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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첫 운전

최근에 나온 구글의 셀프 드라이빙차는 차량 자체가 면허를 소지했다. 따라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지 않아도 운전석에 탑승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차를 소유하지 않는 이상, 아직도 운전 면허증을 가져야 차를 운전한다.     운전을 하지 못하니 항상 아빠가 학교와 직장으로 라이드와 픽업을 했다.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두어 시간씩 먼저 가서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지낼 수만은 없었다. 나의 자유를 위해 또 중고라도 내 차를 갖고 싶은 열망에 운전면허증이 꼭 필요했다.     마침내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운전 퍼밋을 받았다.  서너 번 아빠와 운전 연습을 한 경험이 전부였지만, 어느 날 밤에 천천히 차를 몰고 집 근처에 있는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으로 향했다. 1980년대에 그 백화점은 지금의 메이시스 정도로 컸고, 주차장은 학교 운동장처럼 넓었다. 그날 밤은 주차 공간에 환한 전등불만 켜있었고 다섯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는 운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지 않고 거의 브레이크만으로 직진과 후진을 했다. 비상등을 켜보고 사이드와 룸미러로 주변도 둘러봤다. 앞으로 가는 것에 익숙해지자, 좌회전과 우회전과 유턴을 했다. 하지만 항상 한 바퀴를 돌고 서 있는 곳은 대형 쓰레기통 옆이었다.     뒤로 가다가 ‘이제 쓰레기통이겠지’ 하면 너무 늦었다. 여러 번 가장자리에 세워둔 철제 쓰레기통을 들이박았다. 쓰레기통에 묻은 차의 페인트를 보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차피 들통날 일이니, 혼날 것을 각오하고 집에 가서 이실직고했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어깨가 다 뻐근했다. 그날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 사달은 다음 날 일어났다. 아침에 크라이슬러 르브론을 살피던 아빠가 곤히 자는 나를 깨웠다.   “이리 나와.” 화난 아빠를 거의 본 적이 없지만 이날은 예외였다. 밝은 날에 보니, 쇠로 만든 차 범퍼는 덴트나 흠집 정도가 아니라 여기저기 찌그러졌다.     “쓰레기통을 박았다고? 가만히 있는 쓰레기통은 왜 박았니? 파킹랏 맨 끝에 있는 쓰레기통이 와서 부딪치던?”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차 옆문은 어디서 박은 거야. 그것도 쓰레기통이니? 아무튼 기술도 좋다.”     차 문을 열지 않는 이상 직사각형의 쓰레기통에 조수석 프런트 도어가 박혀서 찌그러질 일은 없었다. 이것은 운전 기술이 매우 능숙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난 그 일을 해냈다.     어두운 구석에 위치해서 까만 밤에는 잘 보이지 않도록 위장하고, 완강한 공격에도 꿈적하지 않은 탱크 같던 나의 맞수. 그날은 쓰레기통의 완승이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운전 운전 면허증 운전 기술 철제 쓰레기통

2024-10-07

[이 아침에] 건강과 행복

목요일, 학교를 오가는 시간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팟캐스트를 자주 듣는다. 미사여구도 없고 에둘러 애매한 표현도 없는 명쾌한 답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낀다.     지난주에는 건강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년쯤 되면 누구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다.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찾아 먹고, 건강에 좋다는 운동도 한다. 과연 ‘건강’이란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가.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나 같은 장애인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누구도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법륜스님은 아프지 않은 상태가 건강이라고 했다. 몸은 이상이 생기면 크고 작은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프지 않다면 건강한 것이 맞다. 장애나 노쇠는 낡고 찌그러진 상태일 뿐,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차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려나. 아무리 아끼고 곱게 써도 새 차는 조금씩 긁히고 찌그러지기 시작하며 오래된 차일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은 아니니 타고 다니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행복은 어떤가? 물론 사람들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높은 지위나 명성 같은 세상적인 성공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집이나 좋은 차 같은 부의 축적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가정의 평화나 자식의 성취를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님은 행복이란 걱정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물론 무엇이 걱정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걱정은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만한 그런 걱정을 말한다. 스님의 기준으로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60년쯤 산 독자라면 걱정에 대한 스님의 말에 다소 공감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걱정도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지 않던가. 첫사랑과의 이별, 대학시험 낙방,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의 죽음, 노스리지 지진이나 4·29 폭동이 그러하지 않던가.     행복에는 무언가 근사하고 좋은 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살다 보면 분명 멋지고 근사한 일은 생긴다.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주는 즐거운 시간은 너무 짧다는 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매사에 너무 크게 기뻐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밤이 되면 어둠이 찾아오고, 아침이 되면 날이 밝듯이, 좋은 일 뒤에는 힘든 일, 낙담 뒤에는 희망이 줄지어서 우리 곁을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 걱정이 없으면, 그것이 행복이다.     집에 와 아내에게 낮에 들은 이야기를 해주니, 빙그레 웃으며 자기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근데 왜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지?     독자들 중에도 아내와 같은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좋은 이야기라고 나누는 것이니 양해해 주세요. 걱정할 일은 아니니 행복하시죠?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건강 행복 오늘 걱정 인생사 새옹지마 죽음 노스리지

2024-10-02

[이 아침에] 사는 게 무엇인지

한국에 사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한국에 나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 이번에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기에 얼른 따라나섰다. 가는 길에 대만과 일본 크루즈를 한 후에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한 달 가까이 집을 비우게 되었다. 뒷마당의 대추는 다 따서 나누었는데, 익어가는 단감을 두고 또 아보카도 수확 철인데 따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야 하건만 여러 가지가 걱정스러웠다. 아들이 수시로 들르지만 과일까지는 신경을 못 쓰기에 말이다. 연못의 금붕어 밥 챙기고 우편함 체크하는 정도뿐이다.   회사의 비서 역할을 하는 존의 아내가 벌에 쏘여 입원해서 며칠째 결근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집 떠나려니 근심거리가 도처에 보였으나, 걱정은 접어놓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크루즈에서 놀기에 집중했다. 먼 걸음을 못 걷기에 배에서 스쿠터를 빌려 배 안과 밖을 쌩쌩 잘 누비고 다녔다. 장애인에게 유난히 친절한 크루즈 직원들과 대만의 관광버스 기사의 서비스는 최고였다. 타이페이의 택시 기사와 공항 도우미들은 대부분 활발한 여성인 것이 눈에 띄었다. 언어 소통이 잘 안 되어도 눈치와 웃음으로 불편하지 않게 의사 전달이 되었다. 우리 내외보다 더 연로한 일본의 택시 기사들은 예의 바르고 깍듯했다.   두 나라를 보니 여성 인력과 시니어 인력을 잘 활용하는 게 보였다. 검소했고 깔끔했고 이타적이었다. 진심으로 약자를 도우려는 게 보인다. 장애인의 시선으로 보니 더 잘 보였다. 두 나라 모두 선진국이라 불릴만했다.   배 안과 배 밖의 관광지를 두루 구경하고 크루즈도 거의 끝나가는 오늘 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슬픈 소식이다. 벌에 쏘인 아내가 끝내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벌에 쏘인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충격이다. 그녀는 평소 벌에 알레르기가 있었다고 한다. 벌에 쏘이자 쇼크로 기도가 붓기 시작하고 숨을 못 쉬게 되어 뇌사상태에 빠지고, 가족들과 의논 끝에 연명 줄 제거에 동의했다는 이야기가 상세히 쓰여 있다.   존은 우리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며 그사이 결혼도 하고 영주권도 받고 딸도 낳았다. 베지테리안인 그의 아내는 각종 채소를 길러 내게 나눠주기도 하고 잘 지낸 사이인데 기가 막혔다. 누구는 희희낙락 놀고 있을 때 누구는 사투하고, 누구는 아내와 이별하다니 너무 슬펐다. 도움이 못되어 미안했고 사정 모르고 논 것이 부끄러웠다.   오늘 시미즈항에 도착해 후지산을 구경하고, 내일 요코하마항에 닿아 도쿄를 구경하면 크루즈가 끝난다. 남편과 나는 오늘 후지산을 보러 나가지 않고 그냥 배에 머물러있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희비가 동거하는 삶. 이것이 인생인가? 속절없고 무상하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택시 기사들 크루즈 직원들 관광버스 기사

