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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 한인 여고생 가족 “국가에 배신당해” 항소

유명 팟캐스트가 유죄 판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한인 여고생 이해민(사건 당시 19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던 남성이 풀려난 가운데 피해자 가족이 법원 결정에 항소했다. 〈관련 기사 9월 21일 자 A-3면〉   이씨 가족을 대리하는 변호사 스티븐 캘리는 “아드난 사이드에 대한 유죄 판결을 무효화한 결정이 있었던 9월 19일 심리 당시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침해됐다”면서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CNN 등이 29일 보도했다.   앞서 이씨 가족은 심리에 출석해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 전에 사전 고지를 받지 못했다면서 심리 당일에도 법원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판사는 30분간 정회하면서 이씨의 가족이 화상회의 서비스를 통해 심리를 볼 수 있도록 했다고 CNN은 전했다.   이씨 가족은 당시 법원의 판단 뒤에 “이것은 팟캐스트가 아니라 진짜 삶”이라면서 “국가가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메릴랜드주 지방법원의 멜리사 핀 판사는 1999년 한인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20년 넘게 복역 중이던 아드난 사이드를 석방했다. 사이드는 1999년 1월 당시 여자친구였던 이씨를 목 졸라 죽인 뒤 인근 공원에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4년 팟캐스트 프로그램 ‘시리얼’(serial)에서 유죄 판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큰 조명을 받았으며 검찰도 다른 용의자에 대한 정보 확보 등을 이유로 법원에 유죄 판결 취소를 청구했다.   법원은 기존 유죄 판결을 무효로 했으며 30일 내로 다시 소송을 다시 제기하거나 공소를 취소해야 할 것을 명령했다. 검찰은 다시 소송을 제기할지 등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여고생 피살 한인 여고생 피살 한인 이씨 가족

2022-09-29

[삶의 뜨락에서] 방 한구석이 바로 왕국

태도를 바꾸면 주변이 변한다. 이는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제8부의 주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는 이를 태도라고 부른다. 기본적 태도가 두려움인 사람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어 타인에 관대하다. 부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실수도 남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되며 결국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배울 수 있고 무에서도 기회를 창조하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환영을 받게 되어 매사가 기쁘고 활기차다.     러시아의 유명작가 안톤 체호프는 자신이 처한 역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태도를 바꿈으로써 의사가 되었고 동시에 문학가로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일 두려움에 휩싸여 아침을 맞았다. 분명한 이유도 없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지팡이나 채찍으로 아들 다섯과 여동생까지 몇 차례씩 후려갈겼다. 가족은 지옥 같은 나날을 견뎌내야만 했다. 결국 그의 집안은 몰락하였고 온 가족은 모스크바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안톤은 고향 시골에 혼자 남아 고등학교를 마치기로 결심한다. 가정교사자리를 여러 곳 구해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방 한구석을 빌려 문학, 철학, 과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의대 진학을 준비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모스크바 가족과 합류하게 된다. 막상 모스크바에 당도해보니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그의 가족은 모두 술과 마약에 자기 파괴적인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자기 가족에게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가족들에게 설교한다거나 비난하는 대신 스스로 좋은 모범을 보여주기로 한다. 집 안 청소부터 다림질까지 도맡아 하고 장학금으로 동생들을 다시 학교에 보낸다. 서서히 가족들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생활이 안정권에 들어서자 그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된다. 가난하고 불운했던 고향 땅의 방 한구석! 거기가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 산실이라고 생각했다. 그 방 한구석에서 그는 읽고 또 읽고 그 만의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떠나고 그 방 한구석에 혼자되었을 때 그는 덫에 걸려 두렵다는 생각 대신, 해방감과 자유를 얻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책 속에서 길을 얻은 것이다. 그는 가슴 속 깊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농노였던 체호프 일가의 비애가 이해되었다.     이렇게 아버지를 이해한 것이 토대가 되어 어느 날 갑자기 부모에 대한 연민과 조건 없는 사랑이 밀려옴을 느꼈다. 그는 마침내 원망과 분노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는 자유로웠다. 그는 이 체험을 모두 적어나갔다.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마음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되새기면서!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한구석 왕국 모스크바 가족 술주정뱅이 아버지 남아 고등학교

