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노골적 친러행보에 유럽서 '나토 와해' 우려까지 제기
'유럽내 일부 미군 철수·나토 집단방위 불이행 가능성' 우려 美 "나토 헌신할 것" 밝혔지만…유럽, 트럼프 변덕에 좌불안석
'유럽내 일부 미군 철수·나토 집단방위 불이행 가능성' 우려
美 "나토 헌신할 것" 밝혔지만…유럽, 트럼프 변덕에 좌불안석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골적인 친러시아 성향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이 나토가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설정하고 있는 적국인 러시아를 오히려 비호하는 기조를 보이면서 나토의 근간인 집단방위의 억제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체화한 유럽 정책의 기조를 보면 최근 들어 나토 동맹국들이 우려할 상황이 연일 전개되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최근 유럽 국방장관들에게 미국이 유럽에서 병력 일부를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했다고 2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WSJ은 아직 미국 당국자들이 유럽 내 미군의 철수 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으나 이들 중 다수는 그런 지시가 내려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의 유럽 내 병력 감축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예상되던 시점부터 이미 전문가들이 점쳐온 사안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보수 싱크탱크 해리티지재단의 정책제안 '프로젝트 2025'에는 유럽 내 미군의 타 지역 배치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이 있었다.
미국의 주도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자산을 해군으로 전환하라는 게 병력 운용에 대한 제안의 골자였다.
유럽 내 나토 동맹들은 나토의 군사력 약화 가능성을 넘어 미국의 나토 조약의 불이행 가능성도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미와 유럽 32개국의 동맹체인 나토는 1949년 체결된 나토 조약 5조에서 동맹국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모든 동맹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집단방위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군사력이 약하고 안보가 취약한 동유럽 군소 국가들까지 러시아를 상대로 억제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나토 동맹의 토대였다.
유럽의 우려는 러시아에 이런 억제력이 제대로 작동할지, 미국이 집단방위 약속을 이행할지 불투명하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걱정의 불쏘시개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가감없이 내보인 러시아에 친화적인 성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당사국 우크라이나, 유럽의 안보 동맹들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 양자회담으로 시작했다.
이는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의제 설정을 밀어붙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며 미국이 유럽 안보를 경시한다는 얘기로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논리와 언사를 빌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까지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관세를 앞세운 무역전쟁으로 유럽을 위협하고 유럽이 미국의 안보 지원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비판을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행 때문에 러시아가 미국 동맹들에 모험적 행위를 하는 데 대담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진 섀힌 의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가 러시아에 대한 타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섀힌 의원은 WSJ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젤렌스키 비판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고 나토 동맹국들에까지 쳐들어갈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나토 동맹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집단방위 조약이 발동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이행할지를 두고 유럽 지도자들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1기이던 2018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탈퇴 가능성을 경고하고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해오던 집단방위 약속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작년 2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는 방위비를 증액하지 않는 유럽 국가를 겨냥해 러시아가 마음껏 행동하도록 하겠다는 신념까지 털어놓아 파문을 일으켰다.
슬로바키아의 나토 주재 대사를 지낸 페테르 바토르는 "나토 동맹국 하나가 다른 동맹국들이 보호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것은 나토 종말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신이 취임 후에 수정됐는지 불투명하지만 일단 당국자들은 나토 탈퇴와 같은 극단적 선택에는 선을 긋는다.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지난주 나토 국방장관들을 만나 "미국이 나토 동맹, 유럽과 군사협력에 계속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의존을 부추기는 불균형한 관계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우리의 관계는 유럽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도록 강화하는 것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복귀와 함께 나토의 약화 가능성이 관측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행보는 실제로 대담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18일 미국과 우크라이나전 종식 협상에서 나토의 동유럽 철군을 요구했다.
미국은 이를 일단 거부했으나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정책기조와 친러시아 성향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일부 유럽국은 벌써 나토 약화나 미국에 대한 유럽의 군사 의존도 축소 추세를 염두에 두고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다.
덴마크는 "안보가 냉전 시대보다 엄중하다"며 올해와 내년 국방비를 500억 크로네(약 10조원) 추가 편성한다고 지난 19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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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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