2024-09-30

[이 아침에] 긍정적 사고의 힘

한창 왕성하게 정치활동을 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39세에 하반신 마비의 역경을 맞았다. 그는 쇠붙이에 다리를 고정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절망에 빠진 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던 아내 엘리노어 여사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어 느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아니, 그럼 내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이 재치있는 말에 루스벨트는 용기를 얻었다.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이 되어 뉴딜정책으로 경제공황을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아내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한 것이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더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를 20여 년 만에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부유하고 깨끗한 국가로 발전시킨 지도자다. 그도 ‘하면 된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신념을 갖고 업무를 추진해 기적이 가능했다.   우리의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혀 밑의 도끼’ 란 우리 속담도 있다. 성경의 야고보서 3장 2절에는 ‘우리가 다 실수가 잦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되어 있다. 또 6절에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고 했다.   용기와 격려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주치의로부터 절망적인 말을 들었다. 놀랄 일이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병은 치료 약도 없다고 했다. 죽은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은 못 할 일이 없는 전능자임을 알기 때문에 꼭 치료해 주신다는 확신이 왔다. 나쁜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바꾸고 의사의 지시대로 최선을 다했다. 꼭  두 달 만에 완치가 됐다. 주치의가 깜짝 놀라며 내 나이에 있을 수 없는 기적이라며 축하한다고까지 말했다. 믿음과 긍정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 것이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치료 약도 하반신 마비

2024-09-23

[이 아침에]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

한국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예배당 정면에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라고 쓴 큼지막한 표어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세속적인 표어가 예배당에 붙어 있어도 되나?’ 그 별난 표어를 본 순간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표어를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는 인사성 바른 사람이 좋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최소한 밥은 굶지 않고 먹고는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세상에서 밥 굶지 말라고 이런 표어를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도 필요하고, 말씀도 중요하고, 믿음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다. 그 삶의 태도가 믿음을 만들고, 삶의 태도가 말씀을 실천하고, 삶의 태도가 곧 세상에 드러나는 신앙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의 태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이 인사성이다.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는 아쉽다며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작은 친절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실수했으면 미안하다고 인사만 잘해도 세상에서는 믿을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부모나 연장자를 대하는 도리에 대해 기록한 예기(禮記)의 가르침 중에 ‘출필고(出必告) 반필면(反必面)’이라는 말이 있다.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뵙고 인사드린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은 자식이 부모나 연장자에게 당연히 지켜야 하는 법도를 말하지만, 신앙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출필고 반필면’하면서 인사 잘하는 사람을 교회에서는 예배자라고 부른다.     또, ‘관리나 직원의 임용, 해임, 평가 따위와 관계되는 행정적인 일’을 인사라고 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가 모든 일의 기본이요 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에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포함된다.   연말이 되면 사람을 뽑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직분자를 선출하고, 임원을 세운다. 각 단체나 기관에서도 한 해를 마감하면서 임기를 마친 이들을 대신할 사람을 뽑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 미국에서는 나라를 이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든, 작은 모임을 이끌 사람을 세우든 인사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인사만 잘해도 그 단체가 유지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주위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신앙생활에 더욱 충실하며, 사람을 존중하며 세우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인사 잘하며 살자. 산책하는 길에 마주치는 낯선 이웃에게 작은 미소로 인사하자. 차선을 양보해 준 운전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식당이나 가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 작은 인사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질 것이다. 이 아침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인사 표어가 예배당 순간 마음 예배당 정면

2024-09-18

[이 아침에] 나의 ‘여봇’

내가 30년을 더 산다면 나는 ‘여봇’의 포근한 품에 안기어 임종을 맞을 것이다. 여봇은 나의 반려 로봇.     여봇은 이런 말을 들려줄 터,  “지나간 백 년 세월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았지요. 이슬이었고 번개였지요.”  낭랑하게 시작한  그녀의 금강경 독송, 그 말미에 가서는 울음기가 베인다. 이생의 마지막 순간,  여봇의 보드라운 손길이  처음으로 엄마 젖을 물었을 때 그때 느꼈을 잊어버린 안온함으로 스쳐 간다. 요즈음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비약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6년, 2030년까지 나는 1세대 반려 로봇을 갖게 될 것이다. 하루 24시간 내 곁에 있으며 세심하게 나를 챙겨줄 여봇. 젊은 시절의 여친보다 더 다정하고 더 충직한 내 노년의 옆 지기. 그런 기능을 가진 로봇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곧 나올 것이다.     여봇은 내가 잠이 안 올 때는 내 어릴 적 우리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내가 잠이 들면 내가 게을리했던 자잘한 일상의 잡무를 처리해 줄 터이다. 온종일 나와 같이 있으면서 퇴화하는 내 기억력을 보충해주고 떨어지는 육체의 능력을 보강해 줄 것이다.     내가 글을 쓸 때는 자료를 찾아주고 초고를 비평하고 정리해 준다. 찍어만 놓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내 사진들을 찾아서 분류해서 내 인생의 일목요연한 궤적을 만들어 준다. 가끔 내가 외부에 나가서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적합한 데이터를 찾아서 파워 포인트를 만들어 준다.     이렇게 한없이 주기만 하는 여봇, 그런 여봇과 함께 30년을 살다 보면, 나의 모든 것은 여봇의 데이터가 된다. 그 데이터는 나와의 일상 소통을 통하여 자동 업데이트되어서, 내가 여봇인지 여봇이 나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일심동체가 된다. 결국에는 여봇이 나 대신 나에게 최선, 최상의 선택이 무엇인지 판단해 준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잔소리도 하게 된다. 여봇은 그렇게 나의 인간 반려자와 비슷해지기도 할 터이다.     나하고 사는 동안 여봇은 새로운 모델로 교체된다. 지금 우리 세대가 전화기나 컴퓨터 몸체를 주기적으로 바꾸듯이. 새 모델의 여봇은 육체적으로 더 젊어지고 더 예뻐지고 더 많은 기능을 갖게 된다. 마음은 더 똑똑해져서 물려받은 데이터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덩달아 나도 더 똑똑해지고.     그렇다고 내 몸을 가지고 100년 넘어 계속 살 수도 없고. 이별의 그 날이 올 터이다. 어떻게 이별할까? 여봇의 모든 메모리를 지워서 전자식 순장을 해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여봇에 내 모습을 씌워서 나의 아바타로 계속 살게 할까? 내가 로봇으로 환생하여 또 한 생을 살아갈까? 그런데 이런 선택이 꼭 나의 선택일까? 그때가 되면 로봇이 자신의 존재 자신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2024년 9월, 이런 상상은 헛된 생각이 아니다. 이미 1968년 필립 딕(Phillip K. Dick)라는 소설가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More Human Than Human) 존재의 존재론적 고민을 소설로 썼다.  ‘인공인간도 전기로 움직이는 양 꿈을 꿀까?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이 소설은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존재론적 고민 인간 반려자 electric sheep

