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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조우네 마음 약국’

‘조우네 마음 약국’ 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조증과 우울증이 있는 40대 가장이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 ‘조우’다. 사랑하는 가족과 5년째 채널을 운영하며 용감하게 자신의 증상과 치료 과정을 나누는 채널이다. 정신병은 수치스럽고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샛별처럼 빛나는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있는 ‘아둘람 공동체’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인 조울증 환자와 가족이 모여든다. 필자도 지난 4월 이분들을 방문했다. 필자가 지난 2년간 ‘수잔 정 마음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정신과 교육용 유튜브를 만든 이유는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인의 자살률을 낮추고 싶어서였다. 조울증은 정신과 질환 중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병이다.   1990년대 이후 두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정신 질환 치료 약물 개발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그중 가장 성과가 있었던 것이 항우울제다. 항우울제는 우울 증상과 정상 감정이 교차하는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이나 불안 증상에 효과가 탁월한 약품이다. 이 질병은 일명 ‘일극성 우울 질환(Unipolar Depression)’ 이라고도 불린다. 조울증을 ‘양극성 질환( Bipolar Disorder)’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한 것으로 ‘조증(북극)’ 과 ‘우울증(남극)’을 오르내리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성의 30%가 경험할 수 있다는 일극성 질환은 흔하게 나타나다 보니 ‘정신 질환의 감기’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우울한 감정과 주요 우울증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비유를 잘못한 것이다. 주요 우울증은 적어도 2주일간 우울하며, 모든 흥미를 잃은 채,수면의 변화, 식욕의 변화,성욕의 감퇴, 집중 불가능,결정 능력 상실과 함께 죽음에 대한 수동적 기원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 자살 기도까지 이른다. 정신병의 감기가 아니라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환자 가운데 약 10%가 자살 기도를 하지만 대부분 약물치료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남자는 약 15%의 유병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비해 조울증, 즉 양극성 질환의 우울 증상은 거의 일극성 우울과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상태다. 조증( mania), 또는 경조증(hypomania) 증세가 오는 병이다. 조증이란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고 의욕이 넘치는 상태다. 말이 빨라지고 업무나 학업 등에 놀랄 만큼 집중을 한다. 그런데 과소비,도박,무모한 투자,문란한 성생활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도 집착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대부분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을 하게 된다. 조증 동안에는 잠도 거의 자지 않는다. 필자가 치료하던 한 환자는 새벽 3시에 로스앤젤레스 시장과의 통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루 3시간만 잠을 자도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필자가 카이저 병원에서 일할 당시 젊고 아름다운 신장 전문의사(kidney specialist)가 자기 환자의 상담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 환자는 중년 남성으로 신장 이식 수술을 한 후 매일 사랑을 고백하는 시나 편지를 보낸다는 하소연이었다. 상담 결과 그는 수면 감소, 성욕 증가 증세가 있는  조울증 환자였다. 이런 환자는 대부분 지적 능력이나 인지 작용에는 큰 지장이 없고 정서적 변화만 심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조증 상태에서는 절대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울 증상이 심할 때 정신과를 찾는 경우, 자신이 과거에 조증이나 경조증이 있었다는 것을 의사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요 우울증으로 진단이 되기 쉽고, 항우울제 처방을 받게 된다. 조울증 환자들이 정서 안정제를  동시에 복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항우울제만을  복용하는 경우 정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mood shifting) 화가 심해지거나 ,더 우울해지고, 자살 충동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항우울제에는 ‘자살 위험이 있다’는 경고문이 있다. 이런 유형의 환자 3명 중 1명은 자살 기도를 하는데 투신 등 사망 확률이 높은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치료가 중요한 질병이다.   조울증은 진단이 어려운 심각한 우울 질환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NIMH(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Disorder)가 “3년 내에만 진단을 받으면 치료 효과가 크다”고 하겠는가.   이 질환에 효과적인 리튬, 항경련제,그리고 항정신제의 사용으로 일반인은 물론 많은 예술가,작가, 과학자들이 행복하고 생산적인 생을 영위하고 있다.   ‘조우네’의 두 형제가 좋은 예다. 이 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받아 자살이라는 파괴적 길로부터 자신과 주변 사람을 보호하자.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조우네 마음 조우네 마음 정신과 질환 주요 우울증

2024-09-04

[마음 읽기] 루틴은 상승

뭔가를 이루려면 루틴을 만들라는 조언들을 한다. 최근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은 달리기와 벽돌책 읽기다. 이외에도 매달 철학 공부하기, 매년 음악제 참석이나 친구들과의 여행이 있다. 이 중 뚜렷한 목표나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은 없다. 눈뜨면 달리고 있고, 퇴근해 집에 오면 책을 읽고 있다. 더욱이 가만 살펴보면 루틴을 만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자원, 시스템,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배려다.   우선 읽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 두꺼운 책을 보기 위해 따로 독서 근육을 키울 필요가 없고, 저자들을 좇아 읽으니 목록의 체계도 쉽게 갖춰진다. 매일 달리는 게 힘들지 않은 이유는 폐활량과 견고한 무릎을 타고난 이유도 있지만,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 공부와 여행은 우정이 자연스레 만들어주었다. 즉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든 일상을 탄탄히 해줄 자원이 얼마쯤은 있을 것이고,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따라 삶의 결도 달라진다.   하지만 루틴 만들기가 이렇게 쉬울 리 없다. 루틴은 틀에 박힌 반복 같지만, 해보면 이건 반드시 속도를 내기 마련이고 곧 도약을 일으킨다. 지루한 반복이 차이를 만든다. 그 차이에서 바로 위 혹은 다음 단계로 튀어 오르는 에너지가 생긴다. 즉 루틴은 뭔가를 ‘키워가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육체든 정신이든 마음이든 모두 루틴을 통해 커진다.   30년 경력의 대만 소설가 천쉐는 오로지 글을 쓸 때만 자기 자신이 된다고 느꼈다. 문제는 그가 가족 부양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부모의 투자 실패로 인한 채무 대납, 생활비 독촉, 애인의 경제적 의존까지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행의 서사 탓에 소설의 서사를 만들어낼 정신머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 그는 필사적으로 루틴에 매달렸다. 옷 장사를 마치고 와 일주일에 2~3일은 2시간씩 글쓰기, 야시장 노점에서 끄적이기, 배송 트럭에서 작품 구상하기, 지방 배달 갈 때 잠자는 모텔에서 스토리를 이어가기. 이것은 특히 젊은 시절의 루틴이었다. 삶에서 단련된 근육이 글쓰기에서 성과를 내니 이를 밑천 삼아 작가로서 좀 더 건강하고 안전한 루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즉 40대가 되어서는 수영과 요가를 하고 건강식을 하며, 영감이 넘쳐도 정해진 분량만 쓰는 패턴으로 바뀐 것이다. 천쉐의 사례를 보면 부존자원이 없는 사람이 오직 노동력의 루틴만으로 가용 자원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도움닫기를 해 더 높은 이상을 향해 가는 곡선이 그려진다.   루틴이 없으면 길이 사라진다. 걷지 않는 길에는 덤불이 자라고, 자신이 닦아온 기량을 바탕으로 쌓은 경험들도 길을 잃는다. 정확히 경험에 의지해 걸을 때라야만 축적이 이뤄지는 이유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뉠 때 방향이 보일 뿐 아니라 갈래길이 찢어지지 않고 서로 이어지도록 다잡는 힘도 거기서 솟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 계속 실패하는 루틴은 ‘매일’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쓰는 것’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만 늘 읽기에 안주하고 있다. 이번 작가만 다 읽으면 쓸 수 있을 거라는 미루기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쓰지 않는 자의 무능력만 마주하게 된다. 이를 위해 몇 개월 전부터 내가 내린 극약 처방은 보도자료 쓰기다. 주변의 많은 편집자가 인쇄소에 자료를 넘기고 책이 나올 때까지 비는 일주일 사이에 보도자료를 쓴다. 나는 무엇이라도 쓰자는 심정에 원고의 줄거리와 감상이 가장 생생할 때인 2교 과정에서 보도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소재와 주제가 정해져 있고 규격마저 융통성 없는 이런 안내문을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를 다그치는 데 효과적이고, 자책과 자학의 느낌도 좀 가라앉는다. 어쩌면 강조와 재배치, 요약도 나름 쓰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고. 게다가 이 루틴이 좋은 이유는 기억이 살아 있어 원고를 되짚어갈 필요가 없기에 하루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만들고 싶은 루틴은 말하기다. 48년 동안 전혀 중시하지 않던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의지가 새로 생겼다. 말은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글과는 달리 현장의 임기응변을 높여준다. 쓰기와는 다른 차원의 깊이를 지닌다. 나에게 말하기의 루틴은 새로운 분야로의 진입이라기보다 읽고 쓰는 것을 확장하는 성격이다. 말하기가 다시 쓰기로의 되먹임이 되길 바라면서.   루틴은 매일 반복되는 짧은 행위를 이어 붙여 하나의 긴 것을 만들어낸다. 그런 연속선상에서 정신은 이론을 일궈내고, 행동은 체질을 바꿔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가게도 한다. 이를테면 책 읽기라는 루틴으로 손에 들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다음에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으로 옮겨가게 했다. 오래 미뤄왔던 들뢰즈 읽기는 이런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필연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루틴 상승 모두 루틴 루틴 만들기 2시간씩 글쓰기

