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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야기] 흥미롭고 감성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라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기억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기억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그대로 우리의 뇌 속에 저장된 것이다. 그러나 특정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기억은 상상력이 더해져 실제보다 부풀려진 형태로 우리의 뇌 속에 자리 잡기도 한다.     대부분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에는 더 많은 상상적 경험이 추가돼 실제보다 감성적으로 더 진한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비슷하다. 관객들은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추가해 마지막 장면에 더 진한 감성을 느끼게 되고, 이는 몇십 년이 지나도 뚜렷하게 기억된다.   필자는 이런 기억을 ‘감성적 기억’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이 감성적 기억이 그 대상에 강한 애착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감성적 기억은 제품이나 서비스 브랜드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첫사랑이나 감동적인 영화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고객들이 브랜드에 감성적 기억을 갖도록 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브랜드와 관련된 이야기 거리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효과적이다.       첫째, 이야기는 흥미롭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둘째, 고객의 감성 코드를 강하게 자극해야 한다. 셋째, 고객의 가치관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브랜드 이야기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게 되면 고객들은 브랜드에 강한 애착과 진한 감성적 기억을 갖게 된다. 즉 고객들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브랜드에 관한 기억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매출과 시장 점유율에 대한 영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된다.     많은 한인이 기억하고 있을 브랜드 이야기의 성공 사례들을 살펴보자. OB맥주는 1990년 초까지 한국 맥주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1991년 OB맥주의 모회사인 두산이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해 수질을 오염시킨 사건이 큰 환경 이슈로 부각됐다. 바로 이때 경쟁 업체인 조선맥주는 ‘100% 천연암반수로 만들었다’며 대대적 홍보와 함께 HITE 맥주를 출시했다. 당시 이슈였던 ‘물’을 집중적으로 부각한 것이다. 그 결과 출시 2년 만에 시장점유율 1위라는 엄청난 성과를 달성했다. ‘100% 천연암반수로 만든 순수한 맥주’ 라는 HITE 브랜드 이야기는 고객들에게 과거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맥주의 성분에 관심을 갖게 했다. 또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라는 홍보는 고객의 감성 코드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리고 고객은 이런 순수한 맥주를 마심으로써 자신의 순수성을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의 껌 시장은 1990년대만 해도 혁신과는 거리가 먼 고요한 시장이었다. 그런데 2000년 롯데제과가 ‘자일리톨’ 이라는 낯선 이름의 껌을 출시했다. 그런데 이 낯선 브랜드 이름 뒤에 몇 가지 흥미롭고 놀랄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있었다. 첫째 ‘핀란드산 자일리톨 함유’, 둘째는 ‘치과의사협회 인증’, 셋째는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천연 감미료 ‘자일리톨’을 브랜드 이름으로 선정했다는 것, 그리고 넷째는 ‘자기 전에 씹는 껌’ 이라는 역발상적인 광고 슬로건이었다.     이중 ‘자기 전에 씹는 껌’이라는 홍보 문구는 감성적인 코드로 제품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또  ‘치과의사협회 인증’ 제품의 신뢰성과 함께 건강을 생각하는 고객들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미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예들이 얼마든지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나 나이키의 에어 조던 농구화도 이에 포함된다.     앞의 예들은 광고나 판촉 비용을 많이 지출할 수 있는 대기업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또 브랜드 애착 현상은 소비재 시장에서나 가능하지 산업재 분야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수긍 가능한 반론들이다.  그러나 사고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업종이건 고객은 모두 애착과 감성적 기억을 갖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앞에 언급한 세 가지 요건을 갖춘 브랜드 이야기를 제공하면 고객은 감성적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또 브랜드 이야기 전달에 반드시 막대한 광고 비용을 투자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브랜드 이야기를 개발할 수 있느냐이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의 작품 가운데 ‘두 발레리나 소녀’가 있다. 필자는 30년 전 루브르박물관 가이드로부터 작품 설명을 들었지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두 발레리나 소녀’ 라는 브랜드에 대한 감성적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내용을 소개하면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딸을 발레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유명한 발레리나로 성공하면 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재력 있는 남성의 정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드가는 이 작품을 통해 소녀 발레리나들의 행복을 기원하려 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주인공인 두 소녀는 중앙이 아닌 우측 상단에 위치한다. 그리고 왼쪽 하단에는 물을 뿌리는 주전자를 배치해 시각적 균형을 맞추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주전자는 두 소녀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일종의 보호자 역활을 상징한다.  그리고 마룻바닥의 검은색은 현재의 어려움을, 바깥쪽의 밝은 색상은 미래의 희망을 의미한다.     루브르박물관 가이드의 설명은 필자에게 흥미와 함께 감성적 코드도 자극했다. 그리고 소녀 발레리나의 미래를 성원하는 드가의 마음은 우리의 가치관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인 업체들도 자기 브랜드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충환 / 전 USC 석좌교수브랜드 이야기 이야기 감성 감성적 기억 감성 코드

2023-05-24

B급 감성의 미학, B급 영화를 장르로 만들다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 ‘인글로리어스바스터즈’, ‘장고’, ‘원스어폰 어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들 중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여길 영화는 없다. 그러나 2003년 타란티노가 ‘잭키 브라운’ 이후 6년 만에내어놓은 ‘킬 빌’은 그의 다른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몇 가지의 특색을 지닌다. 격렬한 논쟁이 필요하겠지만, ‘킬 빌(Kill Bill)’을 그의 베스트로 꼽는 의견들 또한 많다.       2편까지 합치면 무려 4시간이 넘는 이야기, 그러나 자신을 죽이려 했던 5명을 찾아내서 복수를 한다는 단순한 플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타란티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일단 악당 빌을 묘사하는 독특한 연출 방식 때문일 것이다. 수수께끼의 인물 빌은 냉정함을 잃지 않는 숙련된 킬러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때로는 인간미마저 느껴지는 묘한 신비감이 있다. 타란티노는 70년대 드라마 ‘쿵후’의 데이비드 캐러딘을 캐스팅해 악당의 자질을 한 차원 높여 놨다.     분별되지 않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킬 빌’의 세계관은 복수의 언저리에서 형성된다. ‘킬 빌’의 복수의 방정식은 K드라마 ‘더 글로리’를 연상시킨다. ‘킬 빌’은 블랙맘바(우마 서먼)라는 이름의 신부(bride)가 결혼식 날 자신을 살해하려 했던 악명 높은 암살 조직의 보스이며 옛 애인 빌과 그 일당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수를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타란티노 특유의 차별성은 죽음에 대한 비가역적 접근에 있다. 그녀 자신 죽임을 당했으면서 복수의 주체로 부활하는 설정이다. ‘더 글로리’의 문동인이 복수를 다 이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다시 유여정과 삶을 꾸려나가는 스토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불랙맘바는 무덤에 묻혔다가 다시 살아난다.     타란티노는 이 당시 도가 사상에도 심취해 있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복수라는 축은 죽음의 세계관과 맞물려 있다. 신부는 끝내 복수를 하고 환호로 흐느낀다. 키도(Kiddo, 블랙맘바의 다른 이름)는 빌을 보내준다. 엄마 사자(Mommy, 블랙맘바의 또 다른 이름)는 새끼 사자를 다시 만난다. 자아를 찾아가는 한 여자의 서사는 다분히 도가 사상과 맞닿아 있다.   카펫에 누워 퍼덕거리는 물고기와 퍼덕거리지 않는 물고기는 삶과 죽음에 대한 완벽한 이미지다. 삶과 죽음은 다르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삶과 죽음을 분별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한다. 블랙맘바의 서사가 신화로 승화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다.       ‘킬 빌’은 타란티노의 색깔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화이다. 쿵후와 이소룡 오마주, 사무라이 정신 등 동양의 무술과 만화에서나 볼 법한 과장된 액션들이, 일본에 대한 그의 동경심과 함께 전체를 덮고 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OST ‘Bang Bang’, 바로 이어지는 두 여성의 격투신과 어린아이가 들어오자 싸움을 멈추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 시작부터 끝까지 그 어느 장면 하나 예사롭지 않은 데가 없다. B급 감성으로 채워진 그 당시의 대표적 B급 영화로 이후 B급영화가 하나의 영화 장르로 떠오르는 계기가 된다.       타란티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는 기막힌 음악 선택이다. ‘킬 빌’은 장면을 음악으로 연결하는 그의 천재적 감각이 정점에 오른 영화이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유혈 낭자한 칼부림에도 쾌감이 터지고 살인의 죄책감에도 통쾌함이 동반된다. 음악의 힘, 타란티노의 연출력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그가 오늘날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Vol. 2가 1년 후에 개봉을 하지만 완성도 면에서 Vol. 1을 능가하지 못했다. 사무엘 L. 잭슨이 카메오 출연을 하고 1편의 유혈 낭자 가득한 잔학함이 줄어든 대신 서만의 모성애 연기가 들어선다. 줄거리보다 ‘복수는 절대 아름다울 수 없다’는 주제를 풀어가는 잔혹성과 사무라이 정신이 맞물려 펼쳐지는 격투 장면들에 몰입하다 보면 4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킬 빌’에서 서만이 창조해낸, 이소룡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트레이닝복의 금발 여성 이미지는 이후 세계적 유행을 불러왔다. 이전 작품 ‘펄프 픽션’에서 구축한 타란티노와 서만의 케미는 ‘킬 빌’에서 신화로 진화한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감성 미학 영화 장르 이후 b급영화 타란티노 감독