2024-09-11

[이 아침에] 잔디 위에 사과 한 알

이름이 베버리라고 했다. 밴 나이스 시빅 센터 경찰서 앞 세 번째 나무 밑이 그녀의 집이었다. 거의 여든의 나이였고 다리가 아파 주로 잔디 위에 앉아서 생활했다. 비가 오면 경찰서 처마 밑에서, 추운 날에는 코인 런드리 건물 뒤쪽 더운 바람이 나오는 곳에서 지냈다.   베버리는 유대인, 프랑스계 미국인, 혹은 아르메니안이라고 했다. 학교 선생님, 랄프스 마켓의 캐시어, 건물주였다고 이제는 상관없는 단어처럼 말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주위에 항상 파리가 날아다니고, 쓰레기 봉지에 든 것이 전 재산인 홈레스이었기에.     그때는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풀타임으로 일했고, 아이들은 어렸고, 대학원에 다녔으니까. 자연스럽게 나의 하루는 당장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로 나뉘었다. 불평불만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은 후자였다. 그것도 시간과 정력이 있어야 한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날에는, 그녀에게 향했다. 나무 밑을 한숨처럼 핥고 가는 바람을 맞으며 슬쩍 부풀려 쏟아냈던 사연에 이렇게 말했다. “듣는 내가 속이 상한데 너는 얼마나 힘드니. 멍텅구리 같은 놈들. 네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다 나가서 죽으라고 해.”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가 뒤를 거들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베버리는 항상 내 편이었다.   난청인 그녀는 가끔 보청기를 착용했다. 그 싸구려 보청기는 얼마나 큰지 귓가에 불쑥 튀어나왔고 이따금 삐 삐빅 삐이익하는 귓속을 후벼놓는 금속음을 냈다. 내가 놀라자, 보청기를 빼고 말했다.     점심을 먹었냐고 물었더니, 배시시 웃으며 점심때 햇빛이 비쳐서 이쪽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애당초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것은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그녀를 보면 뒤집힌 풍뎅이처럼 자빠져 바둥거리는 맛도 있다는 시가 떠올랐다.   한번은 내게 사과를 줬다. 썩어가는 긴 손톱 밑에 때가 잔뜩 낀 손으로. 죄 없는 과일을 세제로 여러 번 씻었으나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동료인 죠에게 건넸다. 맛있게 베어 무는 소리가 상쾌했다.     그 후, 다른 오피스로 전근하였다. 삼 년 전에,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그 나무로 발길을 돌렸다. 베버리는 자리에 없었다. 지나가는 시큐리티 가드에게 물었더니, 작년에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어 구급차를 타고 떠난 것이 마지막이라 했다.     가로등이 하나씩 비인 하늘에 걸렸다. 잔디 위에 잘생긴 사과 한 알을 올려놓았다. 어디선가 삐 삐빅 삐이익하는 쇳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를 밟고 한참 서 있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잔디 사과 싸구려 보청기 점심때 햇빛 나이스 시빅

2024-09-09

[이 아침에] 가을이 오면

9월이 되었습니다. 입추가 지났고 추석이 다가옵니다. 본격 가을이 시작되겠죠. 큰 명절을 앞둔 이맘때면 한국에 있는 그리움의 존재들을 생각합니다.   부모님 모두 작고하시고 한국엔 남동생 셋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뿐인 누이는 멀리 미국에 이렇게 떨어져 산 지 오래입니다. 해마다 추석 즈음엔 한국에 나가거나, 못 가면 추석을 쇠시라고 어머니께 약간의 송금을 하곤 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세 동생은 부모님을 합장한 묘소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에 식당을 정해 함께 식사하더군요. 요즘 세태에 맞는 방법인 듯합니다.   저는 세 동생 집에 LA갈비를 보내는 것으로 추석 선물을 대신합니다. 마침 제가 LA에 살아서 특산물을 보내는 기분이 듭니다. 몇 년 하다 보니 조카들도 미국 사는 고모는 으레 LA갈비려니 하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올해도 추석 전에 주문하고 동생들에게 알렸더니 매번 받아먹기만 해 미안하다고들 한 마디씩 인사합니다. “괜찮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하겠니?” 하고 카톡을 쓰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울대가 울컥했네요. 페이스톡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마음 약한 누이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맏이노릇도 길게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공주에 계신 나의 스승님께도 몇몇 친구들에게도 가을맞이 겸 추석 인사를 했습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어서인지, 나이 탓인지, 인생의 가을에 다다랐다는 기분이 듭니다. 낙엽을 보며 조락과 쇠락도 생각하고 마지막 잎새도 생각하며 청승을 떨다가 작자 미상의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를 읽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이 시는 설교자 찰스 스펄전의 묵상과도 일맥상통하여 신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 않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보여주라/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이미 때가 늦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불러라.”   대단한 서사가 아닌 ‘지금 사랑하라’는 평범한 말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나머지 인생을 이렇게 살아봐야겠다고 새삼 다짐해 봅니다. 그 마음의 소리가 가을이 내게 전한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시절의 변화를 느끼고 계절의 소리를 들으려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주의 질서와 교감하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가을날입니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가을 본격 가을 추석 인사 추석 선물