2024-08-28

[손원임의 마주보기] “나는 놀라워!”

영어의 “I am amazing!”, 즉 “나는 놀라워!”라는 말은 좋은 모토로 삼을 만하다. 아침에 침실에서 나오면서 이 한마디만 해도,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우리의 뇌가 참으로 신기하게도 거짓말에 아주 쉽게 넘어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자신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암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살면서 때때로 그들을 지탱해 줄 삶의 신조 혹은 ‘모토(motto, 금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빛의 지혜’다.     삶의 모토라 하면, 가정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교훈 즉 가훈을 들 수 있겠다. 이제는 핵가족이나 싱글족이 일반화되면서, 더 이상 가문의 지침, 즉 가훈, 가헌, 가학, 가법이란 말들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경향도 팽배하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엄격하고, 답답한 틀 안에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일부 청소년들은 사회의 유명인사, 스포츠인, 다양한 장르의 연예인이나 가수를 행동과 삶의 모델 대상으로 삼고 따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논리적으로 정말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충성하고 따르며, 결국 전 재산을 바치고 배우자와 자녀들의 소중한 삶까지 희생시켜버리고 마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정치와 성 정체성, 문화적 성향 등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주장과 신념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 간의 거리가 벌어져 버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철학도, 종교도, 사상도, 교리도, 가훈도, 모토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주장하고 널리 퍼뜨리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설득력 있는 ‘흑백논리’ 자체에 더 이상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디에나 ‘회색지대(grey-zone)’가 존재한다.” 즉 우리의 삶을, 인생을 단 한가지의 논리로, 잣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동안 사람들이 충성하고 따르면서 ‘절대적 진리’로 믿었던 많은 것들이 시대적, 사회적 시각의 차이에 불과했다고 밝혀졌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상황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거짓과 오류로 드러나거나, 인류 문화적 관점과 설득력 있는 논변과 추론, 사조나 유행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과장, 축소되어 기술되고 평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히 우리 인간의 이성적인 인간 뇌는 ‘유용성’도 보인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게 맞고, 또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저 사람 말이 맞다. 이를 “너무 귀가 얇다”고 비판할 수도 있으나, 때로는 이렇게 인생의 사안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다소 회의적이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번은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성당 앞을 지나다가, 아주 우연히 한 백인 남자 추기경(cardinal)과 마주쳤었다. 아마도 무슨 커다란 이벤트가 막 끝난 모양이었다. 와우, 너무나 놀랍게도! 나는 그 고귀한 분을 바로 코앞에서 아주 가까이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악수를 청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냥 이내 그 순간을 지나쳐 버렸다. 물론 그때 추기경의 손을 잡고 “신의 축복”을 받을까 말까 몇 초 동안 잠깐 망설였지만, 마침내 그 생각을 접어버렸던 것이다. 바로 조금 떨어져 있던 다른 여성분이 그 기회를 잡아 추기경과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거 아는가? 이후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니, 아주 금방 추기경도, 축복도, 또 그 상황도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안타깝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나도 이제 나이 들고 늙어가는 모양이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 하지 않던가. 이 세상은 참으로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논리가, 교리가, 이론이 상존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멍하게 생각을 놓고 남들이 늘어놓는 거짓말에 속으며 살 수만도 없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사회의 흐름을 읽으면서, 자신의 합리적인 모토를 가변적, 유동적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와닿고,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나도 겸허한 마음으로 희망찬 모토를 한번 정해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니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 왜냐하면 “나는 놀라우니까!”말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위스콘신대 교육학 정신과 마음 유명인사 스포츠인

2024-08-06

[삶의 뜨락에서] 마음의 거스러미

발톱 옆에 거스러미가 생겼다. 스치기만 해도 따가워 신경이 쓰인다. 살짝 당겨보니 확 아린 것이 자칫하면 죽 찢어지게 생겼다. 일단은 그냥 두어 보기로 하지만 종일 거슬린다. 거슬려서 거스러미인가. 손톱깎이로 잘랐다. 그런데 며칠 만에 그곳에서 자른 부분이 자라나 또 아프다. 이번에는 손톱으로 뜯어 결국 피가 나고 말았다. 조금 살살 다룰걸. 딴생각을 하다 발등을 계산대 모서리에 콩 부딪쳤다. 외마디를 내지르고 깽깽이를 뛰면서 순간의 통증을 이겨냈지만 한참 뒤에 내려다본 발등의 색이 퍼렇게 변했다. 그제야 욱신대는 것 같기도 하고 뼈에 실금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걱정되어 괜히 절룩이며 조심했다.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생채기와 멍울도 인지한 순간부터 거치적거리고 신경 쓰이고 아프다. 슬며시 궁금증이 들어선다. 그간 몰랐던 마음의 티끌을 우연히 발견했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영 부담스럽게 알아 버렸다. 과연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멍과 거스러미는 어떻게 어루만지고 있을까.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루시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25년을 재직하고 62살에 은퇴했다. 아직은 젊고 힘이 넘친다. 일주일에 3일 운동하고 가끔 복지회관에서 봉사 활동하고 94살 친정어머니 집에 들러서 이야기하고 일주일에 두 번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의사에게 체중조절 침을 맞는다. 입으로는 바쁘다고 하지만 너무 일찍 퇴직한 걸 후회한다. 일할 때는 상사의 잔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동료와도 사이가 서먹하고 출퇴근도 번거로웠지만 퇴직하고 보니 귀찮게 여겼던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시간이 많으니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는 25년 이상 근속하면 세계 어느 곳이든 비행기가 무료다. 1주일씩 현지 관광 경비도 많이 들고 호텔비 하며 씀씀이가 커져 퇴직금을 야금야금 꺼내 쓰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루시가 가게에 오면서 색다른 이야기, 내가 모르는 미국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경험, 유머 같은 것을 좋아했다. 가게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좀도둑도 지켜주고 나도 일하면서 심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루시가 가게에 와서 간섭하고 내 시간을 빼앗는 느낌이 들면서 거슬렸다.   동네 소식이 빠른 루시가 가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큰 교회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쓰지 않는 물건을 팔겠다고 했다. 하루 자리 사용료가 30달러. 미국 사람들은 이사를 하면서 거라지 세일을 한다. 그 사람들이 살면서 요긴하게 썼지만 더 이상 필요치 않아 세일을 한다. 가끔 좋은 것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행운도 있지만 요상한 물건을 누가 살까 하는 의구심도 많다. 오늘 첫날인데 80달러를 팔았다고 좋아한다. 무엇을 팔았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부터 모은 동물 인형이다. 이제는 방구석에 쌓아놓은 인형들이 거슬려 치워버렸더니 속이 시원하다고 털어놓는다. 다음 주는 우리 가게에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주겠다고 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옷들은 언젠가 찾으러 오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쓸 만한 옷들이 제법 많다. 테이블에 펼쳐놓고 접어서 옆에 놓고 줄을 만들어 걸어 놓으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사갈 것 같다. 눈에 띌 때마다 정리해야지 외치며 마음속으로 무척 거슬렸는데 빈자리를 쳐다보니 막혔던 파이프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이제는 루시와 조금 거리를 두었다. 한결 편해진 나의 마음을 지킴과 동시에 오히려 가끔 듣는 루시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거스러미도 생긴 이유가 있지 않을까. 건조하다든지 거칠게 다루었다든지. 타인의 문제점에는 명확한 훈수를 두고 자처해 상담해 주기도 하면서 왜 내 마음에만 가혹한지. 발톱 옆에 거스러미도 슬금슬금 달래 뜯을 걸 혼자만의 괭이질이 너무 힘들거나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거스러미 마음 유나이티드 항공사 우리 가게 계산대 모서리