2023-03-24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글스타그램

소셜 미디어 플랫폼 ‘인스타그램’은 사진·동영상 등 이미지 콘텐트를 주로 공유하면서 ‘셀피(셀카·자가촬영)’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인증샷(증명하거나 자랑하기 위해 찍는 사진)’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요즘 등장한 신조어 ‘글스타그램(글+인스타그램)’은 글로 하는 인스타그램을 뜻한다. 여전히 좋은 사진은 필요하지만 대부분‘배경으로 쓰이고, 그 위에 얹힌 ‘글’이 진짜 주인공이다. 책 속 좋은 문장이나 영화·드라마 속 명대사를 올리기도 하고, 일기처럼 자신의 감정을 적기도 한다.   페이스북(현 메타)을 통해‘SNS 시인’으로 유명해진 하상욱씨처럼, ‘글스타그램’ 운영자들이 출판한 에세이 책들이 인기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정영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고 있는 너에게』(최대호),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박찬위) 등이 모두 베스트셀러다.   책 제목만 봐도 ‘글스타그램’의 공통점은 ‘감성 글귀’, 그중에서도 ‘위로’가 키워드임을 알 수 있다. 김완석씨는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구독자가 쑥쑥 늘어나는 걸 보면서 ‘괜찮다’는 짧은 말이라도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글스타그램을 검색하면 354만개의 게시물이 뜬다. 서정민 /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글스타그램 이미지 콘텐트 소셜 미디어 감성 글귀

2022-10-19

윤민수와 빅마마 이영현의 환상 콜라보 페창가 공연

  가창력과 감성의 남녀 끝판왕, 윤민수와 이영현이 오는 10월 1일 (토, 오후 2시, 저녁 7시) Pechanga 리조트 카지노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연다.     2000년대 대표 R&B 그룹인 바이브의 리드 보컬로 활동한 윤민수는 감성 보컬의 대명사다.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로 인해 윤후 아빠로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해졌지만, ‘윤민수 창법’이란 말이 있을만큼 가창력을 인정받은 뮤지션이자 ‘오래오래,’ ‘사진을 보다가,’ ‘그 남자 그 여자,’ ‘술이야’ 등 대히트곡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빅마마 멤버이자 작곡가인 이영현은 대한민국에서 가창력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가수 중 한 명으로, 스승인 김연우와 함께 남녀 보컬의 양대산맥으로 불린다. 전국민적인 메가 히트곡인 ‘체념’을 필두로 ‘체념 후,’ ‘연’ 등 다수의 자작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  남가주 팬들의 가슴과 눈가를 촉촉히 적셔줄 대한민국 대표 감성 보컬들의 공연에 대한 문의 열기가 벌써부터 뜨겁다.       콘서트 티켓 가격은 $90부터이며 자세한 정보는 Pechanga에 전화 문의 (888-810-8871) 하거나, 웹사이트 (pechanga.com)를 방문하면 확인할 수 있다.     공연장인 Pechanga 극장은 1200석을 자랑하며 완벽한 최신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공연장 내 위치한 고급 및 패밀리 레스토랑 그리고 안락한 의자와 어떤 자리에서도 공연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 페창가 극장은 어떤 공연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윤민수 빅마마 빅마마 이영현 윤민수 창법 감성 보컬

2022-09-01

[수필] 영성, 감성, 지성

동물은 살아있는 다른 목숨을 먹고 살기에, 살아남는 싸움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전쟁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에 목숨이 있는 곳에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가장 큰 싸움은 코로나처럼 사람과 세균의 전쟁이다. 모든 목숨은 세균에서 시작하여 사람이 태어나기까지 이르렀다. 모든 목숨들이 사라져도 세균은 살아있기에 이 땅 위에 세균은 목숨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했다.   척추동물의 움직임은 앞으로 나가며 발달하였기에 몸의 맨 앞쪽에서 모든 신경과 뇌가 발달하였다. 사람의 뇌는 뇌간, 소뇌, 대뇌로 나누어 사람의 삶은 본능의 세계, 정서의 세계, 지식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자라나며 본능을 관리하는 뇌관이 제일 먼저 척추와 뇌 사이에 성장하고 정서를 관리하는 소뇌가 그 위에 자라난 다음 지식을 관리하는 대뇌는 가장 늦게 성장한다.   사람은 어려서 엄마에 의지하고 자라난다. 영성의 세계에는 어려서 어머니에게 의지하듯 성인이 되어 선조와 하늘의 능력에 의지하려는 종교가 나타났다. 신과 사람 사이 사랑의 관계로 인류의 생활에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사람의 능력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 견디며 살아난다. 불평과 불만이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마음으로 한순간에 평화를 얻는 능력이다.     기독교에 부활이 있고 이슬람교에 구원이 있고 불교에 열반이 있어 영적 각성(覺醒)을 얻는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종교 안에 살고 있다. 경전의 언어는 영성세계의 언어이기에 감성의 언어나 지성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성숙한 현대인의 인격에는 반드시 종교가 있고 그 혜택을 누린다. 엄마에 의지하여 살아남는 본능은 뇌간의 능력이라고 한다.   감성은 어려서 먹는 느낌, 자라나서 짝을 얻는 느낌에서 시작한다. 먹는 느낌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얻는 수단으로 살아있는 유기물질을 섭취한다.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누며 자신의 생명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음 생명을 준비하는 일은 그 종자가 이 세상에 연속하여 존재하는 기본능력이다. 느끼는 모든 고등동물들에게 먹는 기쁨과 성교하는 기쁨이 주어졌기에 그 종자들이 이 세상에 존속한다. 이 두 가지 감정 때문에 약자를 지배하는 강자가 되려고 경쟁하는 죄성이 있고 반면에 자식을 낳고 사랑을 나누는 행복이 있다.     느낌은 고등생물과 사람에게 주어진 여섯 가지 감각에서 온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만지는 말초신경은 중추신경을 통하여 두뇌로 연결되어 작용된다. 시각에 비추는 미술이나 조각, 청각에 울리는 노래와 기악, 미각으로 즐기는 요리, 몸으로 움직이는 무용이나 체육, 말하는 언어를 문자로 표현하는 시와 소설, 그리고 종합예술의 영화 혹은 건축, 여러 예술분야는 새로운 감동을 일으키기에 끊임없는 창작은 인류의 감성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생명을 존중하고 삶의 예술을 즐기는 감성은 현대인의 인격이다.   다른 동물들이 입으로 하는 일들을 사람은 손으로 하기에 입의 말하는 기능이 더욱 발달하였다. 두 발로 서서 걷기에 손의 역할이 더 많아 지고 입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얻어 손 기술과 언어능력은 더욱 빠르게 발달하였다. 언어를 갖기 시작한 사람의 대뇌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대뇌의 자리는 거의 비어 있지만 엄마와 교감하며 말을 배우는 동안에 대뇌는 빠르게 성장한다.     인류의 대뇌는 언어와 함께 급속히 성장하였다. 사람이 짐승들과 크게 다름은 대뇌의 기능인 지식이다. 지식을 통한 생존경쟁에 인류의 생활은 더욱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류가 세계를 지배하는 능력이며 계속해서 앞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인류의 미래이다. 현대인의 인격은 사람의 뇌에 갖춰진 3가지 부분의 능력을 따라 행동한다.   동아시아의 음양오행의 종교와 과학이 도교로 발달한 다음 바닷길 따라 인도로 전해져서 불교가 탄생하였다. 이어서 서남아시아로 전해져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시작하였다. 종교와 힘의 주축은 유럽을 거치는 동안 인류의 현대역사가 시작하였다. 힘의 주축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대영제국에 머물었다가 미대륙에 도착하면서 1차, 2차 세계대전에 승리한 미국은 현대세계의 막강한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이제 힘의 주축은 차츰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오늘의 현대인류는 육체적으로 성인처럼 자랐지만, 영성, 감성, 지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춘기이다. 수없이 많은 목숨을 희생하며 아프리카 사람을 데려와서 노예로 부리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인종차별을 본다. 독일이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거나 미국이 원주민을 무참하게 말살하는 정책을 본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본능의 영성이고 진화론은 과학적 지식이다. 두 가지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미성숙한 현실에서 종교전쟁은 멈추지 못한다.   이제 모든 인류는 한 가족이 되어간다. 현대인류의 정보시대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세계가 하나의 마을이 되어간다. 정보시대의 인격은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인류가족으로 새로운 인격을 갖춤이 오늘의 삶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는 더욱 성숙한 하나의 가족이 되어 미래의 죽지 않는 우주인을 기르게 된다. 종교, 예술, 과학의 인격으로 현대인류와 미래 우주인이 연결된다. 미성숙한 사춘기를 지나 성숙한 인격을 갖추어 이곳 동아시아에서 우리 모두 건강한 미래를 맞이할 준비해야 하는 때다. 바닥에서 정상으로 솟구치는 한반도 민족의 저력이 다시 세계를 이끌어 갈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최용완 / 수필가수필 영성 감성 영성 감성 기술과 언어능력 세계 지식