2022-09-27

[삶의 뜨락에서] 방 한구석이 바로 왕국

태도를 바꾸면 주변이 변한다. 이는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제8부의 주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는 이를 태도라고 부른다. 기본적 태도가 두려움인 사람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어 타인에 관대하다. 부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실수도 남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되며 결국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배울 수 있고 무에서도 기회를 창조하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환영을 받게 되어 매사가 기쁘고 활기차다.     러시아의 유명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1860~1904)는 자신이 처한 역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태도를 바꿈으로써 의사가 되었고 동시에 문학가로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일 두려움에 휩싸여 아침을 맞았다. 분명한 이유도 없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지팡이나 채찍으로 아들 다섯과 여동생까지 몇 차례씩 후려갈겼다. 아버지는 어떤 분명한 악의나 분노가 없이 사랑해서 때리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온 가족은 날마다 지옥 같은 나날을 견뎌내야만 했다. 결국 그의 집안은 몰락하였고 온 가족은 큰 도시 모스크바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안톤은 고향 시골에 혼자 남아 고등학교를 마치기로 결심한다. 가정교사자리를 여러 곳 구해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방 한구석을 빌려 문학, 철학, 과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의대 진학을 준비한다. 그 당시 10대였던 그는 왕성한 독서광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을 비난하는 대신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키워나가는 젊은 의학도로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모스크바 가족에 합류하게 된다. 막상 모스크바에 당도해보니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그의 가족은 모두 술과 마약에 자기 파괴적인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자기 가족에게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로 결심한다. 가족들에게 설교한다거나 비난하는 대신 스스로 좋은 모범을 보여주기로 한다. 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의욕을 불어 넣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집 안 청소부터 다림질까지 도맡아 하고 장학금으로 동생들을 다시 학교에 보낸다. 서서히 가족들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생활이 안정권에 들어서자 그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된다. 가난하고 불운했던 고향 땅의 방 한구석! 거기가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 산실이라고 생각했다. 그 방 한구석에서 그는 읽고 또 읽고 그 만의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떠나고 그 방 한구석에 혼자되었을 때 그는 덫에 걸려 두렵다는 생각 대신, 해방감과 자유를 얻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책 속에서 길을 얻은 것이다. 그는 가슴 속 깊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농노였던 체호프 일가의 비애가 이해되었다. 아버지의 천성과 그 터무니없는 행동도 그 자신도 모르고 있고 피할 수 없는 가족력으로 내려온 덫이겠구나 생각이 드니 아버지도 무력한 희생양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버지를 이해한 것이 토대가 되어 어느 날 갑자기 부모에 대한 연민과 조건 없는 사랑이 밀려옴을 느꼈다. 그는 마침내 원망과 분노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그는 자유로웠다. 그는 이 체험을 모두 적어나갔다.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마음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되새기면서!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한구석 왕국 모스크바 가족 술주정뱅이 아버지 자기 가족

2022-09-23

“가족은 나의 힘…전국 최고 딜러로 우뚝 서겠다”

스탠턴에 본사를 둔 김스피아노(대표 김창달)는 한인사회는 물론 전국 피아노 업계를 통틀어도 경쟁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를 지녔다.   김스피아노가 3개 매장과 창고에 보유한 피아노는 현재 총 600대다. 스탠턴 본사 매장에 250대, 터스틴 매장에 150대, 롤랜드하이츠 매장과 스탠턴 창고에 각 100대씩을 보유하고 있다.   매장이 넓어야 많은 피아노를 전시할 수 있다. 3개 매장 쇼룸 총면적은 2만5000스퀘어피트다. 본사 매장엔 150석 규모의 콘서트 홀도 있다.   김 대표는 “거래처 사람들이 매장을 둘러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큰 피아노 딜러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는 거다. 덕분에 피아노를 들여놓을 때, 크레딧을 많이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김스피아노는 매달 평균 100~150대를 판매한다. 가와이 공인 딜러인 김스피아노는 매년 가와이 톱 딜러상을 받은 지 10년이 넘었다.   1987년 이민 오기 전, 서울 낙원상가에서 피아노 판매상을 한 김 대표는 LA의 이병일 피아노에서 조율사로 일하다가 1991년 가든그로브의 가와이 딜러를 인수했다. 김스피아노의 31년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 대표는 “김스피아노를 시작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중앙일보에 지면과 업소록 광고를 내고 있다. 30년 동안 인연을 맺으며 동반 성장한 셈”이라며 껄껄 웃었다.   김스피아노는 패밀리 비즈니스다. 김 대표와 부인 수정씨, 동생 스티브, 피터씨와 아들 벤자민, 조너선씨가 3개 매장에 고루 포진해 관리한다.   큰 고비도 세 차례 겪었다. 김 대표는 9·11 테러, 2007년 금융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3대 위기 중에서도 금융 위기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김 대표는 “어려움도 컸지만 그 때마다 가족의 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자금 압박이 심해도 직원 인건비는 줘야 하는데 우린 가족이 모두 1인 3역을 하며 한마음으로 버텼다”라고 설명했다.   위기를 극복하니 기회가 찾아왔다. 경쟁 업체들이 잇따라 문을 닫는 동안 김스피아노는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팬데믹 기간 중 집안에 틀어박혀 돈을 쓰지 않던 이들이 피아노를 많이 샀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 동안에 많은 업체가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 고객이 크게 늘었다. 물론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한다”고 말 했다.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피아노를 사는 고객층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한인, 중국계, 베트남계, 기타 타인종 순으로 고객이 많았는데 요즘엔 중국계와 베트남계, 한인, 기타 타인종 순이다.   김 대표는 피아노 시장이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중간 가격대에선 일본의 가와이와 야마하가 가장 잘 팔리고 고가 피아노는 독일의 스타인웨이, 벡스타인, 에스토니아의 에스토니아 등 유럽산이 대세란 것이다.   김 대표는 “중산층의 패밀리 세단으로 도요타와 혼다가 인기고 고급 세단은 벤츠, 벤틀리 등 유럽산이 잘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비유했다. 또 “재즈나 가벼운 음악에 잘 맞는 야마하는 중고가 잘 팔려 중고를 수입해서 판다. 가와이 피아노 중엔 수제품도 있는데 시게루 가와이는 스타인웨이와 함께 콩쿠르에 출전하는 피아니스트가 선호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피아노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다. 스무 살 때 6개월 동안 재즈 피아노를 배운 것이 전부지만 타고난 음감과 음악성으로 명동의 음악 카페 ‘마드모아젤’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였다. 김 대표는 스탠턴 매장 콘서트 홀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고 한인 단체들의 각종 행사에 초청 받아 연주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엔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열린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 초청 설맞이 동포 음악의 밤’ 무대에도 올랐다. 김 대표는 자신의 연주곡 18번으로 ‘마이 웨이’와 ‘고엽’을 꼽았다.   김 대표의 목표는 김스피아노를 전국 최고의 딜러로 키우는 것이다. 김 대표는 “내가 더 나이를 먹으면 부사장인 벤자민이 회사를 물려받을 거다.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면 벤자민이 그 꿈을 이뤄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대를 이어 꾸는 꿈, 이 또한 패밀리 비즈니스의 장점이다.   주력 상품:  업라이트 베스트셀러 가와이 K300   베이비 그랜드피아노 가와이 GL10   김스피아노가 가장 많이 파는 피아노는 가와이 K300 업라이트 모델이다. 가격은 8000달러다.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중엔 가와이 GL10이 베스트셀러다. 가격은 1만2000달러다.    독일제 스타인웨이는 중고 가격이 5만 달러대지만 꾸준히 팔린다.   김스피아노는 이 밖에 뵈젠도르퍼, 에스토니아, 볼드윈 등의 신제품은 물론 리빌트, 중고품을 다양하게 갖추고 판매한다.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소문이 난 덕분에 일반 고객 외에 전문 연주자와 할리우드 스타, 유명 기업 임원, 음악 교사, 음대 학생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련기사 315페이지에 담은 50년 전 한인 역사 LA한인회 역사…반세기 세월 넘어 한인사회 대표 단체로 한인 업종 변화…식당 다양해지고 전문직은 더욱 세분화 독자 인터뷰…"읽을거리 없다는 말 듣지 않게 해달라" “업소 장수 비결은 고객서비스와 신용” “중앙일보 광고와 25년 영업 함께 했죠” “가족은 나의 힘…전국 최고 딜러로 우뚝 서겠다” “3대째 가업 잇는 자부심으로 진료합니다” 타운 경제의 산 역사, 디지털로 거듭난다 1972년 첫 업소록, 50년전 우리를 만나다 임상환 기자전국 가족 피아노 딜러 전국 피아노 피아노 판매상

