 내린다. 어둠이 깔리면 인간은 반항을 시작한다. 눈에 불을 켜고 어둠을 이기려고 한다. 보라, 저렇게 한집 또 한집 어둠을 비집고 등불이 일어서지 않는가.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불빛은 인간이 어둠을 이기고 있는 현장이다.      어둠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불씨를 만들어 냈다. 깜깜한 세상을 몰아내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불을 훔친 신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던가. 프로메테우스 덕택에 저렇게 성산포 읍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인간이 신을 이겨내고 있는 현장이다. 멀리 섬 하나가 보인다. 우도라고 한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바다 가운데 어선 몇 척이 떠 있다. 집어등을 켜놓고 고기를 잡는 모양이다.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고기를 유혹한다. 찰나에 생사가 결정된다. 세상은 서로를 유혹하면서 살아간다. 꽃이 벌 나비를, 장사꾼이 손님을, 정치인은 유권자를…. 어두워져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어둠이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저들뿐이랴. 빛과 어둠은 늘 함께한다. 세상의 이치다.      계단을 더듬어 천천히 내려왔다. 깜깜하다. 10여 미터 떨어진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이다. 제주 첫날 일출로 유명한 성산 일출봉에서 일몰 풍경을 만끽했다. 앞으로는 ‘성산 일몰봉’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파도의 숨결이 잔잔해지는 시간. 바다가 잠잠하면 세상이 잠잠하다. 바다는 그걸 모른다.  바다만 모른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일출봉 일몰 성산포 일출봉 성산 일출봉 일출봉 정상

2023-10-11

[이 아침에] 1000년 중국 황실 최고의 보물은?

삼겹살 한 점과 배추 한 포기, 10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왕조(송,원,명,청)의 보물 70만 점 중 사람들이 뽑은 최고 인기 품목이 겨우 요거라고?   육형석과 취옥백채. 어른 손바닥 2/3 크기의 고기 모양 옥돌, 그리고 비취색 옥으로 만든 백채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가면 꼭 보아야 할 보물이라고 한다. 이 두 물건이 있는 전시실은 항상 관람객이 빼곡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전시실 마냥.   육형석은 먹음직스러운 동파육처럼 보인다. 송나라 때 문장가 소동파가 만들기 시작했다는 푹 쫄인 돼지고기. 쫀득한 껍질과 밑에 붙은 부드러운 살코기, 대륙의 여유가 느껴지는 요리다. 돌로 돼지 껍질의 질감과 미감까지 만들어 낸 걸작은 걸작이다.     취옥백채. 백채는 배추. 한국에서 보는 통통한 김장용 배추는 아니다. 홀쭉한 복초이 비슷하다. 아래쪽은 하얀색 ,그리고 위쪽은 진초록이다. 하얀 쪽은 줄기, 그리고 초록색 부분은 잎사귀. 잎새에는 여치와 귀뚜라미까지 새겨져 있다. 살짝 데쳐서 고추장 찍어 먹고 싶을 만큼 사실적이다.     육형석은 청나라 황제가 가지고 놀던 물건이라고 한다. 아마도 장난기가 심했던 건륭제가 밤참을 먹고 싶을 때 환관에게 슬쩍 보여주던 것이 아닐까?  중국 시대극을 보면 중국 역사상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는 명군 강희제나 그의 손자 건륭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취옥백채, 이것은 청나라 말기 슬픈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소품이다. 청나라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황제 광서제, 그는 황후 이외에 두 명의 비가 있었다. 그 중 한명 근비(瑾妃)가 혼수로 가져온 물건 중의 하나라는 설이 있다. 근비의 역사적 의미는 그것뿐.   광서제가 실제 사랑했던 여인은 진비(珍妃)다. 근비의 배다른 동생이다. 33년을 황제의 자리에 있었지만 실권이 없었던 광서제는 진비에게 “내가 청나라의 황제인데 너 하나를 못 지키겠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인지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중국의 최고 실권자 서태후는 진비를 우물에 빠뜨려 죽여버린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서태후와 광서제가 베이징을 버리고 서안으로 피난 갈 때 일이다. 광서제를 따라가겠다고 고집하던 진비는 우물 속으로 던져진다. 당시 24살. 지금도 자금성 한 구석에 그 우물과 그 슬픈 기록이 남아있다.     서태후는 중국 역사상 3대 악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광서제에게는 이모이자, 백모, 그리고 처 고모(광서제가 싫어했던 황후의 고모)도 된다. 서태후는 자기 아들 동치제가 후사가 없이 죽자 자신의 섭정을 연장하기 위해 어린 광서제를 아들로 입양한다. 그리고 광서제의 어머니로서 섭정.  죽을 때까지 50여 년을 중국의 최고 실권자로 군림한다.     서태후 밑에서 광서제는 기를 펴지 못한다. 개화파들과 한 번 중국의 운명을 걸고 서태후에게 대들다가 실패한 후 유폐 생활을 하다가 39세에 독살당한다. 1908년 그가 죽고 이틀 후 서태후도 죽는다. 서태후가 마지막 한 일은 광서제 이복동생의 아들 부의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만든 것이었다. 서태후와 광서가 죽고 3년 만에 청나라가 망한다.   비취백채는 역사의 그 은밀한 현장에 있었다. 그 사연들은 죽은 이의 혼백처럼 다 흩어지고 돌멩이 하나만 후세인들의 호기심대상으로 남아있다. 오늘도 청나라 황실의 삼겹살 한 점과 배추 한 포기를 감상하기 위한 인파가 밀린다. 나도 그중의 하나.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중국 황실 황제 광서제 광서제 이복동생 청나라 황제