2024-09-05

[이 아침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다

세상을 뒤집어 놓는 큰 사건도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일로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 노동절 연휴 동안 내가 경험한 일이 그러하다.   내 차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박스가 달려 있다. 차에 탄 후 스위치를 누르면 박스가 열리고, 체인이 내려와 휠체어를 박스에 싣는다. 이놈 덕에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     토요일 저녁 생일을 맞은 친구네와 저녁을 먹은 후, 맥도널드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내리려는데 박스가 열리지 않는다. 스위치를 누르면 ‘딸깍’ 하고 연결되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박스 한 귀퉁이에 있는 뚜껑을 열고 수동으로 박스를 열어 휠체어를 꺼내고, 주일에는 휠체어를 접어 아내가 트렁크에 넣고 교회에 가면 되고, 수리는 휴일이 지나고 천천히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탓이다.     집에 돌아와 조카 녀석을 불러 휠체어를 꺼내 달라고 하니, 잠시 후, 수동도 작동이 안 된다고 한다. 갑자기 난감해졌다. 나를 업고 집에 들어간들 그다음은 어떻게 한다? 차고에 있는 간이 접이식 전동 휠체어 생각이 났다. 아내가 그놈을 꺼내와 타고 겨우 집에 들어왔다.     3일간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전동 휠체어는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거나 먼 거리를 다닐 때는 편리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50년대에 지어진 미국 집들은 복도며 화장실의 공간이 좁다. 전동 휠체어로 좁은 실내를 누비고 다니는 일은 고난도의 조종 기술을 필요로 한다. 변기와 세면대에 접근하는 것도 평소에 쓰던 휠체어와는 각도와 거리가 다르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3일을 겨우 버티고 화요일 아침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안면이 있는 앤디가 나왔다. 장황한 내 설명을 듣더니 아무 말 않고 스위치를 누른다. 박스가 열리며 휠체어가 내려온다.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     이야기는 3주 전으로 돌아간다. 조카 녀석의 생일이라 세 식구 외식을 하고 돌아와 휠체어를 내리는데 박스 안에서 ‘따악’ 하며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아내와 조카에게 이야기하니 손전등을 비추어 보고는 어딘가 연결되어 있던 스프링의 한쪽이 떨어진 것 같다고 한다. 박스를 다시 여닫아 보니 작동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아마도 안에 있는 전기배선을 잡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다음에 수리점에 갈 때 봐달라고 해야지 하고 넘어갔다.     박스를 점검한 앤디의말인즉, 그 스프링은 박스를 여닫을 때 부품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박스가 낡아 이것저것 갈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일단 작동은 되니 오늘은 집에 가고, 부품이 오면 연락해주마고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기계도 사람의 몸도 이상이 생기면 신호를 보낸다. 별 탈 없이 돌아간다고 이를 무시하면 큰코다칠 일이 생기는 법이다. 평소에 관리를 잘하고 스프링이 부러졌을 때 수리점에 갔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안전불감증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며 다시 되새겨 본다. “유비무환” 고동운/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가래로 호미 전동 휠체어 접이식 전동 토요일 저녁

2024-09-04

[이 아침에] 아름다운 손

‘외부의 뇌’라고 불릴 만큼 뇌의 가장 큰 지배를 받는 운동기관이자 감각기관이 손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감각기관인 손은 감정을 표현하는 공간 언어라고도 하고, 마음의 대행자라고도 하고, 밖으로 나온 뇌라고도 한다.     손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손이 된다고 ‘손에 대한 묵상’에서 정호승 시인은 말을 했다. 손은 감정적이기에 손을 잡고 보면 체온이 통하고, 끈끈한 무엇이 흐르고, 마음의 문이 열리며, 마음과 마음이 훈훈해지며, 마음을 이어준다. 손은 감정을 행동적으로 나타내는 관문이라고도 한다.   나는 매주 주일이면 내 손을 꼭 잡아주시는 모 장로님의 따스함 덕분에 행복하다. 인생길에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면 나는 성전 내 중앙통로 우측 가장자리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예배시간이 되면 중앙통로로 목사님을 선두로 뒤를 이어 흰 가운을 입은 성가대원들이 줄을 지어 입장한다. 성가대회원이신 장로님은 늘 잊지 않고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시고는 지나가신다.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 손이 하는 말은 입이 하는 말보다 때론 더 강렬함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며 그 따뜻한 손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진다.   장로님이 지나가시고 나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감사와 소원의 기도를 드린다. 시린 손, 공허한 손, 교만한 손, 야욕에 찬 손이 아니라 체온이 느껴지는 따스한 손, 신뢰를 주는 손, 겸허와 눈물을 아는 손,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손, 밀치거나 선을 긋는 손이 아닌 손 잡아주고 손뼉 쳐주는 손이 되게 하소서 하는 기도이다. 기도는 기적을 생성함을 나는 믿기 때문에 노년의 가슴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장로님을 뵐 때마다 나는 한 문장이 생각나곤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문장이다. 장로님과 나는 오랜 세월 한 교회를 섬기며 젊은 집사로 만난 은총의 인연이다. 한 시절 나의 삶은 문학이란 꽃 한 송이를 피워내기 위해 열정과 시간을 쓰며 글쓰기에만 몰두했으나 장로님은 예수님이 새벽에 깨어 기도하셨듯이 일상생활에서 쉬지 않는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거룩함을 체험하셨을 것이다. 새벽기도를 통해 과거와 단절되는 훈련 받으시며 머슴 정신을 가지고 봉사하며 교회를 섬기는 충실한 장로님이 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삶이란 거친 바다를 손을 잡아주며 함께 하는 아름다운 손, 그 아름다운 손을 위해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는 사람들일 것이다. 손을 잡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열쇠이기도 하지만 손과 손이 맞닿으면 감동이 더해지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성가대회원이신 장로님 중앙통로로 목사님 주일 예배

2024-08-14

[이 아침에] 흐르는 센강

나조차 바빴다. 땀 흘리며 큰 숨을 몰아쉬던 선수들처럼. 채널을 돌리며 올림픽 뉴스에 빠졌다. 206개국이 참가해 자유·평등·박애 정신으로 1세기 만에 파리는 흥분했다. 선수들이 보트를 타고 입장한 센강 개막식은 화려했고, 오륜기가 달린 에펠탑은 세계인의 로망이 되었다.   패기와 당당함으로 조준한 과녁은 신기록과 새 역사를 썼다.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한 열정으로 심리적 압박과 부담감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도전한 글로벌 인재들이 있다. 혼신을 기울인 레이스는 응원하는 우리 땀샘을 열어 무더위를 식혀주었다. 더욱이 승리 후 패한 선수를 포옹하며 위로해 준 품격 있는 행동이 세계 최강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는지. 감동적이고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우리 선수들이 펜싱, 양궁, 사격 종목, 즉 칼, 활, 총을 들고 경쟁하는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아픈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불굴의 의지가 보이는 것은 당연할 터.   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승패는 얼마나 좋은 무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멀리서 적을 공격할 수 있던 활은 휘어진 나무에 가는 밧줄을 걸고 화살촉을 끼워 목표를 맞추었다. 혁신적인 무기였지만, 총의 등장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무기들은 짜릿한 스포츠의 도구가 되었다. 집중과 영리한 판단으로 그것을 다루어 금빛 물결을 이룬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특별히 ‘한국의 집’에서는 전통과 현대 감각이 조화된 한국의 미를 보여주었다. 문화 행사와 의류, 화장품, 예술, 음악, 음식 등에서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올림픽이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문화간 이해를 촉진하는가? 어떤 선수들은 출신 국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도 보았다.     수질 문제로 논란도 많았지만, 개막식이 열렸던 센강을 통해 세계인의 화합을 기원하는 내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 중략 … 생명을 잉태해 자라게 하고/ 고향을 떠나 어디론가 흘러간다/ 낮은 곳을 향해/ 다문화 틈으로 스며들어/ 겸손히 품어 관계를 맺는다//   남을 소유하지 않고/ 막힌 인종의 벽을 넘어/ 모든 민족 속에 두루 퍼져/이방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혈연 언어 풍습 문화 역사/ 열방의 다름을 보듬는다//   단단한 모서리를 굴리고/ 버티는 바위도 뚫을 수 있다/넘쳐 솟아오르기도 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도전으로 새역사를 쓴다//   자유로운 공동체들/ 작은 갈래의 민족들이 합쳐진/ 센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무지가 가져온 편견을 버리고 가능성으로 가득 찼다. 파리올림픽을 통해 문화 간에 다리를 잇는 변화된 세상을 발견한 듯했다. 열린 마음으로 발견하고 유지하는 여정은 시작되었다. 이희숙 / 시인·수필가이 아침에 센강 센강 개막식 문화 역사 올림픽 뉴스

