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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역경 딛고 목사로 '새 삶' 안수…최광옥씨 9일 목사 안수식

홈리스에서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가 된 한인이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최광옥(63) 목사다.   지난 9일 미주연합예수교장로회총회와 미주중앙노회 주관으로 LA 한인타운 내 새소망선교교회에서 특별한 목사 안수식이 진행됐다. 최 목사는 이날 성직자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목사가 되기 전 8년간 한인타운 내 홈리스 쉘터에서 생활했다. 최 목사는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용실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일상을 보냈다”며 “그러나 9년 전, 한꺼번에 닥친 세 가지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언급한 세 가지 사건은 한인타운 인근에서 운영하던 미용실이 재개발로 문을 닫아야 했던 일,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별세, 그리고 살던 집이 화재로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된 일이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인디애나에 있는 친언니 집에서 약 1년간 머물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가방 하나를 들고 다시 LA로 돌아왔다. 당시 그의 곁에는 15살 된 자폐증 아들이 있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들을 두고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인 홈리스 쉘터를 찾았다.   그는 쉘터를 “전쟁터”라고 표현했다. 최 목사는 “김요한 신부가 운영하는 쉘터에 들어간 것이 8년 전이었다”며 “같은 홈리스들로부터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민국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하고, 폭행으로 안경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둑질을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난을 받았으며, 괴롭힘에 맞서다가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쉘터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김 신부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그의 의지를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 목사는 “월드미션대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듣고 모든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김 신부가 편지를 써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며 “쉘터 생활 중에도 틈틈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전했다.   신학 공부를 하며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소외된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12년간 전도사로 쉘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목회자가 되는 것은 그의 오랜 소망이었다. 최 목사는 “장애를 가진 아들, 도박 중독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쉘터에서 함께 지냈던 중독자들과 홈리스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은 큰 은혜였고 목사로서의 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 안수식이 끝난 후 소감을 묻자,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며 “목사로서 더 많은 활동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답했다.   최 목사가 목사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아들을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를 병행해야 했던 점이다. 쉘터의 폭력적이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버텨냈다.   최 목사에게 수년간의 고난은 단지 쓰라린 기억만이 아니었다. 이는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한 사역의 자양분이 됐다.   최 목사는 이날 김 신부에게 “오갈 데 없던 제가 신학 공부를 통해 남을 도우며 사는 목사가 되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에 김 신부는 “8년간 강한 성격의 사람들이 많은 쉘터에서 잘 이겨냈다”며 그의 노고를 칭찬했다.   한편, 최 목사는 목사 안수식을 마친 뒤 LA 한인타운 내 새소망선교교회(담임목사 권보라)에서 사역을 시작한다. 정윤재 기자목사 홈리스 목사 안수식이 홈리스 역경 한인 홈리스

