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서 라디오 시보로…시간은 어떻게 사람을 묶었나

“조선정부가 태양력을 채택한 게 1896년인데, 가장 큰 이유가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하고 같은 시간을 살기 위해서였죠. 세계에 참여하기 위해서 양력을 써야 한다는 건 일본이 1873년 메이지 개력 역법을 도입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근 40년 만에 완전히 양력으로 전환됐는데 우리는 양·음력이 꾸준히 공존했죠. 그 차이를 만든 사물들의 연대기를 써봤습니다.”

지난 19일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시의회 본관 앞. 예스러운 분위기의 시계탑(46.6m)이 우뚝 서 있다. 1935년 12월 ‘경성부민관’이라는 공연시설로 지어질 당시부터 있던 시계탑은 1975년 사라졌다가 2023년 복원됐다. 그의 책에 따르면 1901년 한성전기회사 탑옥 시계탑을 필두로 랜드마크 역할의 신축 건물엔 이 같은 대시계가 유행처럼 장착됐다. “정시에 운행되는 전차·기차, 정시에 개점하고 폐점하는 은행·백화점과 맞물려 근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였다”고 한다.
정시라는 건 예컨대 오전 9시, 오후 5시처럼 딱 떨어지는 시간이다. 이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기 위해선 처음엔 시계탑처럼 거대한 기념물이, 나중엔 각자 집의 벽시계나 손목시계 같은 게 보급돼야 했다. 저자는 종·오포(午砲·낮 12시를 알리는 대포)·사이렌·시계·라디오 등 시간과 관련한 사물의 역사를 숱한 고문헌, 사료와 당시 신문기사 등을 토대로 세밀하게 따라간다.
특히 우리의 근대가 일제강점기와 포개지기 때문에 ‘엇박자’를 낸 풍경들이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표준시 문제가 있다. 조선에서 1908년 처음 적용된 표준시는 일본과 30분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도입된 경부철도는 30분 빠른 일본 표준시(1904년 도입)에 따라 운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군이나 일본인이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차의 혼란이 결국 한일강제병합 후인 1912년 일본 표준시로 통일하게끔 만들었다.
![경성방송국 5구 진공관 라디오 수신기. [사진 테오리아 ]](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24/70d19b95-46c2-4bb8-b1f4-1447e16e5226.jpg)
“양력 달력 하단엔 음력 날짜와 역주가 같이 실렸어요. 1910년 무렵부터 조선은 양력 기준이 되지만 여전히 장날 같은 건 음력으로 돌아가죠. 달력에서 음력 역주가 사라진 건 1937년입니다. 이때 일제는 전쟁 태세에 발맞춰 조선의 미신 풍습을 뽑아내려 했는데, 이런 게 반영된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처럼 양력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다. 일본에선 음력설이 사라진 반면 우리는 광복 후 우여곡절 끝에 1월1일과 설날을 따로 기념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남은 음력의 자취는 전근대적 지체 현상일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빈틈없는 시간의 운용은 이 세계가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하다는 믿음에 기대고 있지만 과연 그런가요. 사실 근대적 시간 도입 이후에도 음력의 점성술적 사고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요즘도 사주·오행을 따지는 근거가 되죠. 이게 실용적이거나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기보다 알 수 없는 불안과 혼란에 맞서는 숨구멍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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