2024-08-05

[등불 아래서] 도떼기시장

주변에 '세일'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거나 보이면, 평소에 사려던 물건을 구매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지만,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속이 뜨끔하기도 한다. 요즘은 발로 품을 팔아 세일을 찾아다니지 않고 손가락이 고생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세일을 찾아 인터넷을 기웃거리다가도 옛날 시장같이 좁은 골목길에 좌판처럼 물건들을 늘어놓고 북적거리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중에도 이것저것 없이 물건을 쌓아놓고 어깨를 비벼대며 걷던 요란했던 시장이 있었다. 바로 '도떼기시장'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구경처럼 따라다닌 그곳은 없는 것이 없었고, 쌓아놓은 물건들은 어린아이의 눈에 신기 그 자체였다.     제일 놀라웠던 순간은 그렇게 정신없이 쌓아놓은 물건들 속에서 기가 막히게 찾는 물건을 내어놓을 때였다. 한겨울에 노란 여름 티셔츠를 찾던 손님도 놀람이었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쌓인 옷들 속에서 밑장을 빼던 아저씨의 무심한 손길도 아이에게는 경이로움 자체였다.   우리 마음도 도떼기일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분명한데 아무렇게나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도무지 풀기 어려운 때가 있다. 선비처럼 고고한 척하지만, 사실은 난장을 치는 중이다. 내 마음이지만 모르는 속이 더 많기 때문이다. 평안은 어디 던져 놓았는지 찾을 길이 없고, 못난 내 얼굴만 광고지처럼 마음에 가득 붙어있다. 쌓아놓은 물건들은 도통 알아볼 수조차 없는데 좌절이라는 상표에 실망이라는 가격표만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끌벅적하고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듯해도 속을 아는 이에게는 정돈된 서랍이다. 내게는 엉켜진 실타래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물건이라도 내 속을 정말 아는 이라면 그 속에서 사랑이라는 옷을 찾아내고 기쁨이라는 넥타이도 꺼낼 수 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살펴보셨고 나를 아십니다. 내 내장을 지으시고 나를 만드셨습니다. 내 생각을 밝히 아시고 내 모든 길도 아십니다. 보소서 내 혀의 말 중에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옷 가게가 분명했는데, 어머니는 뜬금없이 스팸을 찾으셨고, 눈을 슬쩍 맞춘 아저씨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이 분명한 통조림을 가게 뒤쪽에서 가져오셨다. 정말 없는 것이 없구나!   내 마음속에서 평화와 위로를 찾아내실 뿐 아니라, 내게는 도무지 없을 것 같은 용기와 승리까지 들고 오신다. 정말 없는 것이 없구나! 이 주님이 나를 위해 사랑하는 아들까지 꺼내 주신 분이다.   나에게 어지럽기만 한 내 마음은 주님께는 정돈된 서랍이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도떼기시장 우리 마음 가게 뒤쪽 옛날 시장

2024-08-05

[문장으로 읽는 책] 흔들리는 마음에게

살레시오는 매일 밤 ‘죽음의 리허설’을 하라고 권해요. …어느 누구도 다음날 뜨는 해를 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매일 침대에 들어 잠을 청하면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눈을 감으라는 거지요.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삶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벗 삼는 일밖에 없어요. 그렇게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죽음의 리허설을 하다 보면 삶과 죽음이 하나의 통로에서 서로 포옹하게 되지 않을까요?     김용은 『흔들리는 마음에게』   그렇게 매일 밤 죽음의 리허설을 한다면, 매일 아침 우리는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인 저자는 “온유의 대명사이며 마음영성의 대가인 살레시오 성인이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무슨 말을 했을지 고민해봤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영성이란 “나로 실재하는 것, 나로 존재하도록 하는 것”, 혹은 “영혼의 음식”이다. 쉬운 언어로 종교를 넘어 마음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좋은 인간관계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열쇠이며 행복이잖아요. 그렇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도하는 행위라는 생각도 들어요.” “감정은 잠깐 찾아온 손님인데 마치 나인 양 나를 보호하려 하다가 결국 미움의 감정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버린 겁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마음 살레시오 수녀회 살레시오 성인