2022-09-21

KT&G,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 경쟁력이 산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민간’을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을 근간에 두고 있다.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 등으로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면, 경제가 성장하고 민간 중심의 일자리 질 개선과 고용 확대가 이어진다는 취지다.   정부가 좋은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제도를 통해 일하기 좋은 문화를 조성해온 KT&G의 노력이 주목받고 있다.   □ 일할 맛 나는 기업…‘공정한 인사제도’, ‘일과 삶 균형’ 추구   KT&G는 임직원의 일자리 질 개선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는 기업으로 꼽힌다. 좋은 일자리를 위한 KT&G의 노력은 ‘공정한 인사제도’와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 추구’로 요약된다.   KT&G는 지난해 글로벌 비영리재단인 평등임금재단으로부터 국내 상장사 최초로 ‘평등임금인증(Equal Salary Certification)’을 획득하며, 선진화된 인권경영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했다. 인증을 통해 KT&G는 채용, 평가, 승진 등 인사제도 전반의 모든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며, 동일한 자격의 직원에게 동등한 임금정책을 시행하는 등 인사제도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KT&G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출산과 육아 관련 가족친화 제도는 업계에서도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출산 휴직’과 ‘육아 휴직’ 등 출산과 육아를 위한 최대 3년의 휴직 기간을 보장한다. 이에 더하여 육아 휴직 기간 중, 1년 차에 월 100만 원과 2년 차에 월 200만 원을 지원해, 휴직 중에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이 밖에도 영유아 자녀 보육 지원금과 난임 치료비 지원 등 다양한 가족친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KT&G는 임직원의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유연한 근무환경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시차출퇴근제, 선택적 근로제, 보상휴가제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며, 모든 제도는 직원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부서장 승인에서 확인 위주로 전환했다.   □ 임직원 가족도 챙긴다…생애주기별 응원 프로그램 ‘가화만社성’   KT&G는 임직원 뿐만 아니라 임직원의 가족들도 챙긴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 2017년부터 ‘가정이 화목해야 회사의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담은 임직원 응원 프로그램인 ‘가화만社성’을 운영하고 있다. ‘가화만社성’은 ‘임직원 생애주기별 케어’라는 콘셉트로 연중 이어진다. 자녀 입학 축하선물, 수험생 응원선물, 출산‧임신 축하 꽃바구니 전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임직원 모두의 일상 회복을 응원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피로회복, 면역력 증진, 위생관리 제품을 포함한 ‘힘내라 KT&G 키트’를 제작해 CEO 응원카드와 함께 임직원에게 전달했다.   KT&G는 글로벌 수준의 선진적인 기업문화 조성을 위해 사내소통 전담부서인 ‘ER(Employee Relations)팀’을 운영하고 있다. ER팀은 스마트한 업무방식 적용, 세대간 융합 콘텐츠 개발 등 임직원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해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2030세대들로 구성된 차세대 리더 협의체인 ‘상상주니어보드’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KT&G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과 ‘워라밸 실천 우수기업’에 선정되고,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을 획득하며, 직원들과 소통하며 기업문화를 발전시켜온 노력을 인정받았다.   KT&G 측은 “KT&G의 우수한 기업문화는 회사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회사와 직원들이 함께 발전시켜온 결과물”이라며 “앞으로도 직원의 행복이 경영성과의 근간이 된다는 철학 아래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동현 기자 kang_donghyun@koreadaily.comKT 경쟁력 임직원 응원 임직원 가족 가족친화 제도