2022-04-07

[살며 생각하며] 감성 여행

남원을 뒤로하고 광주-대구 고속도로에 올랐다. 병풍을 두른 듯한 험준한 산세를 느끼며 이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기운이 모이는 깊은 터널로 접어들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면 높은 교각이 도로를 받쳐 주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왼쪽은 높은 산이고 오른쪽 아래는 작은 집들이 저만치 보이고 금빛 논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이 고속도로를 지나는 동안 계속 연출되었다.   지난 여행 이후 아버지는 이 여행을 계획하시며 동서를 가로막은 소백산맥을 시원스레 통과하는 이 고속도로에 푹 빠져 계셨다. 나들목, 분기점, 휴게소, 최고 교각의 높이, 터널이 몇 개인지부터 시작하여 한반도 미래에 미칠 영향까지 연구를 많이 하셨다. 영호남 지역은 소백산맥이 가로놓여 예로부터 교류가 원활치 못하였고 언어, 생활, 풍습,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권을 형성했으며, 교류가 소원한 관계로 말미암아 고질적인 지역감정이 자연히 더 싹트게 되었으며, 특히 남부 내륙 지역은 낙후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고 하셨다.   많은 나라가 지역주의를 겪는다고 하시며 예컨대 미국의 남북지역주의도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는데, 경제적 균형 발전이 가능케 한 것이었다고 얘기하셨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미국 남부도 북부에 가졌던 상대적 박탈감도 덜 갖게 되었고 결국 경제적 여유가 정치적으로 닫힌 마음을 열게 했다는 예를 드셨다. 이런 맥락에서 이 ‘광주 대구 고속도로’(구 88고속도로)는 영호남 지역을 직접 연결해 상호 교류가 촉진되었고, 두 지역의 산업을 연계하여 두 지역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지역 격차를 완화되는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학습 결과는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아버지와 내가 떠난 여행은 무엇을 보는 여행이나 먹는 여행은 아니었다. 우리의 여행은 93세 아버지와 63세 아들이 같이 만들어 보는 둘만의 공간과 시간을 함께하는감성 여행이었다. 빨리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며 서로를 위로하고 지난 세월을 자축하는 축제와 같은 여행이었다. 어릴 땐 그렇게도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와 친구가 되고 63살 난 아들이 93세 아버지께 어리광도 부려 보는 시간이었다. “아버지 그때는 왜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렇게 무섭게 그랬어요?” 아들이 따지듯 묻자 “누나들 틈에서 강하게 키우고 싶었지.” 나름 많이 미안해하시며멋쩍은 표정을 지으셨다. 일찍 부모를 잃고 어렵게 홀로서기를 하신 아버지의 깊은 눈가엔 많은 생각이 스치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대화 속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은 단연코 어머니셨다. 당시 군인의 아내란 역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이 배 타고 바다로 출동 나가고 월남이란 낯선 나라에 전쟁까지 하러 나가시고 보직이 바뀌실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보따리 싣고 이사를 전전하셨던 그 과정을 묵묵히 다 겪으셨던 어머니셨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와 나와 서로 깊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해 고마움이었다.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룬 다음부터 비로소 기본을 갖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하셨다. 어머니는 이 두 남자의 인성을 만들어 주신 위대한 스승이었다. 어머니와는 함께 떠나 보지 못했던 여행을 뒤늦게 후회하는 두 사람이 탄 차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강영진 / 치과의사살며 생각하며 여행 감성 감성 여행 지난 여행 중부내륙고속도로 입구

2021-12-23

[한신포차] 한신포차에는 술과 요리, 감성 "다 있다!"

늦은 밤 출출한 허기를 달래거나 친구들과 회포를 풀 때 포차만한 장소가 없다.     한신포차는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를 외식업계 스타로 키워낸 외식 브랜드다. 대한민국 대표 실내 포차인 '한신포차 LA' 점이 지난 2020년 1월 한인타운 6가에 문을 열었다.   한신포차 LA는 오픈하자마자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으나 차별화된 맛과 분위기로 꾸준히 단골 고객을 확보하여 지금은 남가주를 대표하는 포차로 위엄을 떨치고 있다.   한신포차 LA는 포장마차 콘셉트지만 단순히 포차로 치부하긴 어렵다. 음식 가격만 보면 포차가 맞기는 하지만 스타일리시하면서 낭만이 넘친다. 데이트를 즐기거나 외국인 친구를 데려가기에도 손색이 없는 분위기다.     5400 스퀘어피트의 널찍한 공간에는 총 40개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85인치 대형 TV에서는 NFL MLB NBA UFC 등 인기 스포츠가 실시간 중계된다. 스포츠를 관전하며 매콤한 닭발이나 바삭한 통닭을 뜯으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     한신포차 LA의 또 다른 자랑은 바로 테라스다. 실내에서도 180도 뷰가 펼쳐지지만 개방감과 쾌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테라스에서는 6가 특유의 스페니시풍 빌딩이 어우러진 근사한 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뭐니 뭐니 해도 한신포차 하면 닭발 닭발 하면 한신포차다. 한신포차에서 시그니처 메뉴인 '닭발'과 바삭한 '통닭'은 필수로 먹어줘야 하지만 이외에도 별미들이 가득하다.     먼저 새롭게 선보인 '감바스'는 탱글탱글한 새우와 마늘 토마토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오동통한 새우살이 입안에서 팡팡 튀며 진한 새우의 풍미를 선사한다. 또한 특제소스와 대파로 맛을 낸 '닭다리살 대파 무침' 부드러운 콘치즈 위에 바삭한 교자만두가 토핑처럼 올라가는 '콘치즈 만두' 계란을 풀어 게살 버섯 파와 담백하게 끓여낸 '게살탕' 매콤 달콤한 '골뱅이 무침' 등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한국 한신포차와 똑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     한신포차는 LA 6가와 마리포사 애비뉴 코너 시티센터 3층에 위치한다. 한신포차를 방문할 때에는 알렉산드리아 애비뉴가 아닌 마리포사 애비뉴 방면 주차장 입구로 진입해야 한다. 오후 9시 이전에 주차하면 3시간 무료주차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한신포차 LA 지점은 한국 더본코리아 본사로부터 동일한 위생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어 안전하고 깨끗한 먹거리를 보장한다.     한신포차 LA는 쉬는 날 없이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업한다.     ▶문의: (213)368-1388               3500 W 6th St #311 LA한신포차 감성 마리포사 애비뉴 알렉산드리아 애비뉴 무료주차 서비스