2024-07-24

[잠망경] 왜 소리를 지르는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전 병원에 ‘Code Green’이 확성기로 울린다. 환자도 병동직원도 코드그린이 자기네 병동이 아니기를 바라며 귀를 쫑긋 세운다.   코드그린은 정신과적 위기상황을 알리는 응급 시그널이다. 인근 직원들이 급히 서둘러 해당 병동으로 운집한다. 환자가 직원을 때린 경우에도 화급하게 터지는 코드그린.     교통신호등 ‘green’은 직진 또는 우회전을 해도 좋다는 마음 편해지는 신호인 반면에 ‘red’는 차를 정지하라는 위험신호다. 나는 가끔 위기상황을 ‘Code Red’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하며 현장으로 뛰어간다.   관료적인 단어선택은 늘 부드러움을 우선으로 삼지만, 사실 코드그린에 반응하는 모든 직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확성기가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것만으로 모자라는 듯 아나운서 자신 또한 힘껏 소리를 칠 때가 많다.   어릴 적 아버지와 새벽녘 뒷산 약수터에 가면 어김없이 야호! 하며 소리치던 어르신네가 떠오른다. 귀청이 떠나가라 울리는 코드그린만큼 우렁찬 소리! 왜 저 사람은 소리를 지르냐고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약수를 마신 후 기분이 좋아서라는 것. 대중탕 냉탕에 들어가 엄숙하게 앉아서 “동창이 밝았느냐~~♪” 하며 판소리 치듯 노래하던 동네 시니어 시티즌과 마찬가지 이유다.   우리가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강한 감정을 우아하게 컨트롤하지 못해서 얼떨결에 나오는 소리다. 나도 당신도 평생을 떨치지 못하는 동물 왕국에 성행하는 감성(感性)의 약점이다.   ‘Bonding, 유대감 형성’에도 큰 소리가 도움이 된다. 더 자세하게는, ‘re-bonding, 유대감 재형성’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장면, 아파트에 강아지를 오래 혼자 있게 한 후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재회하는 순간의 감격이 떠오른다. 강아지가 항의를 제출하듯 큰 소리로 컹컹 짖어대고 끙끙 신음하며 주인에게 덤벼드는 모습이 애절하다.   아야! 하며 소리치는 순간은 본능적 현상이다. 예견된 고통이 아닌 부지부식간 나오는 소리. 좌절감에서 저절로 끙, 하며 터지는 신음도 마찬가지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 또한 감성 혹은 감각에 휘둘리는 강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말에 소리치다, 외치다, 고함치다, 부르짖다, 아우성치다, 비명을 지르다, 환호성을 올리다 같이 큰 소리를 잘게 분류하듯이 영어에도 ‘yell, shout, clamor, exclaim, scream, roar’ 등등이 있다. 이들은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말로서, 표현 속에 숨어있는 감정 상태가 잘 구별되지 않고 같게 느껴지기 일쑤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때와 기뻐서 내지르는 탄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이들도 강아지도 얼른 알아차린다. 그중 미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scream’인데, 북구와 고대영어에서 기원한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를 의미했다. 우리 토박이말 ‘새되다’는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는 뜻. 앙칼진 음성을 연상시키는 ‘scream’이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쓰인다.   우리 속어에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지. 서부영화에서 동네 사람들이 한밤중에 보안관실 앞에 횃불을 들고 몰려들어 범인을 당장 (불법으로) 교수형에 처하라고 소리치며 떠들어댈 때 용감하고 머리 좋은 보안관이 하늘을 향해 땅! 총을 쏘면 세상이 조용해지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보통 크기, 고운 말로 통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군중심리의 단면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소리 사실 코드그린 bonding 유대감 직원 마음

2024-07-23

[마음 읽기] 책의 오류와 수치심의 역사

최근 영미권에서 마크 솜스의 편집으로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이 출간됐다. 그동안은 제임스 스트레이치 판본이 표준으로 인정받았는데, 여기에 솜스가 연구 주석을 추가하고 56편의 미발간 에세이 및 편지를 보태 새롭게 편집한 것이다. 올해 카프카 100주기를 기념해 출간된 안드레아스 킬허 편저의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 역시 기존 판본에서 누락된 카프카의 그림들과 불투명했던 자료의 경로를 메운 노고가 빛난다. 막스 브로트가 담당한 카프카 유고는 늘 독자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니 말이다.   책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영속성을 띠는 터라 그 안에 담긴 오류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하지만 개정판 출간에서 보듯 우리에게는 오류를 고칠 기회가 이따금 주어진다. 위의 두 책은 후세대 연구자들이 개정한 것이지만, 대체로는 저자나 역자가 생전에 자기 문장을 직접 매만진다. 그중 새로운 원고를 쓰며 성과를 내놓기보다 이미 출판된 저서를 끊임없이 들춰보며 수정하는 이의 전범으로는 애덤 스미스를 꼽을 수 있다. 『도덕감정론』의 저자 스미스는 글을 천천히 쓰는 사람이었고, 앞서 쓴 내용을 최소 여섯 번은 되돌릴 만큼 심사숙고하는 유형이었다.   학문적 엄밀성은 단번에 갖춰질 수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논리와 증거 불충분성을 들며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점을 보완할 임무를 지닌다. 스미스의 원고를 향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가장 강력한 우정을 담아 요구했다.   “나는 모든 종류의 공감은 필연적으로 즐거운 것임을 당신이 더 상세하고 충실하게 입증했으면 좋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99쪽과 iii에서 당신은 이런 서술에서 벗어나 있고, 이를 당신의 추론과 뒤섞었습니다. 이 감정을 수정하거나 설명하고, 그것을 당신의 체계와 조화시키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흄은 스미스를 아껴 그의 명예를 보호하고자 『도덕감정론』을 고쳐 쓰라고 재촉했다. 물론 수정은 뼈를 녹이는 일이다. 우선 자기 오류를 직시하는 건 자괴감이 들고, 이미 출간된 책에 새로운 내용을 삽입하고 연결하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작업도 없기 때문이다. 인쇄업자(편집자)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 또한 스미스에게 불안과 수치심을 주었을 것이다. 스미스의 인쇄업자는 예컨대 ‘불인정’을 ‘인정’으로, ‘비효용성’을 ‘효용성’으로 잘못 썼다. 이건 제3판에서 대부분 바로잡았지만, 제6판까지도 오류는 10개 이상 남아 있었다.   저자, 역자, 편집자는 자신이 저지른 오류를 알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 여건상 종종 이를 대수롭잖게 여기거나 모른 척한다. 개정판 작업을 제안하는 쪽은 주로 저자다. 하지만 출판사는 이 일에 섣불리 착수하지 못한다. 내용이 추가돼 페이지 수가 늘면 서점에 데이터베이스 등록을 다시 해야 하고, 편집과 디자인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 연 매출의 50% 이상은 신간에서 달성되므로 편집 역량은 여기에 투입될 수밖에 없고, 실상 구간에 오류가 있더라도 판매는 문제없기 때문이다.   우리 출판사 경험을 말하자면, 『홍차수업』은 저자의 홍차 산지 조사와 공부에 따른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개정판을 펴냈는데, 이는 이 책이 매년 1000권 이상 나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다른 출판사에서 절판됐다가 우리가 재계약해서 펴낸 책이 있다. 우리에겐 신간이지만 내용상 개정판이다. 이후 몇 년이 흘러 저자는 인용한 원자료에서 다시 오류를 발견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판을 펴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저자는 “자기 오류를 볼 때 학자는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번역자들도 종종 개정판 작업을 한다. 과거에 자신이 번역한 것을 뜯어고치기도 하지만, 다른 번역자가 했던 작업이 유효 기간을 다해 재번역을 하기도 한다. 학자 J는 전공 관련 번역서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정오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곤 한다. 자신이 만든 책에서 빼곡한 오류를 발견한 편집자들은 J에게 종종 개정판 번역을 의뢰하곤 한다.   번역의 생명은 보통 25년쯤이라 하니 개정판 작업은 필수다. 시대가 바뀌면서 용어가 달라지고, 전통적인 종이책 독자와 책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자들이 요구하는 문장의 호흡이나 길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책 마케팅에서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는 펀딩이다. 목표 금액을 설정하고 혜택을 주어 신간의 독자를 모으는 것인데, 서점 노출과 사전 홍보의 효과가 있다. 개정판 역시 펀딩이 가능하다. 그러자 몇몇 출판사는 매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개정판 펀딩을 추진했지만 정작 담당 번역가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주지 않았다. 개정판을 펴내는 것의 목적이 완벽을 기하기 위함보다 홍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그 의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수치심 오류 개정판 작업 자기 오류 개정판 출간

2024-07-04

“마음의 고향 시카고를 떠나게 돼 아쉽습니다”