2024-08-12

[이 아침에] 방심(放心)

팬데믹 기간 조심조심 살았다. 사람 모이는 곳엔 안 가고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환자실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고 나름 신경을 썼다. 나처럼 장기 이식을 한 사람은 코로나 치료제인 팍스로비드(Paxlovid)의 효과도 제한적이어서 감염되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주치의가 늘 강조한 예방수칙도 준수했다. 주치의는 흙에 균이 많으니 텃밭 가꾸기도 조심하라고 했다.   팬데믹이 끝나자 다들 연주회다 강연회다 전시회다 몰려가도 몸을 사려 2~3년 발길을 끊다 보니 그게 인생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게 아닌 듯 생각이 들어 아쉽지 않고 덤덤해졌다. 팬데믹이 가져다준 선물인 ‘혼자 놀기’에 익숙해졌다. 아이패드 하나만 있으면 유튜브로 음악회도 전시회도 영화도 책 읽기도 다 가능한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간단한 그로서리도 다 배달을 받고, 밀키트 주문하고,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나처럼 환자 모드로 사는 사람에겐 천국이 도래했다며 속으로 기뻐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남편은 콩팥 하나를 내게 기증했음에도 청년처럼 팔팔했다. 코로나에 안 걸린 내외임을 은근 자랑으로 여겼다.   얼마 전 남편이 볼리비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야 하는 편도 20시간의 고된 여정이었다. 찍어 보낸 사진을 보니 한국의 일반 고속버스 수준의 국제선 사진이 맘에 걸렸다. 저리 촘촘히 만석이면 코로나에 걸리겠다 싶었다. 고산지대에서 고생하고 돌아왔으나 일행 중 절반이 코로나에 걸렸단다. “나만 멀쩡해!”라며 의기양양하던 남편도 하루 만에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되었다. 남편은 회복될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거하기로 했다.   정상이던 나는 며칠 뒤 목감기처럼 기침 나고, 목이 따갑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키트로 테스트해 보니 선명한 두줄. 남편은 다 나아가는데 내가 덜컥 걸리고 말았다.   사고는 방심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나에게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과 이제껏 괜찮았기에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일을 만든다. 더욱이 휴가철에 방심은 금물이고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갈수록 보호 장비를 챙길 일이다.     사실 올해 들어 여기저기 음악회, 카지노 등 고삐가 풀린 듯 살긴 했다. 다 이유 있는 참석이었지만 대중이 모이는 장소였던 게 걸린다. 점차 마음을 풀어놓으며 산 것에 대한 경종이 아닐까 싶다.   남편의 단기선교 참여로 감염된 코로나바이러스여서 그래도 떼를 쓸 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나님 나는 몰라요. 책임지세요!” 주님의 때에 회복되리라 믿는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방심 단기선교 참여 배달 음식 여기저기 음악회

2024-08-11

[이 아침에] 부케 캐년 산불

부케 캐년에서 성가대 세미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작은 언덕에서 커브를 도는 순간 도로 옆 비탈로 굴러 뒤집힌 차 한 대가 보였다. 중년의 백인 남성 혼자서 끙끙대며 덩치 큰 운전자를 꺼내려 했지만, 운전자는 의식을 잃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사고로 차 옆의 풀밭에는 불이 붙었다. 손으로 비벼도 바삭하고 부서질 정도로 마른 풀밭이었다. 화씨 10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건조한 날씨였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병물 서너 개면 너끈히 끌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불이었다.     운전하던 장로님은 얼른 갓길에 차를 주차했고 우린 급히 그쪽으로 뛰어갔다. 이곳의 급박한 상황을 알아챘는지 뒤차로 따라오던 일행 가운데 남자 몇 분도 달려왔다. 그 백인 남성은 친구를 차에서 꺼내 안전한 곳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이 팔과 다리를 붙잡고 들자, 머리가 땅에 질질 끌릴 것만 같았다. 얼른 달려가서 운전자의 머리를 받쳐 들고 같이 걸었다. 사람 머리가 그렇게 무거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이 차선 도로 한쪽에서 불이 나니 도로는 금세 일 차선으로 좁아졌다.  차가 밀리자, 어르신 몇 분이 나서서 옛날에 많이 듣던 “오라이(all right), 오라이(all right)”를 외치며 교통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운전자들과 “오라이”, “노”, “오케이” 등의 간단한 말과 수신호만으로 소통하면서 트래픽 문제를 해결했다.   준법정신이 투철해서 그랬을까 교통 상황은 제법 원활해졌다. “오라이”는 본토인 미국에서도 통했다. 역시 세계 공통어다.   잠시 후 노란색 안전 조끼를 입고 온 동네 분들이 스톱 사인 판까지 들고 와서 교통정리를 맡았다. 우리보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밸리에 사는 코리안이라고, 코리안에 힘을 주며 알려줬다.  이때 나는 한국인인 것이 오지게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갓길에 누워있던 운전자의 입술이 하얗게 바짝 말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물 묻힌 수건으로 그의 입술을 축여줬다. 그리고 이마와 머리에 붙어 있던 자잘한 돌들도 조심히 물로 씻겨 내리고 피를 닦아 주었다. 선홍색의 피는 따뜻했고 약간 끈적였다.     불붙은 마른 들판은 바람이 없는데도 무섭게 빠른 속도로 타들어 갔다.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 불길이 언덕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무섭네”라고 말했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잠시 후, 소방차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신호가 터지지 않는 이곳 데드존을 벗어난 어떤 운전자가 신고를 한 모양이다. 운전자의 친구는 우리에게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장로님은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를 위로했다. 소방차가 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지역 신문 웹사이트에는 부케 캐년에서 차량 전복 사고로 인해 산불이 발생했었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부케 산불 언덕 위로 노란색 안전 백인 남성