2021-10-31

[감성 로그인] 코로나19 ‘뉴스 감염’도 조심

'필수업종’인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이 있으면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가 얼마나 확산됐는지, 사망자와 감염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이어지는 뉴스를 쉼없이 온라인에 전달하다 보니 몸은 고립되고 관심은 온통 코로나뉴스다. 뜻밖에 만만찮은 스트레스다. 다행(?)히도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어서 웹에는 코로나 상황의 정신 건강을 경고하는 심리학자들의 조언이 속속 올려진다. 몇 가지를 골라 실천해보았다. ▷아침과 저녁을 감사일기로 시작하고 마무리하기 ‘감사일기’ 는 감사할 일 열 가지를 노트에 적는 것이다. 감사일기를 쓰게 되면 MRI로도 확인될 만큼의 뚜렷한 뇌 활동 변화가 일어나며 스트레스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오늘 아침에는 건강하게 잠에서 깨어난 것을 감사하고 편히 숨 쉴 공간이 있음을 감사하고, 깨끗한 물 한잔을 걱정 없이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 모두 함께 새 아침을 맞이함에 감사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아마도 오늘 할 일을 열심히 해낸 것에, 친구와 메신저로 안부를 나눌 수 있었음에, 비 갠 베란다에서 늦은 오후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휴식할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작고 사소한 구석에 숨은 감사가 많았다. ▷자가격리나 재택 근무를 휴가로 착각하지 않기 평소 생활 리듬을 절대 유지해야 불안과 우울을 막을 수 있다는 조언을 새겼다. 예전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식사하고 일하던 시간에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았다. 침대에서 밥을 먹거나 아무 때나 TV를 켜면서 느슨한 휴가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멀리있는 가족과 영상 채팅하기, 정해진 시간에 집안 소독하기 식으로 스케줄을 정해서 실천하는 것이 좋다. 인생을 조직하고 구조화하면 일어날 일에 기대감이 생긴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새겼다. 쉬운 실천법은 일어나자마자 오늘 할 일 리스트는 만드는 것이다. 계획이 생기고 할 일이 생기고 성취감이 생긴다. 아침마다 리스트를 만드는 행동 자체가 오늘 할 일의 한 가지를 이미 수행한 셈이 되기도 한다. ▷가능한 ‘외출과 운동’ 방법을 찾아두기 감염 위험으로 마켓도 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상황이다. 일을 나가야 하는 사람에게나 먹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실천 불가한 명령이지만 바깥 바람을 쐬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생존에 필수다. 집 근처 조용한 주택가를 찾아 마스크를 쓰고 빠른 걸음으로 산책했다. 점심 후에는 베란다 캠핑 의자에 앉아 유튜브 숲 속 사운드 영상을 찾아 들으며 요세미티에서 캠핑하는 착각 시간도 가졌다. 홈 트레이닝 영상도 많지만 아랫집 천장 울릴까봐 뛰기는 부담스러웠다. 어릴 적 배운 국민체조를 세 번 연속하는 영상을 따라했다. 예전엔 하나마나 싶던 단순한 동작인데 뜻밖에 상당한 스트레칭과 리프레시 효과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육체적으로는 제각각 고립되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전 국민과 동질의 유대감으로 연결되었다는 어느 전문가의 조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코로나에 걸렸을까 걱정, 나와 가족들을 어떻게 보호할까 걱정, 온 도시가 문을 닫았는데 무슨 돈으로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은 나만 하는 게 아니며 결국 이 시간은 지나간다는 말이다. 이 시간, 뉴스 뷰가 치솟는 것은 운영자로서는 감사할 일이지만 코로나뉴스 '감염' 을 막으려면 정해둔 시간만큼만 보시라 전하는 이 마음의 모순만큼은 오늘의 걱정이 아닌 감사에 넣기로 한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20-04-08

[감성 로그인]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착각

한때 댓글을 많이 썼다. 초창기 블로그 서비스 시절이니 십수년 전이다. 유명 포털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신기한 마음에 열심히 글을 쓰고, 찾아온 다른 블로거와 의견을 주고 받고 답방하고 그러다가 일상의 소소한 얘기도 나누는 친구가 되곤 했다. 동등한 블로거끼리의 교류인 만큼 나누는 댓글은 정중했다. 아이디로 등장하지만 체감 온도는 실명과 똑같았다. 얼굴 없이 문자로 교류하다 보니 오히려 어투, 사용하는 어휘가 내 캐릭터와 인격을 결정했다. 오해도 쉬웠다. 실제 대화보다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뉴스 댓글도 쓰기 쉽지 않았다. 포털 같은 큰 사이트에서 익명의 아이디라 해도 내 의견을 온 천하에 내놓는 건 조심스러웠다. 누구도 나라는 걸 모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월드와이드웹(WWW)의 초현실적인 글로벌 인터넷망이 머리 속에 마구 그려지면서 지구촌의 수천만 한글 사용자들에게 내 한마디가 전달된다는 상상만으로 충분히 위압됐다. 쓸 때 그랬지만 읽는 댓글도 무게를 실어 읽고 마음에 담았다. 한마디 짧은 말도 내내 지워지지 않았고 그것이 무한한 기쁨을 때로는 아픔을 주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게시판이건 블로그건 메신저건 수다 떨듯 댓글 한마디 안 써본 사람 없는 요즘이 됐다. 이제 댓글은 개개인의 독립된 생각을 내놓는 공간이 아니라,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여당 야당, 친 트럼프 반 트럼프 같은 이른바 자신의 지지 성향이나 집단이 정한 ‘프레임’의 논리를 매뉴얼 읊듯 반복 게시하는 대자보로 전락한 인상이다. 뉴스에서 어떤 토픽을 어떤 시각으로 다루었는지, 뉴스가 다루고 있는 팩트가 무엇인지는 노관심. 제목만 읽고, 후루룩 훑어내리다가 꽂힌 한마디 단어만 취하고 여기에 똑같은 프레임 댓글을 줄줄이 달아붙이는 행태가 유행처럼 흔하다. 대부분이 극단적인 찬양 아니면 무자비한 공격이다. 한글 사용자들이지만 한국 내 사이트와는 유저층이 다른 미주중앙일보 웹사이트의 뉴스 댓글도 현상은 마찬가지다. 사이트 유저의 70% 이상이 25~54세, 액티브한 연령대는 35~44세 사용자다. 사회적 이슈의 경중을 가릴 수 있고, 뉴스의 가치판단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뉴스 댓글의 중요성과 파장을 잘 아는 사용자들이다. 댓글을 한번 쓰려면 회원 인증을 받아 가입하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거치고 시간 들여 입장한 뉴스 페이지 댓글에 건설적인 비판보다 욕설이 난무하는 건 매우 안타깝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자조 섞인 선언이 유행인 때도 있었다. 욕을 하고 비아냥대고 보이지 않는 삿대질을 거리낌없이 해대는 악플이라도 관심이 있으니 가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총체적 난독증이 유행병처럼 흔한 이 시절에는 그마저 지나간 착각이다. 뉴스를 읽고 포인트를 이해하고 ‘악플’을 달았다기엔 동문서답도 프로급이다. 무엇보다 악플은 비판적인 댓글을 칭하는 말이 아니다. 칭찬하는 댓글은 선플이고 야단치는 댓글은 악플인 게 아니다. 비판적인 댓글은 오히려 선플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찬양 일색인 댓글은 차라리 독이 되는 악플일 수도 있다. 묻지마 욕설에 다짜고짜 비아냥인 댓글을 쓰며 개인의 분노는 해소될지 모르지만, 그런 용도로 쓰기에 기사 한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그 기사를 웹에 올리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노고와 비용이 너무나 아깝다. 사회적 리소스의 낭비다. 이제 좀 그만 쓰자 악플, 그리고 많이 쓰자 댓글.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20-03-06

[감성 로그인] 코로나 바이러스, 헛소문 바이러스

매우 어질어질한 ‘음력 새해’를 맞고 있다. 미국살이에 한국 명절이란 형편 되면 슬쩍 기분쯤이나 내고 시간도 여유도 없으면 어물쩍 넘기는 애매한 날인데 올해는 중국발 우한 폐렴이 글로벌 공포로 본격 확산된 불운의 음력 설이 됐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16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4500명이 확진자로 집계됐으며 미국에서도 다섯명의 감염자, 특히 LA와 OC에서 두명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한인들의 염려와 관심도 점점 증폭되고 있다. 위력적인 뉴스의 등장 다음 순서는 사람들간의 전파와 확산이다. 특히 진입 장벽 없고 차별없는 온라인의 겁없는 전파력은 때를 놓치지 않고 광속의 위력을 발휘한다. 며칠 새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기관의 정보보다 전염병 공포를 자극하는 미확인 부유 물체, 가짜 뉴스들이 소셜네트워크와 메신저의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로 등장했다. 감염자가 노상에서 쓰러진 현장 사진이다, 병에 걸린 것이 억울해 악의적으로 퍼뜨리러 돌아다니는 환자가 있다, 어느 쇼핑몰 어느 식당에 감염자가 드나들었다더라 같은 확인 불가한 소문 바이러스들이 소셜네트워크와 메신저를 타고 공포와 불신을 전염시키고 있다. 지난 21일 페이스북에는 미국이 몇 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특허를 받았다는 음모론이 크게 주목을 끌었다. 오레가노 오일이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라는 허위 주장도 최소 2000번 공유됐다. 트위터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해시태그가 인기 트렌드로 부상해 각양각색 개인의 주장과 패러디 밈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영상이 쏟아지고 있는 유튜브는 거짓 정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신뢰성 있는 소스를 우선 노출하는 알고리듬 가동에 진땀을 빼고 있다. 구글에서는 한때 ‘코로나 맥주 바이러스’의 검색어가 트렌드에 올랐고 코로나 맥주로 바이러스를 치료한다는 황당한 댓글까지 화제가 됐다. 중국서 사용할 수 없는 틱톡에 우한 시 거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중국 환자 영상이 올려지거나 중국 정부가 인구 통제를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영상이 보고되는 등 적법성이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영상들이 빠르게 공유되고 있어 문제다. ‘인간은 뒷담화로 지구를 정복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설마 현 인류에게 가장 큰 선물이랄 ‘인터넷’을 흉흉한 입소문과 터무니없는 뒷담화에 저렴하게 사용해도 당연하다는 말은 아닐텐데, 시대적 대략난감이 몹시 안타깝다.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도로를 달리는 머리 속에는 늘 한가지 생각이다. 다들 자기 목숨 귀한 줄 알고 잘들 하겠지… . 생명있는 모든 개체의 숙명인 ‘생존본능’ 덕분에 각자 자기 줄, 자기 자리 유지하며 달리고 멈춘다는 사실을, 그것이 이 시간 안전 운행의 실질적인 이유며 누구나 자기 목숨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암묵적 믿음을 생각하면 혼잡스러운 도로 위의 질서정연한 불빛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다. 이 황망한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이나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나 누구라도 걸리고 싶어 걸리는 사람 없고 내 목숨 무사히 제대로 지키려는 본능은 똑같으니 누구를 탓할 것도 지적할 것도, 터무니없는 미혹도 부질없다는 얘기다. 다양한 시각의 담론과 상하좌우 제약없는 치열한 논쟁, 그리고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데 최적의 공간인 온라인은 특히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절제되고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헛소문 바이러스는 우리 누구에게나 꺼내어 쓸 수 있는 백신이 있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20-01-29