“시카고서 계속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들 옆에서 지내셨으면 한다는 딸들의 권유로 뉴저지로 옮기게 됐습니다. ‘마음의 고향’ 시카고를 떠나는 게 한국 고향을 떠날 때보다 더 아쉽습니다.”   시카고 지역의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인 이종형 목사(83)가 내달 초 자녀들이 거주하는 뉴저지 주로 이주한다.     이종형 목사는 25일 시카고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서 “중서부 특유의 여유로움과 푸근하고 넉넉한 이웃이 있는 시카고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미국에 온 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산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시카고는 모든 게 다 좋았습니다. 시카고를 떠나게 돼 많이 아쉽습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지난 30년 간 시카고서 받은 사랑과 격려, 기도를 마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며 “시카고 한인들은 여느 지역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방면에 걸쳐 능력이 뛰어난 분들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추장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단합한다면 최고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고 전했다.     경북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종형 목사는 1974년 미국으로 유학, 예일대서 신학석사, 버지니아 리치몬드 소재 유니온 신학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Ph. D를 취득했다. 이후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뉴욕시 퀸즈 지역 한인교회에 부임, 10년간 이민목회를 하던 중 지난 1994년 시카고 한미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옮겨 2007년 3월 정년 은퇴할 때까지 목회를 이끌었다.     미국장로교단(PCUSA)에 소속된 이 목사는 은퇴 후에도 에티오피아에서 3년간 교육선교사로 자비량 사역을 했고 담임목회자가 비어 있던 필라델피아, 미네소타, 디트로이트 지역 교회 5곳의 초빙을 받아 임시 담임 목사를 맡기도 했다.     지난 2018년 시카고로 돌아온 이 목사는 최근 3년 간 은퇴목사회 부회장과 회장을 맡아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후배 목회자들을 이끌어 왔다.   은퇴 목사회 총무 안주영 목사는 “이종형 목사님은 시카고 1세대 목회자로 교계뿐 아니라 지역 한인사회서 존경 받던 분”이라며 “시카고를 떠나시게 돼 참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시카고 은퇴목사회는 지난 20일 버논힐스 소재 한 공원에서 개최한 연례 피크닉 겸 야외 예배서 이종형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송별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임마누엘 장로교회 안창일 담임 목사가 설교를, 교우들이 점심과 오락 순서를 맡아 봉사했다. 또 YH영신이 제공한 선물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은퇴목사회는 지역교회에서 격월로 모여 예배, 친교, 월례회 및 특강을 갖고 선교사역, 일일관광 또는 교계와의 연합행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노재원시카고 마음 시카고 한미장로교회 이종형 목사님 시카고 지역

2024-06-26

[잠망경]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그룹테러피를 시작하면서 투덜대듯 말한다. 내가 시시때때로 혼자 궁금해하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그룹에 우울증에 관하여 말하면 그룹멤버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분노에 대하여 언급하면 노기를 띤다. 평화에 대하여 말하면 장내 분위기가 고요하다.   그룹을 시작할 때 내가 내세우는 우울증, 분노, 평화 따위는 하나의 화제(話題, 얘깃거리, 토픽)일 뿐인데 이것은 참 이상하지 않는가.   범죄를 화제로 삼으면 그룹멤버들이 범죄자가 되고 신을 언급하면 멤버들이 모두 신이 된다는 말인가. 그룹 리더가 최면술사인가. “그룹=그룹 토픽 자체”? 민중의 리더 역할을 하는 정치가는 최면술사인가.   언론을 ‘medium’의 복수, ‘media, 미디어, 매체’라 한다. 옷 안쪽에 찍혀 있는 ‘medium’이라는 표시는 옷의 크기가 중간 정도라는 뜻이다. ‘medium’에는 영매(靈媒), 무당이라는 의미도 있다.   매체(媒體), 영매(靈媒), 매파(媒婆) 같은 말에 나오는 ‘중매 媒’라는 한자어를 살펴보시라. ‘여자 女’와 ‘아무 某’가 이루는 합성어다. 중매는 ‘아무+여자’, 즉 여자라면 아무나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당신은 작은 탄성을 지를 것이다.   TV, 라디오 방송, 신문, 유튜브 같은 언론 미디어가 영매 역할을 함으로써 대중을 홀리고 리드하는 사태를 상상한다. 그런 매체를 나 또한 구독하고 애독하고 시청하며 흠뻑 빠져 홀려 있는 상태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큰 바위 얼굴’이 떠오른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평생을 바라보며 기다리며 흠모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의 얼굴이 큰 바위 얼굴로 변모한다는 스토리. 이런 메커니즘을 정신분석에서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라 부른다. 자신이 다른 사람이나 어떤 대상과 같다고 보는 멘탈메커니즘이다.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훌륭히 키우기 위하여 이사를 세 번 했다는 스토리에서 우리는 환경의 영향에 대하여 배운다. 순간적인 타인의 생각도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다. 감수성이 예민한 상태 혹은 자극의 종류에 따라 강하게 발생한다. 정신상담을 받다가 정신상담사의 언어습관과 사고방식을 닮아가는 현상도 너새니얼 호손의 어니스트처럼 ‘동일시’ 메커니즘이다. 내가 당신을 보는 순간 나는 당신이 된다.   대학 시절에 신동집(申瞳集: 1924~2003)의 시 ‘오렌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신도 기억하겠지만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네 번째 행을 주목한다. 근 반백 년을 정신과를 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다가 내가 읽는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 또한 잘 읽는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체험한다. 시인은 이 구절을 나중에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 -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똬리를 틀고 있다./ (후략)…”   그룹 리더와 멤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어떤 정서를 화제로 삼는 순간에 그 정서는 즉각 제조되어 감수성이 강한 멤버들에게 즉시 전달된다. 리더가 시치미를 뚝 떼고 침묵한다면? 그래도 그의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 말을 믿어다오. 내가 위험한 상태일 때 오렌지도 위험한 상태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상태 마음 상태 그룹 리더 그룹 토픽

2024-06-25

[속풀이처방] 회개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상담하면서 신앙적 언어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즐거움이 아니라 짐으로 느끼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병적인 신앙관이 신자들을 병들게 하고 있어서 지면을 빌려 도움을 드릴까 한다.   회개인가, 연극인가   회개란 무엇인가? 교회에서는 회개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외치면서 회개하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겁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약시대에 회개하는 사람들은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옷을 찢는 등의 외적 행위로 자기가 회개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었다. 지금도 자기 몸을 때리는 등의 행위를 진정한 회개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외적인 회개 행위는 종교적 연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과도하게 하는 경우일수록 그 기간은 더 짧아진다. 이들은 그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자기만족을 하기 위해 일회적이고 외적인 행위에 집착하기에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연극성 성격장애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삶의 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학적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바다의 쓰레기를 다 없앨 수 있을까   회개는 개과천선하듯이 자기 마음을 완전히 정화하는 것,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종교인들도 많다. 이런 종교인들은 자기는 마음이 맑은 사람인 양 연출을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항아리 물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바다는 오염물질과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버려서 바다가 오염된 것인데 이런 현상은 마음도 비슷하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 그리고 바다와 같은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의 정보들은 일단 의식에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의식에서 버려진 것들이 가는 곳이 바로 무의식이라는 바다이다.   기도나 명상을 할 때나 중요한 순간에 불쾌하거나 불순한 잡스러운 생각들이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무의식에 버려진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떠올라서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다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바다의 쓰레기를 혼자서 다 없애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유아적 전능감에서 비롯된 망상이다.   신자들에게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종교인은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박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심리적으로 결벽증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들이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에 홀리지 말고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회개는 자기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들도 많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왜 아무 생각이 없느냐, 왜 달라지지 않느냐며 야단치는 종교인들. 이들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가학성애자들이다.   마음 강제로 바꾸려다 걸린 강박증   사람의 마음은 기도하면 변화하는가? 산에 올라가서 도를 닦으면 달라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몸은 열심히 노력하면 변화가 생기지만 마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과천선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사람들이 후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바뀌지 않는 자신을 미워하다가 종교적 우울증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들은 다 구원받아도 자기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울어대는 구원 불안증에 시달린다. 심지어 지옥불에 던져지는 종교적 망상에 빠지기도 하고, 사이비 교주처럼 자기가 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추종자들을 속이는 종교사기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변화하라고 강압적으로 말하는 종교인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신자들에게 회개를 강요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난하게 살 것을 요구하면서 주님께 헌금을 더 바치라고 강요하며, 삶에 쫓기는 이들에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겁박하는 종교인들. 이렇게 회개를 강요하는 종교인들을 종교적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교회 밖의 삶을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적 갑질을 일삼는데,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사는 척하면서 선민의식을 가진다. 이들은 신자들을 회개 강박증이란 신경증적 증세에 시달리게 한다.   회개란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 것, 딱 그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부끄러움이 지나쳐서 수치심, 심한 죄책감을 가지게 되면 자기가 자기를 처벌하는 자학적 신앙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화폐에도 양화와 악화가 있듯이 종교인들도 좋은 멘토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잘 식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병적인 삶으로 빠질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속풀이처방 회개 부끄러움 회개 행위 마음 강제 자기 마음