2022-09-13

코로나19시대 가슴앓이 만남

팬데믹 이후 여행이 비교적 자유롭게 되면서 한국을 찾는 방문객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팬데믹 기간중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던 것이 이동제한이었는데 특히 한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지 못해서였다. 현재는 팬데믹도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고 이전보다 자유로워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팬데믹 기간에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과의 만남을 고민해봤다.   한국의 가족 방문 이외에도 미국내 가족 방문도 팬데믹 기간중에는 매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가족같이 지냈던 지인과의 만남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인간이 가까운 사람, 가족,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마치 감옥에 갇혀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것이라면 이전 세기에는 없었던 다양한 디지털 만남의 기기가 그나마 소식을 전달해줬다는 점이다. 만약 팬데믹이 아이폰 출시 직전인 15년 전에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외로움과 단절감에 빠져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수긍이 가는 이유다.     #80대 초반인 엘리자베스 김씨는 최근 별세한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심한 몸살을 겪는 바람에 한인타운에서 치러진 장례식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씨의 아쉬움은 상당하다. 10년 넘게 같은 시니어아파트에서 매달 모임을 함께 하며 친하게 지냈던 7명중 한 사람인 8세 연상의 지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만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서다. 지인의 아들이 입원시킨 병원이 세리토스에 있는데 고령인 엘리자베스씨는 운전이 어려워 지인의 아들에게 어렵게 라이드를 부탁했지만 거절 당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10년 지기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 지인의 마음도 모르고 김씨의 마음도 모르는 지인의 아들이 야속했다. 결국 자신의 몸이 불편해 가까운 곳에서 열린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샘 백씨는 최근 타계한 아버지와의 마지막 며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지난 7월 간단한 시술을 위해 입원했던 80세의 아버지가 다른 암이 너무 경과한 것을 발견해 퇴원을 하지 못한 채 별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씨는 아버지가 입원했던 몇 주중 대부분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했다. 특히 마지막 1주일간은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위로하며 아버지의 마무리를 도왔다. 자신은 불효자라고 하지만 수많은 아들들은 할 수 없었던 임종을 제대로 한 것이다. SNS에서 백씨는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소개하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상당히 많은 의료시설이 폐쇄됐다. 팬데믹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코로나로 인한 별세는 물론, 코로나가 아닌 병환으로 세상을 등진 시니어들 상당수도 가족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가족들이 모여서 장례식을 치른 것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고 대부분 통보만 받은 경우가 많다. 더구나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별다른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매장하는 사태도 있었다. 뉴욕에서 일어난 일로 창궐하는 코로나에 장례 서비스가 감당하지 못하자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관을 묻는 사진이 공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에서 요양병원에 거주하는 연로한 부모를 둔 한인들의 가슴 앓이도 상당히 심했다. 이미 60대인 자녀가 90대인 부모가 입원한 요양병원이 폐쇄돼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다. 운이 좋은 제니퍼 신씨는 지난해 12월 요양병원이 잠시 문을 열었던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 90대 어머니 침대 옆에서 1주일을 간호하다가 돌아왔다.       #한인이 미주에 거주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한국에 거주하는 연로한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상당수가 별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한국행 비행기를 몸을 싣게 된다. 그래서인지 팬데믹이 끝나가는 현재 한국행 비행기 좌석은 완전 만석이다. 팬데믹 기간중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못해서 부모를 뵙지 못한 '불효 자식'들도 상당수다. 그나마 살아계셔서 만나러 갈 수 있는 자식들은 팬데믹 기간중 타계한 부모를 둔 사람들을 배려해 표정관리를 하며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   포스트 팬데믹, ‘줌’을 열어라   전문가 제안      "만남의 줌을 열어라, 그런데 단 40분이다."   팬데믹이 끝났다고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만남의 필요성, 혹은 당위성은 알게 됐지만 현실은 녹녹치가 않다. 하지만 만남의 광장에 매일 나갈 수는 없지만 만남의 줌은 열 수 있다.   팬데믹으로 줌(Zoom.us)같은 화상 만남서비스가 일반화됐다. 이전에는 "난 컴퓨터 몰라." 그러면서 손사래를 치던 시니어들도 이제는 세상에 순응해 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족들과의 화상 만남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첫째, 규칙적인 같은 시간 모임이 중요하다. 월요일마다 오전 수업 시작 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있는 조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줌을 통한 가족 만남의 시간을 1주일에 한번으로 정하라. 예를 들어 목요일 오후 8시쯤으로 하면 좋다. 가족에 따라서 1주일에 2번 만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1주일에 한번이 무난하다. 격주나 2주에 한번은 잊기 쉽고 1개월에 한번은 흐지부지 되기 쉽다. 또한 줌은 40분이 무료다. 굳이 유료 버전을 쓰지 말고 딱 40분만 만나라. 녹화가 가능하니 나중에 다시 보는 가족도 참여할 수 있다. 둘째, 참여가 중요하다. 가족이 아주 적지 않다면, 일부 구성원들에게는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배려하라. 또한 예를 들어 연속해 3번 빠지면 안된다는 의무 규정 등을 정하라. 물론 주최자는 항상 문을 열고 기다려야 한다. 셋째, 안부부터 묻고 격려하는 시간이 되라. 디지털 화상을 통해 얼굴이 보이면 처음엔 누구나 쑥쓰럽고 말문이 안 열린다. 재벌회사 사장단 모임도 아닌데 무게를 잡을 필요는 없다. 일단 가족 안부부터 얘기하고 절대 혼내거나 꾸짖는 시간이 아닌 격려의 시간이 돼야 한다. 여유가 되면 가족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좋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얘기, 미국에 이민 오게 된 사연 같은 것도 손자녀들에게 좋은 가족 이해의 기회가 된다. 넷째, 토론의 시간도 좋다. 나중에 가능해지면 주요 주제로 가족간 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다섯째, 규칙은 없다. 가족 모임을 화상으로 갖는 것은 가족을 위한 것이다. 만약 여의치 않으면 안해도 사는데 전혀 지장없다. 그래서 규칙은 없다.       장병희 기자아이폰 가슴앓이 가족 방문 한국행 비행기 아버지 어머니

