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만 하는 중국보다 '통 큰 거래' 가능한 미국이 더 낫다? [월간중앙]
독점기고 | 트럼프에 대응하는 북한 외무성 5가지 로드맵
반미보다 반중(反中) 정서 강해…최종 목표는 북·미 수교 통한 정상국가
북한 핵 포기 가능성 없어…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 지위 얻는 게 목표
필자는 지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외무성 6국(아프리카·중동·라틴아메리카 담당국)과 7국(주체사상 대외선전국), 주베트남 북한대사관에서 주로 김정일·김정은의 대외정책적 건의안(보고문건)을 작성하고 실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외무성 6국 재직 시절 작성한 〈적도기니의 인권문제를 걸고 들고 있는 미국의 속심 분석과 의견보고〉 대외정책적 건의안은 김정일이 직접 사인했으며, 여전히 외무성에서 활용되고 있다.
외무성 재직 당시 김씨 일가에게 다양한 보고 문건들과 정책관철용 대책안, 현지에서 타전한 전보문을 작성·분석·보고하면서 김정일·김정은이 추구하는 대외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가 김정일·김정은과 평양 수뇌부가 북핵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정확히 알게 된 배경이다. 이번 글은 전직 북한 외교관의 시각에서 바라본 ‘북핵’의 진실이다.
![과거 이념만을 강조한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구소련의 해체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회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23/4bdc68b5-13ce-4388-aa93-54111b358788.jpg)
물론 제재 해제도 북한의 목표 중 하나다. 북한은 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1991년 구소련 해체에 따른 동유럽 공산권 나라들의 붕괴로 국제사회로부터 홀로 고립됐다. 북한이 이념만을 강조한 탓이다. 더 이상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지원을 기대하지 못하게 된 북한은 ‘자력갱생’, ‘간고분투(艱苦奮鬪)’를 제창했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북한은 국제적 지원과 원조로 경제적 난관을 해소하는 전술을 세우고 핵 개발 의혹을 의도적으로 국제사회에 증폭시켰다. 협상을 통해 이에 상응한 미국의 대북 제재 해소와 함께 유관국들에 경제적 보상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시작된 게 지난 1994년 10월 북·미 간에 체결한 제네바 합의다. 미국은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북한에 200만㎾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다. 1992년부턴 남북경협도 활성화됐으며, 국제아동기금과 세계식량기구 등 대북 경제지원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음을 미국이 재차 확인하면서 인도주의적 경제지원은 잠정 중단됐다. 오늘까지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기 위한 모든 회담들과 국제적 노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역대 모든 미국 행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비핵화’에 초점을 두기 위해 북한의 핵 개발 의지와 기술, 능력을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것이다. 이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능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은 핵 개발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유도하기보다는, 현실적 감각을 갖고 그에 상응한 대응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북핵에 대해 새로운 평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동시에 미국과 대한민국이 대북정책 조율 과정에서 뚜렷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한 핵 능력, 평가절하의 시기 지났다
북핵에 관한 트럼프의 시각은 2025년 1월 20일 단적으로 드러났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호명했다. 트럼프 2기의 첫 국방장관인 피트 히그세스가 1월 14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이라고 표현한 지 불과 6일 만에 트럼프가 또다시 북한에 대해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트럼프 2기가 과거에 고수하던 북한의 무조건적인 핵 포기에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과 같이 묵인하는 방향으로 ‘북핵 대응전략을 수정한 것은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한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에 고수하던 북한의 핵 포기에서 핵 군축으로 선회하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가 가볍게 던진 말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먼저, 트럼프의 ‘핵 보유국 발언’이 대한민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 묵인이라는 카드를 갖고 한·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시종일관 북핵 포기를 대북정책 기조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두 번째는, 대중국 압박 카드다. 만일 트럼프가 인도·파키스탄처럼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대가로 김정은에게 대중국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면, 하루속히 중국의 대국주의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북한 입장에선 미국의 딜을 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김정일 집권 시기 주한미군의 조건부적인 북한 주둔을 허용하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실리 외교의 달인인 북한이 두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체제 안정 담보와 침체된 북한 경제의 부활을 추구할 수 있다면 김정은에게는 해볼 만한 게임이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북핵 해결책에 대한 입장을 하루빨리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대한민국의 이해관계에 맞게 조율하는 게 절실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김정은을 통해 북한을 관리·통제하려 할 것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대북 정책과 제재는 북한의 핵 개발 의지와 능력을 차단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오히려 미국의 오판으로 북한의 핵실험이 가능했다고 보는 대북 전문가들도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두 차례에 걸쳐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다른 미국의 정상들과는 다른 트럼프만의 권위주의적 성향에 ‘독재자 김정은’의 기대심리는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그리는 ‘정상국가’는 비핵화와 핵 군축과는 모두 거리가 멀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열린 신형 전술탄도미사일발사대 인계인수 기념식.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23/c9042d7d-c3f2-4e38-a57b-6bf2b87889f5.jpg)
체제 안정, 경제 부활 카드로 ‘정상국가’ 추구?