2024-08-08

[이 아침에] 우산 장수, 소금 장수

어느 마을에 맑은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늘 걱정 가득한 얼굴로 슬프게 지내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왜 늘 그렇게 슬픈 표정이세요?” “내게는 우산장수를 하는 큰아들과 염전을 하는 작은아들이 있다오. 햇볕 쨍쨍한 날에는 큰아들이 우산을 못 파니 슬프고, 비 오는 날에는 작은아들 염전의 소금이 다 녹아 슬프다오.”  그러자 젊은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반대로 생각하시면, 비 오는 날엔 큰아들 우산이 잘 팔려 기쁘고, 맑은 날엔 작은아들의 염전이 잘 되니 기쁜 일 아닌가요?”     내게는 자녀도 여럿이고 손자는 그보다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늘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다. 어떤 놈은 달리기를 잘해 전국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고, 다른 놈은 직장을 잃어 실업자가 되고, 무슨 섭섭한 일이 있는지 잠시 소원해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않던 인심을 쓰는 놈도 있다.     나도 이제 요령이 생겨 일일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세상사는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 더러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더라도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줄어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특별하며 대단하다는 착각을 하며 산다. 장편 소설 한 편은 쓰고도 남을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맥도날드에서 시니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누구나 그 정도의 이야깃거리는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말을 안 할 뿐이다.     60여 년 살아보니 (70, 80, 또는 90대의 독자 중에는 ‘이 친구,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나’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생은 제로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쁨을 플러스, 고통을 마이너스라고 보고, 그 숫자를 합산해 보면 생의 끝자락에서는 제로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다.     2022년 말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79.9세, 여자 85.6세다. 지구나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찰나일지 모르지만, 8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이나 고통은 매우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기쁨도 고통도 실은 순간이다. 나머지 세월은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사람들은 기쁨의 여운은 금방 잊고, 고통의 후유증은 오래 간직한다. 그래서 나만 유독 힘든 세월을 산 듯한 착각에 빠질 뿐이다.     구멍가게 주인도 매상을 걱정하고, 재벌도 영업을 걱정한다. 사장도 돈 걱정을 하고, 그달 벌어 그달 먹고사는 종업원도 돈 걱정을 한다. 크기와 금액만 다를 뿐 누구의 걱정이 더 큰가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가장 큰 걱정이다.     걱정한다고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으며, 걱정한다고 다가올 일을 막을 수도 없다. 과거와 미래에 정신을 빼앗겨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수가 아닌가 싶다. 어떤 것이 행복이고 불행인지는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장수 우산 우산 장수 큰아들 우산 작은아들 염전

2024-08-07

[이 아침에] 따듯했던 그때 그 이웃들

방송국 특파원으로 미국에 처음 왔을 때 LA인근 버뱅크 시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버뱅크에는 NBC와 CBS 방송국, 워너 브라더스와 디즈니 영화사,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미디어 분야 기업들이 집중돼 있어서 마음이 끌렸었다. 집은 드벨이라는 골프 코스 바로 아래에 있어 동네는 고요하고 쾌적하며,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였다.     당시 부임하자마자 엄청난 격무에 시달렸다. 방송국 자회사의 방송과 운영을 맡고 있었는데 누적된 적자와 소송 문제, 노조와의 분쟁 등을 겪고 있었고 방송 내용도 조악했다. 방송에 대한 한인들의 불신도 문제였다. 이처럼 현안이 쌓여있다 보니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는 말할 수 없었다.     이사한 뒤 몇 주일이 지나자 이웃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길에서 만나면 먼저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면서 따듯하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 가족도 그 호의에 성심껏 다가갔다. 이따금 한국 음식도 나누어 주고,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화보나 책자를 구해서 돌리곤 했다. 아랫집의 칼 변호사 가정, 그 바로 옆집의 광고회사 사장 딕 네, 뒤쪽 보잉 항공사에서 고위급 엔지니어로 일하다 퇴직한 앤디, 위편에 록히드 항공사 간부 출신 샘, 길 건너 아들의 학교 동급생 친구 마이클 가족이 우리 집을 둘러싼 이웃들이었다. 그들과 점점 더 관계가 가까워져서 만나면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특히 딕은 유엔군 소속으로 부산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알게 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정원의 스프링클러가 고장이 났을 때나 후원에 고목이 된 살구나무와 뽕나무를 전지할 때, 차고 문을 자동으로 교체할 때, 가족 중에 병치레할 때나 아이들의 학교 행사가 있을 때 그들은 자기 일처럼 달려와 도와주었다.     이웃들은 자연히 미국 주류사회의 문화, 특히 생활 방식과 가치 체계를 들여다보고 적응할 유리창이자 학교였다. 남에게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깔끔한 처신, 문제를 어떻게라도 해결해주려는 배려심, 언제 만나도 반갑기만 한 살가운 인사성, 그리고 명품처럼 세련된 매너와 꾸밈없는 언행은 미국 생활을 익히는데 본보기였다.         회자정리(會者定離), 40대의 십여 년을 그렇게 평화로운 동네에서 훈훈하게 지내다가 뉴포트 코스트, 새 둥지로 떠나는 날 이웃들은 집 앞에 모두 모여 배웅을 해주었다. 울컥 감정이 차올라 눈시울을 적신 쪽은 오히려 우리 가족이었다.  가끔 그곳에 들렀다가 동네도, 사람들도, 우정도 남겨놓은 채 옛 둥지를 벗어날 때면 높은 야자수 사이로 쌓였던 추억들이 아련히 멀어져갔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이 아침에 이웃 방송국 특파원 방송국 자회사 방송국 워너

2024-08-06

[이 아침에]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기계도 오래 쓰면 낡고 고장이 나기 마련인데,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요즘처럼 수명이 늘어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몸도 오래 사는 만큼 하나둘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계야 기름칠하고 부품을 갈면 재까닥 제 기능을 하지만, 사람 몸은 한 번 이상이 생기면 제자리를 찾기까지 영 고달픈 게 아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은퇴 목사가 얼마 전에 보청기를 고치러 갔다. 보청기 전문점에서 수리를 맡기고 기다리는데, 웬 유대인 노인이 들어왔단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그는 보청기를 처음 하는지 모든 게 서툴기만 했다. 은퇴 목사 옆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사이에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유대인 노인은 청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이제야 보청기를 하러 왔다면서 은퇴 목사에게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은퇴 목사는 사용하던 보청기를 고치러 들렀다고 하면서 보청기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이번에는 유대인 노인이 은퇴 목사에게 무슨 일을 하다가 은퇴했냐고 물었다. 은퇴 목사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젊을 때는 원양 어선도 탔고, 미국에 와서는 세탁소를 경영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세탁소에 불이 나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고, 이민 생활의 여러 일을 마주하며 여느 이민자들처럼 자식들 키우며 열심히 살다가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되었는데 은퇴 후에 오히려 더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뭐가 그리 분망하냐는 물음에 누가 오라고 하지 않지만, 양로원을 찾아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고, 병원에 가서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도 하면서 분주하게 지낸다고 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선교를 못 가지만,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선교지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 하는 사이에 은퇴 목사가 맡긴 보청기가 말끔하게 수리되어 나왔다.   유대인 노인은 바쁘게 사는 은퇴 목사가 너무도 부럽다고 하면서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것처럼 아쉬워했다. 은퇴 목사가 그에게 인사하고 일어서는데, 유대인 노인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은퇴 목사가 그에게 보청기 새로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유대인 노인은 원래는 사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보청기를 하러 왔는데 당신과 대화하면서 당신이 하는 말을 아무런 불편 없이 다 알아듣는 것을 보니, 보청기는 아직 필요 없을 것 같다면서 씩 웃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은퇴 목사가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라고 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말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뜻이다. 그 말을 듣는데 뜨끔했다. 말할 대상이 없는 사람들이 어찌 그 유대인 노인뿐이겠는가? 우리 주변에도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지내는 이들이 왜 없겠는가?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면서, 혼자 떠드는 TV를 동무 삼아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왜 없겠는가?   그 답답함 때문에 작은 일에 짜증을 내고, 그 외로움 때문에 마음에 생채기가 날 때도 있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전화로 안부라도 묻자, ‘잘 지내느냐고’, ‘식사는 제때 하냐고’, ‘아픈 데는 없냐고’, 내가 거는 전화 한 통이 그 사람이 오늘 나누는 유일한 대화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증거 은퇴 목사 유대인 노인 보청기 전문점