2022-09-05

[독자 마당] 코로나 격리

7주간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들 가족을 마중하러 LA공항으로 향했다.     아들 가족이 긴 여행을 잘 마치고 한국을 떠나기 바로 전 며느리가 감기 증상과 함께 몹시 아프기 시작했고 코로나에 감염된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 개학이 다가오기에 아픈 중에도 돌아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공항도 LA공항에서도 코로나 검사 안했니? 라고 물었더니 검사를 안했다고 한다. ‘돌아 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검사 결과 5명 모두 양성으로 나온 게 문제였다. 마땅히 마중 할 사람이 없어 80세가 넘은 우리 부부는 4차 접종까지 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마중을 나갔다. 집 안에서도 조심하고 잘 격리하면 된다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50여일 동안 두 노인만 살다 다시 7식구가 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며느리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옮기면 큰 일이라고 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지낸다. 우리 부부는 “식사하세요”라는 며느리의 말에 큰 식탁에서 우리 둘만 마주 앉아 얼른 먹고 “다 먹었어요”라고 소리치고 방으로 숨어버린다. 그 후 5식구가 나와서 식사를 한다. 날마다 들락거리던 작은딸은 아예 오지도 않는다. 전달할 물건이 있으면 전화로 연락하고 걸어 놓고 간다.     집 전체가 격리되어 있는데 우리 부부는 또 방에서 한번 더 격리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보고 싶고 안고 싶던 손주들도 피해 다녀야 하니 참 고약한 세상이다.   1주일 후 가장 심각했던 며느리가 음성이 나왔다.     그런데 아들 가족 5명은 모두 음성이 나왔든데  우리 부부가 양성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부부는 방에서 또 격리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상 언제 끝나려나, 감옥살이가 따로 없구나’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정현숙 / LA독자 마당 코로나 격리 코로나 격리 코로나 검사 아들 가족