그렇다면 김정은과 평양 수뇌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최종 목표는 ‘북·미 외교관계 수립을 통한 정상국가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북·미가 협력하는 경우 트럼프가 떠안게 될 한·미 관계 악화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대한민국과 별개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김정은의 ‘두 국가론’은 북한이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됐다는 메시지다.
중국의 대국주의적 간섭보다는 ‘권위주의적 친구’ 미국이 북한 입장에선 나을 것이다. 최근 김정은은 트럼프의 ‘핵 보유국’ 호명에 화답하듯 핵 보유 당위성을 인위적으로 강조하면서 핵무기 개발 관련 행보를 연일 강행하고 있다. 지난 1월 25일 김정은은 해상(수중) 대 지상 전략 순항유도무기 시험발사를 참관했으며, 1월 29일에는 핵물질 생산기지와 핵무기 연구소를 시찰했다. 이후 북한 외무성 보도국은 1월 25일 ‘미국이 주권과 안전이익을 거부하는 이상 철두철미 초강경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미국을 상대하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대외보도실장 명의 담화를 발표하여 북한의 대미협상 조건을 역설했다.
김정은이 그리는 ‘정상국가’가 비핵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월 25일 외무성 담화에서 보듯, 김정은은 절대로 핵을 포기할 뜻이 없다. 향후 핵 보유를 인정받으면서 북·미 핵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북한이 2023년 12월 노동당 제8기 제9차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고착화됐다고 규정한 이유는 핵 보유가 미국 핵전략 자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격으로부터 국가(북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기도하다. 또, ‘하나의 민족’이라는 전통적인 통일 관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하나의 국가로 북미협상에 임하는 것이 핵 협상을 주도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복귀한 이후 북한을 향해 발신한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푸틴과 김정은을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하며 이들과 소통을 잘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시진핑에 대해선 날 선 비판을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가 푸틴과 김정은을 추켜세우는 이유를 읽을 수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대중국 압박이라는 일거양득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북한 입장에선 체제 안전 담보와 북한 경제의 활성화를 성공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게임’이다. 사진은 평양 전위거리. [로이터=연합뉴스]](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23/141d9ba4-bbe0-4636-8893-2a7f8b991427.jpg)
‘핵 보유국 인정’ 위한 평양의 대미 협상 시나리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 내주고, 북한을 핵 보유국이라고 불러주면 트럼프도 이들 두 나라로부터 일정한 이권 요구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윈-윈 전략이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이 북한 입장에선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점이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북한 외무성은 현재 다음과 같은 5가지 로드맵을 세웠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먼저, 북한은 트럼프의 메시지는 무시하고 미국과 한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일 것이다. 동시에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대로는 연일 ‘두 개 국가론’을 주장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핵문제를 북·미 사이 문제로 전환할 것이다. 향후 김정은은 미국 압박용 핵 시찰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요구할 내역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것이다. 2차 회담에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는 김정은은 다음 북·미 정상회담에는 철저히 준비된 자세로 나타날 것이다. 북한의 준비된 자세란 7차 핵실험의 성공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은 3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진행될 것이다.
세 번째, 북한은 7차 핵실험 직후 유관국들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일 것이다. 대중국 압박에 올인하는 트럼프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북한은 이미 중국의 경제적 압박을 통한 정치적 개입을 탈피하기 위해 여러 조치들을 준비 및 실행했다. 지난 2014년 북한이 베트남 하이퐁 항구의 일부를 임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중국이 자국 다롄(大連)항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자 베트남으로까지 활로를 찾아 나섰다.
네 번째, 북한은 미국의 ‘핵 포기’ 요구를 ‘핵 군축’ 협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원론적인 어젠다를 대거 테이블에 올려놓을 것이다.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에는 이미 군축과가 존재한다. 북한은 ‘핵 군축’을 미국과의 협상 어젠다로 상정해 장기전을 유도할 것이다. 북한은 장기전 이후 궁극적으론 ‘관념적인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주의할 점은, 북한은 핵 군축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장기전으로 협상 대상자들을 지치게 하고 시간을 얻어 종국적으론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려 할 것이다. 지난 2007년 김계관 당시 외무성 1부상은 6자 회담에 나서 “우리는 인도와 같은 핵 보유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것이 북한의 진심이다. 따라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성 있는 대응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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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명 전 주베트남 북한 서기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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