2023-10-08

[이 아침에] 남자의 보험

TV 채널을 돌리다가 눈에 확 띄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다. 이마에 주름 세 줄이 깊이 팬 남자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 KBS에서 방영한 ‘남자여, 늙은 남자여’라는 다큐다.     요즘 들어 부쩍 칼럼이나 소설, 영화에 시니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예전에는 조용히 세월만 흘리고 살던 시니어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목소리가 커져 이제 주류가 되었다는 뜻일까. 시대를 지탱하는 주류 세대가 노년층이 되었다는 뜻일까. 나 역시 청년기는 이미 떠나보낸 지 오래고 장년기까지 흘러간 처지이고 보니 ‘늙음’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손수건을 적시는 남자의 눈물을 지나칠 수 없어 화면을 고정했다.      변두리 쪽방촌에서 홀로 살아가는 남자는 자신이 노년에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20년간 공장장으로 일했지만 기계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본인의 기술이 필요 없어져 결국 밀려났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기에 그는 가족에게 얹혀사는 구박 덩어리로 전락하였다. 돈만 벌어다 주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인 줄 알고 가족과의 소통에 무심했던 결과는 어려울 때 서로 보듬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젊어서 누리던 가부장의 권리는 더 이상 용납이 되지 않고 이혼으로 이어졌다. 그는 막강한 권위로 아내와 아이들의 대장 노릇만 하며 살아왔는데 큰소리치며 대우를 받았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사회적 지위는 물론 가장의 위치마저 박탈되었다며 한숨이다. “돈 못 버는 사람은 아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눈물을 닦는다.     남자의 자탄(自歎)에 대해 여자도 할 말이 많다. 남편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는 그 생각이 문제라고. 독박 육아와 살림 남편의 무관심과 잦은 술자리 등에 지친 아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가족을 위해 밥 해주는 여자, 애 키우는 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죠.” 몇 명의 젊은 여자들이 찻잔을 앞에 두고 한마디씩 한다.     아내의 입장으로서 가장 이혼하고 싶을 때는 어떤 이유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질 때라고 한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는 아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젊어서 와이프에게 잘 해두면 늙어서 호강한다니까. 한 여자가 농담처럼 말하고는 깔깔 웃는다.     결론은 그렇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연민의 정을 쌓는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것은 은퇴나 경제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젊을 때부터 열정과 에너지를 밖으로만 쏟을 것이 아니라 부인에게도 나누어주는 것은 사랑의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같다. 그러면 사업에 실패했을 때나 퇴직 후, 노년에 그 보험이 효력을 발휘한다. “내가 불리할 것 같으니까 전략과 전술을 바꾼 거지요. 히히히” 젊었을 때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을 복창시키며 가족에게 군림했다는 남자가 잔뜩 쌓인 빨래를 개키며 하는 말이다. 이제 50대인 남자는 벌써 시대의 조류를 읽고 보험금을 열심히 붓는 중이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남자 보험 권위로 아내 하늘 아내 살림 남편