[감성 로그인] ‘오케이 부머’와 ‘라떼는 말이야’

하필 왜 나이를 ‘먹는다’고 할까. 떡국 한사발에 자동으로 한 살 먹듯이 세월따라 쉽게 쉽게 한 살 더한 ‘어른’ 이 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던 시절에 그랬다.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더라는 실망의 경험이 반복되면서 좋아! 난 넙죽넙죽 세월이 주는 대로 나이 먹지 않고 차곡차곡 스스로 쌓아 제대로 ‘나이 들겠어’ 다짐했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오늘의 나는 부인할 수 없이 세월 따라 나이 먹는 자동 어른이 되어 있다. 매해 새로 맞는 이 나이는 나에게도 처음이라, 어떤 게 잘 나이 드는 것인지 경험 없는 채로 하루하루 허겁지겁 살아내며 나이를 ‘먹고’ 세대 구분이 확연한 어른의 자리에 이르러 또 한 해를 마감하려 한다. 최근 화제와 논란이 있었던 '오케이, 부머'는 그래서 더욱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아 됐어요, 어른신들'쯤의 뉘앙스가 될 이 짧은 한 마디의 유행은 강렬했다. 전 세대의 경험을 오늘의 기준으로 쓰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그 경험을 지렛대가 아닌 권위와 무기로 쓰려 드는 ‘베이비 부머’(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들에게 젊은 세대들이 내건 바리케이드다.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발맞추거나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 질서만을 반복 강요하는 ‘꼰대’들에게 기대를 접었다는 단절의 선언이기도 하다. ‘오케이 부머’가 미국 기성세대의 뒷골을 강타한 세대 단절의 상징어라면 ‘라떼는 말이야’ 혹은 ‘Latte is horse’는 올해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휘저은 또 다른 세대 갈등의 언어다. ‘라떼는 말이야’는 ‘나 때는 말이야…’를 코믹하게 변주한 어구다. 철자가 달라도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절묘하게 교체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의 유행에 따라, 기성세대들이 흔히 아래 세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할 때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뻔한 자기 자랑을 ‘라떼는 말이야’라고 함축하여 지칭하고 슬쩍 비꼬는 것이다. 본인들 입장에서는 경험담과 조언, 듣는 어린 세대들 입장에서는 따분한 자기 자랑과 훈계로 이름지어지는 ‘꼰대스러움’의 전형적인 대화법을 풍자하는 ‘라떼는 말이야’는 한발 더 나아가 영어로 ‘Latte is horse’로 유머러스하게 사용되며 온라인에 각종 패러디와 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는 ‘너네는 처음부터 잘했냐, 제발 나 좀 내버려둬’라는 절규가, ‘라떼 장인이 되지 않는 법’같은 반어적인 경고글들이 쏟아졌다. 나 역시도 후배나 자녀 세대들의 말과 행동에 물음표가 생길 때 나름 이해하려 한답시고 그 나이 때 나는 이랬던 것 같아, 나는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 를 남발했음을 고백하며 되뇌인다. 결국은 그런 것이다, 나이를 잘 먹어야 하는 것이다, 나이 잘 들어서 좋은 어른이 현명한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연말에는, 연초에는 이제 그런 생각을 다지며 겸허한 시간을 꾸려야 하는 것이다. 호주의 원주민 오스틀로이드는 그들 스스로를 ‘참사람 부족’이라 하고 문명인을 가리켜 ‘무탄트’라고 부른다. 유명한 무탄트 메시지의 한 구절이 오늘 더욱 뼈를 때린다.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나 노력 없이 벌어지는 일인데 왜 생일 축하를 하는가? 자신이 작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스스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언제 파티를 열어야 할 지는 자신만이 말할 수 있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12-24

[감성 로그인] 알고리즘 권력의 시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이끌었다."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인 댓글이다.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한 인기 영상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올려진다. 왜 보게 되었는지, 어쩌다 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내 취향에 맞는 영상이 눈앞에 나타났고 관심을 끌었고 만족했고 이렇게 댓글까지 쓰고 있다- 는 어떨떨한 고백이다. 여기에 다른 방문자들도 나도 그렇게 들어왔다, 어찌어찌 이 영상을 보게됐다, 신기하다 독심술 쓰냐, 놀라운 알고리즘의 능력이라며 동감한다. 간혹 드물게 '생각까지 감시당하는 것 같아 소름끼친다'며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용자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좋아하는 셀럽의 영상을 하염없이 볼 수 있어 즐겁다거나 내 생각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거나 궁금했던 정보인데 알아서 찾아주니 편리하다고 여긴다. 한때는 웹 전문용어였지만 이제는 보통명사쯤으로 익숙해진 '알고리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놓은 절차를 말한다. 웹에서는 소셜 미디어나 뉴스 영상 포털사이트 같은 서비스에서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정보의 선택과 배치, 노출 빈도와 서열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화시키는 규칙으로 알려지면서 일반에게도 익숙한 개념이 됐다. 문제는 사용자 개개인의 수요에 맞춰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서비스'하려면 사용자를 '알아야' 하므로 개인 정보와 관심사를 여러 방법으로 수집하고 데이터화하게 되는데 그 데이터를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알고리즘에 적용시킨다는 점에 있다. 아니 애당초 알고리즘의 목표는 서비스가 아니라 수익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문제다. 디지털과 웹 데이터의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새로운 권력은 '알고리즘 권력'이다. 개개인의 웹서핑에서 알고리즘 권력이 드러내는 모습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내가 보고 있는 웹페이지에 슬쩍 '비슷한 관심사'를 보여준다. 이름도 근사한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소개하며 당신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무상 제공한다고 유혹한다. 당신이 틀림없이 좋아할 것 같으니 확인해보라고 한다. 당신을 위한 특별 할인이나 추천이 있다고 한다. 당신의 행동을 보니 분명 이게 필요할 것 같다고 이끈다. 당신의 친구들은 이걸 많이 봤다(좋아했다)고 귀띔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어 한 기사(상품, 정보, 영상, 사진)였는데 당신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추긴다. 여기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그 다음에 이렇게 했다고 유도한다. 유튜브에서 페이스북에서 넷플릭스에서 스포티파이에서, 알고리즘 덕분에 나는 나도 미처 몰랐던 내 관심사와 취향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깨닫는 역설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알고리즘의 능력은 내가 지닌 생각과 가치관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일정한 방향으로 교묘하고 은근하게 유도하고 편입시키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권력이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넙죽 받기만 할 때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공정할 것만 같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하지만 설계자의 가치관과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편향되고 휘둘릴 수 있다. 보여지고 주어지는 정보만 취하지 말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서 찾는 디지털 습관이 최종 방어책이다. 물론 검색 결과에서도 개인의 '의견' 이 아닌 신뢰할 '정보' 여부를 검증하고 취하는 것은 디지털과 알고리즘 권력의 시대를 사는 시민의 덕목이 됐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11-20