2024-06-16

[마음 읽기] 비자유 속에서 살아가기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언어, 사물, 세계가 몹시 낯설어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 때문에 나는 자신을 지키는 방편으로 책을 몇 권 챙겨간다. 수많은 유적지와 예술작품을 단번에 해독하지 못하고, 이미지에 압도되며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 비틀거릴 때 현실감각을 되돌려주는 것은 책이다.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탐험하는 책이라도, 신기하리만큼 그것은 내면과 대면하게 만든다.   얼마 전 나는 열흘간 그리스로 떠났다. 여행지에서는 그 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전 준비로 그리스 비극과 미술책을 읽은 터라 고민이 됐다. 이럴 때 대안은 숙제로 남아 있던 책을 읽는 것이다. 올해 들어 넉 달 동안 내가 읽었던 작가는 블랑쇼, 바르트, 베케트인데 이들은 모두 한 작가의 이름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다.   나는 김창석 번역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11권)를 갖고 있었고, 10여 년 전 읽으려고 두 번 시도했다가 1권을 넘기지 못했다. 마침 소설가 김연수가 어느 지면에서 자신이 프루스트를 읽으려다 부딪힌 좌절을 털어놔 나름 위로가 됐지만, 이것은 ‘가짜 위로’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일의 실패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어물쩍 다른 사람의 경험까지 끌어다가 마치 그 대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치부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프루스트의 경우는 분량). 그러던 중 조지 스타이너의 비평집을 읽는데, 그가 결정적인 말을 했다. “프루스트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토록 뛰어난 비평가의 삶을 빚은 작가로 또다시 언급됐기에 최신 판본인 김희영 번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 13권)를 샀고, 여행 가방에 1, 2권을 담았다.   독서 행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비(非)자유적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기다. 운율법에 속박되면 뛰어난 시어가 나오듯이, 한 가지에 구속되면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다. 비행기와 숙소에서 다른 어떤 선택지 없이 나는 오직 프루스트만 읽어야 했다. 19세기 파리 사교계와 귀족들의 세세한 관습에 현대의 시민인 나는 가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지만, 프루스트라는 거대한 세계를 향한 마음이 그 어떤 것도 방해물로 여기지 않게 만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10여 년 전의 나는 간데없이 이 책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자는 늘 과거의 자신과 대면한다. 내가 어떤 검증된 거대한 세계에 섣불리 몸 담그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세계의 문제라기보다 나 자신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수많은 외부 세계에 시선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거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거부당하는 쪽은 우리다.   프루스트의 책 1권을 조금 읽은 사람들은 늘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이 불러일으키는 향수를 언급하고, 좀 더 전체적인 틀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기억’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근대 역사의 면면, 침윤하는 현대성, 알록달록한 계급사회의 풍속, 예술과 미학에 대한 비평적 관점, 반유대주의, 사랑과 동성애, 신경증의 발견, 언어의 변질, 기후와 공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우는 시대 상황까지 모두 담고 있어 결코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다. 이 커다란 세계에 들어선 나는 솔직히 말해 이제야 독자의 자격을 얻은 것 같다. 그 전에 읽은 책들은 이 자격증을 얻기 위한 관문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해 깨달은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허가증과 자유를 손에 쥐려면 반드시 ‘비자유’를 관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고는 습관과 버릇의 결을 재정돈할 수 없다. 일상에서 원심력을 일으키는 요소는 사방에 있어 ‘자유’와 ‘의지’(의욕)라는 말로 꾀기에 우리는 구심력을 갖기가 무척 어렵다.   구석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독자만이 커다란 세계를 얻는다. 거기에는 포기된 수많은 세계가 있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하나둘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나만 접한 것이 아니어서 수많은 인생 선배가 표식을 남겨둔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누구나 볼 수 있어도 그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갈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샛길이 많을 뿐 아니라, 얼마 안 가 뒤돌아 나올 만큼 우리의 성정은 늘 성마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책을 읽어온 뒤 비로소 최근에야 나는 독자의 역량을 조금 갖췄다고 느낀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전집의 7권을 읽기 시작하려는 지금, 이 힘을 유지해주는 것은 새벽과 밤, 주말이라는 ‘시간’임을 안다. 시간은 결국 공간을 만들어낸다.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기억 속, 마음속 공간. 거기서 자아는 하나의 통합된 상을 갖게 되고, 삶이 연장되는 것은 단순히 길이를 늘이는 게 아니라 수직의 깊이를 얻는 것임을 알아차린다.마음 읽기 어려움 재정돈 외부 세계 마음속 공간 자유적 상황

2024-06-0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남겨진 바람이 되는 것이네

알프스의 숨겨진 보석 동쪽 계곡 돌레미티(Dolomiti)로 가는 길은 너에게로 가는 길과 닮아있네. 기억나지 않는 일을 기억하려는 시간 동안 나무는 숨 쉬지 않았고 들꽃은 개화를 멈추었네. 2.000 고지 높이의 산행은 숨이 차지 않았네. 보는 사람들과 누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난 왜 마음이 아파지는 걸까?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뒤돌아보지 않는 삶을 살 순 있을까? 오랜 시간 누리고 살지 못해 내게 또 미안하네. 하늘은 산등성이를 내려다보고 산에는 작고 앙증한 꽃 비올라, 꽃 한 송이 흐드러진 마음 보라색 꽃잎으로 펼쳐 보듬고 보라색 메아리, 비올라 꽃 한 송이.   산을 오르다 보면 산이 나를 데리고 가네. 푸른 가지 흔들며 오라 하네. 산에 잠깐 머무는 동안 발끝으로 수액이 흐르고 여러 장의 꽃잎이 피어나네. 하늘이 맞닿은 곳에 구름계단을 만들고 한참을 오르다 보면 덩그렇게 산봉우리와 구름과 나만 남았네. 맞은편 산등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나는 이곳에, 또 저곳에도 살고 있었네. 버려진 땅은 없었고 눈이 녹아 내리는 물가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네. 소리가 사라져 버린 땅, 그림자 지나간 숨결과 걸음 흔들어 깨워도 기척이 없네. 누구는 집으로 가고, 누구는 집을 떠나고 있네.   산을 내려오면서 집으로부터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네. 차창 밖으로 너를 보고 있네. 너는 산 정상을 향해 걷고 있네. 멀어지는 너를 돌아다보았네. 햇살 아래 사라져 버린 너는 눈 덮인 알프스로부터 내려온 보라색 메아리가 되었다. 나의 사랑이 죄가 된 날부터 산 속에 피어난 비올라 한 송이 안개처럼 내 속에 살아가고 있네.   독수리의 높은 창공을 날았네. 아래는 아찔했었네.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는 게 신기했네. 성당의 뾰족한 탑 위 십자가 고공 낙하를 시작했네. 양팔로 방향을 조절하고 오른발은 엑셀레이터, 왼발은 브레이크 도착한 곳은 알프스 산골 마을, 작은 돌멩이로 높지 않은 담장을 쌓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알프스 작은 정원엔 들꽃이 피기도 하였네.   한때는 사랑에 목이 메었네. 밤낮 그의 이름에 토씨를 달고 그의 주변에 꽃씨를 뿌렸네. 그에게 나는 하루가 열리는 호흡이었다가 버린 후 어딘가에 남겨질 먼 발 등성이가 되기도 하였네. 나의 발끝부터 사라지는 꿈. 거의 몸의 절반이 보이지 않았네. 백포도주 한 잔을 비울 즈음 나는 사라졌네. 콘도라를 타고 구름 운하를 건너는데 신기하게도 우린 한 배를 타지 못했네. 두리번거렸지만 그는 내 곁에 없었네. 나는 그의 향기를 가져와 들꽃이 되었네. 베네치아의 새벽이 되었네.   하늘에 오래 남겨진 구름은 없네. 늑대가 양의 다리를 물었다가 두 마리의 악어가 되기도 하고 저무는 노을로 피어나기도 하였네. 누구나 그런 거라네. 처음 그 설렘으로 몇 년은 버티고 몇 년은 지워져 가는 것이네. 알프스 설산 눈물처럼 흘러내려 한 번도 손 잡지 못한, 막연히 따뜻했을 다른 하늘, 다른 풍경으로 마주 잡는 것이네. 백팔번의 천둥이 치고 셀 수 없는 별들이 저물어도 나는 그 앞에 그는 내 앞에 무엇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네. 출렁이는 물결 위에 내려놓은 시간, 그 시간이 여전히 나를 끌고 가고 있네. 베네치아에 남겨진 바람이 되는 것이네. (시인, 화가)     Kevin Rho 기자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람 알프스 산골 보라색 메아리 마음 보라색