2022-08-28

[삶의 뜨락에서] 제비집을 그리다

‘정원의 쓸모’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잘 가꾼 정원이 얼마나 보기 좋으며 우리의 심신을 위로한다는 정원예찬론 정도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 선입견을 뛰어넘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정원 가꾸기 즉 원예 활동이 사람들 심리 치료에 큰 효과가 있음을 끝없는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더 나아가 자연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꽃과 나무와 텃밭의 식물과 창가의 작은 화분까지 동원하며 안내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음은 자연과 더불어 살 때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정원이 이렇게 쓸모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자연의 신비한 힘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연 속에 아주 작은 존재 하나로도 설명이 어려운 힘을 얻는다.    자연 속 작은 풍경 처마 밑 제비집은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준다. 제비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다른 새들은 경계심으로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만든다. 제비는 오히려 사람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장소에도 겁 없이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운다. 사람들도 다른 새가 집안 어디에 둥지를 틀면 싫어하고 방해한다. 그러나 제비가 날아들면 환영한다. 둥지 받침대도 만들어 주는 것은 흥부 아저씨 이야기로  마음에 담긴 제비가 복을 불러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즐기는 자연이 아니고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며 바라보는 자연이 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이 한 조각 자연의 풍경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자꾸 자연스러움에서 멀어지고 있다. 자연과 멀어져 사는 삶이 어느 날 제비집을 보며 가르침을 얻는다. 지푸라기에 잘 다진 고운 흙을 덩어리지게 묻혀 차곡차곡 쌓은 제비 둥지는 그 노고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는 것의 정성을 깨우쳐 준다. 한번 정 붙인 집은 잊지 않고 매년 찾아 드는 고향에 대한 약속 같은 정겨움이다. 노란 부리가 귀여운 새끼 제비가 둥지 밖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가족이라는 그림이 그려지며 그렇지 않은 빈 둥지를 할 말 없게 한다. 내 삶이 더 중요하다며 비어 있는 가족 관계를 에둘러 나무란다. 쉬지 않고 새끼 제비의 입속에 먹이를 넣어주는 엄마 아빠 제비의 부지런함은 잊었던 부모님의 노고를 떠올리게 한다. 날개에 힘을 얻은 새끼 제비들이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신통한 성장은 자녀들의 어느 날 모습에 놀라는 어른들의 표정을 읽게 한다. 그래서 처마 밑 작은 보금자리는 해마다 생기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봄 여름 가을의 계절 속에 제비 가족이 처마 밑에서 지내는 시간은 잘 지어진 제비집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찾은 낯익은 그 집의 처마에 들어서서 부부 제비는 손발 맞추어 정교한 제비집을 완성한다. 멀지 않아 그 포근한 자리에는 몇 개의 제비 알이 내일을 준비한다. 날개 밑에서 체온을 받아 새끼로 자란 작은 생명이 알껍데기를 열고 세상을 본다. 노란 부리가 예쁘게 드러나며 먹이를 받아먹고 날마다 자라난다. 어느 날 날개가 완성된다. 둥지를 나와 가까운 전깃줄까지 날아가는 연습에 열중한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매일매일 날개에 힘을 저축한다. 단풍 드는 계절이 오면 늘어난 제비 가족은 정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남쪽 나라로 향한다. 집주인은 섭섭함을 달래며 내년에 만나자 손을 흔든다.     제비집은 이제 주인이 없다. 그래도 제비집은 내년을 기다리며 새끼 제비들의 짹짹거림과 날씬한 선을 긋던 제비의 날갯짓을 되새기는 소리가 그곳에서 들린다.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 살아난다. 흥부 놀부가 울고 웃던 제비집을 그려보며 사람들은 흥부도 되고 놀부도 된다. 제비집이 우리에게 자연으로 흘러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제비집 새끼 제비들 제비 둥지 제비 가족