[감성 로그인] 온라인 응답자 741명의 의미

신문사 디지털부에서 일한다고 하면 웹이나 IT에 꽤 능한 사람으로 '오해' 받는 일이 생긴다. 인터넷이나 웹이나 IT나 심지어 컴퓨터(라는 하드웨어)의 문제점을 막 물어오면 대략,을 넘어 매우 몹시 난감해진다. 인터넷, 웹사이트, 모바일, 디지털 미디어 같은 엄청나게 포괄적인데 지나치게 간략한 단어로 압축 명명되는 이 분야에는 새털처럼 많은 업무가 세분화 돼있고, 다수의 인력이 그 '새털'을 직조하듯 얽혀 처리하는 일에는 사실상 '인문학적'인 부분이 많다. 보이그룹 걸그룹에서 먹방 담당이나 비글미 담당을 내세우듯 나는 이쪽에선 '인문학적 소양'과 '사용자 눈높이' 담당이다. 사용자들의 경험을 딱 반걸음 먼저 체험하고 그 눈높이에 공감하려면 기술적 숙련은 외려 독이 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터억 내걸고 사용자 수준의 웹 상식을 '유지'하는데 힘쓰는 기획자 운영자다. 하고 싶은 말은, 이처럼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한다는 것은 테크놀로지 친화적이면서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최신 첨단 날카로운 이성의 폭발 뭐 그런쪽 보다는 외려 대단히 노동집약적이고 감성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외계어 수준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좌악 깔린 모니터에 손가락 휘날리는 키보드 '마우스질'의 포스 이면에는 화살표 하나 점 하나, 깨알 버튼과 가로 줄 하나에 올인하는 기획자와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와 운영자의 가열찬 감성 노동이 엎드려 있다. 간단한 클릭 하나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화면 한 페이지에 어떤 고독한 코딩의 지난한 인내가 담겼는지는 며느리도 누구도 모른다. 최근 코리아데일리닷컴이 온라인 독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도 이런 이유다. 보이지 않는 독자들의 모니터 속으로 수없이 날린 종이비행기를 잘 받았는지, 어떻게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 온라인 설문이니 일일이 찾아가는 대신 '쿨하게' 온라인으로 묻고 온라인으로 답해달라고 했다. 메인홈에 한 줄, 여러분이 누구신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적어 올렸다. 그 한마디를 누르고 들어와 고민하고 답하고, 길고 친절한 마음을 나누고 떠난 741명의 독자가 있다. 코리아데일리닷컴의 주간 방문자수에 대비하면 0.1%에 불과한 숫자다. 하지만 하나의 응답은 백배 천배의 가치와 무게가 있다. 특히 모니터 속 독자와 만나는 '새털' 작업자들에게는 수십만의 가치를 넘는다. 사이트가 깔끔하고 구성이 좋다는 노트에 디자이너의 수개월 노심초사가 물감처럼 풀어졌다. 최신 뉴스 업데이트가 타 사이트보다 빠르다는 반응에 진종일 뉴스를 올리고 내리는 깨알 노동의 소통을 맛본다. 댓글을 달 수 있어 좋다는 인사에 스팸 욕설 댓글로 상처난 가슴이 아물고, 콘텐트가 다양해 타 사이트 비해 유익하다는 평가로 커뮤니티 서비스의 이름없는 '운영자'들은 땀을 식혔다. 로딩이 빠르다는 사용자의 한순간 경험담에 방문자 끊긴 심야를 기다려 홀로 서버를 점검하는 프로그래머의 고단이 잠을 이룬다. 더하여, 이런 설문조사를 통해 독자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이 코리아데일리닷컴의 장점이라는 너그러운 한마디가 사무치게 감사하다. 칭찬에 기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알아채기 힘든, 안보이는 시간의 노력이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믿음이 있고 결국 알아보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독자와 그렇게 소통이 이뤄진다는 기쁨이 감사하다는 그런, 말이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09-25

[감성 로그인] 윈스턴 홀세일몰의 '인종 풍경'

윈스턴 홀세일몰의 북쪽 입구에는 이라니안 부부의 잡화점이 있다. 콧수염 두둑한 아르메니안이나 히잡 쓴 여인들이 지나치다 몰 안으로 들어서는 시작점이다. 옆 잡화점에서는 말솜씨 좋고 인심 후한 한인 여주인에 바지런한 히스패닉 헬퍼가 온 동네 손님들을 자석처럼 끌어모은다. 긴 통로 중앙에는 춤추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우스꽝스러운 버블 헤드를 파는 대만 부부의 취미용품점이 흑인 커스토머들을 단골로 두고 있다. 가톨릭 성모상에 종류도 다양한 천사 조각상이 매일 한두개씩 깨져 나가도 그러려니 하는 장식품점의 주 고객은 히스패닉이다. 본토 중국 출신의 여주인은 앞집 대만 부부와 북경어인지 민난어인지 모를 그들만의 언어를 주고받고 도시락을 나누며 자매처럼 지낸다. 남쪽 입구에서 쇼케이스 하나 놓고 체인월렛과 라이터를 파는 젊은 남자는 히스패닉이다. 멕시코 깃발 펄럭이는 출입문 앞에서 하루 종일 라틴 채널 라디오를 틀어놓고 사람 좋은 미소를 날리며 지나는 행인들을 쇼핑몰로 이끈다. 몰 바깥 스트리트 파킹 미터기 앞의 깡마른 흑인 남자는 미터기 시간이 다 되면 쿼터를 넣어 시간을 벌어준다. 뒤늦게 허둥대며 달려온 히스패닉 손님이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팁을 건넨다. 가장 큰 잡화점의 한국인 주인은 쇼핑몰의 읍장이다. 이라니안이건 차이니즈건 멕시칸이건, 가게 주인이건 손님이건 헬퍼건 대동단결 하소연하고 의논하고 울고 웃으며 그를 찾는다. 매일 드나드는 세일즈맨은 코리안, 차이니즈, 인디안, 멕시칸, 살바도리안에 말레이시안까지 제각각의 ‘장기’ 가 있다. 덕분에 한국서 들여온 고급 액세서리에 다양한 인도 가죽용품에 중국 현지 공장과의 잡화 직거래가 저렴하게 펼쳐진다. 한낮에는 소시지 김밥을 찾는 히스패닉과 도넛에 한국 믹스 커피를 주문하는 흑인과 사발면 뚜껑에 나무 젓가락을 올려둔 차이니즈가 좁은 스낵숍 안을 요령껏 오가며 행복한 점심을 즐긴다. 4.29 폭동 때 코리아타운에서의 무용담을 수년 째 반복하는 스낵숍 사장과 그 얘기에 서슴없이 엄지를 치켜드는 흑인 손님도 그곳에 있다. 다운타운 토이 디스트릭트의 작은 홀세일 몰 안에서 그들은 다같이 그렇게 ‘덕분에’ 살아간다. 그가 있어 멀리 브라질에서 현금 다발 두둑한 빅 커스토머가 찾아오고 그가 있어 아르메니안 소매상이 부담없이 가게에 발을 들이며 그가 있어 흑인 잡화상이 집집마다 기웃대며 흥정을 한다. 그가 있어 예수 조각상과 함께 생뚱맞은 지갑 한 다즌이 팔리고 액세서리 단골이 어느날 문득 백팩을 라이터를 팔아보자고 옆가게에 들어선다. 몰 안에 어느 조각 하나도 빠지면 안될 퍼즐같은 공생의 현장이다. 인종을 녹여낸 용광로까지 바랄 필요도 없다. 샐러드로 비빔밥으로 어우러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만들어지고 존재 이유가 생겨난다. 서로의 차이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배우고 감사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나는 미국의 맨 얼굴을 보았고 미국 사회의 귀한 정신을 배웠다. '히스패닉의 침공' - 지난 주말 엘파소에서 총기 난사로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백인 총격범이 온라인 게시판에 남긴 선언문은 히스패닉이 텍사스를 장악할 것을 염려하였노라고, 이를 저지하고자 분연히 총격을 가했노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인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시작과 성장의 과정을, 누구의 손에도 주인의 채찍 따윈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니 외면하는 것일까.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다함께' 이 사회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그 엄연한 진실을 말이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08-07

[감성 로그인] 당신의 독립기념일은?