2023-10-05

[이 아침에] 카레와 김치찌개의 불편한 동거

지금은 한국에 사는 어느 분이 오래전 미국에서 유학할 때 이야기다. 한국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롭게 공부할 때,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인도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던 인도 학생 둘이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머물 곳이 필요했다.   자신도 가난한 유학생이지만,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인도 학생들을 돕기 위해 한국 유학생이 자기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자고 손을 내밀었다. 잠잘 곳 없는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마음으로 이들을 불러들였지만, 그때부터 카레와 김치찌개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한국 학생에게는 카레 냄새가 인내력의 시험장이었고, 비록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집주인의 김치찌개 냄새는 인도 학생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하루는 한국 학생과 인도 학생들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인도 학생들이 밥을 카레에 버무려 조몰락거리다 까무잡잡한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는 모습에 한국 학생은 그만 밥맛이 떨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도 학생들을 집에 들인 사람도 자기고, 이왕 참기로 했으니 조금만 더 참자며 두 눈을 질끈 감고는 큼지막한 숟가락으로 김치찌개를 떠서 먹을 때였다. “너희 한국 사람들은 정말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으로 음식을 먹는구나.” 인도 학생의 갑작스러운 말에 하마터면 김치찌개가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린가? 손으로 밥을 주워 먹는 사람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품위 있게 음식을 떠서 먹는 사람에게 할 말인가? 그것도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 어떻게 감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 사람이 왜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지 따져 묻자, 인도 학생들이 조목조목 이유를 댔다.     첫째, 김치찌개처럼 뜨거운 음식을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입을 데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인도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의 온도를  재고, 필요하면 손으로 만져서 적당히 식혀 먹으니 얼마나 합리적이냐고 했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음식의 질감을 느끼지 못한 채 허겁지겁 먹기에 바쁘다고 하면서, 밥알과 카레가 만나서 일으키는 그 부드럽고 오묘한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먹는 인도 사람들의 예술적인 식사법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야만적으로 먹는다고 했다.   셋째, 한국 사람들이 식사 때마다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이전에 틀림없이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것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입에 들어갔던 것을 도로 자기 입에 넣을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인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숟가락인 자기 손가락을 사용하기에 위생적이라고 했다.     카레와 김치찌개만 불편한 동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한 사람은 춥다고 옷을 껴입고, 어떤 이는 부채질을 하면서 불편한 동거를 한다.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사람과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한집에 사는 것도 불편한 동거다.   사람들은 불편한 동거인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세상 사람이 다 나와 똑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누군가에는 불편한 동거인이다. 불편하지만 서로 참으며 살다 보면 정도 들고 불편함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불편한 동거인끼리 서로 보듬고 살아가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김치찌개 카레 한국 유학생 김치찌개 냄새 한국 학생