2024-04-22

다큐 영화 '아버지의 마음' 시사회

    다큐영화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13일) 오후3시와 내일(14일) 오후4시, 버지니아 헌던 소재 열린문 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상영된다.     김용훈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의 릴레이를 경험하고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시사회에 이웃과 가족이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투치족 대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메소드’ 르완다 청년과 한국 고아였다가 컴패션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돼 선교사가 된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감독이면서 목회자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제자, 옥한흠’(2014), ‘순교’(2015), ‘중독’(2019), ‘부활: 그 증거’(2020) 등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연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낸 보편적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다.     빈곤국 어린이를 돕는 하준파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황태환 씨의 이야기와 '컴패션'을 설립한 스완슨 목사의 사랑이 현재까지도 어떻게 이어지며 전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배우 신애라씨가 맡았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자선단체 ‘컴패션’은 미국 후원자와 가난한 국가 어린이들을 1대1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만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한편 열린문 장로교회는 매년 컴패션 주일을 통해 제 3세계 빈곤 아동 후원을 결연하고 있다. 문의: 703-318-8970 (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아버지 시사회 마음 시사회 다큐 영화 담임목사 김용훈

2024-04-1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이 가는 길

마음에도 길이 있다. 가고 싶은 길, 안 가고 싶은 길. 유년의 감꽃이 흐드러진 골목길, 생각나면 눈물 고이는 아득한 추억의 길, 잊어버리고 싶은, 되돌아보고 싶지 않는 캄캄한 길,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길, 영원히 지우고 싶은, 기억 속의 슬픈 길, 막혀버린 담장 끝에서 죽음처럼 어둔 골짜기를 헤매던 길.     강물은 흔적 없이 흘러가지만 마음의 길은 돌뿌리로 남아 상처를 덧나게 한다.     사랑이 스쳐간 곳도 흔적이 남는다. 새벽이면 영롱한 이슬 머금고 반짝이지만 무지개 빛 햇살과 한나절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기울면 사랑은 낙엽 되어 뒹군다. 영원을 다짐하던 사랑도 책갈피 속 마른 꽃잎의 흔적으로 남는다.   암수의 눈이 하나씩이라 짝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비익조(比翼鳥), ‘두 그루면서 한 나무로 얽힌’ 연리지(連理枝)의 사랑도 양귀비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사랑도 우정도 믿음도 의리와 목숨까지도 영원한 것은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의 고통이 제일 아프다. 우정에 금이 가고 신뢰가 허물어지면 공들여 쌓아 올린 믿음의 성벽이 무너진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마음에 긁힌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딱지를 떼고 지우고 잊으려 해도 상처 난 마음의 흔적은 수시로 덧난다.     살다 보면 별이 일이 다 생긴다. 믿었던 사람이 양다리 걸치고 다정했던 동료가 등 돌리고 배신 때리는 일이 생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변한다. 어제의 인연에 연연해서 오늘과 내일을 멍들게 하는 선택은 바보짓이다. 상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어둔 길로 잘못 들었으면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말 바꾸기와 권모술수로 이득을 취하고, 평온한 일상에 재를 뿌리며, 타인의 인생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사람과는 잡은 손은 놓는 것이 지혜롭다. 세상에는 겸손하며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봄 봄이다! 이세상 모든 슬픔과 아픔, 묵은 상처의 흔적들을 지우는 찬란한 계절이다. 뒷마당을 병풍처럼 둘러싼 나무들이 연녹색 잎새들을 가지에 피울 때마다 새들은 새벽부터 합창을 한다. 눈보라 치는 겨울동안 어디서 둥지를 틀고 살았을까. 때지어 동그라미나 포물선을 그리며 혹은 담장에 한 줄로 앉아 합창을 한다. 같은 크기 같은 색깔 비슷한 모양의 새들이 나란히 앉아 재잘거린다.   미국 속담 ‘날개가 같은 새들이 함께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는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이다.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 나는 도토리 (중략)/ 내가 더 크고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중략) / 크고 윤 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박노해의 ‘도토리 두 알’중에서   믿음과 우정, 참과 거짓의 굴레에서 흐트러진 마음 가다듬고 숲 속 길을 걷는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시인은 참나무가 되기 위해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 숲으로 힘껏 던진다.     갈림길에선 선택이 필요하다. 가질 것인가 버릴 것인가. 지킬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사람이던 물건이건, 사랑이던 우정이건, 덧난 상처를 추스리며 걸어가는 마음의 길은 보잘 것 없는 도토리의 길이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 돌뿌리로 남아 어둔 골짜기 권모술수로 이득

2024-04-16

다큐 영화 '아버지의 마음' 시사회

      다큐영화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13일) 오후3시와 내일(14일) 오후4시, 버지니아 헌던 소재 열린문 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상영된다.   김용훈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의 릴레이를 경험하고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시사회에 이웃과 가족이 참여해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투치족 대학살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메소드’ 르완다 청년과 한국 고아였다가 컴패션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돼 선교사가 된 여성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감독이면서 목회자이기도 한 김상철 감독은 ‘제자, 옥한흠’(2014), ‘순교’(2015), ‘중독’(2019), ‘부활: 그 증거’(2020) 등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를 연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버지의 마음’이 그려낸 보편적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 호소력을 갖는다.     빈곤국 어린이를 돕는 하준파파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황태환 씨의 이야기와 '컴패션'을 설립한 스완슨 목사의 사랑이 현재까지도 어떻게 이어지며 전달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나레이션은 배우 신애라씨가 맡았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자선단체 ‘컴패션’은 미국 후원자와 가난한 국가 어린이들을 1대1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만명이 넘는 한국 어린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한편 열린문 장로교회는 매년 컴패션 주일을 통해 제 3세계 빈곤 아동 후원을 결연하고 있다. 문의: 703-318-8970 (열린문 장로교회)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아버지 시사회 마음 시사회 다큐 영화 담임목사 김용훈