리처드 포드의 소설 '독립기념일'에서 마흔넷의 이혼남 프랭크는 전처와 사는 사춘기 아들과 독립기념일 휴가 여행을 떠난다. 프랭크는 아들에게 자유와 독립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여행을 계획했지만 실제 그가 겪는 독립기념일은 불의의 사건사고로 얼룩진 축제의 날, 독립을 갈망하는 사춘기 아들의 혼란과 대면하는 고통의 휴일로 찾아온다. 온 국민이 떠들썩 기뻐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즐기는 최강대국 미국의 탄생일이라는 화려한 배경 앞에서 평범한 소시민들이 치르는 '솔직한 국경일'은 어쩌면 그렇게도 외롭고 지독히 개인적이다. 국경일을 개인의 일상에 온전히 내면화·동기화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특히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한국인들은 '허겁지겁' 충돌하듯이 미국의 명절과 기념일 문화에 접속된다. 뉴이어스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은 그럭저럭 낯익어도, 달마다 기념일은 왜 기념하는지도 모르는 채 남들 따라 놀고먹으며 흘려 보낸다. 나도 그랬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을 축하해야 한다기에 그런가 보다, 조지 워싱턴 생일날이 대통령의 날이라기에, 메모리얼데이는 현충일 같은 날이라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찾아온 독립기념일은 그럼 광복절 같은 날인가 했는데 달랐다. 광복절은 태극기 조신하게 내걸고 장중한 기념식 중계를 온 국민이 관전하고 독립투사께 묵념하듯 보내는 내면의 휴일이었는데,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무장해제한 한마당 축제였다.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다시 태어난 생일날이 너무나 기뻐 폭죽을 터뜨리고 왁자지껄 바비큐 파티를 열며 개인주의자 미국인들이 모처럼의 단합과 결속을 이루는 명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숯불 매운 연기 속에 바비큐를 줄창 구워도, 아낌없이 팡팡 터지는 불꽃 폭죽에 감탄하며 셔터를 눌러대도 여전히 '독립의 기념'이 뼈저리게 사무치게 와닿지 않는 서글픈 간극은 어쩔 수 없다. 그럴 때 생각했다. 미국 땅으로 옮겨 오며 한국의 삶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탓이라고. 독립을 선언하지 않았고 독립을 애써 구하지 않았고 어쩌면 독립을 바라지도 않았던 때문일 거라고. 개인의 삶에서 독립을 기념할 수 있는 날, '7월4일'처럼 명확히 점찍는 날이 가능할까. 모태와 분리되며 독립의 테이프를 끊었달 수 있다. 걷기의 시작이 '자립'의 독립에 첫 발일 수도 있다.부모의 조력 없이 이뤄낸 어떤 작은 성취가 독립 역사의 첫 줄일 수 있고, 주민등록증이 공인한 성인의 날, 첫 월급으로 경제적 독립을 현실화한 날, 결혼하여 심신을 온전히 독립된 가정으로 옮겨놓은 날이면 독립 기념일이 될까. 아니, 한국의 삶을 마감하고 미국에 첫 발을 딛은 그날이 나의 독립기념일이 되어야 하는 걸까. 무엇을 떠올려도 여전히 몸은 어딘가에 붙잡혀 있고 마음은 무엇엔가 의지해 있다. 홀로 서있지 않다. 어떤 존재의 온전한 독립이란 선언만으로, 갈망만으로, 경제적 자립이나 공간의 분리만으로 완료되지 않는 무한에 수렴하는 알파요 오메가인가 싶다. 게다가 요즘엔 한가지 독립의 과제가 추가됐다. 울타리로 조력자로 자식의 부모로 살아가는 동시에 자식의 삶에 매몰된 부모의 삶, 자식 인생에 경도된 부모 삶의 목표, 자식의 삶에 투사된 부모의 성취 같은 '의존적인' 부모의 삶에서 독립을 선언할 때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올해도 나의 온전한 독립기념일은 미완이다. 당신의 독립기념일은 어떤가, 결정되어 있는가.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07-03

[감성 로그인] "찾으면 다 나와, 잊어도 돼"

지난 마더스데이에 선물을 고르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몇 군데 돌아다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다 브라우저를 닫았다. 며칠 지나 노트북을 열었는데, 페이지 오른쪽에서 내가 그날 구경했던 바로 그 신발이, 그 가방이 광고 배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화면 아래쪽에선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화장품이, 영양제가 줄줄이 흘러간다. 나는 네가 지난번에 뭘 보고 혹했는지 다 알고 있다면서 찜을 했던 물건을 콕 찍어 줄 세운다. 이거 마음에 있잖느냐고, 잘해줄 테니 어서 와 클릭하라고 팔을 잡아끈다. 가물거리는 기억이 가물거린다는 사실을 채 깨닫기도 전에 빠릿빠릿한 인공지능 로봇이 내가 접속한 순간 바로 들이닥쳐 느슨해져 가는 기억의 회로를 부지직 이어주는 경험이 점점 잦아진다. 그 경험을 역으로, 가성비 좋네 하며 지나쳤던 자동차용 청소기 모델을 남편에게 알려주려다가 기억이 안 나 브라우저를 열면 어김없이 광고 상품으로 변신 등장해주니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내 서핑 히스토리를 고스란히 빼가는 AI를 약삭빠르게 써먹었다는 쾌감에 잠시 우쭐도 하지만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단맛에 중독된 무기력한 내 미래가 염려되기도 한다. 이미 나는 기억력의 일부를 스마트폰에 내어주고 '외장하드'로 곁에 두고 사는 자발적 종속자다. 식구 친지들의 전화번호·생일·기념일·주소 다 적힌 오래 묵은 수첩, 처리할 일과 약속 촘촘히 정리한 스케줄 노트, 나중에 써먹자고 그때 그때 적어둔 메모장은 물론 예전에 배운 것, 요즘 새로 익힌 것 되살릴 필요가 있을 때 냉큼 서치해서,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는 정보인 양 행세하게 해주는 엽렵한 백과사전이 그 안에 다 들었다. 흘려들어도, 스치고 지나쳐도 안심이다. 정확히 어딘지 모르지만 그 어딘가에 다 들어 있어 괜찮다. '돌아서면 잊어먹는다'는 인생 선배들의 한결같은 푸념이 내 고백이 될 줄 미처 몰랐던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불끈 다짐했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뭘 꺼내려고 했는지, 이층 계단은 왜 오르기 시작했는지, 집 나서는 남편을 왜 불러세웠는지 뇌 회로가 십 초씩 깜빡 깜빡 점멸등을 켜는 요즈음이 됐다. 더구나 한창 이야기 중에 누구의 이름이나 사건 발생일이나 오간 돈의 액수나 가격 뭐 그런 키포인트가 죄다 그 왜 있잖아 그 사람, 90년댄가 2000년댄가 그 무렵에, 아마 삼백불이었나 오백불이었나 아무튼…으로 흐리멍덩 뭉뚱그려질 때의 당혹감은 자괴와 자책으로 스스로를 갉기 일쑤다. 그럴 때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 의 능력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잠시만 몰랐던 것으로, 잠깐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심상히 넘어갈 수 있으니 진정 행복하다. 안개처럼 갑갑한 엉킨 기억의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더없이 감사하다. 적당히 잊고, 적당히 흘러가는 기억 떠나보내고, 적당히 인공지능과 스마트한 전화기의 능력에 기대며 살아가는 좋은 시절을 그냥 누려보기로 한다. 좀 잊으면 어때, 찾으면 다 나오는데,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는데.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05-21

[감성 로그인] '한인뉴스' 폭풍 클릭, 그 이유

한인 의사 등 4000만불 뇌물 유죄 / 날치기 강도 한인마켓 손님 노린다 / 손주 돌보러 미국 온 60대 한인 추방 / ICE 한인 기업 급습 무더기 체포 / 돌아온 원정출산아 미국서 특혜만 누린다…. 최근 일주일간 미주중앙일보 웹사이트 코리아데일리닷컴(koreadaily.com)에서 하루 최고 클릭 수를 기록한 기사들이다. 코리아데일리닷컴 홈에서는 신문 지면으로 발행되는 뉴스와 함께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한국발 통신 뉴스와 한국 중앙일보 기사들도 선별 소개되기 때문에 뉴스 영역에서만 하루 최소 150여건 이상의 기사들이 노출된다. 사이트 방문자들은 미주중앙일보의 현지 취재 기사와 함께 한국과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각양각색의 뉴스들을 나란히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내 정치권의 굵직한 뉴스와 연일 터지는 총격 테러 소식, 미 대륙 전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 한국의 주요 정치 사회 현안과 연예계 성폭력 가십들까지 눈길과 관심을 끄는 자극적인 뉴스들이 저마다 나를 '눌러' 달라며 부지런히 들고 난다. 그러나 전쟁같은 하루의 뉴스 세례를 마감하고 그날 가장 많은 클릭수를 받은 기사가 무엇인지 집계해보면 결국 톱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어김없이 '한인' 관련 뉴스다. 한인 뇌물, 한인 추방, 한인 마켓, 한인 기업, 한인 미담…. 유수의 미국 신문 방송 미디어들에서는 아예 뉴스가 되지 않는, 주목조차 하지 않는 소식과 관심사지만 미주 한인들에게는 하루 1만번을 훌쩍 넘겨 클릭하며 궁금해하는 '중요하고 궁금한' 이슈이자 핫 뉴스가 되는 것이다.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뉴스 독자에게는 나와 내 가족, 내 친구와 이웃의 삶에 직접 관련이 있는 소식이 가장 중요하다. 초대형 강진으로 남미에서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비싼 위성의 현장 중계보다도 어젯밤 우리 집 정전이 돌풍으로 쓰러진 전신주 때문임을 알려주는 한 장의 사진에 더 눈길이 간다. 멀리 시카고에서 총격 테러로 수십명 사상한 긴급 속보보다 오늘 낮 LA한인타운 마켓의 소매치기 영상이 더 소름돋는 염려를 돋우는 것은 나와 비슷한, 나처럼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의 성취와 좌절이, 밤새 정전의 암흑 속에 어리둥절했던 그들의 황망함이, 어제 갔던 그 마켓 주차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이웃의 충격이 모두 내 일상과 미래의 가능성에 강력한 연관을 가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 동질감이 개개인 뉴스 가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속 한인들, 우리 이민자들, 이민자의 후손들이 서로의 사는 모습을 궁금해하고 관심을 보내며 성취엔 박수를, 좌절엔 안타까운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눈높이를 이해하는 한인 미디어의 존재 이유를 웅변한다. 전 미주에서 보내오는 조용한 클릭의 데이터, 그 엄숙한 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04-12