2025-01-09

[중앙칼럼] 또 다른 ‘이강원’…늘 우리 주변에 있다

LA한인타운의 한글 간판들은 한인에게 민족적 동질감을 안겨준다. 한인 노숙자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8가와 사우스 카탈리나 스트리트 인근 한 골목에는 윤애복(65) 씨가 맨 바닥을 매트리스 삼아 살고 있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외진 골목이 그녀의 거주지다. 악취가 가득하다. 페트병, 폐지, 버린 가구 등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대변 때문에 걸음을 떼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역설적이지만 이 골목은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LA시 공무원들은 몇 번이나 셸터 이주를 권유했다.   한번은 윤 씨가 공무원들에게 이주할 의사를 밝혔다. 공무원들은 그 말에 즉시 그녀의 옷과 소지품을 챙겼다. 멍하게 있던 윤 씨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옮기게 될 셸터가 어디에 있죠?”   “여기서 6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요.”   그녀는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노숙자가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이주시킬 수 없다. 시정부 규정 때문이다. 윤 씨는 쓰레기 가득한 그 골목길에 다시 혼자 남아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 여기가 좋아요. 다른 곳은 싫어요.”   쓰레기가 널려 있고 악취가 나는 골목인데도 그곳을 벗어나는 게 싫은 듯했다.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한 이질감 때문일까. 타인종이 많은 한인타운 밖으로 나가는 건 두려움이다.   가장 익숙하다고 느끼는 그 골목에서 정작 그녀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존재다. 주변 업주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업주 입장에서 노숙자는 껄끄러운 이방인이다.   참을 만큼 참았는지 한 업주가 소리쳤다.   “제발 여기를 떠나. 죽더라도 여기서 죽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죽어.”   무정한 말을 듣고도 그녀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고개만 숙인 채 길바닥만 응시하고 있다. 하루이틀 일이 아닐 터다.   냉정 이면에는 인정이 공존한다. 일종의 연민이다. 한인 문화의 특성이 그렇다.   식당을 찾았다가 윤 씨를 보고 음식을 따로 투고해서 가져다주는 이들도 있다. 인근 업주들은 쫓아내고 싶지만, 한편으론 마지못해 돕는다. 더러 주머니 속 잔돈도 건네준다.   11월의 LA 바람은 제법 차다. 길을 가던 중년의 한인 남성이 물었다.   “저녁 식사했어요?”   세 끼를 챙겨 먹을 리가 없다. 윤 씨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웅얼거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녀는 떡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 남성은 지갑에서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인근 식당에서 떡국을 투고해서 건넸다. 식당 주인도 노숙자가 먹을 음식이라 좀 더 넉넉하게 담았다고 했다.   떡국을 받아 든 그녀는 한국어 무가지를 찾아 바닥에 깔았다. 단순히 음식 받침 용도는 아니다. 음식을 먹던 그녀가 갑자기 신문에 적힌 날짜를 가리키면서 요일을 물었다. 하루하루 길거리에서 생존하느라 시간을 인지할 여유조차 없는 게 분명하다.   윤 씨 주변엔 늘 한국어로 된 무가지가 있다. 한인타운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연결고리일지도 모른다.   본지가 현재 영문 기사로 준비 중인 한인타운 노숙자 시리즈의 한 부분이다. 지난달 그 첫 번째 스토리로 노숙자 사역을 하다가 노숙자로 전락해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이강원 목사의 삶을 보도했다. 후속 취재를 통해 이 목사가 한인타운에 머물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아있는 노숙자들의 삶을 통해 찾고 있다.   한인타운은 노숙자들에겐 역설이 반복되는 곳이다. 그들은 심적, 정서적, 문화적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배척 당하고 소외되고 있다. 상반된 감정이 뒤섞인 공간에 놓여있는 셈이다.    이 목사도 그렇게 살다가 끝내 노숙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채 죽어야 했다. 이는 또 다른 ‘이강원’이 우리 주변에서 언제라도 숨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도, 대안도 고민할 수 있다. 길거리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이유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이강원 한인타운 노숙자 한인 노숙자 이강원 목사

2024-12-17

한상헌 박사 신간 ‘창세기 1장’ 출간

월스트리트 씨티뱅크 IT 전문가 출신인 한상헌(사진) 종교교육학 박사가 성경책 맨 앞에 있는 창세기 1장에 관한 새로운 책 ‘창세기 1장(표지사진)’을 출간했다.   역사·지리·천문학 등에 해박한 한 박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학에 매진해 미국의 신학 명문인 페이스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에 이어 종교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메리칸 메시아닉 목사·클로스터교회 담임목사·메시아성경원 원장인 한 박사는 성경 창세기 1장에 대해 “태초에 관한 궁금증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창세기 1장에는 대단한 내용이 있고, 이것은 단순한 과학이나 종교를 뛰어넘는다”고 밝혔다.   ‘창세기 1장’의 1부와 2부는 리서치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한 내용이고, 3부 진광교회 사경회(4일간 진행)는 창세기 1장이 얼마나 가까이 사람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 읽으면서 실증된 현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한 박사는 IT 전문가 출신답게 기록된 내용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실제로 적용하는 글을 쓰면서, 전체를 하나 안에서 이해하고, 상세한 부분들을 살피면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체험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세기 1장’ 책 주문  ▶전화: 888-880-8622(반디북US)  ▶인터넷: 네이버 책/교보문고/YES24/인터파크 글로벌/반디북US  ▶서점: 반디북US. 147-24 Northern Blvd. NY Flushing 11354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한상헌 박사 한상헌 목사 한상헉 종교교육학 박사 창세기 1장 한상헌 창세기 1장 한상헌 신간 창세기 1장 진광교회 사경회