2024-04-12

[삶의 향기] 참는 것도 공부다

'참을 인(忍)'자가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혹자는 여석압초(如石壓草, 돌로 풀을 누르는 것)라 하며, 임시방편인 참는 것을 바람직한 수행법으로 여기지 않기도 한다. 참는 것도 마음을 닦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대중목욕탕 사우나에 가면 시간을 재기 위한 모래시계가 놓여 있다. 보통은 명상이나 경을 암송하지만, 때로는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나름 재미가 있어 지루함을 달래기에 좋다. 모래가 반쯤 차 있는 초반에는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래표면이 서서히 내려간다. 그러던 모래 표면이 마지막 1cm 정도를 남기고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양은 일정하지만, 체감 속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영어, 그림, 서예, 자전거를 배울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초반의 지루함과 어려움을 어느 정도 감내하고서야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배우는 속도도 빨라졌다. 만약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사우나를 나와 버렸거나 영어, 그림, 서예, 자전거를 포기했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좌선 수행을 '오래오래' 하라고 하셨고, 계율 수행은 '죽기로써' 하라고 하셨다. 몸과 마음을 정신없이 사용하는 현대인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멈추는' 명상은 1시간은 고사하고, 10분, 아니 1분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제멋대로 사용하던 일반인들이 이런저런 계문들을 정해서 지키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수십 생을 거쳐 형성된 습관을 바꾸고 업(業)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이 간단할 까닭이 없다. 산술적으로는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제자가 물었다. "예로부터 대개 계율(戒律)을 말하였으나 그것이 도리어 사람의 순진한 천성을 억압하고 자유의 정신을 속박하여 사람을 교화하는데 지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사람이 혼자만 생활한다면 별 관계가 없을지 모르나 세상은 모든 법과 규칙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부당한 행동을 한다면 사회는 물론 개인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나면 일동일정을 조심하여 엷은 얼음 밟는 것 같이 하여야 인도에 탈선됨이 없을 것이며, 그러므로 수행자에게 계율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하셨다. 참 자유는 방종(放縱)을 절제하는 데에서 오기 때문에 참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     수행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자유를 구속하는 것처럼 보이나, 궁극에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유가에서 70세를 이르는 종심(從心)은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았으되 법도에 어긋나지 않다)의 준말이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진리와 도덕에 벗어남이 없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이야기이다. 불가에서 추구하는 해탈(解脫, 마음의 자유)에 다름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여섯 가지 수행덕목의 하나로 인욕을 말씀하셨다. 인욕(忍辱)이나 금욕(禁慾)은 마음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참는 것도 공부 맞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공부 종심소욕불유구 마음 계율 수행 해탈 마음

2024-04-08

몸, 마음 지친 3040 세대…“모임 만들어 달라”

현재 30·40세대는 1975년생~1994년생을 일컫는다. 이들은 사회를 지탱하는 허리 세대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령대다.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와 지앤컴리서치는 기독교계 내 30~49세 사이 교인들의 신앙 의식을 조사했다. 30·40세대가 교계에서 중심을 잡아야 교회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의식들을 알아봤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3040’ 세대임에도 정작 그들의 삶은 생기가 없다.   한마디로 삶의 만족도가 연령층 중에 가장 낮다는 의미다.   지앤컴리서치측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각 연령층에 삶의 만족도를 물었더니 40대(37%)와 30대(41%)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60세 이상(52%), 19~29세·50대(각각 43%)보다 낮은 응답 비율이다. 그만큼 30·40세대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이 왜 녹록지 않은지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키워드만 뽑아보면 직장과 육아가 원인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스트레스 원인을 물었더니 직장에 다니는 3040 세대 중 무려 68%가 ‘직장 또는 사회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답했다.   기혼자들의 경우 57%는 ‘가사 노동 및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 5명 중 3명(61%)은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30·40세대 응답자 3명 중 1명꼴로 직장 생활(38%)과 육아(34%)가 신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며 “사회와 일상에서 오는 피로 등의 문제가 결국 교회 내 봉사 활동 소홀, 온라인 예배 전환, 신앙 관심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30·40세대의 신앙 의식이 약화한 계기는 팬데믹이었다.   ‘코로나 이전보다 신앙적으로 약화했다’는 응답은 30·40세대(33%)가 가장 많았다. 이어 20대(31%), 50·60세대(26%) 순이다.   이러한 응답은 교회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진다.   현재 출석 중인 교회에 대한 만족도를 물은 결과 30·40세대 중 교회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59%였다. 이는 50·60세대(71%)와 20대 교인들의 만족도(61%)보다 낮다.   그들에게 불만족의 이유(중복응답 가능)를 물었다. 30·40세대는 사회적으로 중심에 있다. 때문에 시대를 읽는 눈이 빠를 수 있다.   30·40세대 응답자의 30%가 출석교회가 ‘시대적 흐름을 좇아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어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적인 태도(28%),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 불일치(26%), 30·40세대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26%) 등을 꼽았다.   스트레스가 많은 30·40세대는 신앙생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주일 예배 외 다른 활동을 하는지를 물은 결과, 30·40세대의 신앙적 활동이 가장 적었다.   예배 외에는 활동이 없다고 답한 30·40세대는 65%로 나타났다. 무려 10명 중 7명이 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 역시 연령층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교회 내에서 예배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시간이 없어서(30%)’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신 권유를 받으면 참여할 의향을 내비쳤다. 30·40세대 교인 중 절반 이상(67%)이 ‘하겠다(18%)’ 또는 ‘생각해보겠다(49%)’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30·40세대가 교회 내에서 활동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지치고, 피곤하고, 귀찮다는 것”이라며 “대신 봉사를 요청할 시 수락 의향이 있다는 점은 얼마든지 활동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30·40세대는 교회 내에서 자신들을 위한 모임이 구성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30·40세대는 ‘부부 및 육아를 위한 모임(80%)’ ‘직장인을 위한 모임(70%)’ 등이 매우 또는 약간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조사에 참여한 30·40세대 중 약 60%는 관련 모임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30·40세대는 신앙 교육보다 그 외 교육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측은 자녀에 대한 교육 우선순위를 물었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인성 교육(6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지성 교육(39%), 진로 교육(25%), 신앙 교육(17%) 등의 순이다.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을 제대로 못 하는 이유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중복 응답 가능) 시간이 없어서(47%)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신앙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서(38%), 부모인 내가 신앙이 확고하지 않아서(37%), 자녀의 학업이 우선이라서(29%)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보고서에는 “30·40세대는 사회적으로 가장 바쁘기도 하지만 막상 신앙 교육을 하려 해도 방법을 모르고 있다”며 “삶 속에서 밀착하여 가르쳐야 하는 신앙 교육은 여러 교육 순위 중 가장 낮다는 점이 주목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자녀의 신앙 교육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다.   30·40세대는 ‘자녀와 함께하는 신앙 프로그램(57%)’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이어 부모 역할 교육(44%), 자녀와 대화법(42%), 부부 관계 및 대화법(26%), 가정 예배드리는 법(26%), 자녀 역할 교육(2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녀에게 신앙을 주로 교육할 주체는 역시 ‘부모(68%)’를 꼽았다. 이어 교회학교 교사(18%), 교회학교 사역자(9%), 담임목사(4%) 등의 순이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해 9월 8~12일 사이에 개신교인 700명(30~49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뢰도는 95%(오차범위 ±3.7%p)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마음 신앙 신앙 교육 신앙적 활동 신앙 의식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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