2023-10-04

[이 아침에] 늦은 오후의 모놀로그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창밖으로 해가 길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스케줄이 없다. 내친김에 T.J.맥스도 갔고 한인 마켓에 가서 장도 한 보따리 보고 왔는데도 햇빛은 아직도 강렬하다.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고 TV를 켜니 새로운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고 전에 하던 드라마와 영화를 재방송하고 있다. 그렇다고 심심하다고 바쁜 친구에게 전화하기 망설여지는 오늘.     매일 오는 카톡도 조용해서, 꽃이나 나무 그림, 커피잔을 배경으로 한 “오늘도 행복하세요”, 아니면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주로 귓등으로 흘려듣고 보는 문자 메시지조차 그립다.     기온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고 간간이 비도 몇 번 내리더니 집 앞에 있는 돌배나무에 꽃이 피었다. 봄에 하얀 눈송이 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인데. 흡사 지난봄에 미처 개화하지 못한 꽃을 지금 피워대는 것 같았다. 나무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간직했다가 원할 때 꺼내서 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속이 상하고 해결 방법이 없는 사건을 기억에서 꺼내 곱씹으려 했으나,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에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아 아깝다. 차라리 이런 자투리 시간을 보자기에 고이 싸서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좋겠다.     짐 크로스가 부른 ‘Time in a bottle(병 속의 시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만약 병 속에 시간을 모을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영원함이 지나갈 때까지 하루하루를 저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물처럼 아껴두었다가 당신과 함께 보내는 데 쓰고 싶습니다’. 시간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쓰고 싶다는 소망. 지금 나는 이 가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세상만사가 내 손아귀에 있는 느낌이 들 때, 구름을 걷는 느낌이 들 때, 장미꽃 위에 맺힌 이슬을 볼 때, 아니면 시험을 볼 때, 마감 시간에 쫓길 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때, 소중히 보관한 시간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풀어서 쓸 수 있다면.   아니면, 우울할 때, 세상에서 시달릴 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잊히지 않는 상처가 올라올 때, 그런 시간을 꽁꽁 묶어 영원히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이런 글이 있다. ‘당신이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떤 곡식이 자랄지, 어떤 곡식이 나지 않을지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씨앗이라니. 역시 대가다. 그가 성큼 옆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어느덧 해는 잦아들고 있다. 잠자리가 나비보다 눈에 더 뜨이는 오늘. 나는 돌배나무 꽃잎 위에 앉아 있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모놀로그 자투리 시간 마감 시간 돌배나무 꽃잎

2023-10-03

[이 아침에] 그림 공부

40년 만에 대학(LAVC) 캠퍼스로 돌아갔다. 팬데믹 동안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가을 학기부터는 거의 모든 미술 클래스가 오프라인으로 바뀌었다. 내가 듣는 과목은 ‘수채화 I’이다.     첫날 수업에 들어가니, 작년에 온라인 수업을 가르쳤던 교수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학생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에서 60대 중반. 대충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서, (2) 교양과목 학점이 필요해서, (3)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수업을 듣는 이들은 대개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처럼 정식으로 등록해서 과제물도 제출하고 시험도 보아 학점을 이수하려는 사람과 그냥 수업에 들어와 성적 스트레스 없이 그림만 배우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늦은 나이에 미술 공부를 하게 된 것은 10대에 접었던 그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10대 중반 무렵의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외가에 있는 나를 찾아와 시계 고치는 기술과 미술 중 하나를 배워 보라고 했다. 장애인 아들의 커리어를 걱정한 아버지의 배려였던 셈이다.   내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것은 그림이었다. 눈치를 보니 아버지는 내가 시계 고치는 기술을 배웠으면 하는 것 같았고, 어디선가 들었던 “그림쟁이는 배고프다”는 말도 떠올랐다. 시계 고치는 기술을 배워 보겠노라고 답했다. 그 후 나는 두고두고 그 결정을 후회했다.     길 건너에 있던 시계방 주인에게서 시계 수리를 배웠다. 도무지 모르겠고 재미도 없어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그 무렵 이런 공부는 가게에 들어가 심부름을 하며 매일 어깨너머로 보고 들으며 배우는 것이었다. 나처럼 일주일에 3-4시간 설명을 듣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된 후에도 그림 공부를 할 여유는 없었다. 영어를 배워야 했고, 먹고살고, 아이들 키우기 위해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그림 공부는 버킷 리스트에 담아 두었다.     어느새 버킷 리스트를 꺼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꿈은 이루지도 못하고 가게 생겼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미술 공부다.     수채화나 유화를 듣기 위해서는 기초적으로 들어야 하는 미술 클래스들이 있어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으로 이수를 했다. 수채화를 할 것인가 유화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는데, 이미 두 과목을 모두 들었던 아내가 수채화를 권했다. 화폭의 크기나 물감을 사용하는 것이 수채화가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수채화는 물과의 싸움이다. 물을 잘 써야 좋은 색과 질감이 나온다. 덧칠해서 수정이 가능한 유화와 달리, 붓이 지나간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새로 물감을 칠하면 덧칠한 것이 그대로 보인다. 붓질을 너무 많이 하면 말랐던 안료가 떨어져 나와 떡칠한 표가 난다.     수채화를 배우며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채화는 한 번 쓱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다. 물 자국이 남으면 남은 대로, 선이 고르지 않으면 고르지 않은 대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던가. 지난 것을 바꾸어 보겠노라고 다시 들추고 되새기다 보면 상처가 드러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수채화 같은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아침이다. 당신이 잊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요.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공부 미술 클래스들 미술 공부 기술과 미술