2024-12-16

"매달 점심 한 끼 함께 하며 정 나눠요"…방주교회 김영규 목사 14년간

추운 겨울, 따뜻한 정이 LA한인타운에 퍼졌다.   방주교회(담임 김영규 목사)의 올해 마지막 ‘사랑의 점심’ 행사가 LA 한인타운 중앙 루터교회에서 12일 열렸다. 약 150여명의 한인 시니어들이 교회를 찾아서 온정의 한 끼를 감사히 즐겼다.       이날 시니어들은 따뜻한 점심 도시락과 함께 각종 생활용품, 김, 달력 등 다양한 선물을 받으며 따뜻한 하루를 보냈다. 특히 큰 글자로 인쇄된 달력은 시력이 안 좋은 시니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2010년 9월에 시작된 ‘사랑의 점심’은 매월 둘째 주 목요일마다 변함없이 열리고 있다.   김영규 목사는 “이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많은 시니어가 외로움과 경제적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이 자리는 단순히 식사와 선물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시니어들이 서로 교류하며 정도 나눌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여·88) 씨와 김강수(남·92) 씨 부부는 벨리 지역에서 두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왔다. 보행 워커를 의지하는 김 씨는 “집에만 있으면 너무 답답하다. 여기 오면 바람도 쐬고 밥도 먹고 선물도 받아서 정말 기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참석자인 이정자(여·80) 씨와 이승선(여·84) 씨는 “‘사랑의 점심’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LA 유니파이드 라이온스클럽(회장 조주영)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자원봉사자들도 손을 보탰다. 조주영 회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참여해왔다”며 “많은 시니어가 외로움 속에 계신다. 우리가 나누는 작은 것이 큰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니어들 대부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사랑의 점심’에 참석했다.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도 많았지만, 대다수는 수년째 꾸준히 참석하는 시니어들이다. 오랜만에 서로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이 행사가 단순한 나눔의 자리를 넘어 시니어들에게 중요한 만남의 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행사는 대한노인회 미주총연합회에서 도시락을, 센터메디컬그룹에서 생활용품을 후원했다.     ‘사랑의 도시락’ 행사는 올 한해만 연인원 2000명 이상의 시니어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했다. 내년 첫 행사는 1월 9일에 열린다. 강한길 기자방주교회 김영규 방주교회 김영규 김영규 목사 점심 도시락과

2024-12-12

[열린광장] 설 밑을 맞이하면서

어느덧 2024년의 마지막 달 12월을 맞이했다. 음력으론 동짓달인 11월이 지나고 섣달인 12월이 다가오니 설밑(年末)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동짓달과 관계있는 몇몇 행사가 섣달에 있는 것이 꽤 재미있다. 이를테면 액운을 막는다는 동지 팥죽(冬至一粥)을 동짓날에 쑤는데, 보통 12월 22일 경이다. 새알심을 넣어 쑤는 팥죽은 새해를 맞아 나이만큼의 개수를 먹는다고 한다.   올해는 음력 11월 1일과 양력 12월 1일이 겹치고, 음력 12월 1일이 양력 12월 31일이라 음력과 양력이 같은 달에서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양력 12월은 북반구의 겨울이 시작되는 까닭에 ‘혹한의 달(the frosty month)’로 불린다.     12월은 성탄절이 있는 달이다. 초기 영어의 ‘Christes Maesse’에서 비롯된 ‘Christmas’는 서기 336년 로마 달력에 12월 25일로 기록된 이후 기독교의 큰 명절이 되었다. 이 성탄절은 1500년 종교개혁이 이뤄질 때까지 발전했고 신교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성탄절과 아울러 예수의 탄생을 축하기 위한 강림절(Advent)이 크리스마스이브 전 일요일까지 4주 동안 열리기도 한다.   양력 12월에는 일어난 일도, 태어난 유명인도 많다. 성가대 지휘자를 오래 한 탓인지 12월에 출생한 음악가 몇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프랑스의 작곡가 엑터 베를리오즈가 1803년 12월 11일  태어났으며,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1858년 12월 22일 출생했다. 그리고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데이브 브르벡이 1920년 12월 6일에, 미국이 자랑하는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 3일 태어났다. 특히 오페라 가수인 칼라스가 부른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 holy night)’ 노래를 감명 깊게 들은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수많은 찬송가를 만든 영국의 찰스 웨슬리 목사의 생일이 1707년 12월 18일이다. 웨슬리 목사가 지은 성탄절 노래 ‘들으라, 천사 찬송하시네(Hark, the herald angels sing)’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치인으로는 캐나다 총리를 세 번이나 역임한 윌리엄 L. M. 킹이 1874년 12월 17일 태어났는데 12월 17일은 나의 결혼기념일과 같아 잊을 수가 없다.       연말에 새길만한 동서양의 비슷한 명언도 재밌다.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는 말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장자의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삶에는 한이 있지만, 앎에는 한이 없다’는 뜻이다. 한이 있는 걸 가지고 한이 없는 것을 좇으려 하다 보니 삶이 매우 어렵게 이어진다는 뜻이다.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He who truly knows has no occasion to shout”라는 말을, 노자는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라는 말을 남겼다. 삶의 참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말을 적게 하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맞이 음력과 양력 오페라 작곡가 웨슬리 목사