2022-08-22

[수필] 가족 사진

"귀중한 날들 사진으로 남겨 힘들 때마다 꺼내 봐야지"   지난 7월 4일, 많지도 않은 우리 4식구가 모여 사진을 찍었다.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 가족의 기념비적 사진이었다. 우리 식구는 남편은 한국에 있으면서 가끔 미국에 오고 큰아들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 년에 두 번, 7월 4일 독립기념일 연휴 때와 11월 추수 감사절에 LA집에 온다. 나는 LA의 작은 아들 집을 베이스 캠프로 LA와 한국에 있는 남편 집을 오간다. 그러다 보니 4식구가 다 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우리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이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요새는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카메라가 비싸서 아무나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러니 가족사진은 기념일 등 가족의 행사나 특별한 날에 옷을 갖춰 입고 사진관에 가서 자세를 바로 하고 함께 찍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앨범에 보관하거나 액자 등에 담겨 오랜 시간 잘 보이는 곳에 전시용으로 걸어 놓거나 진열해 두었다.     이번에 우리가 찍은 사진은 평상복 차림으로 집에서 셀카로 찍었다.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으니 우리 함께 사진을 찍자고 내가 남편을 설득하고 남편은 사진 찍기 싫어하는 아들들에게 “엄마 좀 한 번 봐 주자”고 사정을 해서 찍게 되었다.     남편은 은퇴 후 대충 6개월에 한 번씩 한국과 LA를 오가며 지냈는데 80 고개를 넘어서 이제는 오랜 시간 비행기 타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비싼 비즈니스 좌석을 타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덜컥 병에 걸려 입원까지 하게 되니 앞으로 또 무슨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니 남편도 고령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 걱정이 생겼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며, 그 귀중한 날들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들들은 나의 그런 심경의 변화를 모르리라.   우리 식구들은 나 빼고 셋이 다 남자들이라 그런지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 그토록 싫어하는 데는 내 책임이 크다. 젊어서 한때 내가 사진 찍는 것에 심취하여 식구들을 모델로 마구 찍어 댄 적이 있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얘들아, 여기를 봐” 하면 제법 포즈를 취해주다가 좀 커서부터는 사진만 찍으려 하면 고개를 돌려 사진마다 뒤퉁수만 보였다. 남편은 사진 찍기를 싫어한다고 하기보다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는 언론인인지라 한가하게 사진 찍을 시간이 없었다. 해마다 결혼기념일에는 꼭 찍기로 약속을 했지만 언제부터 인가 유야무야가 돼 버렸다. 그러니까 이번 사진은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모두 어렵게 시간을 조정해서 만든 기념비적인 가족사진이다.   요즘 인터넷에는 아들 둔 엄마들의 자조 섞인 유머들이 꽤 많이 떠돌아다닌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평소에 나는 목메달을 목에 걸고 딸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들이 내가 아프니까 엄마를 위해 벌 벗고 나섰다.  내가 병석에 누워서 지낸두 달간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아픈 게 오히려 가족에게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시간이었다.  LA에서 같이 사는 작은 아들은 내가 재활센터에 있는 동안 엄마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초라하다고, 찾아오는 가족이 없으면 간호사들도 무시한다며 퇴근 후 되도록이면 매일 면회를 오다시피 했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아직 오지 않은 상태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나를 돌봐 줬다.   멀리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큰아들은 두 번이나 휴가를 내서 나를 보러 왔고 매일 내 상태가 어떤지 전화로 점검했다. 또 다음과 같은 카톡으로 내게 감동을 줬다. 난 10대에 한국을 떠난 내 아들이 그렇게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줄 몰랐다.     “어머니, 제가 교회는 안 다니지만 어머니 아프지 마시라고 기도해요. 소중한 우리 어머니, 빨리 회복하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실 것을 바란다고 기도하고 있어요.  어머니 힘내세요.”,     “어머니, 오늘은 어떠세요? 요섭이 말로는 안정이 되셨다는데 그래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어머니, 몸이 안 좋으시면 돈 걱정 마시고 911 불러서 병원에 입원하세요.”     “돈 걱정 마시고 몸이 좋아지실 때까지 병원에 계세요.” 등등.     당시는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척추의 신경을 누르는지 숨도 크게 못 쉴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아들의 효심에 감동해서 격하게 몸을 들썩이면 아플까 봐 울지도 못하고, 그것이 또 슬퍼서 소리 없이 눈물만 철철 흘렸다.     이번 기회에 목메달 아들들의 효심이 금메달로 확실하게 증명된 셈이었다. 아들들은 목메달이 아니라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내가 입원했다는 작은아들의 전화에 남편이 놀라서 LA서 입을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한국서 날라 왔다. 아들들에게는 고마운 마음만 표시하며 되도록이면 아픈 내색을 못 했다. 남편이 옆에 있으니까 든든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대신해서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고, 왜 그렇게 간호를 못 하느냐고 신경질도 내고, 추한 꼴도 마음 놓고 보이고, 뭐니뭐니해도 남편이 제일 편했다.   두 달간 아프고 나서 7월이 되니 웬만큼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파서 서러웠던 것도 기억하고 그동안 가족들의 고마움과 소중함도 기념하고 친구들에게 내 근황도 전할 겸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예상외로 건강하게 보였다. 작은아들이 “엄마, 누가 이 사진을 보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중인 여자로 보겠어요? 고 했다. 어느 친구가 내가 카톡으로 보낸 사진을 보고 그 밑에 ‘행복’ 이라는 사진 제목을 붙여서 다시 보냈다. 사진을 보니 내가 행복해서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   예전에는 잘 보이는 벽에다 가족사진을 걸어 놓고 보았다면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지금은 배경화면에 가족사진을 지정해 넣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보고 마음을 다잡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가족은 힘이다. 힘들 때마다 나도 우리 가족 사진을 보면서 힘을 내야 하겠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가족 동메달 아들 우리 식구들 우리 가족

2022-08-18

[독자 마당] 가까이 있는 코로나

코로나19팬데믹으로 여행도 자주 못 다니고 답답한 나날을 보낼 때가 많다. 그래도 신앙의 힘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견디며 지낼 수가 있다.     아들이 일 년 만에 하와이에서 돌아왔다. 딸은 동생이 보고 싶다며 온 가족을 이끌고 북가주에서 내려왔다. 아들은 어머니 혼자 고생이 많았다며 집안 대청소는 물론 집 내부를 하얀색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했다.     그동안 집 안 청소를자주 못 했는데 새집에 이사 온 것처럼 집안이 훤해졌다.     집안이 깨끗이 정돈되니 기분이 아주 상쾌해졌다. 아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 아들과 딸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3박 4일로 일정의 북가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요세미티와 샌프란시스코 솔뱅 등 여러 곳을 관광했다.     예전에 두루 여행한 곳이지만 가족과 함께 기분 전환으로 잘 다녀왔다. 건강한 사람에게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여행이라는 학교에서 인생 공부를 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더 윤택하고 풍요롭게 된다     사람들은 코로나로 죽느니 사느니 해도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인간에게 경이로움을 주었다.     나는 여행 내내 꼭 마스크를 착용했다. 날씨가 더워 고역이었지만 버스 안에서도 호텔에서도 식당에서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아직도 코로나19 변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아 꼭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딸네 가족도 마스크를 꼭 하고 다녔는데 아들은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해서 주의를 주기도 했다.       관광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아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고 목이 아프다며 감기약을 먹었다. 그런데도 별 차도가 없었다. 혹시 코로나에 걸렸나 검사를 해 보니 양성이 나왔다.  나와 딸 가족도 모두 검사를 했지만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나와 딸 부부는 백신을 4번 맞았고 손주들도 모두 백신을 맞았다. 아들도 백신을 3번 맞았지만 감염이 됐다.       집에서 확진자가 생겼으니 난감했다. 우선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받아와 먹고 치료 중인데 한집안에서 살아야 하니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밥은 따로 먹어야 했고 아들이 사용한 그릇은 일일이 끓여서 소독해야 했고….   나에게는 코로나가 아주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아들이 걸리고 보니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코로나는 멀리 있는 전염병이 아니고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되었다. 김수영독자 마당 코로나 딸네 가족 집안 대청소 모두 백신