2023-09-27

[이 아침에] 청지기의 사역

남편은 쇠약해진 몸으로 일흔 중반을 버티어 왔다. 그가 아픔을 견디어 낸 일 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남편이 곁에 있어 안도하며 감사한다.     가족 중심으로 생일잔치를 열기로 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한복을 찾아보려 옷장을 열었다. 그런데 걸려 있는 한복의 색깔과 디자인이 눈에 거슬렸다. 요즘 한복은 동전이 넓어지고 붕어 배처럼 불룩하던 소매는 일자 모양으로 좁아졌다. 내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한복이지만 구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복도 늘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유행을 따라가기에 벅차다. 이 많은 한복을 어떡해야 하나? 행사 때 마다 즐겨 입던 한복이 이제는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계속 입을 옷도 아닌데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 한복집을 검색하니 ‘한복 대여’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다니. 대여해 입으니 부담 없이 간편했다. 더불어 테이블, 의자, 큰 양산까지 빌려 집 뜰에서 행사를 준비했다.     크레딧이 좋으면 자동차도 리스로 빌려 탈 수 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하는 딸은 새 차가 필요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자동차 생산량 감소로 새 차를 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달리 방법이 없어 내 차를 타고 다녔으나 그 마저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얼마 후 드디어 새 차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딸이 리스한 자동차였다.       리스나 임대를 선호하는 것을 ‘렌탈리즘(Rentalism)’이라고 한다면 이를 청지기의 사역에 비유하고 싶다. 청지기는 집사(Deakonos)에서 유래된 말로 섬기는 자, 일꾼, 사역자 등을 뜻한다. 주인이 관리인인 청지기에게 지시를 내리면,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한다. 맡겨진 것을 사용하고 나누어주며 감독권을 행하기도 한다.     나 또한 청지기임을 깨닫는다. 사실 우리의 소유물은 아무것도 없다. 물질도 주어진 삶 동안 관리할 뿐이다. 소유욕에서 벗어나 남의 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청지기로 있을 동안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지혜로운 자도 본다. 살아가면서 청지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물질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물질뿐이랴. 사랑하는 자녀도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고 안내하는 것이 부모 역할일 뿐이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삶 또한 육신을 빌려 입고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겠지. 유효 기간이 지나면 겉 사람은 흙 속으로 돌려보내고 빈 영혼으로 떠나지 않는가. 청지기는 자기 몸과 재능, 물질, 시간, 정력을 바쳐야 주인의 인정을 받는다. 렌탈리즘의 사고를 생활 속에서 잘 적용해 본분을 깨닫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리라.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청지기 기간 자동차 한복 대여 요즘 한복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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