2024-12-08

AI 활용한 성경 풀이 나왔다…주님의교회 김병학 목사 개발

라하브라 지역 주님의교회를 담당하는 김병학 목사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성경 전권에 대한 챗봇 주석을 완성했다.     3개월 이상의 연구 끝에 탄생한 이 주석은 지난 24일 진행된 ‘챗봇 성경주석 완간 기념 감사예배’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감사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황진기 박사(에반겔리아 신약 교수)는 “목회자들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며 “김 목사의 챗봇 주석이 이러한 사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축사를 맡은 이종희 목사(남가주밀알선교단 단장)도 “김 목사의 연구와 열정이 집약된 결실”이라며, 이 주석이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병학 목사는 “창세기 작업부터 시작했는데 지침이 없어 시간이 오래 걸렸고, 출애굽기 작업에서는 창세기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느라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며 “전체를 완성한 지금도 계속 AI 학습과 수정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김 목사는 챗봇 성경주석을 활용한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이를 보급할 계획이다. 내년 1월 30일에는 KAPC 교단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일반인을 위한 강의도 준비 중이다.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성경주석 게시판 성경주석 완성주님의교회 성경주석 완간 김병학 목사

2024-12-03

한인 무연고자 황인갑 씨 장례식 엄수

지난 10월 18일 퀸즈 플러싱 소재 아파트에서 소천한 후 연고자를 찾았던 황인갑(67) 씨가 지난달 30일 뉴욕우리교회와 뉴욕한인회 주관으로 중앙장의사에서 장례식을 갖고 이어 2일 뉴저지 포레스트 그린 파크 묘지에 안장됐다.     중앙장의사(대표 하봉호)는 황인갑 씨 사망 후 한국의 가족을 찾았으나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와 무연고자 장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지난 수십 년간 무연고 한인들의 장례를 후원하고 있는 중앙장의사 하봉호 대표는 “매년 10여 건 이상의 무연고자 장례를 해왔지만 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많은 도움과 관심 속에 치를 수 있게 됨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연고자 장례는 법적으로 화장을 할 수 없기에 예심회와 중앙장의사가 장례 비용을 부담하고, 뉴욕한인회 성금 500달러와 뉴욕한인학부모협회 최윤희 회장 성금 1500달러로 묘지를 구입했다.   한편 뉴욕우리교회 조원태 목사를 중심으로 타국에서 쓸쓸하게 마지막을 떠나야 하는 무연고자 장례를 지원하는 예심회는 그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이날 황인갑 씨 환송예배를 시작으로 단체 활동의 출발을 알렸다.   예심회 발기인을 대표해 하늘가족재단 황미광 이사장은 “예심회는 예수님의 마음, 예사롭지 않은 마음, 예쁜 마음이란 뜻을 가지고 가족 없이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한인동포들의 마지막 길을 손 잡아 주는 단체로,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보람을 느끼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심회 연락처 718-309-6980(조원태 목사), 347-739-6502(황미광 이사장). 박종원 기자 [email protected]황인갑 한인 무연고자 황인갑 씨 황인갑 씨 장례식 중앙장의사 하봉호 대표 김광석 회장 최윤희 회장 조원태 목사 황미광 이사장 예심회

