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지난주 한 일 다섯 가지를 적어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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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효율부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지시로 인사관리처가 지난 주말 연방정부 공무원 200만여 명에게 뿌렸다는 e메일 내용이다. 일정 기한까지 답하지 않으면 사직으로 간주한다는 대목도 들어 있었다.
내가 이 e메일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 스마트폰을 뒤적이느라 바빴을 것 같다. ‘이걸 알려도 될까’ 보안 고민도 했을 것 같다. ‘트럼프의 입’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저는 5가지를 떠올리는 데 1분 30초 걸렸다”고 했지만 나로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공무원 200만여 명이 일순간에 겪었을 대혼란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미국 연방 정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28/d953fa8f-59bb-4cbd-bd8b-6d7722cf202f.jpg)
느리고 비효율적인 미국 행정에는 나도 한숨이 나올 때가 적지 않았다. 사회보장번호(SSN)를 신청했다가 “2~4주 안에 우편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창구 직원의 설명과는 달리 몇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아 포기 단계에 이른 적이 있다. 신청 사실조차 잊고 지내던 1년쯤 뒤 SSN 우편물을 받아들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느려터진 운전면허국(DMV) 행정을 겪으며 미국에서 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곤 했다.
이런 행정의 개선 필요성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일방적 폭력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줄여야 할 인원과 재정적자 등 ‘숫자’에 매몰돼 동의를 구하고 설득을 하는 절차는 소홀히 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갈등이 깊어지는 건 그래서다. 이를테면 국세청(IRS)이 직원 6000명 해고에 들어가면서 생긴 업무 공백 탓에 세금 신고 등의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인들이 늘고 있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난 전직 공무원 등 반트럼프 시위대 사이에선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익명을 원한 한 현지 대학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를 “헌법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규정하며 “민주주의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난주 무슨 업무를 했는지 5가지를 대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 5가지를 말하라면 당장 댈 수 있다.”
김형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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