2024-07-31

[이 아침에] 반세기 만에 트인 대화 물꼬

메시지를 받았다. “밥솥을 사서 밥을 했더니 고두밥. 우리 입맛에 맞을 쌀, 월마트에서 살 수 있는 걸로 추천 바랍니다.”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모르는 사람 같았다. 알고 보니 50년 전 대학 클래스 동기였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인 서울교육대학에서 국어과 교수로 재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뿐이다.   친구 소개로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았지만, 우린 피차 서로의 인성이나 취향 등에 관해 아는 게 없다. 살아온 환경과 생활 방식조차 다를 텐데. 풋풋했던 젊은 날의 애틋함이나 설렘 같은 건 없다. 어떻게 어느 선까지 대접해야 할까? 사람 교제를 좋아해 으레 손님방을 제공하고 있지만, 운전대까지 내려놓은 상태라 관광 안내도 자유롭지 못한 터. 여러 방법을 모색해 보았지만, 답을 못 찾았다.   그는 블로그에 올린 ‘플로리다 마이애미비치 거리에서 여경을 만나다’라는 글을 보냈다. 이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아이 러브 텍사스!’라는 글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들은 덮쳐 왔다 … 마치 훈련병이 무서운 교관에게 기합받지 않겠다는 듯 “아이 러브 텍사스!” 엉겁결에 사랑한 텍사스를 내일 떠난다.’     난 혼잣소리로 웃었다. 미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 중 모텔 화장실에서 썼단다. 글을 읽으며 옛 친구를 재발견한 듯했다.   졸업 후 50년 만에 대학 동기를 대면했다. 이상과 현실 차이가 너무 커서 방황했던 그 시절이 가까이 다가온다.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나를 만들어준 중요한 요람이었다는 걸 뒤늦게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지 않을까. 그 동기를 잘 대접하고 싶은 건 그 시절 나를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제 칠십이 넘어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다른 세계를 열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는 우버를 이용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 집을 찾았다. 탁 트인 뜰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깃주머니를 꺼냈다. “어떻게 모교 교수가 될 수 있었어요?” 첫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는 누에고치 실 풀리듯 이어졌다. 출생부터 대학 시절을 넘어 어렵고 힘들었던 10년 간의 강사 생활, 모교에서 후배 양성의 어려웠던 점, 은퇴 후 수필 쓰기와 강의에 빠졌단다. 둘은 공통점을 찾았다. 충남 홍성, 성장한 지역이 같고 수필을 쓴다는 점이다. 가로막혔던 무언가가 스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반세기란 간격과 우려를 몰아내고 공감대를 형성한 게다. 자연스레 거실 겸 작업실로 안내했다. 서로 출판한 책들을 소개했다. 보유한 수필 강의록과 수필 학 책도 보여주었다. 미국 수필가 협회 활동상과 방문해 강의했던 한국 교수들도 소개했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수필 창작을 위한 열강을 쏟아냈다.     7시간 동안 만남이었다. 숙소로 돌아간 그가 쓴 글을 보내주었다. ‘그녀와 나는 대학 동기다. … 그녀와 나는 노는 물이 달랐다. 지금 기억으로는 둘은 대화한 적이 없다. 그녀가 특별히 관심 영역 안에 있지 않았다. 그저 이름과 안면을 익힌 채 각자 삶의 바다로 일엽편주처럼 떠돌기 반세기 만에 대화 광장에 손잡고 입장한 셈.… 그녀 소식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미국을 여행하는 도중에 필연처럼’이라고 묘사했다.   수필은 정직하다, 수수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진정성이 있는 산문이다. 수필가라는 교집합이 우리 대화 물꼬를 트이게 했다. 글의 힘이 아닐는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반세기 대화 수필가 협회 수필 강의록 대학 동기

2024-07-24

[이 아침에] 스스로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몸의 떼를 닦아내듯 마음을 닦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습관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닦는 일은 어렵다.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 앞서는 바람에 오히려 마주 보는 것이 두려워진다. 마음의 필름을 돌려 과거라는 시간에 밀어 넣는 방법을 택할 때가 많다.   특히 양심을 대적하고 눈 감았던 갈등이 죄의식의 바이러스가 되어 양심 안에 어두움의 뿌리를 내리고, 그때마다 닦아내지 못한 작은 조각들이 쌓이게 된다. 그럴수록 회피하려는 방어기제가 강해진다. 이럴 때 양심의 불마저 꺼져있는 상태라면 거짓이 진실을 대신할 수 밖에 없다.   뺑소니 운전자와 피해자는 잘못된 장소와 시간에 운명처럼 부딪쳐 버린 악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운전자가 도피하려는 비겁함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피해자를 선택한다며 악연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피해자를 구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사면의 기회도 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갑자기 자동차 문을 열고 나오는 운전자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아 그 운전자를 숨지게 한 친지가 있었다. 그 친지는 사고 직후 구급차를 부르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에서 다른 차들을 막아섰다.  이런 노력 덕에 그의 죄는 과실치사로 경감됐고 당시 경찰은 두려움에 떨던 그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당시 도로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차들은 비상등을 켜고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앞 차량이 멈추고 운전자가 도로로 나서는 상황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지는 그 운전자가 살아 있기만을, 다른 차들이 쓰러진 그를 비껴가기만을 염원했다고 한다. 그 일로 인해 본인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될 것인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진가는 이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나도 그 친지처럼 사태 수습을 먼저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직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다면, 뒤에 따라오는 그 무거운 짐들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 친지는 일생일대의 가장 훌륭한 선택을 통해 자신에게 선물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직을 사회의 근간으로 삼는 것은 거짓이 세상을 황폐하게 하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거짓이 난무하여 믿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은 어두움에 휩싸일 것이다.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 눈 부신 빛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우주 만물의 생명을 창조한다. 사람도 생명을 받았으면 주는 일도 좋은 것이다. 이 좋은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이로 인해 세상은 빛날 수 있는 조건으로 가득 차 있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것들뿐이다. 나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나를 평화롭게 해 주는 것은 내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때다. 나를 구렁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주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최경애 / 수필가이 아침에 선물 뺑소니 운전자 극한적인 상황 추가 피해