2024-12-02

신지훈 담임목사 위임예배

    뉴라이프 선교교회는 지난 17일 주일 오전 10시 15분,신지훈 담임목사 위임예배를 드렸다. 1부예배를 마치고, 2부예배 중에 가진 위임식임에도 불구하고 본당은 성도들로 가득차 신지훈 담임목사의 위임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미국 장로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소속 팀 링귀스트(Tim Ringuist) 장로, 델 페리스(Del Farris) 목사, 존폴 왓슨(Jonpaul Watson) 목사가 참석해 신지훈 목사를 위한 위임기도, 위임선언, 신지훈 목사님을 위한 권면, 회중을 위한 권면, 위임패 전달 절차를  진행했다. 델 페리스 목사는 먼저 신지훈 목사와 성도들에게 서약질문을 읽어주고, 서로가 신지훈 목사를 담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고 선서하도록 제안하면서 위임을 선언했다.       이날 위임예배에는 정대성 은퇴 목사가 중심 설교자로 나섰다. 정 목사는 '새로운 살 길' 이라는 주제로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설교했다. 우선 정 목사는 성소(Holy Places)로 나아가는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좋은  교회는 좋은 성도들이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는 견디고, 성도들은 버텨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기다려준다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전임 목사로서 신지훈 담임 목사와 성도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한편, 신지훈 목사는  7월14일부터 뉴라이프 선교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지만, 교단에서 필요로 하는 시험을 9월에 통과하게 되었고, 이에 교단으로부터 정식 소속 목사임을 인정받는 위임예배(Installation Service)를  이날 드리게 되었다.         김경진 기자담임목사 위임예배 15분신지훈 담임목사 신지훈 목사 이날 위임예배

2024-11-27

신지훈 담임목사 위임예배

   뉴라이프 선교교회는 지난 17일 주일 오전 10시 15분,신지훈 담임목사 위임예배를 드렸다. 1부예배를 마치고, 2부예배 중에 가진 위임식임에도 불구하고 본당은 성도들로 가득차 신지훈 담임목사의 위임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미국 장로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소속 팀 링귀스트(Tim Ringuist) 장로, 델 페리스(Del Farris) 목사, 존폴 왓슨(Jonpaul Watson) 목사가 참석해 신지훈 목사를 위한 위임기도, 위임선언, 신지훈 목사님을 위한 권면, 회중을 위한 권면, 위임패 전달 절차를  진행했다. 델 페리스 목사는 먼저 신지훈 목사와 성도들에게 서약질문을 읽어주고, 서로가 신지훈 목사를 담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고 선서하도록 제안하면서 위임을 선언했다. 이날 위임예배에는 정대성 은퇴 목사가 중심 설교자로 나섰다. 정 목사는 '새로운 살 길' 이라는 주제로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설교했다. 우선 정 목사는 성소(Holy Places)로 나아가는 삶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좋은  교회는 좋은 성도들이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는 견디고, 성도들은 버텨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기다려준다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전임 목사로서 신지훈 담임 목사와 성도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한편, 신지훈 목사는  7월14일부터 뉴라이프 선교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지만, 교단에서 필요로 하는 시험을 9월에 통과하게 되었고, 이에 교단으로부터 정식 소속 목사임을 인정받는 위임예배(Installation Service)를  이날 드리게 되었다.      김경진 기자담임목사 위임예배 15분신지훈 담임목사 신지훈 목사 이날 위임예배