2022-07-27

한인 집 불 끄고 온몸에 화상…공사하던 히스패닉 형제

세리토스 지역 한 한인 가족이 화상을 입은 공사 업자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사건은 지난 16일 세리토스의 루카스 레인 인근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   온라인 기금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Go Fund Me)’에 따르면 히스패닉 아벨 헤레라(55)는 제니퍼 강 씨 집에서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때 다락방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감지한 헤레라는 강 씨의 아들부터 대피시켰다.   제니퍼 강 씨는 “그때 우리 아들(14세) 윌리엄이 방 안에 있었는데 헤레라가 곧바로 와서 밖으로 나가라고 알려줬다"며 “이후 불길이 번졌고 헤레라와 그의 동생 사울은 위층으로 가서 불을 끄려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헤레라는 온몸의 60%에 화상을 입고 현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상태다.   강 씨는 “당시 아들을 제외한 우리 가족은 외출 중이었는데 헤레라는 아들의 생명과 우리 집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우리 가족은 헤레라와 오랜 시간 일해왔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잘 안다"고 말했다.   강 씨 가족은 헤레라를 돕기 위해 고펀드미에 ‘아벨 헤레라(Abel Herrera)’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연을 공개했다. 이들은 최소 20만 달러를 모금하는 게 목표다. 22일 현재 6만3000달러가 모금됐다.   강 씨는 "헤레라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이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며 "그만큼 헤레라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자기 일을 감당해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니퍼 강 씨의 시아버지는 전 ABC 통합교육구 교육위원이자 서부부동산 대표였던 강중한 씨다. 장열 기자히스패닉 한인 히스패닉 형제 한인 가족 히스패닉 아벨

2022-07-22

이혼 후 집을 바로 팔아서 분할해야 하나요? [ASK미국 가정법 - 이선민 변호사]

▶문= 미성년자 자녀가 두 명 있고 재산은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집과 저축해 둔 현금자산이 전부입니다. 이혼을 해도 제가 금방 직장을 얻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당분간 남편이 주는 양육비와 배우자 부양비에 의존해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혼에 따른 아이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학을 진학할 때까지 집에 살고 그 후에 팔아서 분할하기를 원하는데 가능한가요?   ▶답= 남편분과 합의가 될 경우는 연기하는 것에 문제가 없고 남편분이 원하지 않는 경우라면 법원에 가족 거주지 매각 연기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합의가 아닌 법원에 매각 연기 신청을 통해야 하는 경우는 법원이 승인을 할 수도 거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가정법 제3801항은 법원이 고려해야 하는 여러 가지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가족 거주지에 얼마나 오래 거주하였는지 해당 거주지가 자녀들의 학교와 얼마나 가까운지 장애가 있는 자녀가 있는지 있다면 해당 거주지가 장애 아동의 생활에 편리하게 개조가 되어 있는지 거주지를 옮길 경우 자녀들이 겪게 될 심리적 피해의 정도 해당 거주지에 계속 사는 것이 부모가 자녀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집을 파는 것을 연기하여 분할이 지연될 경우 비거주 배우자에게 미치는 경제적 손실의 여부와 정도 그 외에 매각 연기로 인한 세금 관련 문제는 없는지 등을 고려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남편이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집을 팔지 않더라도 남편분이 새로운 거주지를 구할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된다는 것 집 매각이 지연됨에 따라 남편분이 겪을 경제적 손실이나 세금 관련 불이익이 없거나 있더라도 집을 즉시 매각할 경우 자녀들에게 미칠 피해에 비해 경미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  만약 집을 파는 것이 연기되면 모기지나 재산세 수리비 등 집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누가 부담하게 되나요?   ▶답: 통상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거주 배우자가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집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집의 임대 가치에 차이가 있을 경우는 양육비나 배우자 부양비 액수 혹은 추후 집을 매각한 후 분할 액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문의: (714)503-0763 이선민 변호사미국 가정법 이선민 변호사 가족 거주지 캘리포니아 가정법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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