[감성 로그인] 유쾌한 프로 댓글러를 기다리며

나는 댓글을 자주 읽는다. 사실 매일 읽는다. 코리아데일리닷컴의 뉴스 댓글은 물론 다른 웹 페이지나 블로그 미디어들의 댓글, 페이스북 포스트나 인스타그램의 댓글도 즐겨 읽는다. 온라인 뉴스 편집자의 업무 영역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방문자들의 생각과 반응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읽는다. '뉴스의 완성은 댓글' 이랄만큼 정보를 보완해주는 댓글도 있고 뉴스 보도에 대한 예리한 비판도 있다. 요즘엔 영상도 있고 그림도 사진도 이모티콘으로 장식된 3D급 댓글도 많다. 뉴스나 포스트가 '주인공' 이라면 댓글은 한걸음 물러나 '웅성대듯' 주고받는 조연급 뒷담화다. 웹에 공개되는 것이니 사실은 뒷담화의 옷을 입은 앞담화다. 동굴 담벼락에라도 뭐든 끄적이고 싶었던 인류의 조상들부터 뭔가를 말하고 타인과 나누고자 해온 인간 본능의 최신 수단이다. 대학 카페테리아에서 오가는 대화를 분석해봤더니 철학적 학문적 담론은 없고 죄다 친구들의 가십들 뿐이었다면서, 인간 언어와 뇌의 진화는 '뒷담화'를 위해 촉발됐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도 있다. 더구나 카페테리아에 마주 앉은 제한된 몇몇과는 비교도 안되게 천문학적 숫자의 불특정 다수들을 향해 내 주장을 널리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막강 영향력을 지닌 것이 댓글이다. 접근 문턱이 낮기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댓글 여론의 장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역시 '목소리 큰 사람' 이다. 되도록이면 자극적인 언어로, 들리지 않지만 명백히 큰 목청으로, 비판과 문제 제기를 반복할수록 관심을 끌어모은다. 좋아요든 싫어요든 늘어나는 반응 수치는 다시 호기심을 자극하며 영향력을 증폭시킨다. 주연은 온데간데 없고 뒷담화 조연이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다. 프로 댓글러의 등장이다. 그런데 최근 두가지 흥미로운 리포트를 봤다. 지난해 한국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인터넷 뉴스나 토론 게시판에 댓글을 다는 사용자층이 10, 20대는 줄어들고 50대 이상은 늘었다고 한다. 10대나 20대들이 소셜 미디어나 게임 등을 집중 소비하는 반면 50대 이상 중장년층 사용자들은 주로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조사에서는 20, 30대 젊은 세대들은 댓글을 읽은 경험이 가장 높고 작성하는 경험은 가장 낮았던 반면 60대 이상은 댓글을 작성한 경험이 가장 높고 읽은 경험은 가장 낮았다. 결국 뉴스의 주 소비층인 50,60대 중장년들이 열심히 작성한 댓글 의견을 20,30대 젊은 세대가 주로 소비한다는 얘기다. 댓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령대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놀랍다. 흔히 접하는 묻지마 욕설과 무차별 비방이 철없는 나이의 치기만은 아니었던 거다. 중장년층의 댓글 여론이 댓글 문화의 품질을 좌우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럼 점에서 나는 유쾌한 댓글을 희망한다. 유머는 나이와 지역을 안가리는 백전백승 치트키다. 빙글빙글 씨익 웃으며 한 수 접어주는 유머러스한 댓글을 만날 때는 나도 모르게 모니터 속으로 손 내밀어 악수하고 맞장구 치고 싶어진다. 오늘도 엽전, 쓰레기, 가짜, 무식, 닭과 쥐와 죄인이 난무하는 시끌벅적 댓글 속에서 성숙한 프로 댓글러의 위트와 유머 넘치는 보석 댓글의 방문을 믿고 기대한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9-02-15

[감성 로그인] 디지털 새해 결심 다섯가지

연초 새해에는 작은 계획이라도 세워 실천해보자는 나름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 특히 명색이 디지털부 소속인데, 디지털과 관련한 새해 미션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자료를 찾다보니 테크 전문 미디어 씨넷의 제안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좋은 습관들을 제시하고 있어 만만해보였다. 접수했다. 첫 미션은 이메일 디톡스였다. 요즘 웹 서비스는 이메일 주소 입력이 필수라 서핑 하다보면 홍보 이메일이 순식간에 메일함을 점령한다. 특히 어떻게 노출됐는지 이름도 낯선 사이트들의 정크 메일이 넘치게 쌓인다. 매일 5개씩 메일링 구독 취소 작업을 권했다. 정크 메일을 열고 끝자락에 보일 듯 말 듯 놓인 구독취소 버튼을 찾아 3주 정도 매일 작업했더니 이후 정크 메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귀찮은 만큼 효과가 확실했다. 두 번째 미션은 온라인에서 멋진 사람이 되기였다. 자랑이 아니라 나는 온라인에서 악플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트집이나 비방이나 욕설 댓글을 볼 때면 한마디쯤 따끔한 지적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래서 이 미션을 채택했다. 악플 달지 말고 악플에 대응도 말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칭찬과 위로와 격려의 말을 쓰자고 결심했는데 솔직히 안 쓰는 것은 성공했지만 적극적인 선플은 부족했다. 게으름과 무관심이 결심의 절반을 깎아먹었다. 세 번째, 휴대폰 내려놓기 미션은 절대적으로 실패했다. 내려놓기는커녕 손에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할 지경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종일 한 손은 휴대폰용으로 기꺼이 할애하고 책상에서 식탁에서 소파에 앉아서도 습관적으로 폰을 집어든다. 걸을 때나 엘리베이터 탈 때나 줄 설 때나 혼자 먹을 때 심지어 타인과 먹을 때도 폰 화면을 수시 확인했다. 휴대폰 사용량을 측정하고 밸런스 유지를 돕는 앱을 설치하라는 권고는 결과를 보기 위해 또다시 폰을 들여다보는 아이러니가 우습다고 무시했다. 참패다. 네 번째 미션은 지금 가진 휴대폰에 감사하기였다. 매년 경쟁적으로 고가의 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프로모션이 업그레이드를 유혹하고 누구나 최신폰을 자랑삼아 말하는 환경에서 통신사 2년 할부 약정을 간신히 채우면 어느덧 구형폰 사용자가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11월로 2년 약정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이달부터는 할부금이 쑤욱 빠진 고지서를 열어보며 진심 행복했다. 휴대폰 뿐 아니라 내가 가진 '새 것이 아닌 것' 들의 묵묵한 존재감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 것은 뜻밖의 덤이다. 다섯 번째는 운전 중 안전 장치 확보였는데 이 미션을 위해 거추장스럽다며 카 액세서리를 회피해온 습관을 버리고 연초에 콤팩트한 휴대폰 거치대를 장만해 대시보드에 설치했다. 운전 중에는 최대한 폰에 손대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폰에 장치된 운전 중 자동 응답 기능을 활성화해서 오롯이 운전에만 집중하는 단계까지는 실천 못했다. 한 해의 끝에서 연초 결심을 되돌아보니 겨우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 마무리를 한다는 것은 시작의 기회가 온다는 다른 말이라고 위안하며 새해 디지털 결심은, 나머지 절반의 미션을 기필코 이뤄내자는 결심으로 시작하려 한다. 한 해가 저문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choi.joomi@koreadaily.com

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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