2024-11-27

노숙자 돕다 노숙자로 생 마감한 이강원 목사의 비극

    [편집자 주: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LA 한인타운. 이곳에서 이강원 목사는 2024년 7월 노숙자로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그는 과거 노숙자를 지원하는 사역을 했던 목회자였다. 미주중앙일보 탐사보도팀은 그가 노숙자가 된 뒤 갑작스럽게 사망하기까지 그의 험난한 행로를 기록했다. 그의 삶과 죽음이 시사하는 바를 더욱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그의 죽음 이후에도 추가 취재를 진행했다.]   [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11월12일 게재한 기사를 국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원문 링크]       한인타운에서의 암울한 발견       한인타운 곳곳에 펼쳐진 텐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은 날마다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두 건물 사이에 자리 잡았던 텐트 중 하나는 절망 속에서도 존엄성을 잃지 않았던 이강원 목사가 살던 곳이다.     이강원 목사의 텐트 근처에서 생활하는 신소영 씨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상한 냄새가 났다”며 “며칠 동안 그런 냄새가 동네에서 진동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착했고 어떤 상황인지 확인됐다. 1년 가까이 이웃으로 지내던 이 목사가 사망한 것이었다. 7월 초였다. 그의 시신은 신 씨의 텐트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소리 없이 부패하고 있었다.     신 씨는 “죽음은 이곳에서 우리와 늘 함께하는 동반자”라며 “또 한 명의 영혼을 그렇게 잃었다”고 했다.     이 목사의 시신은 며칠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일은 LA 노숙자 사이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는 약물 중독과 노숙 생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수년을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막아서려 했던 바로 그 운명에 휘말리게 됐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 4월 22일 이 목사를 처음 만났다. 한인타운에서 노숙자 셸터를 운영하는 세인트 제임스 교회의 김요한 신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또 한 명의 한인 남성이 길거리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취재팀이 10번가에 위치한 LA 중앙루터교회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극적 사건의 증거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안태홍(65) 씨의 시신은 영안실로 옮겨졌고 빈 텐트와 그가 숨지기 전 토한 피의 자국들만 남겨져 있었다. 그는 김 신부의 셸터를 떠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안 씨는 길거리 생활의 가혹한 현실에 굴복했다. 피를 토하며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노숙자들의 심각한 건강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취재팀은 안씨가 머물던 텐트 근처를 지나던 중 접이식 의자 위에 쓰러져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그 역시 노숙자였다. 취재팀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안 씨의 죽음에 관해 물었다.     이 남성은 중얼거리며 뭐라 말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몇 개 남지 않은 치아 상태도 좋지 않아 말이 어눌했다. 깊게 파인 주름과 햇볕에 그을린 피부, 정돈되지 않은 수염, 초점 없는 눈빛은 거리에서 살아온 그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였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남성은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이강원입니다”라고.     취재팀은 당황했다. 한때 LA 한인들 사이에서는 이강원 목사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치아를 잃은 이 남성은 한인타운에서 노숙자 및 마약 중독자들을 돕던 아가페 미션 하우스라는 셸터를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사역은 한인 언론에 널리 보도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그가 이강원 목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목사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노숙자들을 이해하고 도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목회자로서의 헌신은 많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울타리선교회의 나주옥 목사를 비롯해, 노숙자 사역과 관련한 인물들은 이 목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이 목사는 내 친구였다”며 “노숙자와 중독자들을 향한 그의 진실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현재 간판 사업을 하는 김우식 씨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씨는 “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고 했다. “그의 보살핌이 없었으면 마약을 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인타운 한복판인 사우스 호바트 불러바드에 위치했던 이 목사의 셸터는 삶의 나락에서 추락해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등대 같은 존재였다. 많을 때는 80여 명이 이 셸터에서 생활하며 다시 일어서려 했다.     이 목사는 과거 마약에 빠져본 적이 있었기에 노숙자들을 더 잘 이해했다. 그는 노숙자들을 위한 정부의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숙자들에 대한 그의 연민은 결국 셸터가 몰락하는 단초로 이어졌다. 셸터 규모가 확장되면서 시 정부 규정을 준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목사는 자신이 거주하던 집을 개조해 셸터로 사용했다. 셸터에서 풍기는 악취와 소음 탓에 이웃들의 민원이 계속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아가페 미션 하우스의 몰락     2014년이 되자 아가페 미션 하우스에 대한 민원은 더욱 늘었다. 