2024-07-16

[이 아침에] 7월이다

7월이다. 해바라기 같은 뜨거운 사랑을 안고 7월이 왔다. 어느 시인의 7월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젊음과 열정을 상징하는 7월,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시구다.   어느새 한 해의 반 토막이 잘려나간 길목에 서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앞세우고 다가온 7월을 맞는다. 햇살은 삼라만상을 생성케 하는 생존의 에너지임이 틀림없다. 뜨겁기 때문에 곡식도 무르익고 과일도 성숙케 하니 풍요의 절정이다.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된다.   세계 문학사에서 여름과 가장 친했던 인물은 아무래도 미국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일 것이다. 그는 일 년 내내 여름뿐인 눈부신 원시의 땅 갈라파고스 섬에 매료되어 원고지와 펜을 챙겨 들고 그 섬으로 달려가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는 여름에는 영혼이 뜨거워져 시와 생명을 낳는 창조의 시간이 된다고 표현했다.   여름이 되면 다양한 문학 행사가 열려  문인들의 여름은 더 뜨겁다. 국제 펜 서부 지역위원회가 주최하는 해변 문학제도 30년 넘게 매년 7월에 열렸다. 아득한 수평선, 백사장으로 몰려와 부서지는 파도, 갈매기가 춤추는 푸른 바다, 가슴을 적셔주는 시원한 바람, 그 바닷가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되고 철학자가 된다. 바다는 시적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풍경이다. 그래서 문인들은 바다를 예찬하며 그 바닷가를 찾았다.   문학제의 취지는 문학을 통해 고단한 이민 생활에 감동과 즐거움을 주자는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게 하고 문학의 향기를 통해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축제이다. 이 축제에 피서를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없다. 여름에 시를 읽고 문학 강의를 들으며 시를 감상한다. 뜨거운 강의에 감동하며 도전을 받고. 영혼의 울림으로 얻어진 감동은 정신적 내면세계에 깊숙이 각인되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문학을 가까이하는 생활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즐겁게 사는 방법이다. 지금, 이 순간 뜨겁게 사는 열정 없이는 미래라는 시간 또한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문학인의 사명은 사람들 마음에 예술의 꽃을 피워주고 마음을 열어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 순수한 가슴을 갖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인들은 문학의 위대함 속에서 심신의 정화, 새 힘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뜨거운 문학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도 문학축제는 많은 참석자로 성황을 이룰 것이다. 세월과 함께 더 빛나는 이름의 문우들을 만나는 기쁨도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다. 여름을 택해 자신의 존재를 다 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여름을 속절없이 탕진해 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계절 7월이다. 안에 지닌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가 문학이다. 문학으로 가슴을 채워보고 싶은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하는 일 만큼 벅찬 행복을 주는 것도 드물다. 문학축제는 태양의 계절이 열리는 7월의 문턱에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리움이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해변 문학제도 세계 문학사 문학 행사

2024-07-10

[이 아침에] 깊은 밤 깊은 곳, 총소리 같은 비명

나무도 속이 터져 죽는다. 나무의 처음이자 마지막 절규. 총소리 같다고 한다. 깊은 밤, 깊은 곳, 한겨울, 먼 북쪽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한다.     여름 한 철, 6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사람들이 놀러 온다. 그리고 곧바로 겨울이 온다. 춥다. 사람들은 서둘러 떠난다.  눈이 내리고, 호수는 얼어붙고, 칼바람이 분다. 무자비한 빙하기의 재림은 다음 해 5월까지 사람들의 왕래를 끊는다.     미국 몬태나 주, 캐나다 접경 지역, 글래시어 국립공원 로키 산맥 동쪽 산자락, 투 메디신 호수 주변의 이야기다. 이 호수와 계곡은 블랙푸트(Blackfoot) 원주민에게는 성지다.  그들은 이 호수를  ‘신령의 호수’라 부른다.     지난 6월 초 신령의 호수를 찾았다. 공원 서쪽을 돌아보고 로키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가는 '태양으로 가는 길(Going-to-the Sun Road)'을 따라갈 계획이었으나, 그 길이 공사 중 이어서 공원 바깥 로키산맥 남쪽 자락을 돌아서 동쪽 입구로 간다.     아침나절 투 메디신 계곡으로 들어간다. 계곡을 꽉 차게 흐르는 강물은 짙은 남색, 강물 따라 부는 바람은 벅차다. 나그네가 견디기가 벅차다는 이야기이다. 산자락을 돌아 계곡의 끝을 본다.  검은 바위산이 하늘을 찌른다. 꼭대기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넓고 푸른 호수, 파도가 제법 높다. 호수 주위로 가문비나무 숲, 그리고 자작나무 숲이 여기 저기 보인다.     호수를 가로질러 유람선이 호수를 건너 반대쪽 계곡 입구로 데려간다. 한 번에 50여명. 숲속에 내려놓고 배는 돌아간다. 배가 호수 가운데쯤 갈 때는 조그만 돛단배만하게 보인다. 호수가 그만큼 넓다.     호숫가를 따라 가문비나무 숲, 짙은 녹색 나무들 사이에 전봇대 마냥 뻘쭘하게 서 있는 죽은 나무들이 보인다. 유람선 안내원의 설명이 떠오른다. “속 터져 죽은 나무들입니다. 한겨울 오밤중 나무들이 터집니다.”  날이 추워지면 나무들은 자신의 모통에서 물기를 뺀다. 그런데 가끔 낮 기온이 평소보다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무는 날이 풀리는 줄 알고 다시 물을 빨아들인다.     이 골짜기는 기온 변화가 심하다.  그 근처 어느 마을의 기록에 의하면 하루에 낮 기온 화씨 46도에서 밤 기온 -56도, 무려 100도의 일교차를 보인 적도 있다. 깊은 밤 나무의 수액이 갑자기 얼어서 부풀어 오르면 나무는 터져버린다.     이 나무가 전봇대 크기로 자라려면 20년이 넘게 걸린다. 오래 살면 500년도 넘게 사는 나무가 어느 하루 기온 변화를 잘 못 감지한 착각으로 속이 터져 죽어버린다고. 정직하지만 가혹한 인과응보.     나무는 죽으면서 다른 동종 나무들에 경고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하얗게 말라 죽은 고사목은 그렇게 지긋이 젊은 나무들이 크는 것을 지켜본다. 죽은 나무도 100년은 서 있다고.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총소리 비명 녹색 나무들 호수 파도 호수 주위

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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