이웃들의 민원을 접수한 LA 소방국, 주택국, LA 카운티 공공보건국, 정신건강국 등이 셸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 목사는 셸터 거주자들에 대한 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로써 노숙자 지원이라는 그의 일은 끝이 났다. 일부 한인 언론은 그를 타락한 구원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셸터에서 거주했던 최광옥 씨는 그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현재 김요한 신부의 셸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최 씨는 “이 목사는 셸터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김밥 사업까지 시작했다”며 그를 회상했다.     최 씨는 “LA시 검찰과 한인사회는 이 목사가 셸터 거주자들의 정부 지원금을 불법적으로 횡령하고 일부를 학대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셸터 운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주장했다.     셸터가 폐쇄된 후 이 목사는 길을 잃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던 그가 이젠 노숙자가 돼 길거리로 나앉았다. 관공서나 큰 조직의 배경 없이 개인 차원에서 노숙자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목사의 부인 이정환 씨는 “기소로 힘들어하던 남편이 밤길을 걷다가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3주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병원에서 겨우 깨어났다”고 했다.     그의 머리 부상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정환 씨는 “남편은 이후 매우 폭력적으로 변했다”며 “탄압을 받고 있다는 망상과 심각한 정신 질환 증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온화했던 이 목사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는 각종 폭행 혐의로 여러 번 수감됐고 감옥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싸우기도 했다.  이 목사는 2012년에 저지른 범죄로 2017년 두 건의 절도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6년에는 가정 폭력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하기 전까지 약 3년에서 4년을 감옥을 옮겨 다니며 복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2017년 비상업적 목적의 건물에 무단 침입한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게 마지막 기소 기록이었다. 그 시점부터 이 목사가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정환 씨는 “그에게는 두 딸이 있었고 친척들도 모두 이곳에 살았지만 가족조차 그를 돌볼 수 없었다”며 “결국 그는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고 했다.     “나는 크리스탈을 해요”   그의 사역지였던 한인타운 거리는 그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됐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는 한때 다른 사람들에게 끊으라고 조언했던 약물에 다시 빠지게 됐다.     그의 길거리 이웃이었던 신 씨는 “이 씨는 1년 전쯤부터 내 텐트 옆에서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폭력적이고 망상 증세를 보인 사람이었다”며 “여기 오기 전에는 누군가 자신을 살해할까 두려워 LA 경찰국 올림픽경찰서 근처에서 살았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가 한인타운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 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돌아온 그는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암울한 그림자만이 남았다.    어느 무더운 오후, 지나가던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옷을 반쯤 벗은 채 길거리에 서서 하늘을 향해 소리치는 이강원 목사의 모습이었다.     취재팀이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떨리는 손으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면서 “나 지금 크리스탈(메스암페타민)을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시도했지만 일관성 없고 횡설수설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한인타운의 냉혹한 정글에서 이 목사는 소박한 것에 위안을 얻었다. 바로 한국산 인스턴트 라면이었다.     수년간의 약물 남용으로 치아를 대부분 잃은 그에게 라면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이어주는 마지막 연결고리였다. 편안했던 시절을 떠올리도록 하는 추억의 음식이었다.   그가 텐트에서 라면을 끓여 막 먹으려 할 때, 취재팀이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음식을 내게 가져다준 모든 분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며 기도를 올렸다.   본지 기사에 간략하게 소개된 이 목사의 사연은 LA 시장의 관심을 끌어냈다. 시장실 홍보 담당 김지은 씨는 “캐런 배스 시장이 이 목사의 사연을 듣고 직접 그를 찾아가 셸터 입소를 돕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노숙 생활의 역설       이 목사는 배스 시장이 추진한 핵심 프로젝트인 ‘인사이드 세이프’의 도움을 받게 됐다. LA에 증가하는 노숙자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근처 모텔 등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쉼터뿐만 아니라 음식 등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노숙자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고자 한 배스 시장의 야심 찬 정책이었다.     6월 18일, 시 정부 직원들이 이 목사가 노숙하던 장소를 찾았다. 이 목사는 그가 가진 물건들을 가방 몇 개에 싸서 셸터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가 갖고 있던 가장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이 목사는 취재팀 카메라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이 목사의 영정 사진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셸터에 도착한 지 하루도 안 돼 그는 길거리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셸터에서의 생활을 외려 부자유스럽다고 느끼는 노숙 생활의 역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 특히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셸터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을 어려워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거리의 자유가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왜 다시 길거리로 나왔느냐는 취재팀의 질문에 그는 또 횡설수설했다. 말은 어눌했고 생각도 또렷하지 않았다.     시 정부 직원들은 그런데도 이강원 목사를 셸터로 이전하기 위해 그를 다시 한번 찾았다. 6월 25일, 이 목사는 또다시 입소 24시간 만에 퇴소했다. 시장실 김지은 씨는 “그는 (셸터의) 규칙과 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이 목사는 셸터 내에서 한국 사람들이 곁에 보이지 않자 불안감을 느낀 것으로 나중에 전해졌다.     취재팀은 이 목사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개인적인 호소를 이어갔다.     “목사님, 마약을 끊고, 깨끗한 물로 샤워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딱딱한 길거리 대신 푹신한 침대에서 주무셔야죠.”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저도 들어가고 싶어요. 너무 지쳤어요…”   그의 대답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한때 존경받았지만 쇠약해진 이 목사에게 삶의 의욕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사치가 돼버렸다.   마약과 노숙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LA시에서 이 목사와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시들어 가는 삶은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과 중독의 파괴력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외로운 죽음   지난 7월, 미주중앙일보 뉴스룸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강원 목사가 숨졌다”는 김 신부의 전화였다. “어떻게 숨졌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는데 죽은 건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LA 카운티 검시 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 목사의 사건 번호는 2024-10744였다. 이 목사는 2024년 7월 5일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거의 일주일 동안 그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다. 노숙자들이 얼마나 고립된 곳에서 생활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LA시에서 노숙자는 길거리 어디서나 눈에 띄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삶의 궤적은 커뮤니티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셈이다. 심지어 그들을 지원해줘야 할 관공서는 물론이고 언론의 시야에서도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다.    검시 기록에 따르면 사망 원인은 ‘메스암페타민’에 의한 것이었다. 사망 장소는 ‘텐트’로만 기재됐다.     그의 이웃이던 신소영 씨는 그의 죽음에 연신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 “남의 텐트에서 숨졌기 때문에 이 목사인 줄 몰랐어요. 누군지 알았더라면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의) 썩어가는 시신을 보러 가지 않았을 텐데, 참 안타깝지요.”     소박한 이별     8월 2일, 김요한 신부의 셸터에 조문객들이 모여 이 목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례식 참석자 중에는 노숙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죽음이 낯설지 않은 듯 무덤덤한 표정을 보였다. 혹은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기독교식으로 진행된 장례엔 한국의 유교적 관습도 가미됐다. 그의 영정 사진이 놓인 상에는 낡은 성격 책과 과일, 담배,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소주가 올려졌다. 참석자들은 이 목사의 사진 앞에 현금을 모아 기부하기도 했다.     김요한 신부는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며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이 올라야 하지만 셸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만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때 이 목사에게 도움을 받았고 현재는 다른 노숙자들을 돕고 있는 최광옥 씨가 다음과 같은 추도사를 읽었다.     “세상에서 두드려 맞고 만신창이가 돼 피범벅 된 육신의 전투복을 벗어버리고 주님께 갑니다. 여기 인간 이강원, 목사 이강원, 아버지 이강원, 남편 이강원, 그리고 중요한 하나님의 귀한 자녀 이강원이 주님께 갑니다. 천국에서 안식을 얻고 다시는 헤매지 않고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목사는 세상을 뜨기 전 취재팀에게 “나를 노숙자로 부르지 말라”고 말했다. “천국이 나의 집이고 예수가 나의 구원자”라고 했다.   이 목사의 고단했던 삶은 LA 길거리를 자신들의 집이라 부르는 수천 명의 노숙자가 직면한 가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풀기 어려운 숙제도 남겼다.     이 목사가 운영하던 셸터에 거주했었던 김우식 씨는 “저 예수님 영접시켜 주신 분이고 마약으로 쓰러져서 여기(셸터)에 들어가 피난처를 찾았었다”며 “목사님 편히 쉬세요”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마지막 나날들을 이웃으로 지냈던 신소영 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목사님에 대한 좋은 말은 많이 못 하겠다”며 “하지만 운명보다 먼저 죽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글: 장열 기자, 김영남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영상: 김상진 기자            이강원 목사 길거리 생활 발견 한인타운 LA 한인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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